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인 왕비의 일기장
"이베인 왕비님이 일기를 쓰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디서 그 이야기를……. 왕비님께서 일기를 쓰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데……. 아, 알자스 언니가 말해 주었나요?"
"그렇습니다."
"언니가 보낸 사람이군요. 그리고 보니 알자스 언니와 연락이 끊어진 지도 참 오래되었어요. 왕비님이 일기장에 무슨 이야기를 적었는지는 저도 잘 알지 못해요."
"그러면 그 일기장이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시나요?"
"기억을 더듬어 봐야겠어요."
파비안느는 예전 일을 회상하듯이 잠시 눈을 감았다.
와구와구.
방 안에는 위드가 쩝쩝대며 감자를 먹는 소리만이 한가득 울려 퍼졌다.
다섯 알 정도의 감자를 먹고 났을 쯤에야 파비안느는 다시 눈을 떴다.
"오래전 일이라서 자신할 수는 없지만 왕비님이 머무르던 별의 궁전에는 일기낭이 없을 거예요. 왕비님이 돌아가시기 1달쯤 전에 고향에 다녀오신다며 외출을 하셨거든요. 그 이후로 일기장을 본 적이 없어요. 아마도 어딘가에 숨겨 두지 않았을까요?
-이베인 왕비의 일기장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셨습니다.
위드는 일기장이 있을 법한 장소를 추측했다. 고향에서 자하브와 함께 놀았던 장소에 일기장을 숨겨 놓았으리라.
"그럼 편안히 계시기를."
위드는 찐 감자를 정말로 한 바구니 가득 들고 나와서 세라보그 성의 뒷산을 넘었다.
이베인 왕비가 살았던 마을로 가서 자하브와 조각품을 만들던 큰 나무 아래에 도착했다.
"아마 이곳이겠지."
모험가라면 감지 스킬을 통해서, 퀘스트와 관련이 있는 장소에서는 저릿저릿한 느낌이 온다고 한다. 위드에게는 그런 스킬이 없었으니 직접 땅을 파 보는 수밖에 없었다.
"시작해 볼까?"
삽을 꺼내서 그냥 땅을 팠다.
채광 스킬의 효과로 인하여 삽질을 할 때마다 빠르게 파해쳐지는 땅!
1미터 정도를 깊이 파고 들어가니 나무 상자가 발견되었다.
-이베인 왕비의 상자를 발굴하셨습니다.
-명성이 265 증가합니다.
-발굴품 이베인 왕비의 상자가 모험 경력에 추가됩니다. 발굴가 길드로 가서 보고하면 약간의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위드는 나무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녹슨 열쇠 2개와 작은 손거울, 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별의 궁전 열쇠를 획득하셨습니다.
-비밀의 방 열쇠를 획득하셨습니다.
-진실을 보여 주는 손거울을 획득하셨습니다.
-이베인 왕비의 눈물에 젖은 일기장을 획득하셨습니다.
위드는 열쇠부터 확인해 봤다.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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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궁전 열쇠 : 내구력 2/4
이베인 왕비의 궁전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
옵션 : 용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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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닫혀 있는 이베인 왕비의 궁전의 열쇠였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폐쇄된 이후 몬스터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별의 궁전이 열렸다는 말을 아직 들어 본 적이 없으니 아마도 궁전을 열 수 있는 최초의 열쇠가 되겠군. 그러면 다음 물품으로… 감정!"
위드는 이번에는 비밀의 방 열쇠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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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방 열쇠 : 내구력 1/4
어딘가에 있는 비밀의 방을 열 수 있는 열쇠이다.
별다른 점은 알려져 있지 않다.
손상이 심해서 여러 번 사용하기 힘들 것 같다.
옵션 : 4회 사용 시에 파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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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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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보여 주는 손거울 : 내구력 14/25
고귀한 보석 손거울.
특수한 재질로, 신성력이 흐르고 있다.
환영과 거짓을 파헤쳐서 진실로 향하는 길을 안내해 준다.
특정한 장소에서 사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제한 : 살인자나 악인은 사용 불가능.
댄서와 바드, 사제가 착용하면 아이템의 효과가 2배가 됨.
옵션 : 지식, 지혜 +7.
매력 +23.
마나 최대치 11% 증가.
신앙심이 38 증가.
특정한 장소에서 길을 안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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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조금 심상치 않기는 한데……."
위드는 퀘스트 아이템의 냄새를 물씬 맡았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남은 일기장을 열어서 읽었다.
