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를 탄 조각사
프로암 연합 용병 길드.
블랙소드 용병단은 최상급 용병대 자격을 획득했다.
"크흐.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힘들었군."
블랙소드의 단장 미헬이 말했다.
무려 백여든아홉 가지의 의뢰. 그 의뢰들을 모두 성공시키면서 오른 자리였다.
베르사 대륙 전체에 지점을 내고 있는 프로암 연합 용병 길드 내에서 인정을 받은 것.
블랙소드는 성과 마을까지 소유한, 명실상부한 최고의 용병단이 되었다.
수천의 용병들이 가입된 길드. 전사와 마법사 들을 보유하고, 귀족들과의 관계도 이어져 있다.
블랙소드 용병단의 상의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표시인 시커먼 검이 교차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것을 본 다른 용
병들은 경의를 표하곤 했다.
블랙소드 용병단의 일원인 것만으로도 일반 유저들 사이에서는 굉장한 추앙을 받을 정도였다.
미헬은 프로암 연합 용병 길드의 기록을 열람할 권한도 획득했다.
"미완수 의뢰들. 이것들을 우리가 해낼 수만 있다면 용병단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미헬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스스로의 레벨도 431이나 되었을뿐더러, 용병대 내에 소속된 상위 랭커들도 상당수.
방송 출연도 하는 유명인이고, 다른 길드들과의 관계도 원만하다. 충돌이 생길 때도 간혹 있었지만 힘으로 찍
어 눌러버리면 군소리가 안 나왔다.
베르사 대륙에는 약하고, 위험에 빠진 이들이 많다. 블랙소드 용병단이 가진 무력을 원하는 사람들은 부지기수
라서 영향력은 갈수록 늘어났다.
미헬은 프로암 연합 용병 길드의 기록을 읽던 도중에 눈에 띄는 부분을 발견했다.
"전대 용병 길드장 스미스. 프로암 연합 용병 길드를 베르사에서 최고로 만든 인물. 퇴직한
후에는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끼에에엑!
우히힛!
인간의 군대와 마물들 간의 혈투.
오데인의 성벽으로 마물들이 대진군을 하고 있었다.
다리가 짧고, 길고, 비틀거리면서 쓰러질 듯이 진군하는 마물들은 좀비를 연상시켰다.
"쏴라!"
성벽에서부터 화살의 비가 내렸다.
궁수들은 화살을 아끼지 않고 쏟아부었다.
부활의 교단 사제들이 지팡이를 흔들었다.
"레고르, 선두로 나서라!"
"달려라. 오데인을 짓밟아라."
대형 코끼리, 혹은 메머드를 닮은 것처럼 보이는 마물들이 앞으로 내달렸다.
레고르의 진로에 있던 작은 마물들이 발길질에 치여 허공으로 날아다녔지만 신경도 쓰지 않고 내달렸다.
꾸오오오오!
체구가 작은 마물들이 뿔피리를 부르고 괴성을 내질렀다. 발을 구르기도 했다.
"궁수들은 뭘 하나. 쏴라!"
"저 레고르를 막앗!"
오데인에서는 악몽 같은 마물이었다.
평원의 대회전에서 레고르에 의해 밟혀 죽은 인간 유저들이 무지하게 많았던 것이다.
슈슈슉!
오데인의 성벽에서 하늘을 덮을 정도의 화살이 쏟아졌다.
레고르라고 불린 마물들은 화살들을 두꺼운 회색 피부로 튕겨 버렸다.
쿠엣쿠엣!
퀘에에에에!
중형 마물들은 레고르의 배 밑과 엉덩이 뒤에 숨어서 계속 돌진했다.
입을 찢어져라 벌리고 괴성을 터트리며, 침을 뚝뚝 흘렸다.
오데인 성벽까지는 불과 200여 미터만을 남겨 놓고 있을뿐이었다.
지긋지긋하게 싸워 온 마물들이니 그 정도의 거리는 단숨에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오데인을 지키는 기사들
은 알고 있었다.
"화살을 더 쏴라!"
"마법사 군단은 뭘 하고 있어?"
