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풀죽 하늘 부대
위드와 사냥을 개시하고 나서 2시간 정도 만에 드는 생각.
'크게 떠들어 댄 것에 비해서는 뭐 그럭저럭이군. 전투 감각은 조금 있는데?'
'몬스터들이 정말 많군. 이런 장소만 골라서 연달아 찾아오다니, 사냥터 선정에 대해서는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사냥 5시간째.
'으아, 방금 정말 위험했다. 괜히 용맹을 앞세운다고 적들 사이에 뛰어들어서 생명력이 간당간당했는데 저 사제 덕분에 간신히 살았어.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가?'
'몬스터들의 특성상 위험할 뻔했는데… 과연 암살자인 나는 어디서든 잘 살아갈 수 있어.'
사냥 9시간째.
'죽을 위기를 두 번이나 연속으로 넘겼다. 사냥터들이 무슨 전철 노선도 아니고, 어쩜 이렇게 연속해서 이어져 있는 것이지? 쉬고 싶다. 피로도도 엄청나게 올랐는데. 대검이 너무 무겁군. 슬슬 쉴 때가 지나지 않았나?'
'이렇게 긴 시간 사냥에 전념한 건 처음이다. 머릿속이 어지러워. 암살자? 지겹다. 대충 단검이나 휘두르고 싸우자.'
사냥 13시간째.
'이 사냥 파티의 구성은 기가 막힐 정도다. 각자 맡은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는 기계야. 기계. 지금까지 나는 정말 편하고 행복하게 살았구나.'
'사냥이란 무엇인가. 암살자란 직업은 과연 사회에 도움이 되며 존경의 대상일가.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던전과 던전이 이어지고, 이동하는 중간에도 몬스터 무리와 만나서 싸운다.
몬스터와의 전투가 단순 노동 작업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파이톤과 남자는 중간에 자존심을 제쳐 놓고 말했다.
"조금만 쉬다가 하세."
"이렇게 모인 것도 인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잠깐 휴식을 취하면서 대화라도 나누지요."
위드는 그럴 때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조금만 더 하면 되니까 우선 던전 정리를 해 놓고 편하게 쉬죠."
"그렇게 할까?"
"뭐, 다 끝나 가니까 속도를 조금 더 올리겠습니다."
"…그러는 편이 좋겠지."
그 말에 넘어가서 2시간이 넘도록 사냥을 했다.
보스 몬스터까지 잡고 나서는 전부 기진맥진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체력과 피로도의 하락은 알베론의 신성 마법으로 약간씩이나마 보완이 되었다.
정상 체력의 불과 20%까지만 채울 수 있었지만, 그걸로도 억지로 몸을 끌고 사냥을 할 수는 있었다.
상쾌한 기분까지 드는 신성 마법이 이토록 증오스럽고 혐오스러운 느낌은 처음.
파이톤과 남자는 땅에 주저앉아서 땀에 흠뻑 젖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이제 정말 쉬어야겠군. 생명력도 거의 없어."
"고생하셨습니다. 전부 겨우 살아남았군요. 공부를 이렇게 한다면 명문대에 들어가는 수준이 아니라 노벨상이라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농담이 아니야.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어."
위드는 땅에 앉지도 않았다. 조각 파괴술로 얻은 체력은 아직도 남아돌았다.
인간인 이상 전투를 오래 하다 보면 정신적인 피곤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위드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레벨을 복구하고 시간 조각술을 빨리 터특해야 하는 마당에 무슨 휴식이란 말인가.
"여긴 축축하고 어둡군요. 바로 옆에 던전이 있는데, 그곳은 쾌적한 편입니다. 거기서 쉬도록 하죠."
파이톤과 남자는 정말 일어서고 싶지 않았다.
어떤 핑계를 대야 할지 머릿속으로 궁리하고 있던 찰나였다.
"편안한 장소에서 식사도 하며 오랫동안 푹 쉬어야 쉰 거 같지 않겠습니까? 고된 사냥 이후의 꿀 같은 휴식이지요."
"끄응."
오랫동안 쉴 수가 있다 하니 억지로 몸을 일으키는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음 지하 던전에 도착했다.
사막의 강렬한 햇빛이 군데군데 들어와서 밝고 서늘한 기운이 흐르기까지 했다.
무더운 여름에 은행을 발견한 기분.
파이톤과 남자는 평평한 바위를 찾아서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려고 했다.
"참, 제가 깜빡한 사실이 있는데, 별로 중요한 건 아니라서……. 이제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뭔가?"
"이 던전에는 몬스터들이 많이 모여서 살아갑니다. 근처에 풍부한 식수원과 먹잇감이라도 있는 모양이지요."
