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18권 : 조각품의 역사 (77/520)

<조각품의 역사>

  중앙 대륙의 영주들은 위드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마법의 대륙에서 조금 명성을 날렸다고 해서 로열 로드에서도 함부로 구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야."

"전쟁의 신 위드? 중앙 대륙에 있었다면 일개 군단만 파견해도 잿더미가 되어 버렸을 군소 영지 영주

에 불과한 주제에 말이지."

"잔재주에 불과한 퀘스트나 하면서 까부는 게 불쾌하군."

  중앙 대륙의 영주들은 스스로를 피의 역사를 쓰면서 버텨왔다고 생각했다.

  로열 로드의 초창기부터 남들보다 두각을 드러내고, 유저들을 포섭해서 세력을 키웠으며, 전쟁을 승리로 장식하며 

 살아남았다.

  영주들이 거느린 군대는 정예병만 8만이 넘는 경우도 많았다. 소속된 영토 내에서 활동하는 유저들의 숫자도 엄청났

 다.

"모라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위드에 대한 반감과 질투!

  퀘스트나 전쟁에서 유저들을 열광시키는 모습이나 그가 쌓은 명성은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다수의 초보자들이 모라타를 근거지로 하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조각품이 살아서 움직이다니... 조각품을 만들면 그것과 비슷한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는 건가? 퀘스

트이거나 조각술에 뭔가 감춰졌던 비밀이 있었던 거야."

"어쨌든 북부는 슬슬 영양가 높은 노른자위 땅이 되고 있어. 중앙 대륙이 안정화에 이르기만 하면 모

라타를 점령해 버려야겠군!"

  단단히 벼르고 있는 영주들이 많았다.

  하지만 헤르메스 길드의 바드레이만큼 이번 전쟁의 결과를 기다렸던 사람도 없었다.

  바드레이는 일부러 텔레비전도 안 봤다.

  평소처럼 사냥에 충실하면서 위드의 처참한 몰락의 소식을 기다렸다.

  정보 담당 스티어가 북부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보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라타 전쟁 소식을 들은 바드레이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위드가 승리를 했다라."

"예. 모라타의 피해도 크지 않습니다. 북부동맹군이 여러모로 무능했고, 단합도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모라타의 전력이 그렇게 컸나?"

  바드레이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되물었다.

  각 방송국마다 전쟁 며칠 전부터 양측의 전력을 분석하는 보도를 했다. 모라타에 대해서 듣기로는 분명 북부동맹군

 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위드가 대활약을 펼쳤나 보군."

"예. 그렇습니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대활약을 펼쳤습니다."

"......"

"모라타의 유저들 대부분을 전쟁에 가담시키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그 힘이나 능수능란한 전술, 칼라

모르의 기사들을 부리는 것 등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장면들입니다. 인터넷 게시판이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바드레이는 여전히 담담한 얼굴이었다.

  북부에서 벌어진 사소한 일 따위가 헤르메스 길드의 총수이며 하벤 왕국의 최고 권력자를 흔들어 놓을 수는 없다는

 듯이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내심은 그렇지 않았다.

'위드가 지휘한 전쟁에서 북부동맹군이 항복을 했다라......!'

  바드레이의 기분을 망쳐 놓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썩은 단검 팝니다. 배추도 잘 잘리고 몬스터 사냥에는 최고예요."

"구부러진 철검 팔아요. 목검밖에 없는 분들, 이참에 든든한 검 하나 장만해 보세요. 싸게 드릴게요."

"생명을 지켜 줄 가죽 갑옷 팝니다. 가슴 부위는 찢겨서 없지만요, 다른 부분은 비교적 멀쩡해요."

  적게는 몇 쿠퍼, 비싸도 5골드를 잘 넘지 않는 초보자들끼리의 거래!

  와이번 광장, 빙룡 광장, 빛의 광장, 황소 광장에는 유저들로 북적거렸다.

  미리 4개나 되는 광장을 더 만들었을 때에는 인적도 뜸하고 황량한 느낌까지 들었다.

  하지만 모라타 전쟁으로 인하여 초보자들이 대대적으로 늘었다. 방송 후에는 로열 로드가 막 문을 열었을 때의 초창

 기처럼 초보자들이 밀려들고 있었다.

"보리 빵 3개 남는데, 팔아요."

"그거 팔고 뭐 먹고 살려고 그래요?"

