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40권 : 4) 하벤 제국의 황제 (270/520)

4) 하벤 제국의 황제

"고전적이고 따분하군."

계곡 위의 바드레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언데드 중에 허약한 놈들이 끼지 않았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어비스 나이트와 둠 나이트 부대라는 말에 하벤 제국이 지나치게 준비를 많이 한 걸까.

10만의 언데드 대군은 신성 주문과 은화살 속에서 허무하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절벽을 오르려는 생각도 멍청하기 짝이 없다.

바위와 화살, 마법에 의해서 절반도 오르지 못하고 다시 굴러떨어진다.

하벤 제국의 황궁 기사단이 지키고 있으니 평소에도 적수가 되지 않을 하급 언데드들이 억지로 절벽을 올라서 도착해봐야 단칼에 쓰러졌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걱정했던 건 어비스 나이트가 둠 나이트 부대와 함께 놀라운 속도로 움직이며 포위망을 뚫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디에서나 쉽게 언데드 군단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그 자리에서 완전히 남김없이 해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런 언데드 군단이라면 하벤 제국이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다른 길드나 왕국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약했다.

"수준이 너무 떨어져. 이런 식의 전투를 원했던 건 아니었는데."

언데드 군단이 어느 정도 강해 주어야 자신이 원하던 장면이 나왔으리라.

하벤 제국군의 불리함을 자신의 무력만으로 극복해 낸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그 정도까지의 위험부담은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적당히 힘을 과시하고 있을 때에 자신이 끝맺음을 내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였다.

바드레이가 보고 있는 와중에도 언데드들은 허무하게 쓰러져 갔다.

공중을 날아다닐 수 있는 유령들은 절벽을 솟구치며 미친듯한 귀곡성을 냈지만 신성 마법이 겁나서 감히 다가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사제들의 마나도 무한대는 아니었고, 준비한 은화살도 금발 절반 이상이 소모되었다.

"황궁 기사단은 출격하라!"

"언데드들을 모두 흙으로 돌려보낸다."

"우오오오오!"

계획대로 황궁 기사단이 말을 타고 절벽을 달려서 내려갔다.

칼날을 세워 놓은 것처럼 가파른 절벽을 말을 타고 달리는 신기의 기마술!

하벤 제국의 황궁 기사단은 뛰어난 명마와 특별한 기마술을 가지고 있었다.

기사단은 절벽을 내려가면서 언데드들을 마법검으로 베어서 불태웠다.

"나 칼루드가 몽땅 해치워야지."

"언데드들 따위는 감히 헤르메스 길드에 덤비지 못한다는 걸 알려 주마!"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도 공을 세우기 위하여 다급하게 절벽을 달려 내려갔다.

막대한 이권과 특혜를 누리지만 상부의 명령을 거절해서는 안 되는 헤르메스 길드의 특성상 고레벨 유저들이 대거 동원되었다.

바드레이가 출정한 만큼 전투 공적을 세우고 고위층에 눈도장을 찍으려고 자진해서 온 유저들까지 합해서, 일찍이 모이기 힘든 최대의 전력.

어비스 나이트를 상대로 하는 만큼 중앙 대륙 정복 전쟁을 벌일 때 이후로 헤르메스 길드는 전력을 기울였다.

"오너라, 나쁜 헤르메스 길드 놈들!"

"되살아나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죽여 주마!"

계곡 아래에서 당하고 있던 언데드 유저들과 절벽을 내려온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이 맞붙었다.

"발로 걷어차기만 해도 쓰러져서 죽을 푹 삭은 스켈레톤 따위가……! 이것이 고급 검술 스킬에서 최고라고 평가받는 무차별 난검이다!"

"맹렬한 힘의 발산, 도끼 휘두르며 돌격!"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뛰어난 스킬에 언데드가 도처에서 추풍낙엽처럼 휩쓸려 갔다.

"으구, 이럴 수가……."

꿈과 희망을 안고 일어난 스켈레톤들은 허무하게 쓰러져서 소멸되었다.

운이 좋은 일부는 곧 다시 일어났지만, 신성력이 담긴 검에 의해 죽은 언데드는 새로운 시체를 구하지 못한다면 부활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일반 스켈레톤들 따위는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과의 격차가 너무나도 크게 나서 전투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암흑의 오라로 강화된 듀라한, 데스 나이트, 영혼 추적자 들은 그나마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공격에도 몇 번씩 버티다가 소멸되었다.

그때 계곡을 울리는 낮고 음산한 목소리.

"강철의 심장을 타고난 칼라모르 제국의 기사들이여! 제국의 영광이 실린 무거운 창을 들어서 적을 꿰뚫으라!"

"인…간…들…이… 이…곳…을… 무…덤…으…로… 선…택…하…였…구…나……. 하…지…만… 복…수…의…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이…상…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못…하…리…라……."

"살…아…있…는… 하…벤…의… 인…간…들… 머…리…통…을… 씹…어…먹…어…주…마……!"

