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40권 : 2) 묻뺏죽 부대 (268/520)

2) 묻뺏죽 부대

이현은 집에 딸려 있는 밭에 상추 씨를 뿌렸다.

"나중에 삼겹살을 싸서 먹어야겠군."

마트에서 쉽게 상추를 사서 먹을 수도 있지만 그러면 돈이 나간다.

밭에서 키워서 먹는 상추나 고구마, 감자 등은 공짜로 먹는 느낌이라서 기분이 좋았다.

로열 로드에서 하벤 제국의 군대가 침략해 온 지금, 현실에서 보낼 시간은 별로 없었다.

그들을 막기 위한 대비책도 세워야 하고, 시간 조각술의 스킬도 올려야 하며, 퀘스트를 하는 동안에 잃어버린 레벨도 복구해야 했다.

몸이 10개라도 바빴지만, 하루에 30분씩이라도 반드시 집을 살펴보았다.

평소에 쌓이는 스트레스를 청소를 하면서 풀었던 것이다.

방송국 출연료로 미처 생각지도 못한 큰 액수가 통장으로 들어왔지만 이현의 생활은 바뀌지 않았다.

"돈은 버는 것보다 안 쓰고 모으는 게 더 중요하지. 나처럼 직업이 불안정한 사람일수록 많이 모아 놔야 돼."

쓸데없이 술을 마신다거나 커피숍, 홈쇼핑 시청과 같은 비싼 취미 생활은 당연히 즐기지 않는다.

수입은 몽땅 저축.

목돈이 모이면 무조건 땅!

"앞으로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야 될 텐데. 병원비, 교육비에서부터 전부가 다 돈이니까."

대한민국에서 어린아이들을 키우려면 돈이 보통 많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험한 세상에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외국어 한두 가지는 기본으로 하고, 수학과 과학도 학원 교육을 통해서 일찍부터 개념 정리를 해 두면 좋다.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같은 악기 한두 가지 역시 교양으로 배워 줘야 했다.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부모가 여행도 데리고 다녀 줘야 하고, 외국으로 조기 유학을 보내 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 뒤에는 스케이트나 사격, 승마, 스크린 골프 정도는 가르쳐 줘야 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의 어린이야말로 잠재력 개발을 극대화한 철인들!

하루 24시간을 10분 단위로 나누어서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생활을 살기 마련이다.

그러고도 경쟁이 치열해서 입시와 취업에서 고생을 한다.

"음, 미래란 두려운 거야. 텔레비전을 봐도 좋은 소식보단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까."

이현은 가장으로서 막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가족은 행복보다는 부담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귀는 건 자신의 형편에 있을 수가 없는 일.

그의 이상형은 참하고 생활력 강한 아가씨였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더라도 알아서 척척 바가지를 씌우고, 통닭을 바삭하게 튀길 수 있는 그런 여자!

이현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벌써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어 버렸으니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맞은편 텃밭에서는 서윤이 호미를 들고 고추 모종을 심고 있었다.

며칠 전에 그녀와 등산을 하고 나서 집 앞에서 벌어졌던 일이 떠올랐다

그녀와의 진한 입맞춤.

갑자기 벌어진 사건이었지만, 그때는 꽤나 오랫동안 입을 맞추고 있었다.

사실 가로등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전부 꺼져 있어서 일찍 뗄 필요도 없었다.

어디선가 잔잔하게 틀어 놓았는지, 배경음악처럼 울려오던 노래도 매우 듣기가 좋았다.

중간에 입술을 떼기가 이상해서 그 노래가 끝날 때까지는 계속해야 했다.

근데 노래가 끝나고 나서도 잠깐 머뭇거리는 동안, 다음 노래가 또 나왔다.

'에라, 모르겠다. 기분도 좋고, 계속하지, 뭘.'

적어도 6분!

그렇게 입을 맞추고 나니 이현의 생각은 확실해졌다.

'평생 책임져야 돼. 기어이 내가 멀쩡한 여자의 혼삿길을 막아 놓고 말았어.'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키스 정도는 만난 지 며칠 만에도 하고, 그 이상의 진도도 팍팍 나간다.

이현은 그런 면에서는 고지식한 편이었다.

'내 연애 인생도 끝났지. 음… 하긴 어차피 연애를 많이 해봐야 데이트 비용만 많이 들어가니까 오히려 더 나은 건가.'

서윤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더 심을까요?"

