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17권 : 여자아이의 일생 (65/520)

<여자아이의 일생>

  위드는 킹 히드라와 이무기의 가죽들을 진열해 놓았다.

  동물 인형들을 만들고, 실패작인 어린아이의 인형을 제작하고 나서도 상당히 많은 양이 남았다.

  가죽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들로만 남겨 놓았다.

  예술품이란 항상 처음 만드는 게 가장 좋지도 않고, 마지막의 것이 완성도가 높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감정이 움

 직이지 않는 조각품은 상대방에게 어떤 감동도 주지 못한다.

  정말 만들어야 할 조각품이 생길지도 몰라서 아껴 놓은 최상급의 재료들!

"인형을 40개는 만들 수 있겠군. 아쉬운 대로 이거면 충분하겠어."

  위드는 가죽을 잘라서 갓난아기의 조각품부터 시작했다.

  막 태어난 여자아이.

  피부는 쪼글쪼글하고, 정말 갓 태어난 것처럼 울상을 짓고 있다.

  크기는 한 손으로 안을 수 있을 만큼 작았다.

"태어난 지 몇 시간 만의 생명. 어머니의 배 속에서 나와서 세상을 처음 접한 아기야."

  위드는 만돌과 그의 아내에 대한 정보들을 이미 입수한 후였기에 부모들의 생김새를 조금은 고려해서 인형을 만들

 었다.

  그렇다고 해서 갓난아기에게 특별한 특징까지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좋아. 일단 첫 번째는 되었고."

  위드는 아기의 인형을 내려놓고, 다시 가죽을 들었다.

  이제는 두 번째의 인형을 만들어야 한다.

  인형을 만드는 위드의 손길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갓난아기야. 첫해에는 걸음마를 시작하고, 변화도 심할 때지. 부모의 입장에서는 언제나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시기일 거야."

  만돌 부부가 낳았을 여자아이의 미래를 상상하면서 매우 긴장되게 인형을 만든다.

"옷도 필요해."

  갓난아기의 인형은 깨끗한 천을 이용해 덮어 놓았다면, 이제는 재봉으로 아기 옷까지 만들어서 입혔다.

  돌잔치를 하면서 까르륵 웃고 잇는 여자아이의 인형 완성!

"이제는 엄마와 아빠도 알고... 그렇게 자라나는 시기지."

  다음에 만드는 인형은 약간 더 성장해 있었다.

  키도 커지고, 손가락과 발가락도 길어진다.

  머리카락도 붙여서 귀여운 댕기 머리를 했다.

"말도 배우고, 슬슬 말썽꾸러기가 될 나이."

  네 번째로 만드는 인형에는 유치원복을 입혔다.

  깜찍한 옷과 가방까지 메고 있는 어린 학생의 인형.

  다섯 번째 인형은 쑥쑥 자라서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였다.

  지금까지는 앳되고 귀엽기만 한 꼬마 어린아이였다면, 여섯 번째부터는 조금이나마 여성스러운 매력도 갖췄다.

"동네 남자아이들이 치마깨나 들춰 보고 싶을, 미소가 예쁜 그런 아이로 성장하겠지."

  말썽 부리고, 골목대장처럼 뛰어놀던 여자아이가 매력적으로 자란다. 장난기 어린 눈매는 여전하지만 키도 크고 

 눈빛도 맑았다.

  그 뒤로도 완성된 인형마다 키도 커지고 머리카락도 자랐다.

  남자들이 선호하는 긴 생머리부터 발랄한 커트 머리까지, 헤어스타일도 여러 번 변했다.

"이것도 제법 심한 노가다로군."

  조각 재료 상점에서 머리카락을 사 와서 심어야 했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만든다는 보람에 힘든 줄을 몰랐다.

  열네 번째의 인형부터는 어느덧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다.

  굉장히 활발하고 수다스러울 것 같은 여자애로 자랐다.

  불쑥 남자 친구를 소개시켜 주러 집에 데리고 올 것처럼 발그레한 볼이나 애교 섞인 표정들.

  머리띠나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들도 세공을 통해서 어여쁘게 제작해 주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책가방과 교복 정도면 되었지만 이제는 여대생인 것이다.

  여자의 생명과도 같은 구두와 가방도 만들어 주어야 했다.

"그래도 사치는 안 돼!"

  가지고 다니는 물품들은 저렴한 토끼 가죽 정도로 타협을 봤다. 그럼에도 세련된 여대생의 느낌이 났다.

