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대제왕의 퀘스트
위드는 사막에서의 사냥으로 레벨을 올려서 422가 되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성장으로, 던전에서의 경험치 2배의 혜택을 봤지만 그만큼 부지런하게 사냥을 했던 것이다.
시간 조각술로 초급 6레벨이 되었다.
대작이나 명작까지는 아니지만 걸작이 3개나 나온 결과였다.
"흠, 정말 스킬 레벨이 빨리 오르지를 않는군."
조각품에만 전념을 하더라도 쉬운 게 아닌데 잃어버린 레벨을 복구하기 위해서 사냥도 해야 하니 최선을 다해도 한계가 있었다.
"이럴 때 바로 끝나면서 보상은 큰 퀘스트가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보급과 전리품의 판매를 위해서 오아시스와 강 주변에 번창한 사막 도시들에도 한 번씩 방문을 했다.
"멋진 전리품을 많이 가져오셨군. 그대야말로 전사 중의 전사라고 할 수 있소."
"목걸이로 만들면 기가 막힌 이 상아의 가격은 얼마만큼 쳐주시겠습니까?"
"상아라면 찾는 사람이 많아서 800골드 정도는 쳐 드리지."
"기왕 쓰시는 김에 200골드만 더 쳐주시죠. 제가 이미 다 가공을 해 왔습니다."
"정말 훌륭한 세공품이오. 그대의 뜻이 그렇다면 그 정도 가격은 인정을 해 주는 게 옳겠지. 앞으로 계속 거래만 해 주시오."
위드는 사막 도시 상인들과도 친분을 다졌다.
번창한 사막 도시는 중앙 대륙이나 북부와는 전혀 다른 문화로 성장했다.
상체를 벗고 다니는 강인한 전사들의 고향.
물 담배를 피우며, 사치품과 예술 시장이 발달했다.
위드가 사막의 대제로서 남겨 놓은 몇 개의 조각품이 도시의 보물처럼 그대로 간직되어 오고 있었다.
팔로스 제국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았다.
중앙 대륙에서 약탈한 다양한 귀중품들이 도시 귀금속 시장에서 거래되었다.
"인구는 늘어났지만 경제적으로는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군."
위드는 사막 도시를 돌아다녀 보고 나서 한숨을 쉬었다.
한때나마 자신의 흔적이 남아 있다 보니 앞으로 사막 지역도 발전을 거듭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사막의 특성상 교통이 편리하지도 않고, 농장이나 광산 개발도 이루어지지 못한다.
도시들도 오아시스와 강을 반드시 끼고 있어야 했기에 더 이상 확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과거에 사막 지역에 비를 내리게 하면서 비옥한 곡창지대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것마저도 현재는 물이 메말라서 경작 범위가 많이 줄어들었다.
버려진 땅과 도시들은 몬스턱 들끓는 폐허로 남았다.
특수작물 재배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고작해야 밀과 보리, 쌀과 같은 곡물들을 키워서 식량을 해결하고 있었다.
양과 낙타를 키우는 유목민들은 여전히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닌다.
역사적인 팔로스 제국의 흔적으로 인해 사치품 시장이 발달해서 값비싼 물품들이 많았지만 앞으로의 전망이 결코 밝지만은 않았다.
"먹고살 거리가 없어. 청년 실업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까. 그나마 전사들이 사냥을 해서 돈이 돌아가는 구조군. 용병 산업 정도만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사막 도시에 들어가 보면 숱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팔로스 제국의 보물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가? 내 솔깃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듣고 싶다면 2,000골드만 내게."
제국의 보물!
파이톤과 남자는 솔깃했지만, 위드와 페일은 무덤덤했다.
북부로 상당량 빼돌려지긴 했지만 팔로스 제국의 보물이 다른 장소에도 어느 정도는 묻혀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보물의 양과 가치만큼이나 찾아내는 어려움이 보통이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북부에서의 발굴 작업도 지지부진한 이 마당에 새롭게 보물을 탐색하기란 무리였다.
"으음, 사막의 대제왕 위드. 그분의 전설은 우리 사막의 아이들이 매일 듣고 자라는 것이지. 우리 어머니께서도 나에게 밤마다 이야기를 하셨다오."
"어떤 내용입니까?"
위드는 자신의 평판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가 궁금했다.