"그런데?"
파이톤은 시시콜콜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적당히 쉬고 낮잠을 자고 나서 이후에 벌어질 일들은 그때 처리하면 되지 않겠는가!
지긋지긋하기까지 한 몬스터에 대해 쓸데없는 말을 늘어 놓는 위드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근데 성격이 배타적입니다."
"배타적이라면?"
"침입자를 굉장히 싫어하죠. 그리고 나름 지성이 있기 때문에……."
카앙! 카앙! 카앙!
커다란 뼈다귀들을 부딪쳐서 내는 소리가 던전 내에 울렸다.
"저런 식으로 알리고 나서 부족 전체가 침입자들을 격퇴하러 몰려올 겁니다."
그리고 파이톤과 남자는 던전 가득 몰려오는 푸른색 몬스터들을 볼 수 있었다.
휴식 끝, 전투 시작!
이번 던전에는 몬스터들이 어찌나 많은지 사냥, 사냥, 사냥이 계속 이어졌다.
'속았구나.'
'저놈은 악마다.'
몬스터를 다 해치우기 전까지는 누울 수도 없었다.
몇 시간에 걸친 전투를 간신히 마무리하고 도까지 내팽개치고 땅에 주저앉았다.
"더 이상은 못 해!"
"좀 쉽시다. 인간적으로 우리!"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파업을 선언했다.
위드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더 이상은 사냥에 따라나서지 않을 결심이었다.
"그렇다면 참 아쉽군요. 저희는 바빠서 기다릴 수가 없으니 다음 사냥터로 가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린 쉴 테니 내버려 두고 어서 가시게."
파이톤은 사냥이 지겨웠다.
아무리 재미있는 일도 오래 하면 지치는 법이다.
위드와 함께하는 사냥은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며, 대화를 나누거나 쉬는 시간 따위는 주지도 않는 기계적인 반복 작업의 결정체였다.
"그럼 나중에 모라타에서 뵙죠."
"잘 가게. 나중에 모라타에서… 응?"
파이톤은 말을 하다가 어딘가 이상한 것을 알아차렸다.
이곳은 남부 어딘가의 사막. 그리고 모라타는 북부의 중심이다.
두 사람의 시선에 위드가 이빨을 드러내며 사람 좋은 척 웃고 있는 게 보였다.
악마가 필요에 의해서 웃어야 한다면 딱 저런 표정일 것이다.
"모라타까지 돌아가는 길은 아시죠?"
"모르는데. 유감스럽게도 여기가 어디쯤인지도 알지 못하네만."
"가장 가까운 마을은 저쪽 방향으로 사막을 열흘 정도 걸으면 됩니다. 중간에 물은 구할 수가 없을 테니 가지고 있는 물을 아껴 마시면서 부지런히 걸어야겠죠."
"열흘 안에 도착하지 못하면 목이 말라서 죽는 건가?"
"햇볕이 워낙에 강하니까요. 모래 때문에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뜨거운 사막에서 걸어가기가 쉽진 않겠죠. 무리를 이루어서 배회하는 몬스터들이 인간을 참 좋아하는데… 계속 덤벼들 겁니다."
"……."
"그리고 도시가 있었던 것도 몇백 년 전이라서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어쨌든 운 좋게 도시로 들어간다면, 그 후에도 사막을 좀 건너고 산도 넘고 물도 지나고 하다 보면 언젠가는 모라타에 도착하겠죠.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작별이라니. 나중에 모라타에서 뵙겠습니다."
악마의 협박!
사냥에 계속 동참하지 않으면 버려두고 간다는 뜻이지 않은가.
주로 엄마들이 떼쓰는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방식이었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위드이다 보니 단순한 협박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야비하고 비겁하게……."
남부 사막까지 굳이 멀리 온 것도 어쩌면 이 모든 일련의 상황들을 예상하고 끌고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파이톤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더욱 사막 지역에 있는데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악독하기까지 한 계획이었다.
"잠깐 쉬었으니 그냥 계속 사냥을 가시죠? 고진감래라는 말도 있듯이, 사냥을 하다 보면 스킬도 오르고 경험치도 얻지 않습니까. 전리품도 획득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죠."
별로 공감은 되지 않지만 뜨거운 열사의 사막을 하염없이 걷고 싶진 않아서 둘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
그렇게 사냥터를 전전하며 정신과 육체, 모두가 피곤해졌다.
눈이 감기고, 입이 벌어져서 침을 흘리면서도 버텨야 했다.
파이톤이나 남자나, 평소에서 명령을 받거나 누구 밑에서 일하기에 적합한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별게 없어. 굴리면 다 구르는구나.'
