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17권 : 아이의 조각품 (64/520)

<아이의 조각품>

"위드 님은 정말 천재야!"

  마판은 스무 대나 되는 대형 마차를 끌고 통곡의 강 유역을 지나고 있었다.

  야만족 마을에서 교역을 하기 위해서 짐마차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캬오오오."

"싱싱한 인간. 먹잇감이다."

  다수의 몬스터들이 마차를 따라왔지만, 빙룡과 불사조에 의해 전멸했다.

  마판은 마차들을 몰고 무사히 베자귀 부락에 도착했다.

  남녀노소, 베자귀 부족이 모였다.

"빨리빨리 사라 해! 싸고 저렴한 물건 왔다 해. 늦으면 살거 없다. 싸게 팔 때 많이 사라 해."

  마판이 가져온 물품은 모라타에서 만든 무기와 방어구, 피혁 제품 그리고 식료품들!

  어린 여자 베자귀 부족이 마음에 드는지 구리로 된 귀걸이를 잡았다.

"이거 얼마예요?"

  마판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무지 비싼 거다."

"알아요. 비쌀 거 같아요. 제가 가진 거는 가죽밖에 없는데요. 아니면 송곳니나......"

  블랙 와일드보어의 송곳니와 가죽.

  모라타에서 수백 골드는 족히 받을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마판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건 이 지역에서 사냥하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거잖아."

  악덕 상인의 표본을 보여 주는 마판!

  머리카락이 몇 개 있지도 않은 베자귀 부족 소녀가 울상을 지었다.

"히잉, 꼭 사고 싶은데......"

"그럼 가죽 세 장에 팔아 줄게."

"고맙습니다, 상인 오빠!"

  마판은 미개한 야만족과의 교역을 통해서 가죽과 재료 아이템들을 사 모았다.

  최초의 교역자로서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것이다.

  위드에게서 배운, 미개한 야만족들을 등쳐 먹는 방법!

  여기서 구한 가죽들은 굉장히 귀한 재료들이다. 통곡의 강 주변 사냥감들의 가죽이라서, 모라타에 가져가기만 해

 도 특산품 대우를 받는다.

  게다가 모라타의 우수한 기술로 가공을 하면 멋진 로브와 방어구가 탄생하는 것이다.

  위드는 1쿠퍼의 의뢰에 쓸 조각품을 만들기 위해 영주성의 개인 방에서 바느질을 했다.

  이무기의 가죽을 하얗게 탈색시켜서 어린아이의 몸통을 만들었다.

"사람의 피부가 흰색은 아닌데......"

  둔한 색감 때문에 살색을 만드는 자체부터 스트레스!

  위드는 진정한 재봉사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가죽이나 천을 다루는 솜씨는 상당히 뛰어나다. 하지만 염색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던 탓이다.

"활용도만 좋으면 되었지. 색감은 그리 필요 없으니까!"

  옷들은 디자인도 중요한 요소지만, 일단 방어력이나 다른 옵션만 좋으면 금방 팔려 나간다. 염색이야 옷을 구입하

 고나서 다른 염색사에게 해도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어린아이의 피부색을 만드는 작업부터 난관이었다.

"너무 어리게 만들 필요도 없어."

  갓난아이.

  백일도 안 된 어린아이는 오히려 그 슬픔만을 떠올리게 만들기 쉽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테니 두 살이나 세 살 정도로 하자."

  말썽을 막 부리기 시작할 나이였다.

"얼굴만 봐도 꿀밤을 쥐어박아 주고 싶고, 왜 낳아서 고생을 하나 후회되고... 그러면서도 가장

예쁜 시기지."

  마음을 정리하고, 아이와의 마지막 이별을 위하여 만드는 조각품이니 명랑한 표정이 좋으리라.

  예술적 가치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조각품. 세세한 표현보다는 포근한 느낌이면 된다. 따뜻함을 보여 

 줄 수 있는 조각품이 필요했다.

