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40권 : 3) 어비스 나이트와 헤르메스 길드 (269/520)

3) 어비스 나이트와 헤르메스 길드

"후후후훗, 내가 바로 북부의 명궁수 페일이다!"

페일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모여 있는 하벤 제국군의 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베르사 대륙 전체를 장악해 나가는 무적 군대에 맞서서 북부의 고레벨 유저들도 소수이지만 뭉쳤다.

"정면공격은 승산이 없습니다. 일대일이라면 몇 놈 정도는 죽일 자신이 있지만 군대를 상대로는 기회가 오질 않죠."

"그렇다면 외곽을 찌르는 수밖에요."

"헤르메스 길드에는 우리보다 강한 사람들이 즐비할 텐데요?"

"저 엄청난 대군이 이동을 하면서 모든 방비가 완벽하진 못할 게 확실합니다. 우린 그 틈을 노려 볼 수 있습니다. 저 레인저 다카르의 눈에는 조금 크고 많은 사냥감으로 보입니다."

"동감입니다. 재미있는 사냥이 되겠군요."

북부 최고의 궁수들과 레인저들, 마법사들이 전투를 위해 나섰다.

본격적으로 소식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참여한 숫자야 200여 명에 달할 뿐이지만, 그들은 자신이 있었다.

그들은 하벤 제국군이 지나가는 길목의 언덕 위에 조용히 숨어서 기다렸다.

정찰을 위한 전초부대가 지나가고 중앙군이 이동을 하는 동안에도 고개를 숙이고 얌전히 있었다.

저들에게 위치를 발각당하면 그야말로 개죽음이었기 때문이다.

지역 전체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위풍당당한 마법병단이 매머드가 끄는 마차를 타고 이동을 한다.

하벤 제국군은 병사들만 많은 것이 아니다.

몬스터와 짐승을 길들여서 사용하고 여러 특수부대들도 거느렸다.

북부 유저들과의 전투에서는 마법병단과 궁수대가 중심이 되어서 거의 쓰질 않았지만, 본격적인 점령 작업에 동원되게 될 부대이리라.

중앙 대륙에는 다양한 왕국들이 존재하고 많은 부족들이 살아가고 있었으므로 북부 정벌군의 구성 역시 화려하다 못해서 상대하는 쪽에서는 질식할 정도의 위용을 자랑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오늘도 이 목숨을 건지게 해 주십시오. 정의로운 풀죽신이시여."

그사이 일부 풀죽신교 원리주의자들은 풀죽을 마시기도 했다.

"지금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이 보기에 일반 병사들로 구성된 부대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하벤 제국의 정예 병사들은 많은 전쟁을 경험한 매우 귀중한 자산이었다.

"그럼 장전을 합시다."

궁수들은 활과 화살 묶음을 꺼냈다.

바로 화살을 시위에 걸지 않고 잠깐 기다렸다.

"불의 정령 화돌이 소환!"

"씽씽이여, 이곳에 나타나 주세요."

"흙꾼 어르신, 적을 묻어야 할 때입니다."

옆에 있는 정령사 유저가 정령을 소환해서 화살에 붙여 주었다.

정령사의 도움을 받으면 화살 공격의 위력과 특성을 높일 수 있다.

"한꺼번에 쏩시다. 발사!"

슈슈슈슉!

궁수 유저들에 의해 언덕에서 쏘아진 화살들은 대지를 가로질러서 하벤 제국군의 진영을 습격했다.

스킬,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화살!

원거리 공격 시 사정거리가 50% 이상 증가하는 스킬이였다.

"적의 기습이다!"

"저쪽 언덕 방향으로 반격하라!"

하벤 제국군의 궁수들도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반격을 가했지만 그들의 화살은 언덕에 닿지 않았다.

궁수로서의 실력이나 장비의 차이도 있었지만, 북부의 유저들은 더 높은 지형에서 바람을 등지고 화살을 쏘기 때문에 뭉쳐 있는 하벤 제국군을 계속 쓰러뜨렸다.

"귀중한 기회입니다. 최대한 한 발이라도 더 쏩시다!"

"지금 말할 시간도 없어요. 강철 화살을 몽땅 다 퍼부어서라도……."

궁수 유저들은 이때만큼 자신의 손이 빨리 움직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속사와 관통 스킬을 활용하여 화살을 쏜다.

평소에는 이렇게 장거리 공격을 하면 명중률이 만이 감소한다.

궁수들의 장거리 공격 스킬들은 거의 쓸모가 없을 정도로 사장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실컷 쏠 수 있었다.

노렸던 적이 맞지 않아도 그 부근의 누군가가 대신 맞았다.

아쉬운 점이라면 병사들도 방패와 갑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장거리 화살 공격을 맞고도 한두 발로는 목숨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주변을 불태우거나 얼리고, 무너뜨리거나 폭발시키는 광역 궁수 스킬은 사용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일 잘하는 정령들의 효과로 인하여 비슷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여러 발을 쏘다 보니 자신이 죽이지 못하더라도 동료들의 화살에 의해 하벤 제국군 병사들은 목숨을 잃었다.

느긋하게 전진하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병사들은 놈들을 섬멸시키기에는 너무 느리다. 기사단이 즉시 처리하라!"

"은독수리 기사단 진격!"

모여 있는 이들을 응징하기 위하여 하벤 제국 기사단이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를 개시했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 중에서도 실력이 뛰어난 팔랑크스가 지휘하고 있었다.

"서둘러 쏩시다. 다가오도록 하면 안 됩니다."

이때부터는 북부의 궁수들도 기사단을 표적으로 화살을 쏘았다.

