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본사 방문]
KMC미디어의 간판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베르사 대륙 이야기.
사냥터 정보와 던전 발견, 상인들이 취급하는 교역품의 시세 변화,
숨겨진 종족이나 전설에 대한 소문, 유명한 유저나 퀘스트 성공에 대해서도
알려 주었다.
최근 들어서는 중앙 대륙의 전쟁에 대한 소식들을 빠르게 전달했다.
"티봇의 언덕 부근이 제니아 마법사단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메이펠 길드에서는
용병들을 구해서 막으려고 했지만 전력 차이가 너무 커서 결국 수비에 실패했습니다.
신혜민씨, 전투 동영상이 입수되었다면서요?"
"네. 현재 시간으로 2시간 전에 끝난 티봇 언덕 공방전을 급한 소식들을 전하고
잠시 후에 보여 드리겠습니다. 병사들까지 대거 동원도니 격렬한 전투였다고 하네요."
"마법사를 좋아하는 분들은 기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쟁이 활발하게 벌어지면서 용병이나 병사 들까지 투입되는 큰 규모의 전투가
자주 일어났다.
길드들의 흥망성쇠가 결정되고, 잠들어 있던 영웅들이 일어나는 시대였다.
"헤르메스 길드는 완벽하게 하벤 왕국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오주완 씨,
반헤르메스 길드 연합이 항복을 했다죠?"
"철혈기사단과 고독한용병, 적마법사 들로 이루어진 반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연속된 전투의 패배, 소속 유저들의 이탈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헤르메스 길드는 현재 하벤 왕국의 169개 성 중에서 147개를 점령
하고 있습니다."
"22개는 어떤 곳인가요?"
"헤르메스 길드의 동맹 길드들이 있는 성들입니다. 세력의 차이가 워낙 크니 사실상
부하 길드라고 불러도 무방하겠죠. 하벤 왕국을 완전히 장악한 헤르메스 길드는
대대적인 건국식을 개최할 계획입니다."
"건국식이라니, 처음 이루어지는 행사로군요. 궁굼해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성이나 마을의 명성처럼 국가 명성이란 것도 있는데, 외교나 내정의 여러
분야에서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합니다. 건국식이 국가 명성에 주는 영향이
매우 크다네요."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많은 준비를 했겠는데요."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중앙 대륙을 떠도는 악단들을 초대하여, 수도 아렌 성에서
일주일간 파티를 연다고 합니다."
"참가 자격은요?"
"헤르메스 길드에서 아직 새롱누 국가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습니다만, 현재의
하벤 왕국 유저들은 모두 참석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자리가 되겠군요."
왕국 전체의 유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자리.
유저들이나 경쟁 길드들에 대대적으로 과시할 수 있는 자리가 될것이기 때문에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더더욱 그들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성대하게 치를 것이다.
KMC미디어를 비롯해서, 로열로드와 관련된 모든 방송사들이 헤르메스 길드의 건국식을
중계하기로 결정했다.
"건국식에서 왕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누구인지 밝혀졌습니까?"
"입수된 소식에 의하면 바드레이라고 합니다."
바드레이는 최고의 명성과 권위,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한 국가의 왕이 되는 것이다.
"헤르메스 길드는 이번에 더욱 날개를 단 셈이 되겠네요."
"물론입니다. 하벤 왕국을 지배함으로써 그들은 명실공히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무조건항복을 결정한 반헤르메스 길드는 어떻게 되었나요?"
"그간의 적대적인 태도를 버리고 헤르메스 길드의 휘하로 들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일부 길드들은 다른 왕국으로의 이전을 준비 중입니다."
"얼마 전에 지골라스에서 실추되었던 명예를 완벽하게 복구하게 되었네요."
"그렇습니다. 소속이 없던 고레벨 유저들도 헤르메스 길드에 많이 가입을 하고 있습니다."
"하벤 왕국의 상황은 이렇게 정리가 된 것 같고, 다른 지역의 전투는 어떤가요?"
"여전히 교착 상태입니다."
