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하벤 제국 습격
위드가 종횡무진 중앙 대륙을 오가하면서 활약을 하니 일거수일투족이 유저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들으셨소? 북쪽 대륙의 왕은 용감무쌍하다는구려. 기사인지 도둑인지 모를 하벤 제국의 살인마들이 그에 의해 죽어 나가고 있어."
"제국의 살인마들을 퇴치해 주는 영웅이 나타났네!"
"마침내 구드렌이 잡혔지! 내 살아생전에 그놈이 붙잡히게 될 줄은……. 그 일을 해낸 사람은 위드라고 합니다."
주민들이 매일 떠들고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의 기사, 마법사 들이 매일 목숨을 잃었거, 퀘스트들이 사상 초유의 속도로 해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드는 전투 영상을 방송국에도 팔아먹었다.
"그동안의 관계도 있고, 오늘 영상은 다른 방송국들에는 아직 넘기지 않았습니다."
"오오, 독점입니까?"
"3시간 동안은요. 입금은……."
"바로 해 드리겠습니다."
"크후후후후."
방송국들은 위드의 전투 영상을 최대한 빨리 편집해서 방송했다.
웬일인지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것이다.
ㅡ캬아, 멋지네요. 이 주옥같은 전투 실력.
ㅡ감칠맛이 그냥…….
ㅡ게임 방송을 보다가 날을 꼬박 세웠어요. 월차라도 쓰고 끝까지 봐야 할 듯.
하벤 제국이 대대적으로 침략해서 벌어졌던 북부 전쟁에 비하면 별 내용도 없었다.
규모 면에서도 비교가 불가능했다. 그런데 시청률은 오히려 그때보다 훨씬 더 높게 나와서, 위드의 웬만한 중요 모험들을 넘어설 정도였다.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 대지의 궁전 전투 이후로 침체되어 있던 방송국들에 활기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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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펜 왕국의 새로운 왕궁은 북부의 건축가들에 의해 벌써 왕궁의 형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건축가들이 부지런하다고 해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공사 속도였다.
과거의 대지의 궁전은 장엄한 산봉우리들에 띄어진 왕관 모습으로도 멀리서도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붕괴된 이후 똑같이는 지을 수 없었기에 방법을 달리했다.
ㅡ높게 짓지 못한다면, 넓고 크게 짓겠다.
"조각사들이여, 아르펜 왕국을 위해 축배를 듭시다."
"우아!"
"이 모라타산 포도주로 실컷 취하고 나서 모두가 합심하여 건설을 합시다. 그리고 다시는 우리의 건축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합시다."
건축가들의 결의는 대단했다.
야심차게 완공했던 대지의 궁전이 결국 붕괴되긴 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하벤 제국군이 커다란 피해를 입고 궤멸하게 되었다.
그 사건은 건축가들에게는 긍지와 자존심으로 남았다.
대지의 궁전은 대단한 건축물이었지만 지형상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한계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북부 대륙 전체를 대표하기에는 너무 작았으며, 시공이 어려웠고, 방문객들 역시 불편했다.
면적과 건축물의 규모 면적에서도 더 이상 키울 수가 없었다.
이제는 진정한 번영을 위한 왕궁 건설이 개시되었다.
잔해들은 전쟁터가 되었던 넓은 대지 한쪽으로 치우고, 평원 전체를 바둑판처럼 표시했다.
구역별로 나누어서 순서대로가 아니라 전부 한꺼번에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다들 기운내서 해 봅시다!"
왕궁은 자신이 맡은 구역은 처음부터 끝까지 해당 건축가들이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해서 건설 속도를 믿기 힘들 정도로 끌어 올렸다.
실력이 미숙한 건축가들은 보조로 채용되어 옆에서 일을 배우면서 도왔다.
건축 재료로 사용되는 과거 왕궁의 잔해, 산사태로 무너진 어마어마한 흙과 돌이 매일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방대한 면적에 건물들이 동시에 세워지고 있었 으며, 건축가들의 자존심 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자신의 이름이 걸린 건축물이 주변보다 못하다면 그보다 더한 창피란 없었다.
장차 왕궁은 아르펜 왕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이 될 테고, 건축가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행된 건설의 대현장!
왕궁의 핵심 건물들은 하벤 제국의 황궁을 건설했던 미블로스가 맡았다.
대륙 최고의 건축가이기도 한 그는 이번 공사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켰다.
"국왕이 빛을 다루는 조각사. 그리고 자연을 이용할 줄도 안다고 하니 왕궁의 아이디어로 충분할 것이다."
건축 부분에서도 빛의 역할은 중요하다.
건축물은 한낮의 외관과 밤에 보이는 외관까지도 고려해야 했다.
왕궁은 아르펜 왕국을 상징하는 건물이라서 대낮에는 크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섬세하고 화려하기까지 해야 한다.
