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28권 : 2) 바드레이와 친위대 (161/520)

2) 바드레이와 친위대

사카인 : 지하 1층을 최대한 빨리 정리하라. 바드레이 님이 갈 수 있도록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길부터 뚫는다.

멜버른 광산에는 친위대와 전투단 그리고 헤르메스 길드 소속의 암살단 밤의칼날 2개 조가 동원됐다.

밤의칼날에는 길드에서 성장시킨 어쌔신들이 300명이나 되었다.

2개 조라고 해도 80명의 최정예 어쌔신으로, 굉장한 전력이었다.

군소 길드는 밤의칼날 2개 조만 파견하더라도 처참히 짓밟을 수가 있을 정도였다.

어쌔신들은 무기를 꺼내 들고 쇄도했다.

"꺄아아아악!"

"그냥 던전 나갈 테니 살려 주세요."

"무차별로 다 죽인다. 도망쳐!"

멜버른 광산에서 사냥하던 유저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욕도 하고, 봐 달라고 빌어도 봤지만 헤르메스 길드의 어쌔신들은 자비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괜찮은 수입원이기도 했으니 철저히 살육을 벌였다.

바드레이는 죽은 자들이 널린 길을 걸으며 친위대와 함께 지하 2층으로 향했다.

★★★★★★★★★★★★★★★★★★★★★

"형, 이거 어쩌죠? 갑자기 공격을 받아서 우리 다 죽게 생겼어요."

"무슨 일인데? 차근차근히 말해 봐."

"그게요........"

헤겔은 길드 채팅을 통해서 들은 내용을 설명해 줬다.

"아, 진짜 나쁜 놈들이네."

"완전 재수 없어."

알리스와 디네에게는 짜증이 나는 정도였지만, 위드에게는 한 방울도 안 남기고 다 마셔 버린 우유가 우통기한이 2달이나 지난 것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것만큼 심각한 문제였다.

"흑사자 길드의 병력으로는 못 막아?"

"여러 곳에서 동시에 사건이 벌어졌어요. 하필 전쟁도 일어나서요, 이곳부터 와서 도와줄지 장담할 수 없겠는데요."

흑사자 길드도 많은 전쟁을 경험하였다.

헤겔도 형을 따라 공성전에 가담한 적이 많았지만, 이런 식으로 갑자기 뒤통수를 맞는 것처럼 공격을 당하는 것은 드문 상황!

보통 사냥터와 던전은 그 지역의 성, 마을을 뺏으면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이런 식으로 공격조를 파견하여 방해하는 공작은 그들이 무사히 살아서 돌아간다는 보장이 전혀 없는 위험한 전술이었다.

물론 이번처럼 정신없이 한꺼번에 벌어지는 경우에는 오히려 흑사자 길드에서 수습하기가 더 바쁠 수 있었지만

사정을 알게 된 위드도 한숨을 쉬었다.

"그렇군 이번에도 뒤로 넘어져서 병원비가 나오게 생겼어."

"예?"

"그런 게 있어."

이번에는 어째 헤겔의 덕을 보며 쉽게 가나 했더니 하필이면 이런 사고가 또 벌어졌다.

"전혀 추측도 하지 못하고 있어요. 다른 던전에서 사건을 벌이는 쪽과 같은 편이라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세력이 많진 않을 텐데 베덴 길드가 공격을 해 온 시기도 미묘하고요."

이런 종류의 일은 막 닥쳤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적들의 정체에 대해서도 모른다.

다 끝나고 난 후에야 알게 되겠지만 그때는 너무 늦은 일.

위드는 조각품 만들기를 중단하고 일어섰다.

"이 광산에 있는 흑사자 길드원들은 어떻게 하기로 했는데?"

"싸워 보려고 했는데, 보고를 듣자니 지하 1층의 적들이 장난이 아니라고 해서요. 일단은 지하 4층에 모여서 대응하기로 했어요."

"그래? 그럼 우리도 그쪽으로 갈 수 있을까?"

"저랑 같은 편이니까 데리고 가더라도 상관은 없겠죠."

"고맙다. 가자."

위드는 배낭을 뒤적이며 살펴보았다.

이곳에서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장비들은 미리미리 영주성에 보관을 해 두었다.