하벤 왕국을 제외한 다른 왕국들에서는 전쟁이 계속 벌어 지고 있었다.
밀리던 약소 길드들이 연합을 맺고 전선을 확대했다. 또한 고레벨 유저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면서, 명문 길드들의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축제가 끝나고 난 후에, 강림하는 일곱 천사의 조각품이 예술 회관에 들어가게 되었다.
조각술 마스터 데이크람이 만든, 베르사 대륙의 보물. 가히 성물과도 비견도리 수
있는 훌륭한 조각품이었다.
띠링!
강림하는 일곱 천사상이 모라타 예술회관에 전시되게 되었습니다.
조각품이 지역의 조각술에 선풍적인 대유행을 선도합니다.
지역의 문화발전 속도를 5% 더 빨리 증가시킵니다.
문화적인 영향력을 증가시킵니다.
예술의 부흥을 이끌며, 관련 예술계에 종사하는 이들의 명성이
증가 합니다.
-모라타가 조각 예술품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지역 명성이 증가합니다.
천사의 축복에, 스탯향상 그리고 모라타에 있는 사제와 성기사 들의 신앙심까지
올려 준다.
모라타에 있는 유저들은 예술 회관으로 몰려들었다.
"이걸 지골라스에서 가져왔다지? 미스릴을 조각하다니, 조각술 마스터의
작품은 정말 믿기지가 않네."
"위드의 실력도 이 정도는 되지 않을까?"
"아직은 무리일 거야. 유저 중에서 조각술을 마스터 했다는 사람은 없잖아.
하지만 위드도 작품을 많이 만들었으니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실력임은 틀림 없어."
예술 회관의 일일 관람객들이 3배로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데이크람의 작품을
보며 다들 호평이 자자했다. 모라타를 알릴 수 있는 조각품에, 위드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하나가 더 추가된 것이다.
그리고 위드는 그날로 예술 회관의 공식 입장료를 5골드, 레벨이 100이 안되는 초보들의 경우에는
1골드씩 올렸다.
비단 강림하는 일곱 천사상이 전시되어서가 아니라, 모라타에 있는 예술가들에 의해
예술 회관의 작품들은 날로 많아지고 있었다. 그들이 새로운 조각품들에 도전하고,
입장료수입을 나누어 받는다. 조각사와 화가 들끼리 경쟁까지 붙어서, 작품의
질이 갈수록 향상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의하는 유저들이 많았다.
"우우! 이건 영주의 횡포다. 우리도 문화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게 입장료를 원위치 시켜달라."
"사냥을 나가기 전에 매일 들어와야 되는 예술 회관에서 15골드나 받는 것은 너무하다.
모라타 예술 회관은 그냥 그런 건물이 아니라 사냥의 필수품이니, 가격을 낮춰야
마땅하다!"
"주민들의 뜻을 고려하지 않은 요금 인상은 절대 무효!"
일부 유저들이 예술 회관의 입구에서 큰 목소리로 거세게 항의를 했다.
매일 이용하는 건물의 입장료가 오르는 것은 결코 달갑지 않은 조치 였기 때문이다.
위드는 그러므로 입3장문을 발표했다.
입장료 인상을 최소화하려고 하였으나 원자재 가격 증가와
안정적인 건물 경영을 위하여 물가 상승분을 반영.....
정부에서 지하철이나 전기, 수도세를 인상시킬 때 써먹었던 바로 그대로의
뻔뻔한 논리!
항의는 심했지만, 초보자들은 여전히 별로 오르지 않은 가격인 4골드만 내면 되기에
조용한 편이었다.
한편으로는 항의하는 자들을 오히려 나무라는 축도 있었다. 빛의 탑이나 프레야 여신상을
구경하는 것은 무료였고, 또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고생하고 있다는 예술가 들에 대한
기존의 동정 이론도 상당했던 것이다.
위드가 나타나기 전만 해도 조각사란 직업은 암울 그 자체 였다. 어디서도 구박덩어리였고,
식당에서도 가장 싼 음식들만 먹거나 심지어는 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모습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애써 작품을 만들어도, 제대로 거래되는 시장이 마땅히 없었다.