'내 몸이 갈수록 적응하고 있어.'
사람들의 극찬을 받는 위드의 지휘 능력에 대해서도 이해를 했다.
부하들이나 동료들이나, 이 정도로 비틀어서 쥐어짜다 보면 다 적응하고 성장을 해 가는 것이다.
처절한 사냥을 지속하면서 그 악동함 때문에라도 위드를 함부로 대할 수도 없게 되었다.
'알베론이라는 사제는 교황 후보인 데다 과거의 인연이나 공헌도 때문에 위드를 적극적으로 따르는 성격이니 그렇다 치고, 페일이라고 했나? 저 사람은 왜 얌전한 거지?'
'페일이라는 궁수도 우리와 같은 처지일 텐데. 이런 사냥을 하면서 항의 한번 하지를 않아?'
파이톤과 남자는 동질감, 혹은 집단 항의를 위해서라도 페일을 같은 편으로 두고 싶었다.
페일 역시 궁수로서 웬만해서는 보기 어려운 탁월하고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었다.
처음부터 존재감과 말이 별로 없던 페일이라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계속 옆에 있으니 같은 편으로 만들면 위드에게 단체로 저항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페일의 얼굴을 본 순간, 둘은 고개를 흔들어야 했다.
'틀렸다. 벌써 맛이 갔어.'
'사람이 열흘간 말린 생선 눈빛을 하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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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다!"
"풀죽, 풀죽, 풀죽!"
"모든 북부 유저들이여, 마음껏 환호하자!"
"캬아! 하벤 제국 놈들을 때리던 그 손맛이란, 실로 끝내 주는군."
페실 강가에서의 압도적인 대승!
풀죽신교 내부의 연락망을 통해 북부의 구석구석까지도 전해지면서 환호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거 섣부른 생각이지만, 진짜 우리가 하벤 제국의 침략을 물리치는 거 아니야?"
"북부가 전부 뭉친다면 당연히 막아 낼 수 있는 거지."
일반 유저들은 아르펜 왕국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전쟁은 안될 거라는 생각을 가졌다.
풀죽신교의 연전연패를 냉정하게 지켜보니 하벤 제국이 과연 강하다는 평가를 내렸던 것이다.
중앙 대륙에서 이주해 온 유저들의 경우에는 직간접적으로 하벤 제국의 강력함을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섣불리 덤벼들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북부 전체가 전쟁으로 들썩이는 와중에도 가만히 평소대로 생활하는 유저들도 절반이 넘을 만큼 아주 많았다.
그러나 이제 갓 로열 로드에 빠져든 초보자들이나, 전쟁과 관련이 없는 직업들도 더 많이 풀죽신교의 전투단에 동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삐약! 그쪽 제대로 줄 맞춰라."
"째잭잭!"
"다들 날개 간격으로 흩어져라, 구구구!"
천공의 섬 라비아스.
지상에서는 까마득하게만 보이는 조인족의 도시에도 풀죽신교는 퍼져 있었다.
라비아스에 방문하는 일반 유저들도 매우 많았지만, 조인족을 선택하게 된 유저들은 초창기에 심각한 고민을 했다.
ㅡ 조인족을 하더라도 풀죽신교에 가입을 할 수 있나요?
ㅡ 조인족의 부리 구조상 죽을 먹기에는 불편함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 해결책이 있습니까? 조인족은 꼭 고르고 싶은데 죽도 먹고 싶고… 미치겠습니다.
ㅡ 조인족은 어떤 풀죽신교 지부에 가입해야 됩니까? 설마 지렁이죽 같은 건 아닐 테죠?
조인족은 대륙의 땅 위에서 살아가지 않는다.
자유롭게 대륙을 오갈 수 있는 넓은 생활 반경을 가지고 있으며 지치지 않고 바다까지도 나아갔다.
초기에는 멋모르고 바다 위를 날아다니다가 힘이 빠져서 바다에 떨어져서 목숨도 많이 잃었다.
비행에는 큰 매력이 있어서, 날개를 펼치고 나면 땅에 내려앉기가 싫어졌다.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부터 날기 시작하여 밤하늘의 볌들을 보며 날갯짓하는 그 상쾌한 기분은 조인족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다.
섬이나 암초를 발견하면 잠깐만 쉬어 가며 물고기도 잡아 먹으면서 자유를 누린다.
그렇지만 어떤 지지대도 없는 망망대해에서는 영락없이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죽음으로 점철된 선배 조인족의 탐험 끝에 안정된 비행경로를 찾아낼 수가 있었고, 바다 위를 누비며 다니는 선박들도 늘어나서 뱃머리에서도 여유롭게 쉬었다.
