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괴멸적 타격
위드는 완전한 성채가 내려다보이는 하이랜드 고원에 서 있었다.
휘이이잉!
찬 바람이 시커먼 망토를 휘날리게 했다.
"금인아."
"골골골."
"누렁아."
"음머어어어."
"아껴야 잘살기는 한단다. 그렇지만 부자가 되려면 남이 아낀 것을 잘 빼앗아야 된다."
위드가 착용하고 있는 망토는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을 죽이고 약탈한 것이었다.
망토의 경우에는 대부분 직업 제한이 없다 보니 최상품이라고 해도 찾는 사람들로 인하여 돈이 있어도 물건을 구하지 못할 정도다.
블랙 드레이크의 망토는 그중에서도 정점을 찍은 것으로, 베르사 대륙의 누구나 갖고 싶어 하지만 구경하기도 어려운 물건이다.
물리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은 기본으로 갖추었으며, 레벨에 따라 이동속도도 최대 7%까지 늘려 준다.
바람이 불어오면 몸을 일시적으로 띄울 수 있으며, 심지어는 기류를 타고 날 수도 있다.
비행 마법과는 다르게 바람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지만 최대 속도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또한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지더라도 추락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았다.
위드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크흐흐흐."
하얀 이빨을 드러내는 비열하고 야비한 미소!
"이번에는 또 어떤 수확물을 얻을 수 있을지, 그럼 가 보도록 할까?"
서윤은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면서 일찍 접속을 종료했다.
그녀가 있으면 전투에 도움이 많이 되고 좋지만 없더라도 전력은 유지되었다.
아껴 두었던 더 치사하고 악독한 방법을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
"골드마인 던전에서 큰일이 났다면서?"
"위드가 나와서 그쪽은 샅샅이 수색을 하고 있다더라."
"군대까지 출동해서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는데 소식이 없는 걸 보니 안 잡힐 모양이야."
"이쪽으로 왔으면 진작 박살을 내주었을 텐데."
"크크크, 멍청이들과 우린 다르니까 말이지."
모닥불을 피워 놓고 헤르메스 길드 유저 7명이 쉬고 있었다.
완전한 성채 부근에서는 정기적으로 도적 떼나 몬스터들이 순찰을 돈다.
그들이 지나가는 장소에서 머무르다가 해치우는 방식이었다.
완전한 성채로 도적 떼나 몬스터들이 계속 몰려오기 때문에 외곽에서 순찰병들과 사냥을 하더라도 쏠쏠했다.
조금 더 성채에 가깝게 들어가면 전투가 거의 쉬지 않고 일어난다고 한다.
레벨을 올리는 데 가장 좋은 곳 중 하나였다.
위드는 숲 속에 엎드려서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을 살폈다.
"얘들아, 속전속결이다. 다들 알겠지?"
"알겠다, 주인."
금인이, 누렁이, 바하모르그, 게르니카 세빌, 빈덱스, 하이 엘프 엘틴, 백호까지 데리고 왔다.
정체가 이미 드러난 이상 제대로 해 먹기 위해서였다.
"곧바로 간다."
위드와 금인이, 하이 엘프 엘틴이 벌떡 일어나서 모닥불을 향해 화살을 겨눴다.
"위드가 신출귀몰하니까 어느새 이 근처에 있을지도 몰라."
"아닐걸. 여긴 도시와 너무 가까워서 절대 오지 못할 거야."
푸슈슉!
"커억!"
"습격이닷!"
잡담을 나누던 헤르메스 길드의 파티로 화살 세례가 퍼부어졌다.
위드와 엘틴의 화살에 적중되면 정령의 효과로 화염에 휩싸이고, 바람에 의해 나가떨어진다.
흙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그들을 쓰러뜨리거나 머리만 남겨 놓고 땅속으로 파묻었다.
"내친김에 정령술을 써 볼까? 흙꾼, 화돌이, 씽씽이 소환!"
"케헤헤헷! 위대한 정령의 주인, 광채가 우러나오는 조각사 위드 님을 위하여!"
"불멸의 조각 미남, 사상 최대의 천재! 더없이 영광스러운 그 이름도 찬란한 위드 님에게 저항하는 자들이여, 대지의 분노를 감당하라!"
"……."
화돌이, 흙꾼, 씽씽이가 나타나서 적들을 괴롭혔다.
정령들은 말을 할 수 있어도 정령사와의 친화력이 대단하지 않으면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위드가 직접 창조한 정령들인 만큼 세뇌 교육이 잘되어 있어서 활약을 하면서도 온갖 수다를 떨었다.