"사막의 대제왕은 철혈의 피가 흐르는 분이었소. 이 사막을 완벽하게 평정하고 나서 대륙으로 진출하는 대단히 큰 업적을 남기셨지. 그분이 건국한 팔로스 제국 시대는 우리 사막인들의 역사에서는 황금기라고 부를 수 있다오."
"정말 훌륭하신 분이군요."
사막 도시를 들어가면 위드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감돌았다.
후인들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하니 나쁠 건 없지 않은가.
방문한 사막 도시에 유저들은 상당히 드물었다.
역사가 새로 쓰이며 남부도 다른 지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번창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 중앙 대륙과 인접하고 날씨가 덜 더운 지역에만 유저들이 많은 편이었다.
위드가 다른 사냥 동료들과 함께 있는 장소는 어지간한 레벨로는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가끔씩 만나는 유저들마다 고개를 가볍게 숙여서 인사를 하면서 지나갔다.
끝없는 모래를 걸어서 고요의 사막과 가까운 도시까지 오기는 쉽지 않다.
어려움을 뚫고 이곳까지 온 유저들은 레벨이 높은 모험가들이거나 전사들이었다.
"자네는 꽤나 경험이 많은 모험가처럼 보이는군. 사막에 잠들어 있는 뜨거운 유산을 찾는 도전을 시작해 보지 않을텐가? 별로 어려운 건 없다네. 가볍게 목숨을 걸면 되지."
도시의 노인들은 위드를 보면 가끔 그런 말을 던졌다.
위드의 과거, 사막의 대제왕이 남긴 유산을 찾는 연계 퀘스트로 이어지게 될 소지가 높은 것들.
"됐습니다."
"쉿, 그러지 말고 자네에게만 알려 주도록 하지. 이 광활한 사막에는 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어. 이들을 하나로 묶고 어딘가에 있을 대제왕의 흔적을 찾아낸다면 부와 명예, 권력, 그 모든 것을……."
"관심 없다니까요!"
퀘스트는 도전해 볼 만하긴 했다.
연계 퀘스트를 해결하면서 맞딱뜨리는 고난도, 무엇이 무서울 것인가.
조각술의 비기, 시간 조각술만 쓸 수 있게 된다면 어떤 퀘스트에서도 발군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사막의 비밀들.
도시의 흔적이나 전사들의 매장터, 과거에 알아냈던 몬스터에 대한 정보들이 지금은 대여섯 번씩 우려낼 수 있는 사골 국물처럼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다만 하벤 제국의 북부 정벌군과 싸울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사냥을 통해서 레벨을 올리는 데 충실해야 했다.
ㅡ 하벤 제국군이 페실 강을 모두 건넜습니다.
ㅡ 북부의 유저들이 기습을 감행했지만 별 피해는 입히지 못했습니다.
ㅡ 하벤 제국군 놈들이 잔뜩 독기가 오른 모양인데요. 북부 유저들이 보이기만 하면 지역 전체를 초토화시킬 정도의 마법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ㅡ 대지의 궁전에서 약 10킬로미터 앞까지 진출했습니다. 병사들이 속보로 이동하면 2~3시간 안에 도착 가능합니다.
ㅡ 놈들이 진군을 멈추고 공성 무기를 조립 중입니다. 대형 공성 무기만 약 400개 이상입니다. 한눈에 다 안 보일 정도로 입니다. 대장관이에요!
마판이 정기적으로 현재 상황을 간추려서 보고해 주었다.
대지의 궁전을 향한 북부 정벌군의 위협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었다.
며칠이 지난 후, 이제는 도저히 사막에서 떠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런 날이 결국 오는군."
위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헤르메스 길드에 대한 원한은 손톱까지 사무칠 정도였다.
"갈수록 서민들만 팍팍해지는 이 세상. 삼겹살도 마음 놓고 못 먹고, 과일값은 수시로 오르고, 전기세는 호시탐탐 올릴 기회만 노리고 있지."
사과와 배 가격이 오른 것도 헤르메스 길드 탓!
"아쉽짐나 대지의 궁전으로 가야겠습니다."
위드가 드디어 사냥 종료를 선언했다.
'드디어 끝이다.'
'이 시간이 진정 오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아싸.'
파이톤, 남자, 페일은 만세를 부르고 싶었지만 얼굴색을 딱딱하게 굳혔다.
너무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다시 사냥을 하자고 할지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첫날은 정말 지옥과도 같았지만, 다음 날 부터는 조각품을 깎느라 약간은 해방되었다.
