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시간
"노들레! 힐데른은 바다신에게 바쳐져야 할 제물이다. 당장 그곳에서 멈춰라!"
대형 전투선들에서 외치는 소리는 위드와 서윤을 노들레와 힐데른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위드는 단순한 착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투함선이 이렇게 뒤쫓아 온 것도 그렇고, 퀘스트를 하고 있는것도 우연은 아니다.
노들레와 힐디른이 보로타 섬을 빠져나가던 과거의 그날이 마치 환상처럼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모래로 인해 시간의 축이 흔들려 신비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신비한 일은 무슨."
퀘스트 아이템이 오히려 화를 불러온 상황!
서윤이 위드를 물끄러미 보았다.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필요하다면 저를 보내도 돼요."
아마도 이 상황에서 힐데른도 노들레에게 그렇게 말했을리라. 연인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애간장을 태울 만한 그런 순간이었다.
물론 서윤이 한 말의 의미는 사뭇 달랐다.
힐데른의 경우에는 노들레가 자신 때문에 괴로움을 받지 말라는 뜻이었다면 서윤의 경우에는…….
'저를 보내 주세요. 전부 죽이고 돌아올게요.'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우린 끝까지 함께 갈 거야. 절대 저들에게 널 넘겨 줄 수 없어."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는 정말로 중요한 것이다.
서윤을 넘겨줘서라도 성공할 수 있다면 사실 심사숙고해 볼 만은 하다.
그렇지만 동료가 사망해도 퀘스트는 실패!
"정말이에요?"
"그럼. 아무리 말해도 우린 끝까지 같이 갈 거야."
서윤은 다시 한 번 곱게 웃었다.
위드는 항상 무심한 척하면서도 그녀를 깊이 아껴 주었다.
과거에도 그녀가 배가 고프면 당연하다는 듯이 밥을 해 주고, 다치면 붕대를 감아 줬다.
물론 위드는 그저 그녀가 무서워서 비굴하게 바쳤던 것이지만.
"빠져나갈 수는 있겠어요?"
"최선을 다해 봐야지."
위드는 힘껏 노를 저었지만, 대형 돛을 활짝 펼치고 탄력을 받은 전투함선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지도상으로는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암초 지대가 나올 텐데 ……'
거기라면 전투함선들을 따돌릴 수 있다.
'아마도 노들레는 나보다 배를 잘 몰았을 거야. 따로 짐을 싣고 있지도 않았을 테고, 그렇다면 무난히 이들을 따돌렸겠군.'
조각배와 바다신의 대형 전투선들은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해상전 경험에 의하면 곧 대표의 사정거리 안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잠깐 다녀올게요."
"응?"
서윤은 배에서 일어나더니 가변게 훌쩍 몸을 날렸다.
그리고 활짝 펼치는 빛의 날개!
조각 생명체 중의 빛의 날개는 최근에 서윤에게 가 있다.
누렁이나 금인이에게는 그다지 쓸모가 없기도 했지만, 빛의 날개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서윤을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빛의 날개를 활짝 펼친 서윤은 바다신의 전투신의 갑판으로 날아갔다.
조각배에서 노를 젓고 있던 위드는 조마조마했다.
"놈들에게 사로잡히면 퀘스트 실패인데.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를 이렇게 허망하게 실패해 버리는 건……."
그리고 전투선에 들려오는 무지막지한 소리.
우지끈! 콰과광!
중앙 돛이 옆으로 쓰러지고, 대포와 선체가 마구 파괴되고 있었다.
"끄아아악!"
"사, 살려 줘!"
바다신의 추종자들의 비명 소리, 여기저기서 앞다투어 바다로 뛰어드는 듯한 물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에 기우뚱 기울어져서 침몰하는 전투선!
서윤은 빛의 날개를 펼치고 다른 전투선으로 날아갔다.
꽈과광! 쾅, 꽈광!
전투선에서 벌어지고 있울 어떤 끔직한 일을, 직접 보지도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제대로 미쳤겠구나."
르로이 평원에서처럼 광전사의 능력이 확실히 발휘되고 있으리라.
"이건 노들레와 힐데른의 이야기와는 다르겠군."