"고추는 그 정도면 됐고… 당근이랑 오이를 심자. 우리가 먹을 정도로만 5개씩만."

"네, 알았어요."

"심은 다음에는 비료도 잘 섞어 줘. 농사는 비료니까."

서윤은 밭일을 하기 좋도록 편한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이현도 마찬가지로 운동복이었지만, 그가 입은 건 꾀죄죄한 데 반해 서윤에게서는 광채가 났다.

그녀가 착용한 운동복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이현이 가격을 안다면 의식을 잃고 앰뷸런스에 실려 가서 며칠은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비싼 제품이었다.

'역시 운동복을 입으니 수수하고 좋군. 앞으로도 쭉 이렇게 검소하게 살면 되겠지.'

이현과 서윤은 옆집에 살면서 밥을 같이 먹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사이가 되었다.

지금은 이현이 로열 로드에 집중을 하느라 바빠서 그녀가 식사를 차려 준다.

자연스럽게 내조를 하며 집에도 드나들었는데, 그녀를 가장 열렬히 환영하는 것은 이현이 키우는 동물들이었다.

그녀가 이현의 집으로 넘어오면 몸보신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따라다녔다.

양념반프라이반, 백숙이 병아리들과 같이 볏을 꼿꼿하게 세우고 함께한다.

지금도 몸보신은 태어난 어린 강아지들과 같이 밭에서 햇볕을 받으면서 뒹굴었다.

자칫 된장이 발린 채 솥단지로 사라질 수도 있었던 생명이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것.

'슬슬 놈들을 물리칠 대비책도 세워야 하는데.'

이현은 상추를 심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하벤 제국군을 막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

아르펜 왕국에서 활동하는 유저들이 도와줄 테지만, 당연히 그들만을 믿고 의지할 수는 없었다.

알카사르의 다리에서 하벤 제국군의 진격을 며칠간은 막는다고 해도, 늦어도 이번 달에는 대지의 궁전에서 결판을 지어야 한다.

"대재앙은 필수이고, 조각 부활술도 당연히 써야지. 되살려서 부려 먹을 수 있는 최고의 녀석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역시 그놈이고."

쓸 수 있는 스킬은 무엇이든 다 동원하겠지만 그걸로는 부족한 느낌이 있었다.

오크 카리취로서 불사의 군단과 싸울 때는 장정도 많이 있었다.

지형적인 이점과 함께, 호전적이면서 생각 자체가 없는 부하들은 어떤 명령이든 의심하지 않고 따른다.

게다가 준비할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유저들을 데리고 강력한 지휘 체계를 구성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또 유저들을 대대적으로 모아서 전쟁 준비를 하더라도, 그들 중에서 헤르메스 길드의 첩자가 없으리란 보장도 없다.

"헤르메스 길드 놈들의 눈치도 보통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저지르려는 행동들은 웬만하면 다 예측을 할 수 있다고 봐야겠지."

이현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생각해 봤다.

전략과 전술이 별게 아니다. 누가 확실하게 먹힐 만한 꼼수를 쓸 수 있느냐의 문제.

퀘스트의 경우에는 빠른 눈치와 다양한 스킬들을 동원할 수가 있었다.

모험을 진행할 때에는 조각 변신술이야말로 그야말로 알짜배기 스킬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의 무리로 섞여 들어가거나, 종족을 바꿔서 전투력을 극대화!

그렇지만 하벤 제국군의 정규군과 맞서는 데는 조각 변신술이 그렇게까지 유용하진 못하리라.

사실 전력적으로만 본다면 헤르메스 길드는 최악의 상대다.

그들만큼 철저한 계획과 추진력을 가지고 베르사 대륙을 빠르게 장악해 간 단체는 없었다.

보통 영화나 소설 속의 악당들이라면 느긋하게 꾸물거리다가 실수도 저지르고, 주인공들이 성장할 기회도 주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헤르메스 길드는 신속할 뿐만 아니라 중요한 전쟁에서는 몽땅 승리를 거두었다.

이현을 상대로 했을 때에는 손해를 보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경미한 피해였고 그것으로는 그들의 지금까지의 계획에 어떤 차질도 생기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음, 그렇더라도 군대를 상대로 하는 만큼 변화의 여지가 크진 않겠지. 지형적으로도 대지의 궁전 앞은 완전한 평원이고."

이현의 눈에 마당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대자로 누워 잠든 보신이가 보였다.