선두에 진군하고 있던 어비스 나이트 반 호크와 둠 나이트 부대가 돌아온 것이다.

그 즉시 전장에 변화가 찾아왔다.

반 호크는 질풍처럼 달리면서 암흑 투기를 발산했다.

왼손에는 창, 오른손에는 검을 들고 있지만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를 향하여 무기를 휘두르지도 않는다.

"심연의 확산."

시커먼 암흑 투기는 백여 갈래로 갈라져서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을 직격했다.

콰과과광!

"이 정도쯤이야!"

"커억!"

암흑 투기에 얻어맞은 유저들은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정면 전체의 초토화!

방패를 들어서 정확히 막은 이들도 방어구가 부서지고 생명력이 십분의 일도 남지 않을 정도의 중상을 입어서 전투 불능에 빠졌다.

스켈레톤이 덤벼들더라도 저항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저렇게 강할 수가……."

"저게 진짜 전설적인 몬스터인 어비스 나이트의 모습이다!"

멀리 떨어져 있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동료들의 떼죽음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비스 나이트. 제법 강하다고 인정을 해 주지. 하지만 그런 얕은 수작 따위, 나 티르빙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헤르메스 길드 내에서도 꽤 이름을 날리는 티르빙!

특이하게도 워리어 출신의 기사인 그는 전쟁이 벌어지면 항상 선두에 섰다.

『 불완전한 파황의 육체

모든 물리적인 피해를 20% 이하로 감소시키며, 많은 적을 상대하거나 심한 부상을 입을수록

스킬 레벨에 따라 최대 9배까지 방어력이 증가한다.

맷집 자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다른 방어 스킬과 중복 사용 가능.

단, 목숨을 잃었을 경우 레벨과 스킬 숙련도에 심한 손실을 입게 됨.

제한 : 워리어 한정.

       맷집 600 이상.

       이백여섯 곳 이상의 던전 돌파 경험. 』

워리어 비기를 몸에 터득한 그는 보통 웬만한 전투에서는 죽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 지독하다고 해도 좋을 전장에서도 거뜬하게 살아남는다.

수백 발의 화살을 몸에 맞으며, 적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것이 그의 전투 방식이었다.

"어비스 나이트, 너의 최후다앗!"

티르빙은 큰 소리로 외치며 어비스 나이트 반 호크에게 달려갔다.

암흑 투기를 막 발산하여 잠깐 동안 말을 멈춰 선 반 호크.

그는 자신을 향하여 달려오는 티르빙을 향해서 긴 창을 휘둘렀다.

반 호크는 약 50미터 가까이를 자신의 힘이 미치는 공간으로 두고 있었다.

그 안에서는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밀려들 게 된다.

절망과 심연의 기운을 담고 있는 창이 기울어져 가는 그림자처럼 길게 늘어나서 티르빙의 가슴을 쳤다.

"커헉! 아프지만 괜찮다. 버틸 수 있어!"

티르빙의 레벨이 400을 조금 넘는다고는 해도, 600대 중반인 반 호크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위드가 베르사 대륙에서 어렵게나마 상대한 보스급 몬스터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전투력에서 지금의 반 호크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른바 견적 불가 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한 파황의 육체 덕분에 티르빙은 살아 있었다.

"이 더러운 어비스 나이트 같으니! 내가 꿈적도 하지 않으니 당연히 놀랐겠지!"

티르빙의 생명력은 일격에 16%가 감소했다.

게다가 꽤나 아파서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 호크 또한 전력을 다한 일격은 아니었는지, 창을 회수하지 않고 티르빙을 가볍게 올려쳤다.

"어어?"

거짓말처럼 공중으로 띄워지는 티르빙의 몸.

반 호크에게서 시작된 어둠의 힘이 그를 꽁꽁 묶었다.

 - 심연의 속박에 걸렸습니다.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신앙심과 정신력이 부족합니다.

   힘이 부족합니다.

   16초 동안 움직일 수 없습니다.

"어? 이게 아닌데……."

그때부터 반 호크의 창이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퍼버버버벅! 콰과과곽! 퍽! 찍! 쿠우웅!

어떤 적 앞에서도 당당하던 티르빙은 먼지 나도록 맞고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깔끔하게 사망!

심각할 정도의 레벨 차이에 방어가 불가능한 스킬로 인해서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개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충격적인 광경.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어비스 나이트의 가공한 무력을 보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헤르메스 길드의 간판을 등에 업고 당당하던 고레벨 유저들이 언제 이런 상황을 당해 보았겠는가.

"칼라모르의 원혼들이여, 이제 원한을 되갚아 줄 시간이다. 죽은 자들의 행진!"

반 호크는 집단 돌격 스킬을 사용했다.

그를 호위하며 따르는 둠 나이트 부대와 함께 헤르메스 길드원을 향해서 돌격했다.

"벼텨라! 사제들의 신성 마법 지원이 곧……."

서걱!