"내게 그런 실력은 없지만......"

  위드는 잊고 싶은 기억이나 슬픔도 결국은 시간이 추억으로 만들어 준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다.

  경이로운 조각품으로 아픔과 그리움을 모두 감싸 안아 주기를 기대하는 건 위드에게 너무 무리한 일이었다.

  진정 뛰어난 조각사라고 해도,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는 있어도 슬픔을 중화시켜 줄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계기를 만들어 주는 정도겠지."

  위드는 흑요석을 세공하여 만든 눈동자로 인형의 눈을 붙였다.

  여동생이 어릴 때에는 공장에서 만들던 인형 때문에 장난감들은 남부럽지 않게 많았다.

  남자아이라면 비행기나 배, 자동차, 로봇 등 여러 다양한 장난감들을 원했겠지만 여동생이라서 아기자기한 취향을

 가졌다.

  동물들의 인형을 보면 한없이 좋아했다.

"유별나게 곰 인형을 좋아했지."

  아이들이 인형을 좋아하는 건 동심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리라.

"아이의 조각품만이 아니라... 더 많은 인형들을 만들어야 겠어."

  위드는 아이 혼자 있는 것은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대작의 조각품을 만들 작정이었지만, 그것으로는 많이

 허전하다.

  영원한 작별의 인사를 나누어야 하는데 아이의 인형만 덩그라니 있으면 부모의 가슴은 찢어지도록 슬프리라.

"아이 인형이 있는 장소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조각품. 아이들이 좋아하는 거라면 무엇이든지 만

들어야겠군."

  여자아이가 좋아할 만한 물건은 전부 만든다.

  촛불로 예쁘게 꾸미고, 눈사람 등도 어떻게든 만들 수 있었다.

"빙룡의 피부 가루 좀 벗겨 내면 돼!"

  조각사란 의외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이무기의 가죽 : 내구력 30/30.

  생산 스킬 재봉과 관련된 아이템.

  궁극의 재봉 재료.

  옷이나 장비를 만들기에는 너무 귀한 물건이다. 마나의 힘이 깃들어 있으며 독에 대한

  저항력을 갖게 해 주고 암흑 계열의 힘을 증폭시켜 준다.

  이무기의 가죽은 보통의 재봉술과 재봉 도구로는 다룰 수 없다.

  명장의 반열에 오른 재봉사에게는 더없이 귀한 경험과 명품을 만들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전투의 흔적이 가죽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가치가 다소 훼손되어 있다.

  물품으로 제작하려면 별도의 수선을 필요로 함.

  최상급 재봉 아이템.

  옵션 : 암흑 계열의 힘을 증폭시켜 줌.

마나의 최대치를 20,000 증가시켜 줌.

독에 대한 저항력을 가져서 쉽게 중독되지 않게 된다.

매우 가벼운 소재.    』

  최상급 재봉 아이템을 단지 인형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구멍도 나 있고 흠집도 많았지만, 여행자를 위한 튜닉이나 마법사의 로브로 만들어도 수만 골드는 받을 수 있는

 재료들이 거침없이 절단되어 인형으로 재탄생했다.

띠링!

『토끼 봉제 인형을 만드셨습니다.

  손으로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조각사의 새로운 도전!

  희귀한 가죽을 재료로 해서 토끼 인형을 만들었다.

  조각술계의 새로운 혁명의 창조자 위드는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예술적 가치 : 거장 조각사 위드의 작품.

309.

  특수 옵션 : 토끼 봉제 인형을 가지고 있으면 점프력이 5% 증가함.

      봉제 인형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과의 친밀도 상승.

      거대토끼족과의 우호를 높일 수 있다.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재봉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명성이 12 올랐습니다.

-예술 스탯이 3 상승하셨습니다.

-행운이 1 상승하셨습니다.

  거대토끼족은 아직 발견된 적이 없다.