원래 퀘스트의 내용대로라면 자신이 연약한 힐데른의 역할을 하는 여자를 보호해 가며 난관을 뚫고 도주를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광전사 서윤이 바다신의 추종자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요즘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데. 여자가 한을 품으면 데스 나이트보다 무서운 세상이지."
잠시 후에 3척의 배가 침몰했을 때쯤부터는 위드가 대포의 사정거리에 들었다.
퍼퍼펑!
조각배 주변으로 떨어지는 포탄들이 높은 물기둥을 일으켰다.
포격이 개시되었지만 아직 먼 거리라서 정확한 공격은 아니었다.
위드는 능숙하게 노를 저으며 그 사이로 배를 몰았다.
노를 저어서 움직이는 작은 배라서 오히려 대포를 피하기는 훨씬 쉬웠다.
서서히 나타나는 암초들.
따라오던 6척이 암초에 부딫치고, 바다신의 전투선들은 추격을 중지했다.
그리고 난 이후에도 서윤은 2척을 더 불태웠다.
바다에서 화염에 휩싸여 활활 타오르는 침몰선들!
그 후에야 서윤은 빛의 날개를 펼치고 다시 조각배로 돌아왔다.
"다녀왔어요."
서윤의 미소는 그 어떤 화가나 조각사라도 표현해 내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단지 지금은 조금 무서울 뿐!
과거 차갑게 굳은 표정을 하던 서윤은, 이제 위드의 앞에서는 칼을 들고 잘 웃었다.
무사히 벨라스케스 해역으로 들어갔지만, 거기서부터는 또 다른 난관의 시작이었다.
푸립!
해양 몬스터 그루드루들이 물속에서 헤엄치고 다녔다.
파도에 휘청거리는 작은 배가 소용돌이에 빨려들지 않도록 애쓰면서 해양 몬스터들을 막아 내야 한다.
"노들레는 이걸 어떻게 극복했을까?"
위드가 시간의 모래를 쓴다면 노들레의 향해 방법을 보고 해답을 알아낼 수 있었다.
노들레의 전투 능력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으니 여기서 기발한 재치를 발휘했으리라. 그루드루의 약점을 공략한다든지, 아니면 놈들을 신경 스지 않고도 바다를 지날 수 있는 꾀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위드는 소모품은 최대한 아끼는 절약주의자였다.
한겨울에도 세수를 하면서는 보일러의 따뜻한 물을 쓰지 않는 정신!
"일단 버텨 보는 수밖에. 마인드 핸드!"
별로 쓸모가 많지는 않던 스킬. 마인드 핸드.
스킬로 만들어 낸 손으로 노를 저으면서, 두팔로는 엘프의 활을 들어서 물 위로 올라오는 그루드루를 향해 마구 쏘았다.
서윤도 가만히 있지 않고 배를 접근하는 적들을 베었다.
-배의 하부가 공격받았습니다. 3만큼의 파손이 발생했습니다.
선체의 내구도 :29/45.
-배의 하부가 공격받았습니다. 내구도가 8 감소합니다. 구멍이 뚫려서 침수가 시작합니다.
선체의 내구도 : 21/45.
그구드루은 작살로 배를 부수려고 했다.
그루드루들은 작살로 배를 부수려고 했다.
"수리!"
위드는 미리 가지고 온 목재들을 가지고 배를 수리했다.
통탕통탕!
-선체의 일부가 수리되었습니다.
침수를 막지는 못하였습니다.
선체의 내구도 : 29/45
"물방울아!"
정령 창조 조각술로 만든 무르이 정령을 소환!
"부르셨어요?"
물방울이 물로 휘감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오랜만에 소환된 반가움에, 귀엽게 웃고 있었다.
"나가 있어."
"네?"
"배에 있는 물 가지고 밖으로 나가!"
"……."
배에 차오른 물은 정령을 통해서 계속 제거했다.
"수리!"
-선체의 일부가 수리되었습니다.
침수를 성공적으로 막았습니다.
선체의 내구도 : 34/45.
침수는 막았지만 벨라스케스 해역은 해양 몬스터들의 천국이었다.
"이것들을 꿇고 가야 하다니……."
위드는 거의 절망적이었다.
"이게 어쩌면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직면한 현실이라고 할 수 있지. 입시 경쟁, 취업 경쟁, 그 후로는 회사에서 잘리지 않기 위한 끝없는 아부와 야근의 생활!"