"타오르는 충성의 불꽃. 위드 님을 향한 제 마음이 이렇게 뜨겁습니다!"
"태풍이 몰아쳐도 끄떡없는 대지가 단단한 이유가 있습니다. 희대의 미남이며 매력이 넘치는 위드 님이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
바람의 정령 씽씽이는 부끄러운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끔씩 공중에 불길과 흙을 이용해서 하트 표시를 그려 놓는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자연계의 존재이며 자유로운 정령들이 아니라, 절대 충성을 바치는 부하들.
"위, 위드가 이곳에!"
"꽤액!"
바하모르그, 게르니카, 세빌, 빈덱스, 백호가 뛰어가서 적진을 휘저으니 그들은 금방 몰살되었다.
전투에서 기습의 효과란 절대적이었다.
위드는 전리품을 수거했다.
아이템 정보는 확인할 겨를이 없었지만 손맛이 묵직했다.
감정을 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이 묵직한 손맛!
"놈들이 알차렸겠지!"
바보들이 아닌 이상 십중팔구는 길드 통신망을 통해서 위드에게 습격당했다고 알렸을 것이다.
"이동한다."
위드는 부하들을 데리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완전한 성채에서 사냥을 하는 유저들은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뿐이었다.
다른 유저들은 아예 사냥을 하지 못하게 한 독점 구역이었다.
"처음 보는 놈들이다."
"습격자가 아니라면 소속을 분명하게 밝혀라!"
헤르메스 길드의 6인조 파티와 마주쳤다.
위드의 대답은 금인이, 엘틴과 함께 퍼붓는 화살 세례였다.
"콜 데스 나이트 반 호크, 콜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적진에서 반 호크와 토리도의 소환!
누렁이와 백호를 탄 게르니카, 빈덱스의 돌진으로 순식간에 적을 괴멸시켰다.
전투가 벌어졌다고 하기에도 어려울 정도의 전광석화!
"계속 간다."
위드는 보이는 족족 전부 쓰러뜨렸다.
아타로그 마굴에서처럼 괜히 사냥 파티들이 합류할 시간을 줄 필요는 없었다.
"째재잭, 오른쪽으로 150미터에 적!"
하늘에서는 은새가 정찰을 하며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위치를 알렸다.
"동쪽으로 이동 중. 400미터 밖에 다른 적들 발견. 네 무리가 반경 1킬로미터 근처에 있음."
"백호!"
"크르르릉!"
"달려가서 놈들을 막아라. 어둠의 은신술을 펼치는 토리도가 이를 돕는다. 그리고 나머지는 우회해서 습격한다."
"옛!"
조각 생명체들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누렁아."
"음머어어어."
"저 너머에 있는 적들은 네가 막아라. 잠깐이라면 버틸 수 있을 거야."
"……."
누렁이는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앞발로 자신의 머리를 가렸다.
"됐다. 짐이나 잘 싣고 다녀."
세빌, 게르니카, 빈덱스 등은 와이번, 빙룡과는 다르게 투지가 넘쳐흘렀다.
위드의 전투 지휘가 효과를 발휘할수록 부하들의 사기는 오른다.
"으헷, 보물을 노리고 온 녀석들이군."
"가진 돈을 다 내놔라. 옷을 벗어 놓고 가면 목숨을 살려 주지. 정직한 도둑님의 말이니 믿어야 할 것이다!"
완전한 성채에 있는 도적 떼와도 만났다.
성채의 외곽 마을 지역을 돌고 있는 순찰 부대였다.
인근 지역을 약탈하러 가기 위한 부대는 최소 30명에서 100여 명 정도로 이루어지는데 그들은 마을이나 다른 던전을 가리지 않고 침략한다.
완전한 성채 가까운 곳에도 던전은 많이 있었지만 그런 이유로 위험부담이 컸다.
반면에 운이 좋다면 몬스터와 도적 떼가 싸우는 틈을 노려서 어부지리를 얻는 것도 드물게 가능했다.
유저들의 수준이 낮았던 예전에는 인근의 보스급 몬스터의 사냥도 그런 식으로 시도해서 성공했다고 한다.
위드가 지금 만난 도적 떼는 12명.
"쳇, 방해자들이군. 바하모르그, 다죽이지 않아도 되니 해치워라."
"알았다!"
바하모르그가 정면에서 덤벼들었다.
