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에 젖은 땅
바람이 사방에서 몰아치듯이 불어왔다. 강물이 출렁거리면서 범람을 했다. 차오른 물이 넘쳐 나면서 대지를 더욱 촉촉하게 젖어 들게 만들었다.
쏴아아아아!
구름이 몰려들며 소나기가 내렸다.
"이제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어떻게 변해 가는지 기다려 봐야지."
위드는 누렁이와 함께 그 비를 맞으며 구경하고 있었다. 로열 로드에서는 비를 맞으면서 상쾌하게 뛰어다니는 것도 아주 재미가 있었다. 평원에서 내리는 비에 흠뻑 젖어 가면서 사냥터로 이동하는 파티들을 언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선술집과 식당도 붐비지만 성문 근처에서 사냥하는 초보들만큼은 쉬지 않는다. 비를 맞으며 도시의 광장과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 대화를 나누는 이들, 분수대와 위대한 건축물들 주변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낭만이 있었다.
ㅡ 재밌다, 재밌어.
ㅡ 그만 돌아갈까?
ㅡ 아니야, 계속 여기서 놀자. 맛있는 것도 먹고 말이야.
페어리들이 놀면서 물품, 개구리밥처럼 늪지에서 자라는 수백 종의 다양한 식물들이 퍼지며 무성하게 자라났다. 수분을 많이 먹고 자라는 나무들도 물 근처에 뿌리를 내리면서 기우뚱하니 특색 있게 성장했다. 주름 많은 나무들끼리 엉키면서 그늘을 길게 드리웠다.
정령들이 놀면서 건조하고 단단하던 땅이 무르게 변화해가고, 잔잔하던 물가에 수중 생물들이 등장하여 헤엄을 쳤다. 갈대밭이 생겨나고 이름 모를 꽃들도 늪지에 옹기종기 모여서 피어났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은 곧 잎들이 붉은색으로, 누렇게 변하면서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눈송이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는 벌써 겨울이 왔군."
눈이 땅으로 떨어질 무렵에는 땅에서 새싹들이 돋아났다. 뜨거운 햇빛이 비치고, 다시 단풍이 우거지고 눈이 내렸다. 나중에는 소나기와 눈, 햇빛, 단풍까지 뒤섞여서 엉망진창! 페어리들이 있으면 곧잘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지게 된다.
제대로 자연 늪지가 형성되려면 긴 세월을 필요로 하지만, 페어리들의 능력에 의하여 마법처럼 그 기간이 단축되고 있었다. 계절의 변화가 적어도 200년에 달하도록 흘러갔다. 어느새 늪지에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생명과 식물들이 살아갔다.
"음머어어어어."
위드와 누렁이가 서 있는 바위 주변에도 허리까지 빠져 버릴 정도로 깊은 늪이 형성되었다. 늪에 피어 있는 꽃들의 모습이 예쁘기도 했다.
"자연의 생명력이 드러나는, 그럭저럭 괜찮은 작품이 된 것 같기도 하군."
넓은 땅이 몽땅 늪으로 변했지만 동식물들이 살아가는 것들을 보면 나쁘지 않았다. 이름도 모를 수많은 작은 생명체들이 잎사귀에 앉아 있다가 물에 뛰어들어 헤엄을 친다. 늪에서도 조금 큰 물줄기에는 생선들도 팔딱팔딱 뛰어다녔다.
하늘에서는 맑은 울음소리와 함께 새들이 찾아와서 늪지 주변을 날아다녔다. 늪지가 형성되면서 주변의 새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 지역 전체의 땅이 뒤흔들렸다. 휘드가 흙꾼이들을 동원하여 형성해 놓은 조경용 사암층들이 마구 솟구치고 있었다. 사암층이 웅장하게 사방으로 뻗어 나가면서 일대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것이다.
늪지의 경계 너머에는 제법 경사가 있는 언덕들이 있었다. 위드가 나중에 포도 농사라도 하면 괜찮겠다고 점찍어 놓은 곳들. 강과 늪지를 병품처럼 두른, 계단식 사암 산악 지대가 형성되고야 말았다. 사암 산악 지대에서도 물이 흐르면서 꽃과 풀이 자랐다. 계곡처럼, 맑은 물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며 웅덩이도 생성되었다.
