▷니플하임 제국의 재건
벌써 3단계로 이어지는 연계 퀘스트.
일이 꼬였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위드는 왕국 도서관으로 갔다.
베르사 대륙 전반에 대한 역사는 상당 부분 가지고 있었지만 개별적인 역사에 대한 정보들은 직접 찾아봐야
했다.
사보이도 백작(수르 제국력 436년~479년)
17세에 기사 서임을 받음.
20세에 기사 수행을 다녀옴.
36세에 영지를 물려받음.
검술과 기마술에 탁월한 재능을 가졌음.
43세에 반란을 일으켜 참수됨.
인물 편에는 간단한 정보밖에는 나와 있지 않았다.
역사 편이나 전쟁 편도 보았지만, 사보이도 백작에 대한 부분들은 누군가 일부러 지우기라도 한 것처럼 누락되
어 있었다.
"찾았다."
"어디야?"
"이 근처에 숨겨진 보물이 있대."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모험가들과 마법사들이 서둘러 나갔다.
도서관에는 위드처럼 정보를 얻기 위해 온 유저들이 20명 가량 있었던 것이다.
대박도 어딘가에 숨겨져 있지만,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고 본전을 건지기도 어려운 게 도서관에서 정보 찾기
였다. 하물며 이토록 기본적인 정보들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이대로는 찾기 어렵겠는데.'
위드는 고심에 잠겼다.
경험 많은 모험가들도 서적을 통해 단서를 찾기란 어려운데 조각사인 자신이 정보를 모으기란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았던 것.
'내 접근 방법이 잘못되었던 걸까? 그래. 난 조각사니까, 어쩌면 조각서부터 봐야 하는 거였
을지도 몰라.'
위드는 예술 계열의 서적들을 뒤적였다.
《기념물의 역사》, 《발굴된 조각물》, 《수르 왕국의 자랑스러운 조각품》.
여러 권의 책을 읽던 와중에 《고대의 조각품》이란 제목의 책을 보았다. 거기에 이름은 달라도 현재 가지고
있는 조각품에 대하여 나와 있었다.
안식의 상:종교의 상징물.
망자들을 인도해 주는 마탈로스트 신을 따르는 신도들의 상징물이다. 그들은 깃발이나 문양을
사용하지 않고 조각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마탈로스트 교단의 사제들은 강한 신성력을 가지고 망자들을 인도할 수 있었다.
마탈로스트 교단은 대륙 공용어가 탄생한 이후로 신의 이름을 내세우는 대신 부활의 교단이라
고 불리기도 했다.
죽음과 가까이 하고 그에 대한 연구를 하기 때문에 세간의 평판은 극히 좋지 않아서 상징물을
조각품으로 간직하는 건 주로 몰래 보관하기 위한 용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탈로스트교 신물들의 일부는 특별한 성물로, 평범한 조각품과는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다.
『-퀘스트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입수하셨습니다.』
조금 헤매기는 했지만 퀘스트 성공.
위드는 선술집으로 가서 스미스에게 보고했다.
"이 조각품은 마탈로스트교의 상징물이라고 합니다."
"뭐야?"
"고대 종교의 상징물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성물일지도 모르고요."
띠링!
『노인 스미스의 궁금증 완료
용병 출신인 스미스는 젋었을 때 봤던 조각품에 대한 의문을 풀었다.
이제 그는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0.4% 향상되었습니다.』
『-신앙 스탯이 1 오릅니다.』
의뢰를 완수하면서도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를 올릴 수 있다니, 이런 퀘스트도 나쁘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돌아
다니라는 말 때문에 시간을 과하게 잡아먹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역시 그랬단 말이지. 딸꾹!"
주정뱅이 노인 스미스는 만취해 있었다.
"약속대로 젊으셨을 때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시지요."
"암! 나는 말이지이, 정말 착실하고 예의 바른 용, 벼엉이었어. 돈도 많이 벌었지. 대부분 술과
여자를 사는 데 쓰이긴 했지만."
스미스는 혀가 풀린 말투로 어떻게 용병단에 들게 되었는지, 자유 용병으로 의뢰들을 수행하며 돌아다녔는지를
이야기했다.