하지만 콜드림의 데몬 소드와 탈로크의 믿음 갑옷, 고대의 방패, 성자의 지팡이, 바르칸의 풀 세트, 바하란의 팔찌, 슬로어의 결혼반지도 현재도 갖고 있었다.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정신적인 충격이 엄청날 것 같은 아이템들이었다.

'흑사자 길드에서도 큰 소동이 벌어질 정도라면 쳐들어온 놈들의 세력이 정말 보통은 아니라는 이야기인데.'

위드도 설마 헤르메스 길드와 바드레이 본인이 멜버른 광산에 왔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웬만한 고레벨 유저 정도라면 흑사자 길드에서 가뿐히 밟아 주고 끝냈을 것이다.

헤겔의 사색이 된 얼굴로 봐서는 침입자들의 세력이 대단하고, 정말 큰 위기라는 뜻.

멜버른 광산 전체가 전투 지역으로 설정되어서 로그아웃도 불가능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가야 되겠군."

위드도 광산의 지도는 봐 두었기에 대략의 길을 알았다.

"형, 일단 제가 길을 열게요."

헤겔이 검과 방패를 들고 나서려고 했다.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어."

위드는 데몬 소드를 뽑아 들었다.

그러자 느껴지는 으스스한 한기!

막 뛰어다니면서 공격할 틈을 노리던 멘추라들이 위드의 투지와 카리스마에 의하여 위축되었다.

위드를 향하여 공격도 하지 못하고 불쌍하게 벌벌 떨기만 하였다.

서걱!

-멘추라가 사망에 이를 정도로 파괴적인 공격을 가했습니다.

급소를 노리지도 않았고 그저 데몬 소드가 스쳐 지나가기만 했을 뿐인데도 급사망!

위드가 툭툭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길을 막고 있던 멘추라가 죽어 나갔다.

"어어?"

헤겔은 어이가 없었다.

길드 사냥을 부지런히 쫓아다닌 덕분에 그의 레벨도 330이 되었다.

이 레벨만 되어도 어디 가더라도 대우받을 수 있는 수준이었고, 멘추라가 무섭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장난처럼 가볍게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멘추라가 죽어 나가다니, 이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흑사자 길드의 창립 멤버 중 1명인 우리 형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헤겔은 자기 자신의 부족한 판단력과 감각 때문에 육체가 가진 전투 능력을 온전히 다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헤겔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유저들이 레벨에 비해서는 원래 약했다.

위드가 레벨이 330이었을 무렵에는 본 드래곤과도 싸웠고, 토둠에서 실컷 활약을 하면서 돌아다녔다.

남들보다 스탯을 늘리고, 여러 스킬들을 악착같이 조합한 결과였다.

그에 비해 다른 유저들은 좋은 장비에 동료들 그리고 적당히 나오는 몬스터에 길들여졌다.

위드가 보리 빵을 먹으면서 성장했다면, 다른 유저들은 미디엄 웰던으로 잘 익힌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살아온 것과 마찬가지였다.

위드가 멘추라들을 처치하며 물었다.

"흑사자 길드의 지원군은 언제 와?"

"그게요, 아직 잘 몰라요. 지금 구성을 하고 있는데 다른 급한 곳이 많아서요. 시간을 알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위드는 싸우면서도 주변을 살폈다.

소식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탓인지 여전히 사냥에 열중하고 있는 파티가 있는가 하면, 갑자기 놀라서 큰 목소리를 내는 유저들도 보인다.

"쳐들어온 적들에 대한 정보는?"

"몰라요."

"그래도 몇 명인지 알 거 아니야?"

"지금 멜버른 광산에 대해서는 좀 더 정보가 왔어요. 자그마치 300명이 넘어요."

"추정 레벨은?"

"그게 어이가 없어요. 지하 4층으로 사냥을 오려던 우리 길드의 유저가 1층에서 싸웠는데 적들 중 1명에게 죽었어요. 레벨이 367이 넘는데도 불구하고요."

이 정도라면 그냥 병원비가 나가는 게 아니라 보험 처리도 안 된다고 봐야 한다.

'정말 위험하겠군.'

위드는 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어릴 때에는 바른생활을 통해 세상을 올바르게 사는 법을 배운다.

나이를 먹으면서 사회에서 배우는 것들은 그와는 달랐다.

