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29권 : 7) 정령왕의 조각품 (177/520)

7) 정령왕의 조각품

위드는 자신이 얻어 낸 정보를 다른 동료들에게도 알려줬다.

이리엔이 알았다는 듯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왕이 이제 불의 정령왕이 되어서 예전에 그의 유물을 함부로 건드렸을 때 정령들로 인해 대륙이 뜨거워지는 저주가 내렸던 것이네요."

수르카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은 듯이 좋아했다.

"완전 옛날이야기 같아서 신기해요. 베르사 대륙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 이걸 알고 있는 건 지금은 우리뿐이겠죠?"

화령을 벨로트와 같이 벨소스 왕에 대한 공연을 해 보고 싶은지 무언가를 의논하면서 맞춰 가고 있었다.

모라타에는 소규모 공연장도 많았고, 웬만큼 큰 싱당에는 거의 공연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빛의 광장, 빙룡 광장에서도 곧잘 공연이 벌어지는데, 관객들의 높은 호응을 받으면서 크고 작은 공연을 성공시키면 스탯이 오르기도 한다.

위드가 역사적인 사연이 있는 조각품을 만들었을 때 효과가 높은 것처럼, 공연의 내용도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에 근거를 두고 있을 때 평가가 좋았다.

전에 알지 못하던 진실을 알려 줌으로써 공연을 본 관객들이 지식 스탯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더 환영받았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같은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처음 한 번만 스탯을 얻을 수가 있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더욱 좋은 공연들을 매번 찾아다니는 것이다.

바드들이 대륙을 떠돌면서 이야깃거리를 구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럼 일단 아가테의 수정만 가져가면 되긴 하는데."

위드는 조각 재료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 아가테의 수정을 다수 발견하였다.

수량도 적지 않아, 최소한 120개는 되어 보였다.

"근데 가져가도 별 탈이 없는 건지 모르겠군!"

벨소스 대왕의 검, 뿔피리, 그가 착용했다는 사막 전사의 장비 등 여러 가지 보물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놔두고 가져가는 것이 하필 고작 조각 재료라니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그마저도 그져가도 되는지 안심이 안 되었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되나."

위드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발굴가들도 던전에서 보물 상작 보인다고 하여 함부로 열지는 않는다.

어떤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 

이런 경우에는 더더욱 의심하고 경계를 해야만 한다.

위드는 지금까지 경험한 자신의 팔자로 미루어 볼 때 더욱 수상한 기분이 들었다.

"드래곤의 퀘스트가 이렇게 간단히 끝날 수가 없어. 친절하게 용아병까지도 지원해 주고 와서 보물을 챙긴다? 유적의 위치를 찾는 데 약간 헤매거나 몬스터와의 싸움도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는 고생이라고 하기에 모자라."

보통 이런 난이도의 퀘스트는 술술 잘 풀리는 것처럼 방심시키고, 기분까지 행복하게 유도해 놓고 나서 제대로 뒤통수를 친다.

지금까지 난이도 높은 퀘스트를 하면서 얼마나 많이 경험해 보았던가.

"세상에 공짜나 쉽게 풀리는 일은 없어."

동료들은 조용히 서서 그의 선택을 기다렸다.

잘못된 선택을 하였을 때에는 다 같이 화를 입을 수도 있지만 믿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제피가 소곤거렸다.

"위드 님의 결정은 대체로 믿을 만하죠."

벨로트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 생각도 그래요. 밟아도 죽지 않는 바퀴벌레 같다고나 할까."

그 점은 다른 동료들도 동의했다.

★★★★★★★★★★★★★★★★★★★★★

"역시 안 되겠어."

위드는 조각 재료들에 손대지 않기로 했다.

어마어마한 고뇌가 있었지만, 아가테의 수정도 금은, 보석 이상으로 정말 귀한 것이다.

진홍의날개 길드가 보물에 욕심을 내다가 그런 꼴을 당한 것을 알면서도 손을 대서 챙길 수가 없었다.

"인생이란, 양념 통닭을 시켰는데 프라이드 통닭이 올 수도 있는 것이지."

위드는 조각 재료나 다른 보물들에서 시선을 거두고 왕의 석실을 둘러보았다.

욕심을 버릴수록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고, 조각품에 담긴 추억을 읽음으로써 벨소스 왕의 소장품들도 각별하게 느껴졌다.

