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30권 : 2) 불의 전사 (182/520)

2) 불의 전사

"정말 적당하군."

위드는 조각품을 보며 만족했다.

혼돈의 대전사 쿠비취는 벨소스 왕의 유적에서 정령왕의 조각품을 깎을 때 얻은 재료, 비루에시아 가루를 몰래 발라서 만든 작품이었다.

"비싼 건데 잘 써야지."

조각품 재료를 재활용하는 정신.

위드는 조각술의 비기를 발동했다.

"조각 변신술!"

-조각 변신술을 사용합니다.

조각술에 대한 무한한 애정은 그 조각품과 조각사를 서로 닮게 만든다!

키가 2미터 40센티로 커지고, 몸 전체에서는 불길이 일어났다.

-몸의 형태가 바뀌면서 현재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의 상당수가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불에 녹는 갑옷과 보호구를 착용하게 되면 내구력이 감소합니다.

종족이나 형태에 따라 필요한 장비를 새로 구하십시오.

-조각 변신술의 영향으로 불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종족 고유의 스킬, 단거리 텔레포트 마법을 쓸 수 있습니다.

예술 스탯이 사라지고 힘과 민첩, 지혜가 대폭 상승합니다.

조각 변신술이 풀릴 때까지 우효합니다.

위드가 아끼는 헬리움 갑옷은 혹시나 상할까 봐 아까워서 착용하지 못했고, 다른 액세서리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혼돈의 전사들은 원래 불에 잘 녹지 않는 지골라스의 광물로 제련한 도끼와 특수한 저항력을 가진 짐승의 가죽을 엮은 채찍을 다룬다.

하지만 위드에게는 굳이 그런 고유한 무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드래곤의 검, 레드 스타.

위드를 포함하여 모든 유저들이 현재 장비할 수 있는 최상의 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검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팔자가 더럽다고 해도 딱 한 번 사용하는 걸로 드래곤이 찾아오진 않겠지. 솔직히 재수가 없으면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싸워보자."

위드는 레드 스타를 꺼냈다. 그리고 서서히 검집에서 검을 빼냈다.

스르르르르릉!

음악 같은 소리를 내면서 뽑히는 검.

위드가 지폐 넘기는 소리 다음으로 좋아하는 소리였다.

『 드래곤이 만든 검 레드 스타를 착용했습니다.

제한 레벨과 불에 대한 저항력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대장장이의 무기에 

대한 이해력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킬을 사용해도 지치지 않습니다.

더욱 빨리 움직이고, 적의 공격이 빗나갈 확률을 늘립니다.

공격이 상대의 방어구를 관통. 마법 보호를 무시하고 뚫어 냅니다.

전투 능력을 약화시키는 부상을 입힐 확률이 늘어납니다.

불의 힘의 위력이 2배로 증폭됩니다.

검에 담겨 있는 불의 힘으로 인해 발휘할 수 있는 공격력이 크게 높아집니다.

마법 저항력 +30%

검에 담겨 있는 마력이 중급 이하의 몬스터들을 강하게 위축시킵니다.

공격 스킬의 위력이 향상됩니다.

불을 다스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검에 담겨 있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불화살, 불의 진노, 화염 폭발, 화염 소멸, 지옥의 검화, 파이어 히드라 소환.

특수 스킬 레드 스타는 지혜와 지력, 마나가 부족하여 쓸 수 없습니다.

대지 소멸은 힘과 검술, 마나가 부족하여 쓸 수 없습니다.

혼돈의 전사는 불의 힘을 다스릴 줄 아는 종족입니다. 레드 스타가

뿜어내는 화염을 생명력과 마나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생명력과 마나의 최대치가 120%가 증가하고, 그 회복 속도고 2배가 됩니다. 』

혼돈의 대전사가 되어 있는 위드의 몸에서 새하얀 불꽃이 타올랐다.

조각 변신술로 종족을 바꾸면서 예술 스탯이 사라지고 다른 스탯들은 크게 들어난다. 검의 추가적인 효과까지 부여되었다.

"이것이 바로 전지전능한 집주인의 기분일까?"

위드는 리치로 변신하여 바르칸의 아이템을 착용하고 언데드를 소환하는 것도 가능했다.

별로 좋지 않은 죽은 자의 힘이 무섭게 늘어나는 부작용은 감수해야 될 테지만, 그 강함은 이미 여러 번 증명되었다.

위드가 언데드를 지휘할 때가 멋지다면서, 지골라스에서의 모습을 재방송해 달라는 시청자들의 요구는 아직까지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무너진 암벽 협곡에 있는 지금도, 주변에는 전사들의 시체가 즐비하니 언데드 군단을 소환하여 한바탕할 수는 있으리라.

그러나 언데드의 힘은 강력하지만 지금 당장 조각 생명체와 동료들에게 퍼부어지는 적들의 공격은 어찌할 수가 없는 것.

위든 대신 죽음을 택했던 금인이나, 구박만 실컷 받은 누렁이나, 만날 타고 다니는 와삼이까지, 그동안 부려 먹으며 정이 많이 쌓였는데 죽게 할 수는 없다.

"앞으로 평생 부려 먹어야지. 여기서 이 녀석들이 죽으면 나만 손해야. 콜 데스 나이트 반 호크,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불렀는가, 주인."

"너희는 이곳을 지켜라. 킹 히드라를 부탁한다."

"알겠다."

토리도와 반 호크는 위드에게 종속되어 있기에 어떤 종족으로 변하더라도 부를 수가 있다.

