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30권 : 7) 끝없는 욕심의 헤르메스 길드 (187/520)

7) 끝없는 욕심의 헤르메스 길드

위드는 다시 로열 로드에 접속했다.

'오늘도 광장에 사람들이 참 많군.'

광장에 있다 보면 모라타의 발전을 실감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도 듣고, 장사하는 상인들, 지나다니는 유저들을 구경하다 보면 금방 방이 찾아온다.

'이제 고작 엿새 남았군.'

1달을 버텨야 하는 퀘스트.

조각상으로 가만히 있으면서 지내느라 심심하기는 했지만 이대로라면 무사히 퀘스트를 완수.

광장에는 늦은 시간까지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시간도 지나면 새벽이 되어, 낮보다도 훨씬 사람들이 많아졌다.

해가 떠오르고 난 이후부터는 새들도 구경하고, 따뜻한 햇볕도 받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음, 오늘도 별일은 없겠어.'

광장 한복판에 있다 보면 위험한 사건이라고는 거의 벌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위드는 로자임 왕국의 세라보그 성의 광장에서부터 장사를 자주 했다.

조각사, 요리사, 대장장이로서 영업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손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바가지를 씌울까 궁리하면서 보내던 시절.

모라타에서는 큰 모험에 성공하거나 대단한 무역 이득을 거둔 상인들이 곧잘 나왔다.

"스펜슨 님이 금역 아골디아에서 루의 교단의 성소를 찾았다더라."

"아, 드디어 해냈네."

"성검을 복원하고 있는 중이래. 끝까지 남아서 퀘스트를 하던 사람들 완전 대박이야."

모험가들의 새로운 소식도 듣고, 최근 소문이나 잘 팔리는 상품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직업 마스터 퀘스트에 대한 정보들도 접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자격을 갖춘 다양한 사람들이 활약 중이었다.

전투 계열들은 스킬 요구 레벨이 조금 낮은 편이다. 유명한 랭커가 아니었더라도 철저히 기본 스킬 위주로 성장해 온 사람들은 직업 마스터 퀘스트 경쟁에 뛰어들었다.

스스로도 가장 먼저 성공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할 일.

그리고 이번 기회에 큰 유명세를 떨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마스터 퀘스트를 하는 사람은 알려진 것만 54인까지 늘어났다.

위드는 거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경쟁자들에 대해서는 신경이 쓰이지 않는 편이었다.

'바드레이가 요즘 뜸하던데...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분명히 어디선가 호박씨를 까고 있을 것 같은데.'

탈로크의 믿음 갑옷으로 발생한 악감정!

★★★★★★★★★★★★★★★★★★★★★

헤르메스 길드의 결단의 날.

"전쟁 개시는 오늘 새벽입니다."

라페이는 수뇌부 회의에서 선포했다.

모든 군대는 벌써 라살 왕국의 국경 부근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바드레이도 직업 마스터 퀘스트 진행을 잠시 멈추고 하벤 왕국의 대군을 지휘하고자 나섰다.

라페이가 확실히 하기 위해 말했다.

"우리가 라살 왕국을 치게 되면 패권 동맹에서 이탈하는 것입니다."

베르사 대륙 명문 길드들의 대연합. 패권 동맹.

힘을 합쳐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각기 정해진 영토에서 점령전을 펼치기로 한 약속이었다.

어쩔 수 없는 경우였다지만, 헤르메스 길드는 멜버른 광산에서 흑사자 길드의 영역을 침입한 전례가 있다.

그 때문에 이미 패권 동맹의 다른 명문 길드로부터 공식적인 경고를 받은 상태였는데 군대를 동원하여 라살 왕국까지 침략한다면, 이것은 전 대륙을 향한 선전포고나 다름이 없었다.

수뇌부 역시 이 점 때문에 다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동맹 이탈에 대한 대비책은 철저히 세워져 있습니까?"