"정령의 조각품이 많았던 것이 이해가 가는군."

어릴 때부터 험난하게 살면서 정령들이 친구이며 동료가 되었으리라.

그리고 발견한, 절반 정도 완성되어 있는 불의 정령의 조각상!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사막에서 거칠게 살아가던 벨소스 왕의 모습에, 몸 전체가 정령처럼 불로 이루어져 있었다.

위드는 그 미완의 조각상을 보는 순간 어긋난 퍼즐의 모든 것들이 맞춰지는 것처럼 확신이 생겼다.

"보물이 아니라서 아가테의 수정은 가져가도 괜찮을지도 몰라. 어떤 저주가 생기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

위드도 벨소스 왕도, 조각사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간혹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하는 동업자 정신이 있지 않던가.

"그렇지만 벨소스 왕은 조각술 마스터였고, 그는 정령 창조 조각술을 가지고 있었어."

위드는 따로 독학으로 스킬을 익혔지만, 조각품에 담긴 추억으로 봐서 벨소스 왕이 정령 창조 조각술을 터득했으리라고 100% 확신했다.

"이곳의 미완의 조각상을 완성하면 정령 창조 조각술을 배울 수 있을 테지."

그렇다면 이 조각품을 마저 완성을 해 봐야 된다. 여기가 조각사와 관련이 있는 장소인 만큼, 조각상이 매우 중요한 열쇠라고 볼 수 있었다.

동료들은 계속 시시각각 깊은 상념과 혼잣말을 반복하는 위드를 물끄러미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하시려는 거죠?"

"몰라요. 당장이라도 보물을 가지고 도망칠 거 같진 않은데......"

"주변을 둘러보면서 다시 한 번 확인도 하네요."

"앗, 웃고 있어요!"

위드의 입가에 드디어 자신만만한 썩은 미소가 맺혔다.

★★★★★★★★★★★★★★★★★★★★★

"불의 정령왕이라 룰루루!"

위드는 콧노래를 부르며 정령의 돌 브루에시아를 깎았다.

"과연, 명품이라서 다르긴 다르군."

벨소스 왕이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정령의 돌은 거의 구할수가 없는 재료였다.

정령술사들이 정령계로 가서 퀘스트를 하고 공적치를 쌓아서 가져와야 하는 것이었다. 아니면 최상급 정령이 돌로 변한 것을 발견해야 된다.

정령의 돌에는 속성에 맞는 정령의 힘도 담겨 있었다.

위드가 조각을 할 때마다 불길이 화르르 크게 일어났다.

마치 중국집에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요리를 하는것 같은 모습이었다.

-불에 데어서 생명력이 237 감소합니다.

위드에게 조각품을 깎으면서 이 정도의 고난 따위야 자장면을 먹는데 단무지가 다 떨어진 정도.

조각을 한 부위는 돌이 굳지 않고 불길이 계속 넘실거렸다.

정령의 돌 브루에시아야말로 정령왕을 조각하기에 최고의 재료였다.

페일이 와서 알려 주었다.

"위드 님, 이제 놈들이 나타날 시간이에요."

"벌써 1시간이 지났군요."

벨소스 왕의 유적에는 마수들이 득실거렸다. 따로 서식지가 있어서, 통로와 석실로 마수들이 주기적으로 들어오기도했다.

위드는 동료들과 함께 이 마수들도 처리를 해야 되었다.

용아병과 동료들에게 맡겨 놓아도 되지만 직접 사냥하고 싶었던 것이다.

"광휘의 검술!"

그새 검술의 비기도 숙련도가 늘어서, 빛의 참새가 5마리씩 나타났다.

참새가 5마리로 늘어나자 몬스터에 충돌하며 일어나는 효과는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숙련도가 늘어날수록 검술의 비기답게 확실하게 강해졌다.

"위드 님, 이번에는 아이스 로커가 옵니다."

보스급 마수 아이스 로커!

"분검술!"

위드는 광휘의 검술이 아니라 분검술을 사용했다.

분검술은 강한 몬스터 1마리를 상대로 사냥할 때의 효과가 정말 좋은 편이었다.

샤샤샤샤샥.

위드의 분신이 9명이나 나타났다.

크르르르......

아이스 로커는 경계하면서 약간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분신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페일과 제피, 수르카는 아직 공격을 하지 않고 때를 긷가렸다.