위드는 암벽 협곡을 쳐다보며 스킬을 사용했다.

"블링크!"

찰나의 순간, 위드는 바로 화살을 쏘아 대는 슬레이언 전사 등 뒤에 나타났다.

"크엣?"

파충류의 일종인 슬레이언 부족에게 화염을 내뿜는 존재는 천적과도 같은 것. 위드가 검을 휘두르자 바로 불길에 휩싸여서 아래로 추락했다.

-불의 힘이 전사들에게 치명적으로 적용됩니다.

전투 능력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블링크!"

위드는 암벽 협곡에서 연속으로 이동하며 활을 쏘는 이들을 제압했다.

검이 한번 휘둘리면 무려 8미터에 달하는 넓고 커다란 불기둥이 일어난다.

피할 수도 없으며, 살짝 닿기만 해도 불에 휩싸여서 전투 능력을 빼앗기고 생명력도 상실.

높은 협곡에서 추락하면 추가적인 충돌 데미지로 인하여 사망!

현재의 위드는 슬레이언 전사들에게 천적 그 자체였다.

"불 인간부터 없애라."

"저놈이 가장 나쁜 놈이다."

위드에게로 화살 공격이 집중되었다.

주변뿐만이 아니라 맞은편 암벽에서도 화살이 쏘아졌다.

"블링크."

위드는 단거리 텔레포트를 사용하면서 공격을 하고 순간적으로 이동하였기에 붙잡히지 않았다.

혼돈의 대전사 쿠비챠를 사냥할 때 이것 때문에 위드도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

그나마 그는 대전사로서 당당하고 고지식하게 힘을 겨루는 면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위드는 얍삽하게 블링크를 시전하면서 검의 힘을 최대한 활용하여 싸웠다.

"화염 폭발!"

마나에 여유가 있어서 검으로 협곡의 한 부분을 가리키자, 불덩어리가 생성되어 일시에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폭발!

슬레이언 전사들이 파편에 휩쓸려서 큰 피해를 입거나 땅으로 추락했다.

일반적인 성벽을 두고 치르는 공성전이었다면 지키는 쪽인 슬레이언 부족들에게 매우 유리한 싸움이 되었으리라는건 당연했다.

그러나 여기처럼 지형적으로 까다로운 암벽 협곡에서는 타격을 얼마나 입었든 상관없이, 아래로 떨어지면 거의 끝장이었다.

대재장의 자연 조각술에, 조각 변신술이라는 비기를 사용하면서 맞춤형의 전투를 했기에 오히려 이 암벽 협곡은 적들의 무덤으로 가장 적합한 장소.

위드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식으로 블링크를 사용하며 협곡에서 활을 들고 있는 전사들부터 물리쳤다.

"슬레이언 부족의 활이라. 이거 레벨 제한이 낮고 종족 제한도 없다니 괜찮군. 속사 스킬을 올려 주는 옵션만 있었으면 바가지를 듬뿍 씌워도 팔릴 텐데. 약간 아쉽기는 해도 그런대로 비싸게 받을 수는 있겠어."

멀리 가지 않더라도, 이제는 모라타에서도 중앙 대륙의 이주민들에게 레벨 300대의 무기는 쉽게 팔아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템에 대한 확인을 마치고 나니 더욱 솟구치는 전투 의지.

"이쪽으로 온다. 살려 줘!"

"으웨에엑. 도망치고 싶다!"

"흐이익."

"키야아아아악!"

몬스터를 위축시키는 레드 스타의 권능으로 인하여 슬레이언 전사들은 위드에게 냉정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화살 공격이 서서히 약해져 가고, 비행 생명체들이 활개를 치며 협곡을 누비면서 날아다녔다.

암벽 협곡의 아래에서 조각 생명체들이 동료들과 힘을 모아 잘 싸우고 있었다.

암벽 붕괴와 추락으로 상처를 많이 입고 약화된 슬레이언 전사들이었기에 전투 중에 죽은 이들도 상당수.

"하르셀 산악 지역을 지배하는 전사들이여, 우리는 이곳에서 침입자를 몰아낼 수 있다. 아직도 우리가 가진 힘은 거대하다!"

"적들을 이곳에서 모두 없애쟈. 동족들의 복수를 우리의 손으로!"

부족의 장로들은 전사들을 다시 수습하려고 애썼다.

대규모 전투일수록 사기를 회복하고 조직적으로 싸우게 되면 큰일.

위드는 장로들 옆에 나타났다.

"놈이 여기에 왔다. 지원군을 불러라."

"침입자의 대장인 저놈을 죽여야 한다!"

장로의 호위 전사들이 창으 들고 경계했다. 그들의 레벨은 아무래도 420보다는 좀 더 높을 것이다.

위드는 스킬을 시전했다.

"불의 진노!"

정면에 불기둥이 일어나서 전사들을 태웠다.

레드 스타의 최고의 장점은, 공격에 성공하게 되면 적들의 전투력을 상당히 빼앗아 버린다는 점이다.

일단 화염에 휩싸이게 되면 불의 저항력이 극도로 높거나 사제들의 치료 마법을 받지 않고서는 진화할 수가 없다.

게다가 혼돈의 전사는 레드 스타에서 자연적으로 발산되는 불길로 생명력과 마나를 채울 수 있는 종족이었다.

생명의 원천이 되는 젊은 여자의 피를 무한정 공급받는 뱀파이어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럴 경우, 뱀파이어 자신보다 훨씬 강한 적과도 싸워 이길 수 있다.