한밤에도 온화하고 따뜻한 느낌이 있어야 했다.
건축 외부 설계와 재질로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었지만, 미블로스에게는 그리 어려운 공사도 아니었다.
"근데 정작 중요한 지붕을 어떻게 만든다?"
왕궁 건물에서 핵심은 지붕을 꾸미는 양식이다.
몇 개의 꼭대기를 어떤 형식으로 짓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천차만별이었다.
둥글거나 각이 있거나 뾰족하거나, 한 시대를 풍미하는 대표적인 건축양식들이 있다.
대부분의 왕궁들이 얼추 비슷한 느낌의 기본 형태가 있었지만 아르펜 왕궁만의 특징을 살려 주고 싶었다.
아무리 애써서 튼튼하게 짓더라도 디자인이 잘못된 건물,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하지 못한다면 실패작에 불과하다.
너무 크고 복잡하고 빼곡하게 지어진 건물도 왕궁으로서는 잘못되었다.
건축가 역시 일종의 예술가라고 할 수 있지만 이용자들의 편의까지도 항상 고려해야 했다.
미블로스는 대륙 최고의 건축가.
조각사로서 정점의 자리에 있는 위드에게 별 볼일 없는 왕궁을 지어 준다면 스스로가 창피하여 다시는 삽을 들지 못할 것이다.
"그래, 대지의 궁전은 산 위에 있었지. 짧지만 추억이고 역사라고 할 수 있으니 일부라도 기억하고 보존할 수 있도록 해야겠구나!"
대지의 궁전을 지탱하던 7개의 봉우리.
왕궁 지붕에는 7개의 새하얀 탑을 세웠다.
조각사들의 지원을 받아서 흰 벽돌 하나하나마다 북부에 사는 동물과 식물, 지형을 섬세하게 새겨 놓았다.
지상에서 보이진 않겠지만 상징적인 의미였다.
중앙의 가장 높은 탑에는 적의 침략을 방심하지 말자는 의미로 축복받은 은으로 만든 종을 걸어 놓았다.
왕궁의 본건물은 여러 개의 층으로 나누지 않고 천장까지 확 트이게 해서 개방감을 중요하게 두었다.
1,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중앙 홀에서는 국왕이 대소사를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위드가 중앙 홀에서 국가의 내정을 돌보거나 기사를 임명한다면 대단한 명장면이 나오게 될 테지만, 평소에는 관광객들이 올 테니 그쪽으로도 다분히 신경을 썼다.
건물의 천장과 벽의 창들이 햇빛을 비추게 하여 밝은 미래를 표현했다.
조각사들이 뒷마무리 작업을 했으며, 그 이후에는 화가들이 천장과 벽에 색칠을 진행했다.
천박하게 하벤 제국의 황궁처럼 보석과 황금은 일절 쓰지 않고, 고급 석재에 수많은 유저들의 노력으로 완공된 왕궁 건물.
꽃과 나무, 호수를 꾸며 놓아서 단조롭지 않고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조인족을 배려해서 널은 잔디밭에 큰 나무들도 옮겨 심었더니 휴식과 놀이의 명소처럼 되었다.
아직 공사 현장이 주변에 즐비한데도 풀밭에 누워서 자는 참새들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북부의 대표적인 건축가 파보는 왕궁 건물들의 구역을 정해 주고 도로와 성벽을 맡았다.
지금까지 위대한 건축물을 진두지휘했던 그이니 욕심을 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을 텐데도 통 크게 양보했다.
중앙 대륙에서 건너온 실력 있는 건축가들이 맡은 구역에 최선을 다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대지의 궁전이 그렇게 대부분의 형태를 성공적으로 갖추고 있을 무렵, 새벽의 도시 역시 엄청난 변혁을 맞이했다.
도시계획을 세운 건 솜씨가 뛰어난 건축가들이었지만 그 이후로 그들은 왕궁 건설에 매달리게 되었다.
결국 새벽의 도시는 초보 건축가들이 맡아서 했기에 부족한 점이 많으리라 예상되었다.
평원을 대도시로 바꾸기란 아득할 정도로 막막하기만 한 일인 것이다.
광장 하나만 시공하더라도, 사람들이 편하게 이용하면서도 아름답기란 대단히 힘들다.
다른 건물들과의 조화도 고려해야 했으며, 상업 지구와 주택 지구, 용병 길드와 직업 길드 등이 있는 거리로의 동선까지도 감안해야 했다.
강에서 작은 물길이라도 끌어와서 도시를 꾸미려고 하면 건축가들은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만들 수야 있겠지만… 과연 우리가 최선일까요?"
"제가 만든 광장과 거리를 오가는 유저들이 여긴 왜 이렇게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불평을 쏟아 내는 광경을 상상하면 너무 두렵습니다. 끔찍해요."