"간다!"

위드가 아이스 로커를 향해서 달려갔다. 분신들도 동시에 앞으로 뛰었다.

캬호!

아이스 로커는 정면으로 강한 입김을 내뿜었다.

극한의 냉기!

적중된 분신의 몸이 달려가는 도중에 빠르게 얼어붙었다.

캬하하하학!

아이스 로커의 팔꿈치가 분신을 강력하게 쳤다.

회색빛으로 변하여 흩어지는 분신.

분검술은 적의 특수 공격을 무력화하는 데 효과가 컸다.

위드는 다른 분신들이 몬스터의 공격을 유도하는 사이에 뒤로 돌아가, 데몬 소드로 아이스 로커의 뒷목을 강타했다.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다시 분신들이 아이스 로커에게 덤벼들었다.

위드는 그 틈에 연속 공격을 했다.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연속으로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아이스 로커가 머리를 강타당하여 혼란 상태에 빠졌습니다.

"밟아!"

혼란 상태에 빠지면 여러 분신들이 다 같이 공격을 하였기에, 연거푸 퍼붓는 그 공격력이란 무자비한 수준!

"죽어랏."

"저도 때릴 거예요!"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제피와 수르카가 공격을 가했다.

로뮤나의 마법과 페일의 화살도 적중되었다.

위드가 '밟아!' 라는 말이 신호였던 것!

낮은 방어력과 생명력에, 공격력도 약해서 근접전에서 그다지 나서지 못하던 화령과 벨로트도 활약을 했다.

소검으로 찌르고, 강철 악기로 때리면서 사냥을 했다.

위드가 분검술을 익히기 전이었다면 제피와 같이 정면에서 상대하고, 다른 동료들은 지원을 했을 것이다.

웬만큼 강한 몬스터를 상대로 하여 싸울 때 파티 플레이의 정석!

이제 위드는 분검술을 이용하여 몬스터가 약해지거나 느려지지 않았을 때에도 치명적인 일격을 쉽게 터트리고, 혼란도 잘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검술의 비기를 익히고 나서 전투에서 많은 것이 달라진 것이다.

분검술은 몬스터를 여러 마리 동시에 사냥할 때의 효과도 일품이었다.

분신들이 일어나서 같이 싸우니 수비에도 도움이 되고, 전체적인 공격력이 커졌다.

급격한 마나 소모가 단점이긴 하지만 사냥 속도가 월등히 빨라지게 만드는 이유였다.

게다가 이제는 마나를 올려 주는 패로트의 링에, 바하란의 팔찌, 헬리움으로 만들어 낸 여신의 기사 갑옷까지 입고 있기에 분검술도 필요할 때마다 아낄 필요 없이 사용했다.

검치와 수련생들은 분검술을 익히고도 아직 제대로 활용을 못하였지만 위드는 완벽하게 써먹고 있는 것이다.

"과연 검술의 비기가 좋긴 좋군!"

숙련도를 듬뿍 올리면서 경험치와 전리품도 획득!

위드와 던전에 오기로 했을 때부터 동료들은 가방을 많이 가져왔다.

사냥을 하기만 하면 매번 전리품으로 가득 찼던 것이다.

-지금쯤 출발하면 될까요?

-아직 조금 더 기다리셔도 될 것 같습니다.

마판은 주기적으로 페일에게 귓속말을 보내서 상황을 확인했다.

최근에 매우 비싼 돈을 들여서 길들인 가고일 12마리를 구입했다.

최고의 수준에 오른 상인들만이 거느린다는, 하늘을 나는 가고일 운송 부대를 장만한 것이다.

마판은 이렇게 언제라도 와서 거래를 할 수 있는 준비를 마쳐 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위드와 동료들이 유적에서 벌이는 사냥은 여러모로 짭짤했다.

"여기도 훌륭한 사냥터로군."

마수들이 대규모로 서식하고 있고, 전리품으로는 가끔 벨소스 왕의 보석이 떨어졌다.

혼자라면 다소 버거웠겠지만 믿음직스러운 동료들과 같이왔고, 직업 구성도 잘되어 있었다.

위드는 던전의 보스급 몬슨터가 아닌 이상 정면 방어의 역할도 가능했고 공격력도 높았다.