불의에 대해서 참는 법.

내 일이 안이라면 나서지 않는 법.

자기 자신을 위해서 상대방을 깔아뭉개고, 공을 빼앗는 법.

"정직하게 먹고살기가 왜 이리도 힘든지...... 나처럼 착한 사람은 언제나 고생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원망스럽군."

"예?"

"아무 말도 아니야."

지하 3층으로 내려가는 입구에는 멘추라가 잔뜩 모여 있었다.

멜버른 광산에서는 특별히 몬스터의 번식이 아주 빠르기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평소에는 좋은 사냥터의 조건이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급한 마당에는 장애물밖에 안 됐다.

"길을 뚫어야 되겠군."

위드가 가지고 있는 검술 스킬도 제법 여러 개였다.

온갖 스킬들을 잡식성으로 다 배우는 검사들도 있지만, 몇 가지 뛰어난 스킬들만 중점적으로 사용해 왔다.

황제무상검법!

사냥을 위해서 적절하게 활용했지만 상대가 가진 무기를 부숴 버리는 파워 브레이크는 쓰지 않았다.

전투에서 이기고 나서 획득할지도 모를 전리품을 부수는 것만큼 무모한 건 없는 일.

조각 검술, 헤라임 검술 그리고 광휘의 검술까지, 위드의 스킬도 전투의 특성에 맞춰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해졌다.

원거리 공격 스킬인 광휘의 검술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빛의 정화였다.

"야식으로 통닭 먹으면 되는데 꽃등심을 구워 먹을 수야 없지."

닭 잡는 일에 소 잡는 칼을 쓸 수는 없는 노릇.

위드의 레벨이나 공격력을 감안한다면 멘추라에게 광휘의 검술을 쓰는 건 몬스터 학대였따.

"네?"

헤겔, 알리스, 디네는 자꾸 중얼거리는 위드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형, 여기서는 같이 싸워요."

"아니야. 혼자 먹을 것도 없어."

위드는 지하 3층으로 내려가는 길에 몰려 있는 멘추라에게 그대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캬하오오!

크야앙!

멘추라들이 덤벼들지 않고 위협을 했다.

하지만 눈동자 깊은 곳에는 오히려 두려움만 가득했다.

전투를 시작하면서 위드의 투지가 더욱 크게 발산되었다.

전쟁의 신.

베르사 대륙에서 강한 몬스터들과 숱한 전투를 거치면서 멘추라 정도는 덤비기도 어려울 정도의 투지를 갖게 되었다.

멘추라들이 스스로의 의지로 꽁무니를 빼면서 물러나려고 했다.

단 1명이 다가가는 것으로, 레벨이 낮지도 않은 17마리의 멘추라들이 저마다 도망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위드가 뻔히 보이는 경험치와 전리품을 남겨 놓고 지하 3층으로 내려갈 리는 없었다.

"조각 검술!"

위드가 검을 휘두르며 멘추라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검의 반경에 접해 있는 몬스터의 대량 사망!

일제히 회색빛으로 변해서 사라지는 멘추라는 구경하는 사람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안겨 줄 정도였다.

일부 멘추라는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에 투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결사적으로 반격을 가해 왔다.

위드는 관대하게 그러한 공격을 몸으로 맞아 줬다.

갑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않은 상태였다.

-멘추라의 공격이 스쳤습니다.

 생명력이 46 떨어집니다.

-멘추라의 공격이 급소에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극한에 달한 인내력으로 고통으로 이겨 냅니다.

 강철 같은 맷집으로 피해를 견뎌 냅니다.

 생명력이 159 감소합니다.

위드에게는 간지러울 뿐!

"대충 정리가 되었군."

지하 3층으로 향하는 입구 주변의 몬스터가 금방 깨끗하게 사라졌다.

위드는 멜버른 광산에서뿐만 아니라 직업 마스터 퀘스트를 하면서 전투를 원하는 만큼 많이 하지 못했다.

그 한을 풀기라도 하듯이 1마리도 남기지 않고 쓸어버렸다.

"와! 선배님, 최고예요."

"어쩌면 그렇게 강하세요! 방금 쓰신 공격 스킬은 이름이 뭐예요?"

