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30권 : 3) 투브칼 봉우리 (183/520)

3) 투브칼 봉우리

위드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슬레이언의 마을은 하르셀 산악 지역 전체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테고 번식률도 굉장히 빠를 것이기에 예전 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시간문제.

"오늘 내로 싸워야 될 것 같으니 아쉽게 되었군."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을 쓴다면 커다란 타격을 주고 시작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대재앙은 하루에 한 번밖에 일으키지 못한다는 제약이 있었다.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면 전사들이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설혹 대재앙을 일으키더라도 아르닌이 몰살하면 안 되니 그냥 지금 싸워야 되겠어."

구출 계획에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을 쓴다는 건 그냥 몽땅 파묻자는 이야기밖에 안 되는 것.

위드는 다시 혼돈의 대전사 쿠비취로 조각 변신술을 사용했다.

"여기서는 빠른 것이 가장 중요하겠군. 모두 전투준비!"

동료들과 조각 생명체들은 큰 기대를 했다.

"이번엔 어떤 전략으로 상대를 할까요?"

"슬레이언의 습성을 역이용한다거나, 혹은 지형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무언가를 쓸 것 같죠?"

"상상도 못 하던 그런 전술을 성공적으로 실행시킬 것 같아요."

이리엔, 페일, 벨로트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기대하며 잔뜩 긴장하여 지켜보았다.

조각 생명체들은 어떠한 명령이라도 따를 수 있는 준비를 하였다.

잘 먹여 놓아서 지휘의 효과가 더 발휘될 수 있는 상태였다.

"음머어어어어, 살아서 만나자."

"골골골, 모두 지금까지 같이 있어서 행복했다."

"너희가 죽기 전에 와삼이, 나부터 먼저 죽을 것이다."

와삼이의 다정한 말에, 와이번 중에서 첫째인 와일이가 쏘아붙였다.

"그래, 너부터 죽어라."

"주인 혼자 태우고 다니고... 등 평평하다고 만날 잘난 척만한다."

"끄우우, 그게 아니다.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

"배가 불렀다!"

"아까 타조 알 요리도 제일 많이 먹었다."

"딱 1개 더 먹었을 뿐이다!"

"내가 먹고 싶었다!"

이 와중에도 벌어지는 시기와 질투!

지골라스에서 생명을 부여받은 생명체들은 아직도 친밀도가 낮아서인지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이 순간도 방송국들을 통하여 생중계가 이루어졌다.

수천만 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으며, 로열 로드의 선술집 등에서도 맥주와 음식을 시켜 놓고 기다렸다.

시장과 광장에서도, 장사보다는 위드의 모험을 지켜보고 있을 정도였다.

"자, 시작해 볼까."

위드는 간당한 명령을 내렸다.

"얘들아, 공격이다. 가자!"

그가 선택한 방법은 정면공격.

칼날 같은 경사를 용케 기어 올라간다 해도 그 너머에는 성벽까지 있으니 정말 무모해 보이는 방법!

하지만 위드가 먼저 요새로 달려 나가자 조각 생명체들도 뒤질세라 따라왔다. 누렁이, 금인이, 불의 거인, 백호, 기사 세빌, 여전사 게르니카, 여검사 빈덱스, 하이 엘프 엘턴 등이 모두 같이 달렸다.

비행 생명체들은 하늘로 날아오르며 지상에 대한 공격 개시를 준비했다.

투브칼 봉우리의 요새에서는 사정거리에 들어오는 대로 화살을 쏘았다.

"블링크!"

위드는 순간적으로 성문 앞으로 텔레포트를 했다.

"지옥의 겁화!"

레드 스타에서 생성된 불길이 검 전체를 덮었다.

-공격력이 최대 329%까지 강화됩니다.

위드는 있는 힘껏 성문을 때렸다.

꽈아아아앙!

천둥이 치는 소리와 함께 성문 격파!

-투브칼 요새의 성문을 파괴하였습니다.

 투지 스탯이 1 오릅니다.

성문이 깨지자 문 안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던 슬레이언 전사들이 보였다.