전투 계열 직업들은 그에 비하면 훨씬 편했던 것이 사실이기에, 입장료가 오른 것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예술 회관에 더좋은 작품들이 채워지게 되면
전투에도 크게 도움이 될 테니 화만 낼 일도 아니었다.
그러한 고정관념을 이용하여 입장료를 늘려 착취의 기반을 더 단단하게 다진 위드!
"역시 요금 인상은 과감하게 해야 돼. 1골드씩 깨작깨작 올려서야 언제 떼돈을 벌수 있겠어."
모라타 유저들의 레벨은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널린 게 사냥터라서, 중앙 대륙 출신이
아니더라도 레벨 100이 넘는 유저들이 금방 많아질 것이다.
세금도 괜히 올리지 않다가 한꺼번에 올리면 더 욕을 먹는다.
잊힐 만할 때쯤이면 올려서 적응을 시켜야 되는 것이다.
한국 대학교의 2학기.
바람이 쌀쌀해지고 캠퍼스에는 이른 첫눈이 내릴 무렵, 가상현실학과에서는
이례적으로 로열로드를 만든 주식회사 유니콘 사의 견학 일정이 잡혔다.
2박 3일 보사와 연구소를 방문해 보고 학교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모든 대학생들이 목표로 삼는 기업.
세계 최대의 수익을 내고 있는 창조적인 회사에서, 한국 대학교와 다른 대학
세 곳의 가상현실학과 1학년드에게 견학을 허용한 것이다.
"2박 3일이나 가서 볼 수 있는 거야?"
"정말 어떻게 생긴 회사인지 너무 궁금하다."
보안을 위하여 언론의 취재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였으니 학생들의 기대심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견학 비용은 전액 로열로드를 만든 유니콘 사에서 책임진다고 했다.
이현은 참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놓고 원서 쓰면 취직시켜 주지도 않을 거면서!"
초등학생들을 제철소에 데려가는 것보다도 훨씬 잔인한 일이었다. 막상 취업이
안 되면, 그저 회사 자랑에 불과한 것이 아니던가.
유니콘 사에서는 최고의 박사급 인재들, 그리고 경력이 있는 인재들 위주로만
채용했다. 가상현실학과 자체가 생긴지 얼마 안 되다 보니 졸업을 한다고 해서
취직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은 모른다.
"이래 놓고 견학을 시켜 줬다고 뉴스에 내보내고, 일자리 창출이니 뭐니... 말만 많겠지."
이현은 견학 일정에서 빠지고 싶었다.
2박 3일 동안 로열로드를 하지 못하면 금전상의 손해가 크다.
북부에 있는 동안 크게 실감은 하지 못했지만, 베르사 대륙은 대격변기를 맞이하고있었다.
모라타에서 돌아와서도 영주로서의 업무를 비롯하여 밀린 일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경학 일정에 2박 3일간이나 따라가야 하다니!
"이건 노예야.'
이현ㅇ느 강의가 끝나고 나서 번쩍 손을 들었다.
"이현 학생, 질문 있나요?"
수업 시간에는 한 번도 질문을 한 적이 없던 이현이었기에 주종훈 교수는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집에 바쁜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견학 일정을 빠져도 될까요?"
이현은 학회 일정이나 토론으로 수업이 길어지기만 하면 각종 이유를 대고 빨리 빠져나왔다.
예외도 한두 번이지, 이젠 상습범이라는 심증이 굳어진 상태!
교수는 잘라서 말했다.
"안 됩니다."
"제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견학도 수업입니다. 참석하지 않으면 방학 중에 보충 학습을 실시할 겁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견학에 참여하게 되고 만 이현이었다.
한국 대학교의 학생들이 타고 있는 버스가, 유니콘 본사가 있는 고층 빌딩 앞에 정차했다.
다른 대학교 학생들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유니콘 사에서는 총인원 230명의 학생들에게 견학을 허가 한 것이다.
이현은 버스에서 내려서 본사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여기도 오랜만이군."