선원들이 던져 주는 물고기들을 받아먹으면서 높은 곳에서 항해 방향을 알려 주었다.
북부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던 조인족 유저들은 기꺼이 하벤 제국과의 전쟁을 시작하기로 했다.
아르펜 왕국과 출죽신교, 북부 유저들의 문화와 정신에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라비아스의 광장에는 맨바닥과 나뭇가지에 수십만 마리의 조인족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공중에도 떠 있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조인족의 특성상 몸 위로 떨어져서 엉키거나 할 수도 있었지만, 정확히 날개 간격으로 서 있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라비아스의 조인족이다, 짹짹!"
"풀죽!"
"우리 조인족은 정의를 실천하며, 약한 이들을 보살필 줄 안다."
"풀죽!"
"단단한 발톱과 뾰족한 부리는 적들을 공격할 것이며, 우리의 자랑거리인 날개는 승리를 안겨 줄 것이다."
"풀죽!"
"자,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전투단을 창설한다. 우리의 이름은 풀죽 하늘부대다!"
"풀죽! 풀죽!"
풀죽 하늘부대의 창설!
지상뿐만 아니라 하늘을 제압할 수 있는 새로운 전투부대가 결성되는 순간이었다.
조인족은 먼 거리를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으며, 요새와 같은 지형지물에도 제악을 받지 않는 특성이 있다.
조인족이 본격적으로 날개를 펼치고 바람을 타면 지상의 구조물들을 무용지물로 만들며, 궁수나 마법사가 모여 있는 후방 부대를 실컷 괴롭히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조인족은 경험에 의해 자신들의 태생적인 한계도 잘 알았다.
전쟁에서는 하늘을 활용할 줄 아는 조인족이 한없이 유리할 것 같지만 또 그렇지만도 않았다.
하늘을 날아다닐 때는 신속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공중으로 쏘아지는 무작위 공격을 알고 피하기란 어렵다.
그냥 하늘로 대충 쏜 화살 한 발에 조인족이 스스로 날아와서 맞아 죽는 것이다.
전투가 벌어지다 보면 주의를 하더라도 매우 자주 발생하게 되는 중대한 약점이었다.
갑옷을 입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종족이기 때문에 방어력도 정말 약했다.
조인족의 공격 수단인 부리는 인간의 방패를 뚫지 못하며, 갑옷을 입은 병사들을 상대로도 그다지 결정적이지는 못하다.
몇 차례를 쪼아 대더라도 상대가 죽지 않고 버티다가 간단한 반견이라도 가하면 순식간에 역으로 위험해질 수 있는 것이다.
조인족이 활을 쓴다면 전쟁에서 치명저인 전략 부대로 활용이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화살을 적에게 맞힐 수 있는 공격 범위까지 들어가게 되면 마찬가지로 장거리 마법사의 사정거리에 속하게 된다.
모든 마법들이 원거리 공격력을 갖는 건 아니지만 화살과 비슷한 형태로 나아가는 파이어 볼트, 선더볼트, 아이스 볼트 등의 마법은 유효 공격 거리가 매우 길었다.
하늘을 난다는 건 아주 섬세한 작업이라서 날개에 부상을 입거나 기털이 타 버리면 그대로 땅에 추락한다.
ㅡ 레벨이 40밖에 안 되는데… 뱀도 징그럽고 무서워서 아직 못 잡아먹어 봤어요.
ㅡ 전 둥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있어요. 저랑 같이 시작한 동기는 접속률이 낮아서 아직 알이에요.
ㅡ 고소공포증이 있는 제가 조인족을 골랐는데 어떻게 하죠. 하늘을 날면 미쳐 버릴 것 같은데요.
조인족은 신생 종족인 만큼 강한 이들이 드물기에 전쟁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가 더욱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약점도 곧 인간 유저들의 합류로 극복했다.
"여러분이 싸우실 필요는 업습니다. 우리를 적 진영에 떨어뜨려 주기만 하면 됩니다!"
"적들을 향해 돌격하는 것도 질렸어요. 아예 적들이 가득 차 있는 곳에서 싸우면 훨씬 편합니다."
"뭐, 목숨이야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멋지게 죽는 것으로도 충분하죠. 저는 독버섯죽이니까요."
북부의 유저들은 조인족에게 자신들을 발톱으로 잡아서 적 진영에 내려 달라고 했다.
이들 역시 아주 강하지는 않지만, 그렇더라도 거리와 지형의 제약을 넘어서는 마법사와 같은 전략 부대를 공중에서 습격한다면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또한 적들의 방어선을 넘어서 점령당한 지역을 다시 빼앗기에도 효과적이었다.