마법과 공격 스킬ㄷ로 아낌없이 사용할 수 있어서, 전투력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드래곤의 검을 들고 혼돈의 전사의 스킬을 마구 활용하며 적들을 없애는 위드의 전율적인 카리스마!

그가 지나간 장소는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물론 슬레이언 전사들이 떨어뜨린 전리품의 습득은 완전히 끝난 상태.

슬레이언 부족들은 하르셀 산악 지역을 오래 다스렸던 부족이기에 다양하고 비싼 전리품을 가지고 있었다.

"전사들이여, 저 여전사가 약해 보인다. 저 여자부터 없애라."

일부의 부족 장로들은 조각 생명체 중에 게르니카를 노렸다.

그녀는 바바리안 여전사로, 양손에 하나씩의 무기를 가지고 물가에서 싸웠다.

어느새 적들 사이로 많이 들어와 있었기에 목표가 된 것.

그때 갑자기 장로들이 있는 장소의 땅이 갈라지더니 데스웜의 머리가 나타나서 그들을 삼켰다.

지렁이라는 이름을 가진 데스웜은 미식가였다.

지휘관급을 우선하여 먹어 치우는 까다로운 습성을 가졌다.

암벽 협곡이 붕괴되어서 소심해져 있던 녀석이 마침내 머리를 내밀고 전투를 시작한 것이다.

킹 히드라도 한쪽에서 쉬면서 이리엔의 도움을 받아 급속도로 생명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

암벽 협곡의 전투!

위드의 퀘스트가 생방송으로 중계되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암벽 협곡의 붕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적인 영상. 그리고 조각 생명체들의 가공할 활약!

-빙룡 진짜 세다.

-완전 위엄이야. 저 정도면 웬만큼 강한 몬스터는 무기도 못 내밀겠는데.

-불사조가 더 세 보여. 화염의 비, 저 광역 마법 정말 무섭다.

-위드가 데리고 다니는 부하들만 해도 정말 장난이 아니라니까.

깃털을 날려 암벽 협곡을 온통 불태워 버리는 불사조의 지고의 스킬!

조각 생명체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 스킬들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지골라스에서 생명을 부여한 이들까지 다 같이 날뛰면서, 암벽 협곡에서는 환상적이라고 할 만큼 화려한 장면들이 계속 나왔다.

현재 조각 생명체들의 인기를 반영하듯, 이미 그들의 팬클럽까지 결성되었다.

모라타에서 인기가 높은 누렁이를 비롯하여 전투에서 결정적 활약을 하는 빙룡, 오랫동안 살아온 와이번들까지, 시청자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로열 로드에서는 요리사들이 빙룡 아이스크림을 개발하고 와이번 통닭을 만들 정도!

시청자들이 더 주목한 것은 위드의 전투 능력에 있었다.

-지금까지 치밀하게 싸우던 것과는 다르잖아.

-완전 힘이 넘쳐 주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걸 보고 싶었어요. 이게 마법의 대륙의 위드입니다. 차원이 다른 무력을 발휘하면서 몬스터들을 학살하는 그 느낌!

-아우... 진짜 나도 저렇게 싸워 보고 싶다. 그런데 현실은 좀비 1마리만 나와도 도망 다니고 있으니, 에효.

-저렇게 강한데 바드레이한테 죽었단 말이야?

-혹시 무슨 뒷공작이 있었던 거 아닐까. 돈을 받고 져 줬다거나 하는 거 말이죠. 돈만 많이 준다면 그럴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위드 님은 그럴 분이 아닙니다. 위드 님에 대해서 잘 모르시면 함부로 말씀하지 마세요.

-위드 님처럼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분에 대해 조금도 공감할 수 없는 음모론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시네요.

-근데 정말 장난 아니게 세네요. 과연 위드라는 건가. 보면서 괜히 설레는데요!

혼돈의 전사로서 보여 주는 화끈함!

위드는 시청자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전투에 완전히 몰두해서, 활을 든 전사들을 처단하고 장로들이 있는 곳에 나타나서 싸우는 멋진 모습들.

물론 전사들의 활과 장로들이 들고 있는 아이템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지만, 시청자들은 그 빠르고 거친 전투에 대단히 매료되었다.

신중하게 접근하고, 생명력과 축복 마법을 확인하면서 장기전으로 안정되게 싸우는 전투에는 지쳐 있었던 것이다.

-역시 싸움이라면 몽땅 무너뜨리고, 다 때려 부수고, 불도 지르고 그러는 게 정답 아니겠습니까?

-위에 분, 뭘 좀 아시네요. 위드처럼 싸우는 사람이 있어야 우리도 구경할 맛이 나는 거죠!

거기에 개인적인 무력만이 아니라 지휘 능력도 발군이었다.

조각 생명체들의 특성에 맞춘 전술 운용에, 적들을 맞이하는 진형 변화도 거침없이 이루어졌다.

위드가 손가락으로 척척 지시할 때마다 조각 생명체들이 칼같이 따르면서 슬레이언 전사들을 격파하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매료되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바다에서 유령선들을 다스리고 대해전을 벌일 때처럼 지휘력이 일품이었다.

물론 전장의 소음으로 인해 위드가 귓속말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알아듣지는 못했다.

-게르니카, 나서지 말고 뒤로 빠져. 빈덱스, 뭐 하니, 지금까지 만날 놀았잖아. 이제 노는 거 지겹지도 않아? 지금 1마리를 데리고 칼질을 몇 번 하는 거야! 시골뱀, 혓바닥만 날름거리지 말고 빨리 독 풀고 뒤로 빠져. 지렁이! 너 지금 20초 넘게 땅속에서 자고 있지?