위드는 물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주정뱅이의 말을 일일이 다 들어 주다가는 한도 끝도 없었으니까.
스미스는 얼마 되지 않아서 본론을 말했다.
"이 조각품 말이지이, 그때 백작은 이 조각품을 가지고 성의 지하실로 도망가려고 했어. 크으
취한다."
"왜 그랬을까요?"
"나도 모르지. 아무튼 참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딸꾸욱. 술이 입안에 쩍쩍 달라붙는구나.
근데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더라."
스미스는 헷갈려하는 모습을 보이며 엉뚱한 이야기를 한참 쏟아 냈다.
용병 일에 대한 자랑과, 대륙의 술들에 대한 주정뱅이의 설교!
스미스의 시선이 다시 조각품을 향하더니 정신을 차린 듯이 물었다.
"그 뒤로 이 조각품을 본 적은 없었는데...... 자네 한가하지?"
"한가하진 않습니다만."
"나를 데리고 가서 이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스미스는 품에서 녹슨 열쇠를 꺼냈다.
"기억이... 아마 그때 이후로 지하실은 봉인이 되어서 이 열쇠가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이번에 나를 데리고 가서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겠나?"
띠링!
『노인 스미스의 두 번째 궁금증
주정뱅이 노인 스미스는 사보이도 백작의 마지막 모습에 의문을 가졌다.
그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백작의 저택을 수색하여 지하실을 찾아내고
비밀을 파헤쳐라.
연계 퀘스트, 망자들을 인도하는 마탈로스트 교단의 숙원과 니플하임 제국의
재건으로 이어짐.
난이도:A
보상:스미스의 술 한 잔.
퀘스트 제한:조각사 한정. 스미스의 사망 시에는 퀘스트 실패. 』
니플하임 제국이라면, 그가 영주로 있는 모라타가 있는 북부에 수십 년 전까지 존재했던 대제국!
어둠의 숲에서 내려온 본 드래곤과 몬스터들로 인해 성과 마을 들이 불타올랐다. 황제는 세르비안의 구슬을
이용하여 그들을 봉인하려고 했지만, 북부 전체가 얼어붙는 비운의 결과만을 낳았다. 추위와 몬스터들의 습
격, 분열 등으로 인해 제국은 붕괴했다.
지금 니플하임 제국이 재건된다면, 북부의 안정도 반석 위에 올려진 것과 같으리라.
부활의 교단과 연관된 조각품에서 이런 퀘스트가 나온 게 약간은 의외였지만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부활의
교단, 마탈로스트교도 원래는 북부에 있던 교단이었다.
용병 스미스의 의문을 해결한다면 그다음에는 니플하임 제국의 재건과 관련된 퀘스트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모라타를 더 비싼 가격에 팔아먹을 수 있겠군.'
위드는 안주로 닭 다리를 뜯어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문을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했습니다.』
사보이도 백작령은 거대한 사냥터가 되어 있었다. 수르 왕국에서도 레벨 150에서 200 정도의 몬스터들이 들끓
어서 사냥 중인 파티들도 상당수였다.
"저택 사냥하실 분 모집합니다. 용기 있는 분, 경험자 우대합니다."
사보이도 백작 저택은 지역의 대표급 던전이었다. 몬스터들의 최대 레벨은 282.
기사와 병사 들의 유령에서부터 심지어는 하녀의 유령들까지 나온다.
위드는 주정뱅이 용병 스미스와 함께 저택으로 들어갔다.
"끄억. 속이 쓰려서 죽겠군."
스미스는 투덜대며 따라오고 있었다.
"술 한 병만 주겠나?"
"없습니다."
위드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물론 술은 배낭에 많이 있었다. 산 나무 열매, 밀 등을 볼 때마다 브랜디나 위스키를 만들었기 때문.
요리 중에 술만큼 잘 팔리고 보관이 용이한 품목도 드물다. 기가 막힌 맛에, 감염 방지, 생명력 회복 속도까지
올려 주니 술은 기호품 중에서 가장 각광을 받았다.
잘 빚어낸 술은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으니 현금이나 다름없는 셈이었다.
