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드래곤의 위기
위드는 드래곤을 탄 채로 엠비뉴의 대신전으로 다시 가까이 내려왔다.
지상 최강의 탑승체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
조각 변신술을 펼친 상태라서, 가슴에 반달무늬도 있는 거대한 흑곰이 드래곤을 타고 있는 것은 놀라운 장관이자 구경거리가 되었다.
물론 엠비뉴 교단의 입장에서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재앙덩어리들의 결합이었다.
"상태 확인!"
『 혼돈의 드래곤 아우솔레토
세상을 눈 아래로 굽어보는 블랙 드래곤.
자연계에 존재하는 최강의 생명체 중 하나이다.
과거에 대륙을 송두리째 날려 버리려는 전쟁을 일으키고 나서 다른 드래곤들과 영웅들에 의해 봉인되었다.
엠비뉴 교단의 끈질긴 발굴 작업에 의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드래곤의 육체는 모든 물리적인 공격에 대한 피해를 97% 감소시킴.
*마나를 해체하고 재배열하는 능력으로 인해 마법 저항력 98%를 갖게 됨.
*정령왕을 제외한 정령들은 드래곤을 공격하지 못함.
*저주 마법에 대한 완전한 저항.
*자연계로부터 마나 흡수.
*세뇌로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 있다.
생명력 : 47%
마나 : 36% 』
"이 정도면 훌륭하군."
블랙 드래곤의 상태를 확인해 본 위드는 만족스러웠다.
드래곤의 생명력은 절반도 남지 않았는데, 엠비뉴 교단의 공격 탓도 있지만 하늘로 오르는 탑이 붕괴되면서 그 낙석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두들겨 맞았기 때문이리라.
이만큼 당하고도 절반에 가까운 생명력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드래곤의 대단함을 알려 주는 것과 같았다.
"엠비뉴에게 거역하는 놈들이 다시 내려온다!"
"모두에게 알린다. 저 흑곰은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다. 하늘로 오르는 탑을 파괴하여 우리의 숙원을 뭉개 버리고, 엠비뉴 신께서 내려 주신 신수마저도 강탈하려는 놈이다!"
"죽여라, 용서는 필요하지 않다. 영혼을 빼내서 3만 년간 고문을 할 것이다."
대신전의 방대한 무지에 우글거리는 광신도, 괴물, 사제, 기사, 종교재판관.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위드에게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보나 마나 그들의 적대심은 최고!
그렇지만 드래곤을 타고 있는 위드의 입장에서야 사탕을 빼앗긴 유치원생의 귀여운 투정 수준에 불과할 뿐!
위드는 야비한 악당처럼 목소리를 착 깔았다.
"어이, 친구."
- 이 땅에 오롯이 존재하고 있는 내 등에 감히 올라타다니! 더럽고 미개한 족속아, 당장 꺼지지 못하겠느냐!
"나는 네 친구라니까. 내가 너 구해 준 거 벌써 잊었어?"
- 아, 맞다.
엠비뉴 교단의 세뇌 작업에 의해서 제정신이 아닌 드래곤 아우솔레토.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 말이지. 아니, 드래……. 아무튼, 받은 만큼은 줄 생각을 해야지. 세상 그렇게 살면 안 돼."
위드는 드래곤이라는 단어를 절대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드래곤이 제정신을 차리게 되면 풍비박산이 날 것은 엠비뉴 교단만이 아닐 테니까.
- 도움을 받으면 그만한 대가는 치른다. 무엇을 원하나?
"내가 무슨 욕심이 있겠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널 구한 것도 아니고, 그저 다 친구인 네가 잘되라고 하는 것인데. 그런데, 저 밑에 애들이 너에게 고통을 주고 괴롭힌 것은 기억이 나겠지?"
- 물론이다. 전부 찢어 죽여야 마땅하다. 날 공격한 놈들은 몸을 천천히 녹여 줄 것이다.
"그러면 나야 뭐,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네가 고통을 받았다니 친구로서 분노를 참을 수 없군. 저놈들부터 없애자."
- 동의한다.
드래곤은 공중에서 갑자기 방향을 바꾸면서 격렬한 비행을 개시했다.
일반적으로 날개를 조절하여 바람을 타고 날아야 하는 것이 조류의 특성인데 드래곤은 움직임 자체가 상식을 초월한다.
마나의 힘으로 중력을 제어하고 가속도를 붙인다.
물리법칙의 한계를 그냥 극복해서, 폭탄을 터트려서 나아가는 것 같은 가속력을 냈다.
적당한 속도로 땅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전력을 다해서 직각으로 지상을 향해서 곤두박질친다.
"우워어어어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온몸의 피가 쏠렸다.
긴장으로 위드의 시커먼 털도 잔뜩 곤두설 정도였다.
"이, 이건 조금 너무 빠른데!"
아찔하도록 빠르게 땅에 가까이 다가와서야 드래곤은 두 날개를 활짝 펼치며 방향을 틀었다.
콰르르르르릉!
인근 건물들이 무너지며 내는 엄청난 소음!
드래곤의 비행이 만들어 낸 순간적인 돌풍에 건물이 단체로 흔들리고 쓰러졌다.
괴물들과 광신도들도 그 자리에 버티지 못하고 사방으로 나가떨어졌다.
- 미개한 족속들아, 이것이 바꿀 수 없는 너희의 운명이다.
드래곤은 대신전의 건물들 위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대신전을 자신의 몸 아래로 둔 드래곤의 당당한 위용!