폭풍 잔소리!

위험에 빠진 녀석이 있다면 반드시 단거리 텔레포트를 이용하여 가서 구해 주었다.

다른 랭커나 유저 들이 자신들만의 성공을 위하여 부하를 막 다루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바드레이는 일부러 희생양으로 부하들을 소모시켜 버리잖아.

-원래 자기밖에 모르는 놈이라서 그렇지.

=비교가 돼? 이런 게 진정한 지휘관의 역량 차이라는 거지.

-캬하! 저런 전투를 나도 해 보고 싶은데.

가끔 심통을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싸워도 저만큼은 할 수 있겠다. 레벨 높고 좋은 아이템 끼고 있으면 누구나 다 저렇게 하지.

-위에 분, 정신 차려요. 위에 분이 저기에 있었으면 아마 바윗덩어리에 깔려 죽으셨을 듯.

-위드의 이동속도나 반응속도, 장소마다 스킬 활용하는 판단력을 보세요. 저런 난전에서 정말 저렇게 싸울 수 있다고요?

-놔두세요. 로열 로드 제대로 못 해 본 사람일 거예요. 토끼한테 죽어서 지금 접속도 못 하고 계시는 분일 듯.

시청자들이 단 한순간도 텔레비전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숨 가쁘게 흐르는 전투였다.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예측 불가능한 위드의 결정이야말로 재미를 북돋아 주는 요소.

누가 불리한 암벽 협곡으로 들어가서 적들을 무너뜨릴 계획을 세울 수 있겠는가.

대재앙을 일으킬 수 있더라도, 이리저리 조심하다 보면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고작해야 스킬을 활용하면서 하르셀 산악 지역의 외곽에서부터 적들과 계속 싸움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위드는 저지르고 보았다.

"최악의 경우에는 도망이라도 치면 되겠지. 이곳 산악 지역에서 수비에 유리한 절벽이나 산봉우리로 퇴각해서 3개월쯤 버티면 될 거야. 사냥을 해서 먹을 걸 구하고 빗물을 받아 마시면 사는 데에는 무리가 없겠군."

지금까지 익힌 스킬들을 활용하여 버틸 수 있는 생존 능력.

이 배쨍이야말로 대중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요소였다.

"어리석게도 슬레이언의 함정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매복에 완벽하게 당한 모습인데, 위드가 이 정도를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아, 실망인데요."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진행자들은 짙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말을 바꾸어서 칭찬하기 바빴다.

"오오오오! 위드의 부하들도 정말 대단한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 무기는 혼돈의 대전사 쿠비챠가 쓰던 게 맞는 거죠. 일설에 의하면 드래곤의 무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드래곤의 무기라는 건 아직 확인 되지 않은 정보인데요. 지금까지로 보아서 매우 엄청난 공격력을 가지고 있으며 화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 틀림없습니다."

"멋집니다! 방금 보셨습니까? 검을 휘둘러서 날아오는 화살들을 모조리 태워 버렸습니다. 그 대담함이나 스킬의 범위와 타이밍을 절묘하게 노리는 행동은 위드만이 가능한 거죠."

"과연 위드라는 말을 방송 중에 지금 몇 번 드리는 거죠?"

칭찬의 릴레이.

LK게임과 온 방송국은 최근에 헤르메스 길드를 비롯한 명문 길드와 우호적인 관계를 이룩했다.

방송 진행이나 전투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거대 세력과 잘 지낼 필요가 있었다.

방송 시간 배정이나 광고 수익금 배분에 있어서도 명문 길드에 상당한 프리미엄을 지불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위드의 방송에 기대하는 것과는 비교 할 수도 없는 노릇.

진행자들도 이제는 시청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기에 위드에 대한 찬양을 그치지 않았다.

"오오오, 위드가....."

"그를 향해서 화살 공격이 준비되고 있고, 전사들이 모여 드는군요. 가만히 있는 걸 보니, 아직 모르고 있는 걸까요?"

"마나가 부족해서 빠져나가지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위기죠!"

진행자들은 영상을 보면서 열을 올렸다.

축구 경기의 결승전을 능가하는 긴박감으로 이루어지는 방송 중계!

"위드가 적들의 공격에 의해 암벽 협곡에서 추락!"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위드도 심각할 정도의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앗... 그게 아닙니다! 공중에서 블링크를 연속 사용하면서 빠져나왔습니다!"

"마치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유연하게 대처하는군요. 기적과도 같은 스킬 운용입니다."

영상이 따라가기도 아주 바빴다.

"위드가 지상에 나타났습니다. 지금 전리품을 습득하고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습니다!"

★★★★★★★★★★★★★★★★★★★★★

위드는 레드 스타에 간직되어 있는 여러 마법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만날 버스만 타고 다니다가 총알택시를 탄 것처럼 후련한 기분.

"지금이 풍년이로군!"

암벽 협곡에 널려 있는 슬레이언 전사들 중에는 부상자들이 많았고 생명력도 많이 떨어져 있어서 위드에게는 사냥감이 널려 있는 셈이었다.

혼돈의 전사로 조각 변신술을 펼친 이후 아예 방어구를 착용하지 않았다. 기본적인 인내력과 맷집만으로 견뎌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레드 스타의 위압감과 종족의 카리스마로 인해 위축된 슬레이언 전사들이 정상적으로 싸우지를 못하니 아무 문제 되지 않았다.

검이 생명력을 회복시켜 주고 위험한 순간마다 단거리 텔레포트를 활용하다 보니, 생명력의 감소에 대하여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태!