위드는 틈틈이 요리 스킬을 발휘해서 술들을 빚어 놓고 있었지만 최대한 아꼈다. 검치나 다른 사형들이 아니라
면 위드에게 술을 달라는 말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크음, 입안이 칼칼하군."
스미스가 구시렁대며 따라왔다.
오래된 저택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였고, 가구들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벽화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
되었고, 샹들리에는 땅에 떨어져서 부서져 있다.
"파이어 볼!"
"콜드 스트라이트!"
다른 파티들이 많이 보였는데, 유령체의 몬스터들을 사냥 하는 중이었다.
위드는 저택을 조금 둘러보다가 포기했다. 거의 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넓은 장소였다.
토둠에서 뱀파이어의 성들을 정말 많이 돌아다녀 봤지만 그것과는 또 다르다. 상당한 권력가였던 백작의 저택
은 방의 개수만 해도 어마어마했기 때문.
위드가 물었다.
"지하실이 어디에 있죠?"
스미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오래된 일이라서 기억이 안 나. 술이라도 한 병 마시면 기억이 날지도 모르겠는데....."
위드는 인상을 썼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술꾼, 주정뱅이!"
다른 사냥 파티들도 사보이도 백작 저택에서 사냥을 많이 했다. 그들이 발견하지 못한 지하실이라면 꼼꼼하게
숨겨져 있거나, 아니면 기상천외한 장소여야 한다.
'발견하고도 공개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지하실을 찾아냈더라도 열쇠가 없으면 들어가지 못한다.
남 좋은 일은 하고 싶지 않은 건 인간의 본능.
지하실의 입구를 발견했더라도 공개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위드는 스미스와 함께 찾아봐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위드는 배낭을 열고 맥주를 한 병 꺼냈다.
"그러고 보니 술이 있군요."
"허엇. 나에게 주게!"
"지하실......"
"... 기억이 나는군. 아마 계단 아래쪽일 걸세."
스미스가 가리킨 장소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아랫부분이었다.
위드는 나무로 이어진 계단의 뒤로 돌아가 보았다. 아무것도 없이 먼지만 두껍게 쌓여 있었다. 하지만 손으로
만져 보니 미세하게 틈이 벌어진 게 느껴졌다.
'여기로군.'
위드는 먼지를 치우고 작은 열쇠 구멍을 찾아냈다. 그리고 스미스에게서 받은 열쇠를 넣고 돌렸다.
그그그긍!
오래된 문은 힘껏 밀어야 간신히 열렸다.
위드는 스미스와 함께 지하실로 들어가고 나서 문을 닫았다. 열쇠를 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택에서 사냥하는 다른 파티에게 언제 발견될지 모르니까!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위드였다.
『-사보이도 백작의 지하실을 발견하셨습니다.
명성이 50 오릅니다.
모험으로 인해 경험치가 소량 증가했습니다.』
"꺼억! 여기가 백작의 지하실이로군."
스미스는 어느새 맥주 한 병을 비우고 나서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쩍쩍 다셨다.
"기왕이면 위스키로 주지 그랬나?"
"위스키는 절대 없습니다."
맥주는 그나마 흔하고 가격도 싸지만, 괜찮은 위스키는 최소한 몇 골드이니 내줄 턱이 없다.
위드는 지하실을 둘러보았다.
아마도 백작이 비밀 서재로 썼던 것 같은 장소에는 책들이 다수 꽂혀 있었다.
《화염계 기본 마법의 정의》
《바람의 정령과의 친화력에 대한 고찰》
《정령사들이 알아 두면 좋을 것 같은 열 가지 아부법》
《베르사 대륙을 걸어서 여행하라》
《돈 버는 기회》
《위치, 책 읽어 주는 마녀》
제목들만 봐도 다양한 책들이 서가를 장식하고 있다.
위드는 책들을 남김없이 배낭에 넣었다.
'골동품이나 고서점에 팔면 돈이 되겠군.'
퀘스트의 연결 고리가 되기도 했으니 깨끗하게 챙겼다.
백작의 책상도 조사했다.