"무기부터 장만하고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요."

"쯧쯧, 마을에서 물이라도 많이 드세요. 물로라도 배를 채우면 포만감이 잘 안 떨어져요."

"고맙습니다."

  찬 바람이 지나고 난 후의 봄의 대지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모라타였다.

  초보 상인들은 특산품을 1~2개라도 사서 운송하고 있다.

  파보가 짓는 예술 회관의 건설 현장에는 수만 명의 초보자들이 달라붙어서 전광석화처럼 일을 해치운다.

  위드는 방학 기간 동안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조각품 복원도 마쳐야 되고, 사냥으로 레벨도 올려야 돼. 지금처럼 마음 놓고 집중할 시간이 겨울방

학이 아니고는 없을 거야."

  여행을 다녀와서 가뜩이나 짧아져 버린 여름방학!

"스탯 창!"

『캐릭터 이름 : 위드 성향 : 도전적임

  레벨 : 368 직업 : 전설의 달빛 조각사!

  칭호 : 이무기를 사냥한 지휘관

  명성 : 29,726

  생명력 : 31,360 마나 : 14,405

  힘 : 1,315 민첩 : 1,005

  체력 : 159 지혜 : 189

  지력 : 184 투지 : 479

  지구력 : 210 인내력 : 695

  예술 : 1,621 카리스마 : 360

  통솔력 : 672 행운 : 215

  신앙 : 135+435 매력 : 210+30

  맷집 : 419

  정신력 : 25 용기 : 95

  공격력 : 5,329 방어력 : 1,761

  마법 저항 불 : 27% 물 : 31%

    대지 : 35% 흑마법 : 50%

+모든 스탯에 20개의 포인트가 추가됩니다.

+예술에 추가로 80개의 포인트가 부여됩니다.

+달이 뜨는 밤에는 30%의 능력치의 향상이 있습니다.

+아이템과 특화됨.

+모든 생산 스킬을 마스터의 경지까지 배울 수 있게 됩니다. 모든 아이템 제조와 제련의 스킬에

우대 적용. 최고급 스킬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특이하거나 예술적 가치가 높은 조각품을 만들면 명성이 상승합니다.

+조각품과 생산 스킬, 전투 경험, 퀘스트로 인하여 전 스탯이 113 증가합니다.

조각품과 생산 스킬만으로 전 스탯을 100개 이상 증가시키면 대장인의 칭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착용하고 있는 바하란의 팔찌로 인하여 전 스탯이 15 증가합니다.        』

  위드의 레벨은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한 탓에 다시 368이었다.

  레벨을 올릴 때마다 힘과 민첩에만 모든 스탯 포인트를 분배하고, 나머지는 퀘스트와 장비, 조각품으로 알차게 올린

 스탯들이다.

  스탯 창만 해도 노가다의 흔적이 여실하게 남아 있었다.

  로열 로드의 홈페이지를 보면 자기의 스탯을 자랑하는 게시판이 있다. 그중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스탯 창이

 었다.

"빙룡이나 금인이, 이무기나 킹 히드라는 물론이고 와이번보다도 낮은 레벨이야."

  퀘스트를 하다 보면 레벨이 잘 오르지 않는 단점이 있다.

  퀘스트의 성공에 매달리느라 준비를 해야 했으니 사냥에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었다.

  레벨이 너무 낮아서는 강해질 수 없다.

  공성전을 준비하면서도 병사들을 키우느라 전투를 거의 하지 않았으니 스킬 숙련도도 올리지 못했다.

"텔레비전을 보면 레벨 420대의 유저들도 꽤 될 거라는데...... 이대로 멈춰 있을 수는 없지, 먼저

옥새부터 복원해 보자."

  위드는 영주성의 골방에 들어갔다.

"조각품은 마음이야 진정한 마음이 깃들지 않으면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없어."

  조각 복원술을 위해서는 부수고 고치는 일을 반복해야 된다.

  예쁘고, 화려하고, 귀한 조각상을 만들어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깨뜨리고 다시 복원을 하면서 노가다처럼 느껴

 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노가다란, 노가다를 하면서도 하는지를 몰라야 돼."

  감정의 이입을 위한 조각품 선정에 고뇌의 시간 3초!

  "이놈들이면 되겠군."

  위드는 돈 귀신 조각품 7마리부터 만들었다.

