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29권 : 6) 마지막 조각술 마스터 (176/520)

6) 마지막 조각술 마스터

"안개가 많이 끼어서 으스스하네요."

"여긴 만날 안개가 낀다고 해요."

왕들의 무덤이 있는 므소스 계곡에 와이번을 탄 위드와 동료들이 도착하였다.

용아병들은 눈을 부릅뜨고 몬스터나 위협거리들을 찾고 있었다.

계속에서 돌아다니던 산짐승과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용아병들이 내뿜는 투기에 질려서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무질서하게 마구 도망쳤다.

고위 몬스터의 쓸데없는 위용이었다.

반 호크나 토리도처럼 고분고분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위드는 입맛을 다셨다.

"잡아서 가죽을 벗기면 비싸게 팔릴 텐데."

"저곳이 맞는 것 같습니다."

페일이 주위를 살피다가 입구를 발견해 냈다.

벨소스 왕의 무덤이 있는 유적의 입구는 과거 진홍의날개 길드에 의하여 개방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다시 봉인되어 있었다.

무너진 입구의 돌을 치우고 유적 안으로 들어갔다.

★★★★★★★★★★★★★★★★★★★★★

유적의 내부는 천연 동굴이 아니라 평평하고 넓게 깎아 놓은 돌벽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중간 중간 커다란 원형기둥도 있었는데, 몬스터들이 충분히 숨을 수 있는 면적이라서 신경이 쓰였다.

"여기서는 저부터 실력을 발휘해 보죠."

페일이 앞으로 나섰다.

"바람의 눈."

-공간이 연결되어 있다면 장애물을 뚫고 볼 수 있습니다.

레벨400데에 오르고 난 이후에 획득한 궁수 스킬.

궁수의 비기는 얻지 못하였어도, 페일은 순수하게 전투 계열로 성장해 왔다.

위드를 따라다니면서 스탯과 스킬 숙련도를 충실히 올리는 방식을 택하면서 훌륭한 궁수가 된 것이다.

페일은 화살에 시위를 걸었다.

"땅거미의 화살."

-끈끈한 거미줄이 걸려 있는 화살은 적의 속도를 늦추게 합니다.

"바람의 인도."

-바람의 눈으로 본 목표물을 맞힐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조준을 해야만 화살이 적을 추적하여 맞히게 됩니다.

푸슝!

페일이 막혀 있는 벽을 보면서 화살을 쐈다.

그의 궁술 스킬은 하나의 화살에 네 가지까지 기술을 걸 수 있었다.

화살은 일직선으로 날아가더니 벽을 타고 이동하며 사라졌다.

잠시 후.

캬하악!

몬스터의 괴성이 들렸다.

페일은 속사 스킬을 발휘하며 계속 화살을 쏘았고, 달려오던 몬스터의 비명은 이내 잦아들었다.

멀리 있는 몬스터를 던전에서도 사냥하는 위용을 보인 것이다.

고레벨 궁수들만이 실행할 수 있는 능력!

1마리씩 있을 때에야 별 상관 없지만 여러 마리가 모여 있으면 상대하기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몬스터들이 다가오기 전에 먼저 화살로 적의 숫자나 생명력을 많이 줄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다.

몬스터들을 유인하는 데에도 일품이었다.

페일이 적을 해치우고 천천히 활을 내리는 모습은 누구라도 반할 정도로 멋진 것이었다.

다음에 나온 몬스터는 수르카의 주먹의 희생양이 되었다.

"연환권, 무쌍권, 차륜의 권!"

복부, 옆구리, 이마.

부위를 가리지 않고 폭풍처럼 때리면서 권사 특유의 스킬의 중간 연결까지 이뤄졌다.

권사 본인이 느끼는 짜릿한 손맛이나 들려오는 타격음은 역시 최고였다.

"헤헤, 저도 많이 강해졌죠?"

위드는 동료들이 많이 성장한 것을 느끼고 흡족했다.

"잘됐습니다. 다음에 언제 S급 난이도 퀘스트라도 받게 되면 우리 모두 같이 할 수 있겠군요."

고생도 나누어서 하면 그만큼 줄어드는 것.