서랍에는 금화가 300골드가량 들어 있었으며, 조각용 칼도 나왔다.
자하브의 조각칼을 가지고 있는 위드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이것도 팔아야지.'
다양한 종류의 아이템 가격을 즉석에서 외우는 위드였다.
대형 마트의 자동 계산 시스템이 고장 나더라도, 만약 위드의 가게였다면 걱정할 까닭이 조금도 없다. 왜냐면
공장으로부터의 매입 가격에서 판매 가격, 부가세, 심지어 마케팅으로 1개를 사면 1개를 더 주는 것까지도 철
저하게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금화 365개 곱하기 금화 12개는 4,380개!
눈 깜짝할 사이에 계산이 이루어질 정도였다.
돈 계산만큼은 수학 영재들을 압도할 지경!
위드는 책상에 펼쳐져 있는 책을 보았다.
《마탈로스트교의 기원과 역사》
대충 읽어 보기로 했다.
고대에 마탈로스트교의 교세는 가장 컸다. 그것은 죽음을 신성시하는 사람들의 의식에서 기인하였다.
죽음을 곧 신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으므로... 마탈로스트교는 왕국의 국교로 신봉
되었으며, 전사들은 싸움에 나가기 전 교단에 경의를 표시하였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마탈로스트교에 대한 인식은 바뀌었다.
이종족들 간의 전쟁이 줄어들고, 성을 지어 몬스터들의 침입에 대비하면서 평화가 정착되었다.
죽음을 두렵게 여기면서 마탈로스트교를 기피하게 되었다.
아르펜 제국의 대륙 통합 전쟁에서도 각 왕국들은 경쟁적으로 자국의 영토에 위치한 교단들을 우대
하였다.
특별히 전쟁과 관련된 교단들이 존경을 받고, 마탈로스트 교단은 죽음으로 이끄는 인도자로 불리었다.
패잔병들이 마지막으로 부르짖는 이름이 되어, 세간에서는 이름을 떠올리는 것조차도 혐오스럽게 변
했다.
마탈로스트 교단의 사제 지망생들은 갈수록 줄어들었고, 그 자리는 다른 교단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번영의 프레야나 투사들의 신 브레커스의 교단이 많아졌다.
... 마탈로스트 교단은 위세를 잃고 각 왕국들의 지원도 끊어졌다. 음지로 숨어든 그들은 점점 힘에
대한 갈망을 버리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죽음으로 인도하는 힘!
막강한 신성력을 바탕으로 복수를 꿈꾸었으리라. 구체적으로 그들이 어떤 복수를 이루려고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띠링!
『마탈로스트교에 대한 고급 정보를 읽음으로써 지식과 지혜가 5씩 늘었습니다.』
『-부활의 교단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였습니다.』
위드는 책상에서 다른 물건도 찾아냈다. 부활의 교단 사제들이 입는 로브였다.
마탈로스트 교단. 현재로써는 부활의 교단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으니 아무렇게나 이야기해도 상관이 없으리라.
"사보이도 백작이 부활의 교단의 사제였겠군."
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활의 교단의 상징물이 되는 죽음의 상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허어, 여기 좀 보게!"
그때 스미스가 넓은 방을 발견해 냈다.
그 방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고, 중앙에 비석처럼 생긴 물체 위에는 무언가를 올려놓을 수 있는 그릇이 있었다.
그 그릇에 죽음의 상이 그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이것을 올려놓으라는 뜻인가?"
위드는 품에서 조각품을 꺼냈다.
드워프들의 지하 왕국 쿠르소에서 데스핸드와의 결투 끝에 획득한 죽음의 상!
니플하임 제국의 재건과 마탈로스트교의 재림.
베르사 대륙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지만, 퀘스트의 내용을 떠올린다면 여기서 끝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위드가 그릇 위에 조각품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마치 생명을 부여한 것처럼, 낫을 든 마수가 눈을 번쩍 떴다.
콰르르릉!
저택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음습한 안개가 지하실을 가득 메우고, 제단 위에 검은색의 소용돌이가 생겼다. 다른 장소로 향하는 게이트가
열린 것이다.
스미스는 놀람에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흑색 게이트.