드래곤은 하늘을 날아가다 엠비뉴의 궁병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앞발로 후려쳤다.
당연하게도 건물 자체를 산산조각으로 부숴 버리는 강대한 힘이었다.
블랙 드래곤의 앞발에 맞은 건물은 수천 개의 파편으로 변해서 광신도들을 뒤덮었고, 꼬리는 살아 있는 채찍처럼 땅위의 기사들을 후려쳐서 날려 버렸다.
"잘하고 있어. 하지만 놈들을 직접 노리면 몇 놈 못 잡을 거야. 건물을 박살 내!"
- 나 역시 그럴 생각이다.
육탄전을 펼치는 건 얼핏 조금 전과 비슷한 듯했지만, 그러나 지금은 뒤뚱거리면서 땅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었다.
놀라운 속도로 날아다니면서 대신전 전역을 대상으로 건물을 파괴하며 피해를 입혔다.
"성전이 우리의 제물에게서 위협받고 있다. 사도들이여, 엠비뉴를 향한 믿음의 힘을 발휘하라!"
"쏴라. 맞을 때까지 닥치는 대로 화살을 발사하라!"
엠비뉴 교단에서도 마법과 화살, 주술 등 가능한 원거리의 공격은 무엇이든 시도했지만 효과는 별로 없었다.
드래곤은 엄청난 속도로 급강하해서 건물을 무너뜨리고 다시 폭발적인 속도로 이동을 했다.
드래곤의 등에 타고 있는 위드는 그 위력을 똑똑히 느꼈다.
대신전 자체가 드래곤의 공격 범위가 될 수 있었으며, 모든 광신도들이 겁에 질렸다.
"제, 제물이 반항을 하고 있어. 우리가 죗값을 치르는 거야."
"아아악! 안 돼, 저 제물을 무슨 수로 다시 붙잡지?"
광신도들의 시선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드래곤을 떠나지 못했다.
'현대전은 공중전이라더니… 전투기를 타고 세상을 부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군.'
아직 제정신은 차리지 못했지만 아우솔레토는 육체적인 능력만으로도 전율스러운 존재. 드래곤 그 자체였다.
설혹 아우솔레토를 목표로 마법과 화살이 제대로 날아오더라도 보호먹에 의해서 무력하게 튕겨 나가 버렸다.
"잘하고 있어! 음… 놈들이 이동하고 있다. 저놈들을 한곳의 막다른 길로 유도하고 그 옆의 건물을 무너뜨려!"
- 부탁하는 것이겠지?
"물론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늘로 오르는 탑의 붕괴와 그 이후의 전투, 상당한 부상을 입었던 드래곤의 몸은 자연 치유 능력에 의하여 조금씩이나마 정상이 되어 갔다.
그에 비해서 위드는 대지의 여신 미네의 축복도 받지 못하여 생명력이 아직 절반도 회복되지 않았다.
당장은 드래곤의 등에 타고 있으니 최고의 휴식처에 있다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후에 언젠가 벌어질 사태에 대해서는 전혀 예측이 불가능했다.
당연히 대비책 같은 것도 전무했다.
정상적인 계획에서는 드래곤의 등에 타고 전투를 치른다는 것은 나올 수가 없었으니까!
진인사 대천명이라!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나면 나머지는 하늘에 맡겨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어릴 때, 한자로 된 문장 같은 것을 학교에서 아무리 배워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 가다 보니 직접 경험을 통해 그 뜻이 저절로 이해되었다.
'사고를 저지르고 나면 그 이후의 뒷감당은 대충 운에 맡기라는 뜻이었군.'
위드 나름대로의 해석 방식!
호랑이 등에 탄 것도 아니고 드래곤의 등에 타고 있으니, 무엇을 예상하고 대책을 세울 수가 있겠는가.
드래곤 아우솔레토는 무서운 기세로 지상의 기사들과 광신도들, 사제들 가리지 않고 연속으로 공격을 가해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일단은 좋기는 한데, 그러면서도 왠지 가슴이 답답하고 찝찝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엠비뉴 교단에서도 놀면서 무력하게 당하지만은 않았다.
"나오라, 아귀의 형을 살아가는 새들아!"
괴물을 배양하는 사제들이 하늘을 나는 괴조들을 수없이 많이 소환하여 불렀다.
끼이이익!
커다란 부리를 가지고 얼굴마저 흉포하게 생긴 괴조들은 인간을 먹고 살아간다.
죽은 시체를 주로 먹지만, 살아 있는 인간을 죽여서 통째로 삼키기도 한다.
하늘로 오르는 탑의 인부들에게는 최악으로 무서운 존재였다.
잠깐이라도 쉬고 있는 것이 발각되면 눈이나 혀를 쪼아 먹는 무서운 괴조들이 날아올랐다.
쿠엑!
끄아아아악!
괴조 수만 마리가 대신전의 하느을 뒤덮었지만 빙글빙글 돌기만 하고 감히 드래곤에게는 접근도 하지 못했다.
감각이 예민한 몬스터일수록 드래곤을 공격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다가 저 멀리로 도망쳐 버렸다.
엠비뉴 교단에서 키우는 애완동물과 같은 놈들이었지만, 평범한 인간들을 상대로라면 모를까 지금으로써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위드와 드래곤이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다 보니 괴조들과 계속 부딪치고 시야도 가려졌다.
- 영 귀찮군. 미개한 존재들이란…….
"잘난 네가 참지 마! 참으면 성격만 나빠지는데… 하긴 뭐, 너는 더 이상 나빠지지도 않겠군."
- 무슨 뜻이지?