"놈들의 돌격이 더 활성화되기 전에 그 자리에서 막아야 한닷!"

콰지지지직!

"이건 도저히 버틸 수가……."

콰과광!

반 호크와 둠 나이트 부대의 돌격 앞에서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레벨이 600을 훨씬 넘어가는 어비스 나이트!

그리고 해골에서 심연의 기운을 줄기줄기 뿜어내면서 일사불란하게 집중해서 달리는, 칼라모르 제국 출신의 기사들로 이루어진 둠 나이트 부대!

베르사 대륙의 역사에서도 최강으로 꼽을 만한 기사단이 돌격하며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을 창으로 찌르고 밟아서 죽이고 있었다.

몬스터들의 경우에는 레벨이 높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종족이 특성이나 육체의 약점이 반드시 한두 군데는 있기 때문에 공격이 효과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어비스 나이트는 전투를 위해서 심연에서 되돌아온 존재였다.

 - 깊은 절망과 분노, 심연에 잠들어 있던 자들이 돌격해 오고 있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인간들의 사기가 24% 저하됩니다.

   행운이 66%까지 감소합니다.

   정신적인 혼란이 발생하여 스킬이나 마법 사용 시 성공 확률이 절반 이하로 감소합니다.

   생명력의 회복 속도가 느려집니다.

"으아아아아!"

헤르메스 길드의 유명한 기사 유저들이 목숨을 잃을 때마다 전체적인 사기가 저하되었다.

기사들의 특성상 동료나 부하의 능력을 훨씬 높게 이끌어 주기도 하지만, 역으로 본인이 목숨을 잃게 되면 나머지도 허무할 정도로 약해진다.

반 호크와 둠 나이트 부대는 계곡으로 내려온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을 쓸어버렸다.

"어, 어마어마하다. 진짜 이런 돌격은 처음이야.."

"정면에서는 안 돼. 사제들이 지원을 해 줄 때까지는 싸우지 말고 피해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들을 막앗! 여기서 물러나면 피해는 더 커진단 말이야!"

지금까지 언데드들을 가볍게 학살하던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기를 쓰고 버텨 봤지만 돌격 속도를 늦추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선두에서 일격에 유저들을 베어 목숨을 잃게 만드는 반 호크!

둠 나이트로 되살아나서 절정에 달한 검술과 기마술을 발휘하는 옛 칼라모르 제국의 기사들.

사실 반 호크는 어비스 나이트로서 힘의 정점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개인 능력 부분에 있어서 더 많은 전투 경험을 얻으면 성장할 여지는 충분히 있었고, 어비스 나이트로서 새로 얻은 스킬들도 원숙한 경지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휘하 세력의 측면에서도 둠 나이트 부대와 언데드 군단을 충분히 강화하진 못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상대하는 유저들에게는 밀려오는 죽음의 신 같은 존재였다.

둠 나이트 부대의 돌격에서는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속도와 폭발적인 파괴력이 발휘되었다.

"계획대로 놈들이 나타났다. 뭐, 예상했던 만큼 돌격 능력이 심각하긴 하군요."

"2차 공격을 실시하지요."

헤르메스 길드의 고위층은 중앙 대륙 정복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전투를 치러 보았다.

길드 차원의 던전 돌파 경험 역시 당연히 많다.

성공과 실패를 통해서 쌓인 정보들은 길드 내에 기록으로 남겨져 있었다.

그러면서 몬스터를 상대로 하면서도 전술을 준비하고 활용할 줄 알았다.

어비스 나이트와 둠 나이트 부대는 정면 대결로는 틀림없이 부담스러운 존재다.

좁은 던전 내였다면 절대 싸움을 걸지 않았을 상대.

반드시 싸워야만 한다면 먼저 표적을 드러나게 하고 집중 공격을 펼치는 편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공격을 실시하라!"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

계곡의 지형 탓에 뿔피리 소리가 끊기지 않고 메아리쳤다.

이때부터 계곡 위에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모든 원거리 공격 목표는 반 호크와 둠 나이트가 되었다.

10만에 달하는 언데드들 따위야 은화살과 신성 마법의 위력 앞에 소멸되면 살아나기도 힘들고, 되살아나더라도 다시 처리하면 될 뿐이다.

언데드 군단을 완벽하게 제압하기 위해서는 반 호크부터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센 소나기가 촘촘하게 내리는 것처럼 반 호크와 둠 나이트 부대를 향하여 공격들이 퍼부어졌다.

"저걸로도 모자랄 수 있습니다. 사제님들도 준비를 해 주시지요."

"알겠습니다."

각 교단으로부터 지원받은 고위 사제들이 신성 마법을 외웠다.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정당하고 강력한 권한으로 이곳을 모든 악으로부터 해방하게 될지니… 어둠에 물든 자들이여, 스스로를 속박하고 있는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썩 물러가거라!"

 - 군신 아트록의 교단에서 이 땅을 성역으로 선포합니다.