명예의 전당에 올라갈 때에 왔던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조회 수에 따라서 홍보비를 받았지만, 그 돈은 통장으로 바로 들어왔다.
그래서 이현의 유니콘 사에 대한 인식은 아주 좋은 편이었다.
"칼같이, 입금 일자를 하루도 어겨 본적이 없는 정직한 기업."
돈 잘 주면 최고의 기업이었다.
홍보부 직원들을 따라서 학생들은 본사에 있는 여러 부서들을 돌아보았다.
회의를 하고 있거나 세계 각국의 자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멋진 모습들.
게다가 직원들을 위한 시설!
휘트니스 센터, 수영장, 영화관이나 음악 감상실, 캡슐 룸은 기본이었다.
식당을 안내하던 홍보부 여직원이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전문 요리사가 신선한 재료들을 이용하여 직원들의 식사를 만듭니다."
호텔 수준의 구내식당까지 있었다.
"출산휴가는 있나요?"
여학생들이 질문을 했다. 아무래도 직장 생활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문제가
여성들에게는 큰 애로 사항이었다.
"1년입니다. 명목상으로만 있는 휴가가 아니라, 규정상 출산을 하게되면 1년간
유급 휴가를 받게 됩니다."
출산휴가도 넉넉했고, 자녀의 대학 등록금까지 챙겨 주며, 1년에 연차는 40일을
쓸수 있었다.
로열 로드에서 위드가 누렁이를 부려 먹는 근로조건과는 완전히 천지 차이였다.
최상준이 홍보부 여직원을 향해 물었다.
"저기... 유니콘 사의 신입 사원 연봉은 얼마나 됩니까?"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예쁜 여직원을 향해 몰렸다.
"업부에 따라서 차이가 있네요. 구체적인 연봉은 회사 규정상 외부에 공개하지
않습니다. 단, 매년 상여금과 초과 이익금 배분을 해 주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연봉 문제는 말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학생들은 뉴스를 통해서 유니콘 사의 신입 사원들이 받는 연봉이 엄청
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 해 수익만 해도 천문학적인 기업이고, 직원들을 위해 이런 복리후색을
갖출 정도라면 돈도 많이 줄 것이다.
이현은 좀 더 확실한 근거까지 갖고 있었다.
명예의 전당에서의 계약 이후로, 유니콘 사에서는 명절 때마다 그에게 갈비 세트와
과일들을 보내 주었다. 낱개로 포장된 배, 백화점 영수증이 생생하게 붙어있는
갈비 세트에서도 유니콘 사의 재력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돈이 얼마나 많았으면... 이 정도라면 회사 화장실에서도 엠보싱 화장지를
쓰지 않을까?"
정말 차별화된 세계적인 기업의, 직원들에 대한 배려라고 할수 있다.
이현이 지난번에 만났던 장윤수 팀장은 홍보부 내에서도 중장기 프로젝트를
전담하고 있기 때문에 만날 수 없었다.
이현을 알아보는 직원도 없었다.
유니콘 본사의 구경은 당일로 끝!
다음 날은 공장과 연구소를 방문하는 일정이 잡혔다.
한국 대학교 학생들은 리조트 호텔로 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숙박했다.
다음 날도 수학여행을 온 것처럼 정해진 일정에 따라서 직원의 설명과 함께 이동했다.
"이곳은 캡슐의 핵심 시스템을 만드는 공장입니다."
로봇들이 조립과 테스트를 동시에 했다. 팔과 기본적인 관절들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걸어 다니면서
짐을 옮기고 설비들을 동작 시켰다.
"각종 공정에 투입되는 로봇들은 유니콘의 산하 회사 노드에서 직접 제작됩니다."
노드.
청소용 로봇에서부터 맹인 안내용 로봇이나 공업용 로봇까지 다양하게 만드는 회사다.
회사의 규모는 당연하게도 어마어마한 수준!
대기업 2~3개를 합쳐 놓은 것보다도 매출액이 많고, 순이익 규모는 훨씬 높았다.
이현은 노드라는 회사에 강한 적개심을 가졌다.