  이마에 돈을 달라고 쓰여 있고, 뻔뻔한 표정으로 돈을 맡겨 놓기라도 한 것처럼 손바닥을 내밀었다.

  얄밉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험악한 표정까지 지었다.

  옆구리에는 일수 가방까지 들고 있는 영락없는 돈 귀신들!

  표현과 묘사를 어찌나 세밀하게 했는지 걸작 조각품이 나왔다고 칭찬마저 자자할 정도였다.

  위드는 완성된 조각품을 잠시도 바라볼 수 없었다.

"이야합!"

   콱콱! 와장창! 퍼석!

  조각품들을 밟고 던지고, 망치로 때려 부쉈다.

  이단 날아 차기에 눈찌르기, 관절꺾기, 목 비틀기까지 이어지는 연속기!

"이놈의 돈 귀신들!"

  원한과 증오를 담아서 행하는 보복 행위였다.

-조각품을 훼손하셨습니다.

명성이 5 하락합니다.

  위드는 다시 깨진 조각품들을 이어 붙이고, 완전히 파괴된 것들은 새로 만들었다.

  방금 만든 조각품이라서 기억에 남아 더 쉽게 만들 수 있었다.

  조금 전보다 더 얄미운 인상의 돈 귀신들이 금방 복구되었다.

"이 지긋지긋한 돈 귀신들!"

  만들고 부수고의 반복!

  시간이 정신없이 흘렀다.

-조각 복원술의 스킬 레벨이 중급이 되었습니다. 조각품의 내구력이나 광택이 더욱 좋아집니다.

기억력이 좋아져서 지식이 20 오릅니다.

  걸작 조각품으로 하는 수련이라서 초급은 무난하게 넘었다.

  복원술이 중급이 되었을 때에는 돈 귀신이 슬슬 질려 왔다.

"더 참신한 조각품이 필요해. 내 증오와 열정을 더욱 끌어 올려 줄 수 있는 걸로!"

  이번에는 돈 먹는 하마 조각상을 제작했다. 누렁이만큼 큰 몸집의 하마가, 바닥에 떨어진 1쿠퍼짜리 동전들을 주워

 먹으려고 하는 끔찍한 순간을 조각한 것이다.

  돈을 먹으려고 하는 하마의 탐욕스러운 표정과 뱃살의 출렁거림까지 표현된 걸작!

  돈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면서 1,400이 넘는 예술적 가치를 부여받았다.

"죽어라!"

  위드는 하마를 불로 태우고, 인두로 지지고, 거꾸로 매달았다.

  역사적으로 인간이 행했던 온갖 잔혹 행위가 돈 먹는 하마에게 저질러졌다.

  누렁이는 암소들과 뒹굴고 나서, 주인의 곁에서 잠을 청하기 위해 돌아와서 그 광경을 목격했다. 와이번과 금인이,

 빙룡이는 영주성의 창문에서 위드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추위에 강한 빙룡이의 몸체까지 덜덜덜 떨고 있었다.

"주인의 말을 잘 들어야겠다."

"우리가 하마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조각 생명체의 충성도 최절정!

  위드는 돈 먹는 하마를 고치면서 조각 복원술을 중급 7레벨까지 달성했다.

  나흘에 걸친 노가다의 결실. 학교에 가거나 다른 잡다한 일을 하지 않고 순수하게 로열 로드에만 투자한 덕분이었다

"이제 아르펜 제국의 옥새를 복원할 때야."

  위드는 옥새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부서지지 않도록 고급 천으로 잘 싸 놓은 귀한 조각품이었다.

  오래 시간을 끌지 않고, 익숙할 때에 바로 해치우려는 것이다.

"일단 이 조각품을 복원해야 되는데......"

  스킬은 올랐지만, 사실 조각품을 많이 복원해 본 건 아니라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다.

"게이하르 황제가 만들었떤 장면을 조각품의 추억으로 보지 않았다면 시도하기도 어려웠겠지."

  기억에 남는 조각품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금을 바르고 옥을 이어 붙이기로 했다.

  가지고 있던 전리품 중 고대 금화들을 녹인 후에 복원에 쓰기 위해서 준비했다.

"조각 복원술!"

  스킬을 사용하면서 금을 찍어 바른다.

  원래의 형태로 다시 만들어 내는 것이다.

   파아아앗!

  묵은 때가 제거되고, 황금빛 드래곤의 닳고 없어진 부분들에 복구의 손질이 가해졌다.