절대 포기할 수가 없기에 적들을 향하여 계속 화살을 쏘고 광휘의 검술을 쓰면서 물리쳤다.
조각배 1척을 지키기 위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고생을 한는군."
유병준은 위드의 모험을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불현듯 궁금증이 일었다.
"베르사, 과거에 노들레는 어떤 식으로 저 바다를 건너간 거지?"
로열 로드를 관장하는 인공지능 베르사는 역사와 모험 기록을 검색하고 대답했다.
-지금 영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보시겠습니까?
"7번 모니터에서 재생해."
-7번 모니터의 화면을 노들레와 힐데른의 벨라스케스 해역항해로 바꿉니다.
모라타의 광장을 지켜보고 있던 화면이 노들레와 힐데른의 조각배로 바뀌었다.
그들은 미리 준비해 온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유유히 항해를 하고 있었다.
그루드루들이 돌아다니는 사이를 지나가면서도 공격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루드루들이 귀찮은 듯이 멀리 피해 가기도 한다.
그 이유는 선수상!
노들레가 달아 놓은 문어 선수상이 해양 몬스터들을 멀찍이 물러나게 했다.
가끔 다른 종류의 해양 몬스터들이 배 근처로 다가오면 바다에 양파즙을 조금 뿌렸다.
양파즙에 바닷물에 섞익만 하면 해양 몬스터들은 질겁하면서 먼 곳으로 떠나 버리고 그 후로든 가까이 접근하지 않았다.
물론 이 단서들은 보로타 가문의 저택에 그림으로 남겨져 있었다.
유병준은 위드와 서윤이 위태로운 순간들을 간신히 넘기며 죽기 살기로 버티는 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아직까지 그렇게까지 어려운 퀘스트가 아닌데……."
-스스로 고생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계속 이어지는 퀘스트는 이렇게 쉽지 않겠지?"
-물론입니다. 현재까지 로열 로드에서 나온 퀘스트 중에 최고의 난이도로 연결됩니다.
"하지만 위드의 능력이 기대보다도 뛰어나."
유병준은 위드가 매번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괜히 화가 났다.
어려움이 닥쳐도 어떻게든 이겨 내 버리니 대중이 열광한다.
유병준의 입장에서는 이거야말로 분통이 터질 일.
"설마 앞으로의 퀘스트도 몽땅 해결해 버리고 조각술 최후의 비기를 습득하여 베르사 대륙을 통일해 버린다면……."
중간 과정에서 바드레이와 헤르메스 길드도 박살을 내 버릴 수 있으리라.
국왕으로서 유저들의 지지율도 탄탄했기에 충분히 이루어 질 수 있는 상상이었다.
퀘스트를 할 때마다 내보이는, 지금까지 쌓은 다양한 스킬과 능력이 만만치 않았다.
어떤 어려움에도 최선의 해결책을 내놓으며 돌파해 버리니 유병준은 자꾸 심술이 났다.
위드가 진흙탕에서 굴러야 보는 맛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고생은 하더라도 멋지게 해결해 버리는 것이다.
하벤 제국의 북부 원정군이 처참히 깨진 모습들이 바로 그랬다.
사실 유병준이 반드시 위드를 미워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괜히 받는 거 ㅇ벗이 얄밉고 고생을 해야 속이 시원했다.
-가능성을 계산해 볼까요?
"아니, 하지 말도록."
위드에 대해서는 더 이상 확률을 믿지 않기로 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시대를 앞서 가는 최첨단 인공지능이라고 할지라도 믿을 수 없다.
스스로의 마음조차도 위드가 조각술 최후의 비기를 획득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이대로 좌절하여 무너지는 편이 기쁠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바드레이와 헤르메스 길드가 저지르는 행동들을 보면 그들이야말로 파멸을 맞아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위드가 대성공을 거두는 걸 지켜보는 것도 아랫배가 살살 아픈일.
위드의 행동에 관심이 가서, 욕을 하면서라도 앞으로도 쭉 지켜보고 싶었다.
"어쨰ㅉ듯 다음의 퀘스트는 실패할 수도 있겠지, 로열 로드 최고의 난이도라고도 할 수 있는 최후의 비기인데 말이야."
-위드가 쌓아올린 다재다능한 능력과 스탯 들이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
순수하게 조각술 능력만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니 아무리 위드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극복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됩니다.