"퇴각하라!"

이제 거의 남지 않은 부족의 장로들이 드디어 후퇴를 결정했다. 그러자 전사들이 암벽 협곡에서 철수를 했다.

암벽 협곡의 좁은 길을 빠져나가고, 붕괴되면서 막히지 않은 동굴들을 통하여 떠나갔다.

위드는 사자후를 터트렸다.

"추격하지 마라!"

대규모 전투를 하다 보면 보통 추격전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우게 되기 마련이다.

기병들의 경우에는 평원에서 몬스터 무리를 압도하는 공격력을 보이기도 한다.

기사의 매우 큰 장점으로, 장애물이 거의 없는 넓은 평원에 몬스터 대군이 몰려왔다면 그건 정말 좋은 먹잇감이 된다.

기사단의 돌격으로 적을 관통하고 나면 지능이 낮은 몬스터일수록 사기가 떨어져서 마구 도망치기 일쑤다.

그때의 추격전을 통하여 며칠을 꼬박 사냥한 정도의 전리품과 명성, 경험치를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기사란 직업은 전투만 놓고 보면 그야말로 혜택이 많은 편.

몇몇 조각 생명체들의 이동속도는 말만큼이나 빠르지만 여기는 지형이 험한 하르셀 산악 지역.

위드와 조각 생명체들도 전투로 인해서 지쳤으니 무턱대고 쫓아가다가는 숫자가 훨씬 많은 슬레이언 부족 전사들에게 뼈아픈 역습을 당할수도 있어 참아야 되었다.

지휘관으로서 이기고 있을 때 자제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지만, 때로는 참는 것도 필요했다.

-하르셀 산악 지역의 협곡 전투에서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전투 중에 적들은 당황하여 끊임없이 끌려다녔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지도력으로 거둔 승리.

우수한 부하들을 데리고 있었다고 해도, 아군의 손실 없이 얻어 낸 귀

중한 승리는 칭송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명성이 1,210 올랐습니다.

-카리스마가 6 상승하셨습니다.

-통솔력이 5 상승하셨습니다.

-슬레이언 부족과의 적대도가 100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전투 경험을 쌓았습니다.

 전투와 관련된 스탯들이 1씩 증가합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으흐흑, 내 아이템들이 멀리 가는구나. 아... 저기 활 들고 있는 녀석을 일찍 잡지 못했다니."

큰 전투를 이기고 나서도 한없이 아쉬워하는 위드.

"이 근처에 있는 녀석들은 확실히 없애 놔야겠군."

위드는 일행과 조각 생명체들과 같이 무너진 암벽 협곡을 돌아다니며 부상이 심해 남겨진 슬레이언 전사들을 처리했다.

"살려 다오."

슬레이언 전사들이 애처로운 얼굴로 부탁을 했다.

위드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전리품 때문에 안 돼."

싹둑!

전투에서 대승리를 거두고 나서 항복하는 포로들을 살려주거나 하면 명예 스탯과 기품이 많이 오른다.

물론 직접 나서지 않고 기사들을 지휘하기만 하여 승리를 거두더라도 부하들을 통하여 명예 스탯은 심심치 않게 오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아르펜 왕국의 세금을 낮추더라도 명예 스탯은 올라간다.

"국밥 한 그릇 먹을 수도 없는 명예 따위야 의미가 없지. 명성은 말할 가치가 없고."

국왕으로서 명예가 높으면 자유 기사들이 제 발로 알아서 걸어 들어온다.

위드도 아르펜 왕국의 국왕으로서 현재 명예 스탯이 165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것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거기에 대륙 전체에 확실하게 퍼진 명성으로 인하여 상당히 많은 자유 기사들이 아르펜 왕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북쪽으로 가면 진정한 왕이 있다고 하던데."

"주민들이 말하고 있으니 틀림없겠지."

"먼 거리이지만... 평생 봉사할 수 있는 왕을 만나기 위해서는 가야겠지."

허름한 망토에 가죽옷을 차려입은 자유 기사들이 오늘도 말을 몰아 북부로 오고 있었다.

그들은 간신히 자유 기사가 된 인물들이 대부분으로, 오는 도중에 몬스터에 의해서 죽거나 다른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눌러앉아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역사서에 나올 만큼 유명한 인물이나, 칼라모르 왕국의 붕괴 이후로 새로운 주군을 찾아서 이동하는 기사도 제법 되었다.

위드의 명예 스탯은 예술이나 힘, 민첩에 비하면 대단히 낮은 편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수치가 그럴 뿐이다.

다른 국가의 국왕들은 명예 따위는 아예 모르고 살기 땨문이다.

ㅡ 세금을 거두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폭군.

ㅡ 어리석고, 수치를 모르는 전쟁광.

ㅡ 기사도를 지키지 않는 파렴치한.

ㅡ 사치스러운 불량배.

지나가는 개들조차도 꼬리를 세우고 왈왈 짖는다는 최악의 평판!

특히 유저 출신의 대영주나 국왕은 워낙에 심한 불명예를 안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반사이익으로 베르사 대륙을 떠도는 자유 기사들이 대거 아르펜 왕국으로 향하는 것이다.

병사들은 징병과 훈련이 쉽게 된다지면 기사들을 채우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자유 기사들의 충성을 받으면 이 부분이 비교적 쉽게 해결되리라.

물론 그들에 대한 위드의 평가는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무슨 기사들이, 월급을 너무 많이 받아 가. 고용 비용이 장난이 아니라니까. 나 혼자 먹고 챙길 돈도 부족한데....."