"칭찬이야!"
대신전 전역을 대상으로 파괴 공작을 벌이는 사이에 건물들 뒤쪽, 신성 마법에 의해 겹겹이 보호 마법이 쳐진 곳이 있었다.
드래곤의 공격으로부터 피신한 헤울러와 고위 사제들 40명은 단체로 신성 주문을 외웠다.
"무자비한 파괴의 관용을 베푸는 엠비뉴여, 쓸모없는 생명력이 넘쳐 나는 이곳에 어둠의 힘으로 그대의 화신을 불러 일으키니……."
그들의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대신전의 수백 곳에서 엠비뉴의 사제들이 함께 비슷한 주문을 외웠다.
무너지고 깨진 대신전의 건물들 사이에서 사제들에 의해 미약한 어둠의 힘이 넘실거린다.
이윽고 작은 어둠의 힘 덩어리들이 대신전의 중앙으로 몰려들면서 드래곤만큼이나 커다란 무언가가 형성되고 있었다.
'저건 진자 위험해 보이는군.'
지금까지 위드는 엠비뉴 교단의 여러 신성 마법들을 구경해 봤지만 지독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히 헤울러의 능력이라면 어떨 것인지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훤하다.
퀘스트의 내용에도 나와 있었지만, 그는 시작과 끝을 모르는 긴 시간 동안 살아왔으며 늙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 마력과 신성력이 오죽 대단하겠는가.
드래곤을 세뇌시켜서 부려 먹을 정도의 능력이 있었으니 상대해 본 적 중에서는 사상 최악이다.
사제와 교단이 수장이라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고 객관적인 무력이야 지금 위드가 타고 있는 드래곤만큼은 아닐 테지만!
"아무튼 나도 놀고 있을 수는 없지. 내일 이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나는 방구석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땔감으로 쓸 거니까. 조각 변신술 해제!"
위드는 조각 변신술을 해제했다.
그러자 원래의 인간이면서 세계를 구하는 용사, 태양의 전사로 돌아왔다.
"친구여, 내가 몸을 좀 바꿨다고 해서 너무 놀라지 마라."
- 신경도 안 쓰인다. 전투 중에 귀찮으니 말 걸지 마라.
아우솔레토는 자잘한 일에는 상관하지 않는 대범함을 갖고 있었다.
하기야 제정신이 아닌 상태라지만, 위드의 변신술 정도는 드래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을 터!
- 전설의 프로스트 보우 요르푸시카를 무장하셨습니다.
위드는 전쟁의 시대에서 입수한 최고의 무기 중 하나를 손에 쥐었다.
그러다 괜히 드래곤이 탐욕을 부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이거 탐나지 않냐?"
- 갖고 싶다.
"어떻게 하지? 내가 아끼는 것이라 줄 수가 없는데, 친구여."
드래곤이 탐을 내는데 거절하면 관계가 악화되고 위험할 수도 있기에 조심스러웠다.
- 이빨 사이를 청소하는 용도로 쓸 만할 텐데 아쉽군.
"……."
전설의 활도 드래곤에게는 이빨 청소용 치실에 불과했다.
요즘 부자는 망해도 빼돌린 돈이 어마어마하다는데, 역시 부르주아 드래곤!
위드는 요르푸시카로 무장한 채로 지상을 향해 결빙 화살을 쐈다.
거의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에, 노리는 곳곳마다 온통 얼음 지대로 만들어 놓을 수가 있었다.
★★★★★★★★★★★★★★★★★★★★★★★★★★
유병준은 코코아를 느리게 마셨다.
차분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모니터를 보고 있자니 심장이 펄떡거리며 빨리 뛰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위드가 블랙 드래곤의 등에 탄 채로 엠비뉴 교단을 박살내고 있었다.
"…멋지군."
이렇게 그림처럼 멋진 광경이 또 있으랴.
겉보기에는 그저 멋지고 놀라운 광경이지만,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기가 막힐 것이다.
저 드래곤은 세상을 파멸로 이끌려는 최고의 위협이다.
엠비뉴 교단을 막아 내는 퀘스트에 숨어 있는 최악의 복병!
인간은 포함한 전 종족을 먹고, 불태우고, 짓밟는다.
드래곤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능력은 물론이고, 외관에서도 위압감이 가득 느껴진다.
그런데 그런 전설적인 드래곤을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현란한 속도감과 비행은 둘째로 치고, 너무나도 아찔한 위험으로 가득 차 있는 상황이라서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위드가 덜컥 죽어 버리기라도 한다면 그처럼 아쉬운 일은 없을 테니까!
위드의 모험을 중계하는 로열 로드의 방송국 진행자들도 입이 얼어붙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에… 그러니까 위드가 드래곤을 탔네요."
"드래곤에 탔습니다. 그리고 날아다닙니다."
"정말 보는 저희도 거짓말 같은데 시청자분들은 오죽할까요. 아주 의심스러울실 텐데요, 정말로 실제 상황입니다."
보통 텔레비전을 중계하는 경우엔느 중간중간 지루한 부분을 넘어갈 수 있는 자료 화면이 필수였다.
위드의 모험은 자료 화면이나 몬스터들의 데이터 분석 같은 건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빠르다 보니 잠시 후에 정신을 차린 진행자들은 목소리에 더욱 힘을 실었다.
"이걸 지금, 이 상황을 무어라고 설명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전까지 드래곤이 깨어나는 위기 상황이었고, 지금은 위드가 그 드래곤을 타고 엠비뉴 교단을 상대로 싸우고 있습니다."