  설원에 산다는 설족들처럼, 구전을 통해 내려오는 이야기속에만 존재하는 종족!

  봉제 인형으로 조각품을 만들어서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0.9%나 올랐다.

"조각술 스킬 레벨이 7에 오르고 나서는 걸작을 만들어도 이 정도의 숙련도는 얻지 못할 줄 알았

는데......"

  대형 조각품이나 바위 조각품에 치우쳐 있던 게 술수인 것 같았다.

  조각술은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와 시도를 거듭해야 발전할 수 있다. 만들고 싶은 주제와 작품들이 쌓이고 쌓여서

 쉴 수가 없게 만드는 게 조각술의 세계!

  위드도 인간인 이상 만드는 조각품들이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었다. 익숙한 조각품들을 주로 만들려고 하고, 점점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게 된다.

  서윤의 조각품을 한동안 만들다가 대형 조각품으로 옮겨 갔는데, 타성에 젖어서 만드는 조각품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위드는 다정하고 친근한 표정의 동물 인형들 30개 정도를 완성해서 가지런히 놓았다.

  사자, 코끼리, 곰, 치타, 코뿔소 등의 맹수 인형들이 귀여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인형이라면 역시 사악하고 눈알이 번들거려야 제맛인데......"

  위드의 취향에는 심각하게 맞지 않았지만, 어쨌든 아이들을 위한 것들이다.

  가죽으로 만든 인형 중에서 걸작이 5개나 나왔다.

  재봉 스킬이 연관되어 만든 인형이라서, 천과 가죽을 붙여서 만든 완성도는 상당했다.

  위드의 손재주는 엄청난 내구력을 자랑한다.

  진짜 코끼리가 와서 짓밟아도 뽀송뽀송한 내구도, 심지어는 화염 마법으로 태워도 멀쩡할 인형들의 탄생이었다.

  멋모르고 가지고 놀던 아이들이 불에 타면서도 멀쩡한 인형을 보고 침을 흘리면서 경악하게 될지도 모를 수준!

"인형은 튼튼하지 말아야 한다는 편견을 버려야 돼!"

  위드는 더 많은 동물 인형들을 만들면서 인형 제작에 대한 기본을 익혔다.

  틀을 깨는 상상력도 본격 발휘되었다.

  다람쥐 가족 인형들이 맷돌을 돌려 큰 도토리를 부수는 모습. 도토리묵을 만들어서 먹으려는 것이었다.

  토끼들은 당근 수프를 만들어서 헤엄치고 다니고 있다.

"작품명은 다람쥐와 토끼 요리사들이 어울리겠군."

  걸작이었다.

  나중에 요리 스킬을 발휘해서 진짜 도토리묵과 당근 수프까지 채워 넣으면 완벽하리라.

  원숭이 인형들은 집단으로 바나나 껍질을 까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모닥불을 피우고, 원숭이 연인을 유혹하

 는 아찔하고 관능적인 춤.

  장난기 많은 원숭이들이 바닥에 바나나 껍질을 깔아 놓아서 넘어지고 미끄러지는 익살스러운 광경도 연출했다.

"작품명은 발랑 까진 원숭이 축제."

  이번에는 명작이 나왔다.

  나무를 깎아 만든, 원숭이들이 악기를 다루는 모습이 깜찍했다.

"그다음으로는......"

  동물, 동물, 동물들.

  남자아이가 대상이었다면 자동차나 배, 비행기 등의 조각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아이를 위한 조각

 품이어야 했다.

"여자아이들은 동물 인형을 좋아하니까!"

  덮어 놓고 무식할 장도로 많은 동물 인형들을 만든다.

  노가다에는 면역이 되어 있어서, 수백 개를 만들어 내고도 지칠 줄을 몰랐다.

"완벽하게 하나의 방을 인형으로 가득 채울 수 있도록... 그 아이가 절대 불행하지 않았다고, 행

복했다는 걸 느낄 수 있게 해야지."