  표정과 옷과 전체적인 느낌과 향기와 어우러지는 액세서리들.

  부모가 자식을 아끼듯이 정성껏 세공해서, 여학생은 실제 인물처럼 사랑스러웠다.

  조각품을 만드는 시간이 굉장히 길어졌지만, 위드는 혼신을 다해서 집중하느라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열일곱 번째의 인형부터는 시간의 흘러감을 누구도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작고 보살펴 주어야 했던 갓난아이가 직

 장에 취직했다.

  열여덟 번째 인형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한 자원봉사도 나갔다.

  열아홉 번째의 인형에서는 남자 친구를 데려왔고, 스물한 번째의 인형에서는 드디어 결혼식도 치렀다.

  듬직하고 배려 깊은 남편의 인형까지 함께 만들어서, 한 쌍의 원앙처럼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하객들도 사슴이나 토끼 가죽 등으로 만들어 그들의 미래를 축하해 주었다.

  스물세 번째의 인형에서는 아기도 낳았다.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서 살아간다.

  남편과 함께 설거지도 하고, 빨래와 청소, 직장도 다니면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인형들이 완성될 때마다 여자는 나이를 먹고, 곱던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면서 세월의 흔적이 역력해졌다.

  아이를 키우고, 남편과 함께 사는 인형들.

"너무나 빨라, 사람의 삶이란 콩나물 머리처럼 쑥쑥 자라고 다시 되돌리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래

도 너무도 아쉬워."

  보석처럼 빛나던 어리고 앳된 시간을 지나서 인형이 먹어가는 시간에도 가속도가 붙는다.

  서른여섯 번째가 넘어서부터는 인형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식들이 자라서 취직을 하고 결혼도 했기 때

 문이다.

  할머니가 되어서 낮잠을 자고, 책을 읽고, 손자 손녀에게 줄 목도리를 만든다.

  그렇게 많던 이무기의 가죽과 히드라의 가죽들이 바닥을 드러냈다.

  마흔한 번째의 인형은 행복하게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장소에서였다.

  위드는 인형을 다 만들고 나서 진한 허탈함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죽도 다 떨어지고, 이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만드신 조각품의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위드가 조각칼을 움직이지도 않고 그대로 서 있기만 하자 떠오르는 메시지 창.

  인형의 일생을 다룬 조각품이 끝난 것이다.

  위드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름을 정하지 않겠다."

  지금만큼은 조각품에 어떤 이름도 붙이고 싶지 않았다.

-이름을 정하지 않으면 조각사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을 수 있고, 미완성의 작품으로 남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좋습니까?

"상관없어. 내가 만들 자격이 안 되는 작품이었어."

띠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신화적인 조각품

  신이 시기한 정도의 재능과 노력을 갖춘 조각사가 세상에 던지는 선물!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조각품에 담았다.

  조각사의 완벽한 실력은 꼼꼼한 바느질에서도 느낄 수 있다.

  단 한 올의 틀어짐이나 털 빠짐도 없이 완전무결한 바느질.

  어떤 조각사가 이토록 신비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예술적 가치 : 조각술의 축복이다.

대륙의 조각술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24,610.

  특수 옵션 :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화적인 작품을 본 이들은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가

      하루 동안 32% 증가한다.

      하루 동안 생명력과 마나의 최대치가 30% 증가한다.

      하루 동안 축복 마법의 효과 강화.

      모든 스탯 20 증가.

      민첩과 용기 7% 추가로 증가.

      이동속도 30% 증가. 먼 거리로 갈수록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져서 시간을 단축

      할 수 있음.

      조각상이 위치한 도시나 지역의 출생률이 100% 증가.

      주민들의 폭력적인 성향이 감소함. 치안에는 매우 큰 도움이 되지만, 전사와

      군인 들의 자연적인 증가가 줄어든다.

      생명력이 영구적으로 500 증가.

      인간 종족의 지혜와 지식이 최대 15까지 영구적으로 증가.

      다른 조각품과 중복 적용되지 않음.

  미완의 신화적인 작품.      』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대폭 향상되었습니다.

-손재주 스킬의 숙련도가 대폭 향상되었습니다.

-조각품에 대한 이해의 스킬 레벨이 1 상승하였습니다.

-작품을 만든 예술가가 알려지지 않음으로 인해서 명성이 2 올랐습니다.

-예술 스탯이 89 상승하셨습니다.

-인내가 41 상승하셨습니다.

-매력이 26 상승하셨습니다.