"우린 명상을 통해 마나를 보충하고 있네."
오데인 요새 마법사들의 대표이며, 번영의날개 길드의 마법사인 키암이 대답했다.
"이 와중에 명상은 무슨 명상! 성벽이 부서지면 마법을 쓸 수 있는 기회조차도 사라진다는 걸
모르나? 어서 있는 마나를 다 써서라도 놈들을 막앗!"
오데인 요새의 성벽에서 마법사들의 마법이 시전되었다.
콰과과과과광!
땅이 뒤집히고, 천둥 벼락이 내려쳤다.
화염과 폭풍, 물, 마법 화살 들이 마물들을 향해 작렬하는 굉음!
지형이 뒤바뀌고 일대가 초토화될 정도의 위력이었다.
레고르를 포함한 마물들도 살아남지 못했다. 마법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잡템뿐!
"크으... 주우러 갈 수도 없고."
"죽겠네. 성벽만 지키고 있으려니 소득이 없잖아."
성벽에 있는 용병들이 불만으로 구시렁거렸다.
잡템들 중에는 분명 좋은 아이템들도 많이 있으리라.
욕심이 일었지만 성벽 아래로 내려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으니 참아야 했다.
마물의 진격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마법이 선두를 초토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마물들의 대군은 줄어든 기미가 안 보였다. 갈수록 거세지는 마물
의 공세에 의해, 오데인 요새는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았다.
데이몬드가 본 스태프를 흔들었다.
"너희의 저항도 여기까지일 것이다."
수반이 따라서 웃었다.
"드디어 오늘이로군."
"음. 일부러 그동안 공세를 자제하며 힘을 모은 보람이 있었어. 오늘이야말로 오데인
요새를 뚫는다."
오데인 요새만 넘으면 아이데른 왕국을 점령하는 것은 시간문제.
넓은 곡창지대와 무기고만 장악한다면 마물의 군대를 더 배불리 먹이고, 무장시킬 수 있다.
연합군이 결성되었다고는 하지만, 마물의 군대를 직접 상대해 본 이들이 아니라면 아직까지 심각성을 인지하
지 못했다. 다른 왕국에서 출진했다는 원정군도 도착하려면 시간이 한참이나 걸린다.
높은 세율과 군대 양성!
명문 길드와 영주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부활의 군대가 침공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지적인 공성전 외에 각 왕국들은 평화로웠고, 몬스터들만이 유일
한 적이었다.
오데인 요새의 성벽이 그들을 지켜 줄 것이라는 환상!
어느새 성내에 독한 전염병이 퍼졌다. 괴로움과 공포를 느낀 연합군은 와해되고 있었다.
데이몬드가 본 스태프로 성을 가리켰다.
"계속 공격해라!"
더 많은 레고르들이 오데인 요새를 향해 달렸다.
레고르의 등에는 고블린들이 타고 있었다.
미약한 무력을 가진 고블린들은 회유에 약했다. 돈과 마물의 군대를 미끼로, 중간 지휘관으로 영입을 한 것이다.
고블린들을 끌어들이면서 마물들의 전투력은 훨씬 강화되었다.
고블린들이 레고르 위에서 조악한 창을 치켜들고 춤을 추고 있었다.
부활의 군대를 이끌고 베르사 대륙을 침공하고 있는 데이몬드의 별명은 마왕의 군주.
베르사 대륙을 마물들로 물들이려는 혼돈의 존재였다.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있는 제퍼슨은 회의실로 걸어가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도 쉽지 않겠군."
"안녕하세요. 제퍼슨 씨."
"요한나 씨도 오랜만이야."
제퍼슨은 지나가는 여자들이 인사를 할 때마다 친절하게 받아 주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지나가고 나면 먹구름
이 잔뜩 낀 얼굴로 돌아왔다.
그가 근무하는 회사는 뉴욕에 위치한 세계적인 J.K.I. 금융 그룹!
미국의 대표적인 투기 자본으로, 그들의 좌우명은 하나였다.
'돈이 되는 곳에 투자한다.'
자원, 인물, 기업, 국가.
투자에 어떤 제약도 존재하지 않았다.