절대 공짜가 아니었으므로, 기사들이 충성 서약을 하러 몰려와도 나가는 세금에 슬플 뿐.

현재 아르펜 왕국의 기사단은 240명이 약간 넘는 수준이었다.

국왕에 따라서 기사단의 성격도 달라지게 된다. 사치스럽고 방탕하고 세금을 많이 거두는 국왕이람련, 기사단은 그에 맞게 주민들을 무시하며 향락을 즐기는 식이다.

아르펜 왕국의 기사들은 검소하고 문화를 즐길 줄 알았다.

현재는 자진해서 도적 떼와 몬스터들과 싸우면서 치안을 지키는 일을 했다.

아직 다른 왕국과 같은 수준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레벨이 낮기도 해서, 위험한 곳에 투입할 정도는 아니었다.

"꺄아, 정말 승리를 거뒀어요!"

적들을 얼마나 팼는지 너덜너덜해진 장갑을 벗으면서 수르카가 기뻐했다.

"아까는 꼼짝없이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해서 정말 죽는줄 알았는데."

위드는 동료들에게조차 놈들을 유인한다고만 해 놓고 자세한 계획은 알려 주지 않았다.

철저한 보안 유지가 생명이었다기보다는 그냥 말하기 귀찮아서, 그리고 어차피 경험을 해 보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 놀랐다가는 대재앙에 휩쓸려서 몰살하게 될지도 모를 일.

로뮤나가 핀잔을 주었다.

"그럴 리가 있니. 위드 님의 잔머리가 어떤 수준인데. 난 이 정도의 꼼수가 있을 줄 짐작하고 있었어."

제피도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긍정했다.

"맛있는 요리를 해 주는 날이면 정말 그날 하루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됩니다."

화령도 위드와 던전 사냥을 다니며 비슷한 경우를 많이 겪어 본 편이었다.

"잘 숙성시킨 와인이라도 한 병 개봉해 주는 날에는 쉴 생각을 말아야 돼요.'

방송에서는 두 번 나오기 어려운 희대의 전략이라든가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과감하고 공격적인 전술이라고 평가했지만, 동료들은 다르게 생각했다.

'음흉하게 웃더니 역시 꼼수가 있었어.'

'얍삼함은 정말......'

'어릴 때부터 남다르게 야비했을 것 같다.'

원래 세상이 다 이런 것!

어쨌든 위드의 진짜 목표는 슬레이언 전사 퇴치가 아니라 요새에서 아르닌을 구출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놈들의 병력을 크게 물리쳤으니 남아 있는 적들은 훨씬 적겠군요. 바로 그곳으로 진격하겠습니다."

★★★★★★★★★★★★★★★★★★★★★

투브칼 봉우리에 있는 슬레이언의 요새.

경치 하나만큼은 끝내주는 장소로, 봉우리에 오르게 되면 발아래 하르셀 산악 지역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구름이 자욱하게 깔려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슬레이언 부족은 칼날을 거꾸로 세워 놓은 것 같은 산꼭대기에 돌을 쌓아서 요새를 지었다.

와이번을 타고 높은 하늘에서 보면 어떻게 접근할지가 걱정될 정도로 공격하기 어려운 지형이었다.

위드는 동료들과 조각 생명체들과 더불어 봉우리 근처까지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는 중에도 지형상 매복 공격을 당하기 쉬운 위험한 장소가 몇 군데 더 있었지만, 크게 기가 꺾인 슬레이언 부족은 더 이상 기습을 하지 않았다.

"이제 여기서만 이기면 되겠군."

위드는 유린의 그림을 통해서 요새 부근의 지형을 먼저 확인했다. 봉우리의 경사가 너무 심하고 바닥이 고르지 않아서, 대장장이 스킬로 공성 무기를 제작하더라도 끌고 접근하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침입자들이 이곳까지 왔다."

"성문을 닫아라."

"궁병들을 배치해. 그리고 창고에서 수비 무기들을 가져와서 배치하자."

위드 일행을 확인한 슬레이언 부족의 전사들이 요새의 문을 닫아걸고 농성을 시작!

이들은 약탈하거나 드워프들을 포로로 데리고 있으면서 획득한, 공성전에서의 전용 수비 무기까지 갖추고 있었다.

끓는 기름과 넉넉한 화살, 고정되어 계속 발사가 가능한 쇠뇌, 돌을 떨어뜨릴 수 있는 장치 등!

"여기는 정말 까다로운 난관이 되겠습니다. 함락시킬 만한 장소가 전혀 보이지를 않는데요."

페일이 높은 곳에 올라서 요새를 살펴보고 나서 혀를 내둘렀다.

슬레이언 부족의 요새는 성벽이 허술하지도 않고 잘 정비되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에는 5배는 되는 병력으로 소모전을 펼쳐야 된다.

"연기다!"

설상가상으로 요새에서는 시커먼 연기까지 피워 올렸다.

인간들의 성이 공격을 받으면 사용하는 봉화를 슬레이언 부족도 쓰는 것.

"할 건 다 하는구나."

요새를 공격하면서 시간을 쓰다 보면 하르셀 산악 지역에 흩어져 있는 슬레이언의 마을에서 전사들이 계속 충원된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미리 뚫어 놓은 작은 동굴들을 이용해 요새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혹은 밖으로 나와서 포위를 하고 역공을 펼치는 것도 가능했다.

하르셀 산악 지역이야말로 슬레이언 부족이 살기에 최적화된 장소.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 아르닌을 구출하는 의뢰는, 시간을 끈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페일이 물었다.

