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31권 : 11. 바다거북 (201/520)

11) 바다거북

"인생이 뭔지… 이 나이가 되어 조금 알 것도 같아."

바트는 딸인 서운을 포함해서 사람들이 왜 로열 로드에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실은 동화처럼 따뜻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관계도 차갑다. 기계적으로 학교와 직장을 다니며 스스로의 행복에 대해서 눈뜨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수록 외로워진다.

술을 마시고, 취미 활동을 하고, 여행을 다니면서 위로를 받으려고 하지만 혼자라는 사실도 자주 깨닫게 된다.

그러나 로열 로드에서는 혼자가 아니었다.

"요리사 제이렌이 풀죽의 색다른 맛을 개발했답니다. 해뜨기 전까지 공짜이니 가서 먹어 치웁시다."

"잿빛 늑대 던전을 정벌하러 가실 분! 지금 아홉 번 가서 계속 전멸했거든요. 이번에는 왠지 성공할 거 같습니다. 긴장감 넘치는 모험을 하게 레벨 60 이하만 오세요."

"강철 벨트 팔아요. 솔직히 말해서 무지 무겁긴 하고요, 녹도 슬어서 방어력도 낮아졌어요. 그러니까 싸게 팔게요. 급매! 저 이거 팔고 엄마한테 모자 사 줘야 돼요."

광장에만 가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현실의 백화점이나 지하철, 공원에도 사람들이야 당연히 많다. 그러나 그들과는 어떤 감정도 이어지지 않는 삭막한 관계였다.

로열 로드에서는 누구나 쉽게 말을 붙이고 같이 사냥을 하고, 물건을 사고팔며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모르는 사이더라도 친근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해르메스 길드 진짜 나쁘지 않냐."

"그놈들 이야기는 꺼낼 필요도 없어."

어려운 일은 돕고, 비난은 같이한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같이 지내면서 흥미진진한 모험을 할 수 있는 로열 로드야말로 인기가 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차은히 박사가 서윤에게 로열 로드를 하도록 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군.'

다른 세계를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 세계에서 친구들을 만난다는 것은 소중한 기회이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일이었다.

현실에서는 익숙한 일상이 매일 반복되지만 베르사 대륙에서는 극적인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면서 사람들을 가깝게 만들어 줬다.

위험한 만큼 더욱 즐거운 세상!

그리고 위드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매일 들을 수 있었다.

"위드 님이 이번 모험 봤지?"

"야, 완전 떨리더라. 어떻게 뗏목을 타고 폭풍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냐."

"그 뒤로 주민들이 막 떠들었잖아."

"응. 나도 들었어."

위드가 바다로 가고 나서 한동안 주민들이 말했다.

"아르펜 왕국의 국왕이 미쳤다는 이야기가 있어."

"위드? 요즘에 본 사람은 없지만 바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선원이 말하기를 아마 상어 밥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더군."

"앞으로 우리 왕국은 어떻게 되는 걸까?"

"국왕 폐하야말로 보기 드물게 기사보다도 더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이지. 어느 누구보다도 정의로운 분이야. 폭풍을 경험하고 있다면 다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 그분에 대해서 헐뜯기라도 할 생각이라면, 우리 상점에서 썩 나가게."

아르펜 왕국의 주민들은 물론이고 유저들조차도 위드를 추앙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던 것 같군."

바트는 과거 서윤과 가까이 지내는 위드를 안 좋게 여겼다. 딸을 넘보지 말라는 의미로 돈 봉투를 건네기도 하였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이런 왕국까지 통치할 정도면 갖고 있는 능력이 상당하겠지. 돈에 대해서도 초개같이 여기는 걸 보면, 생각보다 대단한 청년이었던 모양이야."

아르펜 왕국에서 지내면서 위드에 대한 바트의 평가는 긍정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여전히 싫어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건 감히 밖으로 꺼낼 수도 없는 말이었다.

"위드는 진짜 멍청한 거 같더라. 그러니까 바드레이에게 밟히기나 하지."

"대륙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모험하는 것이 다 잘난 척하려고 하는 거잖아. 재수 없다니까."

"풀죽신교는 또 뭐야. 무슨 돈가스신교도 있고 피자신교도 있나. 낄낄낄!"