그럼에도 모래바람을 맞으며 던전을 헤매는 일은 경험해 본 것 중에서 최악이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파이톤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바쁜 일이 생겼으면 어서 가야지. 자, 빨리 돌아가세나."
"유린이는 잠시 후에 올 겁니다. 그 전에 떠날 준비를 하지요."
그들은 사막 도시를 돌아다니며 사냥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투자했다.
그림 이동술로는 많은 물건들을 운반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전리품들도 팔아서 보석으로 바꾸고 나서 집과 땅, 상점을 샀다.
사막 도시는 아직 집값이 저렴했다.
앞으로도 이곳까지 와서 살아갈 사람들은 제한적일 것이므로 이득을 크게 거둘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사냥터만큼은 최고 중의 최고였다.
묻어 놓는 셈 치고 투자를 해 놓으면 훗날 언젠가 다시 사냥을 하러 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다시는 안 와.'
'여길 또 오면 사람 새끼가 아니지.'
'늙어서 흙집에도 내가 안 산다.'
유린이 도착하자, 그들은 대지의 궁전으로 떠나갔다.
★★★★★★★★★★★★★★★★★★★★★★★★★★
대지의 그림자.
은링, 벤, 엘릭스로 구성된 베르사 대륙 최고의 모험가 파티는 발할라 신전에서부터 시작된 연계 퀘스트를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엠비뉴 교단을 만천하에 드러나게 했지만, 그들을 몰아내는 데 공헌도 하였다.
엠비뉴 교단이 그림자 속에서 완전한 준비를 갖추기 전에 일찌감치 세상에 부각되게 하고, 신앙심을 강화시키는 신물들을 찾아내고 파괴해 왔던 것이다.
문제라면 그들이 어떤 모험을 하고 있는지 주민들은 물론이고 유저들도 까맣게 모른다는 것이었다.
최종적으로 메타페이아에서 엠비뉴 신의 다섯 번째 팔, 지진을 일으키는 엠비뉴의 철퇴까지도 찾아내어서 영원히 끓는 용암 속에 던져서 파괴했다.
"엠비뉴 교단에 대해서 물어봤는가? 그게 무엇인데?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을 돕는 집단인가 보우?"
"으음, 엠비뉴 교단이라. 마침 배가 고픈데 빵이라도 좀 사 주면 그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 주도록 하지. 그들은 생선을 아주 좋아하는 단체라오."
"은링, 벤, 엘릭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가? 오래전에 들어 본 적이 있군. 요즘에 그들이 뭐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 어디에서 땅이라도 파고 있나?"
대륙을 파괴하며 떠들썩하게 사고를 쳤던 엠비뉴 교단은 그 흔적마저도 대부분 사라지고 난 후였다.
모험가들은 자신의 업적이 알려지지 않으면 심한 좌절감과 부당함을 느낀다.
"으이구. 우리는 1년 동안이나 헛수고를 하면서 돌아다녔군."
"엠비뉴 교단이 싹 사라져서 다행이기는 한데, 정작 우리가 한 건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네요."
"다른 모험을 해야 하는데, 기운이 빠져서 그냥 푹 쉬고 싶소."
대지의그림자는 휴양지에나 가서 휴식을 치하려고 했다.
발할라 교단의 연계 퀘스트를 따라다니면서 사냥과 탐험은 지긋지긋하게 했다.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려고 했다.
"쓸 만한 낙타를 구하신다고?"
"네. 빠르지 않아도 되니 말을 잘 듣고 튼튼한 놈으로 주세요."
"우리 사막 지역에서는 쌍봉낙타가 최고지. 가격은 좀 비싸지만 어디든 갈 것이오."
"그 녀석으로 주세요."
대지의그림자 파티는 메타페이아에서의 퀘스트를 완료하고 사막 지역에 있었다.
그들은 낙타를 구해서 사막 지역을 벗어나려고 했다.
"떠난다니 아쉽구려. 뭐, 이제 갈 사람들이니 필요 없겠지만, 그래도 솔깃한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 보시겠소?"
강렬한 퀘스트의 느낌!
은링은 지쳐서 관심도 없었지만 모험가의 습관으로 들어는 보자고 판단했다.
어떤 정보라도 들어서 해가 될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이야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시 내에서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가게라도 알려 준다면, 다른 도시로 이동을 하면서 교역으로 짭짤하게 돈을 벌 수 있었다.