혼자서 고생하지 않고 동료들과 같이한다면 훨씬 편할 수 있으리라!

위드의 말에 동료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싸악 가셨다.

괜히 힘자랑을 했다가 더 큰 일에 휘말린 꼴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다음부터는 적극적으로 유적을 탐험하는 데 속도를 냈다.

과거 진홍의날게에서는 벨소스 왕의 유적을 탐험하면서 레벨 300대의 유저들을 대거 끌고 왔다.

당시의 수준으로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베르사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길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왕이 남긴 유적의 문까지는 휴식 없이 바로 갑니다."

"알겠어요!"

"이리엔 님, 축복을 걸어 주시고, 늘 그랬듯이 제 생명력 회복은 목숨이 위태로운 수준이 되어서만 해 주셔야 됩니다."

"그렇게 할게요."

위드는 유적 탐험을 지휘했다.

그를 비롯하여 동료들도 레벨이 400대에 올랐다. 진홍의날개만큼의 전력은 아니더라도 개개인이 훨씬 강하다 보니 던전 탐험에서는 더 효과적인 측면도 있었다.

게다가 케이베른이 남긴 용아병까지 있으니 여차하면 그들을 앞세우면 된다.

용아병은 드워프들이 만든 최고급의 갑옷을 착용한 해골들이었다.

인간형의 해골이었지만, 뼈가 더 굻고 마디마다 날카로운 가시가 있었다.

위드는 용아병들에게 지시했다.

"가서 싸워라."

웬만한 몬스터들은 동료들과 함께 해결하겠지만, 작은 유적 벌레나 철갑충은 잘 죽지 않아서 번거로운 부류였다.

"너의 말을 들을 의무는 없다."

"위대하신 케이베른 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야."

"...알았다."

용아병들은 갑옷을 철걱대며 걸어가서 철갑충을 베어 넘겼다.

어딘가 자유롭지 못하고 기계 같은 느낌이었지만, 철갑충을 눈 깜짝할 사이에 처리할 정도로 강했다.

'이런 놈들이 내 부하라면 좋을 텐데......'

용아병의 추정 레벨은 520 정도라지만 어떤 전투에 내놓아도 될 만큼 듬직했다.

오로지 전투를 위하여 태어난 마법 생명체!

위드는 그들의 뒤모습을 쳐다보며 진득한 침을 흘렸다.

'죽어 주는 것도 괜찮지. 몬스터들의 습격에 의하여 용아병이 전멸한다면......'

용아병이 들고 있는 검이며 입고 있는 갑옷은 모두 위드의 것!

위드의 눈빛이 음험해졌다.

"용아병, 앞으로 쭉 돌격하라!"

"키릿, 알겠다."

용아병들이 전진하니, 유적에서 깨어난 마수들이 수백 마리씩 뛰쳐나왔다.

통로에서 그들끼리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잘한다, 용아병!"

위드는 응원을 하면서 용아병들과 마수의 싸움을 구경했다.

마수들은 용아병들에게 지극히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었다.

앞발로 치고, 머리로 들이받고, 불을 토해 내거나 입을 크게 벌려 물어뜯는 정도는 예사였다.

하지만 용아병들은 아무리 공격을 당하더라도 생명력이 그다지 줄어들지 않았다.

악룡 케이베른의 강력하기 짝이 없는 보호 마법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공격이 통하지 않으니 오히려 마수들이 주춤거렸다.

용아병들이 전혀 공포나 위기를 느끼지 않고 철두철미하게 마수들을 1마리씩 사냥했다.

"과연, 쉽게 안 죽어 주는군."

위드는 용아병들에게 그 자리를 지키도록 했다.

공격력이 일품이고 방어력까지 훌륭한 용아병이 있으니 사냥이 편해졌다.

"콜 데스 나이트 반 호크, 콜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주인, 불렀는가."

"싸워라."

토리도와 반 호크를 전투에 투입시킨 위드는 검술의 비기를 사용했다.

"분검술!"

바로 그의 분신이 5개로 늘어났다.

바드레이와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나서 깨달은 부분이 있다면, 사냥이 아닌 결투를 위해서는 여러 전투 스킬의 숙련도를 골고루 올려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검술의 비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전투 개시!