동료들도 각자의 직업에서 실력이 뛰어나서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

초반부터 쭉 같이 성장해 왔으니 눈빛만 봐도 의미를 이해했다.

'앞으로 3시간만 더 사냥을 하자는 뜻이구나. 으윽,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다리에 감각이 없어.'

'이놈의 마수들은 왜 이렇게 많이 나와. 위드 님이랑 사냥을 하면서 인내력 스탯이 또 올랐어.'

'아아, 위드 님이 차려 주는 맛있는 밥 먹고, 새로 산 신발이랑 옷이랑 걸쳐 입고 걸어 다니고 싶다."

★★★★★★★★★★★★★★★★★★★★★

"크흐흐흣."

"사형, 이거 정말 괜찮은데요."

"그래. 사냥하는 맛이 난다."

검치와 수련생들도 분검술과 광휘의 검술을 사용했다.

몬스터들은 점점 강해져만 가는데 기초적인 검술만 쓰면서 버텨 오다가 스킬을 운용해 가면서 잡아 보니 사냥에 제대로 탄력이 붙었다.

몬스터를 해치우고 던전의 보물을 찾거나 보스급 몬스터를 집단 사냥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혼자서 잡을 수 없는 보스급 몬스터를, 사형제들이 힘을 합쳐서 사냥을 한다.

말을 타고 달리며 검을 휘두르거나 와이번을 타 보는 것도 사나이의 로망!

"신 나지 않느냐."

"옛, 스승님!"

"마음껏 놀아 보자!"

바르고 성채 주변에는 이제 오크들이 있고, 레벨이 높은 유저들도 대거 찾아왔다.

검치와 수련생들은 몬스터들을 물리치고 험준한 산들을 장악하였다.

높은 산의 정상에 올라서 함성을 지르며 사방을 돌아보았다. 

구름과,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들이 아래에 있다. 그보다 멋진 광경이 없었다.

야성을 만끽하면서 강한 힘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길!

검치와 사범들, 수련생들에게 레벨 같은 수치는 가슴으로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만족할 만큼 실컷 싸울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 있다는 데에 전율을 느꼈다.

새벽의 이슬이 맺혀 있는 산길을 달리면서 몬스터의 무리를 찾아내고, 사형제들끼리 대대적으로 겨루는 그 기분!

무기술 스킬이 늘어나는 건 둘째 치고, 이렇게 싸울 수 있다는 것에 고마운 기분이 들었다.

경험치가 쌓이면서 레벨이 마구 오르고, 전리품ㅁ도 셀 수 없이 획득했다.

바르고 성채에서 지낸 시간도 꽤 되다 보니 적응을 하여, 최근에 죽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둘치야."

"예, 스승님."

"우리가 이 로열 로드를 한 지도 꽤 오래됐구나."

"시간이 벌써 흘렀습니다, 스승님."

"그래......"

검치는 오른손에 들려 있는 이가 듬성듬성 빠진 철검을 쳐다봤다.

'실감이 난다.'

가상현실이라는 것이 이렇게 기쁜 것인지 몰랐다.

육체를 단련할수록, 어쩌면 사회에서는 그것을 쓸 기회가 더욱 줄어들었다.

남과 시비가 붙어도 싸우면 안 되고,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때려도 안 된다.

격투기에 나가서 관중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하여 싸울 필요도 없었다.

로열 로드는, 채워지지 않던 욕구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중학생 때 잡아 봤던 쇠 파이프만큼이나 마음에 드는구나."

"수련생들도 좋아하고 있습니다."

도장의 수련생들도 사형제들끼리 전투를 하고 모험도 하는 로열 로드를 하는 시간을 매번 기다렸다.

주말이나, 휴식을 위해 쉬는 시간에도 자진해서 캡슐로 들어갔다.

"그런데 정말 강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검치가 조용히 되뇌고 있을 때, 검삼치와 검사치, 검오치도 와서 조용히 듣고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서 가장 강해지지 못하면 그게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만한 일일까?"

사범들과 수련생들은 죽음에 대해서도 가볍게 받아들였다.

로열 로드에서는 레벨 차이나 장비 차이가 심하게 나면 이기지 못한다. 판단력, 육체의 반응이 매우 큰 도움이 되지만, 그렇더라도 한계는 있었다.

"즐거운 꿈과 같구나. 이곳은......"