선술집에서 일부 남성 유저들이 위드를 비난하면 맥주를 마시는 경우를 보았다.

술에 취하다 보면 호기를 부리면서 벌어질 수도 있는 실수.

댕강!

그들은 선술집을 나가고 나서 3분도 되지 않아 죽임을 당했다.

조용히 혼자 구석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던 유저가 따라나가서 해치워 버린 것이다.

유저들도 북부가 개척되어 그들이 즐겁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이유가 위드 덕분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바트는 로열 로드에서만큼은 위드가 하늘처럼 까마득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저씨. 여기세요!"

"벌써 20분이나 기다렸잖아요.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바트는 회사를 경영하는 입장이라서 시간이 잘 나지 않았다.

전투에서의 판단력도 남들보다 떨어져서 헤매는 일이 많은 편이었다. 레벨도 32로 올랐지만 여전히 코볼트가 무서웠다.

솔직히 그가 보기에도 파티에 민폐를 끼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데도 버리지 않고 동료로서 같이 사냥을 해 주는 것이 고마운 적이 많았다.

이것도 풀죽신교에 가입하고 나서 소개받게 된 사냥 파티였다.

"미안하네. 잠깐 한눈을 팔아서…."

"준비는 다 되셨어요?"

"다 하고 왔지. 떠나기만 하면 되네."

"예술품 감상은요?"

"아, 깜빡하고……."

 모라타에서 사냥을 떠나기 전에 예술품을 감상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괜찮아요. 오늘은 조금 먼 곳에 갈 거라서 신들의 정원 들렸다가 가면 되니까요."

그 어떤 파티라도, 위드의 장엄한 조각품을 감상해야만 사냥을 떠날 수 있었다.

퀘스트의 기한이 이례 남았을 때, 위드의 광휘의 검술이 고급 2레벨이 되었다.

띠링!

-광휘의 검술 스킬의 레벨이 고급 2레벨이 되었습니다.

특별한 종류의 새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공격력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퀘스트에 필요한 스킬 레벨을 달성했습니다.

목표 완수.

검술 스킬도 그동안 두 단계가 올라서 고급 4레벨이었다.

거북이의 등에 탄 채로 수련을 한 것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광휘의 검술은 마나 소모가 낮아지면서도 오히려 공격력은 훨씬 커졌다.

지금까지 해라임 검술이나 달빛 조각 검술 등 여러 공격 스킬을 활용해 왔지만 거의 모든 부분에서 광휘의 검술이 압도할 정도가 되었다.

공격 범위도 넓었으며, 다른 보통 유저들이 특히 민감해하는 소위 뽀대 부분에서도 압도적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마나는 조금 과하게 사용하면 독수리 떼가 나타나서 적들을 공격한다. 10마리가 넘는 빛의 독수리 떼는 황홀할 정도로 예쁘지만, 두껍고 높은 파도를 부숴 버릴 정도로 무서운 위력을 가졌다.

게다가 광휘의 검술이 고급의 단계가 되고 난 이후로는 천둥새를 부를 수도 있었다.

천둥새는 몬스터들을 극도로 떨게 하는 능력을 가졌으며, 주변에 벼락을 떨어뜨리면서 전진한다.

"이게 괜히 검술의 비기가 아니로군."

위드는 아주 흡족했다.

천둥새는 마나가 15,000 가까이 들었지만 범위형 공격이었다.

천둥새가 지나가면 주변 일대의 적들에게 벼락을 떨어뜨리니 몬스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남는 장사!

보통 이런 광역 공격 스킬이 1~2개쯤은 있어야 레벨 업이 빠르다.

"괜히 슬퍼지는군."

위드는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의 전투를 직접 검으로 상대를 맞히면서 싸웠따.

조각 검술은 약간의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기도 하였지만 마나 소모에 비해 공격력이 그렇게 높은 스킬은 아니다. 상대가 멀리 있을수록 위력이 약해져서, 일일이 무기로 두들겨 패면서 레벨을 올렸던 것이다.

"이렇게 편한 기술이 있다니……."

위드는 손빨래를 하다가 세탁기를 샀을 때의 감동을 느낄 수가 있었다.