단검과 밧줄, 독화살을 들고 싸우는 도적들에게 바바리안 워리어는 천적.
중독을 시키더라도 높은 저항력을 가진 바바리안들은 거뜬히 이겨 낸다.
"협공!"
위드는 부하들과 함께 도적 떼를 공격했다.
"헛, 강하다."
"어서 도망치자."
"대장님께 알려!"
4명을 죽이자 나머지는 불리하다고 생각했는지 달아나기 시작했다.
완전한 성채에는 도둑들이 엄청나게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발견하는 족족 해치우는 것이 사냥의 관건이었다.
호루라기나 고함을 통해 동료를 모을 수도 있으니 침묵 계열 마법은 필수.
도망자들을 막고 지원군만 오지 않는다면 도둑 떼가 바글바글할 정도로 계속 모이고 돌아다니니 사냥하기에는 그야말로 최적의 위치다.
당연하게도 섣채의 안쪽이나 내부로 갈수록 더 강한 파티들이 사냥을 했다.
지형상으로 도적 떼가 목책을 추가한다거나 함정을 설치하는 등 약간씩의 변화는 있었지만 돌로 지어진 성채는 거의 그대로다.
모든 길들을 파악하고 있으면 도적 떼를 쉽게 습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주할 때에도 활용이 가능했다.
성채 내부에는 술 취한 도둑, 잠든 도둑도 많이 있었는데, 그들을 해치우거나 몰래 보물 창고를 털면 짭짤한 수입을 거두었다.
도둑, 모험가, 암살자 등의 직업들은 은신술 스킬 숙련도를 올리기도 좋을뿐더러 그림자 등을 이용해 은밀하게 침입할 수 있었으니 최고의 사냥터였다.
반면에 성채 내부는 온통 적들이라서 경계병들에게 발각되면 도적들이 일제히 추격에 나서게 된다.
파티 전체가 섬멸될 수도 있는 위기이기 때문에 사냥을 하려면 실력은 기본이고 간도 커야 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전투 중의 도둑을 놓치는 것은 금물!
위드는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려고 하는 도둑들을 막지 않았다.
"엘틴, 내버려 둬라."
"주인님, 저들은 위험합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알짜배기를 빼먹으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도적 떼와의 사냥을 계속하게 되면 시간이 지체되기 마련이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뭉칠 시간을 주게 되니 몇 명만 쓰러뜨리고 도망치도록 내버려 뒀다.
"남쪽으로 궁수 4명이 매복 중."
은새의 특기, 정찰!
보통 새들은 밤이면 시야가 좁아지지만 은새는 아니었다.
올빼미, 부엉이처럼 밤눈이 밝았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벌써 대응에 나서고 있었다.
"백호, 우회해서 습격. 세빌이 타고 따라가라."
"옛!"
"전방 500미터 지역에서 합류한다."
위드는 직접 목표물이 되어서 시선을 끌고 그사이에 백호와 세빌이 궁수들을 제압했다.
완전한 성채 외곽 지역을 한 바퀴돌며 40여 명의 유저들을 불과 15분 사이에 해치워 버렸다.
이때쯤이면 성채 내부에서는 난리가 났으리라.
헤르메스 길드에서 위드가 습격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정신이 번쩍 들었을 무렵이다.
"당연히 날 맞이할 엄청난 준비를 하고 있을 테지?"
미완성인 완전한 성채이지만 수성을 위한 전투 시설 중 몇 개는 보수하면 쓸 수도 있어서 그걸 장악하고 준비할 수도 있다.
내부로 침입할 수 있는 개구멍마다 인원이 배치되어 삼엄한 공격 태세 정도는 갖춰 놓았을 것 같았다.
어둠이 자리 잡은 성채에는 횃불들이 걸려서 성문과 성벽 일부에 미약하게나마 빛을 밝히고 있었다.
넓고 큰 어둠이 둘러싸고 있는 성채에는 무겁고 음침한 느낌이었다.
"금인아."
"골골골."
"저걸 뭐라고 불러야 되는지 아니?"
"요새다."
"흠, 틀린 말도 아니지만……. 바하모르그."
"정면 돌격인가? 아침 해가 뜨기 전에 함락시키겠다."
위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힘이 있다고 해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바하모르그의 위력은 잠깐이라도 일대일로 버틸 수 있는 유저가 드물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적은 아닌 터.
함정에 빠지거나 집중 공격을 당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바하모르그가 죽고 나면 얼마나 아까운 일이겠는가.