끝없는 탐욕으로 파생 상품에서 큰 손실을 입고 한동안은 잠잠했지만, 최근에는 다시 자본을 늘리고 있었다.
아시아 담당 전무 제퍼슨은 그들에게 자산을 맡긴 대주주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주재했다.
미국과 유럽의 인프라 회사에 투자한 실적은 꽤 좋은 편이었다. 이집트의 유전에 한 투자도 슬슬 실적을 내고
있었고, 환경 기술에 대한 투자들도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었다.
문제는 아시아에 있었다.
수익률이 너무 높았기 때문에 대주주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현재 유니콘에 참여한 우리의 지분율은 대략 7.2% 현재의 시세대로라면 168억 달러가량 됩니다."
"투자수익률이 백 배는 넘겠군."
미국의 부통령까지 역임했던 벤자민 챈들러가 말했다.
"네. 투자수익률은 130배를 넘고 있습니다. 현재 본 회사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입니다."
"왜 사전에 유니콘에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하지 않았지?"
130배의 투자 수익!
그러나 챈들러는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더 큰 욕심을 내고 있다. 다른 이사와 대주주들도 제퍼슨의 잘못을 질타
했다.
"돈을 벌 기회를 놓치다니. 기회가 곧 돈이라는 사실을 잊은 건가?"
"유니콘이 이토록 성장할 때까지 우리 회사에서 무방비 상태로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군."
제퍼슨은 변명하기 급급했다.
"저희도 나름대로 대응을 하려고 했습니다만 주식 가치가 너무 갑자기 뛰었습니다."
"주가가 130배가 올랐어. 초창기에 더 많은 투자를 했어야 하지 않나!"
"기술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사업이었습니다. 언론이나 미국의 학계에서도 부정적으로만 다루어서
더 이상의 투자는 어려웠지 않습니까."
"유니콘 사의 외국계 지분이 얼마나 되지?"
"19.4% 정도입니다."
J.K.I. 금융 그룹과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 공단이나, 다른 투자 회사들까지 합친 지분은 19.4%에 육박했다.
"연합해서 더 이상 크기 전에 유니콘 사를 인수 합병하는건 어떻겠나?"
천문학적인 자금을 바탕으로 한 경영권 장악!
챈들러가 아니라면 엄두도 못 낼 발언이었다.
제퍼슨이 입고 있는 셔츠의 등에 땀이 흥건하게 차올랐다.
"의사를 타진해 봐야 알겠지만 매우 어려운 시도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끌어오도록 하겠네."
"돈이 있다고 해도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로열 로드가 초대박을 터트리면서 유니콘은 믿을 수 없는 성장을 하는 중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주가 폭등!
주식시장이 열리자마자 상한가로 치솟았다.
거래도 없었다.
주식을 가지고 있는 쪽에서는 무조건 오른다는 확신이 있으니 팔려고 하지를 않았다. 매년 배당만 받아도 평생
먹고 살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주식을 사려는 사람은 어떤 값이라도 지불하려고 했다.
전 세계 주식거래자들은 유니콘의 주식 한 주라도 사 모으려고 했지만 거래가 안 되어서 분통을 터트렸다.
"무슨 이런 주식이 다 있어?"
챈들러는 속이 뒤집어질 것 같다고 느꼈다.
유니콘의 주식은 지금도 천장을 모르고 치솟는 중이고, 현재 주당 가격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식이 되었
다.
"높은 가격을 걸더라도 거래가 이루어지질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 인수 합병을 한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간혈적으로 이루어지는 거래마저도 위축될 것입니다."
제퍼슨은 대주주들에게 안 좋은 소식만을 알려 주고 있어서 미안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더구나 유니콘 사에서는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실제로 몇몇 금융회사들이 연합해서 유니콘에 대한 적대적인 의도를 암암리에 보인 적이 있었다. 언론과 신용
평가회사 등을 통해 흔들고, 주식을 매입하려고 했던 것.
그런 조치들에 대한 유니콘의 대응은 과감했다.