모라타의 경우에는 위드가 통 크게 광장들을 막 지어 놓고 유저들이 이용하게 되었다.
유저들이 막 늘어나고 있었으니 넓고 크게 짓는 것으로 일단 대충 때웠다.
그 이후에 초보자들이 자리를 잡았으며, 상인들과 예술가들이 광장과 거리를 따뜻하게 꾸몄다.
그러나 새벽의 도시는 철저한 계획도시였으며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하여야 했다.
그저 대충 만들어 놓고 시간이 흐르면 알아서 해결되기만 기대할 수는 없었다.
"우리로는 무리예요. 다른 직업에도 도움을 구해 봅시다."
왕궁이 기초 형태를 잡을 때만 기다리며 몰려온 화가들과 조각사들이 관심을 가졌다.
"도시라면 예뻐야 되겠죠? 건물들의 디자인과 색감은 제가 아이디어를 내 보죠."
"광장 건축이라… 분야가 건설이지만 일종의 조형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조각사가 못할 리 없을 겁니다. 만분의 일로 축소한 모형을 만들어 보죠. 착수금이나 선금을 주신다고요? 필요 없어요. 언제부터 조각술로 돈을 벌었나요, 하하하."
화가들이 도시의 구조를 가다듬고, 조각사들은 구체적인 형태를 꾸몄다.
특히 건축가들이 시공 부분에 일손이 더 필요하다고 했을 때 조각사들이 흔쾌히 수락했다.
"벽돌쌓기는 심심풀이 취미이고 모래 운반도 많이 해 봤어요. 어디서 했냐고요? 로열 로드에서 조각사한테 남아도는 게 몸과 시간밖에 더 있나요. 돈 벌려니까 뭐든 했ㅈ요. 제 친구도 취직을 하고 싶어 하는데 고용해 주실래요?"
"무, 물론입니다."
조각사들은 기가 막히게 일을 잘했다.
손으로 다루는 것에서부터 무겁거나 힘든 일까지도, 맡겨 놓으면 척척이었다.
예술가로서 책임감이 있으니 대충 하지 않아서 깔끔하게 마무리 되었다.
ㅡ 야, 살아 있냐.
ㅡ 으응. 버티고는 있지.
ㅡ 조각품은 잘 팔려?
ㅡ 어제는 2개, 오늘은 1개. 운이 좋았지. 내일까지 빵 사 먹을 수 있어. 이틀 굶으면 이번 주도 지나간다.
ㅡ 바빠?
ㅡ 분수대에서 물 떨어지는 거 보고 있다.
ㅡ 일거리가 있는데, 아르펜 왕국으로 올래?
ㅡ 일거리?
ㅡ 몇 달은 할 수 있을 만큼 많아.
ㅡ 저기, 돈은…….
ㅡ 능력과 업무량에 따라서 받는데, 그날그날 안 떼어먹고 줘. 나도 아르펜 왕국으로 와서 판잣집도 마련해 놓고 살잖아.
중앋 대륙 예술가들의 도시, 로디움의 조각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 일거리가 있다고?"
"강제로 부려 먹지 않고 돈을 줘? 건설 예산이 몇천만 골드?"
"잠깐, 다시 말해 봐. 먼저 갔던 놈들이 집까지 사서 떵떵거리고 지내고 있단 말이야?"
로디움의 조각사들.
한때 위드가 조각술의 대유행을 일으키고 나서 조각사 직업을 선택하는 비율이 대폭 늘었다.
이른바 위드의 2세들.
하지만 변변치 않은 조각사들이 살아가기에 대륙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조각술의 대유행이 지나가고 나자 웬만한 조각품들은 오히려 팔리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유저들마다 호기심에 몇 개씩 샀지만 더는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왕족이나 귀족에게 팔기에는 실력이 모자라고, 전쟁이 벌어지면서 중앙 대륙에서 예술에 대한 관심도 멀어졌다.
정확하게는 헤르메스 길드에서 본격적으로 조각사들을 박해했다.
이유는 단순히 위드가 떠오른다는 것 때문이었다.
도시와 마을의 시장에서 조각품을 팔면 많은 돈을 세금으로 바쳐야 했다.
조각사들은 조각술이 천대받는 상황에 억울함을 느끼며 좌절했다.
전투 계열 직업으로 전직을 해서 떠나거나, 미련을 버리지 못해 하루하루를 버텨 갔다.
오죽하면 로디움 주변에는 멀쩡한 나무가 한 그루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였으니 이들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탓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었다.
"북부가 조각사에게 천국이라던데."
"소문을 듣긴 했지만 정말이었 어? 조각사들이 살 만한 곳이 이 세상에 있단 말이야?"
"내 친구도 북부로 가서 살잖아. 조인족들만 전문적으로 조각해 주고 보상으로 알을 받는데, 그거만 팔아도 하루에 수십 골드래."