"......"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고 싶은 건 검을 배우는 것이다. 검을 배움으로써 달라지고,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몇십 년을 고되게 단련했더라도 한순간의 실수로 패배를 겪기도 하고 목숨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젊을 때의 혈기와 왕성함도, 나이를 먹게 되면서 약해진다.

허무하더라도, 그것이 인생이었다.

사범들이 그럼에도 험한 길을 택한 이유는 각양각색이었지만, 결국 검치의 인도 아래 검을 배우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갔다.

진정한 육체의 괴로움, 강해질 때의 기쁨, 생명의 위협, 훌륭한 검술.

이 모든 것들을 통해 강해지고, 자기 자신의 내면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라도 우리 정말 강해져 보자꾸나."

"그렇다면......"

"이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

위드가 벨소스 왕의 유적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이제 엿새밖에 안 남았다.

악룡 케이베른의 퀘스트에는 시간제한이 있었기 때문!

"진짜 이 버릇없는 도마뱀은 도움이 되는 게 없어!"

조각품도 만들고 사냥도 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외부의 소문을 들었다.

-바드레이가 퀘스트를 또 완수한 모양이야.

-방송에 나왔어?

-아직. 방금 속보로 떴어. 방송 중계는 오늘 저녁에 해 준다더라.

바드레이가 직업 마스터 퀘스트 열다섯 번째를 성공시켰다는 소식이었다.

직업 마스터 퀘스트는 일반적으로 15단계에서 20단계까지로 이루어졌다고 했으니 거의 끝 부분에 도달해 있었다.

위드는 고작 열네 번째 퀘스트를 하고 있다.

조각사의 퀘스트가 어쩌면 흑기사보다 짧을지도 모른다는 행운을 바랄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써는 크게 불리했다.

"으으음!"

남이 잘될 때의 속 쓰림과 배 아픔을 참으면서 정령왕의 조각품을 만들었다.

"이럴 때 먹을 수 있는 속 쓰림 약을 개발한다면 그 회사는 떼돈을 벌 거야."

늦기 전에 케이베른에게 가야 한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시간이 넉넉한 상황은 아니다.

그나마 절반 정도는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 장점이었지만, 역으로 거기에 맞춰서 나머지 부분을 표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정령의 돌은 조각칼을 댈 때마다 불길이 크게 피어올라서 작업을 하는 환경도 나쁘다.

생명력이 감소하는 것이야 어쩔수 없다고 치더라도 시야가 잘 확보되지 않았다.

정말 불덩어리를 다루는 것처럼 어려움을 참아 가면서 조각품을 만들어야 해서 다소 난이도가 있었다.

서두를수록 작품을 망가뜨릴 수 있기에 더욱 꼼꼼하게 집중력을 발휘했다.

"아무튼 나중에 레벨을 올려서 도마뱀 녀석들을 몽땅 다 죽여 버려야 하는데......"

마법의 대륙에서는 드래곤도 사냥했었다.

언젠가 될지는 몰라도 차후를 기약하는 위드였다.

띠링!

-만드신 조각품의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벨소스 라 데우스 3세에게 바치는 후배의 조각품."

위드는 정령왕의 조각품을 완성했다.

조각품의 이름을 정하는 것은 마음대로였지만 아부는 필수!

-벨소스 라 데우스 3세에게 바치는 후배의 조각품이 맞습니까?

"불의 대제이며 정령왕이신 분의 작품을 조각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맞다!"

위드는 후련하게 외쳤다.

케이베른의 퀘스트 제한일까지 이제 고작 엿새 남겨 놓고 완성이었다.

『 대작! 벨소스 라 데우스 3세에게 바치는 후배의 조각품을 완성하셨습니다.

벨소스 왕은 조각품을 만들면서 외롭게 살아갔다. 그의 조각품에 대

해서는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으며, 예술가들의 평가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벨소스 왕이 남긴 미완의 작품을, 최근 혜성처럼 떠올라 대륙의 조각

계를 밝히고 있는 거장 조각사 위드가 완성시켰다. 조각사 위드는 아

르펜 왕국의 존엄한 국왕의 신분이기도 하다.

그의 조각품은 대륙에 항상 커다란 화제를 몰고 왔으며, 귀족들이 탐

내는 것 중의 하나이다.

이 놀라운 작품이 알려진다면 벨소스 왕의 예술성에 대하여 다시 평

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하리라.