"여기서는 어떻게 싸우실 거죠?"

위드라면 어떤 꼼수든 낼 것으로 믿었다.

"먹고 싸우면 되겠죠. 놈들이 많이 줄었으니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위드는 아껴 온 고급 재료들을 꺼내서 요리를 했다.

갓 구운 빵에, 진한 고기 국물을 우려내서 만든 수프는 입맛을 돋우는 용도였다

.

평소에는 보리 빵에 딸기 잼이라도 발라 먹으면서 만족할 수준이었는데, 벌써부터 입안에서 느껴지는 호화로움!

"요리가 조금 시간이 걸릴 테니 천천히 즐겨 주세요."

위드는 요리 도구와 재료를 몽땅 꺼냈다.

고기와 야채, 대부분의 재료들은 아쉽게도 빙룡이 보관하도록 해서 얼린 것이었지만 중급 9레벨 89%가 넘는 숙련도는 맛을 거의 떨어뜨리지 않았다.

요리 스킬이 초급 6레벨만 넘어도 음식을 만드는 도중에 풍기는 냄새가 일품이었다.

직접 양념해 버무린 돼지갈비에, 양의 넓적다리 고기.

"간단히 먹어 주세요. 차릴 게 많으니 벌써부터 배가 부르면 안 됩니다."

농어, 가자미, 연어, 광어, 도미, 참치 회!

당연히 모라타 동쪽 바다에서 잡아 올린 자연산이었다.

비록 얼리기는 했지만.

위드의 칼질에 썰리는 횟감들!

"회가 입안에서 녹아요.'

"앗... 팔딱거리는 신선함이 있는 거 같은데요."

회가 나오자 그릇이 금세 비워졌다.

"너희도 고생 많았다."

조각 생명체들에게는 참치를 큼지막하게 잘라서 줬다.

킹 히드라의 머리 9개는 서로 먹으려고 자기들끼리 싸울 정도였다.

"계속 드세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위드가 다음에 내온 요리는 상어 알과 조개, 생선을 삶아서 특제 소스를 바른 것이었다.

큼지막한 감자와 야채들로 장식하여 그릇에 내온 요리는 침을 줄줄 흐르게 했다.

화령이 대표로 첫 숟가락질을 했다.

"어때요?"

수르카의 물음에 화령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눈을 감았다.

"혀에 닿는 순간 깊은 바다의 맛이 났어. 알에서 막 태어난 생선들이 끝없이 깊고 넓은 바다를 헤엄쳐 가면서 느끼는 그런 아늑한 신비로움...."

와구와구.

"앗, 같이 먹어요!"

위드는 요리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고급 요리라고 해서 사람들의 입맛에 전부 맞는 건 아니었다. 떡볶이나 오뎅이 가장 먹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다.

"맛있는 요리를 할 때가 행복하지!"

위드는 대륙의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온갖 재료들을 다 요리해 보며 맛에 대해 연구했다.

아직 중급 9레벨의 요리 스킬이지만, 혼자 다녔던 시간이 길고 사람들을 대접하는 경우도 적었다. 

음식을 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쓰지 않았던 것도 이유였다.

사냥이나 모험을 나가서는 어쩔 수 없이 간단히 먹게 된다. 도시에서 식당을 차리고 다양한 재료를 공급받지 않는다면,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긴 힘들다.

그래도 육지와 바다, 금역까지도 오가면서 쌓아 온 맛의 깊이는 상당한 편에 속했다.

"여기 곁들여서 마실 만한 와인과 브랜디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꺄아, 정말 기다렸던 술이에요. 조금만 마실게요."

회무침, 굴, 복어튀김에, 전통적인 야식으로 보쌈, 족발까지 나왔다.

너무나도 행복하게 먹던 와이번들의 얼굴이 어느 순간 어두워졌다.

누렁이는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고기 국물에 삶은 야채를 삼키고 있었다.

"음머어어어, 아무래도 이게 우리가 먹는 마지막 음식인 것 같다."

"누가 될지 몰라도... 배부르게 먹고 죽자."

최후의 만찬!

금인이는 구석으로 가서 조개를 까먹으며 서럽게 울었다.

"주인, 그래도 지금까지 같이 다녀서 행복했다."

위드에게는 그럴 의도가 조금도 없는데, 어디까지나 조각 생명체들의 과민 반응이었다.

위드가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그동안 너무 야단만 쳤지. 가끔은 애들한테 먹을 것도 해 주고 그래야 되겠군. 이렇게 감동하고 좋아할 줄은 몰랐어."

"크흐흐흐흑."

조각 생명체들이 흘리는 눈물은 갈수록 많아졌다.

그렇게 거창한 식사를 마치고 나서 위드와 일행, 조각 생명체들의 전투력은 충분히 높아져 있었다.

전투와 이동을 하면서 지쳐 있던 몸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체력이 회복되었다.

중급 요리 스킬 9레벨에서 꺼낼 수 있는 최대한의 효과도 부여되었다. 생명력이 18,284까지 늘어나고, 체력과 지구력이 일시적으로 50% 이상 더 강해진다. 나머지 스탯들도 35 이상 증가!

그렇다고 해도, 늘어난 스탯만 놓고 본다면 전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잘 먹고 싸우다 보면 더 좋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 것.

위드가 봍오 때에는 절대 볼 수 없을 산해진미를 차린 이유는 동료들과 부하들에 대한 고마움의 마음을 나누는 데 있었다.

아르펜 왕국의 건국식은 조촐하게 했지만, 실상 진짜 고마운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있는 게 아닌가.