분신들이 마수들을 공격하고, 또 공격당했다.

위드가 앞으로 뛰어나갔기 때문에 그에게 마수들의 앞발 공격이 다가왔다.

-말루크의 공격에 스쳤습니다.

-여신의 기사 갑옷이 프레야 여신의 축복을 불러옵니다.

몬스터의 공격력에 따라 방어력이 27% 높아집니다.

그렇지 않아도 좋은 방어력을 가지고 있는 여신의 기사 갑옷의 방어력이 더 높아졌다.

"좋아, 웬만큼 맞아서는 끄떡도 없겠군."

위드는 즉흥적으로 전투 방법을 평소와는 조금 달리했다.

일부러 때리라는 듯이, 마수들 앞으로 가서 스킬을 난사하며 싸웠다.

바드레이조차 감탄했던, 정교하며 민첩한 전투가 아니었다.

"눈 질끈 감기, 광휘의 검술!"

퍼버버버벅!

위드는 마수들에게 얻어맞으면서 검술의 비기를 사용했다.

이제는 빛나는 참새가 3마리씩 나왔다. 알아서 적들에게 달려들었으니 눈을 감고 싸워도 된다.

마수들의 공격은 피하지도 않고 맞으면서, 전투 스킬을 계속 사용했다.

맷집과 인내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많이 맞아야 되었고, 공격력의 측면에서도 피하고 때리기보단 맞으면서 때리는 편이 더 나았다.

사냥 방식이 조금 더 효율적으로 바뀐 것이다.

보통 때 싸움을 잘하던 사람이 개싸움을 벌이니 더 지독했다.

"더 때려라, 아직 약해. 날 패 줘, 어서!'

여신의 기사 갑옷을 전투에 사용하는 것도 처음.

높은 방어력은 기본이고, 헬리움으로 완성되어서 마나를 빨리 채워 주는 효과도 가졌기에 검술 스킬을 연달아서 쓰면서도 지치지 않았다.

벨로트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위드 님은 정말......"

무식하다 무식하다 해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무식하게 싸울 수 있단 말인가. 남자로서 어느 정도 체면도 고려해야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화령은 화사하게 미소를 지었다.

"위드 님은 짐승 같은 매력까지 있으시다니까. 꺄아아!"

"......"

정말 친한 언니이긴 하지만, 벨로트는 가끔 화령을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

벨소스 왕의 석실로 들어가는 입구까지 무사히 도착하였다.

용아병들이 도와주었지만 몬스터가 지긋지긋하게 많이 나왔다.

정말 많이 맞으면서 전투를 했기 때문인지, 위드는 내내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리엔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아요? 어디 아프신 곳이 있으면 치료 마법이라도 걸어 드릴까요?"

"그게 아닙니다. 휴우."

인내력 스탯이 900을 넘었고, 맷집은 곧 500이 된다. 지독한 사냥과 조각품 제작을 통해 이룩해 낸 결과물이었다.

워리어들조차도 가능하면 방패로 공격을 막기 때문에 수비 스킬이 발달하는 편.

위드처럼 기본 스탯을 위주로 성장시키기란 정말 어려웠따.

사냥을 하다가 몬스터가 엉뚱한 곳으로 날린 공격까지도 일부러 맞아 주어야 했으니까.

"갑옷이 워낙 좋아서 맞아도 예전처럼 맞은 것 같은 기분이 안 들어서요."

"......"

방어력이 85밖에 되지 않던 탈로크의 믿음 갑옷과 방어력이 최대 300 가까이 늘어나는 여신의 기사 갑옷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여기에 방어구 닦기까지 사용한다면 20%의 방어력이 추가로 더 늘어나서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방어력 200 정도의 차이는 몬스터의 공격을 오분의 일 이상 감소시키는 효과를 나타냈다.

"전에는 시원하게 맞았는데 이제는 조금 간질간질해서 많이 아쉽네요."

여신의 기사 갑옷을 입었기에, 각종 저주를 무시하고 피하거나 도망가지 않으며 더욱 적극적으로 싸울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전투력에 영향을 미쳤는데, 갑옷의 재질이 헬리움이라서 마나를 빨리 채워 줬다.