"으음, 대재앙에 연결해서 쓸 수 있는 전술로… 개를 사야겠군. 개들을 써먹어야지."

마판을 통해 개를 대량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걸로도 모자란 부분은 당연히 있다. 하벤 제국군의 막대한 원거리 공격 능력은, 웬만한 전술로는 준비한다고 해도 먹히지도 않는다.

전투의 방식을 원하는 대로 바꾸려면 투자가 필요했다.

"밀집대형을 대재앙으로 파괴한다면 조선 장인들을 통해서 뗏목이라도… 아냐, 유저들이 많이 참여한다면 분명히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눈치를 챌 텐데. 음, 이건 잘만 하면 거의 공짜로 입수할 수도 있겠고."

이현의 머릿속에서 대지의 궁전 앞에서 벌어질 전투의 기획안들이 착착 세워졌다.

얼마나 그의 뜻대로 진행이 될지는 의문이었지만, 어쨌든 해보는 수밖에 없으리라.

"이놈의 인생은 퀘스트가 좀 해결이 되어서 편해지니까 또 전쟁이지. 이 전쟁이 끝나고 나면 앞으로는 당분간 편해지지 않을까? 솔직히 뭐, 기대도 하진 않지만."

그날 밤, 이현은 이것저것 부품을 주워다가 조립한 고물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오래된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면서 작동하는 컴퓨터.

이현은 먼저 다크 게이머 연합의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다크 게이머 연합은 유저들끼리의 전쟁에서도 당연하게도 중립을 취한다.

이현이 도와 달라고 하더라도 충분한 이득을 안겨 주지 않는 이상 그들은 용병으로 나서지 않는다.

전혀 무용지물일 수 있는 존재들.

다크 게이머들이 자신들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나설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정보를 게시판에 남겨 놓았다.

"뭐, 몇 명이나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밥상은 차려질 테니 이것도 그들의 복이겠지."

다크 게이머 연합에서도 상위 등급이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글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로열 로드 홈페이지로 가서 유저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북부의 건축가 유저들.

친구 등록이 되어 있는 파보를 대표로 하여 몇 명의 유명 건축가 유저들에게 의뢰를 했다.

"최악의 경우에도 대지의 궁전을 놈들에게 넘겨줄 수는 없으니까."

내가 못 가진다면 결국 부숴 버려야 하는 것!

"그날은 엄청난 장관이 되겠군."

하벤 제국군과의 전쟁을 대비한 작전의 일부이기도 했지만 보통 각오로는 불가능했다.

희망을 품고만 있다 보면 이도 저도 되지 않는다.

빼앗겨서 속이 쓰리기보다는 확실한 파괴가 나으리라.

"그리고 헤르메스 길드에 패배한 그들도 어딘가에서 활동을 하고 있겠지?"

이현은 과거 5대 명문 길드의 수장들에게도 메일을 보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힘을 합치자는 제안이었다.

절대적인 힘에 의하여 소탕되어 음지로 쫓겨난 이들.

그들중에서도 몇 명이나 호응을 해 올지는 미지수에 불과했다.

★★★★★★★★★★★★★★★★★★★★★★★★★★

화령과 벨로트, 메이런, 이리엔, 로뮤나, 수르카는 지쳐 있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믿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삽자루로 땅을 파헤치는 이유를!

로뮤나의 삽자루에 딱딱한 무언가가 걸렸다.

 ㅡ 으히히히히히! 인간들아, 자유를 주다니 고맙다. 그대가로 너의 육신을…….

"시끄러. 파이어 번!"

 ㅡ 키에엑!

로뮤나의 화염 마법에 의하여 유령은 간단히 소멸되고 말았다.

벨로트가 양손으로 땅을 파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도 진흙이 엉망으로 묻어 있었다.

"그쪽에 뭐 나왔어요?"

"별거 아니에요. 그냥 다 썩은 갑옷이네요."

전쟁의 시대에 위드가 팔로스 제국의 숨겨진 보물들이 호수에 매장되어 있었다.

그들이 생각했던 건 동굴 속에 쌓여 있는 누런 황금이나 다채롭게 빛나는 금은보화였다.

물론 팔로스 제국이 약탈한 다른 무구나 골동품 같은 것들이 나와도 좋다.

그러나 현실은 말라 버린 호수의 갯벌 같은 진흙탕 속에 보물들이 감춰져 있어서, 계속 삽질을 해야 했다.

띠링!