"걸레질을 하다가 진공청소기를 샀을 때 느낌도 이랬지. 잔먼지까지 몽땅 빨아들여 주니 빗질이나 걸레질이 정말 편했어."

위드는 생활용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편이었다.

어째서 노벨 가전제품상이 없는지 알 수 없는 노릇.

그렇지만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직접 검을 휘두르면서 싸웠기에 조각사임에도 불구하고 검술 스킬이 고급이 될 수 있었으리라.

"이번에는 다른 곳으로 가자."

거북이는 위드의 명령에 순종적으로 잘 따랐다.

넓은 등껍질을 수면 위로 내놓고 네발로 헤엄을 치며 이동했다.

폭풍이 심하게 불면서 바다가 요동을 치더라도 거북이는 위드를 위하여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버텼다.

"나에게 생명을 부여해 주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돼."

은혜를 아는 거북이는 똑바로 헤엄을 치기 위하여 온 힘을 다했다.

얼마 후면 위드가 다시 육지로 돌아갈 테니 이쯤이야 기꺼이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음. 말도 잘 듣고 기특하군. 더 부려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위드는 거북이의 도움으로 폭풍 속에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띠링!

조개가 달라붙어 있는 암초를 발견하셨습니다.

해엽 조개가 자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 않는 암초.

해양 길드에 알리면 발견자로서 명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놀라운 발견으로 인해 명성이 190 올랐습니다.

-예술 스탯이 2 상승하셨습니다.

-자연과의 친화력이 9 늘어납니다.

폭풍에서 가까이 가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암초들을 찾아내기도 하였다.

배를 끌고 왔더라면 해류에 휘말려서 암초에 부서질 수도 있었으리라.

위드는 그런 암초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이런 게 다 자연산이라니까!"

-해엽 조개를 채취하셨습니다.

신선해서 고추장만 발라 먹어도 꿀맛.

요리 스킬로 끓이거나 다른 음식을 만드는 데 넣어도 되었다.

가끔 식재료를 구하다 보면 위험한 것들이 나오기도 했다.

약초학 스킬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경우들은 대부분 예방이 되었지만, 그래도 구분하기 어려우면 검치나 수련생들에게 술 한 병과 같이 주면 된다.

절경! 고래의 묘지를 발견하였습니다.

돌로 이루어진 작은 섬. 수명이 다한 고래들이 와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입니다.

-대단한 발견으로 인해 명성이 760 올랐습니다.

-예술 스탯이 3 상승하셨습니다.

-생명령이 750 증가하였습니다.

-자연과의 친화력이 11 늘어납니다.

섬에는 고래의 뼈가 가득했다.

"혹시 어디 남은 가죽이라도……."

위드는 바쁜 와중에도 수색을 하여 밍크고래와 향유고래의 가죽을 습득했다.

"감정!"

밍크고래의 가죽 : 내구역 43/45

생산 스킬 재봉과 관련된 아이템.

궁극의 재봉 재료.

매우 질겨서 찢어지는 일이 드물며, 가죽 중에서 가장 단단하다.

물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가볍지는 않다.

밍크고래의 가죽을 재단하기 위해서는 중급의 재봉 스킬을 필요로 함.

1등급 재봉 아이템.

옵션 : 물의 특성이 부여됨.

낚시꾼이 고래를 낚으면 고기를 얻을 뿐만 아니라 가죽을 판매할 수 있었는데, 재봉사들에게는 없어서 못 살 정도였다.

가벼운 옷을 위한 가죽은 아니라서 권사들을 위한 갑옷을 만들기도 하지만, 소환술사나 마법사 계열들도 원했다. 물의 마법이나 물의 소환물의 능력을 올려 주기 때문에 무게에 대한 부분은 참고 입는 것이다.

"이런 데서 또 수입을 얻게 되는군."

거북이는 폭풍 속에서 자신이 아는 장소들로 위드를 인도해 갔다.

위드는 그럴 때마다 채취하거나 주워 갈 것이 없나를 살피며 산호와 진주 등을 얻을 수가 있었다.

"드디어 육지가 보이는 구나!"