용맹으로 무장한 풀죽 공수부대의 창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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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살 강에서 벌어진 사태는 헤르메스 길드에도 상당한 심리적인 충격을 안겨 주었다.
제국 전체에서 어비스 나이트와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연회가 벌어지는 와중에 들려온, 흥이 왕창 깨지는 소식이었다.
하벤 제국의 절대적인 위엄에 손상이 가는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와 같은 시기에 그처럼 안좋은 사건이라니요."
라페이의 부드러운 말에 전쟁을 담당하는 수뇌부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지략으로 헤르메스 길드를 이끌어 온 라페이는 아직까지 한 번의 실수도 만들지 않았다.
물론 인간이 앞으로 벌어지게 될 모든 결과를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어쩌다가 길드에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얼마 후면 수십 배의 이득을 거두었으니 전체적으로 보면 성공만 거둔 셈이다.
라페이가 길드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동안 절대적이었다.
길드의 모든 무력은 바드레이를 중심으로 짜여 있지만 그 그물을 다루는 사람은 다름 아닌 라페이다.
많은 사람들은 라페이와 바드레이가 서로 갈라지고 난 이후를 걱정하기도 했다.
각자 추종자들이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알력은 헤르메스 길드의 분열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바드레이도 라페이도 자신들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았다.
바드레이는 빛나는 태양과도 같은 존재다.
어둠이 없으면 태양이 빛나더라도 오래가지 못한다.
라페이 역시 무렵 집단을 이끌기보다는 그들의 힘을 가지고 이용해서 더 큰 것을 얻어 내는 것을 잘했다.
서로 상대방을 필요로 하다 보니 거대한 권력을 쥐고도 분열이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사람이 살다 보면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자주 벌어지는 만큼 둘이 적대할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로열 로드는 사실 한 사람이 먹기에는 너무나도 큰 머이다.
단 1명의 황제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로열 로드.
그러나 끝을 몰므는 유저들의 유입으로 인하여 그 가치는 하늘을 찌른다 해도 좋을 정도였다.
섣부른 분열로 헤르메스 길드와 하벤 제국의 전력을 약화 시키기보다는 안정된 오랜 통치가 가져다주는 이득이 훨씬 더 크다.
라페이와 바드레이는 그 점에서 서로 공감대를 형성했고, 상대방을 믿었다.
'그는 바보가 아니다. 나를 밀어내지 않는 편이 이익이란 걸 안다. 이미 그는 황제 자리뿐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을 가졌으니…….'
'나보다도 똑똑해. 라페이가 없었다면 헤르메스 길드는 이렇게 빨리 이 자리에까지 올라오지 못했겠지. 라페이를 몰아낸다면 그만큼 길드도 약해진다. 길드의 약점을 속속들이 아는 그가 다른 세력에 들어간다면… 위험하다.'
아군이라도 함부로 믿을 수는 없는 세계.
잠깐씩 유혹이 들더라도 감정을 추스르고 조금만 생각을 해 본다면 상대방과 함께 가는 편이 훨씬 낫다는 걸 느끼게 된다.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다 보니 서로가 배신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 헤르메스 길드에 어마어마한 제안도 들어왔다.
상상조차 되지 않는 금액의 투자!
헤르메스 길드가 앞으로 로열 로드에서 거두어들일 금전과 권력의 일부를 바탕으로 터무니없는 액수의 투자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제안이 정말일까?"
"물론입니다."
"그렇게까지는 생각을 못 해 봤는데. 너무나도 많은 돈이라서… 오히려 잘 믿기지가 않아."
"헤르메스 길드가 커지면서 약간은 이와 비슷한 제의가 올 수도 있으리라 생각은 했습니다. 이런 액수까지야 예상을 못했지만요."
"받아들여야 되겠지?"
"금액상으로는 불만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내민 손을 바로 잡아 줄 필요는 없겠지요. 조금은 우리에게 더 유리하도록 협의를 해 볼 예정입니다.'
"지금의 제안으로도 판을 깨지는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점도 충분히 고려하고 있습니다."
라페이와 바드레이 그리고 핵심 수뇌부 몇 명은 제안을 거부 할 수 없었다.
돈의 유혹.
10억, 20억 정도의 돈이라면 그들도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습게 여길 수 있겠지만, 고작 그 정도의 규모가 아니다.
단위가 몇 개는 다른 수준인 것이다.
돈에 의해서 운명이 바뀔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협상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금액과 계약 조건, 법적인 부분까지도 따져야 했으니 라페이와 바드레이가 핵심 수뇌부와 함께 신경을 쓰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건축가들이라니, 별일이 다 있군요."