   어둠과 싸우는 자들의 모든 공격이 신성력의 효과를 갖게 됩니다.

   전투 스킬의 효과가 32% 강화됩니다.

   생명력의 최대치가 신앙심에 따라 150%까지 증가합니다.

   신성 마법의 효과가 높아지며, 필요량의 절반에 달하는 마나로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모든 언데드들에게 생명력의 20%에서 최대 65%에 달하는 타격을 입힙니다!

성역 선포!

어둠을 물리치고 일그러진 것들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영역 마법이었다.

"좋군."

"깔끔하고 완벽한 준비요."

"어비스 나이트를 해치울 맛이 나겠군."

헤르메스 길드의 고레벨 유저들은 곧 있을 사냥의 순간을 기다리며 대기했다.

어비스 나이트의 최후는 미리 약속된 대로 반드시 바드레이에게 양보해야 했다.

하지만 방송중계도 되는 마당에 활약을 펼치면서 널리 이름을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2차, 3차 공격 부대 진격!"

황궁 기사단과 함께 투입된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언데드를 상대로 하는 치열한 사투가 벌어졌다.

계곡 위에서 실컷 원거리 공격과 신성 마법을 퍼붓기 위해 투입된 전초부대이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몸은 알아서 돌봐야 했다.

바드레이와 친위대, 특별히 어비스 나이트의 마무리를 위해 선발된 고레벨 유저들은 묵묵히 기다리고만 있었다.

10분이 흐르고, 일반 언데드의 숫자가 절반 이하로 크게 줄어들었다.

언데드들은 어찌 되었든 계곡 위에서 퍼붓는 신성 마법에 취약했다.

계곡에서 전투를 펼치는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전초부대임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레벨이 300대 후반 이상이었고 400대도 꽤 있었다.

반 호크와 둠 나이트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하여 아비규환이었다.

"뭐가 이렇게 강해?"

"젠장. 저 돌격은 정말 답이 없다."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전설적인 몬스터인 어비스 나이트의 강함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위드의 모험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면서 어비스 나이트에 대해서도 얕잡아 봤던 게 사실이다.

전쟁의 시대에 소환된 반 호크는 툭하면 얻어맞거나 얌전히 명령을 따르는 존재에 불과했다.

위드와 함께 중앙 대륙을 휩쓸었지만 그땐 특수한 퀘스트의 일부라고 생각했고, 어쨌든 심각하지 않은 남의 일이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어비스 나이트가 둠 나이트 부대와 함께 돌격을 하고 있으니 자신들이 어떤 존재와 싸우고 있는 것인지 실감이 났다.

하지만 헤르메스 길드에서 이곳에 모은 유저들만 3만 명!

기사, 무사, 워리어, 사냥꾼, 레인저 할 것 없이 계곡 아래에서 어비스 나이트를 상대로 공격을 계속했다.

"그쪽으로 몰아라!"

"무조건 아무 공격이나 해. 너무 빨리 움직이니 어설픈 포위망을 만들려 들기보단 조금이라도 생명력을 낮춰라!"

10만의 언데드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이 거의 소멸해 버렸다.

언데드 유저들은 실컷 활약을 하며 즐거워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큰 무대.

신성 마법에 의해서 녹아내리고, 대부분은 부활조차 금지되었다.

병력이 줄어서 훨씬 넓게 느껴지는 계곡에서는 헤르메스 길드와 어비스 나이트, 둠 나이트 부대만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계곡의 양쪽 출구는 사제단과 성기사들에 의해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수십 겹의 장애물과 병력으로 철저히 틀어막혔다.

언데드는 하루 종일 싸우더라도 체력이 줄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어둠에서 비롯된 에너지를 잃어버리면 특수한 스킬들은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중장갑 보명 앞으로!"

"방패 돌격 진형대로."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비슷한 직업들끼리 모여서 소규모 진형까지도 운용할 줄 알았다.

그들에 의해 적진을 유린하던 둠 나이트들도 하나 둘 목숨을 잃었다.

"칼…라…모…르…의… 영…광…이… 되…돌…아…오…지… 않…는… 것…인…가……."

"반…호…크… 어…째…서… 우…리…를… 제…대…로… 이…끌…지… 못…하…였…는…가……."

돌격 진형에서 빠져나온 둠 나이트들은 집중 공격 속에서 잿빛으로 변했다.

어비스 나이트가 무사하다면, 그리고 다시 충분한 어둠의 힘을 모은다면 완벽하게 되살릴 수 있다.

하지만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사제들을 불러서 그 자리를 정화함으로써 되살리는 시간까지도 지연시켰다.

어비스 나이트의 권속을 부르는 권능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만 최소한 몇 시간만이라도 부하들을 되살리지 못한다면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충분했다.

반 호크는 날파리 떼처럼 계속 덤벼드는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을 상대로 고군분투를 펼쳤다.

그가 창을 휘두르면 10미터가 넘는 어둠의 기운이 방출되었다.