 - 깊이 간직되어 있는 옛 유물을 찾아내어 발굴가로서 명성을 450 얻었습니다.

   유물을 복원하면 추가적인 모험 명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 모험으로 호칭 '땅의 숨겨진 발굴가'를 획득하셨습니다.

   15일간 땅을 파헤쳐야만 얻을 수 있는 진귀한 호칭입니다.

   땅을 파는 속도가 3% 빨라집니다.

   대지의 친화력이 증가합니다.

로뮤나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벨로트에게 말했다.

"휴우, 이제야 저도 땅의 숨겨진 발굴가 호칭을 얻었어요."

"지난번처럼 인간 두더지는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그녀들이 파헤쳐서 찾아낸 보물들만 벌써 한구석에 수북하게 쌓였다.

명색이 팔로스 제국의 보물이건만, 긴 시간 동안 묻혀 있었던 탓에 검과 갑옷 등은 녹슬었고 멀쩡한 보물도 정화 의식을 거쳐야 했다.

때문에 이리엔은 삽질을 하다가 신성력이 회복되면 정화 의식을 펼쳤다.

 ㅡ 캬하하하하! 드디어 해방이로구나! 이 지긋지긋한 검에 묶여서 살아온 세월이…….

"부비부비 댄스!"

"제법 강한 유령이네요. 야합, 마구 때리기!"

화령과 수르카도 한쪽에서 합동으로 유령을 사냥했다.

완벽한 몸매를 가진 절세 미녀의 부비부비, 그리고 수르카의 혼을 쏙 빼 놓는 주먹질에 발 차기까지의 연속 공격.

"이야하압! 회오리 맹타!"

수르카의 주먹에 빛이 모여서 유령의 본체에 강력한 타격을 가했다.

 ㅡ 으흐흐흐흐, 아프다. 오랫동안 잠들었는데 인간들에게 복수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지게 되다니…….

팔로스 제국의 보물들은 대부분 커다란 원한을 품고 있었다.

전쟁의 시대에서 비롯된 물건들이라서 상당수는 약탈을 통해 몇 번씩이나 주인들이 바뀌었다.

물건에 유령들이 달라 붙어 살아가기 딱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어서 몽땅 해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

노가다 중의 노가다!

유령이 위험하기도 하지만 진흙탕 속에서 전투도 하고 발굴도 하려니 죽을 맛이다.

하루 종일 파서 때로는 보물이 듬뿍 나올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허탕을 쳤다.

하지만 그들은 처음에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거라며 격려하던 위드의 말을 떠올렸다.

 ㅡ 옛날 우리의 선조들은 정말 훌륭하셨죠. 그분들이 남긴 명언 중에,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우리나라 부자들 중에서 땅 부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팔로스 제국의 다양한 보물들은 그래도 땅을 파는 피로를 덜하게 해 주었다.

감정이 힘든 검과 갑옷. 마법 아이템들은 복원만 잘한다면 매우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었다.

★★★★★★★★★★★★★★★★★★★★★★★★★★

"으흠, 확실히 하벤 제국은 강하군. 싸울 맛이 나지 않느냐, 오치야."

"오랜만에 검을 휘두를 맛이 납니다, 스승님!"

검치는 제자들을 데리고 하벤 제국의 북부 대륙 점령 지역에서 마적단을 결성하여 활동했다.

[묻뺏죽]

그들은 마적단의 이름을 지식 위해서 밤낮을 고민하다가 간신히 결정했다.

"이 정도면 특이하고 괜찮지 않으냐."

"우리에게 딱 잘 어울립니다, 스승님."

"인생 복잡하게 살면 안 된다. 그러니까 머리 아프고 병이 생기는 거다."

"단순하고 무식한 게 최고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뺏고 죽인다는 뜻!

하벤 제국에서는 북부의 점령 지역에 병사들을 배치하고 장기가느이 통치를 위해 정착촌을 설치하고 있었다.

원래 북부의 중요 교통의 길목 같은 곳은 발전이 더디어서 그렇지 막 생긴 마을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벤 제국군은 북부 유저들을 몰아내고 손쉽게 그 마을들을 정복했다.

"여긴 무슨 쓰레기 같은 마을이지?"

"도시계획도 엉망입니다. 그냥 다 태워 버리고 정착민들을 데려오죠."

"땅이 넓고 주변에 광산이 있어. 노예들을 데려오면 생산력은 금방 늘릴 수 있을 것 같군요. 개발만 되면 노다지 중의 노다지입니다."