"여긴 완벽하게 쓸모없는 땅이 되었군."
아직 아르펜 왕국의 땅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드는 너무나도 아까웠다. 사암에 올라서 주변을 바라보면 정말 예술과도 같은 경치였지만, 문제는 세금을 거둘 수 없지 않은가.
페어리들로 인한 변화를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악어와 같은 동물도 살게 되었고, 수중 생물과 곤충, 새들이 돌아다녔다. 늪지에 피어 있는 꽃들을 찾아서 노란 나비가 날아다니는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바람이 불면서 나뭇잎을 흔들어 소리를 내고, 새들과 동물이 울었다. 자연이 내는 음악이 이 땅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
│- 만드신 조각품의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
└────────────────────────────────────┘
"이건...절망과 통곡 그리고 후회로 가득 찬 땅이라고 해야 될까."
┌────────────────────────────────────┐
│- 절망과 통곡 그리고 후회로 가득 찬 땅이 맞습니까? │
└────────────────────────────────────┘
이렇게 이름을 지으려니 너무나도 속이 보이는 것 같았다.
'조금은...너무 단순하지 않고 시적인 표현을 하는 것도 괜찮겠지.'
자연 조각품의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아니야. 벌써 저질러 버린 이상은 어쩔 수가 없겠지. 이름은 물에 젖은 땅으로 하겠다."
┌────────────────────────────────────┐
│- 물에 젖은 땅이 맞습니까? │
└────────────────────────────────────┘
"맞아."
띠링!
┌────────────────────────────────────┐
│ 자연의 대작! 물에 젖은 땅을 완성하였습니다. │
│ 세기의 조각사가 자연을 조각한 작품! │
│ 생명의 보고인 늪과 샘. 사암지대를 조각하였습니다. │
│ 자연의 힘을 이용할 줄 아는 조각사만이 해낼 수 있는 일로, 이곳에는 희귀 │
│ 한 엘프들의 나무들과 까다로운 요정들의 풀이 자라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
│ 동식물의 개체 수와 규모 면에는 대륙에 손꼽힐 만한 장소입니다. │
│ 이곳은 조각사가 자연으로 돌려주는 소중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
│ 예술적 가치 : 8,142. │
│ 특수 옵션 : 물에 젖은 땅에서 동식물의 새로운 종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
│ 생명의 원천으로, 방문하는 이들의 생명력과 마나를 일주일간 │
│ 50% 늘려 줍니다. │
│ 전 스탯 19 상승. │
│ 전염병과 독에 대한 내성이 영구적으로 1% 증가. │
│ 주변 일대 동물들의 성장 속도를 높입니다. │
│ 광범위한 주변 지역의 자연을 맑게 정화합니다. │
│ 지금까지 완성한 자연 대작의 숫자 : 1 │
└────────────────────────────────────┘
┌──────────────────────┐
│ -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
└──────────────────────┘
┌──────────────────────┐
│ - 손재주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
└──────────────────────┘
┌───────────────┐
│ - 명성이 4,093 올랐습니다. │
└───────────────┘
┌───────────────────┐
│- 예술 스탯이 19 상승하셨습니다. │
└───────────────────┘
┌────────────────┐
│ - 지혜가 7 상승하셨습니다. │
└────────────────┘
┌────────────────┐
│ - 지력이 9 상승하셨습니다. │
└────────────────┘
┌────────────────┐
│ - 용기가 3 상승하셨습니다. │
└────────────────┘
┌─────────────────────────────────┐
│- 생명이 숨 쉬는 원천을 조각하여, 자연과의 친화력이 49 오릅니다. │
└─────────────────────────────────┘
┌───────────────────────────────┐
│- 대작 조각품을 만든 대가로 전 스탯이 3씩 추가로 상승합니다. │
└───────────────────────────────┘
┌─────────────────────────┐
│- 요정들과 엘프들과의 더욱 우호적으로 바뀝니다. │
└─────────────────────────┘
대작을 완성할 때마다 조각사로서 느끼는 기쁨과 충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지금이야 위드가 쌓아 놓은 스탯이 워낙 많지만, 예전에는 조각품을 성공적으로 만들 때마다 얻는 1~2개씩의 스탯들로 전투가 다르게 느껴졌을 지경이다.