"역시 그렇겠지. 어서 그 모습들을 보고 싶어지는군. 후흐흐흐흣."
-낄낄낄낄!
인공지는으 유병준과 함께 비열하게 웃어줄 정도로 똑똑했다.
"후아, 이걸 정말 무사히 지나오다니……."
위드는 벨라스케스 해역을 되돌아보며 벅찬 감동에 휩싸였다.
어려운 위기의 순간들을 셀 수 없이 넘기며 좌초 당하지 않고 무사히 지나왔다.
선체의 내구력이 최하 6까지 떨어진 때도 있었지만, 조각파괴술까지 써서 민첩을 올려 해양몬스터들을 쫓아내고 버텨낸 것이다.
피네스 해류의 이른 순간 해양 몬스터들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역시 나는 할 수 있었어. 불굴의 의지가 있다면 성공할 수 있는 것이지."
서윤도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직업이 광전사라고 해도 해역을 통째로 지날 때까지 무수히 덤벼드는 몬스터와 지치지 않고 계속 싸우는건 쉬운 게 아니었다.
배를 지켜야 하며, 바닷속의 몬스터들까지도 견제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위드도 휴식 없이 항해를 하며 전투를 벌여 과로 상태에 빠졌다. 고생을 많이 해 본 경험이 없었다면 몸 상탤를 조절하여 버텨 내지 못하였으리라.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 과연 난이도가 엄청나군."
위드는 떠 하나의 난관을 극복하고 나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힘든 일을 마치고 난 이후의 성취감!
항해 스킬이 중급이 아니었다면 성공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역시 항해 스킬도 다 쓸모 있을 때가 있어."
하늘에서 내내 내리던 비도 조금씩 그치고 이제 맑은 해가 떠올랐다.
위드의 퀘스트가 진행되었으니 보로타 섬에서도 이제 비가 그치게 되었을리라.
"도와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할 만했어요."
서윤은 광전사의 후유중으로 인해 힘없이 누워 있었다.
전투 중에는 잘 지치지 않는 대신에, 싸움을 마치고 나면 극도로 약해지고 회복하는 데 시간도 오래 걸렸다.
"여기서부터는 조금 쉬어도 될 것 같군."
위드는 서윤과 함께 조각배에서 휴식을 취했다.
피네스 해류를 따라가면 대륙으로 향하게 된다. 커다란 위험은 전부 지나간 셈으라고 쳐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밤, 바다에서는 평소보다도 유난히 아름답게 반짝이는 별들이 잘 보였다.
위드는 여느 때처럼 조각품을 깎았고, 서윤은 이를 구경했다.
바다에서 달빛 조각술로 은은하게 빛나는 빛나는 광석을 다듬으니 분위가 멋지기 짝이 없었다.
첨벙!
"들었어요? 방금 바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어요."
위드가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바다는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기 짝이 없었다. 환상적인 밤 하늘 아래 바람도 선선하고 공기도 맑다.
"응? 아무것도 없는데?"
"분명히 무슨 소리가 났는데……."
"과민 반응일 거야."
위드는 다시 조각품을 깎았다.
고급 9레벨 75.3%에 달하는 조각술 스킬. 마스터까지 정말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그동안 숱한 모험을 하면서도 조각품을 손에서 떼지 않아서 이루어 낸 성과다.
"조각술을 끝내 놓고는 재봉부터 도전을 해야지. 그리고 세상이 조금 평화로워지면 어느 한곳에 정착해서 한 1년 정도 대장자이 스킬을 마스터까지 올려놓으면 되겠지."
원대한 노가다의 계획을 세웠다.
조각술과 몇 가지 생산 스킬로 지금의 수준에 이르렀는데 모든 스킬들을 마스터한다면 그때에는 베르사 대륙에 적수가 없으리라.
첨벙!
"들었어요?"
"이번에는 나도 들었어."
바닷물이 튀는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렀다.
"뭐가 나올지도 모르겠군."
하이 엘프의 활을 꺼내서 무장을 했다.
망망대해에서는 어쨌든 작은 일이라고 해도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때!
첨벙!.첨벙!첨벙!
위드와 서윤이 타고 있는 배의 주변으로 커다란 물고기 들이 뛰어올랐다.
"청새치다"
물길이 3미터가 넘는 대형 생선!