디네와 알리스의 말투에는 호감이 듬뿍 묻어 나왔다.

헤겔에게는 그동안 공을 들인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악몽의 반복이 되는 셈이었다.

'아... 예전에도 그랬지.'

드워프 조각사 위드!

크라마도 던전에서 위드가 놀라울 정도의 활약을 펼치던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지하 3층으로 내려가고 나서 보니 그곳에 있는 유저들은 습격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대비하고 있었다.

"어디의 놈들이야?"

"몰라 보이는 대로 마구 죽인다니까 싸울 준비부터 해야지."

안내하는 흑사자 길드원들을 따라서 유저들은 지하 4층으로 내려갈 채비를 갖췄다.

멜버른 광산의 지하 4층은 갱도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고, 입구는 좁고 장애물ㄹ들이 있어서 수비를 하며 싸움을 하기에 용이한 지형이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흑사자 길드에서 지원군을 보내 줄 거라는 믿음을 가졌기에 지하 3층의 유저들은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했다.

"형, 우리도 빨리 가죠."

헤겔은 같은 길드원들 사이에 있으면 안심이 될 것 같아서 재촉했다.

하지만 위드는 지하 3층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사람들도 많이 빠지고 있고... 좋은 기회로군."

"무슨 기회요?"

"나는 상관하지 말고 먼저 내려가도록 해."

위드는 배낭에서 곡괭이를 꺼내 들고 탄광 지역으로 향했다.

광산의 깊은 곳일수록 좋은 철이 나온다. 물론 캐내려고 하는 사파이어도 있는 것.

깡! 깡! 깡!

사파이어가 많이 나온다는 구역에서 숙련된 곡괭이질을 했다.

곡괭이의 무게에서 맞춰서 내리칠 때 힘을 주고 정확한 타점을 노리는 기술.

전투에서 가끔 큰 적과 싸울 때 사용하는 일점 공격술과 비슷한 면도 있다.

- 쿠헤헤헤헷.

- 우리의 원한을 해소해야 해. 우리를 이곳에 그냥 가둬 놓고 굶어 죽게 한 나쁜 놈들.

- 너도 톨렌 국왕이 보낸 하수인이 틀림없을 것이다아.

멜버른 광산의 지하 3층에서는 곡괭이질을 할 때마다 성난 정령들이 나타난다.

죽은 기사들이 정령이 된 것으로, 침입자에 대한 증오심을 가진 것이 특징.

그들이 나타나면 전투가 벌어지기 때문에 광부들이 일을 하려면 전사들이 지켜 줘야 했다.

물론 광부들을 앞세워서 파티 사냥도 많이 벌어졌다.

사제가 있다면 정화 마법을 통하여 사냥하기가 좋은 장소인 것이다.

"조금 기다려 봐."

- 무슨 소리냐. 우리의 원한으을.......

"이거나 받아먹어."

위드는 에르리얀이 알려 줬던 대로 정령들에게 사과를 던져 줬다.

- 사과다.

- 맛있게 잘 익었다.

정령들은 사과에 달라붙었다.

탐스러운 사과는 순식간에 물기가 사라진 채로 말라붙었다.

- 더 다오.

- 몇 개만 더 내놓아라.

- 그럼련 죽이지 않을 것이다.

"에휴."

위드는 한숨을 쉬면서 곡괭이질을 하며 과일을 집히는 대로 하나씩 던져 줬다.

-정령들과의 우호도가 증가합니다.

 멜버른 정령들과 신뢰 관계가 생성됩니다.

시간만 있더라도 멜버른의 정령들 정도는 어렵지 않게 다 잡았을 것이다.

조각 검술이나 광휘의 검술은 정령들도 가리지 않고 잡을 수 있는 기술이다.

하지만 지금은 위험한 세력이 광산에 들어와서 쫓기는 입장이었으니 바라는 대로 줄 수밖에 없는 노릇.

"살다 살다 정령들에게 과일까지 바치게 되다니, 이놈의 팔자는......"

위드는 곡괭이질에 집중했다.

- 우걱우걱 그쪽을 더 파 봐라.

- 반짝이는 파란색 보석을 찾나? 오른쪽에도 뭉쳐 있ㅎ다.