"우리 헤르메스 길드가 다른 곳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강대하다고는 하나, 그들이 한꺼번에 적대적으로 나오면 곤란한 부분도 많을 겁니다."

라살 왕국의 점령은 이미 정해진 계획이기는 했지만 중요한 부분이라 우려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라페이가 차분히 설명했다.

"현재까지 파악한 상황에 따르면 다른 길드들은 영토 확장을 끝마치지 못했습니다. 왕국 내에서 기존의 적들과 전투가 이어지고 있기에, 우리를 막기 위해 군사력을 투입하기는 어려운 시점입니다."

라페이는 길드의 대외적인 대포였다.

바드레이가 헤르메스 길드에서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지만, 라페이에게 주어진 권한도 막대하다.

길드 차원에서 중요한 목표가 결정되면 이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은 대부분 라페이와 참모부에서 추진한다.

왕국 개발과 인사 조치, 군대 양성, 다른 길드와의 외교 협상 등의 대부분이 길드장인 라페이에 의해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헤르메스 길드의 성장에 라페이의 공 역시 적지 않은 것이다.

라페이와 그를 뒷받침하는 참모부의 정보력과 결정력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특별히 신경을 써야 되는 몇몇 길드에 대해서는 선제적인 조치들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계획이 무엇입니까?"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라고 하더라도 거느리고 있는 영토가 넓고 성들의 숫자만 100여 개에 달하는 만큼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면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까지 밝히기에 조금 이른 편이라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방법은, 그들과 싸우고 있는 적대 세력에 힘을 실어 주는 것입니다. 파괴 공작이나 요인 암살 등의 여러 지원책이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톨렌 왕국을 장악하고 있는 베덴 길드의 경우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흑사자 길드의 톨렌 왕국의 경우에는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계획이 잘 통한다면 저들을 당황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당장 라살 왕국과 치를 전쟁에 투입할 병력과 자금은 충분한 겁니까?"

"위드를 없애기 위하여 모라타까지 파견하려고 했던 공격대, 그들의 임무를 바꾸어서 이번 일에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다른 비밀 전투단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칼라모르 왕국에서 거둔 세금도 막대해서, 충분히 여유가 있습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입니다. 다른 길드에서 우리의 짓이라는 걸 눈치채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입장이 더욱 곤란해지지 않을까요?"

"우리에 대해서는 다들 이미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세력이 현재보다 커진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격을 해오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명분은 어차피 크게 의미가 없으니, 패권 동맹이 깨지고 헤르메스 길드를 목표로 한 엽합 동맹이 결성될 수도 있겠죠. 그럴 바에야 선제공격을 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대륙을 제패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다른 명문 길드들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영원한 동반자가 아닌, 서로의 이익을 키우기 위한 일시적인 협력 상태였을 뿐!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숨겨 놨던 전력을 드러내며 하벤 왕국의 통일과 칼라모르 왕국의 점령을 재빨리 이루어 냈다.

상대 명문 길드들도 분명히 긴장하고 또 경계하고 있으리라.

시간을 끌어서 대비를 하게 해 줄 바에야 확실하게 앞서 나간다는 선제공격의 전략.

헤르메스 길드는 식민지 운영으로 군대 확장을 이끌어 내었고, 바드레이의 명성 덕분에 고레벨 유저들의 포섭도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현재, 다른 길드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압도적인 전력의 우위에 서 있었다.

★★★★★★★★★★★★★★★★★★★★★

헤르메스 길드의 전격적인 라살 왕국 침공!

공성 병기를 운용하지 않고 마법사 부대를 대규모로 운영하여 요새와 성을 통째로 파괴해 버리며 전쟁을 개시했다.

최상의 수준으로 훈련된 기사단과 기병, 중장갑 보병으로 이루어진, 대륙 최고의 군대.

평원을 가득 메운 군대가 라살 왕국의 방향으로 진격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전율이 일게 만들 정도였다.