"불의 인간이다."

"적들의 대장을 없애야 한다."

화살을 쏘고 창을 앞세우고 달려 나왔지만, 위드는 상대해 주지 않고 스킬을 시전했다.

"블링크!"

그가 새로 나타난 장소는 요새 주택의 건물 위!

"이곳에는 없겠지."

위드는 레드 스타로 목조건물을 베었다. 그러자 건물 전체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게 되었다.

"저곳이다! 저기에서 불을 질렀다."

"블링크!"

슬레이언 전사들을 피하여 이번에는 요새의 중심부를 지나쳐서 뒤쪽까지 텔레포트를 시전!

"크와아아아아아!"

"놈들을 몽땅 없애라."

"죽기 위해서 들어온 놈들을 죽여 줘라!"

위드는 성문 쪽에서 전투의 소음을 들을 수 있었다.

조각 생명체들이나 동료들이 다가오는 것을 슬레이언 전사들이 막고 있으리라.

성벽이 뒤흔들리는 소리와 진동도 발생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데스웜이 성벽을 붕괴시키기 위하여 땅속에서 부딪쳤기 때문일 것이다.

부서진 성문과 두꺼운 성벽을 사이에 두고 양측 간에 공방전이 매우 치열하게 진행될 터.

몇몇 지나치게 덩치 큰 조각 생명체들이야 당연히 성문을 비집고 들어올 수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몇 겹의 방어선을 치고 지키고 있는 적들을 넘어오기란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적당히 하라고 했으니 잘 싸우겠지."

위드는 금인이에게 지휘를 맡겨 놓았다. 적당히 소심하고 눈치 빠른 금인이에게 시켜 놓았으니 알아서 잘 싸울 것이다.

효율적인 움직임은 아니더라도, 애초에 위드는 요새를 함락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저 위드 혼자 요새로 잠입하여 염탐하고 아르닌을 구출하는 동안 시간만 벌어 주면 된다.

"조각 생명체들은 보통 자신들의 목숨을 끔찍이 아끼기 때문에 잘 살 수 있을 거야. 겁까지 먹었으니 더 적당히 하겠지."

믿을 수 있는 사제 이리엔이 치료도 해 줄 테니 마음이 놓였다.

"꺼어어억!"

실제로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엉금엉금 네발로 기는 대형 악어 나일이 같은 경우에는 아직 성문 근처에 도착도 하지 못했다.

나일이의 전투력이 최대로 발휘되는 장소는 강가나 늪.

무거운 꼬리와 짧은 다리를 가지고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는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전투가 벌어지면 순간적으로 이동속도가 말을 능가할 정도로 빨라지기도 하지만 오래 유지되는 건 아니었다.

꼬리를 흔들며 네발로 엉기적거리며 걷는 모습이 귀엽다면서 화령과 벨로트는 정말 좋아했다.

"위드 님, 나일이도 꼭 싸워야 돼요? 제가 나일이 몫까지 해낼 테니까 얘는 좀 빼 주시면 안 돼요?"

"어머, 여기 배 쪽의 무늬 좀 봐요, 언니!"

오죽하면 나일이가 전투에 참가하는 것도 반대할 정도였다.

그 탐스럽고 부드러운 가죽에 흙먼지라도 달라붙거나 상처라도 생기면 어쩐단 말인가!

"시간이 돈이야. 빨리 해치우고 끝내야지!"

요새는 높은 봉우리 위에 지어진 만큼 그리 넓은 것은 아니었다.

건물들도 대부분 1, 2층이라서 수색할 범위가 좁았다.

지골라스에서 생명을 부여한 조각 생명체인 시골쥐도 성벽 밑의 구멍을 통해 들어와서 요새를 돌아다니며 아르닌을 찾고 있었다.

슬레이언 전사들이 삼엄하게 지킬 때는 무리였지만, 지금은 시골쥐가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는 환경이었다.

"저놈을 죽여라!"

문제는 눈에 잘 띄는 레드 스타를 들고 있는 위드를 보고 슬레이언 전사들이 마구 모여든다는 점.