"오너라. 하벤 왕국의 잡졸들아! 칼라모르의 기사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려 주마!"

세상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심연의 기운은 가까이 있는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을 거침없이 죽음으로 인도했다.

사제들이 보호막을 펼치고, 각종 신성 마법 무구를 착용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에까지 미치는 피해는 줄일 수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 2만 명가량이 중심에 반 호크를 놔두고 밀집해 있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훨씬 유리한 상황에서 고레벨 유저 1만 명이 사망한 것만 보더라도 어비스 나이트와 둠 나이트 들의 활약이 엄청났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으… 정말 지독한 몬스터다."

"죽으려면 아직도 멀었나?"

어비스 나이트가 이끄는 돌격에 날고뛰는 유저들이 짧은 시간 1,000명씩 짚단처럼 쓰러져 갔으니 그들도 경악했다.

이나마도 신성력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더 많이 죽었을 것이다.

'도대체 위드는 불사의 군단을 어떻게 이긴 거야?'

'바르칸도 저 녀석과 비슷한 수준이었다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약한 건가. 아니면 위드가 우리 만 명보다도 더 대단한건가?'

자신들이 최고인 줄 알았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 사이에서 무겁게 스쳐 가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리치인 바르칸 데모프와 반 호크는 성향상의 차이가 매우 컸다.

시체를 통해 대량의 고위급 언데드 군단을 일으키는 바르칸은 오래 내버려 두면 하벤 제국 전체와도 싸울 수 있는 전력을 갖추게 될 수 있었다.

바르칸의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언데드 소환은 군단끼리의 큰 전쟁에서 빛을 발한다.

위드는 배신은 기본으로 하고 내부로 검치 들을 비롯한 모든 전력을 침투시키고, 바르칸의 생명력을 담아 놓은 라이프 베슬을 파괴했다.

언데드 군단은 강했지만 취약한 속에서부터 무너진 격이었다.

반면에 반 호크의 경우에는 부하인 둠 나이트 부대와 함께 직접적인 전투 능력을 최대로 발휘한다.

아크힘이 적을 상대하기 위한 좋은 장소를 고르기는 했지만 힘에 힘으로 맞부딪쳤으니 짧은 시간에도 그만한 희생을 겪어야 했다.

반 호크의 경천동지할 무력에, 반드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믿고 있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아군이 승리를 거두더라도 당장 어비스 나이트가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유저들은 조금씩 물러섰다

"끝장내라!"

"대륙을 하나의 길로 연결되게 만든 하벤 제국의 기상을 보여 주마!"

얼마 남지 않은 황궁 기사단 최정예들의 돌격도 반 호크는 그 자리에서 창을 휘두르면서 격파했다.

가히 최악의 언데드, 어비스 나이트다운 위용!

"이제 누가 저놈을 공격하지?"

"회복하기 전에 빨리 쳐야 되는 것 아냐?"

"젠장, 그걸 누가 몰라. 그래도 내가 싸우고 싶진 않다고."

헤르메스 길드는 물론이고 베르사 대륙을 통틀어서도 전투 능력으로 100위 안에 꼽히는 유저들 중에 절반 정도는 이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렇지만 누구도 반 호크를 상대로 싸우겠다고 나설 수가 없었다.

바드레이도 당연히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내 차례로군.'

보잘것없는 하급 언데드들이 사라지는 건 관심도 없었다.

어비스 나이트와 둠 나이트 부대의 전투를 구경하면서 결정적인 허점을 찾으려고 노력을 했다.

바드레이는 둠 나이트들이 몰살을 당하고 반 호크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히고 난 이후에 여유롭게 나서려고 했다.

최고의 축복 마법, 그리고 언데드를 위해 맞춘 아이템들을 착용하고 있었으며 여차하면 친위대를 동원할 수 있었기에 혼자 싸울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반 호크가 혼자 남은 상태로도 우습게 100명 이상을 없애는 걸 보면서 참았다.

'조금 더 기다려도 되겠군.'

반 호크를 향해서 계곡에서부터 화살과 마법이 줄기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다른 언데드나 둠 나이트가 없는 이상 사제와 마법사, 궁수들은 마나가 있으면 너 나 할 것 없이 반 호크를 향하여 공격을 했다.

그러나 반 호크는 제대로 피해를 입지 않는 모습이었다.

어둠의 기운에 몸을 숨기면서 유령처럼 움직이기에 맞히기가 매우 까다롭다.

반 호크는 홀로 남아 전투를 하게 된 이후로도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벌써 800명 넘게 사망했다.

'기왕 기다리는 김에 느긋해져도 되겠지. 어쨌든 이 전투는 이겼으니까.'

바드레이는 백마를 탄 채로 팔짱을 끼고 먼 하늘을 보았다.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일 뿐, 아직 세상은 어둡다.

한참 후에 태양이 떠오를 무렵에는 반 호크도 최후를 맞이하게 되리라.