위드는 퀘스트의 기한을 사흘 남기고 해안가 근처에 도착했다.

바다에서 살아가는 거북이는 시야가 거의 보이지 않더라도 길을 잃지 않는 최고의 항해사였다.

맑은 우윳빛 피부에는 위엄이 흐를 정도로 매력적인 바다의 초대형 생명체 말레인스 에우노토 터틀!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등껍질을 가지고 있어 심해나 험한 바다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한 생명체였다.

그의 생명을 위협할 만한 해양 몬스터도 거의 없을 정도로, 처음 나타냈을 때는 위풍당당했다.

"끄윽끄으윽."

그런데 지금은 짧은 목에서 숨넘어가는 소리까지 냈다.

여유롭고 품위 있던 바다 헤엄도, 지쳐서 네발을 허우적거리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위드가 검술을 수련하는 동안 파도에 떠밀려 가지 않기 위하여 계속 버텨야 되었고, 그를 안내하면서 온갖 위태로운 곳들을 다녀야 했던 후유증이었다.

"저긴 참 좋은 곳인데, 소용돌이가 심하여 가기가 어려운 곳이다."

"가자."

"이 바다 밑으로 잠수하면 해초들을 볼 수 있다. 물의 흐름이 바뀌면 해초들이 춤추는 것을 구경할 수가 있는데, 물고기 떼가 이동하는 시기와 맞물리면 정말 멋지다."

"뭐 해, 잠수 안 하고?"

위드는 거북이의 등껍질에 숨어서 자연이 만든 바다의 절경을 몽땅 감상할 수가 있었다.

검술 수련을 하는 동안에는 먹을 만한 물고기를 잡아 줘야 되었고, 입맛에 따라 해삼, 전복, 멍게, 굴까지 바쳐야만 되었다.

"뭐 이런 것까지… 아무튼 잘 먹을게."

그나마 같이 있던 초반에는 위드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었지만 나중에는 이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오늘은 삼치구이가 먹고 싶다고 말했어, 안 했어?"

"신선도가 떨어지잖아!"

"야, 배고파! 이렇게 해서 날 굶겨 죽이려고? 넌 거북이가 되어서 왜 이렇게 느려 터진 거냐."

불평과 잔소리!

"조금만 참자. 얼마 후면 육지로 돌아간다고 하니……."

착한 거북이는 어디에 하소연도 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식모살이를 해 왔던 것이다. 그사이 영양 섭취를 제대로 못 하고 과로를 해서 피부도 폭삭 늙었고, 체력도 에전만 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위드는 폭풍에서 수련을 해 온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얼굴이 뽀송뽀송했다.

바다에서 얼마나 잘 먹었는지를 보여 주는 외모.

비가 내리는 곳을 지나며 옷가지도 빨아 거북이의 등에서 말리기도 했다.

위드가 드디어 육지로 발을 디뎠다.

띠링!

장시간의 항해를 마쳤습니다.

멸종했던 말레인스 에우노트 터블을 타고 육지로 돌아왔습니다.

먼 거리를 이동한 것은 아니지만 폭풍이 부는 지역을 탐험한 것만으

로도 뱃사람으로서는 작지 않은 모험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항해 스킬의 숙련도가 높아집니다.

-명성이 610 올랐습니다.

-인내력이 7 상승하셨습니다.

"거의 60일 만에 밟아 보는 대륙이로군."

암초나 작은 섬에 잠깐 올라가긴 했어도 제대로 된 육지는 오랜만이었다.

거북이는 위드가 내리자마자 서둘러 몸을 돌려서 바다로 향했다. 묵은 때가 씻겨 나가는 것처럼 시원한 이 기분은, 겪어 본 조각 생명체들만이 알 수 있으리라.

"거북아, 이것도 인연인데… 그냥 육지에서 같이 살래?"

"……."

거북이는 대꾸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위드가 생명을 부여해 준 적에 살아났지만 그동안 순전히 혼자서 고생을 하며 그 친밀도는 이미 다 깎여 나간 후였다.

위드는 바닷속으로 사라져 가는 거북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군. 저렇게 착한 녀석도 없는데… 나중에 베르사 대륙에 여름이 찾아오면 바다로 놀러 와야 되겠어."