매일 꾸준히 작성한 일기는 아니었다.
1달이나 2달, 필요할 때마다 적은 일기 같았다.
눈물 자국들 때문에 약간씩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읽는 데 지장은 없었다.
1월 16일
왕비보다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
자하브와 함께…
어릴 때처럼… 행복oo 시oo로…….
3월 19일
자하브가 다시 나를 만나러 올까?
그가 조각품을 만드는 광격을 지켜보던 순o들이 가장 행복했다.
어리고 순수하던 아이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4월 7일
자하브를 보고 싶다.
내 마음은 쭉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ooo만 아니었다면 자하브와 행oo게 oo…….
6월 6일
로자임 왕국을 지키기 위하여 믿을 만한 사람을 모으고 있다.
우리는 죽음을 각오했다.
왕비인 나도 그들과 운명을 함께할 것이다.
9월 1일
엠비뉴 교단.
너무 서둘렀던 것 같다.
그들이 나에 대해 알아차렸다.
9월 11일
엠비뉴 교단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첩자 '이올린'이 쪽지를 보내왔다.
나를 죽이기 위해 암살자가 보내졌단다.
마지막으로 자하브를 보고 싶o.
9월 14일
일기장을 그와의 행복한 기억이 남은 곳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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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인 왕비의 죽음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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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등장한 엠비뉴 교단의 이름!
위드는 일기장의 내용을 되새기면서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두뇌 회전은 누렁이의 여물값을 사기 칠 때보다도 빨라졌다. 눈치까지 모두 둥원했다.
'이베인 왕비와 자하브라. 이 연계 퀘스트는 엠비뉴 교단과 이어져 있을 것 같군.'
위드는 자하브를 먼저 만나고 왔다. 그때 얻었던 우호도가 이럴 때 쓰라고 있었던 게 아닐까.
'자하브와 함께 이베인 왕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하여 엠비뉴 교단과 싸우는 것이다!'
북부에서도 과정이나 내용은 다르지만 엠비뉴 교단과 싸운 적이 있다.
왕비의 죽음에 대해 모두 잊어버리고 있을 무렵, 그녀를 사랑했던 한 남자, 그것도 조각사가 엠비뉴 교단에 복수를 하는 시나리오!
'그걸 나는 고기 뷔페에 가서 배고프다며 고기가 익기도 전에 김밥만 다섯 줄을 먹는 성급한 행동을 해 버린 건 아닐까.'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퀘스트가 그를 만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짐작을 했어햐 하는데!'
이런저런 생각들은 많았지만 지금 와서 후회란 크게 의미가 없었다.
위드는 아이템을 수습해서 늙은 시녀 알자스에게로 돌아갔다.
"왕비님의 일기장! 다시 찾게 될 줄은 몰랐어요. 파비안느를 만났나요?"
"예. 만났습니다. 상업 지구 뒤쪽의 골목길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랬군요.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는데도 왕성에서 나가고 난 이후로 연락을 하지 않아서 몰랐어요. 이유는, 왜인지 모르지만 왕비님을 모셨던 시녀들이 하나 둘 목숨을 잃었거든요."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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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있는 수상한 일기장 완료
이베인 왕비의 일기장은 자하브와 행복을 키웠던 땅에 묻혀 있었다.
-명성이 17 올랐습니다.
-경험치를 아주 조금 습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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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의 레벨이 높다 보니 쉬운 난이도의 퀘스트로 얻는 경험치는 미미한 정도였다.
시녀는 일기장을 열어서 읽어 보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왕비님의 죽음에는 이런 비밀이 있었군요. 하지만 이제 너무 늦어 버린 것 같아요."
"네?"
"3달 전에만 오셨어도 좋았을 텐데… 왕실 기사인 이올린님은 몬스터들의 습격에 의해 사망하셨답니다."
"……."
"왕비님이 너무 안타까워요. 하지만 이 일기장을 제외하면 왕비님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증거가 전혀 없으니……. 관련된 사람도 지금은 남아 있지 않네요. 변변치 않게 왕비님을 모셨던 저와 조각사님만이 있을 뿐이니 그들에게 어떻게 복수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띠링!
-퀘스트 일기장의 전달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연계 퀘스트의 중단!
위드에게는 커다란 허전함이 몰려왔다.
'내가 너무 늦게 왔구나.'