로디움에서 조각사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순수 조각사들은 전투 능력이 형편없어서 도시 밖으로 나가기도 부담스럽다.
그나마 입에 풀칠하기 위해 사냥을 해 온 조각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북부를 향해 걸어갔다.
"아르펜 왕국까지는 아주 멀다는데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몬스터가 나타나서 죽는 거랑 길을 걷다가 굶어 죽는 거랑 어떤 게 먼저일까. 그냥 있는 건 죽느니만 못하니 가자."
하벤 제국은 대륙 봉쇄령을 내리고 북부로의 이동을 막고 있 었다.
일정한 경계선을 그어 놓고 순찰대에 의해 그곳을 넘어간 유저가 발견되면 즉시 처형한다.
조각사들은 하벤 제국의 옅로를 우회하기 위해 멀리 돌아갔다.
이들의 움직임은 헤르메스 길들로도 전해져서 처형 명령이 떨어졌다.
- 조각사들 따위는 대세에 상관없지만, 북부로 넘어가는 이들이 생겨서는 안 된다.
기사단이 추격해 왔다.
조각사들은 죽기 살기로 도망쳤지만 잡혀서 죽었다.
하지만 다시 살아나면 북부로 방향을 잡고 계속 걸었다.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희망!
조각사로서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끝까지 버텨 온 이유는 언젠가는 인정받으면서 살고 싶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억눌릴수록 커져 가는 꿈들.
마침내 그 소식을 듣고 조인족들이 출동하여 조각사들을 새벽의 도시로 데려왔다.
로디움에서 출발한 조각사들은 여정을 풀기도 전에 공사에 투입되었다.
새벽의 도시는 건축가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화가들이 자세한 윤곽을 가다듬었으며, 조각사들이 전반적인 공정을 맡았다.
도시의 기초가 닦인 이후로는 판잣집이 저렴하게 분양되었고 초보자들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대지의 궁전 전투를 마치고 떠나지 않고 공사에 참여한 유저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들로는 왕궁과 도시를 동시에 건설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일이다, 일!"
"돈을 법시다. 으쌰샤!"
일정 기간 동안 도시를 벗어날 수 없는 초보자들에게 널려 있는 일감들이란 대환영!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유저들이 멀리 산에서부터 건축 자재를 가져오면, 성문 이후부터는 초보자들이 이를 운반했다.
땅파기, 돌 깔기, 벽돌쌓기는 물론이고 천장 보수 공사까지도 쓱싹 해냈다.
"야, 우리 대박 신기하지 않냐. 집에서는 귀찮아서 형광등도 교체하지 않고 버티는데."
"말도 마라. 우리 집 베란다에 있는 수도꼭지는 2년째 고장 나서 안 나온다."
"다들 말 그만하고 일이나 해. 이 건물 다 지어야 장검값 번단 말이야."
전 세계에서 대학에 진학한 고등학생들과 제대한 군인, 20대와 30대 백수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들이 한창 접속할 시기마다 신규 유저가 몇십만에서 백만 단위로 늘어난다.
베르사 대륙 전체를 놓고 봤을 때 통계상 모라타에서 시작하는 유저가 가장 많았지만, 새벽의 도시도 5위권 안에 들어갔다.
유저들은 희망찬 미래를 설계하며 노가다에 투입되었다.
대지의 궁전과 새벽의 도시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규모와 속도만큼은 애초 계획 이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 앞으로도 쭉 일할 수 있겠다."
"건물들 마감하면서 조각술 실력도 늘고 있어. 기둥이나 벽에 조각하는 것도 재미가 있고 말이지."
"저쪽에 쌓인 모래와 돌들 봤지? 저거 다 우리가 받을 일당이야."
"건축가님, 위대한 건축물은 언제 지어요? 우리 오늘 당장이라도 시작합시다."
★★★★★★★★★★★★★★★★★★★★★★★★★★
"크하하하하!"
검삼치는 광소를 터트렸다.
수많은 유령들이 하늘과 땅에서 창과 검을 들고 날아왔다.
유령들이 착용하고 있는 복장은 희미하지만 과거 전쟁의 시대의 갑옷과 의복이었다.
팔로스 제국과 보물에 깃들인 원한 깊은 유령들.
대지의 궁전 전투가 끝나고 나서 검치 들은 손맛에 아쉬움을 느꼈다.
"고작 하루 만에 전투가 끝나?"
"이럴 거면 아껴 먹으려고 기다렸던 보람도 없군. 몸도 아직 덜 풀렸는데."
마음은 간짜장 곱빼기에 탕수육과 깐풍기, 팔보채까지 해치워야 하는데 현실은 단무지뿐인 것 같았다.
전투에 대한 정신적인 갈증을 간절하게 해소하고 싶었다.