  지금 만드는 인형들은 곁가지에 불과할 뿐.

  최고의 작품을 위해서는 특별한 인형을 만들어야 한다.

  위드가 만들었던 그 어떤 작품보다도 더 대단한 대작. 진정한 초대작을 만들어야 했다.

  모라타에 근접해 있는 트리반 마을.

  니플하임 제국 시절에는 자작이 거느리던 영지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생사와 계피가 많이 나오며, 넓은 곡창지대까지 소유한 축복받은 영토였다.

  하지만 혹독한 북부의 추위가 지나가고 난 이후에 남은 것은 황무지와 폐허뿐이었다.

  몬스터들도 많아서, 수시로 마을을 노략질했다.

  들개들 따위가 습격을 하고 나면 마을에 식량이 거의 남아 나지도 못했다.

  스티렌 길드가 이곳에 정착했다.

"땅을 파! 돌멩이들을 빼내고 씨앗을 심어야 하니 서둘러야 해."

  스티렌의 지휘 아래에 30여 명의 길드원들이 곡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땅을 개간하고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였다.

"젠장, 노르망 왕국에서는 그래도 스티렌 길드 하면 초보자들도 알아주었는데 이게 무슨 꼴이야."

"일을 해 줄 주민이 없으니 어쩔 수 없잖아. 지금은 모라타에서 전부 수입하고 있으니 말이야."

  스티렌 길드가 트리반 마을에 정착한 것은 베르사 대륙의 시간으로 5개월 전쯤!

  북부의 개척 붐이 막 불었을 무렵에 스티렌 길드는 일찍 터전을 옮겼다.

  현재는 북부의 마을과 영지들이 중앙 대륙에서 대규모로 건너온 유저들과 길드들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있었다.

  스티렌 길드는 정착할 마을을 정할 때 조건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았다.

"부동산은 입지야. 기름진 땅? 넓은 들판? 혹은 산을 끼고 있는 지형? 다 필요 없어. 모라타에만

가까우면 돼."

  당시는 모라타가 북부의 유망한 마을로 떠오르고 있을 무렵이었다.

  스티렌이 보아도 전망이 밝았다.

"북부 대륙의 중심지라는 이점. 상인들의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유저들도 모여들고 있어.

앞으로 북부는 모라타가 중심이 될 거야."

  스티렌의 전망대로였다.

  모라타는 영주의 과감한 투자와 사람들의 유입에 힘입어서 무서운 속도로 발전을 거듭했다.

  스티렌 길드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기 위하여 모라타 마을로 갈 때마다 천지가 개벽하는 변화들을 볼 수 있

 었다.

  빛의 탑과 약간의 조각품만 있던, 폐허나 다를 바가 없던 모라타 마을에 마차가 달릴 수 있을 정도로 번듯한 길이

 뚫리고 건물들이 새로 지어졌다. 화려함은 없지만 분수대가 있는 넓은 중앙 광장도 생겼다.

  광장에서는 전사들과 마법사, 기사, 모험가 들이 퀘스트와 사냥을 함께할 파티원을 구한다.

  분수대 주변에 빼곡하게 몸을 붙이고 앉아 장사를 하는 상인들을 보면서 스티렌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부러웠다.

"우리 트리반 마을도... 나중에는 이렇게 되고 말 거야."

  모라타 영주의 직업은 조각사였으니 희망은 있었다.

"조각품이 초창기에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효과는 있겠지. 하지만 우리 스티렌 길드가 사냥터 정보

등을 공개하면 모두 이쪽으로 오게 될걸."

  스티렌 길드는 던전을 발굴하고 몬스터들의 정보들을 공개했다.

  많은 유저들이 와서 사냥하고 정착하라는 의미였다.

"와, 여기가 트리반 마을이야? 제대로 찾아왔네."

"사냥하자!"

  전사 파티들이 우르르 방문했다.