제피가 낚아서 맛있게 요리를 해 먹은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처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몇 마리씩 뛰어오르던 청새치들이 이윽고 수십, 수백, 수천 마리로 늘어난 것이다.
바닷물 위로 첨벙거리고 뛰어로르는 청새치들이 위드와 서윤이 타고 있는 조각배 근처에 셀 수 없이 많았다.
"이거 이러다가 설마……."
쿠웅!
-배의 하단에 청새치가 와서 충돌하여 내구도가 9 줄어듭니다.
균열이 발생합니다.
선체의 내구도: 36/45.
"수리!"
-선체를 보수합니다.
배구도를 채 올리기도 전에 청새치들이 계속 배에 부딪쳤다.
설상가상으로, 뛰어오른 커다란 청새치 1마리가 조각배위로 떨어졌다.
끔벅끔벅.
청새치가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아가마와 꼬리를 움직인다.
매운탕을 맛있게 먹는 사람에게도 이건 공포스러운 광경!
다른 청새치들도 떨어지면서, 결국은 망망대해에서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 벌어졌다.
-선체가 파괴되었습니다.
침몰합니다.
"이런 거지 같은 일이……."
해양 몬스터도 아니고 생선 떼의 습격으로 인하여 배를 잃어버리게 되다니.
"꺄아악!"
서윤이 비명을 지르면서 바다에 빠졌다.
위드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바로 깊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어두운 밤이었고 눈에 보이는 것도 많지 않았다.
바닷속에도 청새치 떼가 계속 움직이고 있어서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서윤은 갑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던지라 빠른 속도로 가라 앉아 갔다.
위드는 그녀를 붙잡기 위하여 깊은 바닷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잡았다.'
무사히 서윤의 손을 잡고 그녀를 끌어안는 순간, 영상이 흘러나왔다.
노들레와 힐데른, 둘은 벨라스케스 해역을 벗어나서 대륙으로 향하던 중에 청새치 떼의 습격을 받았다.
배가 수서지고, 파편들에 의지하여 표류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 것이었어.'
위드는 족므은 암심하면서 서윤을 안고 수면위로 올라 왔다.
"괜찮아?"
"구해 줘서 고마워요."
"고맙기는 무슨……. 이번 달 도시가스비나 대신 내 주면되지."
위드느 부서진 널빤지를 구해서 서윤과 함께 붙잡았다.
"꾸엑!"
와이번들은 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주인이 사라졌다."
"딱 없어졌다."
와일이가 윤기가 줄줄 흐르는 맛있는 말을 볼 때처럼 눈을 부리부리하게 떴다.
그렇지만 이제 잔잔해진 바다에서, 위드와 서윤이 타고 있던 조각배는 감쪽같이 사자져 버린 후였다.
와오이와 와육이, 와칠이가 바닺물 바로 위로 날면서 훑어 보았지만 발견되지 않았다.
와삼이는 다급하게 찾는 형제들이 한심하다는 듯이 그저구경만 했다.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가자."
"와삼이 넌 주인이 걱정되지도 않냐."
"주인이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형제들의 말에, 와삼이가 터무니없다는 듯이 날개를 퍼덕였다.
"남자와 여자가 같이 사라졌다."
"근데?"
"그럴 땐 찾는 것이 아니다. 끅끅끄끅."
음흉하게 웃음을 짓는 와삼이!
"아,그런 거냐."
"나중에 다시 나타나면 우린 아무것도 모르는 척해 주면 된다."
위드와 서윤은 하루를 넘게 바다에서 표류했다.
둘이라서 그런지 심심하지는 않았다. 널빤지를 잡고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것도 특병한 경험이었다.
"어릴 때부터 이렇게 수영하는 걸 좋아했지."
"수영장에 다녔어요?"
"동네 목욕탕에서 자주 놀았어"
그리고 마침내 닿은 육지!
띠링!
-항해 스킬의 숙련도가 증가했습니다.
성난 바다 완료
노들레와 힐데른은 추적자들을 피해서 무사히 대륙에 상륙했다. 그들의 앞길에는 불안함이 가득하짐나, 바다신의 추종자들을 피해서 달아난 것만으로도 당장은 기뻐할 수 있었다.
"제대로 찾아오긴 한 건가."
위드는 주변을 살펴봤다.