"적의 적은 동료라는 말이 이처럼 잘 어울릴 때가 또 있을까요?"
"그렇지만 드래곤이 제정신을 차린다면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고 맙니다."
"오주완 씨, 그 시간은 꽤 오래 걸리겠죠?"
"정확히 몇 분 정도라고 과연 어느 누가 추측할 수 있을까요? 드래곤의 정신 상태를 알 수가 없으니 말씀드리기도 어렵습니다.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드래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깨닫는다면 대륙의 평화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아, 드래곤이 깨어나고 엠비뉴 교단도 살아남는다면 정말 최악이 될 수 있겠죠."
로열 로드 방송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점심시간이면 베르사 대륙이나 모라타, 아렌 성에 대한 이야기가 흔하게 나온다.
베르사 대륙의 유명한 휴양지, 아름다운 성, 도시 등은 휴가철이면 감자 하나 사 먹기 힘들 만큼 시장과 거리가 붐비기도 했다.
현실 세계에서도 로열 로드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간혹 아직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라 해도, 로열 로드에 대한 방송은 가끔씩 봤다.
금방이라도 텔레비전을 뚫고 나올 것만 같은 몬스터들이 출현하고, 그림보다도 멋진 경치들이 펼쳐진다.
아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 중에서 1명만 로열 로드에 빠지게 되면 나머지 가족들이 끌려들어 가는 건 순식간이다.
집안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어머니, 할머니의 채널 선택권도 이 시간만큼은 박탈된 상태!
"상국아, 누가 착한 놈이여?"
"할머니, 저놈 욕하시면 돼요."
그래도 시청자들 중에서는 로열 로드를 실제 플레이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위드의 모험은 긴 시간을 뛰어넘어서 현재의 유저들에게 영향을 주는 특수한 퀘스트들이기에 더 자신들의 일처럼 응원을 해 주었다.
처음에는 마법의 대륙 출신의 위드에 대해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세라보그 성 출신의 조각사 이야기에서부터 텔레비전에서 가끔씩 위드가 나오다 보니 이젠 누구나 알 정도가 되었다.
위드의 성장기를 시작부터 꿰뚫고 있는 시청자들은 열렬한 신봉자가 되어서 북부로 이주했다.
아직 얼굴을 못 본 친구이며 모두가 부러워하는 모험가, 대륙을 뒤흔드는 영웅과 같은 존재!
위드의 인기는 강철을 녹이는 용광로만큼이나 뜨거웠다.
무엇보다도,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드래곤을 타고 전투를 하는 장면은 정말 거칠면서도 빠르고 경쾌하다.
텔레비전을 보며 몰입하지 않기가 불가능했다.
★★★★★★★★★★★★★★★★★★★★★★★★★★
유니콘 사의 본사 건물에서도 직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
"경이롭고 신비하군요.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 이런 식으로 표현되고 사람들이 열광하며 빠져들다니."
"으음, 전쟁의 신 위드가 정말 보통 사람은 아닙니다. 퀘스트라고는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로열 로드에서 드래곤에 가까이할 수 있는 유저가 나타나는 건 앞으로도 4년 이상이 걸리리라고 예상을 했는데 말이죠."
유니콘 사의 직원들에게도 감탄의 연속이었다.
그들이 서비스하는 세상에서 매번 믿기지 않는 발군의 활약을 보이는 위드라는 존재가 더없이 자랑스럽고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런 모험을 실현할 수 있는 로열 로드를 총괄하는 회사에 다닌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명예의 전당이 3개월 정도는 독점되겠군요. 로열 로드를 즐기는 유저들이 또 한꺼번에 몰릴 가능성도 있는데……."
"마케팅 전략을 새로 잡아 보겠습니다."
"무모하게 드래곤을 사냥하려는 사람들이 대규모로 나타날 수도 있으니, 드래곤의 능력에 대해서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알리는 것도 재미를 줄 수 있는 요소가 될 것 같아요."
홍보부에서는 방송국들을 통해 중계되는 중요한 이벤트가 있으면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되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위드의 모험을 시청했다.
대륙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소한 일들을 지켜봐야 하는 홍보부의 직원들에게 위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위드가 입었던 초보복은, 그 색상만 일찍부터 잡화점에서 재고가 떨어질 정도다.
유니콘 사의 전략운영실에서는 향후의 정세를 분석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벤 제국과 아르펜 왕국의 세력비는……."
"군대의 움직임은요?"
"하벤 제국 내에서 반란이나 저항운도이 크게 벌어지는 장소는 아직 없습니다."
"점령 지역 주민들의 충성도는 어떻죠?"
"강력한 군사력 때문에 민중 봉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생필품도 빠짐없이 공급되고 있으며, 중앙 대륙에서는 전쟁에 대비한 요새들의 신규 건축과 성벽 재건도 필요하지 않고, 군대도 주요 거점에서 훈련에만 충실하면 됩니다. 충성도를 올리기 좋은 부분에 재정 투입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베르사 대륙의 현재 세력도는 상당히 단순하다.
전체 전력의 7할 이상을 차지하는 중앙 대륙은 하벤 제국이 먹어 치웠다.
인구, 기술, 발전도. 그 무엇으로도 대륙의 변방에서 따라 잡지는 못한다.
로열 로드가 시작된 이후 전략운영실에서도 중앙 대륙의 난세를 휘어잡는 세력이 있다면 그들이 전 대륙을 통일할 것으로 보았다.