  모라타와 그리 먼 거리도 아니었기 때문에 말을 타고 빠르게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밤이면 그들은 다시 모라타로 돌아갔다.

"빛의 탑 구경하러 가자."

"출출하네. 모라타에 가서 밥이나 먹지."

  주변 도시의 한계였다.

  그들은 던전과 사냥터에서 돈을 벌어서, 소비는 모라타에 돌아가서 하는 것이다.

"잡템도 모라타에서 팔자."

"응, 모라타에는 상인들이 많아서 제값을 받을 수 있어."

  잡템마저도 트리반 마을에서 팔지 않는다.

  스티렌의 마을 운영은 적자였지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마을을 개발하는 일인데... 초창기에 이 정도 어려움쯤이야 예상했던 수준에 불과하지."

  10만 골드를 추가로 털어서 투자했다.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마을의 집들을 새로 짓고 광장도 만들었다. 하지만 유저들은 여전히 오지 않아서, 유령 

 마을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거야. 직접 모라타로 가서 홍보라도 해 보자."

  스티렌은 길드원 듀마와 함께 모라타 마을로 갔다.

"트리반 마을에서 사실 분 구합니다. 스티렌 길드가 평화롭게 지배하는 마을입니다. 각종 편의를

지원해 드리며, 소정의 정착금도 지원합니다."

  그들과 비슷한 처지인 듯, 눈물의 호객 행위를 하는 다른 길드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호움 마을로 오실 모험가 분들 환영합니다. 아직은 미흡한 점이 많지만 우리 페로이 길드가......"

"케아트 마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트리반 마을이 조금 나아졌을 때, 모라타는 건물과 사람들이 더 많아져 있었다.

  프레야 여신상이 완공되고, 인공 호수가 생겨났다.

  영주가 직접 술집을 확장하고, 전투 계열의 길드들까지 세웠다.

  초보자들의 유입까지 가능해지면서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모라타 지역이다.

  영주성과 마을, 돌로 된 성벽을 넘어서 비어 있던 공터들에 상점들과 집들이 만들어질 정도로 확장 속도가 엄청났

 다.

  모라타에 처음 방문한 이들을 압도하는 판자촌!

"으으, 정말 굉장하군."

  스티렌은 그래도 낙천적이었다.

  모라타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북부로 향하는 사람들의 관심도 많아지고 있다는 뜻!

  모라타가 좋아진다면 트리반 마을에도 점점 이주민이 많아질 것이다.

"도시의 발전이란 그런 거니까. 일단 한 곳을 집중 개발해서 발전시키면, 그 근처의 지역들도 혜

택을 받는 거야."

  도시 정비와 행정학 등을 배운 적이 있는 스티렌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모라타는 영주성이 있는 마을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까지 포함하는 굉장히 넓은 땅이다.

"영주가 직접 지역을 다스리지도 않고 장로에게 위임했으니 그 구멍이 어딘가 생기겠지."

  스티렌은 인맥을 통해 성과 마을을 다스리는 다른 길드들의 사정에도 어느 정도 밝았다.

  마을의 대표자는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 장로나 다른 귀족에게 위임하면 쓸모없는 곳에 

 지출이 심하기 때문이다.

  모라타는 중앙 대륙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문화 예술 분야에 대한 지출액이 컸다.

"좋았어. 모라타에도 구멍이 있다. 문화 예술에 투자하고 있으면 낭비가 심해서 금방 무너지고

말 거야."

  스티렌은 길드의 천문학적인 자금을 끌어모아 대장간들을 늘리고 관련 기술들을 발전시키는 데 무려 78만 골드를

 투자 했다.

  대장장이들의 도시로 마을을 엄청나게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전투 계역 길드, 마법 계열 길드도 만들면서 유저들을 끌어오기 위하여 힘썼다.

"트리반 마을처럼 북부에서 기술 발전도가 높은 장소는 없어. 얼마 뒤면 여기도 모라타 이상으로

커지고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겠지."