그런 차에 페일과 메이런, 이리엔 등이 보물을 발굴하는데 유령들이 너무 많이 나온다고 도움을 청하니 기꺼이 달려왔다.
검삼치는 유령들을 향해 외쳤다.
"투쟁의 파괴자인 나에게 덤벼 보라!"
"안 돼요!"
이리엔이 비명을 질렀다.
검삼치를 향하여 유령들이 마구잡이로 덤벼들었다.
팔로스 제국의 보물에서 발굴된 유령들의 전투력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유령들을 차근차근히 제거하고 정화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검삼치가 흥이 난다면서 혼자 달려 나간 것이다.
"축복을 받은 검이 아니면 제대로 타격을……."
"폭풍52연격!"
검삼치는 날아오는 유령들을 마구 베었다.
기사단과 싸우듯이 창대를 쳐 내고 검을 막아 내면서, 온체중을 실어서 적을 베어 버린다.
땅에서 일직선으로 돌격하는 기사가 아니라 복잡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유령이었기에 훨씬 변화무쌍했다.
하지만 그 유령들을 검으로 찌르고 베었다.
ㅡ 끼힐힐힐! 인간이여, 어리석은 힘으로 때려도 난 소멸되지 않는다, 이 멍청아.
"그렇게 생각하냐? 때리는 분야에서는 내가 전문가야. 죽을 때까지 처맞아라!"
- 투신 바탈리의 축복이 적용되었습니다.
투신 바탈리는 그대의 전투를 보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투신의 축복.
모름지기 바탈리는 싸움밖에 모르는 신에 속한다.
착하게 살거나 나쁘게 살거나 상관하지 않고, 심지어는 살인자라고 해도 투쟁의 파괴자로 임명하고 축복을 부여해 준다.
베르사 대륙을 통틀어서 총 5명이 투신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느데 확실히 이름이 알려진 이들 중에서 3명이 헤르메스 길드 소속이었다.
바탈리 교단에 거액의 헌금을 바쳤으며, 길드의 도움을 받아서 일부러 힘겨운 전투를 조작하여 치르고 나서 투쟁의 파괴자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바탈리 교단의 성서에 투쟁의 파괴자라는 부분이 있어서 시도한 것인데, 몇 번의 죽음 뒤에 얻어 낸 값진 성과였다.
검삼치는 대지의 궁전 전투에서 몸으로 때우고 살아남아서 임명되었다.
아마 검치 들 중에서 생존자가 많았다면 더 임명될 수도 있었을 테지만, 너무 열심히 싸우는 바람에 전투의 막바지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드물었다.
"크하하하하하하!"
검삼치는 만신창이의 몸이 되어서 웃음을 터트렸다.
완벽하게 미친 인간처럼 보이는 광경이었다.
검육치 이하 수련생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부럽다."
"멋있어. 역시 삼치 사형이다."
"너희 똑똑히 봐라. 저것이 바로 사나이다."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검에 미친 인간들.
"우워어어어!"
검치 들이 일제히 돌격했다.
ㅡ 이, 인간들이 몰려온다.
ㅡ 우린 무적의 마폰 제국의 기사단. 기사단이여, 들어라. 인간들의 도전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받아 줘라.
ㅡ 오오오오, 돌격이다!
유령들과 검치 들의 대전쟁.
철퇴와 도끼를 들고 서로 돌진하고, 검들이 부딪쳤다.
메이런이 손으로 이마를 덮었다.
"맙소사. 이건 아니었어."
수르카는 이빨을 드러내면서 씩 웃었다.
"이런 게 전투라니까요!"
그리고 검치 들과 유령들이 전투를 벌이는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이리엔은 사제복의 소매를 걷었다.
"힘겹겠지만 마나가 떨어지기 전까지 1명도 죽이지 않겠어!"
전투 구경만 하는 사제는 멍하니 있느라 심심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어려운 전투가 벌어지게 되면 누구보다도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마나가 떨어지지도 않은 시기에 전투 중인 동료가 죽는 경우는 사제에게 패배와 다름없었다.
상황상 갑자기 공격이 집중되어서 치료 능력이 뒤따라가지 못하거나 하는 경우야 있지만 그렇더라도 생명을 좌우하는 사제는 마음이 불편했다.
방어와 치료를 전담하는 사제의 권한은 막강햇허, 때때로 파티를 이끌기도 했다.
몬스터가 강할수록 승리는 공격력 못지않게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에 좌우되었으니 치료가 가능한 상태를 봐서 도망을 결정할 수 있었다.
이리엔은 일반적인 사제들과는 다르게 웬만하면 도망치자는 포기 선언을 하지 않았다.
"음, 살 수 있겠는데요? 한번 해 봐요!"
마나를 낭비하면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회복 마법을 쓰지 못한다.