-지혜가 10 상승하셨습니다.

-미완의 신화적인 작품을 만든 대가로 전 스탯이 5씩 추가로 상승합니다.

-조각술의 축복. 탄생과 죽음에 대한 작품을 만들어서 일주일 동안 전투와 연관된 스탯이 8% 늘

어납니다. 마나의 최대치와 회복력이 65% 늘어납니다.

  위드의 머릿속이 멍해질 정도의 보상이었다.

  조각사가 검사나 다른 직업보다 못하다는 편견을 이제는 완전히 버려야 될 것 같았다.

"스킬 확인 조각술!"

『조각술 고급 7(65%) : 조각을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조각품은 고가에 팔리기도 한다. 영예

       로운 조각품들을 만들며 대륙에 이름을 떨칠 수 있다.

       여자의 환심을 사기에 좋다.

       베르사 대륙의 예술계를 이끌 수 있는 수준이다.

       독보적인 이 조각사의 실력을 따라올 수 있는 후인이 없는 점이 안

       타깝다.      』

  조각술 스킬 숙련도가 무려 29%나 늘었다.

  정성을 다한 덕분에 위드도 이해가 안 갈 정도의 작품을 창조하고 만 것이다.

"고작 인형들을 만들었을 뿐인데......"

  위드는 깊이 있는 깨달음을 얻었다.

  아이들이나 여성들이 인형을 예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가치 있는 명품들을 찾아내는 본능!

  간신히 1쿠퍼의 의뢰를 위한 인형들을 만들었지만 아직 미흡함이 있었다.

  완성된 인형들의 개수가 상당히 많다.

  작업실로 사용하는 영주성의 너저분한 공간에 일단 만들어 놨는데, 만돌이나 그의 아내가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다

 른 장소로 옮겨야 한다.

  모라타 성의 빈방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아이를 위한 공간이 별도로 있어야 돼."

  위드는 작게 속삭였다.

"귓속말, 채팅 제한 해제."

띠링!

-귓속말 제한이 해제되었습니다.

-길드 채팅 제한이 해제되었습니다.

  모라타로 돌아오면서 닫아 두었던 귓속말과 채팅을 해제했다.

  제한을 해 놓은 상태에서는 길드 채팅이 들리거나 보이지 않고, 상대방이 귓속말을 걸었을 때에는 허가를 해 주어

 야만 들렸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위드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해 놓았던 조치였다.

사비나:어서 때려!

에드윈:좀 덜 팼어요.

핀:귀찮게 상당히 버티네.

에드윈:그래도 거의 잡은 것 같아요.

  황야의여행자 길드는 특별한 사냥터에 있는 것 같았다.

  위드는 길드의 내용은 대충 무시했다. 채팅 제한이 해제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잠수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

 니까.

-파보 아저씨.

  북부 원정대에서 만났던 건축가 파보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무척 오랜만이지만 이용 가능한 유저들은 절대 잊지 

 않는다.

'건축가로서 상당한 수준이었지.'

  모라타에서 프레야 여신상을 구경하기 좋은 여신의 계단까지 만들면서 활약하고 있는 건축가가 파보였다.

-위드! 자네 아닌가.

  파보도 위드를 잊지 않고 있었다. 모라타의 영주이니 당연히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디 계십니까?

-모라타에 있지. 자네가 돌아와서 조각상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네. 광장에서 상점 하나를

개업해 주느라 가보지도 못하고, 미안하네.

-일은 슬슬 끝나셨나요?

-문만 달아 주면 돼. 빨리 하면 1시간 내로 끝날 것 같아.

-가스톤 아저씨는요?

-같이 일하고 있지. 지금 천장화랑 벽화를 그리고 있는데, 마무리 작업 중이야.

-잘됐군요. 제가 부탁드릴 의뢰가 하나 있는데요, 집을 지어 주셨으면 합니다.

-모라타의 영주가 집이 필요한가?

  파보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기색이었다.

  영주성을 가지고 있는 위드에게 집이 필요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물건의 보관이나 침실에서의 휴식 등, 영주성

 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은가.

-사실은... 조각품을 놔둘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래? 그러면 넓은 창고가 딸린 집이면 되겠는가?

-창고보다는, 방에 진열할 수 있도록 누추하지 않은 집을 지어 주셨으면 합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지, 조각품들은 어디에 있는가?

-영주성에 있습니다. 경비병들에게 조각품들이 있는 장소로 들어올 수 있도록 출입을 허가하라고

지시하겠습니다.