  스티렌은 길드원들과 함께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설렘으로 인하여 밤잠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는 동안 모라타에서는 문화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사냥과 관광, 모험, 퀘스트에 지친

 사람들이 노래와 조각품, 그림, 예술을 편안하게 만끽한다.

  문화는 많은 돈이 들지도 않았다.

  토끼들을 재롱 부리게 만드는 사육사나 광대, 잡템들을 진열해 놓고 자랑하는 유저도 있다.

  모라타의 유저들이 기뻐했다.

띠링!

-트리반 마을 주민 중 35명이 모라타로 이주를 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불만이 거셉니다.

  주민들은 스티렌에게 와서 따졌다.

"왜 우리 마을은 모라타처럼 번화하지 못했지요, 영주님?"

"마을에 아이들이 갖고 놀 것이 없습니다."

"고된 일을 마치고 나서도 삶의 의욕이 없습니다. 여기는 너무 삭막한 마을 같아요."

  문화의 뒤처짐으로 인한 주민들의 불만족 심화 현상이었다.

  모라타의 주민들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총인구가 3,000명도 되지 않는 트리반 마을의 사람 수는 갈수록 줄어든다.

  병사들의 충성도도 떨어지고, 작업의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주민들이 줄어들면 생산성이 하락해서 겨우 개간한 논밭을 그냥 놀리고, 광산에서 자원도 캐지 못한다.

  주민들의 감소에 따라서 퀘스트들도 자연히 사라지는 경우들이 생겼다.

  기껏 고생해서 퀘스트를 해결하고 왔떠니, 보상을 해 줘야 할 상점 주인이 사라지고 말았다.

  황당한 상황에 빠진 유저들이 주민들을 향해 물었더니 대답이 걸작이었다.

"무기점 아저씨? 이번에 모라타로 이주했지요. 새로 자리를 잡기가 쉽진 않겠지만, 거기는 사람들

이 참 살고 싶어 하는 마을이라고 해요. 저요? 저도 곧 모라타로 갈 거예요. 맡긴 일을 완수하고

싶으면 모라타로 가 보세요."

띠링!

-트리반 마을 주민 중 23명이 모라타로 이주를 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종교 시설을 원합니다.

"프레야 여신님을 보고 싶습니다. 다행히 옆 마을에 여신상이 있으니 그곳에서 여생을 마치겠습

니다."

"신앙의 축복을 받고 있는 모라타의 친구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모라타로 가는 길은 여신과 가

까이하는 일이 될 거예요!"

  주민들의 이탈이 계속됐다.

  북부에서 방랑하는 유민들에게 돈과 식량을 주어서 트리반 마을에 정착시켰더니 이사를 가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의 인구는 3,000의 언저리를 오고 갈 뿐, 늘어나지를 못했다.

  지금까지 영주들이 고민하는 부분은 경제력과 기술력, 군사력에 대해서였다. 문화에 대해서는 천시하고, 거들떠보

 지도 않았다.

  바드들이 많이 방문하면 소란스럽고 귀찮다면서 푸대접을 하기도 했다.

  문화가 오르면 어디에 쓰겠는가!

  관련 시설들에 대한 유지비나 건설 비용을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대륙의 다른 곳들은 그 생각에 바뀜이 없었지만, 스티렌이야말로 문화의 위력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가장 걱정하던 안 좋은 소식까지 전해졌다.

"길드장님, 모라타의 영주 위드가 돌아왔다고 합니다."

  길드원의 보고에 스티렌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어디 가서 죽지도 않고 돌아왔단 말이냐?"

"예. 지금 루의 신상을 만들고 있다는데요."

"허어... 또 조각품을 만들다니!"

  스티렌은 고개를 저었다.

  도시 발전에 있어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조각사와 경쟁하는 것만큼 무모한 일이 없다.

  그런데 천금을 준다고 해도 다른 대안이 없었다.