정착 지역의 영주들은 중앙 대륙에서 노예들을 대거 끌고 왔다.

하벤 제국이 아닌 다른 왕국의 주민들이었다가 국가가 멸망하면서 노예가 된 무리가 몇천 명씩 이주해 왔다.

대륙의 주민이 공식적으로 노예가 되고 나면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시키고는 일만 억지로 하게 된다.

노예들 중에서는 상인과 예술가, 대장장이, 마법사과 같은 직업은 결코 나오지 않으며, 전투 계열 직업으로도 노예 검투사만이 간간이 출현할 뿐이다.

어설프게 관리하다 보면 노예 도망자들도 다수 나타나서 치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왕국 간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노예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하벤 제국에서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점령지 주민들을 대거 노예로 전락시켰다.

북부 지역의 개발을 그 노예들을 데리고 하고 있는 것이다.

"가자, 얘들아."

"전부 쓸어버리지요, 사형. 이럇!"

검삼치가 황소를 타고 선두에 섰다.

그리고 믿음직한 사형제들이 뒤따랐다.

검치와 검둘치는 각자 150명씩의 수련생으로 구성된 부대를 이끌고 있었다.

검삼치, 검사치, 검오치는 나머지 200명의 수련생들과 함께 몰려다녔다.

"저, 적들의 기습이닷!"

"비상종을 울려라!"

목책 내에서는 급하게 적의 습격을 알리는 뿔피리와 타종소리가 났다

"몽땅 털어라!"

"묻지도 말고 싸우자. 다 부숴라!"

음머어어어어!

검삼치와 사형제들은 타고 있는 소의 울음소리를 배경음 삼아 목책을 향해 돌진했다.

하벤 제국의 궁병들이 목책 위에서 급하게 화살을 쏘았다.

백 발이 넘는 화살이 선두에 있는 검삼치에게로 모여들었다.

"이때가 제일 재미가 있찌. 차압!"

검삼치는 양손에 검을 한 자루씩 들고 풍차처럼 휘둘렀다.

검을 회전시켜서 화살을 쳐 내는 신기에 가까운 기술!

검으로 화살 쳐 내기.

원래는 워리어의 기술이었는데, 검삼치를 비롯한 사형제들은 모두 익히고 있었다.

마스터까지 익히고 나서, 쌍검으로 화살을 쳐 내는 수준으로 한 단계 더 성취를 높였다.

무예인들은 어떤 전투 기술이든 쉽게 익히고, 또 조합을 해서 스스로 창조해 내는 게 가능했다.

개개인이 무기술의 스킬 레벨이 올라가서 마스터 스킬을 하나씩 만들어 냄으로써 대부분 공격력도 일취월장 수준으로 증가했다.

검, 창, 활, 도끼, 몽둥이, 망치, 메이스, 방패, 갑옷 등 무수히 많은 마스터 전투 스킬들!

흑기사의 일격이나 탄생의 힘 같은 것도 비슷하게 만들어낸다면 원하는 대로 익힐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 낸 스킬들은 다른 직업의 마스터 스킬과 마찬가지로 제자를 두어서 전수해 줄 수도 있다.

물론 자신이 그 기술에 대해서 완벽하게 이해를 한 이후에 가능했다.

즉, 스킬의 비기를 완벽하게 마스터를 한 이후에나 다른 이들에게 전수할 수가 있는 것이다.

"으하하하하하! 과연 이 맛이로구나!"

튕겨 내지 못한 화살들은 몸에 적중되었지만, 검삼치는 시원하게 웃었다.

맷집이 약해서 허무하게 죽어 나가던 시절은 옛말이고, 이제는 모든 면에서 발군의 전투 능력을 발휘했다.

"사형, 같이 갑시다."

"좋다!"

검삼치, 검사치, 검오치가 선두에서 함께 황소를 타고 달렸다.

빗나간 화살이 귓가로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고 먼지구름이 크게 일어났다.

궁병들의 겁을 집어먹고 목책 뒤로 몸을 숨기는 것이 보였다.

목책까지의 거리도 이제 고작 10미터 안팎이다.

"다 부서져라. 둔중한 일격!"

"흠, 이 정도라면… 일점 공격술!"

"다른 거 다 필요 없습니다. 나무 부수는 데는 역시 도끼질만 한 게 없지요. 크게 한번 찍기!"