물론 곳곳에 숨어 있는 전설과 이벤트 등이 있기에 변방에서 일어나서 대륙을 장악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누구나 놀랄 만한 속도로 신속하게 중앙 대륙의 난세를 평정했다.
하벤 제국을 일으켜서 사실상 전 대륙의 정복을 눈앞에 두었다.
거대한 제국의 지배 체제가 점점 빠르게 단단해지고 있었다.
베르사 대륙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은 물론이고, 수억 명에 달하는 유저들의 삶이 현재 시점에서부터 달라져 간다.
전략운영실을 비롯한 유니콘 사에서는 베르사 대륙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개입하지는 않는다.
대륙의 권력 체제나 특정 세력에 의한 지배 또한 유저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역사.
태양이 힘차게 떠오르고 달이 차면 기우는 것처럼 하벤 제국이라고 언제까지 영원한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베르사 대륙에서 사람들은 직접 삶은 선택하며 살아가게 된다.
다만 전략운영실에서 하는 업무는, 로열 로드 내의 세력 흐름을 따라서 현재가 아닌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손일강 실장은 유니콘 사의 이사들과 중역들이 관심을 갖는, 최초로 대륙을 통일할 황제에 대해서 보고서를 마련하고 있었다.
[현재로써는 그 모든 변수들을 감안하더라도 현 하벤 제국의 황제인 바드레이가 베르사 대륙을 통일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략… 북부를 포함하여 실질적인 대륙 전체의 복속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은 군사˚상업적인 영향력을 바탕으로 하여 매우 짧을 수 있으며, 그 기간은 3개월 미만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합니다.]
손일강 실장은 수백 명에 달하는 분석 요원들의 자료를 참고로 해서 보고서의 결론을 작성했다.
"흠, 마음에 들지는 않는군."
전략운영실의 구성원들은 이름만큼이나 거창하다.
최고의 석학들과 뛰어난 두뇌를 가진 직원들이 배치돠어서 베르사 대륙에 대해 분석을 하고 있다.
사람들의 권력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 꿈과 희망이 교차하는 또 하나의 세계.
하지만 베르사 대륙을 지켜보면서 전략운영실에서 깨달은 게 있다면, 미래를 전망하기란 힘들다는 점이다.
제멋대로 지어진 판잣집 사람들은 웃을 줄 알고 사람들을 배려하기를 좋아한다.
황궁 근처에서 살아가며 거대한 부를 쌓은 상인들은 웃음보다는 심술을 더 자주 부린다.
정의라고 해서 반드시 승리하는 것도 아니며, 탐욕은 살아서 숨 쉬며 사람들을 단단하게 결속시킨다.
악은 어둡거나 밝은 곳에서 끊임없이 살아 일어난다.
베르사 대륙에는 온갖 역사와 전설이 숨어 있고 영웅들은 때를 노리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흐르게 될지를 짐작하는 건 진정 신의 영역이 아니겠는가.
"어떻게든 되겠지.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니까 말이지."
★★★★★★★★★★★★★★★★★★★★★★★★★★
드래곤이 날아서 지나갈 때마다 위드의 화살도 지상을 향해서 쏘아졌다.
기사의 갑옷을 꿰뚫으면서 5명씩을 관토하고, 사제들을 그대로 결빙시켰다.
"일찍이 이런 사냥터도 없겠군!"
나름대로 상당한 공격을 세우고는 있었지만 드래곤의 활약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 크로로로로!
"힘들지?"
- 다리와 꼬리가 아프지만 아직은 버틸 수가 있다.
"놈들이 수상한 짓을 벌이고 있어. 넌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방심하지 말고 처리하자!"
- 나도 안다. 머리가 아프다. 저놈들을 완벽하게 처리해야 한다.
드래곤은 본래 육체를 효과적으로 많이 쓰는 편은 아니다.
긴 시간 잠을 자면서 게으름을 피우며 뒹굴고, 깨어 있는 동안에도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
그렇지만 폭발적인 움직임과 무엇이든 부수는 파괴력은 드래곤의 물리적인 능력도 우습지 않다는 점을 똑똑히 알게해 주었다.
그러나 엠비뉴의 대신전에서 흘러나오는 어둠의 힘은 그사이에도 점점 구체화되어 가고 있었다.
드래곤이 건물을 부숴서 숨어 있는 사제들을 깔아뭉개고 위드가 노출된 사제를 찾아내어 화살을 쏴서 죽인다고 하더라도 어둠의 힘은 잠깐 주춤하였을 뿐, 어둠의 그림자가 모여들면서 얼굴과 팔과 다리가 형성되었다.
헤울러와 고위 사제들의 신성 마법의 완성!
"거룩한 엠비뉴의 상징이여! 오만하고 건방진 저들을 쳐리하기 위해서 그분의 힘이 강림하였다."
"우오오오오오!"
위드는 어둠의 힘을 견제하기 위해서 화살을 몇 개 쏴 봤지만 사제들의 물샐틈없는 보호 마법에 막혀 버렸다.
"저걸 몸으로 들이받아서 부숴!"
- 막대하고 더러운 힘이 느껴진다. 나로서도 우습게 볼 수 없다.
드래곤조차도 어둠의 힘에 다가가는 것을 꺼렸다.
헤울러 혼자만이 아니라 대신전에 살아남은 수천 명의 고위 사제들 그리고 대신전의 건물과 땅에 축적되었다가 흘러나온 신성력이 전부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어둠의 힘이 뭉쳐서 거대한 엠비뉴의 화시닝 움직이기 시작했다.
엠비뉴를 상징하는 석상처럼 8개의 팔을 가지고 있으며 각기 하나씩의 무기들을 들고 있었다.