어디서도 이런 색깔의 게이트는 본 적이 없었을뿐더러, 낫을 든 마수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섬뜩하기 짝이 없는 연출.
그러나 위드는 겁먹지 않았다.
비어 있는 통장 잔고만큼 무서운 건 없다. 오죽하면 꿈에서도 마이너스 이자가 붙는 가위에 눌릴까!
『-통곡의 강으로 가는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일반 유저들은 출입이 불가능합니다.
통곡의 강에서 퀘스트가 진행됩니다.
퀘스트의 실패 여부에 따라 부활의 군대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베르사 대륙에 있는 모든 유저들에게 메시지 창이 떴다.
위드가 성큼 게이트로 다가가자 흑색의 소용돌이가 잡아 먹을 것처럼 출렁였다.
하지만 스미스가 서둘러 손을 저었다.
"이보게."
"예?"
"내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도 따라가야 되지 않겠나?"
"물론이죠."
위드는 스미스를 이곳에 버려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데려가야만 했다.
"조건이 있네. 저 안으로 들어가면 내게 매일 다섯 병씩의 술을 마시게 해 줘야 돼."
"......"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거든."
위드는 고개를 끄덕여서 허락했다.
"알겠습니다."
항상 스미스를 보살펴 줄 수만은 없다. 술을 마셔서라도 재우는 편이 이득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용병을 영입하게."
"네?"
"자네는 허약한 조각사이지 않은가?"
위드가 허약하다면 워리어나 검사 들의 대부분은 걸을 힘도 없어서 땅바닥을 기어 다닐 것이다.
스미스의 말이 이어졌다.
"자네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아. 그리고 저 게이트를 통과하면 어디에 도착할지도 모르는데,
용병 1명을 데려오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띠링!
『-퀘스트를 함께 진행할 용병을 1명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각사 한정 퀘스트에, 용병 영입!
실질적인 전투가 필요하다는 뜻도 되었다.
'적어도 난이도 A급의 퀘스트인데......'
니플하임 제국의 재건이나 마탈로스트교의 재림으로 이어지는 연계 퀘스트까지 감안한다면 실질적인 난이도는
훨씬 높아질 수 있다.
연계 퀘스트의 끝이 아니라는 점이 부담이었다. 어디까지든 믿고 함께해 줄 사람을 찾아야 했다.
위드는 곧바로 귓속말을 보냈다.
@페일 님.
@네.
페일의 대답이 금방 돌아왔다.
@퀘스트를 진행하는데 1명의 용병이 필요합니다.
@그래요? 어디신데요?
@수르 왕국의 하겐 마을입니다.
@어떻게 하죠? 북부에서 그곳까지 가려면 최소한 이십 일은 걸릴 텐데.
@중앙 대륙에 있는 다른 사람은 없을까요?
@마판 님은 로자임 왕국 쪽으로 무역을 떠났고요, 다른 분들은 전부 여기에 모여 있어요.
마판은 용병으로 데려오기에는 전투력이 부족하니 조금 가깝다고 해도 애초에 제외였다.
@지금 저희도 고대 흉갑의 제조 비법이라는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거든요.
@어렵겠군요. 알겠습니다.
위드는 깨끗이 포기했다.
페일만 오라고 하면 메이런이 서운해할 터였다.
이리엔은 성직자로서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지켜 줘야 할 때도 많다.
로뮤나도 그런 점에서는 비슷한 처지.
수르카는 어리고 심약한 편이라서 어려운 퀘스트의 던전 등에서 단둘이 함께 수십 일을 동고동락하기에는 부담
스럽다.
화령의 댄스 스킬은 능력치 상승이나 몬스터를 재우는 데 좋다. 그렇게 활용도는 뛰어나지만 결정적인 공격력
이 약해서 위험하다. 일반 사냥에는 좋아도, 어떤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전투에 데려오기는 껄끄러운
존재.
제피는 애초에 제외했다.
생명력도 강하고 맷집도 좋으며, 광역 공격 스킬까지도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내 여동생과 친하게 지내고 있기 때문은 절대 아니지."