속보! 대륙의 최강대국 하벤 왕국이 라살 왕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언하다

라살 왕국,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수도까지 점령은 시간문제일 듯!

대륙에 충격을 안겨 주는 하벤 왕국군의 진격

방속국들은 전쟁의 개시를 신속하게 알렸다. 파급효과만 놓고 본다면 이보다 더 중요한 뉴스가 없을 정도였다.

중앙 대륙에서 전투는 자주 일어나지만, 왕국 단위의 전쟁이 쉽게 발생하지는 않았다.

영토의 면적이나 인구, 군사력, 경제력에서 가장 앞서 있는 하벤 왕국의 일방적인 침공이기에 방송국들은 중요하게 보고 있었다.

하벤 왕국에 비한다면 라살 왕국의 전력은 오분의 일도 안 되는 수준.

설상가상으로 군대에 속해 있는 유저들의 질과 숫자에서도 아예 비교가 안 되었다.

-헤르메스 길드가 쳐들어오는데 어떻게 하죠? 항복하는 사람은 살려 줄까요?

-상인입니다. 지금이라도 몽땅 처분하고 이주하려구 하는데요, 어느 쪽 길로 가야 안전할까요?

-바드레이가 어디서 전투를 벌이는지 아시는 분. 전쟁은 어차피 패배할 거, 구경이나 가게요.

기사 훈련을 통해 평원에서 할 수 있는 갖가지 돌격 전술에 탁월한 실력을 갖춰 온, 헤르메스 길드원을 주축으로 한 하벤 왕국 유저들은 초원에서 라살 왕국의 취약한 군대를 그야말로 남김없이 짓밟아 버렸다.

라살 왕국은 압도적인 하벤 왕국의 군대를 상대할 엄두도 내지 못할 처지라서, 완전 점령도 시간문제였다.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다니. 지겹다, 지겨워.

-헤르메스 길드는 진짜 해도 너무합니다.

-엠비뉴 교단으로 인해 중앙 대륙이 괴로운 지금,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 꼭 왕국 전쟁을 일으켜야만 했나요?

-힘이 있다고 그런 식으로 쓰는 거 아닙니다. 여러분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도 좀 생각해 봐야죠. 물론 그런 거 생각할 머리가 없으시겠지만.

시청자들은 게시판에 가서 헤르메스 길드의 야욕을 맹비난했다.

패권 동맹에 속해 있는 길드들도 긴급회의를 통하여 대응책을 마련하려고 하였다.

헤르메스 길드의 라살 왕국 침공은 명백히 동맹을 이탈했음을 밝히는 행위였다.

하지만 이미 자신들도 전쟁을 벌이고 있는 터라서 대규모의 군대를 빼내는 것은 무리였다.

소규모의 군대로는 아예 헤르메스 길드를 넘볼 수도 없었다.

"로암 길드에서 나서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여력이 되는 클라우드 길드가 먼저 힘을 써 주시면 저희도 동참하겠습니다."

"블랙소드 용병단은요?"

"저희는 최근에 어려운 의뢰를 수행하는 중이라서 빼낼 사람들이 없습니다.'

패권 동맹의 길드들은, 필요성은 공감하였지만 자신들의 피해는 최대한 줄이고 다른 사람들이 나서 주기만을 바라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다른 명문 길드 중 몇 곳은 비밀리에 해르메스 길드의 지원을 받고 있기도 했다.

지긋지긋한 회의가 이어졌지만, 연합군 결성이 정식으로 추진되지는 못했다.

★★★★★★★★★★★★★★★★★★★★★

샤먼을 위한 최고의 장비, 스킬 북, 사냥터, 전투 용병.

다인은 온갖 혜택을 받으면서 던전 사냥을 하였다.

헤르메스 길드의 일반 유저들과는 차원이 다른 특급 대우!

길드에서는 능력에 따라 우대하는 정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인은 평균도 되지 않는 수준에 불과했는데도 특급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았다.