아울러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불을 본 시골의 날파리처럼 이 성채를 향해 모여들고 있으리라.
도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탓에 텔레포트 게이트를 타고 오더라도 바로는 무리이겠지만 정공법으로 느긋하게 공략하다 보면 그들이 대규모로 도착한다.
수백수천 명의 공격을 당한다면 위드와 조각 생명체들의 목숨도 한순간이었다.
"바하모르그, 저건 못 먹는 감이다. 함부로 찔러보기에는 위험하지. 불과 1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공성전이란 무리인거야."
"그러면 퇴각할 것인가?"
위드는 말없이 성채를 노려보았다.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완전한 성채.
"이쯤이면 소기의 성과는 거두었다고 할 수 있겠지."
누렁이가 대번에 찬성했다.
"음머어어어, 뜨거운 여물을 먹고 쉬러 가자."
헤르메스 길드 유저 수십 명이 한나절도 안 되는 사이에 목숨을 잃었다.
기습의 효과를 누렸던 만큼 충분히 만족하고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법의 대륙에서 전쟁의 신으로까지 불리었던 위드의 방식은 아니었다.
"내가 못 먹는 감은……."
"……?"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그냥 포기하는 게 아냐.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는 거야."
위드는 숨을 가볍게 골랐다. 그리고 힘껏 터트렸다.
"완전한 성채에 모여 있는 도둑놈들은 들어라!"
심야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사자후!
아파트에서 이런 고함을 질렀다가는 대번에 층간 소음으로 윗집, 아랫집에서 몽둥이를 들고 쫓아올 정도로 엄청난 소리였다.
실제로 성채 곳곳에서 잠들어 있던 도둑들이 깨어나면서 횃불을 환하게 밝혔다.
"도둑놈들아! 내 부하들이 너희가 지금껏 모은 보물들을 훔쳐 가기 위해 그 성채 안에 숨어 있다. 너희는 이제 죽은 목숨이다!"
쿠구궁!
잠복하고 있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갑자기 웬 날벼락이야."
"이 미친놈이!"
완전한 성채는 최고의 사냥터였지만 주둔하고 있는 도적 떼나 몬스터들이 거세게 활동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 사냥을 하려면 실력3이 확실하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정도로 검증된 인물이어야 한다.
설혹 감당 못할 적이 밀려오더라도, 다른 유저들까지 휘말리지 않도록 소리 없이 그 자리에서 죽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
고함을 지른 위드의 행동은 완전한 성채에서는 상식 밖의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짓이었다.
물론 그럴수록 효과는 높았지만.
"침입자가 있다."
"보초를 서던 놈들이 사라졌다. 어서 놈들을 찾아봐."
도둑 두령들이 나서서 부하들을 100명씩 끌고 다녔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도둑들이 들어오지 않는 복도 끝의 구석이나 창고, 지하실 등에 숨어 있었다.
완전한 성채에서는 은신하기에 좋고, 지나다니는 적들을 사냥하기에 좋은 명당들.
도둑들이 수색에 나서면서 발각되어 도처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고요한 완전한 성채에서 칼들이 부딪치고 마법이 작렬하였다.
한밤중이었지만 대낮의 도시처럼 시끄러워졌다.
"위드, 이 나쁜 새끼야아!"
"치사한 방법 쓰지 말고 당당하게 들어와라. 덤벼. 모가지를 날려 줄 테니까!"
"멍청한 도둑놈들. 밖에 위드가 있다. 위드부터 잡으란 말이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도 고함을 질러 댔다.
위드는 사자후를 터트린 이후 부하들과 멀찌감치 뒤로 물러서 있었다.
정말 수색을 위해서 도둑 떼가 나오기는 했지만 별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성채로 돌아갔다.
성채 내부에서 전투가 계속 벌어지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쿠르르릉!
그리고 육중한 소리를 내며 성문이 닫혔다.
위드는 손가락으로 귀를 팠다.
"수명이 조금 길어지겠군."
거리가 멀어졌는데도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욕설이 들렸다.
이렇게 욕먹는 생활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익숙해서 고향의 포근함까지 느껴졌다.
"요즘 내가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모양이로군. 좀 있으면 조용해지겠지."
"음머어어어어."
★★★★★★★★★★★★★★★★★★★★★★★★★★
"커헉!"
"하악, 하악, 하악."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가쁜 숨을 토해 냈다.
"살아남았다."
"우린 해냈어."