-알겠네. 오늘 저녁쯤 가도록 하지. 의뢰 비용은 작품을 보고 나서 결정하지.

-고맙습니다.

  위드가 파보와의 대화를 마쳤을 즈음에는 혼이라는 유저로부터의 귓속말도 전해졌다.

-지하 감옥 원정대의 혼입니다. 던전의 탐험이 거의 끝났습니다.

-마탈로스트 교단의 포로들을 발견했습니까?

-예. 일단 1명을 찾았고, 다른 포로들도 이 부근에 있다고 합니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저도 곧 가겠습니다.

  위드도 퀘스트를 위해 지하 감옥으로 가야 할 때였다.

  모라타와 이동 포탈이 연결되어 있는 통곡의 강 유역!

  S급 난이도의 두 번째 퀘스트와, 마탈로스트 교단의 포로 구출 퀘스트들을 진행해야 할 장소다.

  위드가 누렁이와 같이 다시 통곡의 강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근처에 집단으로 모여 잇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저 사람이 위드......"

"전쟁의 신이라고 불리는 그 사람이야?"

"쉬잇! 조용히 말해. 들을지도 모르니 조심해!"

  모라타에 있는 친구들로부터 위드가 조각품을 그만 만들고 통곡의 강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구경하기 위

 하여 미리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북부에 있는 상당수의 고레벨 유저들은 통행료를 내고 통곡의 강 주변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모라타와의 이동 거리나 몬스터의 수준을 감안한다면 이보다 좋은 사냥터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간혹 하나의 파티가 용감하게 북부의 깊숙한 장소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조금만 잘못하면 파티원 전체가 전

 멸하는 일이 허다하다.

  언제라도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통곡의 강이야말로 괜찮은 사냥터였던 것이다.

  위드는 차갑고 냉정한 눈빛으로 유저들을 돌아보았다.

'사람이 상당히 많군.'

  모라타에서는 음식과 잡템이나 팔던 어수룩한 영주였지만, 사냥터에서도 그럴 수는 없다. 벌써부터 도전적인 눈빛

 으로 위드를 노려보는 인물들이 꽤 있었던 것이다.

  이 고레벨 유저들이 한꺼번에 덤벼든다면 위드라고 할지라도 죽음을 면치 못한다.

  네크로맨서의 마법서나 탈로크의 갑옷, 고대의 방패, 콜드림의 데몬 소드 등 유니크 최상급 아이템들을 가지고 있

 기에 더욱 민감했다.

'여기는 모라타가 아니야.'

  모라타에서는 병사나 기사 들 때문에 위드에게 도전한다는 것은 꿈도 못 꾼다. 만약 누가 영주에게 검을 뽑아 든

 다면, 병사들로 진압을 해 버리거나 프레야 교단의 기사들이 철저히 부숴 버린다.

  하지만 사냥터에서는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살인자들을 만나서 아이템을 떨어뜨릴 수도 있는 것.

  위드는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을 보며 태연한 척을 했다.

"쓰레기들이 널려 있군."

"......"

  군중은 침묵했다.

  그들이 상상했던 전신 위드.

  마법의 대륙에서의 최강자에 걸맞은 오만함이었다.

"사냥도 하지 않고 나를 보기 위해서 여기서 기다린 건가? 몬스터들이 널려 있는데... 쯧쯧."

  위드는 혀를 차면서 대놓고 무시했다.

  모라타에서 위드로부터 음식이나 조각품 들을 구입했던 사람들조차도 전혀 달라진 태도에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이 모습이 진정한 위드일지도......'

'초보자들이나 개인에게는 자상하게 대해 주는 건가? 집단으로 모여 있는 우리는 오히려 비난을

하고...... 외유내강의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고레벨 유저들이 200명도 넘게 모여 있는데 대놓고 무시하는 배포.

  원래 레벨이 300대만 넘어도 자존심은 하늘을 찌른다.

  여기저기 쌓아 놓은 인맥이나 사냥 시에 발휘하는 무력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베르사 대륙이 넓기에 유저들의 숫자도 어마어마하지만, 상위권으로 갈수록 그 숫자는 줄어든다. 레벨 300대라면

 어디 가서도 무시당할 수준은 아니었다. 명문 길드에도 들어갈 수 있고, 중소 길드에서는 목소리 좀 낼 수 있는 그

 런 위치다.

  고레벨 유저들의 자존심이나 긍지는 산처럼 높았지만, 감히 여기서 위드를 향해 반발하는 사람은 없었다.