"전쟁에서 패배한 건 아니니까요. 뭐, 패배할 리도 없겠지만……."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기에 헤르메스 길드의 일반 유저들은 수뇌부의 눈치만 보았다.
그들이 어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북부로 추가적인 출병이 이루어지리라.
그런데 수뇌부의 회의가 소집되어도 별다른 방침이 결정되진 않았다.
군사적으로 밀린 것도 아니고, 그저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진 것에 불과하다.
막대한 인원과 물자를 북부에 쏟아부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다.
완벽한 승리를 위해서 추가적으로 군대를 보내기로 할 수도 있겠지만, 라페이와 수뇌부는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북부로 더 많은 병력을 보낸다면 대외적으로 헤르메스 길드가 불안하게 느낀다고 보일 수도 있는데, 지금은 그럴 시기가 아니다.
또한 페실 강을 연결하는 다리가 무너진 이상 대군이 건너가는 데에도 며칠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지켜보기로 했다.
"평소라면 적들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을 텐데 정보대를 다른 쪽으로 쓰다 보니 이런 일도 벌어지는군요."
"정보대가 헤르메스 길드의 자랑거리라고는 해도 파견한 인원이 북부 전체에 퍼져 있다 보니 그물망처럼 모든 걸 알아차릴 정도로 세세하게는 안 되었겠죠."
"건축가들이라서 정보대에서도 관심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기야 건축가 따위가… 전쟁에서 별 쓸모도 없었죠. 감히 우리 제국을 침략해서 성공을 거둔 이들이 없어서 요새를 축성하지 않아도 되었고요."
모든 정복 계획을 수립하는 수뇌부에서는 북부 전쟁에 대해서도 수없이 검토해 보고 확실한 승리로 결론을 내렸다.
위드의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들을 감안하더라도 이미 벌어진 전력 차가 너무 어마어마했다.
모험과 전쟁은 틀림없이 다르다.
패배를 하려고 해도 그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의 강력한 군대가 출정을 나갔다.
수뇌부에서는 비밀리에 북부의 실질적인 힘을 약화시킬 다른 작업도 준비를 하고 있어서 더 마음을 놓았다.
라페이는 북부의 전쟁에 대해서 결론을 내렸다.
"위드와의 전쟁은 며칠 내로 벌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린 패배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다른 전쟁들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승리로 끝나고, 아르펜 왕국의 궁전은 파괴되고 북부 대륙 역시 우리의 지배하에 들어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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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포섭한 인원은, 죽순죽에서는 890명 정도입니다.
"죽순죽은 별 가치가 없지 않습니까?"
"레벨은 낮아도 특별히 영향력과 신망이 있는 이들을 위주로 추렸고, 특히 광부와 상인 같은 비전투 계열들이 다수 포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쓸모가 있겠군요. 버섯죽은 상황이 어떻지요?"
"레벨 350대를 기준으로 그보다 상위인 유저들에게 개별적으로 접촉하여 포섭이 완료되어 갑니다. 미리 사전 작업을 실시해서 성공률이 높아 약 2,000여 명쯤 됩니다."
"대추죽과 도토리죽은 지속적인 작업을 진행 중인데,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포섭된 이들을 통한 소개를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하벤 제국의 정보대는 북부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그들은 음지에서 살아가며 대륙 정복을 위한 정보 수집과 사전 작업을 진행했다.
정보대에 속한 유저는 명성을 높일 만한 퀘스트를 진행해도 안 되며, 헤르메스 길드 내에서 다른 사람들과 친분을 깊게 다져서도 안 된다.
여러모로 제약이 많은 직업이지만 길드 내에서 그만한 물품과 금화, 추후의 직위를 보상으로 약속받고 활동했다.
하벤 제국의 정보대에서 입수한 북부 유저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핵심 인물 포섭 작업은 정복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되었다.
"그런데 고작 북부와의 전쟁을 위해서 이렇게 많은 대가를 약속하고 포섭을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수뇌부에서는 정복 이후의 통치를 감안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북부에는 저항이 심할 테니 하벤 제국에서 직접 통치를 하기보다는 우리의 앞잡이를 놓아두는 것이지요."
"그래도 반란이 일어나는 걸 막진 못할 텐데요."
"군대를 이용하여 즉시 진압합니다. 그보다도, 앞으로는 포섭 작업은 축소하고 가능한 많은 정보대원들을 대지의 궁전으로 이동시키라는 수뇌부의 명령입니다."
"대지의 궁전이라면 위드가 있는……."