"대체 누구야?"

"몰라. 길드장님이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인ㄴ가 본데. 요구 하는 게 있으면 어떤 지원이라도 해 주라고 했다더라."

다인은 샤먼으로서 높은 스킬 숙련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레벨도 금방 따라서 올랐다.

길드의 지원 팀에서 주기적으로 연락이 왔다.

"필요한 물건이 더 없으십니까?"

"지금은 괜찮아요."

"소모품이 필요하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다스리고 싶은 도시나 성이 있다면 요청하셔도 됩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영주의 자리를 제공한다.

단, 전장에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남들보다 뒤처진다면 지위도 박탈. 다인은 그럴 능력이 되지 않음에도 영주의 자리를 준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원래 라페이, 바드레이를 포함한 헤르메스 길드의 핵심 유저 7명과 로열 로드의 초창기에 같이 성장하였다.

능력을 최대한 우선하는 헤르메스 길드라고 하여도 초창기 창립 공신에 대한 대우는 다를 수밖에 없는 법.

다인은 영주로서 권력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칼라모르 왕국에 대한 관심은 갖고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가 정복한 이후로 그곳의 주민들은 겨우 죽지 않을 정도의 식량만을 남기고 모조리 수탈을 당하였던 것이다.

"칼라모르 왕국에 속해 있는 성이라면 어디든 괜찮아요."

"칼라모르 왕국 지역은 길드장님의 허가가 필요한 사안이라서... 확인 후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길드에서는 불과 몇 시간 후에 대답을 주었다.

칼라모르 왕국에서 영주가 정해지지 않은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으며, 영주가 있는 장소더라도 원한다면 말하는 제안이었다.

"인구가 많고 치안이 낮은 곳으로 구해 주세요."

"치안이 낮은 곳요? 하긴... 그런 곳이 사냥에 유리하고, 명성 올리기도 좋죠. 알겠습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다음 날, 에바루크 성을 다인의 영토로 결정해 줬다.

칼라모르 왕국에서도 일곱 번째로 인구가 많은 성이었는데, 현재 점령의 후유증과 과도한 세금으로 인하여 폭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몬스터의 출현도 잦아져서 치안이 정말 나쁜 장소였다.

"기사단과 보병대도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세금도 3개월간은 납부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특혜의 연속.

다인은 영주가 되고 나서 주민들에게 세금을 감면하고, 시설 투자와 성벽을 개보수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다.

성벽의 관리 상태가 좋을수록 몬스터의 침입이 줄어들고 주민들의 충성도가 감소하는 속도도 느려진다.

먼저 주민들의 믿음을 되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녀는 칼라모르 왕국의 영주로서는 유일하게 예술에 대한 투자도 했다.

조각사와 화가를 우대하면서 그들을 위한 전시 공간도 마련했다.

기사의 왕국 칼라모르.

점령당한 이후 오직 생존이 최우선 목표가 된 이곳에서도 예술의 꽃이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

위드는 중앙 광장에서 조각상이 되어 있는 상태로 전쟁 소식을 들었다.

상인들은 거리를 하거나 주변에 돌아다니는 소문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이제는 온통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들뿐이었다.

"라살 왕국에서 활동하는 유저가 알려 줬는데, 전투 몇 번 해 보지도 못하고 망하기 직전이라더라. 하루에 성을 7개나 점령했다던데."

"와, 진짜 무섭네. 진격 속도가 어떻게 그렇게 빨라?"

"군대를 세 갈래로 나누어서 파상 공세를 펼치고 있대. 각 군대마다 15만 이상의 병력이라는데... 상상도 안 간다."

광장의 상인들은 좌불안석이었다.

중앙 대륙이야 늘 싸움이 벌어지는 곳이었짐나 이렇게 큰 전쟁은 그들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당장 곡물과 철의 가격이 오르고, 전쟁을 피하기 위한 피난민들이 대거 발생하여 물가가 불안정해지리라.