주식회사 유니콘에서 개최하는 로열 로드 박람회!

매년 컨벤션 센터에서 닷새간 개최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몰리는 전 세계의 관심은 대단했다.

벌써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유저들이 어마어마했다. 완벽한 통역 시스템으로 인하여 티가 나지 않고 있을 뿐, 외국인들도 로열 로드에 푹 빠져 있었던 것이다.

전 세계의 축제라고 할 수 있는 로열 로드 박람회에는 어딜 가든 사람들도 가득했다.

"3시부터 직업관에서 행사 시작한대."

"그럼 저곳부터 가 보자. 오크 부채 나눠 준다더라."

"줄이 너무 길어서 우리 차례 되려면 1시간은 기다려야 되겠네."

매일 방문자들만 수십만 명씩 되었다.

로열 로드가 세계적인 히트를 하고 난 이후에 경제계 인사들의 장문도 잦았다.

유니콘 사에서는 천문학적이라고 할 만큼의 순익을 내고 있었다. 현재의 수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6개월 간격의 성장세가 2배에 이를 정도였다.

로열 로드가 시작되고 난 이후로 벌어들인 어마어마한 현금은 새로운 사업에도 투자되었다.

신소재, 화학, 로봇 개발, 친환경 등의 사업에 진출하여 탁월한 기술력으로 성공하고 있었다.

경기 침체로 일시적인 자금난에 빠진 은행들도 인수하여 빠른 정상화를 이룩하면서 수익을 창출해 냈다.

초기에는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세간의 비판도 받았지만 손을 대는 사업 분야마다 대성공을 거두면서 유니콘 사의 자산 규모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일반인들은 단순히 최초로 가상현실을 탄생시킨 기업으로 알고 있었지만, 경제계나 정치계에서는 유니콘 사에 대하여 알수록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올해도 보내왔군."

이현은 아침에 우편함에서 박람회의 초대장을 꺼냈다.

눈에도 잘 띄는 금색 봉투에 담겨 있는 VIP 초대장!

꿈을 또 다른 현실로

향상된 가치와 비전을 보여 드리기 위하여

이현 님을 초대합니다.

봉투 안에는 약도와 함께 센서 인식이 되는, 옷에 붙일 수 있는 이름표도 들어 있었다.

VIP를 상징하는 금색 이름표!

"무슨 기념품이나 공짜 밥을 준다는 내용도 없네."

유니콘 사의 홍보 팀에서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만든 초대장은 곧바로 종이류 분리수거 박스로 들어갔다.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한정되어 있는 박람회라서 초대장을 구하려고 사방에서 아우성이었지만 이현에게는 그저 남의 일이었다. 철저한 신원 확인으로 인하여 초대장이 판매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병준은 연구실의 화면을 통해서 박람회의 장면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올해도 사람들이 많이 왔군. 작년보다도 더 늘어난 것 같아."

-자리가 없어서 돌아간 사람들을 포함하면 2백만 명을 훨씬 초과합니다.

한국에서는 모터쇼나 게임 박람회를 열어도 관람객이 백만 명은 거뜬히 넘었다.

새로운 것들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리라.

유니콘 사의 박람회가 특별한 것은,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을 위주로 입장을 시켰고 전 세계에서 방문객들이 대거 왔다는 점이다. 공항에서 경찰들이 따로 배치되어 외국의 정치인들과 경제 인사들을 맞이하는 모습들이 뉴스에 연일 보도될 정도였다.

"이현도 왔겠지?"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으니 초대장을 받고도 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헤르메스 길드를 포함하여 다른 명문 길드의 유저들은 초대장을 받고 모두 왔다. 바드레이도 와서 언론들의 인터뷰를 하고 박람회장을 구경하고 돌아갔다.

"한 번을 오질 않는군."

유병준은 그가 창조한 세계 로열 로드가 화제에 오르고 사람들이 즐기는 것을 볼 때마다 묘한 감상에 휩싸이곤 했다.

'저렇게들 재미있고, 행복할까?'

현실과 다른 가상현실.

잠깐 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깨닫지 못하는 다양한 감정들을 배우고 살아가는 또 다른 세계가 되었다.