"웬만해서는 피해를 입히지 못할 것이니 한 발 한 발의 위력을 높여야 됩니다."

관통, 밀쳐 내기, 중독, 회오리.

활시위가 끊어지도록 강하게 쏘는 화살에, 기사단의 절반 이상이 말에서 떨어졌다.

방어력이 뛰어난 기사들이 전부 죽진 않겠지만 쉽게 회복이 되지 않는 전투 불능 상태에 빠뜨릴 수는 있었다.

"놈들이 계속 다가오고 있습니다."

"충분히 피해를 줬으니 어서 피합시다."

"좋지요!"

임무를 마친 북부의 궁수들은 활을 등에 짊어지고 후방을 향해 신속하게 철수했다.

악착같이 쫓아오던 기사단은 북부 유저들 중에도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저놈들은 어디 소속이지?"

"미야바의 기사들 같습니다만. 미야바 공국이 몰락하기전까지, 최소한 레벨이 400을 넘지 못하면 기사단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저들이 북부로 이주해 왔는지는 미처 몰랐군."

북부 유저들은 하벤 제국의 군단 규모의 마법 전력을 두렵게 느꼈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개죽음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기사단이 요격을 나오기 위해 출동하면 맞싸울 수는 있었다.

"이빨 사이에 낀 가시 같군. 우리만 본대를 벗어나서 멀리까진 나가서 전투를 치르기에는 부담스럽고……. 놈들을 전멸시키려면 다음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없겠다. 철수한다."

하벤 제국군의 기사단은 결국 회군을 선택했다.

"만세!"

"크흐, 이 맛이지!"

"우리가 해냈습니다!"

불과 1,000여 명의 피해를 입힌 작은 승리였지만 북부의 유저들은 크게 웃으며 기뻐했다.

지금까지 수백만 명이 죽었지만 하벤 제국군의 북부 정벌군에는 10만 정도의 피해도 끼지지 못했다.

전투만 벌이면 연전연패!

그렇지만 북부의 유저들도 점점 많은 인원이 본격적인 항전에 나서고 있었다.

또 지금까지 던전 깊숙한 곳에서 살아가던 유저들도 전투를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저분은…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빨간 치마를 즐겨 입는다는 음유시인 스콜라 님이야!"

"우웃, 부채로 바람을 타고 몬스터를 정신없이 때린다는 저 사람은… 2년 전에 한창 방송에 나왔었는데!"

로열 로드의 초창기부터 유명했던 유저들은 하벤 제국에 의해 죽음을 경험하고 척살령이 떨어지면서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독특한 사냥법이나 기술을 개발하며 로열 로드를 즐겨 왔던 초기 유저들도 북부로 이주여 조용히 지내왔다.

그들은 세력 다툼이 치열한 중앙 대륙에 이미 환멸을 느꼈다.

그럼에도 사냥과 퀘스트를 통한 친분 등으로 발이 묶여 어쩔 수 없이 길드에 속해 있었지만 하벤 제국에 의해 전부 몰락하고 말았다.

본의 아니게 자유롭게 된 그들은 북부로 이주해서 살아가고 있었다.

하벤 제국에 대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으며 살아가던 그들이, 마침내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북부의 유저들이 꼭 아르펜 왕국과 위드를 위하여 전투에 나선다고 볼 수는 없었다.

하벤 제국과 위드.

당사자들만의 문제라면 이주민들 중에는 참여하지 않았을 이들이 훨씬 많았다.

하나의 도시만 있던 모라타 시절과는 다르게 현재는 너무나도 많은 유저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앙 대륙이 이미 하벤 제국에 의해 정복된 마당에 아르펜 왕국까지 무너지게 되면 그들로서는 더 이상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는 땅이 없다.

자신들을 위하여 나섰고, 위드와 아르펜 왕국은 훌륭한 구심점이 되어 주었다.

"우리의 희망은 명궁수 페일 님이지."

"저분이 방법을 알려 주지 않으셨다면……."

"활 쏘는 거 봤잖아. 백발백중에, 관통이 거의 두세 번에 한 번씩 터지더라고."

"기가 막힌 실력이지."

페일은 모여 있는 북부 유저들에게도 찬사를 받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매우 뿌듯하군.'

비록 로열 로드를 시작한 시기는 조금 늦었지만 위드를 따라다니면서 고생을 어디 적당히만 했던가.

스킬, 스텟, 잡템에 얽매여서 살아오다 보니 평범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다들 깜짝 놀라며 감탄할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ㅡ 아니, 어떻게 그런 개노가다를……! 로자임 왕국에서 시작한 분이 벌써 이렇게 강해지셨다는 말입니까?

 ㅡ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성장한 건데요.

 ㅡ 지금까지도 일반 화살촉을 쓰신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독이나 분산형 화살촉의 사냥 효율이 월등히 높다고 알려진 게 언제인데요. 다들 최소한 독화살은 쏘는데.

 ㅡ 위드 님이 그러셨죠. 사냥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다, 몸으로 반복해서 하는 거다. 몬스터를 편하게 잡으려고 머리를 쓰지 말고 단순하게 싸워야 한다고요.

    그리고 더 좋은 아이템을 쓰면 그만큼 돈이 더 든다는 건 진리 중의 진리죠.

 ㅡ 그렇더라도 스킬들의 레벨이 너무 어마어마하신데요.

 ㅡ 노가다로 다져진 기본기라고 할 수 있지요. 이것 역시 위드 님에게 배운 가르침입니다.

과거 방송 출연을 통해 위드와 모험을 함께했던 전력도 알려지다 보니 페일은 북부에서는 유명 인사 중의 1명이다.

엘프의 활을 등에 메고 도시로 들어가면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였다.