위드는 헤르메스 길드의 승전 소식을 들으면서 끊임없이 기도를 했다.

'망해라. 쫄딱 망해라.'

헤르메스 길드가 커질수록 적대적인 관계를 감안하면 막막하였기 때문.

모험가가 달려와서 말했다.

"헤르메스 길드가 이번에, 공략이 어렵다던 수어쿤 요새도 점령했대!"

하지만 위드는 실망하지 않았다. 헤르메스 길드의 세력이 더 거대하더라도, 전쟁에는 변수가 무수히 많지 않던가.

'져라. 져라.'

이번에는 조각상 부근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이 떠들어 댔다.

"엘나비스 평원도 접수했다더라. 점령 속도가 정말 빨라."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조각품이라 귀도 틀어막지 못하고 무조건 들어야만 하는 소식이라곤 온통 헤르메스 길드의 승전보뿐!

가끔 다른 이야기들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로암 길드나 블랙소드 용병단, 사자성의 전쟁 소식들이었다.

그들도 자신들이 시작한 왕국을 벗어나서 다른 왕국에 대한 침략 전쟁을 개시했다.

헤르메스 길드의 전격적인 라살 왕국 침공으로 인하여 중앙 대륙에 전쟁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모습이었다.

패권 동맹이 영역을 정해 놓고 그들끼리 해 먹자는 약속이었다면, 사실상 동맹이 깨져 버린 지금은 무차별 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진짜 이젠 전쟁의 시대네."

"중앙 대륙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도 달라질 수밖에 없겠지."

"이렇게 싸우다 보면 대제국도 탄생될 것 같아. 그러면 앞으로는 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야 하려나."

전쟁 소식에, 직업 마스터 퀘스트에 쏠려 있던 사람들의 관심도 줄어들었다.

광장에서 퀘스트에 대해 떠들던 사람이 현저히 줄어든 것뿐만 아니라, 방송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직업 마스터 퀘스트는 경쟁은 치열해졌지만 위드가 경험했던 바대로 모험가 체이스나 농부 미레타스, 전사 파이톤 역시 생각처럼 빠르게 퀘스트를 진행하지 못했다.

전투만이 아니라 먼 곳까지 탐헝을 해야 하고, 감춰진 사악한 진실, 전설적인 무언가를 발견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직업 마스터 퀘스트에 따라서 베르사 대륙의 역사가 새로 들춰지거나 지금까지 숨어 있던 존재들이 활약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저마다 심하게 고생을 하다 보니 퀘스트 진행 속도가 느렸고, 자신들이 찾아낸 지식을 방송에는 내보내지 않았다.

직업 마스터 퀘스트를 최초로 성공한다면 다시 얻지 못할 영예를 갖게 되고, 대륙에서 그 직업과 관련해 가장 뛰어나다는 증표가 된다.

하지만 베르사 대륙이 다시 격한 전쟁에 휩싸이고 엠비뉴 교단도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있는 마당이니, 방송국과 시청자들의 관심은 전쟁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믿을 사람은 위드 님밖에 없어."

"응. 전잰의 신 위드 님이 우리를 지켜 주어야 되는데."

"에이, 바드레이를 위드 님이 죽였어야 되는데."

위드를 찾는 말도 많이 들려왔지만, 현실은 동상이 되어서 비바람 맞고 먼지나 쌓이고 있을 뿐.

마침 날씨도 우중충해지더니 그날 저녁에는 비도 많이 내렸다.

퀘스트 완료까지는 이제 이틀이 남았다.

고작해야 1달의 기간이었지만,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사냥도 하고 노가다도 해야 되는데 멈춰 있으려니 심심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런 날씨에는 누렁이를 괴롭혀야 되는데.....'

조각상으로 이틀을 더 보내고, 위드는 마침내 퀘스트를 마쳤다.

띠링!