  세월의 흔적으로 깨지고 균열이 간 부분도 보수했다.

"밑바닥도 고쳐야 되겠군."

  대륙의 지배자를 상징하는 옥새였지만 도장 부분도 굉장히 중요하다.

  위드는 마법으로 만든 접착제를 이용해서 도장을 찍으면 아르펜이라는 글귀가 나오도록 조심스럽고 꼼꼼하게 손질을

 했다.

  조각 복원술이라는 스킬에 의존하고는 있었지만, 아르펜 제국의 옥새는 오래된 골동품이라서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

 럼 위태로웠다.

  그래도 조각 복원술 덕분에 고치는 와중에 옥새가 깨지거나 균열이 심해지지는 않았고, 예전의 자태를 점점 되찾을 

 수 있었다.

  황금빛 드래곤을 잡고 찍는, 권위로 가득한 도장의 재현!

  해어지고 다 찢어진 청바지를 새것처럼 고쳐 놓은 수준이었다.

-조각품을 복원하셨습니다.

조각 복원술의 스킬 숙련도가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오래된 조각품을 복원하여 예술 스탯을 3 얻었습니다.

  오래된 골동품치고는 말끔한 모습이었지만, 무언가 엄청난 조각품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성공인가?"

  위드는 옥새를 보면서 찜찜한 기분을 감추기 어려웠다. 김치 없이 밥을 먹는 것처럼 뭔가 결정적인 부분이 빠져 있

 었다.

"감정!"

『알 수 없는 황제의 옥새 : 내구도 24/30.

  베르사 대륙의 역사와 함께했던 귀한 옥새.

  실력의 한계를 짐작하기 어려운 조각사가 만들었다.

  믿음직스러운 조각사가 복원을 했지만, 세월의 한계로 인해 예전의 수준으로는

  돌아오지는 않았다.

  예술적 가치 : 43,100.

  옵션 : 기품 +95.

카리스마 +55.

병사들의 충성심과 사기의 최대치를 20% 증가시킴.

소유자의 육체에 해로운 모든 마법들에 대한 저항력 55%.

귀족들과 기사들을 주눅 들게 만들 수 있음.

"복원이 완전히 되지는 않았군."

  옥새의 부족한 부분만 채워 넣느라, 조각품의 느낌을 되살리는 데에 무감각했을지도 모른다.

  오래되고 파손이 심한 조각품을 완전하게 복원하기 위해서는 게이하르 황제의 입장을 헤아려야 했다.

  아예 다시 만드는 것처럼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했다. 예술품을 고장 난 자전거 고치듯이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황금 드래곤은 제국의 권위와 통치력을 상징한다. 게이하르 황제가 막 만들었을 때 이 옥새는 밝은

빛을 뿌렸지."

  작업을 재개하면서 위드의 손놀림은 더욱 신중하고 느려졌다.

"황금 드래곤을 통째로 다시 만든다고 생각해야 해. 완전히 예전과 똑같은 형태로, 그리고 제국의 찬

란함을 보여 줄 수 있도록 표현해야 한다."

  조각술은 재질에 굉장히 민감하다.

  거친 암석을 바탕으로 조각을 하면 투박한 자연미가 생기고, 대리석이나 청동으로 만든 조각품들은 재질이 매끄럽다

  작품에서는 조각한 물체에 대해 표현상으로 결정적인 차이를 줄 수 있었다.

  황금은 무르고 약한 성질 탓에 조각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재료였다. 가격도 비싸서, 완성된 조각품에 금칠을 하는 

 정도로 타협을 보는 경우도 많다.

  완성된 황금 조각품은 귀금속 특유의 광채와 재질 덕에 더없이 아름답지만 흔히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게이하르 황제가 제국의 상징을 황금으로 만든 것에는 이유가 있어."

  입체로 표현하는 모든 게 조각품이라면, 필연적으로 빛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

  대체로 건축에 쓰이는 조각품들은 많은 빛을 받아들일수록 장엄하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바위를 이용해 동

 물이나 사람을 조각해 놓은 일반적인 조각품들은 너무 밝은 곳보다는 실내에 놔두는 편이 낫다.

  조각품에 빛이 어디서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느낌이 되기도 한다.

  밝음과 어둠까지 감안해서 만드는 것이 훌륭한 조각사, 빛을 터득한 조각사인 것이다.