넘치는 현금을 이용하여 역으로 외국 언론사와 금융회사에 대한 지분을 대폭 늘려 버렸다. 경영권에 간섭하고
이사진을 강제로 물갈이할 수준에 이르자 손을 떼어야 했다.
유니콘 사에서 보유한 현금에 파생 상품 등으로 큰 손실을 입은 외국 금융회사들이 휘둘리는 꼴이었다.
외국계 투자은행의 최대 주주가 유니콘 사인 경우마저 있을 정도였다.
한 달 이용료 20만 원!
매달 천문학적인 현금을 벌어들이고 있는 유니콘 사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J.K.I. 금융 그룹의 회의는 아무 결론 없이 끝이 났다.
대주주들이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집에 가서 쉬어야겠군."
"아비게일, 오늘도 로열 로드에 접속할 작정이오?"
"물론이지. 바다 근처에 별장도 구입했다오."
"레벨이 몇입니까, 챈들러 씨."
"290이야. 같이 사냥하겠나?"
"좋지요. 좀 키워 주세요. 레벨이 200을 넘고 나니 사냥이 정말 어렵더군요."
"요령이 없으면 힘들 수밖에 없지."
대주주들도 로열 로드의 유저들이었다.
현실 세계에서 부와 권력을 쌓은 그들. 베르사 대륙에서는 새로운 모험과 삶을 살 수 있으니 마다할 까닭이
없다.
좀 더 젋고, 핸섬한 몸으로 새 인생을 산다.
"다음 회의에 뵙겠습니다."
제퍼슨이 현관에 대기하고 있는 고급 차까지 정중하게 배웅을 했다.
그도 로열 로드의 유저였다.
투자회사의 중역답게 그가 택한 직업은 상인이었다. 무역으로 큰돈을 벌어서 수도에 투자하여 작위를 획득,
귀족으로 영지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이었다.
로열 로드는 누구라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현실이었으니까.
음메에에에!
누렁이가 무겁게 울었다.
고된 쟁기질이라도 하루 종일 한 것처럼 피로한 모습!
전투에 도움이 될 거라며 이상한 스텝을 익히느라 고생을 한 덕분이었다.
위드는 검을 뽑았다.
"달려라. 누렁아!"
음모오오오오!
누렁이가 뒷발을 박차고 내달렸다.
황소의 거친 돌진. 가파른 바위산을 거칠 것 없이 달려 내려오면서 점점 빨라졌다.
위드의 망토가 바람을 타고 심하게 펄럭거렸다.
"역시 이 느낌이지."
빠르게 달릴 때 휘날리는 망토만큼 멋들어진 게 없다.
위드는 최고의 장비들로 완전무장한 상태였다.
검은 토둠에서 획득한 데몬 소드. 칼라모르 왕국의 명예로운 기사 콜드림의 애병이었다.
빛을 흡수하는 탈로크의 갑옷에 고귀한 기품의 검은 헬멧, 뱀파이어의 망토와 검은 부츠.
고대의 방패까지 착용했다.
황야를 달리는 야생마를 타더라도 더없이 멋지게 보일 모습.
"남자는 역시 옷이 날개야."
누렁이를 타고 있는 부분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위드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했다.
"꾸미지 않아서 그렇지 조금만 신경 쓰고 다녔으면 영화배우들이 별거겠어?"
헤어스타일과 옷만 바꾸면 영화배우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고전적이며 우아한 갑옷을 입고 5미터가 넘는 황소에 타고 있는 기사!
전력 질주에서 엄청난 박력이 느껴졌다.
"달려라. 더 빨리 달려!"
"이미 최고 속도다. 주인."
"이랴. 이럇!"
위드는 입으로 박차를 가하는 것처럼 소리도 냈다.
안장도 고삐도 없는 황소를 타고 있지만 할 건 다 해야 하는 것.
바위산 아래에 있던 케르탑들이 멀리서부터 누렁이가 달려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소다."
"인간. 어떻게 인간이 여기를."
"엠비뉴 교단의 기사인가? 협약에 의해 그들은 건드릴 수 없다."
"아니다. 갑옷에 그들의 문장이 없다. 죽여!"
케르탑 5마리는 태도를 결정했다.