공성전이 벌어지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대장에게 맹렬한 적개심을 가지고 죽이려고 든다.

위드가 요새 안으로 들어왔으니 전사들은 더욱 살려 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최소한 300~400명의 전사들이 위드를 쫓아왔다.

"이곳에는 없군. 블링크!"

위드는 눈에 보이는 대로 적의 전사들을 베고 아르닌을 찾기 위한 수색을 계속했다.

건물들을 일일이 다 들어가 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시골쥐도 건물마다 들어가 보며 찾고 있었지만 아직 소식이 없었다.

"이곳까지 오다니, 용서할 수 없다. 캬핫!"

높은 곳에서 위드를 향하여 뛰어내리는 슬레이언 전사.

위드는 검으로 적의 창을 받아 주었다. 레드 스타의 불길이 적에게 옮겨붙었따.

"치에에에엣!"

고통스러워하는 적을 연속으로 베어 버리고 전리품을 습득! 

위드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혼돈의 전사로서 레드 스타의 힘을 활용하더라도, 적의 요새 한가운데에서 수백 마리에게 둘러싸여 싸울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블링크를 사용하는 것도 마나가 제법 소모되니 무한정 남발할 수도 없었다.

"놈이 이쪽으로 온다."

"막아라. 끼야아아아앗!"

위드는 창을 든 전사들을 향해 정면으로 달렸다.

슈익!

창이 머리카락을 스치며 지나가자 레드 스타를 올리치며 베었다.

그다음으로는 옆구리를 베면서 통과.

슬레이언 전사는 불길에 휩싸여서 사망하고, 다음의 적과 마주했다.

레드 스타는 다루어 본 경험이 없는 무기였지만, 어떤 부위를 공격했을 때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생명력의 감소 정도에 따라 적당한 부위를 연결하여 연속 공격을 하여 죽인다.

필요한 만큼 때린 이후에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마무리 공격을 퍼붓고, 다음 적을 찾는다.

위드가 집단 전투를 하거나 여러 마리를 이어서 사냥해야 하는 순간에 효율이 높은 이유였다.

노가다에서도 효율이 중요했는데, 나중에 달인의 경지에 오르면 그냥 모든 일이 맞추어진 것처럼 척척 이루어진다.

위드는 검을 다루는 데 있어서 몸이 알아서 반응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전리품을 챙기는 것만큼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신속함과 정확함이 있었다.

어느 전장을 가더라도 미처 놔두고 지나치는 아이템은 없었으니까.

"헤라임 검술!"

위드는 슬레이언 전사들 5마리를 그림 같은 연속 공격으로 제압하며 스쳐 지나갔다.

불덩어리에 휩쌍여서 사망한 그들의 전리품은 이미 확실하게 챙긴 상태!

빨리 해치우기 위해서 몸으로 두 대를 맞아 주었기에 위드의 생명력도 뚝 떨어져 있었다.

헬리움 갑옷이나 혹시나 몰라서 미리 만들어 둔 다른 갑옷도 여전히 착용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방어력이 꽤 낮아서 생명력의 피해를 많이 입은 것이다.

레드 스타의 힘으로 생명력이 채워지고 있기에 일부러 맞으면서 버틴 것.

"이곳에도 없군."

투브칼 봉우리에 있는 요새는 슬레이언 전사들의 천국이었다.

"그르륵, 이쪽에서 비명이 들렸다!"

"놈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일부는 성벽을 수비하러 가고, 나머지는 저놈을 없애자."

위드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보고되었다.

그나마 암벽 협곡이 붕괴한 전투에서 슬레이언 전사들이 몰살을 당해 그 여파로 이곳에서 수비를 하는 전사들도 평소 보다는 많이 줄었기에, 어렵지만 건물 수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투에 참여하지 않아서 멀쩡한 레벨 400대의 엘리트 전사들은 골칫덩이!

위드는 엘리트 전사들이 성벽으로 달려가는 것도 막아댜 되었기에 가끔은 놈들을 일부러 도발해서 끌고 다니기도 했다.

"못생긴 놈들. 외모라면 적어도 나 정도는 되어야지."