공격 스킬을 많이 사용하면서, 사냥의 속도가 빨라지고 검술의 비기 숙련도 올리기도 좋아졌다.

지금까지 위드의 맷집을 성장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해주었던 탈로크의 갑옷을 잃어버린 것이 새삼 안타까워졌다.

"좋은 구매자에게 비싼 가격에 팔아먹기만 하면 완벽했는데."

"네?"

"아닙니다. 그보다도, 이제 조각상을 끼워 넣죠."

벨소스 왕을 상징하는 스콜피온의 조각.

위드는 제단에서 붉은색의 원석들을 주웠다.

과거에도 조각을 해 본 적이 있지만, 아주 상세하게까지는 기억을 못 했다.

대륙에서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간 조각품들이 엄청난 수량으로 떠돌고 있을 것이다.

흑생 거성의 창고에도 막대한 양이 쌓여 있었다.

기념일이 있거나 하면 특별 판매로 좋은 가격에 팔아 치우려는 조각품들.

"그때보다 더 좋은 전갈로 만들면 되겠지."

위드는 원석을 세공하여 전갈을 금방 깎아 냈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1개씩 나누어 주었다.

"동시에 올려놓는 겁니다."

"네."

긴장된 순간이 잠시 흘러갔다.

진홍의날개 길드가 벨소스 왕의 무덤에 들어가서 베르사 대륙 전체가 저주를 입었다.

그것을 감안한다면 이 안으로 들어간다는 건 대단한 위험을 안고 있는 일이었다.

위드는 물론 그 부분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었다.

'몰래 하는 거니까 설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내가 한 건지는 모르겠찌. 끝까지 잡아떼면 돼.'

진홍의날개처럼 공개적인 게 아니라, 도굴꾼처럼 유적의 입구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내부로 들어왔던 것이다.

쿠구구구구구궁!

붉은 스콜피온이 그러져 있는 석문이 큰 소음을 내며 열렸다.

내부에는 상당한 양의 마수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마수들이 한꺼번에 위드와 일행을 쳐다보며 공격의 의지를 다지는 거친 울음소리를 냈다.

"용아병, 앞으로 가서 입구를 지켜라."

"알겠다."

왕의 무덤을 지키는 마수들이기에 더 위험하고 레벨도 높으리라.

진홍의날개 길드가 먼저 공략하던 동영상을 봤기에 많은 참고가 되었다.

위드는 이번에는 무리하지 않고 안정된 사냥을 하기로 했다. 용아병과 데스 나이트로 입구를 지키고, 원거리 공격을 위주로 하기로 결정했다.

로뮤나의 고위 마법, 페일의 화살, 제피의 낚싯대도 공격 사거리가 제법 길었던 것이다.

수르카는 용아병들 사이를 빠져나온 마수들과 싸우면 된다.

"우리도 춤을 시작해야지."

"언니, 빠른 리듬으로 연주할게요!"

화령과 벨로트는 춤과 노래로 마수들을 현혹시켰다.

위드는 광휘의 검수을 쓰다가 마나가 떨어지면 엘프의 활로 무장하고 화살로 마수들을 차근차근히 없앴다.

입구에서 철저히 틀어막고 원거리 공격으로 마음 놓고 사냥을 한다.

강한 마수들을 상대로 경험치도 쉽게 올리고, 전리품도 쌓이고 있었다.

모든 전투 계열 유저들이 꿈꾸며 바라는 상황이었다.

"조금 싱겁군. 역시 난 맞아야 되겠어!"

하지만 결국 위드는 용아병들의 머리 위로 넘어가서 마수들에 둘러싸인 채로 전투를 하는 쪽을 택했다.

마수들은 더없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존재들이었지만, 여신의 기사 갑옷이 제 위력을 발휘했다.

"치료의 손길!'

용아병들에게는 이리엔의 치료도 필요하지 않았기에 집중적인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

위드는 조각품을 깎을 때처럼 다소 정적인 일을 할 때도 좋았지만, 이렇게 정신없는 사냥을 할 때도 행복했다.