로열 로드가 발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난 이후로 철학계에서는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삶의 범위를 어디까지 두어야 하는지, 그리고 현실과 가상현실에서의 인간의 선택에 대한 부분들이었다.

논물과 책이 출시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도 사회에서 익숙해진 광경이다.

종교적인, 철학적인 부분에서의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지만, 확실한 것은 로열 로드의 유저들이 이미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늘어나고 있다는 점.

인간의 욕심은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가 충족되면 다른 한 가지를 바라게 된다.

유명한 명언.

배고프면 먹고 싶고, 배부르면 놀고 싶다고 하지 않던가.

현대사회가 인간에게 많은 편리함을 제공하였지만 채워지지 않는 파굊거인 욕구 같은 본성도 있었다. 그리고 도시 생활, 직장에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와 불면증.

로열 로드는 기술이 발달하여 낳은 낙원 같은 곳이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보고 싶은 그런 공간을 만들어 주었기에 세계적인 인기를 끌 수밖에 없었다.

'내 생각과는 많이 다른 반응들이야.'

유병준은 그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가상현실의 공간을 만들어서 현실의 괴로움을 더 보여 주고 싶었다.

'여기 너희가 사는 이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한지 봐라. 이 현실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만들어 낸 가상의 공간만도 못하지 않느냐.'

유병준의 유니콘 사의 주식을 포함하여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의 막대한 유산은 누구나 탐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로열 로드의 정복자에게 모든 유산을 주겠다는 결심도 세상을 비웃어 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

그런데 사람들은 로열 로드를 정말 좋아하면서 행복감을 누렸다. 그러고 나서 오히려 현실에서의 삶을 더욱 열심히 살았다.

이것은 정말 유병준이 조금도 의도하지 않은 것이었다.

즐겁고 행복한 곳이 있으니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람들은 매사에 유병준의 생각처럼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로열 로드라는 세상이 매혹적인 만큼, 현실에서 보내는 시간 역시 역으로 충실해진다.

자신의 주변인들에게 더 잘하게 되고, 직장이나 미래에 대한 부담감도 더 잘 떨쳐 냈다.

인간의 의지란 단순하게 판단하고 이용할 만큼 나약하지 않았다. 때론 힘든 일이 있더라도 시간의 힘을 빌려서 이겨낼 수 있다.

압박감을 해소할 수 있는 장소를 사람들은 바라 왔을지도 모른다.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빠지는군."

유병준은 모니터를 통해 박람회의 모습들을 살폈다.

정말 축제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흥겨운 분위기.

아이를 안고 구경하는 가족의 기쁨에 찬 밝은 모습도 보였다.

유병준은 인공지능에게 물었다.

'박람회장의 전력 공급을 끊어 버릴 수 있나?"

-가능합니다. 비상 발전 시스템으로 곧 전환되겠지만, 그것 역시 강제로 파괴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베르사는 많은 부분을 관장하고 있었다.

친환경 에너지로 가동되는 빌딩과 박람회 건물을 암흑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

유병준은 실행은 하지 않고 핏발 선 눈으로 모니터에 나오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의 모습.

평생을 기계와 실험을 하며 혼자서 산 그로서는 저들의 감정을 알기가 어려웠다.

'왜 저렇게 웃는 걸까. 살다 보면 어려운 일도 많을 텐데.'

유니콘 사의 소유자.

로열 로드의 창조자.

세계 최대의 부자이며, 정치, 경제계에 막후 영향력을 가진 사람.

모니토로 로열 로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낱낱이 지켜볼 수 있었다.

남보다 많이 가지고, 이루어 냈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은 허전함으로 가득했다.

출산, 가정을 꾸리는 일로 사람들은 바쁘고 힘겹게 살아간다.

유병준은 그런 이들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자신은 관찰자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느낄 뿐이었다.

"베르사."

-네, 명령하십시오.

"이건 지시 사항이 아니라 그냥 너의 판단에 따라 대답하면 된다. 내가 좀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지?"

인공 지능은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유병준은 사람들을 쭉 지켜 보며 스스로도 깨달아 가고 있었다.

'내가 좀 잘못 살긴 한 것 같군.'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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