"우리의 사막의 사람들은 원한과 은혜를 잊지 않지. 가끔 우리는 생각을 해 본다오, 사막의 대제왕 위드 님께서 나타나지 않았다면 우린 과연 어떻게 살고 있었을지."
"아, 위드 님요."
은링은 맥 빠진 소리를 냈다.
다른 유저들은 위드를 모험가로서 우러른다.
모든 불가능했던 퀘스트의 해결사이며 어떤 역경도 돌파하니 대단하게 보는 것도 당연했다.
아르펜 왕국이 위기에 빠져 있고 개인적인 전투 능력은 바드레이에게 밀리지만, 퀘스트에서만큼은 누구나 최고로 인정을 했다.
그 부분이 모험을 전문으로 하는 대지의그림자 파티에는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실력 부족이 아니라, 발할라 교단의 연계 퀘스트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그 이상의 업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의 주민들은 어디에서나 위드를 칭송하고 있었다.
은링은 뒤로 돌아섰다.
"시간만 낭비했네. 어서 가요."
엘릭스와 벤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사막에까지 와서 헛수고를 한 마당에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다니!
낙타 상인이 떠나려는 그들의 등 뒤에서 말했다.
"대제왕께서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인 팔로스 제국을 건국하셨지만 우리 사막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거룩한 권능으로 탄생시킨 강물과 오아시스들을 더욱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소. 부모님과 우리, 그리고 아이들이 마실 물의 고마움이 어떠한 것인지는, 사막에서 살아 본 적이 없다면 알지 못하겠지."
"네네, 그런데 저희는 바빠서 이만……."
"그 생명줄이 점점 메말라 가고 있소. 위대한 대제왕의 유산도 허락된 수명을 다해 가고 있는 것이지. 그리하여 사막은 지금 아주 거대한 위기에 휩싸이게 되었소. 줄어드는 오아시스와 메마르는 강줄기. 대제왕에 의해 극적으로 통합되었던 사막 부족들은 생존을 위해 다시금 서로를 증오하고 있지. 사막 전체를 휘몰아치게 될 피의 모래바람이 일어나기 직전이라고 할 수 있소."
은링과 엘릭스, 벤의 발길이 뚝 멎었다.
아무래도 역시 퀘스트의 느낌이 강렬했다.
듣지 않고 떠나기에는 모험가의 본능이 몸을 붙잡았다.
돌아서서 눈치를 보던 그들 중에서 은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물이 부족해져서 부족들 간에 큰 싸움이 벌어지는 건가요?"
사막 부족들 간의 싸움이라면 곧 지역 전체를 둘러싼 전쟁으로 커질 수 있다.
위드의 모험으로 인해 사막 지역의 인구도 상당히 많아졌기 때문에 그것은 보통 일이 아니리라.
당장 사막에서 활동하는 유저들이 위험해지고, 생필품의 가격이 급등하게 될 것이다.
"낙타의 발자국도 하루가 지나면 모래바람에 완전히 지워지듯이, 이대로라면 조만간 예정된 일이나 다름이 없다오. 몇 번의 해가 뜨고 지고 나면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와, 발자국이 모래에 뒤덮이듯이 사라지게 될 자들이 결정 나겠지."
"양보하고 참으면 좋을 텐데요."
"우리도 바보는 아니오. 이런 싸움이 우리 모두를 파괴한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어렵게 세워진 도시들과 문명을 지워 버리게 되겠지. 하지만 물은 절대로 양보할 수 있는 재산 같은 것이 아니지. 지금처럼 부족들끼리의 감정이 격해지게 되면 해결할 수단은 오직 전쟁뿐."
숙련된 모험가들은 주민들의 말을 그냥 흘러듣지 않는다.
'규모가 클 것 같아.'
'으음, 이런 퀘스트를 원했지.'
'전쟁을 막아 내고, 사막 부족들을 평화롭게 만들라는 부흥 퀘스트일까? 단순하면서도 어려울지도.'
그리고 앞으로의 이어지게 될 말을 기다렸다.
"우리 사막 부족들끼리의 전쟁을 막는 것은 단 한 가지의 방법뿐일 것이오. 전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사막 전체를 하나로 통합하고 이끌 대제왕이 등장을 하는 것이오."
"네엣?"
"대제왕께서 이 시막에 남겨 놓은 장비들과 힘의 유산을 찾아서 그분의 후예가 되는 것이지."