"저놈 죽여!"

"블링크!"

요새에서 적들이 없는 장소를 찾아서 이동하며, 수색도 하고, 그러면서 전력 질주를 하며 싸우기도 해야 되었기에 바쁘기 짝이 없었다.

"불 인간이 이 주변에 있을 것이다."

"여기다!"

마나는 한정되어 있는데 이 넓은 요새는 수색해야 되고 적들은 설쳐 대고 있다.

하지만 어서 빨리 아르닌을 찾아내서 보호하며 구출하지 못한다면 퇴각을 해야 될 터!

-시골쥐, 뭔가 찾아낸 건 없냐.

위드는 싸우는 도중에 귓속말을 보냈다.

-찍찍!

시골쥐도 건물들 사이를 마구 헤집고 다니고 있었음에도 발견하지를 못했다.

이곳에 있는 건물들은 상당히 허술한 편이라 문틈이나 구멍으로 들어가기가 쉬웠다.

하지만 어디에도 아르닌은 없었다.

"차례차례 요새 전체를 수색하기란 불가능한데......"

동료들과 조각 생명체들이 시간을 끌어 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와이번들은 요새에서 쏜살같이 아래로 내려와 슬레이언 전사들에게 공격을 퍼부으며 시선을 끌어가는 식으로 위드가 수색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해 주었지만, 그게 언제까지고 가능할 리도 없다.

"아무래도 여기는 아닌 것 같은데....."

위드는 미심쩍은 창고나 외딴 건물들 위주로 살펴보았지만 포로들을 감금해 놓은 장소는 찾을 수가 없었다.

"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돼. 무턱대고 급하게 찾으려고만 하면 서두르느라 될 일도 안 되지. 블링크!"

위드는 요새의 가장 높은 탑으로 올라갔다.

와이번들이 주변에서 맴돌며 지상으로 강하하여 전사들을 공격하고, 성벽 주변에서는 동료들과 조각 생명체, 슬레이언 부족 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페일과 로뮤나의 활약이 돋보였고, 한쪽에서는 대규모 전사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화령이 끊임없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가 춤을 멈추는 순간 전사들의 공격이 더욱 거세질 테니 나름 필사적이었다.

위드도 못지않게 그들도 바쁘고 정신없는 전투를 하는 중.

"놈이 저 위로 올라갔다."

"다시 내려올지도 모른다. 경계하라."

"쫓아가서 죽여!"

"창을 던져라."

위드에게로 창과 화살도 날아왔다.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모자란 이때.

"내가 아르닌을 부려 먹는다면 어떻게 할까. 어차피 죽거나 살거나 내가 알 바는 아니지. 평생 일만 시키면서 도망도 못 치게 가두어 두려면....."

완벽한 노동 착취 업자로서의 사고방식.

당했던 사람이 더한다고, 위드에게는 아르닌을 구출한 후에 철저히 노예로 부려 먹이 위해 쓸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했다.

"탈출은 꿈도 못 꿀 정도로 가두어 놓아야지. 일은 온종일 시키고, 먹을 것은 최소한으로만 주면 돼. 나처럼 누가 구해 주러 올 수 있으니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을 만들어 놔야지."

요새의 건물들은 감옥으로 하기에는 문이나 창문이 있어서 적합하지 않다.

한 2~3년 부려 먹기에는 대충 쓸 만하겠지만, 100년 이상 감금시켜 놓고 일을 시키려면 어딘가 안심 할 수 없는 것이다.

"밝은 햇빛이나 신선한 공기 같은 건 없어도 될 거야. 괜히 도망칠 수도 있으니 슬레이언 부족의 특성을 이용해서 땅속에 가두어 놓는다면...."

요새의 지하!

그곳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게 가두어 둘 수 있는 장소이리라.

지금까지는 인간의 사고방식으로만 생각하여 지상 건물만 뒤졌지만, 잘 생각해 보니 슬레이언 부족은 지하 생활도 많이 한다.

위드는 시골쥐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여기 땅속에 동굴 같은 거 있지?

-찍찍. 있다.