고운 모래들이 넓게 펼치져 있는 백사장이 있었다.
보로타 섬에서 대륙으로 항로를 빙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렇게 먼 곳은 아니다.
"위치상으로는 아마도 코르타데솔인 것 같은데."
따스한 햇볕이 사시사철 비추고, 백사장과 지형이 아름다운 곳.
이파아 섬과 더불어 베르사 대륙 3대 휴양도시 중의 하나였다.
"저도 방송에서 본 적이 있는데 주변의 산들을 보니 맞는것 같아요."
"그런데 왜 살마들이 없지?"
해변가에 세워져 있던 고급 숙박 시설과 식당 등이 보이지 않았다.
멋지게 지어진 귀족의 별장들도 없었고, 이곳에는 오로지 모래사장뿐이었다.
"날씨도 좋은데 해변에서 놀고있는 유저 1명도 안보이고……."
위드는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표류를 하는 도중에도 근처에서 항해를 하는 유저들을 만나 보지 못했다.
북부의 외딴섬도 아니고, 보로타 섬과 대륙 사이에는 여행객과 교역을 하는 상인들의 범선이 상당히 많이 오고 갔다. 그중 단 1명이라도 그들을 발견했다면 구해 줄 수 있을 텐데 가끔 지나치는 것들은 상어 빼고는 없었다.
"방금 새겨진 것 같은 발자국이 있어요."
서윤이 백사장에서 풀숲으로 이어진 발자국을 찾아냈다.
해변가의 발자국이라면 평소에는 무심하게 지나쳤겠지만, 지금은 다른 어떤 흔적도 없다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건 두 사람릐 발자국인데. 이걸 따라가 보면 뭐라도 나올지 모르겠군."
위드와 서윤은 발자국을 따라서 걸었다.
보통 알 수 없는 미지의 모험을 하면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둘의 정신세계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랐다.
서윤의 경우에는 간단했다.
'몬스터가 나오면 빨리 죽여야지.'
위드는 더한 편이었다.
'가죽이 좋은 몬스터가 나오면 훌륭할 텐데. 가죽을 벗기고 이빨과 발톱도 뽑고, 고기는 구워 먹고 기름도 짜내고 털도 뽑아서 따로 챙겨둬야지.'
몬스터로서는 위드를 만나는 순간 승리하지 못하면 끝장이었다.
발자국을 따라가서 나온 장소에는 얼기설기 지은 작은 통나무집이 있었다.
숲 속에 있지만 나무들 사이로 아름다운 백사장을 볼 수있는 위치였다.
"이거 상당히 부실해 보이는데…전형적으로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구조야. 그리고 빗물로 샐 것 같고……. 주변의 재료들을 이용해서 대충 지은 집이로군. 들어가 볼까?"
"네."
위드와 서윤은 무기를 뽑아 들고 전투준비를 한 채 통나무집의 문을 열었다.
내부에는 변변한 물품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띠링!
둘만의 보금자리
노들레와 힐데른은 육지에 도착하여 그들끼리 살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어느 곳도 평화롭지 않았다.
대륙에서는 크로스 왕국, 마폰 왕국, 브롬바 왕국이 치열하게 주도권을 다투고 있었으며, 통나무집 가까이에는 몬스터의 서식지가 있다.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힘을 합쳐 함께 버텨야 한다.
날뛰는 몬스터를 피해 통나무집에서 한 달간 생존하라.
난이도 :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
퀘스트 제한 : 사망했을 시에는 퀘스트 실패.
통나무집이 파괴되면 안 됨.
여성 동료가 사망 시에도 퀘스트 실패.
"설마 여기는 전쟁의 시대인가."
퀘스트의 내용을 읽어 보니 아무래도 정상적인 시간대의 베르사 대륙이 아니었다.
"해변가의 풍격ㅇ도 그렇고 마폰 왕국, 브롬바 왕국 이야기가 나온다는 건 아마도 정말 노들레와 힐데른이 살았던 과거로 왔다는 뜻일거야."
"시간대가 바뀐 거네요."
"우리가 노들레와 힐데른의 역사 속으로 직접 뛰어든 거지."
위드는 그 이유에 대해서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과거 영웅의 탑에서도 레미 공주를 구하면서 역사적인 말랑카 전투에 뛰어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서 유추해 보면 앞으로의 상황은 간단했다.