'오늘 같은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이후로는 사냥을 더 많이 해야 되겠군.'

바드레이의 레벨은 510.

어찌 시도를 한다면 어비스 나이트에게 대적은 해 볼 수 있으리라.

그렇지만 만의 하나, 목숨을 잃기라도 한다면 그러한 굴욕도 없다.

레벨과 스킬 숙련도의 피해도 엄청날 테지만 방송을 통해 모든 이들이 그 장면을 보게 될 것이 아닌가.

어비스 나이트는 물론 강한 몬스터이기는 해도, 자신은 중앙 대륙을 통일한 제국의 황제다.

그런 만큼 목숨을 잃어버리는 경험은 대단히 유쾌하지 못한 것이리라.

'이길 수 있는 전투를 굳이 위험을 무릅쓰며 한다는 건 용기가 아니라 어리석은 자의 만용에 불과해. 하벤 제국의 황제가 언데드를 상대하다가 죽는다면 그야말로 우스운 일이지. 조금만 더 참자.'

바드레이는 보다 완벽한 승리를 거머쥐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약간 실망되기도 하고 짜증도 났다.

"……."

"앞으로의 전투는 어떻게 되는 거지? 슬슬 나서셔야 되는거 아니야?"

친위대와 헤르메스 길드의 고레벨 유저들도 바드레이의 눈치를 봤다.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 이어지는 전투!

황궁 기사단 전원이 목숨을 잃었으며,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도 이리저리 돌파하려는 반 호크를 막느라 1,000명 이상이 생명을 버렸다.

반 호크는 신성력으로 최악의 상태까지 약화되었다.

언데드에게 신성력은 생명력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작용하며 힘과 활동력까지도 줄어들게 만들었다.

 - 신성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있습니다.

   다음 밤이 될 때까지 어둠의 힘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반 호크는 더 이상 심연에서부터 비롯된 어둠의 힘을 다루지 못했다.

신체 보호 능력의 약화로, 막대한 공격을 허용한 갑옷은 누더기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거칠게 포훃던 흑색 말도 소환이 해제되어 타고 다니지 못했다.

"지긋지긋하구나. 하지만 하벤의 개들을 처리하는 일이라면 아직도 충분하다."

어비스 나이트 반 호크는 창에 몸을 기대고 섰다.

계곡은 온통 적이었지만 당당하게 깔보고 있었다.

"우으으."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더 이상 누구도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

반 호크의 최후를 노리고 공격을 했지만 지금까지 증명된 사실은 먼저 나사면 죽는다는 것뿐!

대부분의 피해도 원거리 공격이 성공하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반 호크와 근접전을 벌인 유저는 거의 창술 한두 번에 모조리 목숨을 잃었다.

더 이상 마구잡이로 원거리 공격을 퍼붓지 않는 것은 반 호크가 유저들에게 덤벼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생명력도 확연히 10%도 남지 않았으며, 정상적인 몸이 아니라서 무력도 약해졌다.

누가 보더라도 확실히 어비스 나이트의 최후가 가까워졌다.

"……."

차츰 시선들이 바드레이에게로 모였다.

헤르메스 길드의 고레벨 유저나 전투 지휘관들은 어비스 나이트의 마지막은 바드레이가 처리하기로 결정된 것을 알고 있었다.

정작 바드레이는 그냥 이대로 전투를 승리로 끝내더라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았지만, 미리 약속이 되어 있기에 점점 그를 쳐다보는 시선들이 많아졌다.

이윽고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 대부분이 쳐다보면서 나서야만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말았다.

'어쩔 수 없겠지.'

바드레이는 본인의 몸 상태를 점검하고 백마를 탄 채로 계곡을 내려갔다

"우와아아아아!"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떠들썩한 함성 소리.

경사가 심한 절벽을 백마를 타고 가뿐히 내려오는 모습에 적지 않게들 놀랐다.

당연히 바드레이가 일부러 의도한 상황 연출이었다.

"반드시 이기실 겁니다."

"위험하면 저희가 나서겠습니다."

바드레이를 뒤따르는 친위대에서 한마디씩 속삭였다.

그들의 입장에서도 바드레이가 이런 전투에서 무너지면 안 된다.

무신 바드레이.

대륙을 정복하는 전쟁에서 개인의 능력이 큰 역할을 해내기는 어렵지만, 그는 헤르메스 길드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하벤 제국이 단단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황제 바드레이가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된다.

바드레이와 친위대가 나아가자 어비스 나이트를 에워싸고 있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일제히 갈라서서 길을 터 줬다.

"흠."

어비스 나이트와 가까워져 갈수록 긴장감도 고조되었다.

반 호크는 다가오는 바드레이를 향하여 말했다.

"어리석은 자들의 왕이여, 결국 네가 나섰구나."

바드레이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 미소를 지었다.

이 순간은 당연히 방송이 될 테니 사람들의 가슴을 울릴 만한 멋진 멘트를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복수에 눈이 멀어서 행동하는 언데드여, 너도 기사라면 대륙을 지배하는 황제인 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도록 하여라."