"땅을 바치고 조각품을 얻다니..."
그럼에도 위드는 무언가 아쉽고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
"페어리들의 도움으로, 긴 세월로 다듬어지는 조각품을 대륙의 북부에 만들고 왔습니다."
"성공하셨구려. 어떤 일이든 해내는 것을 보니 불가능을 모르는 조각사 같소이다."
"예술을 위한 조각사의 손에서는 어떤 기적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는 법이지요. 저는 오로지 순수하게 예술만을 생각하였고, 자연 생태계를 생각하였을 뿐입니다."
위드는 로디움으로 와서 퀘스트를 보고했다.
띠링!
┌────────────────────────────────────┐ │ 긴 세월로 다듬어지는 조각술 완료. │
│ 거장조각사 위드는 다방면에 걸쳐 천재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 특별한 가치를 지니며 정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하며, 때론 한 지역을 대표 │
│ 하기도 한다. │
└────────────────────────────────────┘
┌───────────────┐
│- 명성이 1,600 올랐습니다. │
└───────────────┘
┌─────────────────────┐
│-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
└─────────────────────┘
┌─────────────────────────┐
│- 대륙의 조각사 길드에서의 평가치가 향상됩니다. │
└─────────────────────────┘
"후후."
위드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맺혔다.
'이번에도 성공했으니 이런 식으로 간다면 조각술 최후의 비기도 익혀서 정말 떼돈을 벌어들이게 되겠어. 매일 들어오는 돈을 세다가 하루가 지나 버리고,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우에엑에에엣"
썩은 미소가 주제할 수 없을 정도로 지어지려고 해서 숨이 잘 안 쉬어졌다.
노인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으니 말을 해도 되겠군. 지금까지의 부탁들은 자격을 시험해 보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 베르사 대륙의 역사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오?"
"약간....은 압니다."
"그렇다면 대륙의 8대 미궁 중에서 수많은 모험가들을 잡아먹었다고 알려진..."
"미친 악마가 산다는 로드릭 미궁 말씀이십니까?"
"정확히 알고 있었구려. 과연 거장 조각사답게 대륙의 역사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없소."
위드는 확실히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륙 8대 미궁. 이런 곳에는 절대 가지 말아야지.'
위험한 것도 어느 정도여야 하지 않겠는가. 로열 로드가 열리고 난 초창기부터 대륙 8대 미궁은 유명했다.
- 들어가면 죽음.
- 순식간입니다.
- 길어야 1분.
주민들과 거리의 행인들조차도 8대 미궁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와 관련된 의뢰도 잘 나오지 않았다.
"내 아들이 로드릭의 미궁으로 들어갔다고 하는데...아들은 노튼 왕국의 왕실 기사라오. 그날 이후로 못 봤지."
유저가 물었다.
"아들을 찾지 않으실 겁니까?"
"휴우, 어쩌겠고. 그 녀석의 수명이 거기까지라고 생각을 해야 되겠지. 뭐, 그냥 포기했소."
주민들조차 8대 미궁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서는 체념을 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디 유저들의 호기심이 굴복할 수 있겠는가.
"가 보죠. 우리 정도의 파티라면 대륙에서도 흔치 않을 겁니다."
로열 로드가 열리고 나서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 레벨 200대의 유명한 파티가 로드릭 미궁에 들어갔다. 사실 그 정도의 레벨로는 다른 위험한 던전에 가기도 버거웠다. 하지만 모든 것이 도전이고 모험이었던 시기라서, 가장 높은 난이도의 던전에서 이름을 날리고 싶은 욕심을 이기지 못했다. 저마다 어느 정도의 능력도 있고, 자신감도 가진 상태였다.
그리고 결과는 몰살!
- 실패네요. 지하 1층의 부근에서 전부 죽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유저들의 수준이 오르면서 도전하는 파티는 계속 나왔다. 레벨 300대, 400대의 파티들도 모조리 죽었다. 무서운 것은, 미궁의 특성상 들어가게 되면 입구가 막혀 버리게 되어서 단 1명도 살아 나오지 못했다.