이미 로자임 왕국에 엠비뉴 교단이 많이 퍼져 있고, 또한 관련된 사건들도 발생하고 있다. 늦게 도착한 탓에 의뢰가 중간에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그래도 모험가님이 없었다면 저처럼 늙은 것이 평생 궁금증만 품고 있었을 것이에요. 왕비님과 자하브 님은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함께 엮이지 못했고, 결국 이렇게 왕비님의 복수도 하지 못하게 되겠군요."
"……."
"차라리 잘되었는지도 몰라요. 왕비님도 자하브 님도 복수를 하기를 바라진 않으셨을 거예요. 그동안 저의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 고생하셨습니다."
-명성이 13 증가합니다.
위드는 힘없이 늙은 시녀의 집에서 물러 나왔다.
이번에는 삶은 감자도 챙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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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서윤이 물었다.
"이제 모라타로 돌아갈 거예요?"
"아니. 열쇠도 얻었고 여기까지 왔으니 별의 궁전은 가 봐야지."
위드는 왕성으로 가서 열쇠로 이베인 왕비의 별의 궁전을 열었다.
이제는 로자임 왕국의 왕성에도 중간 귀족이나 사무관을 만나기 위해 유저들이 제법 들어왔다. 하지만 이미 폐쇄되어 있는 별의 궁전 근처로 오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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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별의 궁전의 최초 탐험자가 되셨습니다.
혜택 : 명성1,700 증가.
일주일간 경험치, 아이템 드롭률 2배.
첫 번째 사냥에서 해당 몬스터에게 나올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물건 아이템이 떨어집니다.
-별의 궁전에 들어옴으로 인해 용기가 3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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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사냥이나 해 보자."
별의 궁전에는 오래된 예술품들이 보물처럼 숨겨져 있었고, 금붙이들이 숨겨져 있는 방도 있었다.
던전으로는 럭셔리 그 자체!
보통 하급 몬스터들이 나오는 던전을 털어 봐야 청동 정도밖에는 얻지 못했지만, 이곳에는 보물들이 꽤 많았다.
이베인 왕비가 죽은 이후로 버려지고 알 수 없는 저주에 의해 던전이 되어 버렸다는 장소!
별의 궁전에는 원통하게 죽은 시녀, 기사, 병사의 원혼들이 가득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를 흉측하게 생긴 바글이라는 몬스터도 많았다.
"상당히 위험한 던전이군."
위드와 서윤의 수준에 원혼들은 그럭저럭 상대하기가 쉬웠다. 하지만 바글이란 몬스터는 던전에서 엄청난 속도로 돌격해 와서 전투에 돌입하는데, 레벨도 400대 중반 이상일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그래도 몬스터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오지 않아서 그라페스의 던전과 비교한다면 사냥하기가 훨씬 편했다.
"콜 데스 나이트 반 호크, 콜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위드는 토리도와 반 호크를 불러서 서윤과 같이 전투를 했다.
서윤이 없을 때에는 데스 나이트와 반 호크와 함께 광휘의 검술을 쓰면서 조심스럽게 던전의 외곽에서 사냥했다.
"키에에에엑!"
광휘의 검술은 저주 계열의 몬스터들에게는 극상성을 가졌다. 스킬 숙련도가 꽤 잘 오르는 편이었지만 아직 빛의 새에서 다른 무언가가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한 물리력을 가진 바글들은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스킬을 쓰더라도 방패 치기로 밀고 들어오며 뭉툭한 대검을 휘두르는 바글!
위드는 광휘의 검술의 위력이 약해지는 낮에는 세라보그 성의 광장에서 조각품을 만들었다.
"이렇게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나는군."
추억에 빠져서 잠시 사슴과 여우, 토끼의 조각품을 만들었다.
사실 위드가 가장 많이 만든 형태였지만, 조각술의 기본기를 닦게 해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상들이었다.
"쯧쯧, 조각품은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닙니다."
위드가 조각품을 깎고 있는데,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한 유저가 다가와서 말했다.
"예?"
"저도 조각사인데 제가 좀 가르쳐 드릴까요?"
그 유저의 직업도 조각사!
위드가 있는 자리는 광장의 분수대로 가려면 만드시 지나쳐야 하는 좋은 위치라서, 대장장이나 재봉사는 물론이고 특히 조각사들이 많이 앉아서 영업을 했다.
다른 직업의 유저들은 관심이 별로 없겠지만, 로자임 왕국의 세라보그 성은 조각사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장소!
이곳에서 조각품을 만들어서 파는 건 조각사들의 성장법으로 게시판에 올라와서 많은 추천을 받을 정도였다.