  황금빛 드래곤은 태양 같은 권위를 가진 빛을 지배하는 조각품이었다.

"빛의 조각술. 황제의 권위를 만천하에 뿌리는 조각품이다!"

  황금빛 드래곤도 역시 빛의 조각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위드도 빛의 조각술을 사용하면서 옥새를 복원해야 했다. 조각품의 고유한 빛을 되찾아 주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손

 놀림이 더욱 느려졌다.

  손길이 닿는 부위마다 역사 속에 사라졌던 제국의 영광을 되살리듯이 황금빛 드래곤이 빛무리를 뿌려 낸다.

  찬란한 아르펜 제국의 영광, 황금빛 드래곤의 부활.

  위드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작품을 복원했다.

띠링!

-알 수 없는 황제의 옥새를 복원하셨습니다.

아르펜 제국의 옥새!

  전 대륙의 지배자를 상징하던 물건이 긴 시간을 되돌려서 다시금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옥새를 복원함으로 인해서 조각술 스킬 숙련도가 3% 상승하셨습니다.

조각 복원술 스킬이 중급 8레벨이 되었습니다.

손재주 스킬 숙련도가 9% 상승하셨습니다.

예술 스탯이 37개 올랐습니다.

『대륙의 지배자의 도장 : 내구도 38/60.

  베르사 대륙의 지배자가 가지고 있던 옥새.

  조각술의 정점에 선 자가 만들었다.

    옥새에 남아 있는 흔적을 통해서 오래된 것들을 추억할 수 있을 듯하다.

  예술적 가치 : 49,400.

  옵션 : 명성 +3,000.

기품 +105.

명예 +60.

카리스마 +70.

황제의 권위 사용 가능.

병사들의 충성심과 사기의 최대치를 25% 증가시킴.

소유자의 육체에 해로운 모든 마법들에 대한 저항력 60%.

귀족들과 기사들을 주눅 들게 만들 수 있음.

기억력 좋은 황금새가 찾아옴.     』

-역사적 보물을 소유함으로써 스탯이 생성됩니다.

스탯 기품이 생성되었습니다.

『기품 : 왕족이나 귀족, 기사 들이 가지는 품위입니다.

  귀족 사회에서 기품은 대단히 중요하며, 주민들에게도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민들의 세금 납부에 대한 불만을 줄여 줍니다.

  레벨업이 될 때마다 스탯을 투자할 수 있습니다. 주민들의 요구 사항을 현명하게

  처리하거나 국왕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을 때에도 오릅니다. 보물과 예술품을

  많이 보유하거나, 성과 별장을 건축해도 올릴 수 있습니다.

  새로운 스탯을 얻었지만, 위드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 힘과 민첩에만 모든 스탯 포인트를 분배하는 방식을 그대로 유

 지할 작정이었다.

  기품 스탯은 옥새를 제외하고도 여러 무기나 방어구에 적용되고 있어서 딱히 올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기품도 식후경이지. 먹고살 만해진 다음에야 기품 같은데 관심이 생기는 거야."

  그리고 다시 위드의 눈에 황제의 도장에 간직되어 있는 영상이 흘러들었다.

  번성한 아르펜 제국!

  대리석으로 된 아름다운 신전들이 세워져 있고,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다.

  조각품으로 만들어진 생명체들이 일을 하면서 인간들의 업무를 분담해 주었다.

  창을 들고 있는 조류가 군사가 되어서 몬스터를 퇴치했고, 큰 짐승들이 땅을 갈고 씨앗을 뿌렸다.

  하지만 그 대가로 인간들은 나태하고 게을러졌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고 늙어서도 노세."

"여기 술 가져와, 술!"

  아르펜 제국의 수도에서는 대낮부터 고주망태가 되어 버린 인간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게이하르 폰 아르펜 황제의 통치가 너무도 훌륭하다 보니 벌어지게 된 일!

  인간들의 삶이 편해지면서 검술과 마법, 학문이 퇴보하게 되었다. 조각 생명체들은 날로 학대와 착취를 당하고, 비

 참하게 부려지고 있었다.

  게이하르 폰 아르펜 황제는 슬픈 결단을 내렸다.

"내가 만든 생명체들이여!"

  아르펜 제국의 전역에 있던 조각 생명체들이 그의 명령을 기다렸다.

"너희에게는 인간들의 말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없다. 누구의 명령도 따르지 말고 스스로의 자유를

가져라!"