예술적 가치 : 조각술 마스터 벨소스와, 그에 버금가는 조각사의 공동 작품

19,834.

특수 옵션 : 벨소스...상을 본 이들은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가 하루 동안 31% 증가한다.

대륙 전체에서 불의 정령들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이 3.2% 늘어납니다.

정령술사의 불의 정령 소환 스킬의 레벨이 일주일간 1단계 오릅니다.

더 많은 불의 정령들이 나타납니다.

조각상과 가까운 거리일수록 화염 마법의 위력이 커집니다.

전 스탯 24 상승.

다른 조각품과 중복 적용되지 않음.

지금까지 완성한 대작의 숫자 : 15 』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손재주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명성이 1,953 올랐습니다.

-예술 스탯이 21 상승하셨습니다. 

-인내력이 7 상승하셨습니다.

-카리스마가 9 상승하셨습니다.

-투지가 3 상승하셨습니다.

-자연의 원초적인 힘을 조각하여, 자연과의 친화력이 37 오릅니다.

-불의 정령왕을 조각하셨습니다. 특별한 경험으로 인하여 불에 대한 저항력이 3.4% 오릅니다.

-대작 조각품을 만든 대가로 전 스탯이 3씩 추가로 상승합니다.

위드 혼자서 만들어 낸 조각품은 아니라서 스탯을 다소 적게 얻었다.

그렇더라도 대작을 완성해 낸 것은 대단한 수확!

'피땀을 흘리며 죽을힘을 다해 조각을 한 보람이 있군. 이번 건 유난히 어려웠지. 매번 조각품을 만드릭가 만만치가 않아.'

화염을 몸 전체에 두르고 있는 벨소스 왕.

불길을 정확하면서도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해야 하기에 어려운 작품이었는데도 실수한 부분 없이 잘해냈다.

대부분의 조각품들은 빛과 주위의 풍경과 같이 훌륭하게 잘 어우러진다.

막 새벽의 아침에 큰 감동을 주기도 하고, 청명하고 맑은 하늘과 흰 구름 아래에서 멋들어진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신들의 정원은 넓은 땅에 건물들과 조각물들로 하늘과 대지 전체에 걸쳐서 웅장함을 자아내는 노가다의 정점에 달한 장대한 예술품이었다.

불의 정령왕은 불꽃처럼 스스로 빛을 발산하면서, 어느 곳에 있더라도 존재감과 느낌을 강하게 드러냈다.

위드는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꼈다.

'재료도 정말 좋았고, 제대로 얻어걸렸구나.'

동료들도 작품을 보며 감탄했다.

"역시 위드 님이니까 대작 정도는 그냥 만드시는구나."

"저는 원래 이렇게 멋진 작품이 나올 거란 걸 알고 있었어요."

"......."

어렵게 고생하여 창조해 낸 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동료들!

위드는 입가에 억지 미소를 지었다.

불에 대한 저항력이 오르면서 사냥하기가 훨씬 편해졌다.

일반적으로 빙계 마법이 훨씬 까다로운 건 사실이었다. 몸이 굳어서 잘 움직이지 못하게 됨으로써 전투력을 상당히 많이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몬스터들이 가장 자주 활용하는 것은 불과 관련된 경우가 많았고, 위험한 화염 마법도 많이 있었다.

게다가 불의 저항력이 100%가 되면 드래곤의 검, 레드 스타를 쓸 수 있다.

위드의 경우에는 지골라스에서 임벌의 마법진을 통해 이미 7%가 올랐고, 지금 다시 3.4%가 늘었다.

유명한 화염의 링 같은 액세서리를 착용하여 저항력을 더 높일 수도 있었다.

'목걸이나 팔찌까지도 구입한다면 최대 79% 정도까지도 늘릴 수 있겠어.'

불과 관련이 있는 종족으로 조각 변신술까지 쓴다면, 거기에 대장장이 스킬까지 적용된다면 레드 스타를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아이템은 가지고 있으면 쓸 수 있는 날이 다 온다니까. 버릴 물건이 하나도 없지.'

잡템까지 알뜰하게 챙겨 왔던 생활의 보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어릴 때 사용하던 기저귀를 자식에게 물려줄 정도의 절약 정신!

조각 변신술로 몸을 바꾸는 종족에 따라 저항력은 달라지겠지만, 미리 준비할 시간만 있다면 활용할 수 있었다.