어둠이 모여든 덩치까지도, 드래곤을 압도할 정도로 훨씬 거대하다.
엠비뉴의 화신이 하늘과 땅을 울리며 말했다.
- 너희는 신인 나의 종이다. 결정된 운명을 거역하려 하는가?
- 그 누구도 명령을 내리지 못한다.
- 두고 보면 알겠지. 신의 위대한 이름으로 그 자랑스러운 날개와 팔다리를 찢어 내고 짓밟아 주리라.
- 웃기지도 않는군. 너는 나에 의해 파괴될 것이다.
엠비뉴의 화신과 드래곤의 말싸움이 벌어졌다.
빛을 잠식해 들어가는 짙은 어둠이 밀려오자 드래곤은 더 높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 속도를 쫓아오지는 못할 거야. 이러면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위드는 뒤를 돌아보고 공포스러운 광경에 깜짝 놀랐다.
8개의 팔에 제각각 활, 창, 검, 도끼, 사슬, 채직, 마력구슬를 들고 있는 화신이 날아오르는 것도 아니고 몸이 늘어나면서, 거리와 속도의 제한도 없이 하늘로 솟구치며 따라오는 것이다.
"도망치는 건 안 될 것 같아. 반격해!"
- 도망이 아니다!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
"까다롭기는. 작전상 후퇴를 하더라도 실속이 없을 거야. 먼저 선제공격을 날려 주는 게 어떨까?"
- 그렇게 하겠다.
드래곤은 선회해서 엠비뉴의 화신을 향해 강하게 쇄도했다.
속도와 물리적인 힘으로 어둠의 힘이 모인 결정체를 파괴해 버리려는 시도를 했다.
- 오너라. 미욱한 종이여. 순수한 피를 실컷 흘리게 해 주지.
엠비뉴의 화신은 팔들을 한꺼번에 움직이며 드래곤을 향해서 활을 쏘고, 창을 찌르고, 검을 휘두르고, 도끼로 내려쳤다.
엄청난 속도의 합동 공격이었다.
다가오는 드래곤의 동체를 사슬로 붙잡고 채찍질을 하며 마력구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번개류의 마법을 7개나 생성!
드래곤의 보호막을 5개나 통과하여 본체를 강타했다.
-온몸이 저릿저릿 울릴 정도로 심하게 감전되었습니다.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정신이 혼미해지려고 했지만 강한 집중력으로 이겨 냅니다.
드래곤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면서 어둠의 결정체를 꿰뚫지 못하고 스쳐 지나갔다.
"커억!"
위드의 생명력도 덩달아서 27,000이나 감소했다.
직접 공격을 당한 대상은 드래곤 아우솔레토였으나 같이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고 만 것이다.
공중에서 추락을 하던 드래곤은 땅으로 떨어지기 전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날아올랐다.
드래곤이 큰 부상을 당해서 패배하면 덩달아 죽게 되니 위드는 절로 걱정이 들었다.
"괜찮아? 계속 싸울 수 있지?"
- 뜨겁고 이상한 기운이 몸을 관통했다. 더러운 마법 같다. 용납할 수 없다.
드래곤은 중간에 비틀거리긴 했지만 다시 선회를 하면서 엠비뉴의 화신을 두 발로 낚아채려고 하였다.
하지만 화신이 먼저 창을 던졌다.
- 캬아아악!
드래곤의 복부에 창이 꽂혔다.
그 깊이야 얕았고, 총 생명력에서 감소한 충격도 사실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아우솔레토는 맷집과 보호막 이상으로 생명력 역시 무지막지하게 높았기 때문.
콰아아아앙!
하지만 엠비뉴의 창은 산산이 부서지면서 드래곤에게 2차 충격을 주었다.
등에 타고 있던 위드에게도 피해가 전달되어 어둠의 힘에 의해 생명력이 10,000 정도나 감소했다.
엠비뉴의 화신이 소모한 창은 어둠의 힘에 의해서 다시 생성되었다.
- 어떻게 해야 하지?
"몰라. 약점을 찾기 위해서라도 계속 싸워 봐야 하겠지."
드래곤은 비틀거리면서도 공중에서 다시 방향을 잡았다.
엠비뉴의 화신은 멈추지 않고 계속 뒤를 쫓아왔다.
드래곤은 십여 번을 공중에서 화신과 교차하며 싸움을 벌였지만, 그때마다 일방적인 피해만 입었다.
- 괴롭다. 아프다. 저 마법은 정말 강하다. 그러나 내가 공격을 당하다니, 너무도 수치스럽다.
위드도 잠깐 지켜보았지만, 현재로써는 엠비뉴의 화신을 상대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화살을 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 정도는 화신이 들고 있는 방패에 어렵지 않게 막혀 버리고 만다.
드래곤의 앞발이나 꼬리 공격을 당하더라도 안개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합쳐져 버리니 생명력이나 복원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도 알 수 없었다.
'드래곤과도 비등하게 싸울 수 있다니 놀라운 마법이군. 엠비뉴 교단 최후의 마법인가. 그래도 뭔가 약점은 있을 것이다.'
만약 위드가 저 마법을 상대로 혼자서 싸웠다면 더 암울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리라.
신들의 축복에 의해서 무기 등에 신성력을 부여한다고 하더라도, 엠비뉴의 화신의 물리적인 능력은 거의 드래곤에 비견될 정도였다.
- 분노가 치민다. 용납할 수 없다.
"저건 잠깐 놔두고 밑에 인간들부터 해치우는 게 어때?"