"제가 조각술 스킬은 초급 4레벨이지만 사슴이나 여우, 토끼, 늑대는 주 전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 개도 넘게 만들었죠."
"같은 대상을 왜 그렇게 많이 만드셨는데요?"
"로자임 왕국의 조각사들만 아는 비밀 정보인데요, 로자임 왕국이 낳은 불세출의 영웅! 전쟁의 신이며 대조각사 위드 님이 그러셨거든요."
위드의 눈빛에 처량함이 잔뜩 담겼다. 그리고 비로소 주변을 돌아보며 다른 조각사들을 살피니 모두 여우 등을 조각하고 있었다.
그를 따라서 똑같이 성장하려는 안타까운 희생양들이 가득했다.
사실 그래도 세라보그 성에서 기념품처럼 팔리고 있으니 조각사들의 주머니 사정은많이 나아지기는 했다.
화가들은 여전히 물감값을 대기 위하여 조각사들보다 더욱 많이 허덕여야 했다.
"일반인들은 모르겠지만 조각술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길입니다."
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슴, 여우만 계속 만들고 있는다면 정말 밑도 끝도 없는 제자리걸음일 것이다.
"대부분 며칠 하지 못하고 포기해 버리곤 해도, 위드 님처럼 되려면 꼭 거쳐 가야 할 과정이지요."
"그래서 도시에서 기초적인 조각품들을 만들다가, 그 이후에는요?"
"나중에 조각사 1,000명이 모여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만들 계획도 세우고 있답니다."
위드가 잘못 선보인 노가다의 길을, 후배들이 고스란히 더 넓혀 가면서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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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은 정득수 회장을 만났다.
"서윤 씨가 저를 거들떠도 안 보는 것 같습니다. 너무 무관심해서 뭐라고 말을 걸 수도 없고.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외출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데이트를 신청한다고 해서 서윤이 받아 줄 리도 만무했다.
서서히 다가가는 방식을 취해야 하는데 서윤에게는 빈틈이 없었다. 오히려 박진석만 더욱 안달을 냈다.
"그러면 로열 로드를 해 보는 게 어떻겠는가?"
"로열 로드요?"
"내 딸이 로열 로드를 많이 하니 그 안에서 만나는 쪽이 편할 것 같은데, 혹시 해 본 적이 없는가?"
"저도 이미 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로열 로드를 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박진석은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로열로드에서 사냥꾼의 직업을 가졌다.
무거운 갑옷은 입지 못해도 여러 가지 무기를 골고루 다룰 수 있으며 궁술, 함정 설치 및 헤제, 힘과 체력도 비교적 좋은 다용도 직업!
"내 딸과 같이 사냥이라도 다니면 되겠군."
"정말, 그러면 쉽게 친해질 수 있겠습니다."
로열 로드야말로 커플을 많이 만들고, 또 많이 헤어지게 하는 게임.
박진석의 경우에는 서윤과 말을 트는 정도만 되어도 현재로써는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내 딸아이와 자주 같이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남자가 있다는 말씀 들었습니다. 하지만 서로 깊은 사이는 아닌 줄로 아는데요. 서윤 씨처럼 아름다운 사람에게 남자가 쫓아다니는 정도야 당연히 이해합니다."
"그렇지. 하지만 그 남자와 같이 로열 로드를 자주 한다는군."
"누군지 아십니까?"
"캐릭터 이름이 위드라더군."
"위드요? 정말 흔한 이름이로군요."
박진석은, 로열 로드에 널리고 널린 이름이 위드였으니 그것만으로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박진석도 전쟁의 신 위드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의 캐릭터 이름을 따라 했다는 것만으로도 경쟁자로서는 조금은 실망이었다.
"로열 로드에서는 전쟁의 신이락 불린다던가."
"예엣?"
"무슨 몬스터도 때려잡고 하면서 꽤 유명한 모양이더군."
정득수 회장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단순하게 말했지만, 박진석은 위드의 모험을 모두 좋아하고 기억할 정도로 열혈팬이었다.
로열 로드를 중계하는 방송국에서도 하루에 수십 번 이상 나오는 이름이 위드, 오크 카리취, 불사의 군단, 모라타 등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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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은 서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에 맞춰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윤이 멀리서부터 걸어와서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할 때, 그가 말을 걸었다.
"저기, 부탁이 있습니다."
"……."
서윤은 무시하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그에게 돌아서지도 않았다. 이미 그녀에게 접근하기 위한 의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위드 님과 같이 로열 로드에서 사냥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위드 님을 한 번만 만나 볼 수 있을까요?"