"내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어."
공사판에서 일할 때에도 로봇들이 많이 참여했다. 무거운자재 운반은 물론이고,
빌딩 창문 닦기와 같은 위험한 분야도 로봇으로 적극 대체된 것이다.
그런 노드 사조차도 유니콘의 자회사에 불과할 뿐. 매달 막대한 현금 수익을
거두는 유니콘에 비하면 약소한 수준이다. 사실 9년 전 유니콘 사에서 인수한
이후에 로열 로드가 출시되기 전까지, 노드 사에서는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들이지
는 못했다. 유니콘 사의 첨단 제어 기술력이 결합되었기에 지금의 발전도
있다고 봐야한다. 현재는 신소재나 전자, 중공업, 화학, 유통 그리고 금융에
도 손을 뻗치고 있는 기업이 유니콘이었다.
완벽한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공격적인 확장으로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있는
기업 제국.
이현은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결국 회사 자랑이나 하려고 불렀던 거지. 이런 식으로 내 아까운 2박 3일이 날아가
버리다니."
견학을 따라다니는 동안 사냥을 못 하니 일당을 날리는 것과 같은 셈이 아닌가.
유니콘 사의 홍보부 직원들은 열심히 상세하게 안내를 했지만, 그저 다 자기 자랑
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공장과 연구소는 가까운 곳에 붙어 있었다.
연구원들에게는 바다가 보이는 빌라가 숙소로 지급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걸어서
이동한 연구소 또한 본사 못지않은 각종 편의 시설들에 규모만 조금 작을 뿐이었다.
"와...."
"정말 이런곳에서 일해 봤으면 좋겠다."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시설이었다.
주차장에 즐비한 고급 차들만 봐도 연구자들의 수준을 대충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연구소의 내부는, 아쉽지만 공개되어 있지 않아서 들어가 볼수 없겠네요."
본사 직원들조차 연구소의 시설 내로 들어갈 수는 없다고 한다.
둘때 날의 일정도 모두 종료.
"온르은 유니콘 타운의 호텔에서 숙박을 하게 됩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편하게
자유 시간을 가지시면 됩니다."
수학여행을 갔을 때처럼 설레는 분위기였다.
"체운대와 십이 대 십이로 미팅할 남자들 모여!"
"여자들은 다른 학교의 남학생들과 만남의 장을 마련하게 되니 모두 남아 주세요."
한국 대학교와 다른 학교의 과 대표들끼리 미팅 계획을 진행했다.
이현은 그저 귀찮았으므로 일찍 자기 위해 호텔로 들어갔다.
다음날 이른 새벽.
이현은 버릇처럼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개시했다.
"공기가 나쁘지 않군."
나무가 많은 지역이라 그런지 아침 공기가 상쾌했다.
연구원들이나 직원들도 아침 운돌을 위해 나와서 체조 등으로 몸을 푸는
것이 보였다. 외국 출신의 과학자들도 많이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현이 가볍게 호텔 주변의 산책로를 달리고 있을 때 멀리서 할아버지가
혼자 벤치에 멍하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이현은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지금 뭐 하세요?"
"가던 길 계속 가게."
"할아버지가 심심해 보여서요. 새벽부터 누구 기다리세요?"
"너 따위와 할 말 없으니, 내게 말 걸지 말라고."
이현은 노인들을 많이 겪어보았다. 나이와 고집이 비례하는 것처럼, 자존심 때문에
곧이곧대로 말을 못한다.
"전 아침 운동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잠깐 놀아 드릴까요?"
"허튼소리 하지 말고 사라져."
"무슨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으세요?"
"앉지 마."
이현은 벤치의 옆자리에 앉았다.
권위적이고 냉정하기 짝이 없는 할아버지에게서 쓸쓸함을 느껴서, 잠시나마
말벗을 해 주기로 한것이다.
그리고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자식이 없나? 외로워 보이는 할아버지로군.'
'이놈을 어떻게 가게 하지?"
둘은 달느 생각을 하며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먼저 앉은 자리다. 한참이나 어린 이현 때문에
피하고 싶지 않았다.
