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35권 : 7)과거에서 벌어지는 전쟁 (228/520)

7)과거에서 벌어지는 전쟁

역사의 변화!

위드의 모험이 베르사 대륙에 중대한 변화를 이루어 내면서 게시판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벌써 성 6개, 도시 12개가 아작 났어요.

-아싸, 신 난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성이 4개, 그리고 반토막이 난 곳이 2개.

-불세출의 악마 위드 파이팅!

-근데 역사에 나온 사막의 대제 위드가, 전쟁의 신 위드와

 동일인이 맞긴 한 거에요?

-맞겠죠. 맞을 겁니다. 아니면 누가 이런 짓을 하는데요?

-위드가 그냥 당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죠. 마법의 대륙에서부터

 그 옹졸함은 소문이 났었거든요.

-위드와 친구 하고 싶어요.

-저는 위드 부하라도 괜찮은데요. 뒤만 졸졸 따라다니고 싶음.

-근데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역사책, '야만적인 위드 대제'보셨어요?

 가는 곳마다 무슨 대 학살극을 벌였다는데.... 위드님은

 착한 분인 줄 알았는데 좀 지나친 거 아닌가요?

-이유가 있겠죠.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비난부터 하지 맙시다.

-죽을 만하니까 죽였을 겁니다.

-착한 사람은 맨날 당하고 살아야 돼요? 헤르메스 길드가 그렇게

 공격하는데 그냥 비굴하게 앉아서 억울하게 당하기만 하면서

 살아야 된단 말입니까?

-퀘스트가 뭔지 몰라도 사막 부족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죠. 종족이나 부족 간의 차이에서 이해할 수 있어요.

게시판에서는 논쟁도 벌어졌다. 갑자기 도시와 성이 사라져서 불편함을

겪는 유저들의 원망도 상당히 많았던 것이다.

-위드. 저는 좋게 봤는데 제가 마련한 집이 그냥 먼지처럼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게 무슨 행패인가요!

-그러면 그냥 모라타로 이사하세요.

-이주를 위해서 좋은 기회네요.

-북부로!

위드의 모험을 좋아하던 유저들과, 헤르메스 길드의 악행에 지친 유저들에게는

신 나는 일이었다.

그들의 무조건적인 악성 댓글 방어!

중앙 대륙의 유저들도 막상 자기 일이 아니라면 통쾌해 했다.

하벤 제국이 전쟁을 일으키고 있어서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다른 도시들이

망해 버리면 자신에게는 이득이었다.

-저는 교역을 하려고 헤펜 성까지 갔는데 헛걸음했어요. 완전 짜증 남.

 무슨 일을 벌일 거면 저처럼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예고라도 해 주는 게 예의이자 상식 아님?

-이런 분들이 하벤 제국에 부지런히 세금 바쳐서 헤르메스 길드에 전쟁

 자금을 대 주시는 분들임?

-돈에 눈이 멀어서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모르는 분이군요.

 손해 본 돈 제가 드릴 테니까 벤트 성으로 오세요. 가몽 찾아오시면 돼요.

-북부 상인의 전설 가몽 님이시군요!

-오오오, 가몽 님이 나타나시다니.

그리고 중요한 글도 등록이 되었다.

제목 : 나는 위드가 무슨 모험을 하는지 알고 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는 위드의 모험!

후후후, 저의 뛰어난 추리력으로 정답을 알려 드리지요.

참고로 말하자면 저는 전교 1등에 전국 수석 출신임. 우리 엄마가 맨날

친척들 이웃들 모아 놓고 제 자랑 함.

우선 몇 가지 단서들을 모아 보도록 하죠.

위드의 모험으로 인해서 사막에 도시들이 세워지고, 또 어떤 도시들은

없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역사서에 갑자기 위드가 기록되어 있고,

오래된 사람처럼 불리기도 하지요.

누구나 이루고 싶었던 꿈!