더듬이를 방전시켜서 뇌전을 일으켜 쏟아 냈다.
콰르르르릉!
천둥 벼락이 치는 소리와 함께 뇌전 줄기들이 쏟아졌다.
음메에에에에에에에!
누렁이가 놀람에 길게 울부짖으면서 옆으로 뛰었다. 속도를 줄이면서 방향 전환까지 한 것이다.
뇌전들이 위드와 누렁이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바위산과 지면을 타격한 뇌전들이 땅을 폭발시켰다. 부서진 바위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과연 우리 소!"
위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말보다도 훨씬 민첩한 움직임과 월등한 체력이었다.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았는데도 본능적으로 피한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다가온 뇌전을 피할 줄이야! 기대 이상이었다.
"다시 달려라!"
음메에에.
"무섭다. 싫다. 싸움은 체질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누렁이가 머리를 저었다.
순박한 소에게 전투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위드는 칭찬으로 의욕을 일으키는 대신에 더 강한 협박을 동원했다.
전투란 일말의 망설임이 없어야 하는 것!
"무서우면 저놈들을 향해 달려라. 차돌박이, 육회, 갈비탕, 왕갈비, 갈빗살, 샤브샤브, 꼬리곰탕,
우족, 소머리 국밥!"
음메에에에에에!
누렁이가 네발로 힘껏 뛰었다.
묵직한 체중을 가졌음에도 힘과 체력이 너무 좋아서 다시금 절정의 속도를 냈다.
케르탑들과의 거리가 100미터 이내로 가까워졌다.
"라이트닝 스피어!"
다시금 발사된 뇌전 공격!
위드는 고대의 방패를 들었다.
거리가 가까워서 누렁이의 순발력이라고 하여도 완전히 피할 수가 없다. 피하더라도 속도가 느려지면 공격력이
약화되니 바라는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뇌전의 공격들은 고대의 방패에 막혔다.
방패의 부드러운 기운이 감싸서 다른 방향으로 흘려 버렸다.
위드는 커다란 저항감을 느꼈지만 참아 내고 검을 휘둘렀다.
케르탑과의 거리는 이미 지척이었다.
"달빛 조각 검술!"
누렁이가 케르탑들 사이로 달려 나가는 순간, 데몬 소드가 케르탑들을 베고 지나갔다.
오른쪽의 케르탑을 빠르게 내려치고, 검 자루를 역으로 잡고 쳐올리며 다시 벤다.
손아귀에서 자유자재로 노니는 데몬 소드!
위드의 동작은 끝나지 않았다.
왼손으로 누렁이의 뿔을 강하게 잡고 몸을 뒤틀었다.
음메에!
다리와 엉덩이가 살짝 떠오른다. 검을 회수하는 원심력을 이용해 몸을 뒤튼다.
누렁이 위에서 한 바퀴 돌며 왼쪽 케르탑의 목을 갈랐다.
"퀘엑!"
케르탑들의 자세가 허물어졌다.
기사의 질주가 아니라고 해도 엄청난 가속도가 붙은 검격이라서 피해가 컸다. 케르탑들은 생명력이 많은 축에
드는 몬스터도 아니었다.
마르고 단단한 피부의 방어력으로 막아 내는데, 달빛 조각 검술은 상대방의 방어력을 무시해 버리는 효과가 있
다.
2마리를 처치하고 케르탑 사이를 내달리고 있을 때였다.
휘청!
누렁이의 앞발이 지그재그로 꼬여서 움직인다.
속도가 많이 느려진 상황에서 스텝을 밟으면서 뭉쳐 있는 케르탑들에게 접근했다.
기사의 마상 돌격술이 가진 최대의 단점!
평원에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지만 몬스터들을 스쳐지나가 버리면 다시 돌아오기가 너무도 힘들다. 원거리
공격이라도 할 줄 아는 몬스터에게는 오히려 약점이 되었다.
그런데 누렁이는 말이 아니었다.
옆걸음, 뒷걸음질에. 방향 전환까지 원활한 소!
급격하게 속도를 줄여서 방향 전환을 하며 케르탑들을 스쳐 지나간다.