벤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말씀만 들어도 상당히 어렵겠습니다. 대제왕의 유산이라면 그 가치도 엄청날 테고요."
전쟁의 시대 당시에 위드가 쓰다가 남긴 장비라면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가치가 있었다.
"대제왕의 부하들은 그분이 쓰던 장비들과 힘의 유산을 매우 위험한 장소에 숨겨 놓았다고 하오. 들리는 소문으로는, 목숨을 걸지 않으면 도전할 수 없는 곳이라고들 하지."
"……."
"수많은 사막 전사들이 무가치한 전쟁을 막고 대제왕의 위업을 잇기 위하여 존엄한 힘의 유산을 찾기 위한 도전을 하고 있소. 대제왕의 지식과 힘을 얻는다면 이 사막을 지배하는 왕 중의 왕이 되겠지. 하지만 이건 순수하고 영예로운 사막 전사들만이 할 수 있는 숭고한 임무요."
"그건 좀 곤란한데요."
대지의그림자에서는 당혹스러웠다.
위드와 관련이 있는 퀘스트이기 때문에 약간은 꺼림칙한 기분도 들었지만, 규모나 난이도 측면에서는 여러모로 구미가 당기기는 했다.
유물이나 특별한 발견물 같은 건 돈을 많이 벌거나 본인이 쓰는 정도로 만족을 하지만, 사막 지역을 개선하는 업적은 모험가로서 끌리는 면이 아주 컸다.
하지만 사막 전사만 가능한 퀘스트라면 지금 와서 전직을 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도굴꾼 엘릭스가 물었다.
"사막 전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전직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냥 참고삼아 알고 싶어서였다.
"사막에서 자라나서 태양을 피부로 느끼며 모래를 밟으면서 걸어간 남자들만이 자격이 있소."
"사막 전사가 될 수 없는 우리가 대제왕의 유산을 찾기는 애초부터 무리로군요."
"그렇지는 않소. 수많은 사막의 전사들이 올바른 길을 구하기 위한 인도자를 찾고 있지."
"인도자라면, 옆에서 돕거나 길을 알려 주는 사람을 의미합니까?"
"맞소. 전사들은 대제왕을 향한 존경심과 큰 꿈, 재능을 가지고 있어. 사막에 피바람이 불어오지 않게 하고 부족들을 하나로 이끌 수 있는 대제왕의 탄생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이오. 사막 전사들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겠소?"
띠링!
『 사막 전사의 길잡이
사막에 잠들어 있는 전설을 깨우기 위해 젊은 전사들은 해골 모래산으로 달려가고 있다.
오래전 대제왕 위드가 사막 전사들을 데리고 퇴치한 부르고뉴의 새끼들이 부화한 것.
전사들을 도와서 모래산에 있는 괴물을 퇴치하고 영웅의 업적을 좇아라.
위험에 빠진 전사들은 인도자를 따르게 될 것이다.
난이도 : A
보상 : 사막 전사의 믿음.
성과에 따라서 다수의 사막 전사들을 이끌 수 있음.
퀘스트 제한 : 명성이나 레벨에 대한 제한 없음.
열흘 이내에 완료해야 함.
대제왕의 다음 퀘스트로 이어지게 됨. 』
"조금 까다롭긴 하겠는데요. 직접 퀘스트를 진행하는 방식도 아니고 전사들을 보살펴야 하다니, 이거 애 보는 것도 아니고."
엘릭스가 불평을 중얼거렸지만 다들 진한 흥미를 느꼈다.
사막 전사들을 통솔하며 퀘스트를 오나수해 가는 새로운 방식은, 위험도를 떠나서 재미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호기심이 들면 결코 포기할 줄을 모르는 모험가들은 그런 쪽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류에 속했다.
"합시다."
"해 봐요."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사막 전사들과의 퀘스트.
대지의그림자는 사막 전사의 길잡이 퀘스트를 받아들여서 사막 전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아직 젊은 전사들이군. 사막의 기둥이 될 수 있도록 잘 챙겨 줘야지.'
그러나 상상한 것과 현실은 많이 달랐다.
사막 전사는 침을 뱉었다.
"뭘 쳐다보는 거요. 확 눈알을 뽑아 버릴라."
거칠고, 거만하며,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사막 전사들!
압도적인 힘을 보여 주지 않으면 따르지 않는 사막 전사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진정한 고난이 시작되었다.