페일이 생각하는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엄청난 실력자야.'

'어디서든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겠어. 페일 님을 직접 보다니 영광이군.'

'잘생겼다. 키도 크고.'

'캬하, 활을 비스듬히 메고 있는 저 자연스러운 멋!'

페일은 북부 유저들을 이끌고 전투를 지휘했다.

동료들과 팔로스 제국의 보물을 찾는 일에 참여하지 않고 따로 떨어져 나왔지만 이렇게 보람찰 수가 없었다.

전투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사람들을 이끌며 인정을 받았다.

'이것이 남자의 로망이다.'

페일의 입가에는 어느새 위드를 닮은 썩은 미소가 맺혀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들어온 귓속말.

 - 페일 님.

 - 엇, 위드 님!

페일은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뭡니까, 전쟁의 신 위드 님에게서 귓속말이 들어온 겁니까?

"이야, 대답이다! 역시 위드 님의 동료니까 귓속말도 자주 나누는 사이로구나."

주변에서 레벨 430이 넘는 유저들이 크게 감탄했다.

레벨이 아무리 높더라도 위드와 쉽게 친분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위드에게서 귓속말이 왔다는 말이 금세 퍼지며 심지어는 깜짝 놀라는 무리도 있었다.

북부에서 위드의 명성은 강물로 소주를 만든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 지금 어디에 계세요?

페일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 누르 평원 근방에서 하벤 제국군과 싸우고 있습니다만. 화살을 이용해서 원거리 공격을 하고 있는 것이죠. 제법 위험한 일이라서 긴장감이 아주 넘칩니다.

은근히 위드가 약간의 감사의 인사나 칭찬 정도는 해 줄 것이라 기대하며 어느 정도 자랑도 담아 한 말이었다.

 - 흠, 그렇다면 특별히 바쁘시진 않겠군요. 유린이를 그쪽으로 보낼 테니. 잠깐 시간은 되시죠?

 - 물론이죠. 위드 님도 무사히 퀘스트를 마치고 돌아오셨는데 밤새도록 축하연이라도 해야죠. 제가 쏘겠습니다!

 - 축하연 대신에 사냥이나 가죠.

 - 네? 벌써요? 돌아오자마자 사냥을 얼마나 하시려고…….

위드는 넓은 시야와 몬스터들의 활동과 특성을 파악하는 귀신같이 눈치를 가졌다.

상대하기 벅찬 몬스터들과 간신히 싸우면서도 목숨을 잃는 경우는 거의 희박했다.

대신에 함께하는 동료들은 느꼈다.

'죽을 힘까지 몽땅 빠져서 죽지도 못하는구나.'

'쉬, 쉬고 싶어.'

'여기가 사냥 지옥인가. 부디 이 지옥만큼은……. 나쁜 짓을 하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겠어.'

그 소름 끼치는 사냥으로의 초대였다.

 - 뭐, 이래저래 바빠서… 하루나 이틀 정도만 해야죠.

 - 이틀 정도라면 그래도 상당히 짧네요.

 - 하벤 제국군이 대지의 궁전에 올 때까지 쉬엄쉬엄하려고요. 늦게 오면 조금 길어질 수도 있지만… 아마 빨리 올 겁니다.

 - 하긴 길게 자리를 비울 수가 없으시겠지요. 놈들이 가능한 늦게 와야 될 텐데요.

 - 뭐, 그러기를 바라고는 있죠. 근데 세상일이 다 제 마음대로 되진 않더라고요.

귓속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린이 그림 이동술 통해서 나타났다.

페일의 활동도 방송이나 인터넷 중계까 이루어져서, 주변의 풍경을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올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빠가 빨리 모시고 오라고 했어요."

"그래, 가야지."

페일은 어깨가 축 늘어져서, 끌려가는 사람처럼 유린과 함께 떠났다.

그리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맨날 위드 님과 엮여서 갖은 고생만 한다는 그 이야기가 진짜였어?"

"왠지 부럽지 않아."

"능력은 있어도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 정말로."

"우린 그냥 이대로가 편한 것 같다."

★★★★★★★★★★★★★★★★★★★★★★★★★★

위드의 사냥 멤버!

팔로스 제국의 보물을 찾고 있는 이들을 제외하면 페일이 있었다.

그리고 꼭 필요한 한 사람을 데리러 프레야 교단에 갔다.

반 호크를 제외하면 명실상부 최초의 노예.

"오오오, 너무나도 오랜만에 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더라도 저는 프레야 여신님을 통해서 위드 님이 특별한 모험을 마쳤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됐으니까 가자."

"네?"

"말할 시간도 아까우니 가자고."

프레야 교단에 쌓은 공헌도를 바탕으로 알베론을 납치하듯이 섭외했다.

그리고 북부에서 넓은 인맥을 쌓은 마판을 통해서 새로운 인물들을 소개받았다.

"음, 나는 파이톤이다."

곰처럼 큰 덩치에 거검을 박력 있게 휘두르는 파이톤.

전사 마스터 퀘스트를 했음여 이베리안 숲에서의 생존기로 더더욱 유명한 사내였다.

위드와는 과거 수련관에서 만난 적이 있지만 둘 다 서로를 기억하지 못했다.

'밥을 많이 먹겠군.'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 보통 이상의 느낌이 전해지는 것이, 과연 소문대로 아르펜 왕국의 국왕이야.'

그리고 의문의 사내도 합류했다.

"이분의 이름은… 그러니까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저 마판이 상인의 명예를 걸고 믿을 수 있는 분이라고 신용은 철저히 보증할 수 있습니다."