노인은 그런 8대 미궁 중에서도 유별나게 함정이 많고 몬스터들의 수준도 극악한 로드릭 미궁에 대하여 말을 꺼낸 것이다. 더군다나 로드릭 미궁은 얼마 전에 중견 길드 아이언모닝스타에서 도전을 한 적도 있었다.
자그마치 600명이나 되는 대인원이 들어가더니 어김없이 몰살!
성과 도시를 지배하고 있는, 상당히 알려진 아이언모닝스타는 도전이 실패로 끝나면서 자중지란까지 일어났다고 한다.
"로드릭 미궁이라면 저에게는 너무 어려운 장소인 것 같습니다."
"아니오. 지금까지 맡았던 일들을 완벽하게 해낸 것으로 봐서 이번 일도 확실히 해 줄 것으로 믿소."
┌────────────────────────────────────┐
│ - 찬란한 아름다움의 표현법과 관련된 의뢰는 중간에 미루거나 포기할수 없 │
│ 습니다. 계속 진행됩니다. │
└────────────────────────────────────┘
"대마법사 로드릭은 특이한 사람이었다오. 여러 종류의 물건들을 모으는 취미를 가졌고, 예술품도 아주 좋아했지."
위드는 아무래도 너무 무리라고 생각되었지만 로드릭 미궁과 관련된 귀중한 정보, 배경 설명에 대해서는 빠뜨리지 않고 듣고 있었다.
"로드릭은 마법사답게 탐구욕이 무척 강했다오. 그는 새로운 마법을 개발하기도 하였고, 여러 가지의 마법을 조합하여 쓸 줄도 아는 천재였지. 찬란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조각사들의 연구에도 관심을 갖고 참여하였지."
노인은 그리고 길게 설명을 했다.
로드릭은 조각사들과 술을 마시면서 그들의 고민거리를 들었다. 그날 이후로 찬란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상당한 진척을 이루어 냈다. 물론 그 내용은 쓸데없이 비밀을 잘 지켜서, 참여한 조각사들과 로드릭만이 알고 있었다고 한다.
"조각사들이 찬란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법을 연구하고나서 그렇게 아주 긴 시간이 흘렀다오. 이제는 그 연구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사람도 남아 있지 않지. 로드릭은 호기심이 무척 왕성하였는데 그가 소환술에 손을 뻗친 건...매우 불행한 일이었다오."
원래 모든 일들이 비슷했다. 조금 잘나간다고 거만해지거나 자만심을 갖게 되면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200원 더 비싼 소금을 사는 것처럼 최악의 선택을 했군.'
노인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악마를 소환하여 그 힘을 연구하고자 하였으나 싸움이 벌어지고 말았지."
"아, 악마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로드릭은 자신이 마법을 연구하던 던전을 외부로부터 폐쇄하였다오. 들어올 수는 있어도 나갈 수는 없도록..."
위드는 눈앞에 영상이 나왔다.
늙은 마법사와 악마의 다툼.
마법사가 스태프를 든 채로 주문을 외울 때마다 어마어마한 마법이 작렬했다. 악마가 얼어붙고, 지옥의 불처럼 타올랐다. 몸이 새까만 악마는 긴 꼬리를 가졌으며 날개를 가지고 있어서 날 수도 있었다. 고위 마법의 끔찍한 공격을 당하면서도 큰 상처는 입지 않았다.
대마법사 로드릭에게는 그를 지켜 주는 많은 가디언과 인간 기사도 있었다. 전투가 벌어지면서 그들이 차례차례 죽음을 맞이하고, 새끼 악마들이 열린 흑색 공간에서 하나씩 튀어나왔다. 점점 승세가 기울자, 결국 로드릭은 던전에 설치되어 있는 방어 마법을 작동시켰다.
"위대한 마나의 힘으로 이곳은 일그러진 공간으로 재배열될 것이며 자신에게 두려운 환영이 시작되리라. 악마 몬투스, 너 역시 인간들이 사는 세상으로는 영원히 나가지 못할 것이며, 지옥으로도 돌아가지 못하리라."
"안 된다. 쿠에에엑!"