『 조각의 눈 완료

조각품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성공적으로 가졌다. 』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변화한 도시에서 조각품이 되어 봄으로써 명성을 2,002 획득합니다.

-조각품으로 지내면서 인내력이 39 상승했습니다.

 지구력이 17 상승했습니다.

-행운이 21 상승합니다.

-예술에 대한 새로운 경험으로 스탯이 51 상승합니다.

-아르펜 왕국의 문화 수치가 오릅니다.

조각술 스킬 숙련도는 0.9%가 올랐다.

사실 퀘스트를 하면서 위드도 깨달은 바가 있었다. 퀘스트 자체의 목적이 이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조각품의 마음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심하겠군."

그저 이것이 전부!

사실 무슨 해안가나 절벽 위에 조각품을 깎아 놓는다면, 지나가면서 보는 사람 입장에서야 멋있겠지만 조각품의 입장에서는 정말 심심할 수밖에 없으리라.

"팔아먹기도 힘들고 말이야."

역시 대중적인 게 최고이자 최선.

그 이상의 철학적인 사색을 위드에게 바라는 것은 200원으로 간자장 곱빼기를 시켜 먹으려 드는 것 같은 욕심이었다.

『 조각의 눈 퀘스트를 마치셨습니다.

지금까지 조각사로서, '대륙 최초의 도시 라체부르그' 를 발견하셨습니다.

엘프들의 궁금증을 해결했습니다.

오크들에게 조각술을 가르쳤습니다.

드워프들에게 조각술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아르펜 황제의 조각술을 다시 세상에 펼치고 있습니다.

에르리얀 종족을 찾아냈습니다.

아르닌 종족을 구출하였습니다.

조각술 마스터의 길을 걸으면서, 예술을 널리 퍼트리며 새로운 역사

를 쓰고 있습니다.

대륙의 예술가들과 조각 생명체들은 당신을 우러러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다음 단계의 마스터 퀘스트를 진행하실 수 있습니다. 에르리얀

종족을 만나서 남은 이야기를 들으십시오. 』

-조각화 스킬의 효과가 끝났습니다.

굳어 있떤 몸도 다시 예전처럼 돌아왔다.

슬픈 영화를 보았을 때처럼 위드의 눈가가 미미하게 떨렸다. 그러면서도 절대 흐르지는 않는 눈물!

대장정이라고 할 수 있었던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

'이제 정말 끝이 얼마 남지 않았군.'

조각술을 처음 익히면서 느꼈던 막막하던 감정도 새록새록 기억이 났다.

'그땐 정말 이대로 인생 망친 줄로만 알았는데...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케 예술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지.'

조각품을 2실버에 팔아먹으면서 사람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일에 몰두하던 초보 시절. 조각품을 만들면서 사냥도 하고, 퀘스트도 해 왔다.

'그래도 유쾌한 일도 많이 있었지.'

북부의 추운 곳으로 와서 진혈의 뱀파이어족과 싸울 때는 빙룡도 조각했다.

'빙설의 폭풍을 겪으면서 예술에 대한 소중한 깨달음을 한 가지 얻었다고 할 수 있지. 자연과 예술이 다르지 않다는 것.'

자연에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하여 공짜로 만드는 조각품.

지금은 훼손된 피라미드, 엠비뉴 교단에 의해서 파괴된 스핑크스도 소중한 추억이었다.

불사의 군단과 싸우면서 불가능에 가깝던 전투를 이겨 냈던 것도 조각술의 힘.

그때 생명을 부여한 와이번들은 지금도 요긴하게 잘 써먹고 있다.

위드가 그 이후로 해낸 모험들도, 조각술과 떼려야 뗄 수가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모라타의 발전도 조각술에서 비롯된 면이 많다. 대장일, 재봉, 낚시, 채광, 항해 스킬을 배운 것도 조각술 덕분이지 않은가.

조각사로서는 숙명적인 노가다의 길.

그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소중하고 아련한 추억들이 밀려왔다.