이 베르사 대륙의 위대한 영웅으로, 그것도 과거에 불세출의 업적을

쌓았던 영웅의 전설이 세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헌데 누구도 위드를 만났다는 사람도 없고, 주민들도 직접적으로 위드에

대한 말은 하지 않으면서 그저 옛사람의 이야기라고만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지금 해낼 수 있는 게 아닌, 오래전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밖에는 없습니다.

즉, 위드는 현재의 베르사 대륙이 아니라 먼 과거의 베르사 대륙으로

가서 모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부에 갑자기 사막 부족의 이주민이 나타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아, 여기까지 말해도 믿지 않는 분들이 물론 많을 것으로 압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만을 바탕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니까요.

제가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말이 안 되기는 하죠.

우선 과거의 베르사 대륙이 실제로 존재하느냐가 관건인데, 상식적으로

볼 때 옛날의 베르사 대륙도 지금과 같은 세계가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방대한 데이터와 자원이 단 1명을 위해서 지원된다는 건 기술적으로도

어렵고 경제적으로는 더욱 터무니가 없죠.

하지만 여기는 로열 로드입니다.

이곳의 수많은 전설이나 모험을 바탕으로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믿습니다. 유니콘 사의 기술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을 곧잘 이루어 내니까요.

위드가 활약을 하고 있는 건 아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것처럼 전쟁의 시대!

그리고 어떠한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강합니다. 그가 사막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 냈다는 사냥들,

그리고 중앙대륙에서 부하들을 이끌고 치른 전쟁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황당무계할 정도입니다. 유저들의 무력이 지금 상당히 높아졌다고 해도

감히 범접하지도 못할 정도로 높은 레벨을 얻은 것이죠.

아마 이건 어떠한 중요한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와중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퀘스트는 지금까지의 어떤 것보다도 난이도가 높을 수 있겠죠.

여기까지가 제 추측이지만, 완벽하게 맞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또한 과거로 돌아간 위드가 전쟁도 벌이면서 역사를 바꿔 놓고있지만,

이것이 현재의 세계의 100% 완벽하게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위드가 세웠던 도시가 그 후의 역사에 의해서 사라지게 될 수도 있고,

파괴했던 도시가 다시 세워질 수도 있는 겁니다.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죠.

한 시대의 인간이 매우 큰 업적을 쌓으면 수백 년 후의 세계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를 상상할 수는 있을 겁니다.

누구나 추측하고 꿈꿀 수는 있지만 위드는 자신의 행동이 낳은 결과를

실제로 지켜보는 것입니다.

얼마나 재미있겠습니까?

그것도 대단한 정복자가 되어서 한 시대의 역사를 바꾸어 놓고 있는데요.

이런 재미까지 창출해 낼 수 있다니, 과연 로열 로드는 대단합니다.

저 역시도 천재적인 두뇌를 바탕으로 투자은행이나 법률 쪽에 근무를 하려고

했지만 미래의 꿈을 유니콘 사에 입사하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유니콘 사라면 명석한 두뇌와 통찰력을 가진 제가 다니기에 나름 괜찮을 것 같군요.

자, 지금까지 설명 잘 들으셨습니까?

어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물어보시죠. 지적도 환영합니다. 당연히

제 주장들은 확실하지만 말이죠.

그리고 이어진 댓글들 3,900개.

-밥은 먹고 다니냐.

-너 친구 없지?

-약 먹을 시간이다. 간호사,205호 환자 어디 갔어!

-명석한 두뇌에 감탄했습니다. 저 초등학교 5학년인데요, 숙제 좀 도와주세요.

악성 댓글들로 가득했지만 글의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고

대부분 공감했다. 사실 이때쯤부터는 유저들도 위드의 모험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대략이나마 직감했던 것이다.

과거의 베르사 대륙에서 모험을 한다는 것이 잘 상상은 되지 않았지만, 몇몇

퀘스트에서 역사적인 전투를 경험하는 걸 본 적도 있다 보니 이해도 되었다.

단지 부러울 뿐!