마판이 소개한 사람은 훤칠한 키에 무엇이 꺼려지는지 로브를 뒤접어써서 가까이에서 보기 전에는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든 남자였다.

위드는 먼저 악수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잘해 봅시다."

남자는 목소리마저도 영화배우처럼 자연스러운 멋이 있었다.

위드와 남자의 눈빛이 마주쳤다.

'믿을 수 없는 놈이군. 나보다 훨씬 잘생겼어.'

'조각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왠지 느낌으로는 빈틈이 없을 것 같다. 방송에서의 활약상은 많이 봤지만 나보다도 강할까? 하지만 암습이라면 내가 완벽하게 승리하겠지. 나는 죽음을 몰고 오는 그림자 양념…이니까."

위드와 페일, 알베론, 파이톤, 죽음을 몰고 오는 남자.

그렇게 파티가 결성되고 나서 파이톤이 물었다.

"그런데 우린 어디로 가는 것이오? 보통의 사냥터라면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모일 필요는 없을 텐데. 어떤 퀘스트의 마무리인가?"

전쟁의 신 위드와 사냥을 한다니까 놀랍고 신기한 마음에 합류를 결정하기는 했지만 그 외에 들은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벤 제국군이 마당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하루 정도의 짧은 여유를 내서 사냥을 떠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설사 레벨 1~2개 정도를 올리더라도 그게 그렇게 대수일까 싶었다.

위드의 입장에서는 뒤처진 레벨을 복구하기 위해서 다급하기 짝이 없었지만 말이다.

"남부로 갑시다."

"남부요? 허어, 정말 의외로군. 하벤 제국군과의 전쟁터를 말하는 것이오?"

"우리가 있는 북부 대륙의 남쪽이 아니라, 베르사 대륙의 남부 지역 말입니다."

"거긴 그냥 사막인데……. 아! 텔레비전에서 퀘스트를 하는 건 봤소. 사막의 왕으로서 활동하며 얻은 정보 등을 바탕으로 사냥을 하려는 모양인데, 그러기에는 이동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겠소? 그보다는 이 주변의 던전이나 확실히 처리를 하는 게 맞을 것 같소만."

파이톤은 여행 일정상 도저히 무리라는 생각에 반대 의견을 냈다.

대지의 왕궁 근처에도 완벽하게 파훼되지 않은 던전은 많이 있었다.

북부에 고레벨 유저가 많아졌다고는 해도 레벨이 높아질수록 신중해지기 마련이다.

던전을 발견해 내더라도 조심스럽게 정보들을 모으고, 넘칠 정도로 충분한 전력을 갖춰야만 퀘스트와 사냥에 나선다.

목숨을 잃어버리면 덩달아 잃어버릴 게 너무나 많은 만큼 어쩔 수가 없는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이렇게 만찬의 준비를 하고 던전에 들어간 경우에도 죽음을 겪거나 뒤돌아서 도망쳐 나옴으로 인해서 해결되지 못한 장소도 많이 있다.

전쟁의 신 위드가 있는 전력 정도라면 끝마무리가 되지 않은 미해결 던전들을 충분히 도모해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파이톤의 말은 위드의 입가에 비웃음에 가까운 썩은 미소를 짓게 했다.

"만만한 목표를 달성해서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보다 넓고 크게 이루어야지요."

"말은 좋지만 하루 정도의 사냥으로는 어차피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 텐데 도착도 못 하지 않소? 알고 있는 던전에 초장거리 텔레포트 게이트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긴 하겠지만."

"이동 시간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의 목표를 군만두로 잡는다면 평생 탕수육은 먹어보지도 못할 겁니다."

파이톤과 죽음을 몰고 오는 그림자라는 남자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어찌 되었든 그들은 군만두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

"전…부… 죽…여…라……. 이…곳…은… 영…광…이… 함…께…하…는… 칼…라…모…르… 제…국…의… 땅…이…다……."

반 호크와 칼라모르 제국의 기사 600명으로 구성된 둠 나이트들은 6개의 도시와 2개의 요새를 점령했다.

"킬킬킬!"

"으헤헤헤헤헤!"

파죽지세로 밀려드는 언데드들의 공격은 성벽이 두꺼운 요새로도 막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유령화가 된 둠 나이트들은 장애물과 성문을 통과하고, 때때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높이 뛰어올라서 성벽을 넘었다.

"발석기를 끊임없이 쏴라!"

"성수를 아낌없이 뿌리고, 사제들은 신의 힘을 기원하여 주십시오!"

하벤 제국의 병사들은 불화살을 사용했다.

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질러 날아서 적진에 불화살들이 떨어진다.

불빛으로 사방이 순간적으로 확 밟아지는 순간, 저 멀리에서부터 스켈레톤과 좀비들이 춤을 추듯이 몸을 흔들며 꾸역꾸역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정말 재밌다. 이 재미를 뭐라 표현해야 하지?"

"공격, 공격하자, 우헤헤헤헤헤!"

"아, 짜증 나. 하필이면 왼쪽 다리가 없는 스켈레톤이 걸렸어. 어디 근처에 쓸 만한 다리뼈 없나?"

이벤트에 참여한 유저들은 언데드가 되어서 요새로 진격했다.

믿음직스럽지는 않은 언데드 유저들도 4만 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하게 되었다.

시체만 묻혀 있던 베르사 대륙의 주민을 포함하면 어비스 나이트의 암흑 지배 능력에 의해 일어난 언데드는 무려 총 10만!

하벤 제국이 중앙 대륙을 통일하기 전이라면 충분히 하나의 왕국을 도모해 볼 수 있을 정도의 병력이었다.

"스켈레톤들이여, 성벽을 오르자!"

