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부하들과의 해후
ㅡ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북부의 터전까지 빼앗기고 나면 우리가 과연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입니까!
ㅡ 끝까지 투쟁합시다.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벤 제국의 침공에 맞서기로 한 유저들이 대지의 궁전으로 개메 떼처럼 모여들고 있었다.
승리를 확신한 건 아니지만 전쟁의 신 위드가 돌아온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물론 어느 곳에나 비판적인 부류의 사람들도 끼어 있긴 한 법이다.
"근데 나는 잃어버릴 게 판잣집밖에 없는데. 판잣집은 또 지으면 되는 거 아냐?"
"난 판잣집도 없어. 저번에 돈이 떨어져서 골목길에서 그냥 잤다니까."
"햇볕은 잘 들었어?"
"언덕이라서 좋을 거라 생각했지. 근데 새벽부터 비가 오더라고."
"아르펜 왕국이 있다고 딱히 우리에게 좋을 것도 없잖아. 우리는 헤르메스 놈들에게 빼앗길 것도 없으니까."
"풀죽 안 먹어 봤어?"
"먹어 봤는데 맛은 없더라."
"그렇기는 해. 나는 괜히 독버섯죽 먹고 죽었다니까."
북부의 유저들은 초보나 고레벨 유저나 가리지 않고 대지의 궁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딱히 내가 위드를 위해서 온 건 아니야."
"암, 아르펜 왕국이 우리가 살아갈 곳이라서 그렇지."
단지 위드가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북부 전체의 유저들이 모여든다.
이러한 현상이 방송국들을 통해서 중계되면서 대지의 궁전은 하벤 제국과 맞서는 최전방처럼 느껴졌다.
"우리 폐하께서 대지의 궁전으로 가셨더군. 근데 필요한 물자가 아주 많을 게야. 혹시 그쪽으로 장사를 하러 갈 생각이 있는가?"
"물론이죠. 무기를 잔뜩 싣고 가서 싼값에 팔 겁니다."
"그렇다면 이 물건들도 좀 가져다주었으면 좋겠군. 폐하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면 좋을 텐데."
『 잡화점 상점의 부탁
아르펜 왕국의 주민인 페카이도스는 대제국의 침략을 맞아 앞으로의 삶을 걱정하고 있다.
몬스터들에게 쫓기며 살아온 과거를 가진 그는 왕국이 무너지고 나면 다시 가족들과 같이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모험과 예술로 어려움을 극복해 온 국왕이
건재하기에 아직 도망치지 않고 있다.
페카이도스가 넘겨주는 물자들을 받아 대지의 궁전으로 운반하라.
난이도 : E
퀘스트 제한 : 잡화점 주인 페카이도스의 믿음. 』
위드가 대지의 궁전으로 군대를 부른 것만으로도 아르펜 왕국 곳곳에서 물자 운송이나 병력 이동과 관련이 있는 퀘스트 발생!
"국왕 폐하께서 부르고 계신다. 내가 지금까지 검을 갈고 닦은 것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다!"
"호라드 기사 가문의 셋째 아들인 나는 아직 기사 견습생이지만 아르펜 왕국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로 떠날 것이다!"
주민들 중에서도 자발적으로 대지의 궁전으로 향하는 이들이 대량으로 생겨났다.
위드야말로 아르펜 왕국의 중심이며, 주민들이 따르는 진정한 국왕.
그의 영향력이 국가 전체에 확고하게 퍼져 있다는 증거였다.
또한 국왕의 직업 특성에 따라서 예술가들도 활약을 펼쳤다.
"하벤 제국, 이 나쁜 놈들 같으니라고."
"야! 거기 바드레이 동상에 콧구멍 좀 더 크게 만들어!"
화가,조각가가 대거 동원되어 하벤 제국의 침략에 맞서 애국심을 기를 만한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문화는 아무 힘도 없이 나약하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지만, 실제로는 침략자에게 맞설 수 있는 끈질긴 원동력이 된다.
그렇게 숱한 사람들이 대지의 궁전으로 향하고 있는 도중 하늘에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떠올랐다.
거대한 덩치, 그리고 활짝 펼친 날개가 햇빛에 수십 가지의 색으로 영롱하게 빛났다.
"어라, 저건 무엇이지?"
"저기를 좀 봐요. 뒤에는 와이번들도 있어요."
"그러면… 차가운 얼음으로 만들어진 빙룡이잖아요!"
"아르펜 왕국 만세!"
대지의 궁전으로 걸어가던 유저들과 주민들은 손을 들어서 환호를 했다.
당당하게 하늘을 날아가는 빙룡과 와이번들.
북부의 유저들 중에서 그 누가 위드의 건국신화를 모르겠는가!
작은 마을 모라타에서부터 무수히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 지금의 아르펜 왕국까지 발돋움을 하는 데 도움을 준 조각 생명체.