자신들도 로열 로드에서 위드와 같은 심장 뛰는 모험을 하고 싶었다.

최소한 텔레비전에서라도 보면 가슴의 답답하던 무언가가 탁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모험에 대한 이야기가 걷잡을 수 없이 불거져 나오면서 방송국들도 참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무조건 잡아. 이번 주 내로 출연 계약서나 사표 중에 하나 제출해!"

"다른 방송국보다 무조건 2배로 질러! 왜 사람들이 CTS미디어를 재벌 방송이라고

부르는지 확실히 알려 주도록 해."

"구체적인 내용이 확실하지 않다고? 그런 게 뭐가 중요한데! 방송 일 하루 이틀

했어? 방송만 틀어 주면 알아서 시청률이 오를 판이고 광고주가 총알택시 타고

달려오는데 지금 이 와중에 뭘 따지고 있어?"

KMC미디어처럼 전문적인 게임 방송 채널도 있지만, 로열 로드가 대흥행을 거두면서

기존의 지상파 방송이나 업종이 전혀 다른 재벌 기업들도 많이 진출했다.

단순한 게임 방송이 아닌 로열 로드 내의 여가, 생활, 스포츠, 모험, 상업 등을

아루를 수 있다.

유명한 투자 전문가들이 상업에 대한 조언을 주기도 하고, 현직 스포츠맨들이

특별한 모험을 만끽하는 장면들도 편성이 되었다.

수영 선수들이 바다를 가로지르고, 기수들이 말을 타고 장거리 횡단에 나서는

방송 이벤트들이 쏟아졌다.

선견지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일찍 로열 로드와 관련된 방송을 시작한

회사들은 쏟아지는 광고의 홍수 속에서 매출액과 순이익을 늘려 가고 있었다.

로열 로드의 방송사를 가지고 있으면 최첨단을 달리는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들을

홍보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그룹 전체의 이미지에도 긍정적이라서,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면서 새로운 방송국들도 개국했다.

외국의 BBA, 울프, ABCD 같은 유명 방송국들도 참여하고 있기에 그 경쟁률이야말로

놀라울 지경. 로열 로드는 외국에서 뒤늦게 더 뜨거운 열풍이 불어오기도 했다.

유럽의 긴 휴가철에 사람들이 로열 로드만 해서 휴양지에 찬바람이 드는 정도는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화끈하게 즐기는 외국인들은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고 오크, 다크 엘프, 고블린,

프로그맨 등의 종족도 즐겨 선택했다.

그리하여 계약을 위해 이현의 집 앞에서 상주하게 된 방송국 임원들!

로드릭 미궁의 탐험 이후로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으흠, 또 뵙게 되는구려."

"현 부장님께서도 요즘 딱히 일이 없으신 모양입니다."

"평일에 방송되는 네이판의 모험이라는 프로그램이 흥행하고 있어서 직접

손대야 할 업무가 적어졌지요."

"시청률이 갈수록 하락세던데요?"

"뭣이!"

방송국 관계자들의 으르렁거림도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방송 보도를 통해서는 타 방송사들을 존중하지만, 직접 계약을 다퉈야 하는

처지에는 피 튀기는 경쟁이 이루어졌다.

'저놈이 얼마나 준비해 왔을까.'

'옵션으로 광고 비용을 따로 챙겨 주는 정도로 될까. 국장한테 보고하고 더

높여 줘야 하는 것 아니야?'

방송국들끼리의 경쟁은 이현에게도 긍정적인 일이었다.

과거에는 방송국에 직접 가서 계약을 했지만, 이제는 관계자들을 불러서 한껏

분위기가 달아오르게 한 후에 도장을 찍는다.

이거야말로 확실한 갑의 위치에 서 있기 때문!

방송국 관계자들은 뜨거운 햇볕을 피해서 대문 앞에 섰다.

"그나저나 오늘은 나올지...."

"요즘 집 밖으로 아예 안 나온다는 소식이 파다하던데요."