-입구의 위치는?

-두 군데다. 전사들의 숙소 앞과, 중앙의 큰 건물 옆이다.

그새 슬레이언 전사들이 위드가 있는 탑 위에 거의 도착했다.

위드의 생명력은 벌써 46% 정도나 줄었다. 레드 스타로 생명력과 마나가 빨리 보충된다고 하더라도 전투가 길어지게 되면 위험할 수 있는 일.

"블링크!"

위드는 중앙의 큰 건물 근처로 이동했다.

★★★★★★★★★★★★★★★★★★★★★

페일은 요새의 건물들이 불에 타고 때로는 화염이 치솟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정말 용기 하나만큼은......"

요새로 혼자 들어가는 그런 계획이었다니!

좋은 말로 용기지, 구출을 실패하고 죽는다면 이런 객기도 없다.

공성전을 통해서 험한 투브칼 봉우리의 꼭대기에 있는 요새를 함락시키기란 정말 어려운 것이 사실이긴 하다. 

위드는 유린의 그림을 보고, 슬레이언 전사들과 싸워 보고 나서 이미 결정을 다 해 두었던 것이다.

"혼돈의 전사가 쓰는 블링크까지 계획에 들어 있었다면 역시 위드 님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

그렇지만 정말 잘 싸워야만 아르닌을 구해서 돌아올 수 있으리라.

페일은 그동안 위드가 불가사의한 성공을 이루어 내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만큼은 정말 어려울 것 같았다.

"어쨌든 우리가 할 일은, 최대한 많은 놈들이 성벽으로 모이게 하는 겁니다. 우리가 저들을 붙잡아 놔야 합니다. 공격을 계속하면서도 체력과 마나를 아끼세요."

페일은 성벽 위로 머리가 보이는 적 전사들에게 화살을 날렸다.

성벽을 두들기거나 위에 올라가서 싸우고 있는 조각 생명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

제피와 수르카도 성벽 위를 점령했다. 조각 생명체 중에서 게르니카, 빈덱스, 세빌과 같이 싸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페일의 눈에 공중에서 적을 노리고 있는 와이번이 보였다.

"와삼아, 잠깐 이쪽으로 와 줘!"

와삼이가 공중을 선회하더니 곧 그에게로 날아왔다.

"저도 같이 갈게요."

페일은 하이 엘프 엘틴과 같이 와삼이의 등에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궁수로서 높은 위치에 있으면 공격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지고 공격력도 강해진다.

와입언을 타고 공중에서 아래를 보니 더더욱 가관이었다.

킹 히드라는 9개의 머리를 움직이면서 전사들의 창과 화살에 맞서고 있었고, 데스웜은 땅을 뒤흔들어서 몰려 있는 적들을 밀쳐 내고 잡아먹었다.

백호는 켈베로스와 쌍으로 달리기 경쟁이라도 하듯이 성벽 위에서 거침없이 질주하며 적들을 물어뜯고 있다.

악어인 나일이도 느리게 기어가다가 적을 포착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날렵한 움직임으로 한입에 삼키곤 했다.

졸린 듯 눈을 게슴츠레 뜬 슬레이언 전사들을 잡아먹는 대형 악어!

혹시나 가죽에 상처 날까, 위드가 덧입혀 준 좋은 가죽을 몸에 두르고 있어서 창에 맞아도 피해조차 거의 없었다.

조각 생명체들 1마리 1마리의 레벨은 상당히 높다.

그렇기에 놀라운 활약을 하면서 슬레이언 전사들과 싸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정말 꼭 이런 곳에 와 보고 싶었는데. 위드 님을 따라다니면 애초에 시시한 장소에서 싸울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니까."

조각품을 만들 때 참여하면 최소한 피라미드, 그리고 전투에서는 불사의 군단 정도의 스케일!

페일은 요새를 내려다보며 실컷 화살을 날려 주었다. 숨쉴틈도 없이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서

적을 조준해서 쏘는 궁수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

키르는 모라타에서 시작한 초보자였다.