사형제들은 각자의 무기로 목책을 강하게 후려쳤다.

그러자 목책이 종잇장처럼 찢기고 산산조각이 났다.

정착촌에 있는 주민들은 도망가고 있었으며, 기사들과 병사들마저도 공황 상태에 빠져서 건물로 숨고 있었다.

"기사들은 내 거다!"

"사형, 먼저 잡는 놈이 임자입니다."

"더 늦기 전에 나는 병사라도 처리해야지."

뚫린 목책을 통해 검삼치, 검사치, 검오치를 시작으로 수련생들이 신이 나서 들이닥쳤다.

하벤 제국의 기사들.

황제 바드레이에게 충성을 바치며 전장을 누리던 기사들이지만 그들에게는 그저 맛좋은 먹잇감일 뿐이었다.

병사들도 나름 쓸 만한 수준이라서 수련생들은 즐겁게 해치워 버렸다.

"너무 순식간이군."

"일찍 끝나서 손맛도 별로 없는데요."

"빨리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가자."

검치와 수련생들은 무예인 직업 퀘스트를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무예인 직업 퀘스트의 완료는 무기술을 마스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직접 탄생시킨 스킬 비기까지 완전하게 마스터하게 되면 무예 스승이나 무예 구도자를 선택해서 둘 중 한 가지가 될 수 있다.

무예 스승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유저와 NPC를 가리지 않고 스승으로서 자신의 기술을 빠르게 전수할 수 있다.

반면 구예 구도자는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한 직업이 아니다.

명예와 궈녁을 얻지도 못했다. 인간이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 적을 없애고 자연을 박살 내며 무예를 창조하고 몸으로 익혀 나가면서 지고의 경지로 달려 나가는 직업이었다.

하벤 제국의 상인 유저들은 항복을 했다.

"살려만 주신다면 대가는 섭섭하지 않게 치르겠습니다."

"……."

상인 유저가 항복한 대상은, 하필이면 말수가 적기로 소문난 검이백일치!

"가진 돈이라고 해 봐야 금괴 4개에 298골드 그리고 교역품 조금입니다만, 이걸로라도 목숨만 구해 주신다면 모두 바치고 북부를 떠나겠습니다."

"……."

비전투 계열인 상인 유저들에게도 목숨은 소중한 것이었다.

목숨을 잃더라도 거래 스킬과 회계 스킬의 숙련도 하락치가 전투 스킬보다 덜하긴 하다.

하지만 레벨이 높은 상인으로서는 정말 큰 피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런 곳에서는 죽고 싶지 않았다.

검이백일치는 상인이 내미는 재물을 말없이 받았다.

"사실 금괴 3개가 더 있는데, 이건 정말 장사 밑천입니다. 그것도 다 바치겠습니다."

"……."

"변변치 않지만 교역품이라도 원하신다면……."

"……."

"이젠 정말 더 이상은 없는데요."

서걱!

 - 악덕 상인 돈졸레가 사망하였습니다.

   고리대금과 농노들을 착취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은 돈졸레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검이백일치는 받을 것은 다 받고 상인 유저를 처형했다.

"……."

돈줄레가 착용하고 있던 몇 가지 물품과 금괴 5개를 추가 전리품으로 얻을 수 있었다.

상인 유저를 해치우다 보면 엄청난 고가의 아이템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상인 전용 아이템에는 사망 시에도 물품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 옵션들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검치는 마적단을 결성하면서 제자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가 말이야.  힘을 앞세워서 약한 애들에게 살려 줄 테니 대신 재물을 바치라고 비겁하게 협박을 한다거나 해서 소문이라도 난다면 어찌하겠냐. 창피해서 어디 얼굴이나 들고 다닐 수 있겠느냐."

"당연히 그럴 수는 없습니다, 스승님!"

"그러니까 우린 그냥 다 죽이고 재물을 얻자."

"과연 현명하십니다."

"정의란 이런 것이지요. 완벽한 도덕성입니다, 스승님."

묻뺏죽 부대의 방침은 그렇게 결정된 것이었다.

점령 지역의 마을에서 하벤 제국의 병사들을 남김없이 처리하고 나자 밧줄에 묶여서 일하고 있던 노예들이 눈물을 흘렸다.

"우리를 괴롭히던 자들이 드디어 죽었어."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새로운 주인을 따르면서 살아가는 수밖에는 없게 되었어."