"모험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로열 로드에는

폭군 위드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는데."

이현이 캡슐에 들어가 있다면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

'저놈들만 없으면 초인종을 누를 텐데.'

'어디 가서 시원한 음료라도 마시고 싶다. 저녁까지 기다려도 안 나오면

여기서 야근을 해야겠지. 이사로 승진했다고 기뻐하는 마누라를 생각하면

퇴근은 물 건너갔군.'

'우리 방송국만큼 좋은 계약 조건을 준비한 곳은 없겠지. 다른 해외 방송국들에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조건으로 그 로열티 수입까지 합친다면....'

'우리 자식 놈도 나중에 로열 로드나 시켜야지.'

정오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이현이 대문을 열고 나오면서 따뜻하게 미소를 지었다.

진심이 담긴, 곧 들어오게 될 돈을 생각하며 기뻐하는 표정!

"어라, 저희 집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아이고,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번 방송이 시청률이 워낙에 잘 나와서요.

인사차 들렀는데 빈손으로 오기 민망해서 여기 약소하지만..."

"강 부장님도 계셨군요."

"얼굴 본 지도 오래되고 해서 이야기나 좀 나눌까 하고 와봤습니다.

참, 삼별 전자에서 신형 텔레비전이 출시되었는데 받기 편한 시간을 말씀해

주시면 배송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특별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니고,

편하게 저희 방송을 좀 시청해 달라는 뜻에서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는데요."

"절전형 모델입니다."

"그럼 성의를 생각해서 잘 받아 보겠습니다."

이현은 방송국 관계자들에게 한두 가지씩을 받아서 챙겼다.

아부와 접대에 대해서는 서로 간에 경험이 많다 보니 긴말이 필요 없다.

방송국 관계자들도 이현이 선물을 받는 편이 마음이 훨씬 편했다.

그동안 상대해 본 바에 따르면 뇌물에 대해서는 더없이 정직했다.

받아 챙긴 만큼 호의를 베푼다.

시중 판매 금액에 따라 정확히 구분해서 고마워했으니까!

이현은 집 안으로 들어온 그들에게 커피 믹스와 보리차를 내다 주었다.

"요즘 모험이..."

지난번과 같이 CTS미디어의 현 부장이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내려고 할 때였다.

"우선 잠시만 기다리시죠. 찾아온 손님이시니 변변치 않지만 제 손으로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어서요."

"그, 그럴까요?"

방송국 관계자들로서는 다소 의외였다.

이현의 쪼잔한 성격에 대해서는 방송국 고위층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예전 방문에서도 커피 한 잔 내주고 나서 바로 빨리 본론을 이야기하도록

재촉했는데, 이번에는 따로 식사까지 준비해 준다니.

'설마 컵라면은 아니겠지.'

'짜파게티라도 끓여 주려나?'

이현은 마당으로 나가며 말했다.

"시간이 조금 걸릴 겁니다. 재료를 구해야 하거든요."

"아, 물론 기다릴 수 있습니다."

마당에서 푸드득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잠시 후에 고요해졌다.

집에 들어오는 그들을 경계하며 짖어 대던 개들도 얌전히 있었다.

개들의 침묵!

무언가 위잉 하고 기계를 돌리는 소리도 나고, 잠시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이현의 손에는 털이 다 뽑힌 닭이 들려있었다.

이현은 바로 주방으로 가더니 도마를 꺼내고 요리를 시작.

감자와 야채도 듬뿍 넣고, 손님들을 위해 닭볶음탕을 요리했다.

"혹시 방금...."

"아마도 땅에서 모이를 쪼아 먹던 그 닭이 맞는 것 같습니다."

"......."

방송국 관계자들은 이현이 보통 인관가는 확실히 다르다고 느꼈다.

아울러 기대도 더욱 커졌다.

'우리를 위해서 따로 요리까지 준비하는 걸 보면 저 더러운 성격에

접대하려고 하는 목적은 아닌 것 같고, 이번 모험이 진짜 대박인가 보군.'