서앷 내에서 사냥을 하던 유저들은 70명 정도였다.
도시보다는 사냥터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 강자들이다.
그들조차도 갑작스러운 상태로 인해 도둑 떼가 길길이 날뛰는 상황에서는 죽음이 속출하여 겨우 23명이 남았다.
끝이 없는 도둑들의 인해전술, 막다른 길에서 엄폐물을 끼고 싸워도 승산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헤르메스 길드의 도둑들과 암살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완전한 성채의 도둑 대장 사냥에 성공하였다.
대장을 잃은 도둑들이 뿔뿔이 흩어진 덕에 이들은 마지막까지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정말 힘든 하루였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모두 힘을 합쳤기에 이루어 낸 업적입니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뿌듯한 보람과 성취감을 느꼈다.
업적으로 도둑 퇴치의 기록을 세우며 상당한 명성을 얻은데다 스텟이 하나씩 늘었다.
전투 계열 직업이라고 해도 업적은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희생이 크긴 했지만 완전한 성채의 도둑들을 물리쳤다는 기록은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위드가 나를 함정에 빠뜨렸지만 그럼에도 이겨 내고 살아남았다.'
생존자들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었다.
위드가 만들어 낸 사건들은 십중팔구 방송으로 중계가 된다.
이번 일 또한 방송을 타게 되리란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방송국에 먼저 제보를 해도 좋겠지?'
위드의 모략과 술수에도 불구하고 살았으니 승리감에 도취되었다.
"위드라고 해도 특별한 무언가는 없군요."
"제대로 힘을 모을수록 강해집니다. 다른 지역의 명청이들이야 기습을 당해서 무너졌지만 우리 지역에서만큼은 더는 그럴 일이 없을 겁니다."
"성채로 들어오기만 했으면 끝장을 내 주었을 텐데."
"자기도 그걸 아니까 철수한 게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위드가 완전한 성채를 뒤집어 놓고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헤르메스 길드의 지원군은 오지 않게 되었다.
당장이라도 하던 일을 중단하고 완전한 성채로 몰려오겠다며 조직되던 지원군들은 갑자기 바쁜 일들을 핑계 대며 해산했다.
위드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몇 시간 걸릴 길이라도 기꺼이 움직이겠지만, 사냥하고 있던 유저들이 위기에 빠진 걸 구해주기 위해 올 만큼의 의리는 없었던 것이다.
설혹 오더라도 이미 전투가 끝날 무렵일 테니 지원군이 안온 것도 원망할 수만은 없는 처지였다.
헤르메스 길드의 인원은 방대하고, 같은 소속이라는 점만으로 굳이 희생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체력과 마나가 소진되어 그 자리에 앉아서 계속 휴식을 취했다.
"모두 어떻습니까, 오늘 방송은 우리가 결정 지어 준 것 같은데요."
"용기와 실력을 보여 주었죠."
"성채에서 사냥을 하려면 우리 정도는 되어야……"
쐐애액!
대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날아와서 떠들고 있는 유저의 가슴에 박혔다.
화르르르륵!
화염이 일어나며 유저를 뒤덮었다.
"꽤액!"
생명력도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유저는 발버둥을 쳤지만 어딘가에서 화살이 계속 날아와서 곧 사망.
다른 유저들에게도 수십 발의 화살이 빗발치듯이 쏟아졌다.
"도적 떼가 또 덤비는 모양입니다."
"엄폐물로 숨어요!"
유저들은 기둥과 벽 뒤로 몸을 숨겼다.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다.
고레벨이 될수록 목숨을 잃을 때의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기다리고 있으면 누군가 물리치겠지.'
'더러운 놈들. 아무도 안 나서다니.'
'도둑 대장도 나와 내 친구가 죽였으니 이건 알아서 해결하겠지.'
지치기도 했고, 위험해서라도 엄폐물 밖으로 뛰어나가는 유저가 없었다.
어쨌든 버티고만 있어도 생명력과 마나는 회복되어 간다.
시간을 끌수록 유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살이 직선이 아니라 휘어져서 엄폐물 뒤의 유저들에게 적중되었다.
"휘어지는 화살이다!"
벽을 뚫고 들어온 관통 화살도 유저들에게 적중되었다.
'도둑들의 궁술 실력이 이렇게 높지는 않은데?'
적중된 유저들마다 불에 타거나 물이 솟구쳐서 질식되고, 바람에 강타당했다.
정령술까지 보조해 주는 화살.