나무에 잎이 몇개 남지 않았다. 그나마도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있었고,
그 광경을 오랫동안 보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인간들을 조롱하며, 자신만의 성을 쌓으면서 살아온 천재 과학자 유병준이
할아버지의 정체!
그는 여신 베르사를 통해 이현의 얼굴을 알았다. 벤치에 앉기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알은척은 하지 않았다.
유병준의 입장에서는 회상에서 어쩌다 만나게 도니 수많은 유저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스스로는 모르고 있겠지만, 유병준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말 중의 하나에 불과할 뿐.
참다 참다 결국 유병준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인생이 무엇일까?"
유병준이 입고 있는 옷은 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지급되는 평범한
복장이었다. 연구소에 있는 인원은 워낙 많았고, 그의 정체를 하는 유니콘의
중역이나 과학자는 극소수 였다.
이현은 유병준의 정체를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편하게 이야기를 들어 볼 기회라고 생각하고 질문을 한 것이다.
이현은 할아버지의 말벗이 되어 주기 위해서 무언가 심오한 대답을 떠올리려고 했다.
유병준은 그 사실을 깨닫고는 말했다.
"편하게, 그냥 떠오르는 것을 바로 말해."
이현은 아주 단순하게 대답했다.
"몰라요. 그냥 사는 거죠."
"....."
"돈 벌고, 먹고사는 게 인생이잖아요."
이현에게 우문현답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정말 단순명료하기 짝이 없는 답변이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나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에는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는가?"
"가을이나 겨울에는 그냥 추운 거죠. 옷을 두껍게 입어야 돼요. 내복도 입으면 좋고."
"젊은 놈들은 패션 때문에 내복을 안 입는다던데."
"그냥 따뜻한게 사는 게 최고죠."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이현은 두 번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돈요."
"돈이라면...명예나 친구, 가족은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남들이 나를 치켜세워 주는 명예가 뭐가 중요한데요? 돈이 많아야 친구를 만나고
가족들을 돌볼 수 있잖아요.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게, 그저 바라만 보아야 되는 게
너무 많아요. 가족은 이미 있는 거지만, 지키기 위해서라도 돈은 계속 모아야 되니까요."
유병준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역시 돈밖에 모르는 놈이군.'
더 이상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이현도 그저 벤치에 계속
앉아 있었다.
슬슬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져 간다.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아침 식사를 놓칠 수 없었기에 이현은 벤치에서
일어났다.
"추운데, 할아버지도 빨리 들어가세요."
"내 신경은 쓰지 말고 갈 길이나 가."
호텔로 몇 걸음 옮기던 이현이, 측은지심이 들었던지 돌아 보았다.
"여기, 따뜻한 코코아라도 뽑아드세요."
그러고는 200원을 꺼내서 유병준 손에 쥐여 주었다.
유병준은 태어나서 이런 대접을 처음 받아 봤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다.
한국 대학교의 학생들이 견학을 오는 일정에 대해서 몰랐고, 또 그중에 이현이
섞여 있을 줄도 알지 못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산책을 하지 않았다면 서로 만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허허...정말 어이가 없군."
유니콘을 배후에서 일구어 내면서 수십 년간이나 숨어서 살아왔다.
유병준의 앙상한 체격은 다분히 동정심이 갈 만한 모습이었지만, 겉으로 흐르는
차가움이 다른 사람들을 가까이 오지 않게 만들었다. 그에 대해 아는 과학자나
유니콘의 중역들은 그가 무서워서 함부로 얼굴도 쳐다보지 못한다.
하지만 이현은 그냥 불쌍한 노인을 대하듯이 동전을 주고 간 것이다.
'자판기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마셔 본 게 20년도 넘었나.'
유병준은 불현듯이 코코아를 마시고 싶었다. 그리고 자판기를 보았다
코코아의 가격은 300원이었다.
2박 3일의 견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이현!
"이제 주말이로군."
입가에는 산뜻한 미소가 그려졌다.