'뭔가가 있어. 우리 방송국 분석실에서 퀘스트의 내용을 파악해 본 바로는

보통 난이도나 스케일이 아니야. 지금까지 해 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를지도 몰라.'

'확실히 큰 건수다.'

평소 안 하던 요리까지 하니 기대 심리가 마구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완벽하게 조리된 닭볶음탕!

"맛있군요."

"평생 이렇게 맛있는 닭 요리는 처음입니다."

방송국 관계자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아부를 떨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처음 먹어 보는 꿀맛이었다.

이현이야말로 만능 일꾼이란 말이 틀리지 않았다.

방송국 관계자들이 10명이나 되다 보니 큼지막한 토종닭도 금방 뼈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럼 제 모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이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슬슬 그도 방송 중계를 시작해야겠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는 이미 절정 단계에 올라서, 이제 헤르메스 길드가

방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게다가 모험의 내용을 오래 끌며 묵혀 놓으면 흥이 식기 마련이다.

결과가 먼저 베르사 대륙에 소문을 통해 알려져 버리거나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방송 계약에 있어서도 손해를 보지 않겠는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모험은 조각술 최후의 비기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최후의 비기요?"

"그런 게 있습니까?"

방송 관게자들에게도 조금은 생소한 단어. KMC미디어의 강 부장은 언뜻

들었던 내용이 있었다.

"최후의 비기라면, 존재하기는 하지만 관련 직업 스킬의 비기를 전부 모으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걸로 아는데요."

"맞습니다."

"그러면 조각술의 비기를 이미 다 모았다는..."

"모았죠."

"......"

한 가지의 비기를 얻기도 어려운데 직업 전체의 비기를 모두 모았다니!

과연 위드라는 감탄이 나오기도 전에 드는 생각!

'특종이다!'

'어서 알려야 해!'

'저놈들보다 먼저 방송국에 전해야 하는데.'

그러나 지금은 이현과의 대화와 방송 계약이 더 중요하다보니 자리를 떠날 수 없다.

휴대폰으로 슬쩍 문자를 보낼 수도 없었다.

상대가 그들보다는 한참 어리다고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인물.

대화 중의 예의가 아닐뿐더러,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도 속 좁고 옹졸하게

갚아 줄 사람이기 때문!

"먼저, 지난 로드릭의 미궁도 조각술 최후의 비기와 관련이 있었던 모험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모험인지는 복잡하니까 차차 설명드리고 우선 간략히

이야기만 드리자면... 광활한 베르사 대륙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서정적이면서도

열정적인 꿈과 용기, 사랑이 있는 방대한 서사이와도 같다 할까요."

"...."

방송국 관계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긴 수식어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건 무조건 잡아야 된다.'

'계약 못 하면 진짜 사표 쓰게 생겼다.'

'다음 임원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겠지. 노 부장이 호시탐탐 내 자리를 노리고 있던데.'

다른 방송국들이 모조리 방송하는데 자신의 방송사만 쏙 빠진다면 그 뒷감당이

안 될 지경이었다.

위드의 모험이라면 흥행은 이미 결정이 된 것인데 무엇을 망설인단 말이가.

다만 중요한 것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퀘스트를 벌써 완료.. 하신 겁니까?"

"아직 진행 중입니다. 예상하고 계신 것처럼 최근에 사막 도시들이 세워지고 중앙

대륙의 도시들이 파괴되는 그런 것들이 퀘스트의 여파로 나타나고 있는 것들입니다.

다 제 잘못이 아니라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가 워낙 대단해서 그런 거지요. 흠흠."

"휴우....."

방송 관계자들로서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퀘스트가 끝나지 않았다면 앞으로 더욱 흥미진진해질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의

끝부분을 미리 알고 보면 아무래도 재미가 조금은 떨어지는 것이니까.

방송국은 더 실감나게 중계를 할 수 있으며, 시청자들도 간을 졸이면서 볼 것이다.