빙룡과 와이번들도 대지의 궁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와이번들의 등에는 하이 엘프 엘틴이나 바바리안 게르니카, 여검사 빈덱스와 같은 조각 생명체들도 다 타고 있었다.
특히 비행기 1등석을 능가하는 승차감을 자랑하는 와삼이의 등에는 금인이와 켈베로스, 세빌, 이렇게 3명이나 탔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붉은 화염을 줄기줄기 뻗어 내는 불사조가 뒤를 따라왔다.
등에는 늠름한 불의 거인을 태우고 있었다.
그들이 하늘을 날아가니 따뜻한 기운이 지상에까지 퍼졌다.
종족의 특성상 유저들은 한 번도 가까이 접해 본 적이 없는 조각 생명체들이다.
"그오오오오오!"
그 후에는 숲을 깔아뭉개면서 머리가 9개나 달린 킹 히드라가 기어갔다.
아르펜 왕국의 변방 수비를 맡아 몬스터를 잡아먹던 킹 히드라도 혼자 놀기에 지쳤다.
"야, 두 번째 머리. 넌 취미가 뭐냐."
"몬스터 통째로 삼키기."
"어라, 나와 같은 취미를 갖고 있는데."
"나는 일곱 번째 머리인데, 마찬가지야."
"다들 음식 얘기 그만하고 조용히 해라. 지금 나는 엄청 배가 고프다."
"나도 배가 고픈데."
킹 히드라의 9개 머리는 서로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끼리 놀다가 이젠 대지의 궁전으로 이동을 했다.
두두두두두!
유저들은 이번에는 땅을 울리는 소리와 저 멀리서부터 어마어마하게 일어나는 흙먼지를 보았다.
"이번엔 또 뭘까?"
"모르지. 근데 규모가 엄청나."
대지의 궁전으로 향하는 흙먼지 무리.
들판을 달라는 소 떼는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음머어어어어!
"네 아버지는 누구냐."
"모른다. 엄마가 누렁이라고 했다."
"우리 엄다도 누렁이라는 소와 하룻밤을 보내고 나를 낳았다."
누렁이로 인하여 아르펜 왕국에는 황소 돌풍이 일어났다.
완벽한 근육질의 듬직한 체구와 정력에 선한 눈빛을 가진 누렁이는 모든 암소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좋은 혈통을 가진 소 떼는 초원과 언덕을 누비면서 자라서 일가족을 이루었다.
그렇게 태어난 누렁이 새끼들이 무리를 이루어 대지의 궁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잠깐 동안 소 떼에 눈이 팔린 사이, 대지에 그림자가 드리워져서 어두워졌다
천공의 섬 라비아스.
조인족의 섬이 통째로 대지의 궁전이 있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조인족은 귀엽고 전투력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장거리 여행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많이 선호하는 종족이다.
백만 명이 넘는 유저들이 천공의 성 라비아스 부근에서 짹짹거리며 함께 날아다녔다.
시골에서 밤에 불을 켜면 모여드는 날파리 떼 정도는 우슬게 여길 정도의 조인족 무리.
"이게 우리 아르펜 왕국이구나."
"끝내준다."
★★★★★★★★★★★★★★★★★★★★★★★★★★
위드는 사냥을 하러 가기로 한 일행이 준비를 마치는 잠깐 동안에 조각품을 깎았다.
"시간 조각술!"
『 시간 조각술 초급 3레벨(79%)
세월의 조각술 단계.
조각품이 자연스럽게 긴 시간을 경험하게 합니다. 때때로 조각품들은 시간이 덧씌워지면서 훌륭한 가치를 갖게 될 것입니다.
또한 아주 긴 세월이 지나더라도 자연적으로 입는 손상에 의하여 파괴되는 것을 막아 줍니다. 』
"단기간에 조각술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노가다만 한 것이 없지."
명작이나 대작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일단 시간 조각술을 적용해서 만들어 놓고 나면 되는 것!
조각품을 깎는 주제는 주로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더해질 수 있는 물품들이었다.
나무 그릇에서부터 시작해서 옥으로 만든 오리, 금으로 된 여자아이의 인형.
대지의 궁전에 있는 창고에는 여러 가지 재료들이 있었고 국왕인 이상 자유롭게 꺼내 쓸 수 있었다.
재산을 심하게 축내거나 한다면 주민들의 충성심이 하락할 테지만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수준도 아니고 이 정도는 국왕으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특권!
"감정!"
『 부리가 짧은 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심하게 화를 내는 새의 조각상이다.
대륙의 역사에서 가장 크게 이름을 알린 조각사가 만든 작품.
어떤 이유에서인지 제작 연도를 추측할 수가 없다.
작품은 긴 시간을 경험하여 골동품 수집상들에게 꽤나 인기가 있을 것 같다.
예술적 가치 : 17. 』
"으음."
위드는 생각지도 않았던 시간 조각술의 장점을 발견했다.
"뭘 만들어도 골동품으로 바꿔서 팔아먹을 수가 있는 거로군."
가짜 골동품을 제작을 위해서는 최고의 스킬!