'조각술을 마스터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대장장이 스킬이나 마스터해야 되겠군.'

검술 스킬이야 몬스터와 싸우면서 당연히 마스터하게 될 것이다.

위드의 목표는 모든 노가다 스킬의 마스터!

어쨌든 이제 중앙 광장을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조각상으로 1달간을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움직이는 것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노릇.

지금도 분수대 주변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위드는 눈치를 보면서 조각상으로서 취하고 있던 자세를 계속 유지했다.

양손에 데몬 소드와 조각칼을 하나씩 꺼내 들고 먼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

사람들이 볼까 봐, 눈을 깜박거리는 것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으음... 움직일 수 있는데 가만히 있으려니 더 고역이로군.'

모라타의 중앙 광장에는, 무슨 행사가 벌어진 것도 아닌데 항상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기회는 올 거야.'

저녁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 하나를 위안 삼아 위드는 끈질기게 자세를 유지하였다.

그리고 컴컴한 어둠이 내리고 난 이후, 근처로 다가오는 마차를 포착해 냈다.

위드는 마차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 움직였다. 번개처럼 로브를 착용하고, 네발 뛰기로 마차 옆에 숨어서 자리를 떠난 것이다.

"어? 위드 님의 조각품이 언제 사라졌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뭐야, 어디로 간 거야?"

"몰라. 갑자기 없어졌어."

"그럴 리가 있나. 조각품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

위드는 광산에서 일하고 있는 에르리얀을 만났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말해 다오."

기나긴 여정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급해졌다.

에르리얀들은 곡괭이를 내려놓고 위드가 주는 육포를 받아먹었다.

ㅡ그대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전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저 할게. 과거 아르펜 제국이 사분오열되고 난 이후에 인간들은 전쟁을 시작했어. 우리 같은 생명체들은 그 전쟁을 피하여 대륙으로 흩어졌고, 어딘가에 계속 살고 있을 거야.

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또 데려올 만한 녀석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니?"

조각 생명체들은 몽땅 잡아 와서 일을 시켜 먹어야 하는 대상!

ㅡ아니, 몰라. 그런데 대륙에서 인간들이 살지 않는 곳으로 떠나면서 우리를 보호해 주던 친구가 있었어.

"그게 누구지?"

ㅡ아르펜 제국의 용사 바하모르그. 우리와 함께 태어난 존재야.

위드에게 이제 익숙해진 방식의 영상이 보였다.

★★★★★★★★★★★★★★★★★★★★★

아르펜 제국이 분열되고, 인간들끼리 전쟁이 벌어졌다.

전란의 시대를 불러오는 그 전쟁은 훗날 브리튼 연합 왕국이나 칼라모르, 톨렌, 마센, 그라디안, 노튼, 이제는 사라진 마폰, 브롬바 왕국 등이 생겨난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인간들의 힘이 약해지면서, 멀리 쫓겨났던 몬스터들도 다시 침공을 해 왔다.

아르펜 제국에서 지내던 조각 생명체들은 포로로 잡히거나 아니면 멀리 떠나서 새로운 정착지를 찾았다

.

바하모르그.

아르펜 제국이 대륙을 통일할 당시 조각 생명체 군단을 이끌던 용사였다.

"크레하아!"

그는 고함을 지르면서 적국의 군대나 몬스터들과 싸움을 했다.

마법이 난무하는 장소에서도 불굴의 활약을 하는 용사.

다루지 못하는 무기가 없었으며, 대형 몬스터와 고위 마법사들까지 물리쳤던 진정한 용사였다.

★★★★★★★★★★★★★★★★★★★★★

'음, 상당히 강하군.'

위드는 영상을 보면서 침을 줄줄 흘렸다.

싸우는 모습으로 판단하기에 황금새보다 훨씬 윗줄이었다.

거의 성검이 꽂혀 있는 바르칸급이라고 해도 될 정도!