경쟁은 경쟁이고, 박진석은 로열 로드에서 팬으로서 위드를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었다. 하지만 서윤은 안 된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그거 불편해할 수도 있고, 그녀 때문에 정체가 탄로 나게 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정말 어떤 사람인지, 만나 보고 잠깐 대화라도 나눠 보고 싶어서 그럽니다."
"……."
"제 케릭터의 레벨로는 당연히 지겠지만 위드 님에게 결투를 신청해서 한 수 가르침을 얻어 보고 싶기도 하고요."
박진석은 서윤과 진지하게 사귀고 싶기도 했고, 이런 식으로 인연의 끈을 만들어 놓으면 시작이 어렵지 그 이후로는 어떻게든 더 친해질 수 있는 계기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복합적인 계산까지 깔려 있는 제안이었다.
결투라는 말을 듣고 나서 서윤은 조그마하게 말했다.
"로자임 왕국……."
"로자임 왕국으로 가면 됩니까?"
서윤의 예쁜 목소리를 들은 박진석은 뛸 듯이 기뻤다.
"세라보그 성의 뒷산으로 오세요."
"제가 지금 친구들과 브렌트 왕국에 있습니다. 멀지도 않군요.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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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아,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이제 전쟁의 신 위드를 만나러 가는 거야."
사냥꾼 로빈.
그는 친구들까지 잔뜩 끌고 세라보그 성의 뒷산으로 뛰어갔다.
전생의 신 위드를 만난다는 설렘!
직접 만나기는 명문 길드의 수장보다도 어려운 인물이다.
모라타에도 가 보고 싶었던 로빈과 그의 친구들이라서, 이렇게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던전 사냥도 중단하고 곧바로 왔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에는 위드는 없고, 서윤만이 완전무장한 채로 서 있었다.
로빈이 친근하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위드 님은 아직 안 오신 모양이죠?"
약속 시간을 정확히 정한 것도 아니니 늦는 것쯤이야 기꺼이 기다려 줄 수 있는 마음. 위드가 올 때까지 서윤과 대화라도 할 수 있다면 더욱 기쁘지 않겠는가.
하지만 서윤은, 사실 위드에게는 누군가 찾아온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다.
누가 자기를 뒷산으로 불러낼 때는 반드시 그 이유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하는 법!
스르르릉.
광전사 서윤의 검이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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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는 사냥을 하기 위해서 별의 궁전의 입구에서 서윤을 기다렸다.
"오늘은 조금 늦는군."
약속 시간을 대부분 정확하게 지키는 그녀였기에 많이 늦지는 않을 거라고 여기고 느긋하게 조각품을 만들었다.
야심한 밤에 던전의 입구에서 조각품을 만들지만 위드는 크게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유령이 나타나더라도 단숨에 사냥을 해 버리면 되는 게 아닌가!
사박사박.
드디어 서윤이 걸어오는 발소리를 듣고 위드는 고개를 들었다.
"조금 늦었……."
그리고 서윤을 보며 간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놀랐다.
서윤의 이름이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살인자라는 뜻이다.
"어디 가서 사람 죽였어?"
끄덕끄덕.
"몇 명이나?"
"8명요."
서윤은 로빈과 그의 친구들을 단칼에 죽여 버리고 왔다.
"휴우, 많이도 죽였구나. 어떻게, 싸움이랃 났던 거야?"
"생각이 조금 달라서요."
"대화로 풀 수 없는 문제였니?"
"아……."
서윤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나직하게 탄성을 질렀다.
"시도를 안 해 봤구나?"
"……."
말을 하게 되고 나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약간의 부작용!
서윤은 위드가 아닌 다른 사람과 의견 대립이 생기면 설득하는 대신에 그냥 전에 하던 대로 했다. 검치가 있었다면 훌륭하다고 칭찬할 만한 자세이기도 했다.
"살인자 상태를 벗어나려면 퀘스트나 기부, 혹은 나쁜 성향을 가진 몬스터들을 많이 사냥해야 하는데. 8명이나 죽였으면 살인자 상태를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겠군."
살인자 상태에서는 다른 유저들에 의하여 공격을 받는다. 죽음으로 받는 페널티도 훨씬 심각해지니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사냥이나 하면서 살인자 상태를 벗어날 방법을 생각해 보자."
별의 궁전에는 다른 유저들이 찾아오지 않았으니, 들어가서 사냥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로자임 왕국에서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