과거 니플하임 제국 시절의 물건이나 전쟁의 시대 왕국의 물건 몇 가지를 제작하여 시간 조각술을 사용한다면 가짜 골동품을 대량으로 유통할 수 있었다.
"역시 조각사란 이렇게 자잘한 맛이 있단 말이야."
그렇게 조각품을 깎고 있는 동안 익숙한 방문객들이 도착했다.
"주인님, 무사히 돌아오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검술을 연마하여 주인님에게 충성을 다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서 적을 처단하러 가시죠. 저의 검 앞에 적들은 꼬리를 말고 도망칠 겁니다!"
지골라스에서 모험을 하며 생명을 부여해 준 생명체, 괜히 틈틈이 멋있는 척을 하는 기사 세빌이었다.
"어, 그러냐."
위드는 멋진 외모를 가진 세빌을 보면서 헤스티거가 떠올라서 별로 표정이 좋지는 못했다.
명령은 잘 듣는데 너무 뛰어난 부하.
하지만 세빌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헤스티거처럼 뛰어나지 않아서 인간적인 면이 있었다.
뭔가 잘생기고 유능하기는 한데 고지식하고 여자에게는 인기가 없는 그런 유형!
"음머어어어어!"
"이게 얼마 만이냐, 골골골. 너무 보고 싶었다. 다신 우릴 두고 떠나지 마라."
"왈왈!"
누렁이, 금인이, 켈베로스까지도 이어서 들어왔다.
금인이의 등에는 빛날이가 펼쳐져 있었으며, 양쪽 어깨에는 황금새와 은새도 앉았다.
정겨운 조각 생명체들과의 만남.
"너희는……."
위드의 입가가 실룩였다.
그립고 보고 싶기도 했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짜증이 솟구치는 기분이 들었다.
"밥들은 잘 챙겨 먹었느냐."
"물론이다. 잘 먹었다, 골골!"
조각 생명체들은 진심으로 감동했다. 오랜만에 만났더니 인사로라도 밥을 먹었는지를 챙겨 주는 것이 아닌가.
위드가 어딘가 예전과는 달리 많이 변했다고 느껴졌다.
설마하니 주인도 자신들도 그리워하고 보고 싶었던 것일까.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내가 떠나 있는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밥만 축내며 살았겠지!"
"……'
"누렁이, 그렇게 몸 관리를 잘하라고 했더니, 뒷다리 살이 갈비에 기름기가 잔뜩 끼었구나."
만만한 누렁이부터 갈굼 시작!
"음머어어어."
누렁이가 서럽다는 드이 커다란 눈을 끔뻑였다.
"금인이, 너는 사냥 많이 하고 강해졌지?"
"물론이다, 골골. 사냥터에서 쭉 살았다.
금인이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과거 죽음을 경험한 그는 다시는 그러한 일을 겪지 않기 위해 열심히 전투를 했다.
새로운 특기도 개발했기에 특히 칭찬을 받고 싶었다.
"그동안 새로 익힌 스킬이 있다. 골골."
"뭔데?"
"황금을 먹으면 잠깐 동안 강해진다. 생명력도 늘어나서 안전해진다, 골골골."
"서, 설마 써 본 건 아니겠지?"
"완전 좋다. 맨날 쓰면서 사냥했다."
"네가 아주 죽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위드에게 심한 절망을 안겨 주는 조각 생명체들이었다.
"빙룡이랑 와이번들은 어디에 있어?"
"저기 밖에 있다."
와이번들과 빙룡은 궁전에까지 내려오지 않고 부근을 날고 있었다.
모라타의 흑색 거성에서 살 때 창가에 자주 앉았다가 건물 부서진다고 잔소리를 어마어마하게 들었던 탓이다.
위드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저놈들은 그래고 좀 믿을 만하지. 일찍부터 고생도 많이 했고. 다행히 내가 없는 사이에 1마리도 죽지 않은 모양이로군."
그러자 전사 게르니카가 말했다.
"얼마 전에 왕국에서 명마가 발견되었습니다. 멀미에는 흰 뿔이 달렸고 잠깐 동안 날개를 펼칠 수도 있는데 아주 빨랐죠."
"근데? 그런 말이라면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엄청 비싼 거 아냐?"
"와일이가 먹었습니다."
"통째로 다?"
"먹고 트림까지 완벽하게 했습니다."
"……혹시 빙룡은?"
하이 엘프 엘틴이 수줍게 이야기했다.
"늙으니 몸이 허하다고 저족에 있는 약초밭을 헤집어 놨어요. 말려는 봤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전부?"
"몽땅요."
위드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드라마를 보면 왜 기업 회장들이 고혈압으로 고생을 하고 툭하면 잘 쓰러지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족이나 부하가 더 골칫덩이다.
어떻게 드라마들은 현실을 이렇게까지 잘 반영했단 말인가.
그때 어둠이 뭉게뭉게 일어나더니 데스 나이트 반 호크가 나타났다.