위드가 검을 휘두르기 딱 좋은 간격까지 맞췄다.
충직하고, 효율이 좋으며, 맡은 일은 성실히 하는 소답게 처음 하는 일에도 실수조차 없는 모습이었다.
케르탑들이 일 검씩 맞고 죽진 않았지만 전투력을 심하게 상실했으니 나중에 확실히 숨통을 끊어 놓으면 된다.
마지막 남은 1마리의 케르탑은 누렁이의 전면에 있었다.
위드가 누렁이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누렁아, 받아 버려!"
"싫다. 어찌 그런 험악한 행동을 할 수가 있나."
여전히 전투에 대한 거부감을 버리지 못한 모습!
위드는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알았다. 협박과 공포 분위기만 조성한다면 충직한 소라고 해도 반발심
을 줄 수 있다.
"받아 버리면 1쿠퍼 준다. 완전히 죽이면 2쿠퍼 준다."
전투에 따른 인센티브!
누렁이에게 1쿠퍼란 무지막지한 거금이었다.
'1쿠퍼로 할 수 있는 일은... 영양가 높은 건초 한 줌. 냉수 열 바가지!'
아끼고 아껴서 10쿠퍼를 모으면 손바닥만 한 땅도 살 수 있다고 했다. 땅에 잡초라도 심으면, 허기질 때 맛
있게 뜯어 먹을 수 있으리라.
10골드쯤 모으면 허름한 축사도 건조할 수 있다고 하는데, 누렁이에게는 인생의 희망이었다.
내 집 마련의 꿈!
음메에에에!
힘이 넘치는 누렁이의 가속!
고랑이 깊게 파일 정도로 튀어나가더니 뾰족한 뿔로 케르탑을 받아 버렸다.
케르탑이 비참하게 울부짖으며 수십 미터나 나가떨어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위드는 케르탑들을 사냥하고 짭짤한 경험치와 잡템들, 거무튀튀한 철판, 울부짖는 식물의 씨앗, 푸른 구슬 등
을 획득 했다.
"구슬은 어디에 쓰는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챙겨 두면 다 팔 곳이 있겠지."
위드는 소득을 확인하고 흐뭇하게 웃었다.
대장장이 물품이나 씨앗을 제외하고도 경험치가 짭짤했기 때문이다.
"역시 사냥은 이런 맛이지."
케르탑과 적대 관계인 마물들!
부활의 군대의 마물들과 상당히 흡사하게 생긴 마물들이 통곡의 강을 따라서 분포되어 있었다. 통곡의 강에서
물을 마신 짐승들이 주로 마물로 변하는 모습이었다.
위드는 이 마물들과 케르탑을 위주로 사냥했다.
"불사조 오형제. 투입!"
불사조들도 전투에 참여시켰다.
불사조 오형제의 위용!
뿌옇게 끼어 있던 안개들이 다숨에 증발해 버렸다. 땅이 이글이글 달구어지고 불까지 붙었다.
물기가 사라지자 케르탑의 뇌전 공격이 약화되었다.
불사조들은 먼 거리도 단숨에 날아서 머리통을 쪼아 댔다.
거의 무한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라, 여간한 공격은 그냥 몸으로 맞아 주었다.
생명력이 크게 하락하더라도 자가 회복! 금방 다시 차올랐다.
죽기 직전이라고 해도 화염 약간만 있으면 되살아나는 불사조들의 투입은 전투를 편리하게 만들어 주었다.
"후후훗."
위드가 음침하게 웃었다.
그가 생명을 부여한 조각품들이 매우 훌륭하게 싸우는 걸 보면서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불사조들이 강할수록 더 많은 아이템과 잡템을 얻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싸워라. 강해져라. 세상을 너희의 불로 뒤덮어라!"
불사조 5마리와 누렁이!
그들은 위드의 강력한 원군이 되었다.
통곡의 강을 따라서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점점 활동 영역을 넓혀 갔다.
아직 강가를 벗어나 넓은 지역을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르탑은 10마리라고 해도 불사조만으로도 사냥이 가능했다.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