"퀘스트가 계속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엄청 고생을 할 것 같군."
"광장 쪽으로 갔다. 샅샅이 수색해!"
"옷에 물감을 묻히고 있는 자는 모조리 잡아들여라."
경비병들이 페트가 숨어 있는 골목길 주변을 스쳐 지나 갔다.
"헉헉, 잡힐 뻔했다."
물빛의 호가 페트는 헤르메스 길드가 다스리는 지역에서 신출귀몰하게 돌아다녔다.
그는 은밀하게 벽이나 도로에 헤르메스 길드의 악행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세금을 오리며 주민들을 수탈하는 내용, 강제로 노동을 시키는 모습들.
몇몇은 실제 본 장면들이지만, 상상력을 기반으로 꾸며 낸 그림도 많았다.
<갓난아기를 산 채로 잡아먹는 영주 제로우.>
<영주민들의 피로 목욕하는 ㅏ벤 젝구의 유명한 전 사 레논>.
<시체들로 뼈 탑을 쌓으며 노는 여기사 디모>.
충성도가 낮은 하벤 제국의 주민들은 페트가 그려 놓은 그림들을 믿었다.
"우리 영주 제로우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명예와 양심? 비겁한 짓만 일삼는 레논은 고블린도 더러워서 잡아먹지 않을 거야."
주민들의 충성도가 감소하면서 하벤 제국의 치안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페트가 사실적인 그림을 그릴수록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다.
헤르메스 길드가 비록 북부에서는 처참한 패전을 경험했지만, 대륙의 다른 지역들에서는 우세한 전황을 보이고 있었다. 바드레이가 친위대를 이끌고 출전한 블랙소드 용병단과 의 전쟁은 매일 대단한 공방전을 펼치며 인기를 끌었다.
페트는 헤르메스 길드의 관심이 점령전에 집중되어 있는 틈을 타서 온갖 그림을 그렸다.
복잡한 뒷골목이나 용병 길드의 벽, 다리 밑, 던전 내부, 마차에 이르기까지, 그가 그려 놓은 그림은 계속 하벤 제국의 치안을 나쁘게 유도했다.
문제는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솔로기 이 나쁜 놈. 양심은 20쿠퍼에 팔아먹었냐?
-이게 우리 탐욕스러운 영주 비카입니다.
하벤 제국에서 푸대접을 받던 화가들이 너도나도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스타이너. 베르사 대륙에 이름은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단한 능력을 가진 도둑이었다.
"하벤 제국의 치안이 나빠지고 있다니 제대로 활약할 수있는 기회로군."
그는 직접 양성한 NPC부하 60명을 데리고 하벤 제국의 칼라모르 점령지에 산채를 건설했다.
"이 산을 지나는 상인들을 모조리 약탈하는 것이다"
"옛!"
"두목의 명령대로 몽땅 털어 봅시다."
산은 오가는 상인들의 교역 마차며 주민들, 제국의 물품 운송 마차들이 도적 떼의 주요 목표였다.
하벤 제국에서는 상인 유저들의 교역 외에도 NPC들이 활약하게 물자들을 운반했다. 상점에서 판매하는 물품들이며 각지의 특산품, 재료, 세금 등이 마차나 배를 통해서 운반된다.
스타이너와 도적 떼는 곧 수많은 손님들을 맞이하는 성황(?)을 누리게 되었다.
"여긴 우리가 지배하는 관문이다. 가진 거 다 내놓고 가라. 크하하핫!"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요."
"물론 살려주지. 그래야 다음에 또 돈을 가지고 올 테니까!"
두말레아 산에 자리를 잡고, 지나가는 어마어마한 양의 마차들과 물자들을 포획했다.
당연히 주변 성에서 토벌군이 나왔지만 도적 떼는 산의 지형을 잘 알았고 퇴각로도 준비되어 있었다.
"산채를 버리고 이동한다"
잘 정비된 산채에서는 웬만한 토벌군을 맞아서도 충분히 싸울수 있지만, 하벤 제국의 기사 병력은 막강했다.
스타이너의 도적 떼는 두말레아 산의 다른 봉우리로 비밀리에 이동한 다음 주변을 돌아다니며 약탈을 계속했다.
교역로뿐만 아니라, 수비가 허술한 인근의 마을도 습격했다.