경험치와 숙련도를 쌓으면서 바로바로 전리품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

"위드 님, 엄호해 드리겠습니다."

페일의 화살이 위드의 뒤쪽으로 돌아서 공격하는 마수들을 위주로 집중됐다.

로뮤나는 마법을 준비해서 한 번씩 크게 터트렸다.

화령과 벨로트의 춤과 노래에 현혹된 마수들은 움직임이 조금 느려지면서 약화되었다.

정신없이 치고받고 싸우면서 왕의 석실이 있는 공간을 제압했다.

"캬아!"

그리고 위드는 물기 어린 눈으로 황금 스콜피온상과, 쌓여 있는 금은보화들을 보았다.

위드는 물기 어린 눈으로 황금 스콜피온 상과, 쌓여 있는 금은보화들을 보았다.

진홍의 날개 길드에서 침입했을 때에도 동영상을 통해 봤던 광경이지만 그 감동이야 조금도 줄지 않았다.

"그, 금화에 보석들이..."

위드의 목소리는 첫사랑에게 고백하는 어린 소년처럼 떨렸다.

그러나 얼굴은 막대한 뇌물을 본 정치인 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쪽으로 가시면 안 돼요. 위드님!"

"이거 건드리면 큰일 나는 거 아시잖아요."

동료들은 위드가 보물을 몽땅 챙기려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진홍의 날개에서도 이 보물을 잘못 건드려서 큰 저주를 받지 않았던가.

그림의 떡이라고도 할 수 있는 보물들. 가져갈 수 없기에 굳이 큰 위험성을 무릅쓰면서 이곳으로 온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리라.

동료들이 달려와서 팔을 잡아끄는 와중에도 위드의 두뇌는 계속 빠르게 돌아갔다.

보석과, 금화, 아이템에 대하여 냉정하게 분석!

'보석 값이 많이 올랐지. 처분을 잘하면 요즘 시세로 340만 골드정도는 나올 것 같군. 마판님에게 맡기면 수고료를 준다고 해도 367만 골드까지는 얻을 수가 있겠어.'

최근 변동된 시세까지 감안하며 오차범위 3% 내외의 정확한 분석.

위드는 쌓여 있는 보석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챱챱챱챱!"

침을 줄줄 흘렸을 뿐!

"어머 이 반짝이는 보석 좀 봐."

"언니. 여기에 가방도 있어요. 공주 로세나가 착용하던 하나뿐인 가방이래요."

"정말? 한정품이잖아. 이것도 꼭 갖고 싶었는데."

화령과 벨로트는 피혁류와 귀금속, 액세서리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꺄아아. 너무 예쁘잖니. 이거 착용하고 광장에 나가봐야 되는데."

"이 영롱한 빛깔 좀 봐요."

가방과 보석, 부츠는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들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사제용 스태프가 이런 곳에 있었네?"

"다이아몬드가 박힌 장갑은 처음 봐요."

이리엔과 수르카도 장비를 보더니 눈빛이 흔들렸다.

마법사로서 진귀한 아이템에 관심이 많은 로뮤나는 붉은 빛이 도는 로브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물건을 보면서 욕심을 내는 건 위드만이 아니었던 것!

위드는 쌓여 있는 보석들을 감상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세공한 솜씨가 상당히 훌륭하군. 드워프의 작품인가? 미세한 차이지만 드워프들이 좋아하는 방식은 아닌데."

드워프들은 예쁘거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어려운 세공보다는 단순하면서도 보석의 빛깔을 최대한 표현하는 양식을 따랐다.

"자세히 보니 다른 것들도 조금 이상해."

위드는 술잔이나 기사들의 모형등이 상당한 실력을 가진 조각사에 의하여 완성된 것임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정중앙에 있는 벨소스 왕의 커다란 관.

관 뚜껑에 새겨진 불과 어우러지는 정령들의 조각 무늬는 보통의 실력이 아니었다.

"스콜피온 상도 상당히 범상치 않은 수준이로군."

위드는 왕의 석실에 들어오기만 하면 되어서 스콜피온을 대충 깎기만 했다.

하지만 이곳의 석실에 있는 스콜피온들은 매우 정교하여 살아서 기어 다닐 것처럼 보일 만큼 놀랄 만한 수준이었다.