  베르사 대륙에는 위드처럼 뛰어난 조각사도 없을뿐더러, 조각품을 만들 때마다 일대 파장이 일어나니 이웃 영주로

 서는 죽을 맛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소식도 들어왔습니다."

"무슨 소식?"

"모라타 영주의 정체가 전신 위드라고 합니다."

"뭐라고?"

  전신 위드!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두려운 이름이었다.

  스티렌 역시 마법의 대륙에서 잔뼈가 굵은 유저였다. 마법의 대륙에서의 위드의 악랄한 카리스마를 직접 겪어 보

 았다.

  죽이고, 빼앗고,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오를 수 없는 산을 보는 것처럼 막막함까지 안겨 주던 전신 위드.

"정말 전신 위드란 말이냐?"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합니다."

"본인의 입으로 밝혔어?"

"맞다고 하던데요."

"......"

"몇몇 방송들의 뉴스 채널에서도 전신 위드가 모라타의 영주일 가능성이 거의 100%라고 말하고 있

습니다."

  스티렌은 한동안 침묵했다.

  전신 위드의 성정은 지극히 잔혹하고, 도전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모라타 부근에 영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초토

 화를 시키고도 남을 인물이다.

  중앙 대륙에서 거친 늑대들을 피해 왔더니 하필이면 호랑이 굴 옆인 것이다.

  스티렌에게 마법의 대륙에서의 악몽이 다시 떠오르려고 했다.

  그러자 길드원이 다소 위안이 되는 말을 했다.

"소문이 항상 맞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반대되는 의견도 많습니다."

"뭔데?"

"우선 전신 위드와 제법 관련이 있기는 할 거랍니다. 아이스 드래곤이나 프레야 교단과의 관계 등

여러 정황들을 보아서요. 하지만 본인인지 아닌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설혹 전신 위드가 맞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요. 혼자서 감히 우리 길드에 도전할 

수 있겠습니까?"

  스티렌에게는 기다려 온 반가운 말이었다.

"맞아. 전신 위드라고 해도 겁날 게 없다. 게다가 진짜 직업이 조각사라면, 어떻게 보면 전화위복

이고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는 거죠."

  스티렌은 모라타에 대하여 원대한 야망을 품고 있었다.

  트리반 마을을 성장시켜서 병사들을 징집하고, 길드원과 함께 무력으로 모라타를 점령한다!

  스티렌 길드는 함께 북부에 정착한 고레벨 유저들만 600명이 넘었다. 중앙 대륙에서 용병들까지 구한다면 2,000

 명 정도의 군대를 편성할 수 있다.

  모라타의 모든 것을 가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위드라고 해도... 이번만은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마법의 대륙에서의 기록이 여기서 끊어지

게 될 거야. 그리고 만약 전신 위드가 아니라면 더 볼 것도 없겠지."

"맞습니다, 길드장님!"

"그럼 계획을 싱행시키기 위해서 어서 모라타에 가서 주민들이나 좀 꼬여 와."

"......"

  위드는 재봉 스킬과 조각술 스킬을 발전시키면서 인형 만들기에 전념했다.

"인형도 하나의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으니까."

  최초로 만든 작품이 일정한 수준 이상에 오르면 숙련도나 명성을 크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여러 개를 만들다 보

 면 전문적인 익숙함이 쌓여서 스킬 레벨이나 숙련도의 영향이 커지기도 했다.

  검사가 마법을 쓰는 게 어설프고, 대장장이들이 수십 가지 무기를 다 만들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조각사는 그 모든 부분을 아우를 수 있는 잡종 캐릭터의 최고 극점에 있는 직업이기는 했다.

"어린아이의 인형이라."

  위드는 수십 개의 실패를 맛보았다.

  완벽한 대작, 신이 빚어낸 것 같은 작품은 만들 수 없다. 그런 환상을 가지기에는 스스로의 미천한 실력을 잘 알

 고 있기 때문.