-부하 도둑 코롬이 경험 많은 산적 대장이 되었습니다.
부하들의 능력이 오르면 스타이너로서는 매우 좋았다.
그와 부하들 일부를 근처의 산에 파견하여 산채를 또 하나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도둑은 명예 수치가 극도로 낮아지고 국가 공적치가 잘 오르지 않기에 영ㅇ주나 귀족이 되지 못하는 한계를 가졌다. 만약에 영주가 되더라도 그곳은 곧 범죄자들과 도둑, 지명수배범으로 득실거리는 무법 지대가 되어 버린다.
도시와 마을은 다스리지 못하지만, 도적 떼의 수장으로서 산을 지배할 수 있다!
"음, 그대의 악명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소. 추찹하고 더럽기 짝이 없는 스타이너라고 했는데 만나 보게 되어 영광이오."
높은 악명으로 인해 스타이너 못지않은 강한 이들이 부하로 들어오기도 했다.
악명을 쌓으려면 아예 제대로 쌓아야 한다.
일가족을 몰살시킨 도적 떼의 수장이나, 말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떼강도 등의 호칭이 있으면 수탈하기가 더욱 유리해 졌다.
그렇게 남의 왕국에서 버티며 시간이 지나다 보면 도적 떼의 규모와 수준이 높아져서 토벌도 어려워집ㄴ다.
도적 떼를 소탕하기 위해서는 완벽하게 포위하여 선멸을 해야 한다. 몇 명이라도 무사히 빠져나가게 되면 그들이 주변에 또 다른 산채를 결성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 때라면 상관이 없지만 치안과 국가에 대한 충성도가 낮아져 있을 때는 몰려드는 지원자들에 의하여 도적떼 의 숫자는 금세 보충되었다.
"에잇, 이놈의 더러운 세상. 가진 것도 없고, 차리리 도적 떼에나 들어가야겠다."
"농사를 지어 봐야 매번 세금을 내면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식구들을 위햐서 도둑질이라도 해야 되겠군"
주민들이 기꺼이 도적 떼에 합류했다.
기사들과 병사들조차도 귀족과 영주의 횡포가 심해지면 통쨰로 도적 떼로 들어오게 된다. 토벌하러 보낸 군대가 스타이너의 카리스마와 지휘력에 압도되어 도적 떼에 흡수 되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이다.
하벤 제국에서 도적 떼가 전염병처럼 크게 창궐했다.
산마다 무리 지어 생겨난 도적들은 급속도로 세력을 불리는 반면에, 주변 영지들은 인구가 감소하면서 몰락해 갔다.
교역로가 끊어지고 기술자가 감소하며 농지가 황폐화되었다.
대도둑 스타이너!
그를 따르는 성난 도적 떼가 하벤 제국의 영역 내에서 마구 퍼지고 있었다.
바드 마레이는 유쾌한 모험에 뛰어들어 신 나게 싸우고 악기를 연주하며 작곡을 한다. ( 바드레이 짝퉁도 아니고 이름이 이게 뭐니 ;;)
주민들이 이야기하는 전설을 듣고, 때때로 엉뚱한 사건에 휘말리는 것도 즐거웠다.
정해진 집도, 가진 것도 없는 음유시인이지만 넓은 베르사 대륙에서 갈 돗이 없겠는가.
마레이가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위드의 별이 요즘들어 찬란한 빛을 뿌리고 있군."
바드와 학자의 특수 스킬, 천문!
특별한 사람들의 운명을 별을 통해 점칠 수가 있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밤하늘의 별들을 지정해 놓으면 그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빛난다.
목숨을 잃었거나 나쁜 일이 있으면 붉은 흉조가 나타나며, 아무 특별한 일도 없이 평범하게 지내고 있으면 점점 그 빛이 희미해진다.
위드의 별은 밤하늘에 유난히 광채를 뿌리고 있었다.
마레이가 베르사 대륙을 여행하며 밤하늘의 별들로 지정해 놓은 유저는 총 364명.
그중에서도 위드의 별은 단연 독보적으로 빛났다.
"저렇게 휘황찬란한 빛을 뿌리다니……. 도대체 무슨 퀘스트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군."
그의 발걸음이 중앙 대륙으로 향했다.
모든 세력을 상대로 전투를 하고 있는 헤르메스 길드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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