"훗, 남들이 다 추천해서 오기는 했지만, 이곳이라고 해서 별거 있겠어?"

학교에서나 로열 로드의 정보 게시판에서나 사람들은 전부 모라타가 초보자로 시작하는 도시로는 최고라고 했다.

심지어는 그의 부모님들도 모라타에 있었다.

"아들아, 로열 로드를 해 보는 것이 어떻겠니."

"왜 해야 되는데요?"

그의 아버지는 크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네가 친구가 없잖니."

"친구는 세상 사는 데 필요하지 않아요."

"모험을 하면서 여자 친구를 만나는 경우도 많단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면서요."

"...그래도 로열 로드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단다. 얼마나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도시 생활이더냐. 로열 로드라는 장소를 통해서 우리는 현대인으로서 느낄 수 없는 개척 정신이나 정신적인 휴식을 얻을 수 있지. 어른들을 위한 휴양지이며 놀이터이기도 하고. 회사에서도 로열 로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인맥을 쌓는 데 도움이 된단다."

"전 공무원 시험 합격해서 철 밥통 될 건데요."

"......"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아들.

하지만 키르도 로열 로드에 대해서 호기심을 느끼고는 있었기 때문에 결국 시작하게 되었다.

하루를 고민하여 모라타에서 시작하게 되었지만 게시판에서 본 내용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심쩍어했다.

"요즘 사람 말 함부로 믿으면 안 되니까."

키르는 일단 모라타의 도시 구경부터 하기로 했다.

중앙 광장에 서 있는 경비병들이 그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막 모험을 시작한 인간이여, 이곳은 넓고 복잡하니 멀리까지는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거네. 광장에서 간단한 심부름이라도 하고 도시 지도를 사고 나서 다니는 편이 나을 거야."

키르는 그 말을 무시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시장, 교역소나 상점마다 사람들이 미어터질 정도였다.

활당하게 웃으면서 거래하는 상인들의 모습.

몇몇 유저들은 뱃살이 두둑하게 나와 있었는데, 이것은 상인으로서 레벨이 높다는 증거였다.

"물품들을 정말 많이 사고파는 걸 보니 이곳이 번화가인가 보군. 꽤 큰 도시인데....."

영락없이 관광객으로 보이는 유저들이 모라타의 명소들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키르도 그들을 따라갔다.

"도시가 정말 아름답다지만, 그냥 다 허황된 거겠지!"

전부 과장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하고 관광객들을 따라서 언덕을 올라가 보았다.

"카아, 죽인다!"

언덕에서 도시를 보니 멋진 건축물들이 질서 정연하게 지어져 있었다.

예술 회관과 대성당, 대도서관, 여신상, 흑색 거성 그리고 유럽의 고풍스러운 건축양식을 따라서 다양하게 지어진 건물들.

건축가들이 많이 활약하고 있었기에 비슷하게 지어진 건물이 없다.

높은 곳에서 보면 도시의 골목길까지도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성문 너머의 헤스티아의 대장간, 탐구자의 탑을 비롯하여 그 너머의 풍경들도 아름다워 보였다.

어서 빨리 가 보고 싶은 정도로 매혹적인 도시의 풍경!

일찍이 키르가 본 것 중에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답답하게 막혀 있는 빌딩 숲과 매연의 냄새밖에 맡을 수 없는 현실과는 달리 이곳은 쾌활함과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조, 조금은 볼만하긴 하군. 그렇지만 아직 감탄한 건 아니야."

키르는 화가의 언덕을 내려왔다.

슬쩍 둘러보니 화가들이 그리고 있는 그림도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몬스터, 도시의 풍경, 오크와 엘프들을 거느리고 전투를 하는 어느 흉악한 오크의 모습.

그런 그림을 관광객들이나 유저들이 비싼 돈을 지불하며 구입하고 있었다.

"아무튼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쓸데없는 데 돈을 쓴다니까."

키르는 언덕을 내려와서 빌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요리사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하는 맛의 거리.

대륙의 진미들을 맛볼 수 있는 장소로, 건물들도 저마다 으리으리했다.