단지 검의 원래 주인인 드래곤이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이 걸릴 뿐.

"역시 장물은 그런 점에서 곤란하기는 해."

위드 입장에서야 드래곤을 만난 것은 악룡 케이베른으로도 충분했기에 보통 때 사냥을 위해 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적당히 중요한 순간에 한 번씩 활용하다가, 검의 이름값이 높아졌을 때 바가지를 듬뿍 씌워서 팔아 버리면 되는 일.

그때 석실의 온도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낮의 사막처럼 온도가 높아지더니, 이내 사방에 불길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황금 스콜피온의 조각상도 눈을 뜨고 있었다.

"으으음......."

"이거 큰일 나는 거 아니에요?"

"왠지 조짐이 좋진 않아 보여요."

위드와 동료들은 과거 진홍의날개 길드가 당했던 수난을 떠올렸다.

불의 대제 벨소스 왕의 저주를 받아서 탐험대가 전멸하고, 대륙이 저주를 받고 말았다.

"꿀꺽."

위드는 9시 뉴스에서 도시가스 요금이 오른다는 소식을 볼 때처럼 방심하지 않았다.

불길이 확 퍼지더니, 그 안에서 불의 정령들이 나와서 날아다녔다.

석실 안을 마구 휘젓고 돌아다니는 불의 정령들!

멋지지만 상당히 두려운 광경이기도 했다.

정령왕의 조각품이 생명을 부여하지도 않았는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나의 땅에 방문한 인간들이여.......

벨소스 왕의 재림!

위드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가장 빨리 무릎을 꿇었다.

"존경해 마지않은 위대한 벨소스 대제시여,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지극한 영광이옵니다. 저는 대륙을 방랑하고 있는 후배 조각사입니다. 간악한 악룡 케이베른의 부탁으로 감히 이곳에 방문하여 벨소스 대제를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속사포처럼 아부를 쏟아 내는 위드!

벨소스 왕의 고개가 위드와 동료들을 훑으며 지나갔다.

-너희는 나를 만날 자격이 있다. 탐욕에 눈이 멀지 않고... 나의 시험을 훌륭하게 통과하였다.

뜨끔!

위드만이 아니라, 일행 중에도 찔리는 구석을 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너희 가운데에는 나의 뒤를 이어서 영광의 길을 걷는 자도 있다.

벨소스 왕의 주변이 불로 뒤덮였다. 그리고 벨소스 왕이 그 불길을 타고 위드에게 걸어왔다.

-그대여, 고개를 들고 일어서라. 진정한 아름다움을 깨달은 사람은 다른 이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리라.

-정령왕 벨소스 대제의 인정을 받아 기품과 명예가 24씩 오릅니다.

위드의 머릿속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자기 뜻한 방식대로만 세상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야 할 때는 시도 때도 없이, 틈만 나면 찾아왔다.

'이대로 더 있으면 점수를 딸 수 있을까? 모름지기 두 번은 사양을 해야 예의 바른 느낌이 나는데. 근데 조각사들끼리의 예법으로는 일어나도 될 것 같고, 하지만 지금 일어나서 바로 조각사로서 동등한 대우를 해 달라고 하면 그것도 이상할 거야.'

위드는 그냥 조금 더 고개를 숙이고 있기로 했다.

벨소스 대제는 상당히 무자비한 인물이다. 과거 인간이었을 때에도 그랬고, 정령왕이 되고 나서도 그의 비위를 거스른 진홍의날개 길드에 잔혹하게 보복을 했다.

상대가 무서울수록 자연스럽게 정중해지는 게 세상의 이치!

평소에는 목욕탕이 제집인 것처럼 시끄럽게 물장구치며 놀던 동네 초등학생 꼬마들도 몸에 문신이 잔뜩 그려진 아저씨들이 있으면 얌전히 노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니옵니다. 조각사의 길을 먼저 개척하신, 흠모하던 분을 만나다 보니 이렇게 뵙는 것이 저에게는 편합니다."

벨소스 왕에 대해서는 별로 사전 지식도 없었고 유적에 와서는 어떻게든 물건을 훔쳐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지만, 위드의 입에서는 속마음과 다른 말들이 술술 나왔다.

아부의 달인답게 감격에 겨운 듯 목소리 끝을 떨어 주는 세밀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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