위드는 제피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어떻게 키운 동생인데 바람둥이에게 준단 말인가.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
"그냥 만나는 거라니까 두고 봐야지. 내 동생이 사람 보는 눈은 있으니까."
여동생의 행동이나 태도에 변화가 없어서 일단은 마음이 놓였다.
딸이 짧은 치마를 입고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나갈 때 아버지의 찢어지는 가슴!
위드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남자는 다 늑대고, 도둑놈이야. 남자가 여자한테 죽었으면 무죄야. 왜냐면 분명 죽어도 마땅한
짓을 저질렀거나, 혹은 저지르고 싶어 했을 테니까!"
그렇다고 유린을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
검치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스승님.
@......
@스승님.
@커험! 무슨 일이냐!
@지금 뭘 하고 계세요?
@나,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따. 절대 다크 엘프 아가씨에게 말을 걸고 있지 않았다.
제자야. 그냥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던 게야.
@스승님......
검치의 솔직한 대답이 한참 뒤에 돌아왔다.
@나도 장가는 가야 되지 않겠냐? 어렵지만 늦장가라도 시도해 봐야지.
@다른 사형들도 바쁘죠?
@응. 오크 마을에도 있고, 다크 엘프의 마을에도 많이 있다. 다크 엘프들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건강해서, 아주 좋아해.
@유로키나 산맥은 어떻습니까?
@몬스터가 아주 많구나. 싸워 볼 만한 몬스터들이 많아서 괜찮아. 오크들과 함께 파티를
맺고 사냥을 해 보는 것도 재미가 있구나.
검치나 다른 사형들도 로열 로드를 즐기고 있었다. 약한 오크들을 보호해 주며 든든한 남성미를 과시하는 것.
@스승님, 다크 엘프들도 꽃을 좋아합니다.
@오, 그러냐? 알았다. 너도 수고해라. 언제든 도움이 필요 하면 부르고.
@예, 스승님!
위드는 검치와도 귓속말을 마쳤다.
'누굴 데려가야 하지?'
황야의여행자 길드!
아르멘 왕국의 소수 정예. 알려지지 않은 고레벨 유저들이 다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길드.
위드도 속해 있는 길드였지만, 한동안은 길드 채팅 창도 안 보고 있었다.
길드원들끼리 수다를 자주 떨어서 아예 꺼 버린 상태!
황야의여행자 길드원 중에서 1명을 초대하기에는 아직 서로 잘 모르는 사이라는 점이 부담이었다.
그때 페일에게서 귓속말이 왔다.
@위드 님, 용병 1명 구한다고 하셨죠? 혹시 샤먼 1명 데려 가실래요?
@어떤 샤먼인데요?
@스킬의 숙련도나 활용도가 기가 막힐 정도인데요. 모라타에서 가장 유명한 샤먼입니다. 같이
파티 사냥을 하면서도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방금 위드 님에 대한 말을 했더니 본인
이 꼭 가 보고 싶다고 하는데요.
위드는 로열 로드를 한 지 얼마 안 되었던 초보 시절을 떠올렸다.
'천공의 도시 라비아스에서도 샤먼과 파티 사냥을 했지.'
잊을 수 없는 이름. 다인.
딱 이상형의 여자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함께 있던 시간이 즐거웠
다. 단 둘이 던전 사냥을 하며 이야기도 많이 했고, 사냥을 할 때도 손발이 잘 맞았다.
'수술을 한다며 떠났는데... 지금쯤 잘 지내고 있을까?'
연락이 없으니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랄 뿐.
위드는 과거의 상념을 털어 버리고 말했다.
@샤먼이 오기에는 너무 위험한 장소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사제형의 직업은 파티 사냥에는 큰 도움이 되지만 본인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다.
@같이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전해 주세요.
@아닙니다. 어쩔 수 없죠.
헤겔을 불러올 수도 없다. 그를 불러온다면 흑사자 길드를 통해서 금방 소문이 쫙 퍼지고 말 테니까.
도둑 나이드도 대안이 될 수 없었다.
'도둑은 던전에서나 쓸모가 많은 직업이지.'
도둑이나 어쌔신은 일반적인 정면 승부에서는 취약하다는 고정관념!