조각 생명체들도 지금까지 많은 수고를 했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 성장해 나가야 한다. 동료들에게도 그동안 여러모로 고마운 면이 많았다.

비싼 요리 재료를 가지고 와서 아끼지 않고 쓴 위드의 속 마음이었다.

물론 겉으로는 달랐지만.

"그냥 왠지 요리를 해 보고 싶어서... 재료가 좀 남기도 했고요."

"다음에 음식 재료 남으면 또 해 주실 거죠?"

"안 남을 겁니다."

★★★★★★★★★★★★★★★★★★★★★

베키닌의 3마리 미친 상어!

대양을 누비며 해적질을 하던 그들의 배에 일주일 전에 위드가 나타났다. 유린의 그림 이동술을 통하여 단숨에 온 것이다.

위드는 나타나자마자 널찍한 해적선을 마치 자기 집처럼 거침없이 둘러보았다. 그 과정에서 선실 창고에 정리해 놓은 해산물도 조금 발견했다.

"바다에 있으면 해산물은 쉽게 구해서 질리도록 드시겠네요."

"뭘요. 육지 음식이 그리워서 오히려 고기를 더 자주 먹죠."

"하핫, 회도 매일 먹으면 질리니까요."

위드는 그들의 의견은 듣지도 않았다.

"해산물이 많이 남을 것 같은데......"

"별로 없는데요?"

"내일 와서 가져가겠습니다. 마차 여덟 대 분량 정도 있으면 좋겠군요."

"허어, 여기가 아무리 바다라고 해도 그 많은 해산물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구합니까?"

"어종도 좀 다앙하게 하고, 굴이나 조개도 있었으면 하는데......"

"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참, 요즘엔 현상금 많이 오르셨다는데... 축하드립니다."

"엇, 고맙습니다. 이게 다 열심히 해적질한 덕분 아니겠습니까. 배 1척으로 이만큼 키우기 정말 힘들었습니다. 바다에서 무차별 약탈을 하고 다니는 보람으로 사는 거죠, 뭘."

"악명도 높고 살인자 상태니까, 여러분 만난 어떤 운 좋은 사람은 이득 많이 보겠네요. 왕국에 가서 현상금까지 탈 수 있을 테고요."

"......"

베키닌의 3마리 미친 상어들은 그때 위드가 입꼬기를 올리며 지은 명품 비열한 미소를 잊을 수가 없었다.

웬만한 협박은 다 하고 다닌 그들이었지만, 위드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진짜 존경스러운 나쁜 놈이다. 어떻게 우릴 잊지 않고 와서 등쳐 먹을 생각을 하냐."

"우린 아직도 멀었다니까. 배울 점이 많아."

"나쁜 짓의 세계에도 확실히 수준 차이가 느껴지느군!"

미친 상어의 함대는 낚시와 물질을 할 줄 아는 해적들을 부려서 해산물을 모았다.

간신히 할당량을 채우고 나니 위드와 빙룡이 와서 싹싹 긁어 갔다.

그렇다고 해서 위드가 완전히 공짜로 챙겨 간 건 아니었다.

"여러분과 많이 친하지만, 그냥 가져간다면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강도 짓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죠?"

사실 이건 강도 짓이 맞긴 했다.

"그래도 우리 사이에 돈을 주기도 좀 그렇죠."

"정 주신다면야, 뭐....."

"친한 사람들끼리, 그리고 모험도 같이한 사이에는 돈거래를 하는 게 아닙니다."

"......"

베키닌의 3마리 미친 상어는 주는 돈을 거절할 인간들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줄 마음이 있어야 받을 게 아닌가.

위드가 어떤 짠돌이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제가 가진 재주가 이것밖에 없으니 선수상이나 제작해 드리죠."

적당히 썩은 나무를 골라서 해골 해적의 선수상을 제작!

조각사가 만든 선수상은 바다에서 든든한 부적과도 같았다.

항해 스킬이나 배의 이동속도를 올려 주는 것은 물론이고, 폭풍에도 피해를 덜 받게 해 준다. 해적들의 스킬과 스탯에도 도움이 되었다.

육지에서 만든 조각품이야 가지고 다니기가 버거운 경우가 많지만, 뱃머리에 붙어 있는 조각품은 언제나 그 효과를 볼 수 있기에 항해에 매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헤인트는 다른 의미로 감동했다.

"캬하! 금방이라도 가진 돈 다 내놓으리고 말할 것 같은 조각품입니다."

표정 연구라도 하고 싶어질 정도로 악랄하게 만들어진 해적의 조각품!

사실 그냥 조각품만 하나 덩그러니 깎아 준다면 조금 서운한 감정을 가질 수도 있다. 위드의 인간관계란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만의 하나 나쁜 마음이라도 품게 되면 다음에 또 필요한 물품을 얻어야 할 때 곤란할 것이 아닌가.

"조각품을 더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위드는 다른 배에도 선수상을 더 제작해 주었다.

이른바 1+1 상품!

이번에는 바다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돌고래 선수상을 깎아서 만들어 주었다.

배 주변에 돌고래들이 자주 출몰하게 하여 행운을 높이고 항해 속도를 늘려 주는 선수상!

"저희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앞으로 더 열심히 해적질하겠습니다."

"만족하셨다니 다행이군요. 그럼....."

위드는 입가에 잔뜩 썩은 미소를 지은 채 떠났다. 

그 미소가 남긴 잔잔한 여윤은 베키닌의 3마리 미친 상어의 해적선에 오래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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