보물들이 많이 있었지만 직업이 조각사인 탓에 그렇게 많지 않은 조각품들도 대단한 손길이 간 것임을 알아보았다.

"어쩌면 이것은..."

위드는 벽에 있는 스콜피온의 무늬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감정!"

-실패하셨습니다.

"역시 이건..."

위드의 확신이 더욱 굳어졌다.

"감정!"

『 전갈의 조각품

조각술 마스터 벨소스 라 데우스 3세의 작품이다.

그가 좋아하던 전갈을 표현했다.

예술적 가치 : 472

특수 옵션 : 전갈의 번식을 늘림.

             붉의 힘이 깃듦 』

"역시 조각술 마스터였어!"

위드가 만나지 못했던 마지막 마스터가 벨소스 왕이었다.

그리고 조각품에 담긴 추억이 보이기 시작했다.

★★★★★★★★★★★★★★★★★★★★★

벨소스는 남부 사막에서 태어났다.

왕의 핏줄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어린 시절 내내 어쌔신들에게 쫓겨 다녔다.

사막의 부족들과 대상들을 따라다니면서 성장하고, 그들의 짐을 나르면서 진귀한 물건들을 구경했다.

그의 관심을 끈 것은 칼과 조각품이었다.

벨소스는 여리고 작은 손으로 조각품을 깎아서 대상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용병들로부터 검도 배우면서 사막과 중앙 대륙을 오가는 떠돌이 생활을 하였다.

그가 성인이 되고 나서는 자신의 부족으로 돌아갔다.

벨소스가 착용하고 있는 전갈의 목걸이와, 갓 태어났을 때 등에 새겨진 문신이 부족의 증표.

부르칸 왕국의 국왕이 되고 난 이후 그는 남부 사막을 다스리게 되었다.

벨소스 왕은 불의 대제라고 불렸으며, 전쟁이 불어지면 수많은 정령들이 그를 따랐다.

"부르칸 왕국의 진군이다."

"사막의 크실리야 부족은 집결하라!"

사막의 약탈 부족들과의 전쟁.

약탈 부족들은 양과 낙타를 키우는 유목민들을 살육하고, 가축을 빼앗아갔다.

사막에서는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세력으로 벨소스 왕의 아버지도 그들에 의해 패배하고 죽임을 당했다.

약탈 부족의 대군은 10만 명이 넘는 낙타 기병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긴 곡도를 휘두르며, 활을 능숙하게 다룬다.

근접전에서는 짧은 창을 먼저 집어던지기에 중앙 대륙의 기사단과는 많이 다른 방식으로 싸웠다.

하지만 전투력만큼은 중앙 대륙의 기사단에 못지않았다.

반면에 부르칸 왕국의 부족 전사들은 채 3만 명도 되지 않았다.

낙타도 타고 있지 않은 일반병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는 숫자였다.

싸우나마나 전투의 결말은 정해져있는 것 같았지만, 벨소스 왕의 군대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수만에 달하는 불의 정령이 있었다.

사막이 아닌 초원이나 숲이라면 전투가 벌어지고 난 이후에 모든 것이 타서 없어져버렸으리라.

사막의 모래에서 불의 정령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벨소스 왕은 불의 정령들을 통해 사막에 평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훌륭한 왕은 될 수 없었다.

사막은 곡물이 자라지 않는 땅이 대부분이었고, 오아시스와 강을 두고 뜻이 맞지 않는 부족들간의 싸움은 계속 일어났다.

벨소스 왕은 어쩔 수 없이 중앙 대륙으로 진출했다.

친구인 불의 정령들을 동원하여 전쟁을 치르면서 넓은 영토를 확보하였다.

전쟁에 이길 때마다 쌓이는 막대한 보물들은 부족민들의 눈을 흐리게 했고, 그들은 땅을 일구고 살아가는 대신 더 많은 피를 원했다.

벨소스는 외로움을 느끼고 왕궁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부족에 의하여 전쟁은 계속 확대되었다.

사막 부족들은 전투로 단련이 되어 있었고, 공성 무기까지 확보하여 성벽도 더 이상 난공불락의 대상이 아니다.