"주인!"
"너는… 여기는 어떻게 왔지? 어비스 나이트가 되어서 한창 하벤 제국을 공격하고 있어야 되지 않느냐?"
위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조각품을 만드느라 워낙에 바빠서 베르사 대륙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졌다."
"아니, 이렇게나 빨리 졌어?"'
"칼라모르 제국의 영광을 되돌리려고 하였으나 적국의 황제라는 자에게 패배했다."
위드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비스 나이트라면 그래도 이 시대에서는 충분히 강하다고 할 수 있었을 텐데. 벌써 패배하다니 말이 돼?"
"적들이 너무 많았다."
"적들이 많다면 치고 빠지는 유격전을 하면 될 거 아니야. 누가 어비스 나이트와 둠 나이트로 이루어진 기사단의 속도와 돌파력에 맞서서 상대할 수 있다는 거야! 나라면 아예 쓸어버리고 다녔을 텐데. 설마 그냥 정면 승부를 한 것이냐? 정면으로 싸우더라도 전장을 이탈하는 건 식은 죽 먹기잖아?"
"계곡 위에서 놈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러나 모르는 척 들어가서 칼라모르 제국 기사의 용맹함을 보여 주고 싶었다."
"……."
"하루를 헛되게 보낸다면 칼라모르의 땅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놈들을 언제 다 죽일 수 있겠는가. 나는 역으로 놈들 전부를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
"그래서 죽은 건 너였고?"
"내 말을 이해를 못 한 것 같군. 다시 말하지만 적들이 너무 많았다."
"부하들은?"
"몰살당했다. 점령 지역에 몇 놈 남기는 했지만 오래 버틸 순 없을 것이다."
명색이 암흑 군단의 총사령관 반 호크는 무안한지 살짝 해골을 돌렸다.
그리고 한동안, 위드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와 조각 생명체, 혹은 반 호크와의 관계는 특별하다고 할 수 있었다.
부하를 넘어서, 이를테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였다.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어.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진리로군."
상실감이 너무 커서 위드는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푸념만 쏟아져 나올 뿐이었다.
누렁이가 그런 주인을 보면서 안타까워서 말했다.
"음머어어어, 그래도 내가 새끼들은 많이 낳았다. 내 새끼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아주 늠름하다."
"황소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버릴 곳이 하나도 없지. 잘했어."
"근데 조금 많이 먹는다."
"누렁아, 송아지들이 한창 클 때는 원래 많이 먹어야 돼. 그래야 쑥쑥 자라서 일도 하고 마차도 끌고 그러지."
"모라타의 곡창지대가 쑥대밭으로……."
"……."
★★★★★★★★★★★★★★★★★★★★★★★★★★
그렇게 약간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위드는 시간 조각술에 전념하여 골동품을 대량생산의 위업을 달성하고 간신히 초급 4레벨까지 올릴 수 있었다.
시간 조각술은 최후의 비기 스킬답게 초급 단계라도 레베링나 성취도가 빨리 오르지는 않았다.
그 후에는 사냥 동료들을 데리고 고요의 사막 부근으로 이동했다.
조각 생명체들을 데리고도 사냥은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촉박하고 많이 위험하기 때문에 새로 모집한 사냥 동료들과 함께 이동했다.
"여긴 사막이 아닌가."
살갗이 달아오를 정도로 뜨거운 햇볕에 파이톤이 적잖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북부 대륙에도 사막이 조금 있다고는 들었지만 대지의 궁전에서 정말 가까운 모양이군. 이렇게 순식간에 올 줄은 몰랐네."
"베르사 대륙의 남부입니다. 고요의 사막과 접해 있는 장소죠."
"무엇이라고? 그러면 대륙을 완전히 가로질러서 도착을 했다는 건데. 정말인가?"
"믿어도 될 겁니다."
파이톤에게 종이에 그림을 그려서 단숨에 도착하는 물빛의 화가 비기, 그림 이동술을 경험한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하지만 막 도착하자마자 숨이 막혀 올 정도의 더위에 다시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곳은 정말 덥군요. 숨을 쉬기도 답답할 정도입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남자 또한 힘들게 간신히 말했다.
처음에는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이 뜨겁다고 생각했지만, 곧 모래가 달아오른 불판처럼 느껴졌다.
'지옥의 입구가 여기다. 그리고 난 아마 버텨 낼 수 있겠지. 위드 님은 딱 우리가 죽기 직전까지만 고생을 시킬 테니까.'
페일은 무엇을 직감하고 있는지 이미 조용히 활시위만 정비하고 있었다.
위드는 모험의 선배로서 간단히 말했다.
"뭐, 추운 것보단 낫습니다."
"……."
이것저것 다 겪어 봤지만 추운 쪽이 더 힘들다는 결론!
더위로 인해 체력이 급속도로 저하되는 페널티는 있지만 사막에서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인내력과 맷집이 저절로 상승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온통 모레뿐인 것을 확인하고 물었다.