그리고 모험의 특성상, 지금까지도 대박일 테지만 앞으로도 진짜 엄청난

것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조각술 최후의 비기라니, 얻게 되는 스킬에 대해서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직 공개할 수 없습니다."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데, 퀘스트의 난이도는 얼마나 됩니까?"

"뭐, 그냥저냥 할 만한 정도죠. 남은 과정을 조금 설명드리자면 엠비뉴 교단의

총본영 습격, 그리고 뭐, 혼돈의 드래곤 정도?"

"헉!"

경악을 넘어서서 기겁을 할 지경!

전쟁의 신 위드에 조각술 최후의 비기, 엠비뉴 교단, 드래곤까지 나왔다면

방송 작가들이 고심하면서 제목이나 홍보문구를 지을 필요도 없다.

'끝났다, 이건....'

'방송을 해야 된다, 무조건.'

'계약 못 하면 진짜 무조건 사표다!'

방송국 관계자들은 결연한 의지를 다졌지만 오히여 워낙 건수가 크기 때문에

당장은 계약을 할 수 없었다.

위드가 또 어떤 대단한 모험, 난이도 S급, 혹은 대륙을 구하는 뭔가를 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며 준비하고 왔지만 이정도의 퀘스트이리라고는 그들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방송 출연 계약 조건에서부터 퀘스트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생방송이나 추후의 구체적인

일정까지도 협의를 해야 되었다.

물론 지금까지 쭉 그래 왔던 것처럼 전적으로 위드의 모험이 방송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놓일 것이며 다른 프로그램들은 뒷전으로 밀려나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보다, 이거 골프 회원권인데 말입니다."

"몸보신 좀 하시라고 100년 넘는 산삼 좀 보내 드리겠습니다. 정말로 약소합니다만."

"소파나 싱크대, 집 안에 가전제품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말씀만 하시지요."

다시 시작된 뇌물 공세!

업무 추진비는 이럴 때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구 내놓았다.

여러 방송국과 비슷한 계약을 하더라도 방송 분량이나 독점 인터뷰 등에서는

차이가 날 수 있다.

"뭐 이런 걸 다.. 산삼 보증서도 꼭 챙겨 주세요. 그리고 소파는 천연 가죽으로

부탁드립니다. 싱크대 설치를 위해서는 먼저 길이부터 정확히 재서 알려 드려야겠죠?"

이현은 착실하게 뇌물을 받아서 챙기고 있었다.

최근 현대사회에 들어서 뇌물은 축소되거나 사라지는 추세다. 하지만 동방예의지국에서

대대로 내려온 훌륭한 관행은 지속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다들 주거니 받거니 화기애애한 가운데에서도 오늘따라 유난히 얌전하던

KMC미디어의 강 부장이 마침내 회심의 카드를 꺼냈다.

"이 서류 좀 받으시지요."

"뭡니까?"

"땅문서입니다."

".........!"

"재개발 예정 지역에 속한 땅인데요. 흠흠, 합법적으로 명의변경이 가능하고,

매달 월세도 받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추후 상당한 개발 이익도 얻을 수 있지요."

이번 퀘스트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방송국 차원에서 비밀리에 준비해

가져온 것이었다.

덥석!

이현은 강 부장의 손을 잡았다.

"과연 방송계를 이끌어 가는 KMC미디어입니다."

"허허헛, 그렇지요!"

열렬한 반응!

그리고 방송국 관계자들이 돌아갈 때, 이현은 대문 앞까지 배웅을 나왔다.

"잘 먹고 갑니다."

"별말씀을요. 토종닭 대, 그리고 사이다 다섯 병. 45,000원 입니다."

"...."

호성 그룹 자금난

채권단 회생 불능 판정

호성 전자 신용 등급 하락. 회사채 발행 실패

굴지의 호성 그룹 이대로 무너지나

최근 1달간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제목들!