벨소스가 싸우지 않더라도, 그의 부족들이 피를 흘리고, 중앙 대륙의 왕국들이 희생을 치러야 되었다.

"조각품은 아름답지만, 인간의 욕심까지 아름답게 만들지는 못하는구나."

벨소스는 왕이면서도 정령과 조각술에 더욱 매달렸다.

궁전을 가꾸고, 진귀한 재료들을 모아서 조각품을 표현했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정원을 꾸며놓았으며, 평화롭게 개울가에서 목을 축이는 낙타의 조각품도 만들었다.

전쟁에 빠져 있는 사막 부족들은 그 조각품의 의미를 알지는 못했다.

벨소스가 왕궁에만 있는 사이에도 모집된 전사들로 왕국의 영토는 넓어지고, 더 많은 보물들이 들어왔다.

왕이 나이가 들었을 때에는 후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세력 다툼을 벌였다.

벨소스 왕과, 불의 정령들의 군대가 있었기에 왕성에는 조용하였지만, 밖으로 나가면 이미 처참한 살육터였다.

벨소스는 계속 불의 정령을 조각하였다. 그를 따르는 정령들도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결국 인간의 육신을 버리고 정령이 되었다.

그는 불의 정령왕이 된 것이다.

벨소스가 왕궁에서 갑자기 사라지고 난 이후, 불의 정령들도 종적을 감췄다.

더 이상 부르칸 왕국을 위하여 싸워야 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후계자들은 왕궁으로 와서 값나가는 것들을 약탈하고 불을 질렀다.

깨끗하게 타오르는 왕궁에는 벨소스가 만들었던 많은 조각품이 있었다.

이후 부르칸 왕국은 부족들 간의 전쟁으로 약화되고, 마센 왕국의 반격에 의하여 다시 사막으로 쫓겨났다.

다행히 벨소스의 몇몇 유품들과 보물들은 왕궁이 약탈되기 전에 시종들에 의하여 므소스 계곡으로 옮겨져서 파괴되지 않았다.

하지만 벨소스 왕은 그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자료가 아주 적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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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품에 담긴 추억을 통해 조각술 마스터 벨소스 라 데우스 3세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셨습니다.

부르칸 왕국의 정보를 입수하셨습니다.

역사적인 지식을 획득하셨습니다.

지식이 14 증가합니다.

이미 정령 창조 조각술을 터득하고 있기에 연관된 퀘스트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조각술 마스터는 정말 평범하지 않은 인생들을 살았군."

위드는 조각품에 담긴 추억을 보며 씁쓸함을 느꼈다.

"누구는 없어서 죽겠는데... 보물을 이렇게 쌓아 놓고도 외로움을 느끼다니!"

이거야말로 진정한 불공평!

왕이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 건 절대 비난만 할 일은 아니었다.

위드가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검소한 왕이란 대체 이해가 안 갔다.

그 많은 재산을 그저 가지고만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다 써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보물을 더 많이 모으고, 적당히 권력으로 횡포도 부리면서 살아야 그게 사람 사는 세상!

아무튼 벨소스 왕도 평범하지는 않았다.

정령 창조 조각술을 만든 마스터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삶을 살았으리라.

조각술 마스터마다 각자 특색은 있었다.

다론은 한 여자를 많이 조각하면서, 조각품에 담긴 애정을 통해 조각 변신술을 깨달았다.

자하브는 왕비를 사랑하면서 조각 검술과 광휘의 검술을 남겼다.

게이하르 폰 아르펜 황제는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하여 제국을 거느렸고, 데이크람은 자연을 벗 삼아 조각하며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을 완성시켰다.

마지막으로 벨소스 왕은 사막의 이글거리는 열기처럼 살다가 사라진 것이다.

"나도 조심해야 되겠어. 잘못하면 착취도 못 해 보고, 흥청망청 돈도 못 써 보고 그러면 안 되니까."

위드는 경계심을 느끼면서도 훨씬 가벼워진 기분으로 왕의 석실을 구경했다.

벨소스 왕이 조각술 마스터라면 완전 남이라고 할 수는 없는 처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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