전투를 도와줄 용병을 구하고 있으니 은신, 암습형의 직업은 적합하지 않다.
'내가 아는 가장 강한 사람이라면 그녀밖에 없는데......'
위드의 머릿속에 서윤이 떠올랐다.
웬만한 몬스터들은 달칼에 썰어 버리던 그녀! 전투가 지속 될수록 강해지는 광전사.
무지막지한 레벨을 가지고 있고, 스킬의 활용도 재빠르다.
광전사 서윤!
그녀가 있다면 가장 든든할 것이다.
하지만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서윤에 대한 신뢰가 조금은 싹트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전혀 관련 없는 위험한 퀘스트를 도와 달라고 요청하기
는 무리였다.
'더구나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도 매우 많이 걸릴 거야.'
수르 왕국 주변에서 아는 사람을 구할 수는 없다.
위드의 선택은 내려졌다.
"콜 데스 나이트!"
연기와 함께 데스 나이트 반 호크가 등장했다.
오랫동안 함께해서 데스 나이트의 흉포한 눈빛마저도 익숙했다.
"불렀는가, 주인."
"그래. 일감이 생겼다."
"어떤 놈이든 때려잡겠다."
든든한 데스 나이트의 외침이었다.
위드는 고개를 돌려 스미스를 보았다.
"데스 나이트면 따로 용병이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스미스는 데스 나이트가 등장했는데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데스 나이트라면 우리를 지켜 줄 수 있겠군. 그런데 술은?"
위드는 배낭을 잠깐 열어서 맥주를 몇 병 꺼냈다. 맥주만 해도 수십 병에, 위스키와 와인 들이 상당했다. 따로
술을 구입할 필요도 없고, 급하면 언제든 술을 빚으면 되는 것이다.
항상 모험을 떠날 수 있도록 숫돌이나 붕대, 약초 등도 충분히 구비하고 있다.
출발할 준비는 언제라도 끝이 나 있었다.
"가시죠."
"알겠네."
위드가 먼저 앞장을 서고, 스미스가 뒤를 따랐다. 둘의 몸은 흑색 게이트와 함께 감쪽같이 사라졌다.
쿠르르르릉!
게이트가 사라지면서 사보이도 백작의 저택의 진동도 서서히 그쳐 가고 있었다.
흩어져 있는 몬스터들의 사체!
서윤이 대검을 휘두를 때마다 몬스터들의 파편이 떨어졌다.
땅속에 숨어 암습을 하거나, 나무 위에서 떨어져서 기습을 하는 몬스터들!
서윤은 그저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검광이 번뜩일 때마다 몬스터들이 회색빛으로 변한다.
과거에는 모든 것을 잊기 위하여 싸웠다. 흠뻑 땀을 흘리면서 싸울 수 있으면 충분했으므로 몬스터 무리를 향
해 무작정 덤볐다.
피를 흘릴수록 강해지는 광전사의 운명!
'여기는 너무 약해.'
광전사에게는 적과 몬스터들을 끌어들이는 특성이 있다.
서윤이 있는 장소로 일대의 몬스터들이 몰려들었다. 점점 강한 몬스터들이 있는 장소로 발길이 저절로 이끌린다.
피와 전투를 찾는 광전사의 절대 감각.
광전사가 있는 장소는 절규가 끊이지 않는 전장으로 변해 버린다.
북부에서도 손꼽히는 고레벨 사냥터, 마반의 숲!
서윤이 있는 장소로 몬스터들이 대거 달려오고 있었다.
'누구도 날 사랑하지 않아.'
과거를 떠올리지 않기 위해 전투를 벌이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그때처럼 마음이 아파 오지 않았다.
'친구......'
그녀에게 있는 친구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따듯해졌다. 로열 로드에서 함께했던 모험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현실에서도 만날 수 있었으므로.
'내가 지켜 주고 싶어.'
본 드래곤의 브레스에 금방 죽어 버리던 모습.
연약한 위드를 위해 사냥을 하며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를 쌓고 있었다.
그녀의 레벨은 422!
서윤은 더 강한 몬스터들이 있는 장소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