"우리의 왕국은 이미 사라지고 없으니까. 지배자들의 뜻대로 목숨이 결정되고 말 거야."

 - 노예 2,609명을 잡았습니다.

   이들에 대한 처분을 결정하셔야 합니다.

   포로를 소유한다면 강제 노동을 통해서 부를 늘릴 수 있습니다.

   포로를 해방한다면 자유를 주게 됩니다.

검삼치를 비롯한 묻뺏죽 부대는 전우너이 아르펜 왕국의 기사로 소속되어 있었다.

기사로 전직을 하진 않았지만, 직위상으로 멍예 기사 작위가 주어졌다.

기사는 아르펜 왕국의 병사를 데리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 영토의 정복과 흡수, 통치, 포로들의 처분까지도 결정할 수 있다.

검삼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너희는 그냥 알아서 살아가라."

 - 포로를 해방하시겠습니까?

   결정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해방한 자들을 다시 포로로 잡아들인다면 거세게 반발할 것입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야지. 돈이야 알아서 벌면 되고. 나 혼자 몸도 간수하기 힘든데 포로는 무슨……."

 - 포로 2,609명이 전부 해방되었습니다.

   명성 1,920을 획득하셨습니다.

   자유인이 된 주민들과의 친밀도가 최고 수준으로 상승합니다.

"고맙습니다. 여기까지 끌려온 저희를 아무 대가도 없이 풀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아르펜 왕국의 주민이 되어서 국왕 폐하와 기사님들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자! 그럼 다음 장소로 가 보도록 하지."

검삼치는 황소에 올랐다.

"사형, 오늘 내로 5개의 마을을 들러야 할 테니까 아주 바쁘겠는데요."

"스승님보다는 한가한 편이지. 군소리 말고 빨리 가자!"

검삼치와 수련생들은 다음 하벤 제국 정착촌을 향해서 말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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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와 북부 정벌군에서는 점령 지역을 약탈하는 묻뺏죽 부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드러냈다.

"놈들이 이대로 설치도록 놔두어서는 안 됩니다. 아직은 얼마 되지 않는 규모지만 합류자들이 나타난다면 후방이 흔들려서 곤란하지요."

"길드의 수뇌부에서도 빨리 진압하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제국 통치를 위한 회의에서도 묻뺏죽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놈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는군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피해가 사소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데요. 핵심 수뇌부에서도 신경을 쓸 정도랍니까?"

"중앙 대륙과는 지형의 특성이 많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음, 그런 문제도 있었지요."

가까운 거리에 성과 요새가 겹겹이 있는 중앙 대륙에서는 요충지를 점령하면 곧 지역을 안정화하는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상대방이 대부분 유저들로 구성된 명문 길드였기 때문에, 전투가 벌어져서 격파해 버리고 나면 심각한 내부 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누가 잘하고 잘못하고, 패배가 누구 때문이고.

평소에 쌓여 왔던 불만들이 한꺼번에 폭발하기 마련이다.

그때를 노려 헤르메스 길드에서 중요한 인물들을 영입해 버리면 길드는 사실상 해체가 된다.

더 이상 저항할 의지와 능력도 사라지기 때문에, 하벤 제국은 영토를 확실하게 다질 수 있었다.

그에 비하여 북부 대륙은 몇 시간씩 말을 달릴 수 있는 넓은 초원이 있었다.

도시라고 할 수준도 아닌 정착촌들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정복한 이후에도 모든 지역들을 철저히 지키기는 어렵다.

즉, 저항군 기마대가 활약을 하고 다니며 다른 유저들까지 적극 가세한다면 치안 악화쯤은 순식간이다.

점령 지역의 확보가 무의미해지는 수준까지도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조기에 강력하게 대처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정착촌에서 함정을 파고 기다려야겠습니다."

"그걸로는 부족하지요. 놈들의 기동력이 뛰어나니 일거에 섬멸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숫자가 적다고 해서 방심하면 곤란하지요."

"기사단을 위주로 하여 타격대를 구성하고, 점령 지역을 관활하는 5군단장님께서 직접 지휘를 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나머지 군대는 대지의 궁전으로 계속 진군을 해 가야 하니까요. 놈들을 빨리 처치하고 돌아오시면 대지의 궁전에서의 전투도 함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좋습니다. 심심하던 차에 잘되었습니다."

5군단장은 화염의 기사단을 거느리고 있는 반롬멜이었다.

그가 직접 나서서 묻뼛죽 부대를 처리하기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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