"그러면 사냥터는 어디입니까? 몬스터가 지나가는 걸 잡는 건가요?"
"사막에서는 별자리와 특이한 지형, 예를 들면 오아시스 같은 걸로 위치를 구분하죠. 아마 저쪽이 던전일 겁니다. 멀지 않아요."
위드는 강렬한 태양이 떠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다만 방향이 정확하진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많이 바뀌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언제 마지막으로 와 보셨는데요?"
"날짜상으로는 며칠 안 되는데, 베르사 대륙력으로는 한 500년에서 700년 사이 정도……."
"지형이 완전히 바뀔 시간 아닙니까?"
"부자는 망해도 3년 간다는 말이 있죠. 던전밭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니까 넉넉할 겁니다."
★★★★★★★★★★★★★★★★★★★★★★★★★★
"신속한 걸음걸이, 모래를 달리는 사자 소환!"
알베론의 신성 마법으로 인해서 5분 정도 만에 사냥터에 도착했다.
사막의 모래가 쌓인 작은 산이 겹겹이 있고 동굴들은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사막에는 생명체가 귀하기 때문에 사냥감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강한 녀석들이 많이 몰려 사는 좋은 사냥터입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환경을 극복해야 하니까요. 여기로 들어가면 됩니다."
파이톤과 남자, 페일, 알베론은 위드의 인도에 따라 별생각 없이 모래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쿠르르르릉!
던전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입구의 흙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띠링!
『 뜨거운 땅속 던전의 발견자가 되셨습니다.
이곳은 매우 오래된 던전입니다. 사람들의 기억과 책에도 이 던전에 대하여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발자국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인 이곳에 오랜만의 방문자. 혹은 먹잇감이 나타났습니다.
혜택 : 명성 698 증가.
일주일간 경험치, 아이템 드롭률 2배.
첫 번째 사냥에서 해당 몬스터에게 나올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물건 아이템이 떨어집니다. 』
"함정이다!"
파이톤이 놀라서 대검을 뽑아 드는데, 위드는 태연하게 말했다.
"원래 여기 사막 던전들이 좀 그렇습니다. 들어오기는 쉬운데 입구가 막혀서 다시 돌아 나갈 수는 없게 되어 있죠. 길은 복잡하지 않아서, 일직선으로 쭉 가면서 몬스터를 다 해치우면 됩니다."
페일이 차분하게 질문을 했다.
"몬스터들은 얼마나 나오죠?"
"음, 숫자는 그냥 해치우는 만큼 다시 쌓인다고 보면 맞을 겁니다."
사막의 대제왕 시절, 위드는 이곳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이미 발견했던 던전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면서 입구 형태에서부터 내부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몬스터들도 물갈이가 이루어지며 경험치 2배의 혜택은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뚫려 있는 길뿐만 아니라 벽 사이에서도 거대 독전갈이 갑자기 뚫고 나타났기 때문에 좋게 말하면 지루할 틈이 없는 상당히 괜찮은 사냥터였다.
사막의 대제왕이었을 때는 레벨 500대에 방문을 해서 큰 효과를 누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레벨 400대 초반에 다른 동료들까지 있으니 짭짤한 사냥터가 되리라.
조각 생명체들은 보살피고 지켜봐야 히지만, 인간 동료들이야 자기 목숨은 알아서 챙길 테니 훨씬 편했다.
위드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여기서의 전투 방법은, 생존하면서 쭉 뚫고 나가면 됩니다. 동료이기는 하지만 방심해서 위험에 빠져도 도와주지는 않습니다. 최소한 그런 정도의 실력은 갖추었으리라고 믿으니까요."
"도중에 뒤처지거나 죽는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
"저는 새로운 동료를 또 데리고 와야 되겠죠."
"그 자세 마음에 드는군!"
"먼저 가겠습니다. 알아서 따라오세요."
그리고 시작된 전투!
위드에게는 사막 대제로 활동할 때의 익숙한 형태의 몬스터들과의 조우였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거대 독전갈은 갑옷을 두르고 있는 것처럼 시커멓고 딱딱한 껍질을 가지고 있었다.
두 집게발을 빠르게 번갈아 움직이면서 공격을 하고, 잠깐 방심을 유도해 놓고는 꼬리의 독침을 쏘았다.
독침이 제대로 적중당하면 치료가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생명력이 2만~3만씩 그대로 감소한다.
단단한 몸과 빠른 공격 속도로 인하여 위험하고 까다로운 몬스터.
반면 놈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껍질들의 연결 부위나 배를 공략하면 의외로 쉽게 목숨을 잃었다.
"광휘의 검술!"
위드는 검에서 빛을 길게 뽑아내서 싸웠다.
'정확하게. 실수는 없어야 돼. 레벨에서 많이 뒤처진 이상 더 이상 나한테는 죽을 여유도 없어.'
강력한 공격력과 집중력은 거대 독전갈을 해치우며 돌파했다.