"황제라. 무력으로 약한 자를 짓밟으며 넓은 땅을 다스린다고 해서 너에게 자격이 있을 것이라 착각하는가?"

"혼란스러운 대륙의 전쟁을 종식시키면서 이 자리에 오른 것이다. 언데드인 너는 인간의 법도에 대해서도 잊어버린 모양이로구나."

"알고 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너에게는 완전한 자격이 없다."

바드레이는 이를 악물었다.

헤르메스 길드가 하벤 제국을 일으키면서 몇 가지 야비한 짓을 저지른 건 사실이다.

일부러 명분을 만들어서 동맹 길드를 배신하기도 하였으며, 이권을 노리고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행동은, 다른 길드들도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누구나 다 저지를 수 있었다.

반 호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황제의 자격이나 정당성은 바드레이 자신이 문제였다.

흑기사라는 직업으로 타고난 무력과 뛰어난 지휘 능력을 겸비한다.

전투 계열로는 이보다 더 뛰어난 직업을 찾기도 힘들지만, 기사도를 저버리고 주군을 배신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뛰어난 능력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더라도 결국 정당성은 갖추기 힘들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패자의 증표 입수, 특수한 황제 퀘스트들이 있지만 바드레이는 아직 수행하지 않았다.

퀘스트는 시간이 남아돌거나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용도일 뿐, 진정한 무력은 사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탓에 아무리 높은 명성과 강한 군대를 거느리더라도 반 호크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곧잘 있었다.

"너를 없애는 것으로 그 자격을 증명해 보일 것이다.'

"불가능할 것이다."

"싸워 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겠지. 하벤 제국의 황제 바드레이, 어비스 나이트인 그대에게 대결을 청한다."

"명예로운 대결을 청할 자격이 너에게는 없다. 그냥 덤벼라."

바드레이는 백마를 몰아서 반 호크에게 돌진했다.

그리고 벌어지게 된 둘의 전투!

바드레이가 말에 탄 채로 강력하게 내려친 검을 반 호크는 창을 들어서 받아쳤다.

채애애앵!

땅이 울릴 정도로 엄청난 충격파가 일어났다.

그리고 어비스 나이트가 조금 뒤로 밀려났다.

심연에서 비롯된 어둠의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할 만하다. 압도적인 강함은 사라졌어.'

바드레이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그려졌다.

그는 이어서 빠르게 세 번 검을 찔렀다.

그때마다 정확한 반 호크의 창술에 의하여 막히고 말았다.

"목을 바쳐라."

반 호크 역시 반격을 했지만 바드레이는 그 공격을 검을 휘둘러서 튕겨 냈다.

힘과 힘에서는 어느 정도 박빙이었을 뿐만 아니라 공격과 방어가 교환되는 속도 역시 치열하다.

바드레이는 스무 번 정도 검을 휘두르고 나서 뒤로 물러섰다.

"검의 각성, 강인한 의지, 다른 하나의 검 소환, 탄생의 힘!"

애초에 싸움이 안 될 것 같으면 가볍게 상대해 주는 척하다가 뒤로 빠지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비스 나이트를 죽일 수 있다는 욕심이 충분히 일어났다.

어비스 나이트 반 호크는 그만큼 확실하게 약해져 있었다.

"조심해라. 지금부터 내 검은 간단하지 않을 테니."

"간악하고 발칙한 자여, 그 간교한 입으로 어비스 나이트인 나에게 조심하라고 말한 것인가. 곧 해가 뜰 테니 의미 없는 말장난은 하고 싶지 않다."

바드레이도 바라던 바였다.

태양이 비치기 시작하면 반 호크는 사라지게 될 테고, 그 후에 다시 저녁이 되면 멀쩡해져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았으므로.

"황금 사자 검술!"

이어서 벌어진 결투에서는 반 호크의 생명력이 조금씩 감소했다.

레벨은 150 정도 차이가 났지만 반 호크는 이미 심각하게 약화된 상태였다.

바드레이의 태양처럼 찬란한 빛을 발산하는 검을 막아 낼 때마다 반 호크의 몸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가 들고 있는 건 루의 신검!

바르칸 데모프의 몸에 꽂혀 있던 검은 위드에 의해 루의 교단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골디아에서 원래의 신성력이 회복된 이 검을, 헤르메스 길드에서 어비스 나이트를 처리하기 위하여 빌려 온 것이다.

"이 검은… 이 검만큼은!"

"오늘이야말로 안식과 평화를 내려 주도록 하마."

바드레이는 말에 탄 채로 계속 루의 신검을 휘둘렀다.

어비스 나이트의 창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놀랐지만 어둠의 힘이 실려 있지 않은 이상 그 피해는 견뎌 낼 만했다.

무엇보다도 생명력이 많이 떨어지게 되면 루의 신검이 한 번씩 회복의 권능을 내려 준다.