  하지만 본인이 봤을 때 모자란 면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어린 여자아이. 사랑스럽고, 맑고, 평화로운 어린아이의 인형."

  위드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산처럼 쌓였던 킹 히드라와 이무기의 가죽들이 줄어들어 간다.

  청동이나 철을 재료로 했다면 다시 녹여서 쓸 수도 있지만, 가죽 재료들은 재활용하지 못하고 폐기 처분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티 없이 밝은 어린아이를 만들기도 어렵지만, 밝음에는 어둠이 따라오기 마련이지."

  아이를 낳지 못한 부모 입장에서는 심장이 조각조각 끊어지는 아픔이리라.

  그렇다고 해서 울며 절규하는 아이를 만든다면 슬픔이 한없이 더해지리라.

"대작. 대작을 만들어야 하는데......"

  위드는 혼란에 빠졌다.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할지부터 고민이 심해지는 상황이었다.

"서윤의 어린 모습을 추측해서 만들까?"

  현실적인 도피처!

  화령이나 이리엔의 어린 모습을 조각하더라도 무난할 것 같다.

  하지만 위드는 금방 잘못을 뉘우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 만돌이라는 유저가 나를 믿고 맡긴 일이야. 대충 때우는 걸로 해서는 안 돼."

  이렇게 답을 찾기 힘든 고민을 할 바에는 차라리 퀘스트가 훨씬 쉬울 것 같았다.

  인형들을 만들면서 쌓인 숙련도도 7레벨 36%나 되었다.

  스킬 레벨과 표현력은 경험이 쌓이면서 늘어나더라도, 주제를 올바르게 정하지 못하면 안 되는 것이다.

"무리한 욕심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여자아이를 조각하고 싶다."

  위드의 고민이 갈수록 깊어졌다.

  퀘스트를 공유받고 엠비뉴의 지하 감옥으로 떠난 원정대로부터 연락도 없으니 더욱 인형만 꿰맸다.

  무수한 실패만을 반복하면서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인형, 인형, 인형, 인형!

"으아아악!"

  이현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큰 고민이었다.

"인형 때문에 괴로워할 일은 다시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어린 소녀의 인형들.

"그냥 동상으로 만들까? 금이나 은을 이용해서라도 만들어 주면......"

  도피처들이 떠올랐지만 그렇게 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간 쌓였던 조각품에 대한 신뢰를 산산이 배신해 버리는 행위였다.

"의뢰받은 조각품도 만들지 못하고 넘어갈 수는 없어."

  어렵다고 해서 포기하는 건 그의 방식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것!

  이현은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시장으로 향했다. 새벽 시장에는 채소와 고기 등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인해서 생기

 가 넘쳤다.

  하지만 그런 생기들 속에서도 어린 여자아이의 조각품은 떠오르지 않았다.

"산부인과나 유아원에 가 볼까?"

  어린아이들을 볼 수 있는 장소지만, 아이의 생김새를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수시로 기저귀를 갈아 줘야 되고, 배고파하고, 잠드는 악마들이지."

  어떤 여자아이의 인형을 만들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현은 사진관 앞을 지나갔다.

  어린아이들의 돌 사진이나 결혼한 부부들의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현은 오랫동안 그 사진들을 구경하면서 깨달음을 얻었다.

"조각사로서 대상을 느끼고 볼 수 있는 건 그저 작품뿐일거야. 부모의 입장이라면 많이 다르겠지."

  평범한 사진 한 장에 담겨 있는 아기에게도 인생이 있을테고, 또한 부모에게는 정말로 소중한 작품이 되리라.

  이현은 부모의 입장에서, 여자아이에게 작별을 한다고 생각해 보았다.

  갓난아이의 인형을 두고 작별하는 부모의 미어지는 가슴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어린아이의 인형을 만든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되어 있었어!"

  이현이 별안간 소리쳤다.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미 가장 분명한 해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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