제국의 수호신이었던 만큼, 대륙 최강의 몬스터급이었다.

'부려 먹기에 딱 좋겠어.'

아르닌, 에르리얀이 건실한 일꾼이라면 바하모르그는 싸움을 위해 태어난 용사였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지?"

ㅡ그는 다른 친구들을 위하여 정착지에서 싸웠어.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 제대로 살아남기 어려웠을 거야. 한 곳을 안전하게 한 이후로는 쉬지도 않고 다른 장소로 이동해서 친구들을 위해 싸웠지.

위드는 그 점도 마음에 들었다.

강한 몬스터는 많다. 하지만 성실하기까지 한다면 정말 잘 부려 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일을 시키기 전에 알아서 한다면 그야말로 착취하기 편한 대상이다.

ㅡ그런데 우리가 마지막에 봤을 때에는, 아무리 바하모르그라고 해도 상처투성이에 독까지 중독되어 있어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저런!"

위드는 안타까웠다. 훌륭하게 잘 부려 먹을 수 있는 조각 생명체가 죽었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ㅡ바하모르그에게 미안해. 그에 대해서도 알아봐 줄 수 있겠어? 그는 아마 아르펜 제국의 수도로 돌아갔을 거야.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이미 죽었겠지만,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이라도 알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 용사 바하모르그

끝없는 강함을 추구하던 바하모르그!

게이하르 폰 아르펜 황제가 바바리안족의 강인함을 부러워하며 만든

조각 생명체이다. 워리어로서 어떤 전투에서도 앞장섰으며,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아르펜 제국이 분열된 이후 바하모르그의 생사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았다. 

그의 최후의 순간에 대해 알아보고 와서 에르리얀에게 알려 주자.

직업 마스터 퀘스트에서 마지막 모험입니다.

이번 임무를 완수하게 되면 직업 마스터의 최종 과정들로 이어지게 됨.

난이도 :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

퀘스트 제한 : 고급 8레벨 이상의 조각술.

              조각품에 생명 부여 스킬이 필요. 』

"드디어 길었던 모험도 끝이 나는군."

위드는 이번 역시 쉽지 않은 의뢰라고 생각했다. 길거리 한복판에 만 원을 흘려 놓고 1년이 지나서 다시 찾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벌써 누가 삼겹살을 사서 구워 먹었더라도 그 삼겹살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시간.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궁지에 몰리거나 어려울수록 단숨에 돌파해 버리는 것이 위드의 방식!

"아르펜 제국의 수도라... 살아만 있다면 찾을 수는 있겠지."

대성도 안타로사!

아르펜 제국의 황궁이나 도시 건물들이 있던 매우 방대한 지역으로, 지금은 완전히 폐허밖에 남지 않았다.

밤이면 극도로 위험한 몬스터들이 들끓는 장소였는데, 부서진 건물 잔해들이 사방에 널려 있어서 더더욱 위험했다.

성벽의 보호도 없고 인근에는 군대도 주둔하고 있지 않다 보니 그야말로 몬스터들이 활개를 치는 곳!

로열 로드의 초창기에 그곳이 알려지고 나서, 모험가들의 일대 탐험 붐이 일어났다.

수많은 마법 아이템이나 잊힌 마법이 기록되어 있는 서적들, 역사서들이 실제로 발굴되기도 하였다.

베르사 대륙의 수많은 지식과 보물이 이곳 안타로사에서 나왔다.

과거 아르펜 제국의 수도이던 때에는 마탑을 비롯하여 온갖 건물들이 다 있었다고 한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예술품이나 엄청난 보물들이 지금까지도 가끔 발굴되기 때문에 모험가들이 대박을 노리고 여전히 많이 찾아가는 장소였다.

"최선을 다해서 알아보겠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ㅡ좋은 소식을 가져오길 기다릴게. 바하모르그는 우리를 지켜 준 용사였어.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찾아보겠다. 반드시 살아 있어야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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