중급 채광 스킬에 정령들이 알려 주는 위치를 파다 보니 사파이어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정령들이 과일을 좋아하고 채광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건 사실 대단한 가치를 가진 정보였다.

-중형 사파이어 원석을 발굴하셨습니다.

 행운이 1만큼 증가합니다.

-대형 사파이어 원석을 발굴하셨습니다.

 행운이 2만큼 증가합니다.

 채광 스킬의 숙련도가 높아집니다.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에 채광 스킬까지 쓰게 되다니......"

캐릭터만 잡캐가 아니라 직업 퀘스트까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에르리얀과 관련된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파이어가 많을수록 좋았다.

어떤 조각품을 만드느냐에 따라서 필요한 사파이어의 수량도 다르다.

지금은 원석들로 어느 정도 수량을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위드는 계속 파 내려갔다.

"언제 또 이런 퀘스트를 받을지 몰라."

채광 스킬도 올려놓고 사파이어도 듬뿍 캐기 위하여 계속 곡괭이질을 했다.

사파이어는 보석으로 가공하더라도 예쁜 아이템이지만, 고위 마법사나 인챈터에게 주면 검과 갑옷에 빙계 계열의 속성을 걸어 줄 수 있다.

공격 데미지도 올려 주다 보니 비싸게 팔리는 보석류였다.

"형, 이제 그만 가요."

차마 위드를 그냥 놔두지 못하고 뒤따라온 헤겔과 두 후배는 안절부절못했다.

위드가 정령들에 둘러싸여 계속 곡괭이질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 거기예요, 바로 거기.

- 그쪽으로 파 내려가면 엄청 큰 원석이....... 조금 새콤 하면서 신 것을 먹고 싶은데 혹시 석류는 안 가지고 왔나?

★★★★★★★★★★★★★★★★★★★★★

헤르메스 길드가 멜버른 광산의 지하 1층을 완전히 쓸어버리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밤의칼날 소속 어쌔신들만으로도,  사냥을 하던 파티들은 암습을 당하여 차례차례 전멸했다.

어쌔신들의 이름이 붉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전투 중이거나 마을에 들어갈 때에 악명이 드러나지 않게 숨길 수 있는 스킬도 가졌다.

물론 상대방의 관찰이나 감시 스킬이 뛰어난다면 적발되어 곤란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헤르메스 길드에서 지배하는 영토에서는 그들에 대해 사면령을 내려 놓았기에 악명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가자."

바드레이와 친위대는 거칠 것 없이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의 유저들은 친위대의 일부만이 나서서 압도적인 무력으로 학살했다.

일부 유저들은 갱도로 도망을 치기도 하였지만 밤의칼날 소속의 어쌔신들이 따라붙어서 확실히 목숨을 끊어 놓았다.

★★★★★★★★★★★★★★★★★★★★★

유병준 박사는 아침마다 스스로 나이가 든 것을 많이 느꼈다.

"돌이켜 보면 젊음이란 정말 빨리도 지나가는구나."

어릴 때는 시간의 귀중함을 알지 못했다.

로열 로드를 발명하느라 보내 온 많은 시간들.

이제 육체는 늙어서 예전 같지 않았다.

인류사에 한 획을 그은 가상현실.

차후로도 발전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했지만, 유병준 박사는 아마 그 이후까지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모든 것을 물려주고 난 이후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싶어."

야망을 불태웠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무거운 짐을 더 하면서 열심히 살아온 것 같다.

유병준은 후계자를 찾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만든 결과물인 로열 로드에서 벌어지는 일을 매일 지켜봤다.

"쯧쯧, 욕심이 끝도 없군. 그만하면 되었으련만......"

거대 길드들의 탐욕.

욕심 많은 인간들이 더 많이 가지려고 무리를 이루었으니 분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이것도 인간의 본성일 수 있기에, 유병준은 어디까지나 그저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모라타라... 이제 아르펜 왕국으로 커지게 되겠군. 상당히 놀라울 정도로 빠른 성장이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던 북부 대륙은 제일 보잘것없는 지역이었다.

위드의 모험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전설의 달빛 조각사가 된 이후로, 여러 모험을 통해 직업이 가진 역사적인 숙원을 풀어 나가며 왕국까지 일으켰다.

몬스터와 검, 마법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 경이로웠다.