"킬킬킬!"

스켈레톤들은 뼈밖에 남지 않은 손가락으로 가파른 성벽을 타고 올라가서 병사들과 싸웠다.

언데드 유저는 목숨을 잃어도 신성력이나 성수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면 곧바로 되살아날 수 있었다.

둠 나이트를 따라서 벌이는 활약에, 유저들은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벤 제국에 대해서라면 이를 갈고 있는 유저가 한둘이 아닌 터에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이벤트가 발생한 격이었으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그러나 하벤 제국의 정예 병력도 언데드에 대응할 준비를 끝냈다.

헤르메스 길드 소속의 유저만 3만 명이 참여했으며, 하벤 제국 황궁 기사단 6,000명, 중앙 대륙의 각 교단으로부터 성기사와 사제도 지원받았다.

넘치는 자금과 퀘스트 독점으로 인해 대륙에 있는 신성 교단들을 자신들의 병력처럼 동원할 수 있었다.

"계속 되살아나는 언데드는 송두리째 뿌리를 뽑아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급 언데드는 대충 해치우면 되지만 어비스 나이트 반 호크와 둠 나이트 부대는 황궁 기사단과 함께 철저하게 대응하도록 합니다."

어비스 나이트는 무시무시했다.

그 혼자서도 감당이 안 되는데 둠 나이트를 끌고 다니고 있으니 그 전력의 강대함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어비스 나이트가 칼라모르 지역에서 등장한 이후로 시간은 촉박하였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병력을 동원하고 전투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언데드의 세력은 갈수록 강해지고, 그들을 따르는 과거 칼라모르 왕국 병사들이 합류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전체가 빛과 신성력을 두려워하는 언데드로 구성되어 상대하기는 비교적 쉬웠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황궁 기사단을 제외하고는 NPC로 구성된 병사와 기사를 일절 배치하지 않았다.

전투에 동원된 모든 유저들에게는 축복받은 은을 씌운 무기와 방어구도 지급했다.

은무기와 방어구는, 일부는 생산을 하고 나머지는 전리품으로 얻어서 창고에 쌓아 놓은 물량을 모두 푼 것이었다.

그리고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어비스 나이트 반 호크와 둠 나이트가 가까이 있는 헤페니아 요새로 이동했다.

푸슈슉!

마법진 내에 강렬한 빛이 일렁이면서 헤페니아 요새에 바드레이가 도착했다.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황제 폐하를 알현합니다."

"제국의 검이며 동시에 교단의 최대 후원자를 뵙겠습니다."

바드레이가 나타나자마자 기사 NPC들은 정중하게 예의를 취했다.

헤페니아 요새의 일반 병사와 주민은 지고한 존재를 만나는 것으로 완전히 얼어붙어서 땅에 바싹 몸을 숙였다.

미리 배치된 황궁 기사단과 성기사단의 인사를 바드레이는 가겹게 고개를 끄덕여서 받았다.

'병력이 많기도 하군.'

헤페니아 요새는 과거 칼라모르 왕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아주 큰 곳이다.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서 헤르메스 길드도 꽤 많은 희생을 치렀다.

헤페니아 요새의 무서움은 그저 성벽의 높이에만 있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높은 산과 절벽을 끼고 공략하기 어려운 장소에 건축되었다.

궁수탑, 쇠뇌 연속 발사대, 건너기 힘든 해자와 같은 기본적인 방어 시설도 완비되었으며, 적들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난 창문도 작고 협소하게 만들어져 있다.

여러모로 공략하고 정복하기에는 어려운 시설물로, 소유하고 있는 쪽에서는 수집품처럼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물론 지난 전투 시의 파손이 너무 심하여 아직 완벽하게 수리된 상태는 아니었다.

'하벤 제국은 칼라모르 왕국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막 발돋움을 하던 시기에는 다급하고 부족한 것들도 많았는데. 그 시절이 조금은 그리워지는군.'

요새에 있는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도 바드레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텔레포트 게이트에 모여 있었다.

"저 사람이 바드레이야?"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 장비들은 정말 끝내주는군."

"베르사 대륙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자. 과연 얼마나 강할까?"

"방송에서 본 대로 대륙에서 최강이겠지. 로암이나 칼리스도 저분한테는 목숨을 잃었어. 무신이라는 이름이 그냥 얻어진 게 아냐. 전쟁의 신 위드조차도 버티지 못했으니까 말이야."

바드레이는 자신을 보며 떠드는 많은 말을 들었다.

대부분이 우쭐해지게 만드는 칭찬, 혹은 부러움과 시샘.

헤르메스 길드에 속해 있는 유저나 그렇지 않은 유저나 할 것 없이 바드레이의 존재를 대단하게 여겼다.

'그래, 이런 반응이지. 곧 모든 대륙이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다!"

★★★★★★★★★★★★★★★★★★★★★★★★★★

언데드가 거세게 설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차분히 하루를 더 기다렸다.

밤새 요새 하나, 도시 하나를 잃어버렸지만 거대한 하벤 제국에서 그 정도의 손실쯤은 감수할 만했다.

제국의 경제력과 생산력을 바탕으로 내정을 잘한다면 하루아침에도 도시 1~2개 정도만큼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라페이와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에서는 이미 대제국의 실질적인 도양에 대해서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구하벤 왕국 지역을 중심지로 하여 중앙 대륙 전체를 발전시키기 위한 생산과 기술 개발, 무역을 증진시키는 계획에 착수했다.

로열 로드의 초창기에는 각 왕국들이 확고하게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중앙 대륙은 경제력이 융성한 편이었지만 수도와 그 부근을 벗어나면 낙후된 지역들도 많았다.