  조각 생명체들에 대한 해방 선언!

  게이하르 황제가 죽고 난 이후로, 조각 생명체들은 누구의 명령도 따르지 않았다.

  국경을 지키던 조류는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었다.

  조인족들의 국가.

  천공의 도시 라비아스에서 봤던 조인족들의 선조가 놀랍게도 조각 생명체였던 것!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크나 트롤, 오우거처럼 흔한 몬스터가 아니라, 정글이나 깊은 숲에서 살아가는 기기묘묘한 생김새와 색채를 가진

 아름다운 몬스터들. 그들의 선조들 상당수가 조각 생명체 출신이었다.

  인간을 피해서 사는 조각 생명체들이 정글이나 동굴 속에서 마주쳤다.

"너 출신이 어디야."

"훗. 게이하르 황제께서 35세에 만들었거든."

"까불지 마. 난 25세에 제작되었어."

"선배님,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

  해병대 기수를 능가하는 엄격한 선후배 체제!

  조각 생명체들은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베르사 대륙에서 조화를 이루었다.

  게이하르 황제가 만든 조각 생명체들의 일부는 몬스터로 불렸다. 영역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인간

 의 침범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들과의 분쟁도 벌어지게 되면서 멸망하거나 혹은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인간들 중에서는 몬스터를 만든 게이하르 황제를 원망하는 소리가 자연히 커지게 되었다.

  베르사 대륙을 통일한 영광스러운 아르펜 제국도 조각 생명체들이 떠나가고 나니 빠르게 몰락했다.

  그 후로 게이하르 황제와 조각술이 매도당하고, 역사서에서도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게 된 것이다.

  엄청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대부분의 조각 생명체들은 그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깊은 동

 굴이나 바다, 하늘에서는 인간들을 피해서 여전히 생존하고 있었다.

  위드는 두 번째로 나온 영상을 보고 가볍게 몸을 떨었다.

"조각 생명체들이 몬스터의 원조라니......"

  몬스터의 일부에 국한되었을 뿐이지만,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조각술이 엄청난 지탄을 받을 것은 분명한 일!

  조각사에 대한 경계심이 커질지도 모른다.

  아직까지만 하더라도 조각사에 대한 인식은 좋은 조각품을 만드는 정도에 그치고 있었다.

  위드는 억지로 입 꼬리를 올리며 썩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굳이 알려질 필요는 없는 사건이군."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야 좋은 것은 아니다.

  때론 역사 속에 묻어 둬야 할 진실도 있는 법.

  게이하르 황제가 수많은 조각 생명체들을 만들었고, 그들 일부가 자유를 얻어 몬스터화했다고 해도 사실 끔찍해할

 만한 일은 아니다.

"나쁘게만 볼 일이 아니야. 이게 알려지지만 않으면 되니까."

  우유를 다 마시고 나서 유통기한이 스무 날이나 지난 것을 봤을 때에도 위드는 웃었다.

"괜찮아. 알고 먹는 것보단 낫잖아."

  사약도 모르고 먹으면 한약!

  남들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조각사가 비난받을 일은 없다. 다른 조각사가 이 사실을 알더라도 역시 입을 다물 것이다

  이거야말로 동업자 정신!

   음머어어어어.

  어느새 영주의 방으로 들어왔던 누렁이가 가늘고 길게 울었다.

  목격한 소가 있었지만 입막음은 쉬웠다.

"정력 보강을 위한 약초 두 뿌리 줄게."

  고마움에 금세 머리를 비벼 대는 누렁이였다.

  주인을 닮아서 뇌물이나 보상에 약했던 것이다.

  위드는 생각보다 베르사 대륙에 조각술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고 내심 많이 놀랐다.

"조각술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알게 되는 배경들이 굉장하군."

  간단한 조각술 퀘스트들이야 스킬의 숙련도를 올려 주고 돈과 같은 약간의 보상 정도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난이도가 높고 모험이 필요한 퀘스트들을 진행하다 보면 조각술이 베르사 대륙의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조각술 스킬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또한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인류의 역사에도 조각술은 많은 기여를 하였다.

  원시시대에는 사냥감을 조각하여 용기를 북돋기도 했고, 선대로부터 사냥법을 전수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제작했다.

  조각술은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모든 것들의 근본이 되었다.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예술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베르사 대륙에서 이 정도의 위치라는 게 새삼 놀라운 것 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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