"나도 로열 로드를 한다면 아마 모라타에서 시작했을 것 같군."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힘이 얼마나 거대할지는 시간이 자연히 알려 주게 되리라.

유병준은 모라타에서 매일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을 봤다.

모험가들이 새로운 발견물을 들고 의기양양하여 돌아온다.

전사들은 점점 멀리까지 나가서 사냥물을 잔뜩 가져오고, 던전을 격파했다는 소식을 들고 왔다.

바드들은 말도 안 되는 멋진 공연을 성공시켰다.

재봉사들은 꼼꼼히 짜인 옷감을 개발하며 기술을 발달시키고 있고, 대장장이도 마찬가지다.

조각사와 화가 들이 만들어 내는 각종 예술품들은 거리를 아름듭게 만든다.

정원사들은 위드가 라체부르그에서 구해 온 꽃과 나무 들을 소중히 관히하면서 키워 갔다.

모라타의 변화란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분야에 걸쳐서 매일 점점 더 좋은 곳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평범한 기적이 결국은 왕국까지 이어지게 만들었다.

유병준은 그 때문이라도 위드를 자주 지켜봤다.

대륙의 다른 성과 도시 들이 전쟁으로 피폐해지는 동안에 초보자의 작은 힘들을 모아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어 가는게 놀라웠다.

게다가 위드를 비롯하여 각 분야에서 앞서 가던 이들이 직업 마스터 퀘스트를 경쟁적으로 진행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멜버른 광산에서 위드와 바드레이가 만나다니."

둘이 같은 던전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직 없다.

평소라면 바드레이와 위드의 모험을 수천만 명 이상이 지켜보고 있었겠지만, 사건의 특성상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지도 않았다.

벌써 전후 사정을 보고 있는 사람은 유병준 한 사람뿐이었다.

"과연 이게 어떻게 될지......."

유병준은 흥미롭게 모니터를 지켜봤다.

사파이어를 파낸답시고 태평하게 곡괭이질을 하는 위드를 보고 있자니 오히려 그가 더 초조해지는 느낌이었다.

★★★★★★★★★★★★★★★★★★★★★

"이 정도라면 되려나?"

위드는 반짝반짝 빛나는 사파이어를 바구니에 담았다.

부수입으로 얻은 2등급, 3등급 철광석도 상당수였다.

광물이라서 무게가 상당히 나갔지만 무거운 줄도 모를 정도였다.

"땅만 파도 돈을 벌다니... 역시 채광 스킬이란 쓸 만하군."

로열 로드에서 돈이 되는 스킬은 몽땅 탐이 났다.

"조금 더 파고 가야지."

"형, 이제는 진짜 빨리 가요. 더 이상 여기서 낭비할 시간이 없어요."

헤겔이 옆에서 잡아끌었다.

그는 멜버른 광산이 습격당했을 때부터 당황해서 정신이 없었다.

지하 4층에는 흑사자 길드와, 사냥을 위해 온 유저들이 계속 모이고 있다고 한다.

헤겔은 불안해서 빨리 그곳에 합류 하고 싶었지만, 그가 보기에 위드가 엉뚱한 일을 하면서 시간만 끌었다.

'아무래도 이 형의 레벨은 상당해. 지난번의 던전에서도 그렇고 조금 전의 전투 능력만 보더라도, 보통이 아니야. 오늘의 싸움에도 도움이 되겠지. 그런데도 정말 사파이어가 탐이 나서 캐고 있는 건 아닐 테고.......'

위드는 사파이어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정령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파내다 보면 보석과 광물을 듬뿍 채취할 수 있었다.

향후 이것들을 가공하게 되면 얻을 조각술 숙련도며 대장장이 스킬, 아울러 돈까지 저절로 연상되어 너무너무 만족스러웠다.

"선배님, 빨리 가셔야 돼요."

"여기서 이렇게 계시면 안 된다니까요!"

디네와 알리스도 참다못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위드가 멘추라를 상대로 보이던 멋진 모습과 철혈의 카리스마를 뿜어내던 분위기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바쁠 때 딴짓하는 위드가 정말 짜증이 났다.

"케케케켓. 사파이어다. 흠집도 없이 맑은 것이, 정말 최상품이로구나."

채광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파이어 원석이 발견이 되면 그 주변을 조심스럽게 파내야 했다.