과거에 명문 길드들이 난립하던 시절을 지나면서 분쟁도 오랜 기간 이어졌다.

하벤 제국이 건국되던 시기에 입은 피해도 대륙 전체에 남았다.

대륙이 통일되고 나면 제국의 황궁에 의한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해진다.

안정된 톰치와 끝없는 번영.

하벤 황궁에 모인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에서는 장기간의 통치를 위한 모든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물론 엠비뉴 교단이 완전히 소퇴하면서 영향력을 대부분 회복한 대륙의 동부, 놀랍게 발달한 남부의 사막 지대를 점령하기 위한 군사 준비도 새롭게 진행되었다.

중앙 대륙이 통일되는 과정에서 다른 왕국의 패잔병들을 받아들이며 기사와 병사는 과할 정도로 많아졌다.

그들을 동부와 남부로 출정시키면 되니 제국의 수뇌부에서는 정복 작업의 준비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조차도 없었다.

다만 북부에서의 전쟁이 예상 외로 길어지고 있었으니,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하여 새로운 전쟁을 벌이는 일은 미루어 두었다.

"우린 완벽한 승리를 해야 한다."

어비스 나이트와의 전투를 총괄하게 된 것은 바드레이의 친위대 소속 아크힘이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개인 무력으로는 300위 안에 드는 유저만이 친위대에 소속될 수 있다.

친위대는 최상급의 무기와 방어구, 사냥터, 스킬 연구를 지원받으며, 명예와 권력도 막강했다.

"놈들이 다른 길로 빠지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헤페니아 요새로 몰려오게 될 것 같은데… 요새의 성벽은 허물어진 곳이 몇 군데 있고 밤에는 어두운 편이라 완전한 대응이 어렵겠어."

아크힘은 요새 밖에서 언데드들을 요격하기로 결정했다.

애매하게 싸우기에도 적합하지 않은 요새에 집착하여 적을 맞아들일 필요는 없다.

헤르메스 길드의 드높은 자존심으로, 성벽에 의존하여 언데드를 물리쳤다는 질시를 받고 싶지도 않았다.

"코쿤 계곡이 좋겠군. 양쪽을 틀어막고 누구도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면 언데드는 1마리도 살아남지 못하겠지."

코쿤 계곡은 어마어마한 높이와 면적을 가지고 있었다.

절경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아름답지만 그만큼 험준한 산들 사이에 있는 넓은 계곡.

우기에는 강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많은 양의 물이 흐른다.

봄에는 푸른 나무들 사이로 꽃들이 활짝 피어서, 경치만으로도 수십만 명의 여행객들을 몰고 오는 장소다.

현재는 물이 마르고 풀들이 낮게 자라 있어 대규모 전투를 치르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여기가 언데드들의 무덤이 되겠군. 경치만큼은 아까울 정도이지만 말이야."

아크힘은 정오가 지난 이후에 병력을 배치하며 다시 밤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도 무기를 재정비하며 밤을 기다렸다.

어비스 나이트 반 호크와 언데드들은 밤이 되어야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윽고 해가 지고 나서 땅거미가 지는 밤이 찾아왔다.

 ㅡ 우히히히히히힛.

유령들이 우는 소리가 나고, 땅이 불쑥불숙 솟구친다.

땅속 깊은 곳에서 잠을 자던 언데드들이 다시 일어난 것이다.

어비스 나이트 반 호크와 칼라모르 제국 기사단으로 이루어진 둠 나이트 부대.

언데드 유저들이 활약하는 시간!

 - 언데드의 밤이 찾아왔습니다.

   어비스 나이트 반 호크는 휘하의 언데드 부대를 이끌고 칼라모르 왕국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진군합니다.

   오늘 새로 합류한 언데드 유저는 4,302명입니다.

"훗, 재미있어지는데."

"고작 해 봐야 스켈레톤 따위들이 겁을 상실한 거지."

"반항을 하면 짓밟아 줘야 되겠지. 아예 뼈마디를 산산조각을 내서 말이야."

이곳이 중앙 대륙의 칼라모르 왕국이다 보니 모여 있는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도 수준이 확실 월등하다.

산전수전 다 겪어 본 강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과거에는 어느 한 길드를 대표하던 강자들도 헤르메스 길드의 깃발 아래로 모여들었다.

자신들이 최강이라 생각하는 그들인지라 다가오는 전투가 기다려질 지경이었다.

어비스 나이트가 하벤 제국을 침략하는 일은 커다란 이슈가 되었기에 방송사들도 대부분이 생중계를 결정했다.

사상 최악의 몬스터 어비스 나이트!

그들을 막아 내야 하는 대륙 최강의 제국!

구름처럼 많은 고레벨 유저들!

흥행 요소들은 이미 충분했다.

★★★★★★★★★★★★★★★★★★★★★★★★★★

바드레이는 친위대와 함께 계곡의 위쪽에 서 있었다.

전투를 치르기에는 너무 높았지만 전체를 내려다보기 좋은 위치였다.

만약의 경우에라도, 어비스 나이트 반 호크가 그에게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아래에 겹겹이 쌓인 호위 부대들을 먼저 격파해야 한다.

항상 그와 함께 다니는 친위대가 있지만 지금은 추가로 황궁 기사단 1개 부대, 헤르메스 길드 유저 5,000명으로 특별 호위 부대가 구성되었다.

'재미있군. 기발하고 신선한 상황, 통치와 정복에는 약간의 지겨움을 느끼고 있던 와중이다. 위드도 아마 이런 식의 퀘스트나 이벤트를 경험했겠지.'

바드레이의 머릿속에서 짜릿한 전투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전투가 기다려지게 된 것은.'