그래서 생명력이 간당간당한 순간이 많았지만, 이리엔은 어쨌건 버티면서 동료들이 죽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동료들이 파티의 전멸을 우려하면서 소극적인 상태에서 싸울 때와, 실컷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때는 전투력이 다르다.
방어가 안정적이 되어야 공격에 자신감이 붙었다.
"에이, 뭘요.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구요. 저는 그냥 구경이나 하면서 있었어요. 다 어려분 덕분인걸요."
이리엔은 치료 능력을 칭찬받을 때마다 다른 사람드이 잘 싸워 주었기 때문이라고 공을 돌렸지만, 그녀가 있기에 모두 마음 놓고 싸울 수 있었다.
개인들의 전투 능력도 판단이나 순발력에 따라서 차이가 났다.
하지만 파티나 원정대, 공격대의 규모에서는 사제의 능력이 전력을 결정적으로 좌우했다.
사제는 파티의 중심이 되어서 방어와 치료를 맡아 주는 역할이기에 어디서나 존경을 받는 직업이었다.
더군다나 이리엔은 치료에 푹 빠진 타고난 사제였다.
도시에서도 지나가는 유저들에게 치료와 축복을 걸어 주면서 스킬을 높였다.
사제들은 레벨보다도 신앙심과 치료 스킬의 숙련도가 높아야 했는데, 그녀는 어떤 유저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았다.
"크핫핫핫!"
"다 때려 부숴라!"
검치 들이 활약하는 가운데 페일도 말없이 활을 들었다.
사람을 겪어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이 정도 같이 지내 봤다면 당연히 이렇게 될 줄을 예상하고 있었어야 정상이다.
"멀티플 샷!"
페일의 화살이 수십 발씩 유령들을 관통했다.
이렇게 유령들이 밀집해 있는 장소에서 궁수긔 공격력은 그야말로 발군.
검치와 사범들, 수련생들의 활약으로 열흘 만에 유령들이 깨끗하게 소탕되었다.
도저히 그 기간에 해치울 수 있는 양이 아니었는데 지독하게도 유령들과 사냥만 했던 것이다.
메이런이 대표로 그들에게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아니었으면 우리 힘으로는 해니지 못했을 거예요."
그녀가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살포시 웃었다.
방송인으로서 시청자들의 지적을 통해 갈고닦은 세련된 웃음이었다.
검치와 검둘치는 무겁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여자 친구들이 있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모름지기 처자식이 있는 남자라면 외간 여자와 함부로 이야기도 나누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커피나 한잔 하자고 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구식 남자들.
서열상으로 그 아래에 있는 검삼치가 쭈뼛거리면서 다가왔다.
"흠흠, 저기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제가 훨씬 어리잖아요."
메이런은 봄꽃처럼 화사하게 웃었다.
화령과 벨로트가 있어서 그동안 그녀가 외모에서 눌려 있었을 뿐이다.
"그래도 어떻게 말을 놓겠습니까."
"너무 어색해서 그래요. 저는 집에도 오빠들이 많아서 편하게 대해 주시는 게 좋아요."
"그럼 다 된 것이냐?"
대번에 검삼치의 말투가 바뀌었다.
반말에, 조선 시대 양반들이 썼을 법한 낮게 깔린 근엄한 말투.
"네. 일단은 정리가 되었는데요, 아직 이 호수 밑에 깔려 있는 보물들이 많아서 파내야 돼요. 마판 상회에 인부를 보내 달라고 연락을 했으니 저희끼리 해 보고 정 안 되면 다시 도움을 청할게요. 그래도 되겠죠?"
"물론이다. 암, 언제든 필요하거든 부르거라!"
나이가 더 많고 외모상으로는 삼촌뻘의 검삼치이기는 했지만 양반 말투는 영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수련생들은 여전히 존경스러운 빛을 보냈다.
'여자와 이야기도 잘하시는군.'
'역시 남자는 힘이야, 힘! 저렇게 당당하다니, 부럽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검삼치가 고개를 갸웃했다.
"땅에 파묻혀 있는 보물이라면, 삽으로 파낸다는 뜻이더냐?"
"네에, 그래요."
"인부는 몇이나 불렀느냐."
"30명이에요."
"그렇다면 기다릴 필요가 무어 있겠느냐. 여기에 노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검삼치가 자신의 밑으로 쭉 둘러보았다.
"너희 할 일 없지?"
"물론입니다."
"삽질 좀 해 볼까?"
"어서 땅을 파고 싶습니다!"
수련생들이 남부 사막지대로 절반 가까이 원정을 갔지만 그 나머지는 모두 이자리에 모여 있었다.
검삼치가 당당하게 메이런을 보았다.
"우리가 파내면 금방일 것 같은데. 우리에게 맡겨 주지 않겠느냐."