원석에 아무 손상도 입히지 않고 파내면 채광 스킬도 잘 오르고 가치도 높게 책정된다.

★★★★★★★★★★★★★★★★★★★★★

유린은 자유롭게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났다.

"이렇게 아름다운 아가씨가 화가라니, 그림을 한 점 부탁 드려도 되겠습니까?"

로브를 입고 있는 남자 마법사의 접근.

"색감이 좋군요. 저도 그림을 좋아하는데...... 술을 살 테니 이야기라도 하시죠."

기사도 다가왔다.

"제가 발굴한 그림이 있는데 혹시 감정이 되신다면 유린 님에게 맡겨도 되겠습니까?"

모험가는 오래전 그려진 그림까지 가져왔다.

도시나 경치 좋은 곳에서 그림을 그리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을 그녀는 좋아했다.

유저나 주민 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은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숨겨진 골짜기나 꽃이 활짝 피어 있는 오솔길을 알려 줬다.

"이런 장소가 또 숨겨져 있었구나. 빨리 그려 봐야지."

보리 빵에 우유를 마시면서 붓으로 작품을 그리다 보면, 그 그림은 캔버스만이 아니라 마음에도 남았다.

멋진 풍경의 그림을 그리며 사색에 잠기고, 완성해 나가는 성취감을 느끼고, 자유로운 창조의 시간을 누린다.

초상화를 그림련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친해지는 것도 좋았다.

그녀의 친구 등록이나 인맥도 무시 못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유린은 모라타와 바르고 성채에 있을 때 가장 즐거웠다.

초보자들과 같이 사냥도 나가고, 또 적은 금액을 받고 그림도 그려 줬다.

그녀의 그림 그리기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같이 밥 먹을래? 괜찮은 요리사를 알아 놨거든. 마음에 쏙 들 거야."

화령은 검치를 따라서 사냥하다가 어렵게 시간을 내서 유린을 만났다.

"좋아요, 언니."

둘은 식사를 하고 공연도 봤다.

모라타는 예술과 공연이 많이 벌어지는 도시이다 보니 다른 지역에 비해서 여성 유저들의 비율이 높은 편.

둘은 고소한 풀 차도 마시면서 대화의 꽃을 피웠다.

"위드 님은 어릴 때도 참 멋있었지?"

"그야... 집에서는 두꺼운 내복을 2개 겹쳐 입고 다녔어도 괜찮았어요."

두 여자의 화젯거리로는 위드가 자주 올라왔다.

화령은 위드가 유린이 정말 사이좋은 오누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궁금했다.

"근데 이건 정말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둘이 싸운적은 없어?"

"어릴 때는 오빠에 대해서 오해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정말 세상에서 가장 좋아해요."

"그렇구나. 싸울 일도 없겠네. 내가 괜한 걸 물어봤구나."

화령은 역시 위드와 잘 지내기 위해서는 유린을 확실히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에요, 언니. 오빠에 대해서 짜증 날 때도... 얼마 전에도 있긴 있었죠."

"그랬어?"

"지난겨울이었어요."

유린의 눈가가 벌써부터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어그 부츠가 정말 꼭 사고 싶었는데......"

여자들이 겨울철에 좋아하는 어그 부츠 멋이나 귀여움 때문만이 아니라도 정말 따뜻하고 편해서 신고 다니는 이유도 컸다.

유린도 도서관을 오가면서 공부를 하기 위해 어그 부츠를 신고 싶었다.

"오빠한테 어그 부츠를 사 달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신발 이야기가 나오니 눈이 번쩍 뜨이는 화령이었다.

"예쁜 어그 부츠로 사 줬어?"

보통 남자들은 여자들이 신발이나 가방 이갸기를 하면 반응이 썩 좋진 않다.

특히 어그 부츠를 싫어하는 남자들도 많기 때문에 민감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안 사 줬어요. 발이 춥다고 하니까 버선 신고 다니라고......"

"케엑!"

"하지만 버선을 신으면 발이 신발에 잘 안들어가잖아요. 사정을 설명했더니 장화까지 신으면 어그 부츠랑 똑같다면서... 으흐흑."

화령은 유린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녀가 최근에 들은 것 중에 가장 슬픈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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