그에게는 강한 몬스터들을 누구보다 앞서서 격파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베르사 대륙에서 공인된 강한 유저이며, 어느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자신이다.

위드가 사용하여 대단한 전투 방식의 상징인 된 일점 공격술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을뿐더러, 흑기사 직업 특수 스킬 반란의 날도 습득했다.

헤르메스 길드의 노력으로 조만간 검술의 비기도 한 가지를 더 얻게 될 테니 전체적인 강함이야 계속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바드레이는 내심 놀라고도 있었다.

자신의 무력이 늘어나는 속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과연 이 로열 로드에서 개인이 쌓을 수 있는 무력의 한계란 어디까지일 것인가.

아쉽게도 그 부분은, 퀘스트에 한정되기는 했지만 위드가 먼저 세계를 구하는 용사로서 훨씬 높은 수준에 올라섰다.

그렇지만 이대로 성장을 하고 앞으로 열린 기회들을 감안한다면 진정한 강함은 자신에게만 주어진 권리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어비스 나이트까지 해치운다면 내 전투 명성은 확고부동 해지겠지.'

바드레이는 전투가 빨리 벌어지기를 기다렸다.

싸우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였지만 초반부터 자신이 나서서 전투를 지휘하면 격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부하들이 알아서 싸우고 나서, 그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야 했다.

극적인 타이밍에 등장하여 모든 상황을 휘어잡아 버리는 위드처럼.

"이곳으로 온다."

"준비했던 대로 계획을 실시하라."

바드레이는 길드의 유저들이 바쁘게 떠들어 대는 것도 그대로 지켜보기만 했다.

계곡 아래에서는 언데드들이 예상대로 입구로 진입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코쿤 계곡으로 오지 않고 우회할 경우를 대비하여 다섯 가지 정도의 대비책을 세워 놓았는데 전부 쓸모없어 진 상황이다.

'멍청하고 쉬운 상대로군. 언데드라는 특성이 결정적이겠지만.'

언데드는 복수의 화신으로 널리 알려졌다.

NPC 중에도 제법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거나 전략적인 판단을 하는 부류가 있다.

예를 들면 지식이 높은 마법사나,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상인의 경우다.

자신의 목숨을 아끼고 학문적인 목표나 평판에 대해 의식을 하기에, 특정한 퀘스트를 통해서 부하나 협력자로 거둘 수도 있다.

하지만 언데드는 단순한 생각밖에 할 줄 모르며 맹목적으로 인간의 멸망을 원할 뿐이라고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판단했다.

어비스 나이트 반 호크의 성격이 과거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칼라모르 제국의 영웅이었다.

어둠의 마나에 빠져든 바르칸 데모프로 인하여 데스 나이트가 되어 암흑 군단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는 비운의 기억도 가졌다.

반 호크는 본인의 무력도 뛰어나지만, 그의 진정한 능력은 소속되어 있는 말단 해골까지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지도력!

훌륭한 기사들은 병사들의 능력을 2배 이상으로 이끌어낸다.

충성도나 친밀도, 상황에 따라서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지만 군다느이 능력은 증가시키는 것이야말로 기사들의 장점이었다.

반 호크와 둠 나이트들은 그런 측면에서 완벽하게 훈련된 기사들이었다.

휘하 언데드들의 능력을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모든 적들을 깨부순다.

언데드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지성을 갖췄다.

함정임을 알더라도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성향을 가졌기에 기꺼이 계곡으로 들어왔다.

"부디 내가 나설 좋은 기회가 생겨야 될 텐데."

바드레이는 백마를 타고 늠름하게 서서 전투가 벌어지기를 기다렸다.

★★★★★★★★★★★★★★★★★★★★★★★★★★

"작전을 시작하자."

"1차 공격 실시!"

쿠르르르릉!

계곡에 있는 커다란 바윗덩어리들이 아래로 구르기 시작했다.

하벤 제국군이 언데드들을 습격하기 위해서 쌓아 놓은 바윗덩어리들이었다.

가파른 계곡을 내려오면서 빨라진 바윗덩어리들은 퉁퉁 구르면서 언데드들의 진형을 습격했다.

"꾸엑."

"아이고오!"

팔다리가 깔리고 부서지는 스켈레톤들.

집채만 한 바윗덩어리들은 수십수백 마리의 스켈레톤들을 깔아뭉개며 떼굴떼굴 굴러갔다.

 ㅡ 매복이다아아아!

이벤트에 참여하여 유령이 된 유저가 울며 사무치는 듯한 소리로 외쳤다.

"낄낄!"

"저게 우릴 맞힐까, 못 맞힐까?"

스켈레톤, 좀비, 듀라한, 데스 나이트, 유령, 둠 나이트로 구성된 언데드 유저들은 바윗덩어리가 굴러오는 걸 보면서도 긴장감이나 걱정이 없었다.

설혹 깔려 죽는다고 해도 어비스 나이트의 권능에 의해서 되살아날 것이므로!

또한 매복 부대와의 전투가 벌어진다면 더더욱 환영이다.

둠 나이트 부대가 얼마나 강한지 옆에서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베르사 대륙에서도 던전에 1마리가 있다면 당연히 보스급 몬스터가 될 만한 존재가 둠 나이트다.

어비스 나이트 반 호크와 같이 있으면 능력이 훨씬 커져서, 성문이나 성벽이나 의미가 없을 정도로 부숴 버리고 돌파한다.

언데드가 된 유저들의 수준이 다양하다 보니 대부분은 둠 나이트와 같은 고위 몬스터를 직접 가까이에서 본 경험도 없었다.