"이미 헤르메스 길드의 암살단이 대지의 궁전으로 짐입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 그들과 협력하여 위드를 척살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위드가 대지의 궁전에서 벌어질 전투에 나타난다면 목숨을 빼앗을 계획이었다.
전쟁에서 뼈저린 패배와 죽음을 경험하게 해 주는 것이 가장 확실하지만, 위드가 불리해지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지 말란 법이 없다.
위드는 확실히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생존력만큼은 뛰어나다는 점을 누구나 인식하고 있었다.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마저도 성공한 위드가 빠져나가서 북부를 돌아다닌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귀찮은 일이 된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가능하면 전쟁 중에 군대를 통해서 위드를 척살하고, 여의치 않으면 대대적인 암살자들의 투입으로 해결을 보기로 했다.
전쟁에 투입된 하벤 제국의 병력이 엄청난 만큼 어느 쪽이든 위드의 죽음은 결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았다.
★★★★★★★★★★★★★★★★★★★★★★★★★★
"후후후."
던전 사냥을 하고 있던 위드에게도 예상대로 페실 강의 작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유셀린의 선술집에서 강가를 지켜보던 마판이 귓속말로 알려 준 것이다.
"여러분, 오랜만에 기쁜 소식입니다."
"뭐요."
파이톤은 땅에 주저앉아서 물었다.
불굴의 체력을 가진 위드를 따라다니다 보니 하루 만에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그들이 힘이 빠지면 위드는 앞장서서 싸우면서 몇 배나 되는 몬스터들을 해치웠다.
조각 파괴술로 예술 스텟을 체력으로 몽땅 몰아 놓은 만큼 지치지도 않고 팔팔했다.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포위한 몬스터에게 두들겨 맞아도 높은 생명력을 바탕으로 저돌적으로 싸웠다.
파이톤과 남자는 입가에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맹렬한 공격을 퍼붓는 위드를 보면서 질릴 만큼 질리고 말았다.
"하벤 제국군의 북부 정벌군이 페실 강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합니다."
"오, 축하드리오."
"좋은 소식이군요."
파이톤과 남자는 건성으로 대꾸를 했다.
그들도 헤르메스 길드가 이끄는 하벤 제국을 밉상으로 생각했다.
실질적으로 중앙 대륙에서 그들과 약간씩 마찰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위드가 잘되었다니 왠지 모르게 상한 치킨을 먹었을 때처럼 창자가 꼬이는 기분이었다.
위드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들이 페실 강을 쉽게 건너지는 못할 겁니다. 우리에게 사냥을 할 수 있는 며칠의 시간이 더 주어진 것 같습니다."
안색이 하얗게 질리는 세 사람.
파이톤과 남자만이 아니라, 페일조차도 그러한 사태에 대해서는 감당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페일이 힘겹게 이야기했다.
"그러면 여유가 있으니 앞으로는 쉬엄쉬엄해도……."
"기회가 찾아왔군요. 사막의 가능한 모든 던전들을 쓸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위드는 그렇게 사냥 동료들을 끌고 던전을 정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막의 던전들은 거의 독차지하고 있었으니, 고기 뷔페를 능가하는 던전 뷔페!
반 호크와 토리도를 소환해서 철저히 부려 먹고, 약간 까다로운 던전은 조각 소환술로 누렁이와 금인이도 데려왔다.
어떤 던전이든 필요한 맞춤 전력을 즉각 보충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사냥의 중간중간 필요에 의해 넉넉하게 휴식도 취했다.
알베론의 신성 마법이 있더라도, 그리고 영양가 만점의 맛있는 요리를 먹더라도 체력이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사막 지역에서는 특히 체력이 약해지면 몸살을 앓을 수 있기 때문에 피로를 잘 관리해야 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까요. 3시간 동안 휴식을 취하겠습니다. 식사도 하시고, 편하게 누워서 쉬세요."
위드의 말에 다들 그 자리에 널브러졌다.
어느새 페일도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파이톤과 남자와 함께 잘 어울렸다.
"3시간이면 제법 쉴 수 있겠는데요."
"그러게나 말이오. 이게 웬 떡인지."
"아마 자기도 하다 보니 좀 질렸을 겁니다. 인간이니까요."
그렇게 3명이 대화를 나누며 쉬고 있는 동안에 위드는 조각칼을 꺼냈다.
필요한 조각 재료는 근처 널려 있는 모래를 활용했다.
사막의 모래를 쌓아서 굳히면서 만드는, 시간과 자연의 조각품.
모래로 형성된 조각품이 시간 조각술의 효과에 의해 조금씩 깎이고 무너져 내렸다.
『 절대적인 대제왕
사막 지역을 통합한 위대한 대제왕의 조각품이다.