  혼자였다면 덤빌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니 나설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위드가 태연한 몇 마디의 말로 좌중을 장악해 버린 것이다.

"한심하군."

"......"

  사람들은 한마디의 대꾸도 하지 못했다.

  어느새 위드가 이렇게 말하는 게 자연스럽게 되었다.

  모라타에서는 친절하지만 모여 있는 고레벨 유저들을 향해서는 지극히 오만한 성정을 드러낸다.

  언젠가부터 꿈꾸어 왔던 절대 강자의 위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계속된 무시에 반감도 가졌다. 싸움터를 전전하면서 강해진 그들은 독불장군처럼 행동하는

 위드에게 투쟁심이 생겼다.

  죽더라도 영광이라고,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억눌려 있던 군중 사이에 미묘한 변화의 분위기가 흐른다.

  그때 위드가 사자후를 터트렸다.

"빙룡! 불사조! 내가 왔는데 왜 와서 인사를 하지 않느냐!"

  천둥 벽력처럼 퍼지는 소리.

  위드의 부름에, 저 멀리에서부터 빙룡과 불사조가 날개를 넓게 펼치고 날아온다.

  몸집만으로는 드래곤에 버금가는 크기,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생명체였다.

  빙룡과 불사조는 하늘을 향해 한차례 울부짖고는 바위산을 찾아 내려앉았다.

   후와아아앙!

   끼야아아!

  산의 바위에 균열이 가고 모래들이 떨어진다.

"주인, 불러서 왔다."

"주인님, 왔습니다."

  빙룡의 외모는 잘생겼다. 드래곤답게 무게감이 있고, 세련된 눈매에 날렵한 주둥이!

  불사조는 새 특유의 무관심하면서 냉정한, 그러면서도 모든 걸 불살라 버릴 것 같은 폭발력이 잠재되어 있다.

  그런 빙룡과 불사조가 공손하게 위드를 향해 머리를 조아린다.

"우우."

"엄청나다."

  군중은 난폭할 것 같은 2마리의 신수를 길들여 부려 먹는 위드에게서 자신들과는 다른 어떤 벽을 느꼈다.

  불평불만에 소심하고 겁 많은 빙룡과, 은근히 멍청해서 사고를 치는 불사조! 짜증과 괴롭힘으로 이들을 부려 먹는

 위드와의 관계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굉장해 보일 뿐이다.

  빙룡과 불사조가 고개를 조아리는 장면을 보고서도 위드에게 도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멍청한 놈들. 너희만 보면 화가 나는구나."

  위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빙룡과 불사조는 아무 반발도 없이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또 무슨 더러운 성질머리를 부리려고 하는 것일까.'

'그냥 무시하자. 뭔가 우리가 잘못한 게 있겠지.'

  위드가 말한다.

"무능하고 쓸모없는 놈들."

  빙룡과 불사조는 괜한 죄책감과 미안함에 눈동자를 뒤룩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잔소리를 할 때마다 무언가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말대꾸를 하며 대들면 짜증과 잔소리가 훨씬 오래 가니, 이

 유를 묻거나 따지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고 알아서 기고 있었다.

  위드는 귀찮다는 듯이 빙룡과 불사조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꼴도 보기 싫으니 썩 꺼져!"

  빙룡과 불사조는 해방이라는 생각에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날아갔다.

  위드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빨리 멀리 떨어져야 한다.

  바위산이 흔들리고 광폭한 바람이 불 정도로 재빠른 도주였다.

  군중의 기세가 더욱 가라앉았다.

  위드를 향해 경쟁심이나 투지보다는 부러움과 존경의 눈빛을 보여 주고 있었다.

  베르사 대륙에서도 쉽게 적수를 찾기 힘든 빙룡과 불사조를 이렇게 무시하니, 자신들을 향한 무시도 어느덧 당연

 하게 여기게 되는 것.

  위드는 엠비뉴 요새가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탈로스트 교단의 포로 구출 퀘스트.

  엠비뉴 요새의 지하에는 엄청난 규모의 미로와 함께 몬스터들이 떼로 모여 있었다.

'이런 던전을 뚫기 위해서는 혼자보다는 2명이 낫지.'

  중독이나 저주 마법에 대한 우려 때문에 동료가 1명이나 2명 정도는 있는 편이 효과적이었다.

  파보는 삽자루를 들고 가스톤과 함께 흑색 거성으로 걸어갔다.

"영주님의 의뢰를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까?"