악마에 의하여 로드릭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던전에는 공간을 왜곡하는 마법이 펼쳐지게 되었다. 길을 똑바로 걷다 보면 자꾸만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된다. 수없이 많은 갈림길이 나타나서 앞으로 걷다 보면 옆의 방에 도착하기도 하고, 갑자기 지하 2층으로 내려가게도 된다.
던전의 어딘가에는 밖으로 나가는 문이 분명히 있을 테지만 그곳을 찾은 이는 누구도 없다. 미궁의 안으로 들어가면 길을 찾지 못하고 악마병들과 발동된 함정에 의해 죽기 마련이다. 그날부터 들어가면 길을 찾을 수 없는 미궁이 되어 버린것이다.
로드릭 미궁은 독특한 점이, 마법 연구를 하던 던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화려했다. 원래는 지상에 지어져 있던 몰락한 국가의 왕궁을 로드릭이 마법으로 지하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위드는 아이언모닝스타 길드가 미궁에 들어가서 싸우는 방송을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악마병들과 전투를 하는 영상이 굉장히 아름답기는 했지.
시청률도 꽤 많이 나왔고.'
정확히 말하면 멋진 배경을 바탕으로 악마병들에 의하여 아이언모닝스타 길드가 단체로 죽어 나가던 장면이 일품이었다. 게다가 로드릭이 불러 놓은 환영! 미궁 내에는 온갖 종류의 몬스터들이 돌아다니는데, 자신들이 진자인 줄 알며 싸움을 걸기도 했다.
그들의 존재가 심각한 이유는 환영에게라도 맞으면 생명력이 똑같이 줄어든다는 점. 게다가 막상 사냥에 성공하더라도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게 되니, 이들도 엄청난 골칫덩이다.
'아이템을 안 주다니...정말 최악의 몬스터라고 할 수 있어.'
로드릭이 연구하던 변종 몬스터들도 풀려나와서 돌아다니는데, 특별한 능력들을 하나씩은 갖고 있었으며 보호 마법까지 충실히 걸려 있다.
막막함과 절망 그리고 죽음의 미궁 그 자체!
영상을 통해서지만 로드릭 미궁을 봤던 느낌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정말 가장 큰 문제는, 들어가더라도 누구도 찾아내지 못한 출구를 알아내거나 미궁을 정복하지 않는 이상 바깥으로 나올 수가 없다는 점.
위드가 그곳에서 죽으면 레벨과 숙련도 하락 그리고 최후의 비기를 얻는 퀘스트는 실패해 버리고 끝이 난다. 조각 생명체들까지 데려간다면 그것은 완벽한 몰살을 의미했다.
미궁으로 다시 들어가서 생명을 부여하여 되살릴 수는 있겠지만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상 끝이었다. 위드가 데리고 있는 조각 생명체들을 영구히 잃어버릴 수 있었다.
*
위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마법사 로드릭이 가지고 있었던 연구 기록들이 찬란한 아름다움의 표현법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겠지요?"
"잘 알고 있구려. 조각사들이 무엇을 추구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기록을 살펴봐야 한다오. 그리고 한 가지 명심해야할 것은, 너무 늦으면 안 된다오. 다른 사람이 먼저 그 연구기록들을 입수해도 안 되고, 악마들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면 놈들은 기록을 가지고 미궁을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니."
띠링!
┌────────────────────────────────────┐
│ 로드릭 미궁 │
│ 미궁에는 하급 악마 몬투스와 그의 부하들이 갇혀 있다. │
│ 그들은 호시탐탐 세상으로 나오려고 하고 있기에 미궁 안으로 들어가면 싸 │
│ 움은 피할 수 없다. │
│ 최초로 로드릭의 연구 기록을 읽어야만 다음의 퀘스트로 이어지게 될 것이 │
│ 다. │
│ 난이도 :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 │
│ 퀘스트 제한 : 사망했을 시에는 퀘스트 실패. │
│ 최초로 로드릭 미궁을 정복해야 함. │
└────────────────────────────────────┘
"조각사들이 그토록 바라던 염원을 제 손에서 반드시 이루어 내도록...."
위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위험한 일인데, 잘 다녀오시구려."
┌──────────────┐
│-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 │
└──────────────┘
"....."