사막에서 살아가는 모든 부족들은 이 조각상 앞에서 경배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예술적 가치 : 54 』
"음, 이곳에서는 내 조각품을 위주로 만들면 충분하겠군. 계속 우려먹다가 질리면 부하드을 하나씩 조각하는 것도 괜찮겠지. 근데 부하들이 어떻게 생겼더라?"
전일, 전이 등, 부하로 거느렸던 사막 전사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려고 해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벌써 다 써먹고 단물이 쏙 빠진 후였기 때문!
위드는 조각 파괴술을 이용하여 전투를 하고, 스킬의 효과가 끝나고 난 휴식 시간에는 조각품을 깎았다.
밥도 짓고, 검과 방어구도 손질하며, 조각품을 깎아야 했으니 휴식이 없었다.
지켜보는 이들이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의 노가다의 강행군이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흘렀다.
현실에서의 식사와 화장실 출입, 4시간의 정기저인 수면외에는 사냥과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를 위하여 순전히 로열 로드에 몰두했다.
사냥 동료들이 접속하지 않더라도 조각 생명체와 다니거나 조각품을 깎을 수 있으니 쉬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시간 조각술을 달성하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너무나도 결정적인 차이가 날 수 있다.
하지만 조각술 최후의 비기인 만큼 숙련도는 눈꼽처럼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자. 노가다야말로 예술의 꽃이니까! 오늘 노가다를 좀 더 하면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하루의 시간을 줄일 수 있어."
하벤 제국의 북부 정벌군도 페실 강을 건너기 위하여 고군분투를 했다.
만약 페실 강을 우회한다면 지금까지 정복한 지역보다도 훨씬 먼 거리를 돌아가야 한다.
"초대형 뗏목 수천 개를 보내서 일제히 건너도록 합시다. 강의 반대편을 장악하고 나면 하루 내에 모든 병력이 건너갈 수 있을 것입니다."
군단장들은 그렇게 결정을 했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뗏목을 만들어야해 했기에 근처의 두꺼운 나무들을 벌목하기 위해 부대들을 파견했다.
힘 좋은 기사들이 있었기에 나무를 벌목하여 뗏목을 만드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은 목표라고 생각했다.
"여기 숲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 저 산의 나무들은 다 어디로 간 것입니까?"
벌목을 하러 나온 기사대는 황당해했다.
진군을 해 오면서 지나쳤던 수많은 산과 숲이 몽땅 사라졌다.
나무가 심겨 있던 장소에는 무언가에 심하게 파헤쳐지기라도 한 듯한 흔적만 남아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이상한데… 주위를 좀 둘러봅시다."
허탕을 치고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기에 기사대는 수색을 실시했다.
그리고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나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무들은 뿌리를 다리처럼 이용하여 먼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런 짓을 벌일 수 있는 것은 엘프들!
북부의 엘프 유저들이 나무들을 먼 곳으로 옮겨 버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어서 엘프들을 죽이고, 본대에도 보고를 해라!"
북부 정벌군에서는 나무를 구하기 위해서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했다.
결국 페실 강으로 나무를 운반해 와서 뗏목들을 조립하는 데에도 닷새나 걸렸다.
그렇다고 강을 바로 건널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필이면 비가 내려서 강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더 기다렸다.
"이것은 정말……."
"우리에게는 불운이로군요."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원망스럽다는 듯이 하늘을 봤다.
당장 강을 건너갈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천막까지도 짐을 따로 챙겨 놓아서 병사들이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병사들의 사기가 하락할 텐데요."
"그보단 체력 저하나 병이 생겨나는 것이 더 걱정입니다."
지휘관이 되어서 병사드로 가득한 군단을 이끄는 느낌은 놀라울 정도였다.
자신이 지휘하는 몇만 명의 병사라면 어떤 성이라도 정복을 시도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북부 정벌군이라는 명예와 자긍심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알카사르의 다리가 무너지고 난 이후로 사소한 문제들이 계속 발목을 잡으니 군단장들도 인내심이 점점 줄어들었다.
비가 완전히 그치고 난 이후로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가 되었다.
하벤 제국의 북부 정벌군은 뗏목을 타고 페실 강을 건넜다.
1회의 상륙을 마치고 나서 북부 유저들이 필사적으로 덤벼들었지만, 마법사와 기사, 궁수 등으로 이루어진 최고의 정예들은 무사히 버텨 내었다.
전투가 벌어지는 사이에 2차, 3차 상륙이 이루어지면서 안정화 작업에 성공.
불리한 지형으로 인해 8만에 달하는 병력 피해를 입었지만 노력 끝에 군대와 보급 물자들이 전부 강을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