  창을 들고 영주성을 지키던 경비가 물었다.

  건축 허가 때문에 파보는 영주성에 자주 오는 편이고 친밀도도 쌓아 놓았기 때문에 경비가 알아본 것이다.

"예, 그렇습니다."

"영주님께서는 작품을 보관할 수 있는 집을 지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조각품들이 있는 장소

로 안내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경비를 따라서 파보와 가스톤은 영주성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보통 때에는 들어가지 못하던 영주의 개인 공간이다.

  벽에는 흔한 전시품 하나 걸려 있지 않았고, 금은보화 등은 구경도 할 수 없었다.

"특별한 건 없군."

  가스톤이 실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화가인 그는 훌륭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 예술 스탯이나 안목이 오른다.

  예술 계열의 직업들에게는 많은 작품들을 감상하려고 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욕망이었다.

"이 방입니다."

  경비병이 닫혀 있는 영주의 방들 중 하나를 열었다.

  그 순간!

  방 안에서 찬란한 빛이 쏟아졌다.

『신화적인 조각품을 발견하셨습니다.

  탄생과 죽음!

  드워프들이 재주를 시기하고, 왕들이 전쟁을 벌여서라도 손에 넣고 싶어 할 작품을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작품을 만든 조각사는 자기의 이름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발견으로 명성이 1,290 올랐습니다.

-신화적인 조각품의 발견자의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조각품을 발견한 이야기를 선술집에서 한다면 무제한으로 술과 음식을 공짜로 마실 수 있게 됩니

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귀족들과 왕족들은 당신의 방문을 환영하고, 이야기를 간절하게 듣고 싶어

할 것입니다.

  문을 열자마자 올리기 그렇게 힘들던 명성이 1,000이 넘게 증가했다.

  파보와 가스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이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화적인 조각품을 보셨습니다.

  예술의 꽃.

  경이로운 예술품이라고 할 만한 작품.

  이름을 알리지 않은 조각사는 자신의 솜씨를 발휘하여 탄생과 죽음이라는 주제로 조각

  품을 만들었다. 그의 조각품을 보고 이해하는 자에게는 인생의 축복이 함께할 것이다.

  생명력과 마나, 체력의 회복 속도가 32% 늘어납니다.

  생명력과 마나 최대치 30% 증가.

  전 스탯 20 상승.

  민첩과 용기가 추가로 늘어납니다.

  이동속도가 30% 빨라집니다. 먼 거리를 이동할 때의 효과는 더욱 큽니다.

  살아 있는 기쁨을 만끽하게 됨으로써 생명력이 영구적으로 500 증가합니다.

  지혜가 낮아서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지혜와 지식이 영구적으로 2 늘어납니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주 관람하고,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건축가란 직업은 의외로 지혜가 높아야 했다.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간단한 마법도 사용할 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지혜와 지식으로도 작품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했다.

  파보의 경우에는 이 정도로 그쳤지만, 가스톤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신화적인 조각품을 감상함으로 인하여 예술 스탯이 47 올랐습니다.

  예술 스탯의 엄청난 증가.

  마법사의 경우,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는 훨씬 빨리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오로지 작품으로 스스로를 증명한다!

  빛 속에 진열되어 있는 인형들은 가죽 인형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실제처럼 보였다.

  입고 있는 복장, 특히 단추들까지도 정확하게 만들어져서 조금의 어긋남도 없다.

"이 조각품들이 위드의 진정한 실력이라니......"

  인형들을 만든 조각사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모라타의 영주 위드가 아니고 누가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위드가 영주성에 있는 작품들을 위한 집을 지어 달라고 했으니 확실했다.

  파보가 떨리는 음성으로 위드를 향해 귓속말을 보냈다.

-자, 자네, 지금 바쁜가?

  위드의 대답은 금방 돌아왔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궁금한 게 하나 있네.

-뭡니까?

-왜 이 조각품을 만들고 나서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나? 덕분에 발견자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네

만......

  파보와 가스톤에게는 고마우면서도 매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이런 조각품을 만들었다면 응당 자랑을 하고

 알려야 될 게 아닌가.

  가스톤이 신화적인 작품을 그렸다면 사방에 떠벌리고 다녔을 것이다.

-창피해서요.

-아니, 뭐가 창피한데?

-너무 부족하고 미흡한 실력이라, 이름을 밝히기가 민망해서......

-허억.

  이런 신화적인 조각품을 만들고 이름조차 붙이기 창피하다니!

  위드의 겸손함에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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