조각 파괴술로 모든 예술 스텟은 이미 체력에 몰아 놓은 상태였다.
전투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힘이나 민첩으로는 일부러 바꾸지 않았다.
급격히 높아진 체력 덕에 생명력이 20배 가까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싸우더라도 지치지를 않았다.
- 연속 8회 공격이 성공하셨습니다.
거대 독전갈을 완전하게 파괴하였습니다.
놀라운 무용담을 기록합니다.
명성이 1 증가합니다.
거대 독전갈 7마리를 최단시간에 처리하여 민첩이 1 높아집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 법!
"룰루루."
위드의 전투는 흥겹게 느껴질 정도로 빠르고 정확했다.
한번 지나가 본 길이라면 다시 갈 때는 훨씬 쉬워지는 것과 같았다.
전반적인 전투력은 사막의 대제와 비교할 수가 없지만, 싸워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선두에서 능숙하게 약점을 공략해서 단숨에 제압했다.
알베론과 페일은 위드의 등 바로 뒤에서 가까이 따라붙었다.
"신성의 휘가름, 독성 차단."
알베론은 거대 독전갈을 향하여 신성 마법 공격을 사용하거나, 동료들을 위한 보호 마법을 시전해 주었다.
프레야 교단의 교황 후보 알베론은 성자 아헬른에 비해서는 조악한 수준이지만 일반 유저들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신앙심을 가졌다.
알베론의 신성 마법은 빠르게 연속으로 사용되고, 그 순수함 때문에 몇 배씩의 효과를 발휘했다.
게다가 농땡이를 치지 않는 성실함은 기본이었다.
"꿰뚫는 얼음 화살!"
페일은 거대 독전갈의 입을 향해서 관통의 효과가 있는 화살을 쐈다.
투두두두퉁!
5마리의 거대 독전갈을 연속으로 관통하며 몸을 얼렸다.
"위드 님!"
"알고 있습니다."
위드는 몸이 얼어붙은 거대 독전갈이 다시 녹기 전에 검으로 후려쳤다.
레드 드래곤이 만든 검, 레드 스타 대신에 지금은 무난하다고 할 수 있는 데몬 소드를 착용하고 있었다.
레드 스타의 경우에는 도난당한 물품인 만큼 사냥에서는 활용을 최소화해야 하는 약점이 있었다.
콰장창!
- 치명적인 일격이 성공했습니다.
빙결 상태의 몬스터를 넘치는 힘으로 공격했습니다.
12배의 공격력이 발휘됩니다.
몬스터를 제거했습니다.
전투 명성을 1 획득합니다.
마법으로 제작된 얼음 화살은 가격이 제법 비싼 편이지만 얼음 속성의 효과를 확실하게 늘려 주었다.
위드와 페일, 알베론은 수없이 손발을 맞춰 본 것처럼 거대 독전갈들이 속출하는 동굴을 빠르게 뚫고 통과했다.
땅을 파고, 벽을 허물고, 천장에서 뚝 떨어지는 전갈들은 그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격퇴되었다.
반 호크와 토리도도 소환되어서 각기 한 방향씩을 맡으며 제 몫을 다했다.
"흠, 마음에 드는군. 알아서 맞춰 주면 되는 건가!"
파이톤은 뒤늦게 대검을 뽑아 들고 따라나섰다.
거대 독전갈이 덤벼들면 정교한 기교를 부리기보단 후려치거나 베어서 처치했다.
괴력의 전사라는 별명에 맞게 어마어마한 힘으로 거대 독전갈들을 일격에 박살 냈다.
대검은 그 특성 타에 보통의 힘으로는 다룰 수가 없다.
그러나 갑옷이나 껍질이 단단하더라도 내부로 공격력이 그대로 누적되는 장점이 있었다.
"제대로 치기만 하면 생각보단 몬스터의 생명력이 낮은 것 같은데. 뭐, 내가 잘 싸운 탓인가?"
"국물도 마시지 않고 라면을 먹었다고 할 수는 없겠죠. 이제부터 시작일 겁니다."
파이톤은 뚫고 지나온 지역에 거대 독전갈들이 다시 바글바글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벽과 천장, 바닥 할 것 없이 튀어나온 전갈들이 뭉쳐서 몰려다닌다.
'정말 되돌아갈 수는 없는 던전이로군. 갇히기라도 한다면 최악이겠어.'
파이톤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전갈이 공격을 하러 달려오거나 뛰어오르면 확실하게 베어 버려야 했다.
제대로 쳐 내지 않으면 거대 독전갈을 밟으면서 전투를 치러야 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남자는 그림자 속에 녹아들었다.
그는 한 단계 등급이 더 높은, 큰 집게발을 가진 붉은 전갈의 뒤에 나타나서 단검으로 정확하게 급소를 찔렀다.
전형적인 암살자의 공격 패턴이었지만, 사냥 동료들 중 누구도 놀라진 않았다.