뜸 들이면서 받는 여유조차도 주지 않고 퀘스트 부여 완료!
위드는 로디움의 거리로 나와서 생각에 잠겼다.
'이번 의뢰가 어려울 거라고 어느 정도까지는 예상을 했던 일이야.'
연계 퀘스트의 흐름상 지금까지 조각술 최후의 비기를 얻기 위하여 여행도 했고, 대재앙도 일으켜 보고, 광휘의 검술로 단련도 되었다.
'괜히 강해지라고 하진 않았던 거지.'
지금까지는 그래도 퀘스트들이 그럭저럭 할 만은 했다. 대재앙을 일으키는 퀘스트가 위험했다고는 해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살 확률이 높다. 더군다나 먼저 작정하고 종류까지 선택하여 일으키는 재앙이니 충분한 준비도 할 수 있지 않던가.
벌새의 여행이야 관광과 머리를 식히는 용도였고, 광휘의 검술도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위드는 일주일을 남겨 놓고 광휘의 검술 레벨을 목표치까지 다 올렸지만, 그건 정해진 날짜까지 충분히 달성할 수가 있기에 여유를 가졌기 때문.
화장실 가는 횟수까지 줄일 정도로 악착같이 했다면 그보다 며칠은 더 단축할 수가 있었다. 단순 노가다 퀘스트야말로 위드의 주 전공이었지만 로드릭 미궁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실패할 확률이 높은, 그리고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외로를 받아들이게 되었군.'
위드의 가슴은 긴장감으로 두근거렸다. 최근에는 정말 어려운 퀘스트가 없이 대충은 해 볼 만했다. 직업 마스터 퀘스트도 조각술의 비기들을 다 갖추고 있어서 흐름을 쉽게 따라갈 수가 있었다.
'대부분 시작하기 전부터 성공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지.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닫시 시도할 수 있어서 여유도 많았고.'
마법의 대륙 시절부터 전설이 되었던 위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모험들을 기적처럼 이루어 냈기때문이다. 조각술 최후의 퀘스트는 조각술의 비기를 몽땅 갖고 있다는 것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난이도가 터무니없이 높을 수밖에 없다. 위드는 여러 가지 방향으로 깊이 생각을 해 보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퀘스트는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다면 진짜 실패하겠군. 시간을 미뤄 두고 오래 끌 수도 없겠지."
다른 유저들도 당분간은 로드릭 미궁을 정복하진 못한다. 절대 죽는 곳으로 알려진 다른 미궁들 중에도 어느 곳 하나 모험가의 발길을 허락한 곳이 없었다. 그렇지만 누구든 로드릭 미궁을 정복한다면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는 없어져 버리게 된다.
"악마 몬투스가 뛰어나오기 전, 그리고 중앙 대륙의 전쟁이 정리가 되어서 북부로 침공이 이루어지기 전에 최후의 비기를 얻어야 돼."
그저 앞으로의 일이 막막할 뿐이었다. 최후의 비기가 대체 어떤 것인지 알기라도 한다면 마음이 편하련만. 고생 끝에 낙이 오지 않고 절망감만 얻게 되면 어떻게 하겠는가. 인생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도 맞지만 노력한 만큼 꼭 성과가 따라오지도 않았다.
"역시 부잣집 아들만 한 게 없는데."
위드는 일단 소므렌 자유도시에 있는 프레야 교단으로 향했다. 미궁으로는 일단 최대한의 병력을 데려가야 했다.
"우리 파티가 조금만 더 공헌도를 올리면 성기사를 초대할 수 있을 거야."
"그럼 바트랩 마굴에도 갈 수 있는 거야?"
"물론이지. 그러려고 프레야 교단에 와서 계속 퀘스트를 하고 있는 거잖아. 거기서 사냥하면서 우리가 필요한 장비는 다 맞출 수 있을걸."
소므렌 자유도시의 프레야 교단의 총본영은 여전히 유저들로 북적였다. 브리튼 연합 왕국의 전쟁도 이곳까지는 그다지 피해를 주지 못한 모습이었다.
"대신관님께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먼 길을 오셨군요. 바로 모시겠습니다."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들과 사제들은 먼지투성이인 위드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바로 대신관이 있는 장소로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