"그래도 죄송해서 어떻게 그렇게까지 도와 달라고 할 수 있겠어요."
"아니다. 돕고 싶어서 하는 것이니 괜찮다."
검삼치 이하 모든 수련생들이 삽질을 시작했다.
땅을 파다가 보물이 나오면 이리엔이 정화의 의식일 치러서 유령을 소멸시킨다.
하지만 물건마다 유령이 때때로 여러 마리가 뒤늦게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었고, 금화가 가득 든 보물 상자에서는 수십 마리씩도 튀어나왔다.
지난번에도 그래서 유령들에 의해 보물괴 지역을 장악당하고 말았다.
ㅡ 후히히힝!
ㅡ 크하하하! 드디어 세상에 다시…….
"뒈져!"
검사백구십오치는 그냥 삽자루로 두들겨 팼다.
무기술은 무엇이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유용했다.
진흙 속에 파묻힌 보물 중에서 심상치 않은 광채를 번뜩이는 흑검이 발굴되었다.
마폰 왕국 백작의 유령.
ㅡ 미련한 인간들, 날 깨운 대가를… 크허헉.
백작의 유령은 주변을 살펴보고 나서 경악했다.
검치와 검둘치를 비롯하여 250여 명에 달하는 건장한 체구의 남자들이 무기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대검, 창, 철퇴, 양손도끼 등 살벌한 무기로 무장한 채 눈을 번뜩였다.
"간만에 손맛이 있을 것 같은 놈이다."
"보스급 같은데 말입니다, 스승님."
"심심하던 차에 잘되었구나. 욕심 부리지 말고 공평하게 각자 한칼씩만 먹여라."
"옛. 스승님의 말씀을 들었지, 한칼씩이다!"
검치를 시작으로 해서 사범과 수련생들이 마구 달려들어서 백작의 유령을 해치워 버렸다.
로열 로드에서는 힘과 민첩, 체력 등에 따라서 믿기 힘들 정도의 광경들을 연출 할 수 있었다.
수령생들끼리 등을 박차고 높이 뛰어올라서 도끼를 내려 찍는가 하면, 동료를 집어서 던지기까지 했다.
정신 차리지 못할 무자비한 공격!
싸움을 워낙 즐기다 보니 검치와 수련생들의 실력은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쉽게 잡기 힘든 보스급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꾸리는 공격대에서도 대환영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들이 즐비하였으니 유령들은 나오자마자 소멸될 운명.
유령을 해치우던 수련생드이 씩 웃었다.
"나는 앞으로 훨씬 더 강해질 거야. 그래서 검둘치 사범님과 스승님처럼 예쁜 여자 친구를 만들고 말 것이다. 사나이가 되어서 이 정도 역경 따위 이겨 내지 못할까."
"유령들아, 덤벼라. 너희가 게속 나타나 줘야 내가 여자 친구를 만든다. 암, 엄마가 결혼하라고 난리인데, 내년에는 손녀를 안겨 줘야 된다."
"아자아자! 사형제들이여, 모두 힘을 냅시다. 놈들이 많지만 모두 사냥하면 여자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쫓기기라도 하듯이 땅을 파고 전투를 펼치는 수련생들.
그 모습을 지켜보면 메이런은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근데 여자를 만나는 것과 강해지는 게 무슨 상관이 있죠?"
제피도 동감이라는 듯이 대꾸했다.
"여자를 만나려면 자고로 클럽이나 나이트를 가야 되는데 말입니다."
이리엔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큰 소리로 이야기하지 마세요. 저번에 로뮤나가 나이트 가 본 적 있으시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요……."
"뭐라고 대답했는데요?"
"나이트 입구에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건장한 직원들이 먼저 다가왔대요."
"그리고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돈을 주면서 먹고살게 도와 달라고 했대요."
"……."
"으흠."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모든 것을 강함으로 이겨 내 온 검치와 사범들, 수련생들, 그러니 검으로 어떻게든 해 보겠다는 그 의지를 어떻게 말릴 것인가.
실제로 큰 전쟁이 벌어졌을 때마다 우연인지 수련생들 중에서 여자 친구들이 생기는 경우가 벌어졌다.
'아하, 강해야 되는구나! 역시 남자는 힘이지.'
'우린 로열 로드에서는 너무 약했지? 그러니까 여자 친구가 없었던 거야.
그 결과 수련생들은 이처럼 무시무시한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
팔로스 제국의 보물들은 캐내어져서 마판 상회를 통해 처분하기로 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녹슬고 부서진 물품들이 대부분이라 골동품의 가치가 높았다.
검과 갑옷, 그 외의 병장기는 다시 대장장이의 손을 거치고 나면 원래의 가치를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으리라.