"여긴 나중에 꼭 와 봐야 되겠군. 맛있는 걸 먹는 건 좋으니까. 하지만 뭐, 맛이 얼마나 있기야 하겠어."

키르는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판잣집이 몰려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사실 그가 게시판에서 본 내용은 이런 것들만이 아니었다.

낮은 세금이나 조각상들의 혜택, 여러 시설물들, 다양한 퀘스트!

이것들은 나중에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모라타의 자랑거리는 이것들만은 아니었다.

-프레야의 여사제들이 있어서 예쁜 여자들이 많습니다.

-외모만 놓고 보면 모라타야말로... 후후후.

예쁜 여자는 보물처럼 그냥 처다보고만 있어도 좋다.

게시판에서 본 그 이야기가 바로 의심을 하면서도 모라타에서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지금까지 거리에서 본 바로는 그냥... 약간 예쁘긴 한 것 같군."

키르는 크게 속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판자촌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평범한 초보자용 복장을 한 여자가 밭에 씨감자를 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판잣집마다 땅이 조금씩 딸려 있어서 사람들은 허기를 때울 수 있는 감자나 고구마를 많이 심는 편이었다.

"뭐, 이런 곳에서 예쁜 여자를 만날 수 있을 리가....."

키르는 길을 잘 몰랐기에 더 위로 올라가더라도 별게 없는 막힌 곳으로 가고있었다.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이었ㅇ기 때문에 밭을 갈고 있던 그녀, 서윤도 땀을 흘려서 가면을 잠시 벗어 두고 있는 상태였다.

"커헉!"

키르는 서윤의 옆모습을 보고 심장이 멎는 줄만 알았다.

아름다움에 대한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여신급 외모!

"우워어어......"

키르는 말도 잇지 못했다.

서윤은 감자를 심고 나서 우리에 있는 송아지에게 여물을 먹였다. 

그녀도 위드가 다스리는 왕국의 주민이 되어서 판잣집 생활을 해 보고 있는 것이었다.

"모, 모라타가 이런 곳이었구나."

★★★★★★★★★★★★★★★★★★★★★

『 던전, 투브칼 요새의 지하의 최초 발견자가 되셨습니다.

혜택 : 명성 2,610 증가.

       일주일간 경험치, 아이템 드랍률 2배.

       첫 번째 사냥에서 해당 몬스터에게 나올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물건 아이템이 떨어집니다. 』 

지하로 뚫린 구멍은 위드가 예상한 대로 요새 내부의 중요한 시설들이 있는 곳이 맞았다.

그리고 슬레이언 부족의 엘리트 전사 10마리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을 침범하다니, 잡아먹힐 자리를 제 발로 찾아왔구나!"

같은 엘리트 전사라도 요새에 있는 놈들보다 차고 있는 장비도 훨씬 좋은 걸로 보아 레벨도 그만큼 높을 것이다.

위드는 그들을 살펴보고 나서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10마리나 되다니 많기도 하군. 블링크!"

입구를 방어하는 엘리트 전사들을 단거리 텔레포트로 넘어가서 앞으로 달렸다.

"구에엑!"

"끼야아앗!"

뒤쪽에서 엘리트 전사들이 괴성을 지르면서 쫓아왔다.

그들이 던지는 창이 위드를 스쳐 지나가거나, 천장과 바닥에 꽂혔다.

이 긴박감과 스릴!

"잡히면 죽겠군!"

위드는 죽을힘을 다해서 달렸다.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바로 한 방향을 정해서 달려야 했지만 여기저기를 쳐다보며 가능한 많은 것을 살피려고 했다.

아르닌이 감금되어 있는 감옥을 찾아낼 수 있다면 더 바랄것이 없었다.

닫혀 있는 문이 발견되면 잽싸게 열어 보기도 했다.

"불의 인간이 쳐들어왔다."

"죽여라!"

방에서는 엉뚱한 슬레이언의 엘리트 전사들만 계속 발견되었다. 그들도 위드의 뒤를 줄지어서 쫓아왔다.