- 자존심 때문에라도 피할 수는 없다.
"물론 그렇지만 지상으로 내려가는 쪽이 더 유리할 거야. 어차피 저 마법도 우리를 쫓아오겠지만, 그러면 자기편도 함께 위험에 빠지게 되겠지. 도망치는 게 아니라 계속 쫓아오게 만드는 거야!"
- 그렇다면 내려가자.
아우솔레토의 입에서 독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슬슬 아우솔레토의 태도가 바뀌어 갔다.
세뇌에서 풀려난 지 시간이 조금 흘렀고, 고통이 그의 정신을 일깨우고 있었다.
거만하고 자신밖에 모르는 성격이 되살아나며 이제 더 이상은 위드에게도 친절하게 굴지 않았다.
- 무엇을 하느냐. 놈을 화살로라도 제대로 맞혀라. 그 정도도 똑바로 못할 거면 차라리 독을 마시며 죽는 게 나으리라.
"그런 식으로 말하면 곤란하지. 내가 널 구해 줬잖아."
- 그랬나? 혼자서도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고작 그 정도를 가지고 은혜를 베푼 듯이 말하니 가소롭구나.
분노한 드래곤에게 욕을 먹어 가면서 위드는 엠비뉴 교단을 향해 화살을 쐈다.
회전하면서 휘어지는 화살들은 사제들의 보호 마법의 취약한 부분을 절묘하게 파고 들어가서 얼음덩어리로 바꿔 놓았다.
징벌의 사제, 그리고 엠비뉴 교단의 대신전에서만 볼 수 있는 참악의 사제가 주요 목표물!
드래곤의 마법 저항력, 물리 저항력은 최상의 수준이라서 타고 있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방패가 되어 주었다.
숱한 공격 마법들이 아우솔레토를 향하여 날아왔지만 절반도 맞지 않았고, 그나마도 대부분은 보호막에 막힌다.
몸에 적중되더라도 거뜬하게 버티며 휘청거리지 않았다.
"저쪽에 모여 있는 녀석들은 별거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흩어지는 사제들부터 죽이는 편이 나을 것 같아!"
- 보잘것없는 너의 쓸모없는 의견은 참고하겠다.
드래곤의 움직임은 최고 성능의 전투기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빠르고, 과격하며, 지독하게 공격적이다.
계속 쫓아오는 엠비뉴의 화신을 뒤로하고 몸을 건물들을 부수면서 통과하고 사제들을 짓밟고 다시 날아올랐다.
다만 아까와 같은 여유는 없어서, 지면 가까이 스쳐서 날아갈 때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화살과 마법이 보호막에 부딪치며 화려한 불꽃놀이를 만들었다.
대부분의 공격들은 별 의미 없이 막혔지만 그래도 세뇌와 종속의 권능이 있는 붉은 채찍은 드래곤의 보호막을 꿰뚫고 날아와서 본체를 때리며 고통을 주었다.
신앙심을 바탕으로 영혼 자체에 충격을 주는 붉은 채찍이라서, 드래곤도 그것만큼은 매우 고통스러워하면서 피하려 들었다.
"사제를 해치워라. 추적 화살!"
드래곤을 타고 있는 위드의 화살은 폭발의 연기 사이를 뚫고 갑자기 날아와서 사제들을 공격하는 쓸모 있는 공격 수단이었다.
드래곤에게는 구박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사막의 대제이며 세계를 구하는 용사인 위드의 전투 능력이 어디 가서 무시당할 정도는 아니다.
공격 마법을 펼치는 사제들이 취약해진 사이에 몸에 정확히 꽂히는 화살은 순식간에 생명을 잃게 만들었다.
고속 이동을 하는 드래곤의 등에서 화살을 쏘기란 어려웠지만, 정확한 목표를 겨누지 않고 사제들이 밀집한 지역으로 휘어지는 화살을 마구 난사했다.
띠링!
-대단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화살 공격이 서른한 번 연속으로 적의 생명을 빼앗았습니다.
명성이 721 증가합니다.
경험을 통해 민첩이 1 높아집니다.
호칭 '백발백중 맞히는 자' 를 획득하셨습니다.
쏘기만 하면 광신도나 사제 중에서 누군가는 맞는다.
그렇게 대신전의 사방에 흩어져 있는 사제를 찾아내서 몇 명씩 처리하고 있었는데도, 엠비뉴의 화신은 전혀 약해지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드래곤은 엠비뉴의 화신이 다가올 때마다 연거푸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드래곤의 등에서 전투를 한 지 5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띠링!
-특수 직업 획득 퀘스트 '드래곤의 동반자' 가 발생했습니다.
『 드래곤의 동반자
고고한 드래곤은 인간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의 믿음을 얻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며, 대화조차도 어렵다.
상상력이 뛰어난 인간들은 끊임없이 드래곤을 길들이고 지배하고자 하는 유혹을 떨쳐 내지 못했다.
드래곤과 함께 전투를 치르는 드래곤 나이트!
이루어지지 않은 전설 속에 존재하는 직업이지만, 목숨을 건다면 시도할 수 있다.
성공 확률이 과연 존재할지는 의문이지만.
드래곤에게 인정받는 인간이 되기 위하여 적을 격퇴하라!
전투 중에 다섯 번 이상 드래곤을 감탄시킨다면 그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것이다.
난이도 : S
보상 : 연계 퀘스트 '드래곤의 심장'.