턍탄자와 가죽옷은 모두 버려야 될 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판의 입이 보물들을 보고 짖어질 듯이 벌어진 것으로 가치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보물을 발굴하시다니 대단합니다. 그러면 제가 왕창 삥을… 아니, 적당한 마진을 남기고 처분한 후에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호수 아레 묻혀 있던 팔로스 제국의 보물들은 거의 전부 캐내었다.
나중에는 땅의 정령사가 와서 밑에 묻혀 있는 물품 따윈 없다고 확인했으니 정확할 것이다.
그 무렵 위드가 중앙 대륙에서 대활약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헤르메스 길드의 소굴에서 용감무쌍하게 활약을 하니 온통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방송국에서 매일 위드의 영상들이 중계될 정도였다.
헤르메스 길드의 횡포에 반감을 가진 시청자들의 환호의 열기도 대단하였으며, 반란군과 저항군도 더욱 들불처럼 일어난다고 했다.
그 사싱을 알게 된 검치 들은 격하게 분노했다.
"이놈이… 우린 여기서 땅이나 파고 유령이나 잡고 있었는데 지 혼자서 멋진 역할을 하다니!"
"삼치 사범님, 막내가 이렇게 야비한 녀석인 줄은 몰랐습니다."
"믿을 놈 하나 없습니다."
위드의 멋진 승전보.
검치 들에게는 예쁜 여자 친구도 있으면서 더한 욕심을 부리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검이백십칠치가 모라타의 벽에 그려져 있는 낙서들을 발견했다.
[위드 님 사랑해요.]
[꺄아, 위드 님한테 시집가고파!]
[절 데려가세요. 전쟁의 신 위드 님.]
검삼치가 화를 버럭 냈다.
"이럴 수는 없다!"
"맞습니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막내가 다 해치우기 전에 당장 움직여야 한다."
검치와 검둘치는 시큰둥했다.
"무슨 그런 일을 가지고……."
"착각도 다 한때지요. 막상 여자 친구가 생기고 나면 인연과 상대방에 대한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될 텐데요."
"남자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린애가 아니겠느냐."
"스승님, 제가 알아 놓은 맛있는 식당이나 가시죠."
"음, 그렇게 할까?"
하지만 검삼치를 비롯하여 아직 여자로부터 인기가 없는 사나이들은 몸이 달았다.
"바로 하벤 제국을 침략하자!"
"전투야말로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입니다. 그 활약의 기회를 뺏기는 건 터무니없는 일이죠."
검삼치를 비롯한 수련생들은 다시 하벤 제국의 북부 점령지를 공격하기로 했다.
물론 페일과 이리엔 일행은 휴식을 취할 겨를도 없이 자연적으로 따라오게 되었다.
팔로스 제국 보물을 발굴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을 준 검삼치가 같이 가겠냐고 묻는데 감히 거절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페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작전이 어떻게 됩니까?"
하벤 제국의 북부 점령군.
넓은 지역을 통치해야 하기 때문에 군대는 분산되어 있을 것이다.
지역에 대한 정보를 확실하게 가지고 있었으니 치고 빠질 구석이 없진 않았다.
검삼치가 미리 다 생각해 놓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공격이다."
"네?"
"공격해서 이긴다."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충격에, 페일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검삼치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혹시나 하면서도 질문했다.
"그게 전부겠죠?"
"응. 왜, 뭐가 부족해?"
"그 외에 여러 가지 보급이나 적군의 움직임을 파악한 침투 경로와 퇴각로 확보, 유익책과 같은 전략 전술을 미리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쯧쯧."
검삼치가 어리석다는 듯이 페일을 보았다.
"전투란 말이다."
"……?"
"그런 거 없다. 먼저 강하게 때리고 잘 치고 빠지면 된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기려는 의지. 맞아도 쓰러지지 않으면 이기는 거다."
단순 무식한 결론!
그렇지만 검삼치의 전투적인 재능은 하벤 제국의 북부 영토를 공략하면서 드러났다.
검삼치와 수련생들은 정공법을 고집하지 않았다.
새로 건축된 성의 정문을 고지식하게 두들기지 않고 기병을 운용했다.
무예인은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다.
개인으로서 무기를 다 쓸 수 있다는 점도 엄청난 강점이었다.
경비병으로서 들판을 가로지르면서 하벤 제국군의 병사들이 있는 주둔지를 격파했다.
토벌군이 진압을 하기 위해 나오면 조인족들과 협력했다.
하벤 제국이 자랑하는 꿰뚫는창 기사단이라고 하여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조인족들을 잡을 수는 없었다.
새들을 타고 화살을 쏘는 검치 들.
유저들은 버드 나이트라고 부르면서 우러러봤다.
그리고 며칠 후, 하벤 제국의 북부 점령 지역에는 수만에 달하는 버드 나이트들이 뜨기 시작했다.
검치 들의 활약을 본 북부 유저들이 참지 못하고 하벤 제국 공격에 대대적으로 나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