암살자는 자신의 직업 자체도 가능한 숨기려고 애쓴다.
하지만 던전에 들어와서도 평상복을 그대로 입고 있다면 마법사나 사제일 리는 없고, 도둑이나 암살자 계열이 확실했다.
위드의 이동속도는 처음 온 사람들을 전혀 배려해 주지 않는 정도였다.
"느립니다. 벌써 두 번째나 하품이 나올 정도니까 더 빨리 가겠습니다."
'그런…….'
'지금 이게 느리다고?'
빨리 걷는 수준에서 거의 앞으로 내달리는 정도로 던전을 돌파했다.
한가로운 잡담은커녕 여유 있는 휴식이나 정찰도 없었다.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한복판이 보이면 그대로 달려가서 흩어 놓고, 해치우자마자 다음 장소로 움직인다.
파이톤과 남자는 자신의 체력과 마나를 관리하면서 뒤를 따라가야 했다.
광역 스킬을 써서 마나가 소진되고 거대 독전갈이 무리를 지어서 돌진해 오면 어쩔 수 없이 상대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위드의 전진도 느려지고, 페일의 화살이 지원을 위해 날아들었다.
몬스터들이 넘쳐 나니 꾸물거릴 시간 따위는 없었다.
싸우는 만큼 전리품과 경험치를 획득 가능.
막대한 성과를 내며 흥겨울 정도의 파티 사냥도 일품이었지만, 알베론의 신성력에 의한 보조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손발을 맞출수록 사냥 속도는 향상된다.
곧 처음에 비한다면 일취월장이라고 할 만큼 서로 협력을 하며 빠르게 던전을 통과하고 있었다.
'기가 막히는군. 동료는 원래 믿지 않았던 나이지만……. 보통 몬스터가 많은 위험한 장소에서는 몸이 굳어 버린다. 안전한 사냥터들만 다니다 보면 투지가 낮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지.'
파이톤은 다른 사냥 파티에 속해서 그런 경우를 많이 겪어 봤다.
강한 몬스터들의 돌발적인 등장으로 인해서 투지에 밀린다면 제 실력도 미처 발휘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런데 이 자리에는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투지 스텟에 문제가 생기는 사람이 1명도 없었다.
완전히 위험한 던전을 통과하고 있음에도 자기 몫을 알아서 다 해냈다.
'이런 속도라면 정말로 빨리 강해질 수 있겠어. 로열 로드의 초창기부터 이렇게 좋은 동료가 있었다면 레벨이 현재보다 40은 더 높아졌을 텐데. 아니 같이 성장을 해 왔다면 돌파 불가능한 던전이 없었을 거야.'
위드의 기가 막힌다는 사냥 속도가 이제 막 이해가 가려고 했다.
위험한 동네에 와서도 전혀 쫄지 않고 앞으로 내달리면서 싹 쓸어버리는 사냥법!
파이톤은 전투 중에 잠깐씩 없는 여유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곁눈질로 앞서 가는 위드를 살폈다.
그는 선두에서 검을 닥치는 대로 휘두르고 찌르면서 거대 독전갈들을 돌파하고 있다.
동굴의 깊은 곳으로 가면서 나타나는 전투형 거대 독전갈은 연속 공격으로도 죽지 않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면 세 번, 네 번의 치명타를 노리는 연속 공격으로 바로 전환되면서 전투형 거대 독전갈을 물리친다.
그렇게 선두에서 위험하게 적과 싸우면서도 동료들의 모든 움직임을 파악한다.
파티를 이끌면서 혼자일 때에 비해서 사냥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그 모습은, 그저 믿고 따라가기만 하면 되겠다는 신뢰를 부여하게 만들었다.
'나보다 특별히 더 강한 것 같지는 않은데, 스텟들은 훌륭하게 잘 키워 놓은 것 같아. 스킬이 상황에 맞춰서 빠짐없이 다양하게 활용되는군.'
파이톤은 베르사 대륙에서 전사 마스터 퀘스트를 후반부까지 수행하고 있는 유저답게 자신과 상대를 비교해 보았다.
조각사라고 하는데 힘과 체력이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하다.
제법 이름이 알려진 검술의 비기인 분검술과 광휘의 검술을 사용했지만, 위드의 모험을 통해서 전매특허와 같이 유명해진 헤라임 검술도 알맞은 상황이 나오면 쉬지 않고 쓴다.
'사막의 대제왕처럼 전율적인 강함은 아니야. 가진 능력을 제댈 발휘하고 있고, 또 순간적인 임기응변이나 결정이 빠르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해서 싸우면 내가 질까?'
파이톤은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었다.
판단이 헛갈리는 이유로는 알베론의 신성 마법 효과의 적용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자신이 해치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몬스터를 해치우는 장면을 보면 자신 역시 그 정도는 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위드의 밑천이 이게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다.