퀘스트 제한 : 레벨 790 이상, 전투 관련 스킬의 마스터, 기마술 마스터, 드래곤과의 인연. 』
『 직업 설명 : 드래곤 나이트
드래곤을 타고 전투를 치르는 기사, 혹은 전사를 통틀어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작은 전투에서는 드래곤 나이트의 특별함이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시시한 적을 상대로 드래곤이 그 큰 날개를 펼쳐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투의 크기가 커지고 감당할 수 없는 적들이 몰려오면 친구인 드래곤을 부를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교감을 나누는 드래곤은 본래 세상의 분쟁에 끼어들지 않는 법칙을 가지고 있지만, 친구의 일에는 관여하기를 망설이지 않습니다.
드래곤은 자신만의 선악의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친구를 도울 수 있을지는, 서로의 친밀한 관계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다섯 가지 이상의 전문 스킬을 궁극의 단계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익히고 인간 중에서 어떤 몬스터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의 무력을 가진 자에게만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만약 드래곤 나이트가 된다면 인간 세상에서 왕 이상의 영향력과 그 이상의 명예를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으로서의 운명의 한계를 개척한 드래곤 나이트에게는 국왕도 허리를 숙이지 않으면 안 될 테니까요. 』
난이도 S급 퀘스트의 등장!
그것도 무려 직업으로, 드래곤 나이트와 연관된 의뢰였다.
위드는 이번에 나타난 퀘스트에 대해 영광이나 떠림보다는 눈앞이 다 캄캄했다.
'이건 뭐, 그냥 죽으라는 뜻이군. 고성능 폭탄을 몸에 두르고 불난 집에 들어가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거나 다를 바가 없구나. 아예 몸에 참기름까지 바르라고 하지.'
드래곤 나이트로의 전직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자랑거리는 될 만했다.
위드도 그 이상의 욕심은 없었다.
지금은 우연에 우연이 겹친 것과 같은 상황이다.
어쩌다 퀘스트 중에 인간 중에서 최고의 무력을 쌓게 되고, 드래곤 아우솔레토의 등에도 잠시 얻어 타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언제 지금처럼 드래곤의 넓고 편안한 등에서 호사를 누리는 게 아니라 이빨 사이에 끼게 될지 모르는 처지이다 보니 즐거움을 만끽할 수도 없었다.
하기야 전직 퀘스트를 성공하더라도 앞날이 문제다.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혼돈의 드래곤이자 블랙 드래곤인 아우솔레토와 대륙을 질타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퀘스트를 거부하겠다."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기회입니다.
정말 퀘스트를 거부하시겠습니까?
"절대 안 할 거야."
-드래곤의 동반자 퀘스트를 거부하셨습니다.
전투 명성이 8,329 감소합니다.
드래곤 아우솔레토와의 친밀도가 감소합니다.
명성은 떨어졌지만, 위드는 미역국을 마신 것처럼 속이 훨씬 편했다.
어둠의 힘으로 생성된 엠비뉴의 화신은 쫓아오면서 드래곤과 계속 맞부딪쳤고, 강력한 마나의 파동은 반경 100미터 정도까지 퍼져 나갔다.
그 소리와 충격은 대신전을 넘어서 메마른 울부짖는 폐허까지도 미쳤다.
"이게 무슨 소리……."
"두렵다. 두려운 힘이 저쪽에서 느껴지고 있다."
몬스터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서 대신전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들이 있는 장소에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하늘로 무언가가 솟구치고 빠르게 내려오면서 지진처럼 어마어마한 진동과 천둥벼락 같은 소리가 난다.
어둠의 힘이 불러온 엠비뉴의 화신과 드래곤의 싸움.
몬스터들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그러진 생명들의 조율자이며 최상위 포식자인 드래곤을 따를 수밖에 없는 존재!
초식동물이 육식동물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듯이, 모든 생명들은 드래곤을 경외하며 기꺼이 지배를 받아들이게 된다.
알 수 없는 장벽은 엠비뉴 교단과 세상을 나누는 경계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장벽의 근처나 혹은 그 너머에서, 악화된 신성력에 접촉한 짐승들과 살아 있는 생명들이 강제로 몬스터화되는 이유였다.
육체는 돌연변이화되고, 깊이 있는 사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쩌저적!
신성력과 마나의 파동을 이기지 못한 알 수 없는 장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반쯤 무너져 있던 장벽들의 붕괴 속도가 가속화되더니 결국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한꺼번에 허물어졌다.
밀집되어 있던 악화된 기운이 방출되면서, 멀쩡하던 동물들도 곧 순간적으로 몬스터화가 진행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보며 어리둥절해하더니 곧 고개를 돌려서 대신전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구우우우?"
"저기…로 가야 한다."
메마른 울부짖는 폐허에서 아무 목적 없이 서성이던 몬스터들이 한꺼번에 대신전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일찍이 그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몬스터들의 이동.
시커멓게 썩은 강에서 잠시 머뭇거리면서 멈추기도 했지만, 물속을 걸어서 반대편으로 넘어왔다.
강에는 본래 뼈와 살이 녹을 정도의 지독한 독이 흐르고 있었지만 지금은 블랙 드래곤 아우솔레토에 의하여 중화되어 버렸다.
드래곤은 소모하나 마나만큼 자연으로부터 흡수를 하는데, 블랙 드래곤인 만큼 독으로부터 막대한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그 결과 시커멓게 썩은 강은 조금 더러운 일반 강으로 바뀌어 버린 후였다.
"가…자."
"저기로 가야……."
몬스터들도 끝도 없이 첨벙거리며 강을 넘어서 대신전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