그러나 하벤 제국의 대처를 너무 얕본 감은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는 제국을 세울 정도의 군사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고, 고대 서적들을 통한 정보력도 훌륭하다.

사상 최악의 언데드인 어비스 나이트가 일어났다고 할지라도 정확하게 전력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응을 준비해 왔다.

"신의 의지와 맏음이 이 땅을 정화하게 될 터이니… 신성한 땅의 선포!

"어긋날 질서를 바로잡고 사악한 마물은 원랴 있던 곳으로 돌아가리라, 사악한 자의 심판!"

계곡 위에 사제들이 나타나서 언데드들을 향한 신성 마법을 외쳤다.

암흑의 마나로 구성된 몸이 약화되거나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영혼까지도 완전히 소멸된다.

계곡의 사제들이 펼치는 신성 마법은 새하얀 벼락처럼 연쇄적으로 언데드들의 무리 사이에 내리꽂혔다.

"은장궁병들은 맡은 임무를 시작하라."

이어서 하벤 제국의 숙련된 궁수들이 은화살을 쏘아 댔다.

헤르메스 길드는 정복 전쟁 과정에서 마법사와 궁수 부대를 특화시켜서 운용했다.

아무리 뛰어난 유저라고 해도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집중 공격에서는 헤어 나올 길이 없다.

원거리 타격 부대는 상대방의 지휘관이나 중요 인물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단숨에 섬멸시킬 수 있으며, 혹은 움츠러들어서 제대로 활약을 못 하게 억제시킨다.

최고의 장비를 갖추고 특별한 훈련을 받은 하벤 제국의 은장궁병들은 1분에 열 번까지 화살을 쏠 수 있었다.

5,000명의 궁수들이 쏘아 대는 은화살은 언데드 중에서도 주로 좀비와 스켈레톤의 무리에 커다란 동요를 일으켰다.

갑옷도 없고 방패도 들고 있지 않다 보니 그대로 몸에 박혔던 것이다.

듀라한, 데스 나이트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지만 은화살은 그들에게도 생명력을 크게 감소시키는 역할을 했다.

"케헤헬, 어림도 없다. 내가 바로 전복죽의 지그하르트다!"

스켈레톤 1마리가 온통 녹슨 검을 들고 날아드는 화살을 쳐 냈다.

'무릇 영웅이라 함은 이 정도의 고난에는 꿈쩍도 하지 말아야 하는 법!'

지그하르트는 중앙 대륙에서 시작하여 평범한 길드에 들어가서 살아갔다.

도시나 요새를 가지고 있지 않은 길드인 만큼 퀘스트를 받아서 전쟁에 참여하는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하벤 제국이 커 가면서 다른 길드들이 무너지고 명문 길드들끼리 극단적인 대립을 일삼으며, 중앙 대륙에서의 박해도 갈수록 심해졌다.

지그하르트는 그때 북부로 이주를 했다.

큰 고민 끝에 도착한 북부였지만 신생 국가의 활기와 함께하며 행복하게 생활했다.

먼 예전에 레인스타뎀 부근에서 사냥을 하다가 죽은 적이 있는데, 어비스 나이트에 의해서 시체가 일어나며 참여하게 되었다.

그가 목숨을 잃었던 시기도 오래된 일이라서 당시의 레벨에 맞는 스켈레톤이 되었다.

하지만 능숙하게 검을 다루면서 날아오는 화살을 쳐 냈다.

어비스 나이트에게서 비롯된 암흑의 오라는 전투를 치를수록 더 강력해졌다.

"이 몸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푹 삭힌 해골의 위력을 보여주맛!"

지그하르트는 신들린 듯이 화살을 쳐 냈지만 곧 그의 몸에도 은화살이 틀어박혔다.

 - 생명력이 2,349 감소합니다.

   신성한 은화살입니다.

   암흑 성향에 반대되는 치명적인 일격을 당했습니다.

   전투력이 12% 감소합니다.

연속으로 적중된 서너 발의 화살이 그의 몸을 불에 타오르게 만드는가 싶드나 지그하르트는 곧 잿빛 재로 변해서 쓰러지고 말았다.

어비스 나이트의 암흑 지배 능력이 발휘되고 있는 한 다시 언데드로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신성한 땅의 선포가 이루어지고 은화살의 공격을 당한 만큼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리라.

"여기서 뼈가 녹아내리도록 놀고 있지 말고 진격하자."

"우리가 발목뼈가 없나, 골반이 없나. 다들 턱뼈나 달그락거리지 말고 가서 싸우자고."

"살아 있는 인간들에게 죽음의 맛을 보여 주지."

언데드들은 거침없이 계곡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바윗덩어리들이 굴러떨어지고 은화살이 쏘아졌지만, 가파른 절벽에 달라붙으면 오히려 그러한 공격으로부터 다소 안전해지기도 한다.

"생살을 꼭꼭 씹어 먹으리."

"복수다, 하벤 제국이여!"

언데드 유저들도 마치 원통한 칼라모르 왕국의 주민들처럼 말을 하며 절벽을 올라갔다.

멀뚱하게 있으면서 유저라고 티를 내기보단 다 함께 섞이는 편이 훨씬 흥미롭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지독한 냄새가 풍겨 온다!"

"이렇게 심한 썩는 냄새라니. 언데드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

계곡에 배치되어 있는 하벤 제국군이 비명을 질렀다.

언데드들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

언데드들은 코가 없어서 냄새를 맡는 게 불가능했지만, 인간들에게는 심각하게 괴로운 부분이었다.

"낄낄낄!"

언데드들은 몇 개 남지도 않은 이빨을 따닥따닥 부딪치면서 계곡을 조금씩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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