★★★★★★★★★★★★★★★★★★★★★★★★★★
"정말 춥군."
ㅡ 오늘의 날씨를 무시하신 것은 박사님입니다. 현재 기온은 영상 6도에, 새벽에 내린 비와 풍속 4미터의 바람으로 인하여 체감온도는 더욱 낮은…….
"시끄럽다. 묻지도 않은 말에 대답하지 마라."
유병준은 추위에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공원의 벤치에 옹송그리고 앉아 있는 그를 누가 세계 최고의 부자이며 막후의 실력자, 과학자로 보겠는가.
금융계를 양손에서 주무르더라도 차가운 바람은 어쩔 수가 없었는지, 호주머니로 들어간 손은 나올 줄을 몰랐다.
그가 앉아 있는 나무 벤치에는 물기까지 남아 있어서 엉덩이에 기분 나쁜 축축한 느낌까지 들었다.
유병준은 현재 로열 로드의 세계를 최초로 통일할 가능성이 유력한 바드레이를 만나러 뉴욕의 한 공원에 왔다.
바드레이는 프랑스계 미국인이었다.
그는 오전 5시가 넘으면 규칙적으로 공원에서 달리기를 한다.
우연을 가장하여 직접 만나 보러 온 것이기 때문에 그의 일정에 맞춰서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 오려고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군."
유병준은 뼛속까지 아려 오는 한기를 느꼈다.
머리속은 젊은 시절처럼 변함없이 빠르게 회전하는데 몸은 나이를 먹어 간다는 사실이 한 해가 다르게 느껴졌다.
간밤에 내린 비로 물기가 촉촉한 공원에서는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부지런한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아침의 공원에 가만히 벤치에 앉아 있으려니 끝없는 상념이 든다.
"나도 늙었군."
인생의 대부분을 바친 로열 로드.
불합리한 세상을 조롱하며 자신의 뜻대로 하려고 세웠던 어린 시절의 계획이 있었다.
자신이 만든 가상현실의 주인공에게 개인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거대한 재력과 권력을 넘겨주는 것이다.
계획이 외로움을 이겨 낼 원동력이 되었고, 새로운 기술을 끊임없이 창조해 내는 밑바탕 또한 되어 주었다.
무모할 정도로 거창한 계획의 결실이 좋든 나쁘든 이루어지려는 마지막 단계쯤에 오게 되었다.
로열 로드에서 바드레이로 살아가는 유저를 만나는 건 유병준에게 대단히 중요했다.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기를 2시간 정도.
해가 완전히 떠오르고 난 이후에도 바드레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유병준은 추위에 떨다가 물었다.
"바드레이는 언제쯤 오는 것이지?"
ㅡ 박사님 질문이십니까?
"그렇다."
ㅡ 바드레이는 오늘 아침 운동을 하지 않습니다. 현재 주식회사 헤르메스를 설립하기 위한 투자자들과의 만남이 갑자기 잡혀서 1시간 20분 전에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
추운 공원에서 2시간 넘게 떨었던 게 헛고생이 된 것이다.
"알고도 말 안 했지?"
ㅡ 묻지도 않은 말에 대답하는 걸 싫어하신 건 박사님입니다.
유병준은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인공지능을 탓해 봐야 자신이 만들어 냈으니 결국 스스로를 욕하는 것이다.
"바드레이는 언제 돌아오지?"
ㅡ 일정상으로는 사흘 후입니다.
"그때 다시 와야겠군."
ㅡ …….
인공지능이 아무런 대답도 없으니 유병준은 괜히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바드레이가 그날 돌아오는 건 틀림없겠지?"
ㅡ 추식회사 헤르메스를 세우는 일에 대한 사전 협의는 거의 끝났습니다. 흔한 표현대로 도장만 찍으면 되는 단계이니, 98.7%의 확률로 사흘 후에 돌아오게 됩니다, 박사님.
"음, 그렇군."
유병준은 인공지능의 편리함에 매번 감탄했다.
모든 부분에서 인간의 불편함을 해소해 주고, 질문을 던지면 즉각적으로 대답을 해 준다.
그런데 문득, 유병준에게서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너 말 안 한 거 있지?"
ㅡ …….
"묻지도 않은 말 이야기해 봐."
ㅡ 그날의 날씨에 대해서입니다. 현재 지중해에서 형성되고 있는 비구름이 점점 크기를 불려서 약 60밀리 이상의 많은 비가 내리게 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