호성 그룹에서는 백방으로 뛰면서 부채 상환에 주력하였지만, 계열사들마다

만기일이 겹치면서 현금 확보가 어려웠다.

부동산은 더 이상 바닥을 보기 어려울 정도의 침체였으며 아파트 분양을 위해

확보한 넓은 용지들은 팔리지도 않았다.

호성 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은 동유럽이나 신흥 개발도상국, 인도, 아프리카

등지에 진출해 있었다.

호성 그룹의 기업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것을 안 외국의 바이어들이 각종

이유를 대며 차일피일 대금 결제를 미루면서 자금난은 갈수록 심화!

텔레비전과 신문을 통해서 호성 그룹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가 쏟아지고 있기에

여론도 악화되어 돈 빌릴 곳도 없었다.

정치권에서는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면서

바람을 넣었다.

결국 전자를 비롯한 주력 회사들은 채권단 회의를 거쳐서 구조 조정과 매각을 결정.

정득수 회장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룹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후우."

바트는 로열 로드에 접속해서 분수대 주변에 앉아 있었다.

"인생이 무상하군."

기업 회장으로 엄청난 돈과 인맥을 가졌을 때에는 항상 급한 약속이 있었다.

그런데 회사가 어려워지고 회장직에서 퇴직하고 나니 숱한 친구들과 정.재계의

인맥은 모조리 끊어지고, 비서진도 사임했다.

넓은 저택에는 적막감만 감돌았기에 머리도 식힐 겸 로열로드에 접속을 했다.

"우리 석류 사 먹으러 가자. 가몽 상회에서 할인 판매한대."

"그래? 나는 마판 상회에서 사 먹었던 과일들이 맛있었는데. 마판 상회는 가격은

조금 비싸더라도 품질은 항상 받쳐 주잖아."

무언가 신 나는 일이 있는지 유저들이 뛰어다녔다.

화려하게 장식을 한 상인 마차들이 돌아다니고, 워리어들은 부풀어 오른 근육을 뽐냈다.

번쩍거리는 무기를 든 유저들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무기점에서 새로 장만했거나 대장간에서 새로 맞춘 것이 분명한, 사용한

흔적조차 없는 신상품을 보는 흐뭇한 눈길!

낡고 구겨지기 쉬운 가죽 갑옷도 빳빳하게 잘 관리하여 다니는 유저들이 많았다.

모라타에는 여전히 막대한 신규 유저들이 유입되고 있었기 때문에 초보들이

흔하게 돌아다녔다.

과어와는 달리 조인족들이 특히 눈에 많이 띄었는데, 높은 나무에는 마치 아파트처럼

둥지들이 달려 있었다. 조인족들은 따로 집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나뭇가지만 조금

모으면 편하게 거주지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외모로는 위엄 있게 눈을 부라리는 독수리형 조인족, 혹은 조금 졸려 보이는 듯한

올빼미형들이 당당하게 걸어 다녔다.

조인족들은 레벨이 오르면 털의 색이나 외관상에서 탈피가 이루어지고 덩치도

커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저들은 최소 레벨 120대의 유저들임을 알 수 있었다.

막 시작한 조인족들은 새끼 새들로, 날아다니지도 못하고 덩치도 작은 병아리나

참새의 형태가 가장 많았다.

"짹. 짹."

"삐약. 삐약!"

작은 새들은 분수대에서도 둥둥 떠다녔다.

조인족들은 NPC와 유저를 구분하기가 아주 어려웠는데, 확실한 차이점이 있다면

NPC들은 대부분 비슷한 방향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집단생활에 익숙한 조인족들이기에 쳐다보는 방향이나 행동 등이 비슷했다.

조인족들로 인해서 모라타에 명물도 한 가지가 더 늘어났다.

바로 조인족의 군무!

저녁 해가 질 무렵, 천공의 섬 라비아스와 모라타에서 일제히 날아오르는 조인족들.

수십만 마리의 새들이 자유자재로 독특한 형태를 이루며 하늘에 춤을 그려 냈다.