'안정적이다. 준비가 정말 과할 정도로 철저했군.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된다.'

막상 싸워 보니 언데드와 신검이라는 상성 때문에라도 더 해볼 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드레이는 수비에 신경을 쓰면서 빈틈이 보일 때마다 반격으로 역습을 가했다.

어비스 나이트를 정통으로 맞히지 봇하더라도 생명력은 줄여 놓을 수 있어서 굳이 큰 욕심을 부릴 필요도 없었다.

지금까지의 반 호크의 활약을 감안한다면 어떤 순간에도 안심을 해서는 안 되낟.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을 학살하던 광경 때문에, 지켜보는 이들은 더더욱 아슬아슬하다고 생각하며 손에 땀을 쥐었다.

가끔씩 폭발적으로 뻗어 나오는 반 호크의 창술 공격은 누구나 깜짝 놀라게 만든다.

바드레이는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였기에, 일부러 전투를 더욱 긴장감이 넘치도록 연출할 필요도 없었다.

반 호크는 10여 분간의 전투를 치르며 남아 있던 생명력까지도 남김없이 소진하였다.

마지막으로 들고 있는 창까지 떨어뜨리게 하고 난 순간, 바드레이는 승리를 확신했다.

"칼라모르 왕국은 영원히 하벤 제국에 속해서 살아가게 되리라. 심연을 거슬러 온 언데드여, 뒤바뀐 세상의 법을 인정하고 썩 사라지도록 해라!"

"나는 실패하였지만 다른 칼라모르의 기사가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아아… 원통하구나!"

바드레이는 루의 검을 반 호크의 가슴에 찔렀다.

그러자 환하게 일어나는 신성한 빛!

띠링!

 -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 깊은 절망과 분노 속에 잠들어 있던 힘을 깨워서 탄생한 어비스 나이트 반 호크가 소멸했습니다.

   심연에서 일어난 어둠의 힘이 퍼지게 됩니다.

   어비스 나이트는 사라졌지만, 앞으로 1개월간 둠 나이트들이 산발적으로 일어나서 제국에 저항을 하게 됩니다.

 - 위대한 업적으로 인하여 명성이 5,402 올랐습니다.

 - 카리스마가 6 상승하셨습니다.

 - 투지가 5 상승하셨습니다.

 - 위대한 승리를 경험하였습니다.

   어비스 나이트와의 전투에 사용된 스킬들의 숙련도가 최소 3%에서 15%까지 증가합니다.

 - 하벤 제국의 위업으로 기록될 영광적인 전투의 승리로, 전투에 참여했던 모든 이들의 전 스텟이 6씩 오릅니다.

 - 어비스 나이트 반 호크와 싸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베르사 대륙 전체의 음유시인들은 이 놀라운 전투에 감탄하여 당신을 위한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노래가 울려 퍼질 때마다 주민들의 충성도가 오르고 범죄가 줄어듭니다.

   명예가 35 증가합니다.

   하벤 제국의 귀족 사회에서 당분간 반란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됩니다.

 - 칼라모르 지역, 브리튼 연합 지역의 하벤 제국에 대한 저항심이 감소합니다.

   반란군 출현을 다소 억제합니다.

『 호칭! 전장에 직접 나선 황제를 획득하셨습니다.

넓은 제국을 세우고 다스림에 있어서 인정과 도덕만이 중요하진 않을 것입니다.

때때로 공포와 억압을 이용할 줄 아는 것도 황제로서 중요한 덕목입니다.

제국이 혼란으로 빠져들기 전에 당신은 직접 전장으로 나서서서 위험한 요소를 제거했습니다.

그 강인한 결단력은 병사들의 사기를 최대 13% 높게 유지하며, 주민들을 억지로 복종시킬 것입니다.

토벌 작전에서 부하들의 전투 능력이 6% 늘어납니다. 』

 - 괴로움의 흉갑을 획득하셨습니다.

 - 심연의 투구를 획득하셨습니다.

 - 사무치는 원한을 가진 장갑을 획득하셨습니다.

바드레이는 잠시 동안 멍하니 가만히 서 있었다.

지금까지 베르사 대륙에서 강한 몬스터들이야 많이 사냥을 해 왔다.

그럼에도 어비스 나이트를 처리한 이 순간의 감격은 온몸을 벅차오르게 만들었다.

이윽고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환호 소리가 코쿤 계곡에 메아리쳤다.

"황제 폐하 만세!"

"어비스 나이트가 바드레이 님에게 처단되었다!"

"헤르메스 길드는 무적이다!"

조마조마하게 봤던 전투가 완전한 승리로 종결되었다.

전투에 참여한 이들 역시 스텟과 국가 공적치 등의 보너스를 두둑하게 받았다.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이 내지르는 환호 소리.

상당한 피해는 있었지만, 어비스 나이트라면 그만한 대가를 치를 만한 일이었다.

바드레이의 입가에도 만족스러운 웃음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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