청소와 빨래를 하고 반찬을 만들어 놓은 후에 컴퓨터를 켰다.
농성을 하던 유레파 길드의 최후
탐욕, 그들의 진군은 어디까지인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마려 버린 중앙 대륙. 끊이지 않는 분쟁들이
새로운 전설을 만든다
로열 로드와 관련된 각종 특집 프로그램이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중앙 대륙에 전쟁이 엄청난 규모로 벌어지고 있나 보군."
명예의 전당에도 퀘스트나 사냥, 혹은 풍경에 대한 동영상이 아니라 거의 전부가
전쟁에 관한 것들만 올라왔다.
이현은 몇 개의 동영상을 짧게 틀어 보았다.
대군이 물밀듯이 요새를 향해 진격하고, 바퀴를 굴리면서 공성 무기들이 접근한다.
이에 요새에서는 마법과 화살로 극렬하게 저항한다.
영웅적인 저항으로 격퇴시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침략길드에 의하여 함락당했다.
승산이 없다면 애초에 쳐들어오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준비를 한
덕분이었다.
-전쟁을 피하려면 어디로 가야하나요?
-몰드룬 지역의 상인들은 모두 조심하세요. 보급이 끊긴 성주의 군대가 상인
들의 운송 행렬까지 약탈하고 있습니다.
-던전들에 대한 지배권 강화. 중앙 대륙에서 던전 입장료가 오르고 있네요.
-모르셨어요? 벌써 2배나 껑충 뛰었습니다.
게시판도 전쟁 소식들로 난리였다.
병사를 모으는 글들도 많았다.
-전투와 승리를 원하는 이들이여, 베인 길드로 오라! 능력에 맞는 대우를
보장합니다.
-아직 소속이 없는 분들 우대합니다. 고레벨 유저에게는 길드 가입 시에 장비고
맞춰 드림.
중앙 대륙에서는 병장기의 거래 가격이 2배 가까이 폭등하고, 다른 전쟁 물자들의
가격도 천정부지로 뛰고 있었다.
무기류를 교역하는 상인들에게는 황금 시장이 열렸다. 대장장이와 재봉사
들에게도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하지만 역으로, 상인들의 운송 행렬이 길드들에 털려서 재료가 조달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현은 다크 게이머 연합으로 접속해 보았다.
의뢰 게시판에는 전투에 도움이 도리 만한 용병들을 구한다는 글로 가득했다.
정보 게시판에도, 각 지역의 전투 상황이나 길드별 전력에 대해 밝혀진 정보들이
빼곡했다.
중앙 대륙의 성과 마을, 요새 등을 차지하고 있는 길드들은 굉장히 많다.
명문길드들이 워낙 강성하다고는 하나, 소위 말하는 풀뿌리 길드들도 숫자가 엄청나다.
각 길드마다 최소 1~2명씩은 내놓을 만한 고레벨 유저들이 있었고, 길드의 크기는
작아도 고레벨들로만 이루어진 곳도 있다.
길드들이 뭉쳐서 저항을 하고, 성과 마을을 가지고 있지 않은 길드들도 전투에
참여하면서 전쟁의 규모는 걷잡을 수없이 커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제목:중앙 대륙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결말은?
제목:각 길드들의 우호 관꼐
제목:극비 정보. 하벤 와국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읽어 볼 만한 글들이 여럿 있었지만, 이현은 자신과 당장 관련이 있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아이템 가격도 뛰고 있으니 이 기회에 돈이나 실컷 벌어 놔야겟군."
용병을 구하는 글들은 많았지만 지원자들은 많지않았다.
다크 게이머들은 이틈을 이용하여 알려지지 않은 던전 탐험이나 사냥에 열을 올렸다.
이런 상황에 섣불리 전쟁에 끼어들어 봤자, 허무하게 죽어 버리거나 믿었던
길드에 배신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레벨이나 스킬 그리고 장비는 그야말로
그들의 믿음직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이현을 용병으로 원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들에게 이용당하고 싶지 않았기에
관심 밖이었다.
"이제 데브카르트 대산으로 가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