'레벨이 높다고 거들먹거리는 다른 유저들보다는 훨씬 강하다. 내 레벨이 465인데, 아마도 나보다는 레벨이 조금 높겠지. 조각사로서 약한 부분이 스텟들로 어느 정도는 보정되었을 테니 말이야. 그래도 지금 드러내고 있는 스킬들이 전부는 아닐 테니……. 음, 그렇다고 해도 내 전투 능력은 레벨이 전부는 아니야. 싸워 보고는 싶은데 더 지켜보고 싶기도 하군.'
남자 역시 틈만 나면 위드를 살폈다.
베르사 대륙의 상위 랭커들에게 바드레이와 위드는 반드시 넘어서고 싶은 경쟁자.
가까이에서 위드의 전투를 지켜볼 수 있는 기회는 당연히 활용해 주어야 했다.
'기습을 하면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손이 근질근질해. 하지만 이게 정말 전쟁의 신 위드의 모든 능력일까? 동영상에서 봤던 그 카리스마를 온몸에 두르고 전투를 하던 모습들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두 사람의 생각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다 먹고살 만하니까 잡생각도 떠오르는 게 아니겠는가.
위드는 현재 최대의 전투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긴 시간 동안 제대로 사냥을 못 했다.
스킬들을 향상시키지 못했으며, 레벨도 많이 떨어졌다.
사막의 대제 시절의 활약은 압도적이었지만 현실로 돌아오고 난 이후로는 나약함이 느껴져서 씁쓸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사냥 속도를 더 높입니다. 위험이 커지겠지만 생명력 관리는 알아서 해 주세요. 몬스터를 한꺼번에 더 많이 상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휴식 시간은 언제요?"
"던전을 클리어하고 다음 사냥터로 이동하는 동안 쉬면 됩니다."
"식사는?"
"이동하면서 간단히 곡물 빵을 먹습니다."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남자가 나타나서 물었다.
"이동 시간이 긴가 보죠?"
"3분 정도요."
"……."
그리고 2시간이 지나 던전의 중반부쯤에 도달했을 때, 위드가 말했다.
"참, 미처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별로 중요하진 않은 이야기입니다. 참고만 하세요. 여기 보스 몬스터가 레벨 500 근처인데요, 어쩌면 조금 넘을지도 모르겠고."
"몬스터의 능력이 보통이 아닌데 피해야 하지 않을까요?"
남자가 질문을 던졌다.
레벨 500대의 몬스터라면 보통은 길드 차원에서 대비를 하고 사냥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편식은 안 좋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당연히 잡을 겁니다. 메인 요리를 빠뜨리고 갈 수는 없지요. 특히 이놈의 껍질은 쓸모가 대단히 많습니다."
"그래도 누구 하나라도 실수하면 전체의 목숨이 위험할 텐데요. 어떻게 전투를 대비해야 하죠?"
"실수는 안 하면 됩니다. 각자 어린애가 아니니 목숨은 알아서 챙겨야죠."
페일은 이미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있었다.
위드와의 사냥에서는 늘 그렇지만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게 된다.
파이톤과 남자도 처음 경험하는 엄청난 속도의 사냥에 힘은 들어도 그만큼의 성취감을 느꼈다.
조금 무리한 목표를 노력하며 달성해 나가는 기쁨이라고 해야 할까.
'전쟁의 신 위드. 으음, 소문대로 정말 놀랍고 대단해. 그리고 그 위드와 함께 사냥을 하니 효율은 끝내주는군. 내가 있음으로 인해서 위드도 아마 덕을 보고 있는 것이겠지.'
'훗, 죽음을 몰고 오는 그림자라고 불리는 나 역시 엄청난 몬스터를 해치웠다. 강한 녀석들을 소수 정예로 해치우는 암살자에 딱 맞는 사냥법은 아니지만……. 아무튼 나도 위드와 함께 활약을 할 정도의 수준은 된다는 의미겠지.'
하지만 곧 좌절하게 만드는 위드의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함께하는 사람들과 왔다고 역시 너무 쉬운 곳을 택한 건가."
"……."
"뭐, 다음 던전은 여기보다는 몬스터가 2배쯤은 더 나오고, 공격 특성이 까다로우며 생명력도 더 높습니다. 지루해도 조금만 참아 주세요 그때부터가 적응하기에 좀 재밌어질 겁니다."
"대체 다음 사냥터는 어느 정도의 난이도이기에 그러는 겁니까."
"여기가 보통 김치볶음밥이라면 그곳은 한정식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사막의 대제왕 위드!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본인과 부하들을 성장시킨 사냥 능력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파이톤과 남자는 사막 전사들이 왜 그렇게 강해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훗, 그렇더라도 허풍이 심하군. 다소 더 까다로워진다고 해도 그럭저럭 할 만한 수준이겠지.'
'미리 떠들면서 잘난 척하기를 좋아하는 부류인가. 진짜 그 말이 맞는지는 겪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군.'
그리고 페일의 생각.
'며칠간 죽었다고 생각하자. 정신을 잃어버렸다가 사냥이 다 끝난 후에 깨어나면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