100마리가 넘었을 때에는 주변에서 온통 적들이 모여들고 있었기에 어떤 수를 쓰더라도 싸워서 이기기가 불가능한 상황!

"이렇게 된 이상 2단계 작전이다."

1단계는 적들에게서 도망치기.

2단계는 더 빨리 도망치기.

위드는 상체를 굽혀 네발로 뛰기 시작했다.

무려 60%나 빨라지는 이동 스킬.

모양새가 조금 빠지기는 해도, 살아남는 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는 없다.

"잡히면....."

"아이들의 먹이로 주자."

"구워 줘야 되나?"

"이미 구워진 거 같은데. 그냥 주자.'

슬레이언 전사들은 위드를 어떻게 요리해 먹을지 의논을 하면서 쫓아오고 있었다.

사실 이 던전은 그들의 집이나 다름없기에 그들에게는 아주 익숙하였고, 빠져나갈 곳만 막으면 위드는 꼼짝없이 갇힌 셈이 된다.

"침입자가 이쪽으로 온다!"

이제 앞에서도 전사들이 나타났다.

위드는 다른 방향으로 길을 바꾸었다. 전사들이 여기저기서 잡으려고 덤벼들고 있었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일단 무조건 깊은 곳으로... 그리고 뭐라도 있을 것 같은 장소를 택해야겠군."

위드는 앞을 보면서 갈림길마다 으슥한 장소를 선택하며 계속 뛰어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길의 중간에 빠져나갈 곳도 없는 장소에서 엘리트 전사 둘이 창을 들고 떡하니 막고 있었다.

"죽어랏!"

뒤에서 쫓아오는 적들이 많아서 멈출 수가 없었고, 블링크를 쓰려면 네발 뛰기 스킬을 먼저 취소하여야 했다.

"눈 질끈 감기!"

-창에 어깨를 찔리셨습니다.

 생명력이 크게 감소합니다.

-창이 머리를 쳤습니다.

 치명적인 일격!

 혼돈 상태에 빠져듭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엘리트 전사들은 지나쳤지만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지고 흔들리고 있었다.

혼란 상황에서는 시야가 엉망이 되어서 길을 찾기가 어렵다.

위드는 벽에 부딪치면서도 뚫려 있는 길을 용케 찾아서 네발로 달려갔다.

여기서 멈춘다면 정말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해야만 했으니까!

'혼돈 상태가 풀리려면 최소 13초.....'

추격하는 엘리트 전사들은 그 틈을 주지 않았다.

"저놈이 저기에 가고 있다!"

전사들이 레벨이 높은 만큼, 혼란 상황에 빠져서 벽에 부딪치면서 나아가는 위드를 아주 빨리 쫓아왔다.

이곳은 그들의 서식지인 만큼 지름길로 먼저 와서 앞을 막기도 했다.

결국 네발 뛰기를 그만두고 블링크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어려울 때는 3단계 작전을 썼다.

도망쳐도 안 되고, 머리를 굴려도 안 된다면 몸으로 때우기!

"눈 질끈 감기!"

퍼퍼퍽!

"눈 질끈 감기!"

빠박!

"눈 질끈 감기! 에라 죽여라, 죽여!"

슬레이언 전사들을 밀치고 연속 돌파!

방어 스킬에도 불구하고 위드의 생명력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었다.

레드 스타의 힘을 활용하여 싸우고 싶은 충동도 들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다.

좁은 통로를 이용하여 오래 버티더라도 결국 엘리트 전사들은 계속 모여들게 될 테고, 지상에서 전투를 하는 조각 생명체와 동료들도 언제까지나 싸울 수는 없다.

위드에게 제일 부족한 것은 시간이었다.

"식당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 할 때는 그렇게도 안 가던 시간은 지금은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덜컹.

"엇... 침입자다. 죽여라!"

위드가 문을 열어 보는 곳마다 슬레이언 부족의 경비병들과 전사들만 나왔다.

"야단났군. 생명력도 간당간당하고 마나도 얼마 없는데....."

요새로 들어온 뒤에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고 강제로 전사들을 돌파하다 보니 생명력과 마나가 회복될 시간이 모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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