NPC들이 추는 군무에 따라서 맞추기 위하여, 유저 조인족들도 그 순간은

빼놓지 않고 날갯짓을 함께했다.

군무를 완벽하게 추고 나면 그 조인족은 매력과 명성이 오른다고도 한다.

매일 저녁의 군무 시간은 조인족들에게도, 그리고 인간이나 엘프, 드워프

종족들에게도 장관인 구경거리였다.

"저들은 참 즐거워 보이는군."

바트는 유저들을 보면서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은 무게를 조금은 덜어 냈다.

평생을 바친 기업을 잃어버렸지만 아직 인생이 끝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 많던 재산도 날려 버리고 저택도 조만간 내줘야 하겠지만, 그럭저럭 앞으로

살아갈 돈은 남아 있었다.

"밖에 나돌아 다니지도 못할 처지이니 제2의 인생을 당분간 여기서 보내는 것도 괜찮겠지."

바트는 무기와 방어구를 정비하고 사냥이나 가려고 했다.

파티 사냥에 대해서도 좀 익숙해져서, 광장에서 적당한 팀을 구하면 근처로는 다닐 만했다.

"말살의 불도마뱀이 위드 님한테 죽었다는데... 진짜 대박이야, 대박."

"캬하! 빠릴 위드 님이 퀘스트 끝내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또 축제가

벌어질 것 같은데."

"아르펜 왕국이 얼마나 발전되었는지도 보시고 말이야."

어디서나 위드의 이야기.

바트가 모라타에서 생활하면서 유일하게 꺼림칙한 부분이 바로 위드에 대한 것이었다.

과거 한때 그에게 돈 봉투를 주면서 딸을 그만 만나라고 했던 것.

그런데 상황이 모두 바뀌었다.

회사가 망하고 나서 로열 로드를 하니 위드는 그냥 하늘의 태양처럼 쳐다볼 수도

없는 그런 존재였다.

바트도 모라타에서는 초보로 살아가는 신세였기 때문이다.

'절대 이곳에서 위드를 만나는 일은 없어야 돼. 그렇게 민망하고 창피한 일이

벌어지면 안 되니까.'

모라타는 대도시이니 방대한 땅을 다스리는 국왕 위드를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바트는 그 점이 위안이 되면서도 왠지 씁쓸한 기분이었다.

"진정 인생무상이라더니.. 어쩌다 내가 이런 신세가 되었을까."

"저기, 어디 피곤하세요?"

착하고 참하게 생긴 아가씨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오."

"혹시 저주라도 받으신 건.. 어디 아프신 곳이 있으세요?"

"정상이라오. 관심은 고맙지만 사냥이나 하러 가야겠소."

"사냥 가실 거면 제가 축복이라도 걸어 드릴게요. 여신의 보호!"

레벨 420이 넘는 사제들만이 사용할 수 있으며 스킬 획득이 그렇게도 어렵다는 여신의 보호!

이 보호 스킬이 있다면 보통 레벨 200대 사냥터에서는 죽고 싶어도 죽기도 어려웠다.

그렇기에 도시에서 고위 사제들은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또 존중을 받았다.

"헉, 이건...."

바트는 방어력이 5배 가까이 오른 걸 보고 경악했다.

"하루 정도는 지속될 거에요. 좋은 하루 되시고, 조심하세요."

"잠깐만... 이렇게 은혜를 입었는데 이름이라도 알려 주실수 있겠소?"

"이리엔이랍니다."

"아, 아가씨가 바로 백의의 천사 이리엔 양이시군요."

"과찬이에요. 그럼 전 저기 다친 분들이 보이니 저곳으로 가 볼게요."

"고맙소."

모라타의 유명 인물 이리엔을 만나 보게 된 건 큰 영광이었다.

바트는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딸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제대로 밥은 챙겨 먹고 고생은 하지 않을지

모르겠군. 딸에게 돈이 아니라 마음으로 잘해 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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