고개를 살짝 내밀어 본 헤르메스 길드 유저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위드, 금인이, 엘틴이 복도 끝에서 화살을 쏘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위드가 돌아왔다!"
떠난 줄 알았던 위드의 귀환.
하필 이런 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악의 순간이었다.
"룰루루."
위드가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왔다.
"빌어먹을!"
상황이 잘못된 것을 안 유저 중 1명이 과감하게 엄폐물 밖으로 나왔다.
빗발치는 화살들을 피해서 정면으로 달리더니 위드에게로 덤비지 않고 다른 복도로 뛰어갔다.
동료들이 아직 남아 있을 때 그들을 제물 삼아서 탈출하려는 것이었다.
헤르메스 길드의 탁월한 의리!
"저놈이 먼저……."
유저들은 한발 늦은 자신을 탓했다.
그리고 먼저 도망친 유저를 생각하며 자신도 뛰쳐나갈 시기를 가늠했다.
이미 1명이 도망을 쳤으니 위드도 경계하고 있을 것이다.
빨라도 안 좋고, 그렇다고 너무 늦으면 최악이다.
"으아아아악!"
그때 먼저 도망쳤던 유저의 비명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어흥!"
백호가 크게 포효했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있는 이곳은 이미 포위된 후였던 것이다.
위드가 느긋하게 말했다.
"천천히 해. 어차피 다 죽은 목숨이니까."
상대방의 기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재수 없는 말투.
마법의 대륙에서도 무차별 학살이나 비열하고 치명적인 술수들로 명문 길드들을 지독하게 괴롭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치가 떨렸던 건 이렇게 한마디씩 내뱉는 말 때문이었다.
신 나게 전부 다 죽이면서 하는 망이 상대방을 좌절에 빠뜨렸다.
"우유 배달하러 가야 하는데 늦었네. 그냥 빨리 갈 걸 그랬나?"
"인건비도 안 나와, 인건비도."
"예전이 좋았는데. 요즘 애들은 영 허약해서 싸워도 흥도 안 나고 재미도 없고."
베르사 대륙에서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헤르메스 길드 유저가 이런 꼴을 당할 줄은 몰랐다.
'놈은 애초에 판을 흔들어 놓고 우릴 죽이려고 했던 것다.'
목숨을 빼앗기게 되어서야 자신들이 처음부터 먹잇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못 먹는 감을 찔렀더니 땅에 떨어졌다.
위드는 감을 주우러 온 것이다.
★★★★★★★★★★★★★★★★★★★★★★★★★★
"여기군."
완전한 성채의 중심부.
헤르메스 길드를 물리친 이후, 위드는 부하들을 데리고 도둑 대장이 머무르던 장소에 들어왔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도둑 떼의 잔당이 남아 있어서 전투가 벌어지긴 했지만 가볍게 끝났다.
"덤벼라, 도둑놈들아!"
바하모르그가 가슴을 쭉 펴고 외치며 투지에 눌린 도둑들은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했다.
도둑 대장이 죽고 다들 흩어져 도망치면서 사기가 이미 엉망이 되었던 것도 이유이리라.
위드는 금고를 발견했다.
몇 개의 부서진 자물쇠 등이 있는 것으로 봐서 도둑 대장이 죽고 난 이후에 도둑들이 열려고 애를 썼던 모양이었다.
대장이 죽은 이후로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면 도둑들이 제물들을 몽땅 갖고 사라져 버린다.
그러므로 곧장 와야 했다. 위드는 품에서 녹슨 열쇠를 꺼냈다.
도둑 대장을 해치운 헤르메스 길드 유저를 없애고 전리품으로 획득한 열쇠였다.
"내가 전생에 정치인으로 태어나서 나라를 팔아먹은 줄 알았는데. 으음, 그래도 가끔 복이 아예 없는 게 아닌 걸 보면 뇌물은 조금 받았어도 마음씨는 착한 공무원이었던 모양이야."
위드는 열쇠를 넣고 돌렸다.
끼릭.
금고가 열리고 나타난 보물들.
금은보화라는 말 그대로 금괴와 은화, 보석이 금고에 가득 담겨 있었다.
"으헤헤헤헤."
위드의 입가가 찢어졌다.
"골골골골!"
금인이도 옆에서 같이 기뻐했다.
띠링!
- 완전한 성채를 접수하셨습니다.
도둑 크롬웰의 보물을 입수하셨습니다.
전투의 승리로 인해 모든 스텟이 1씩 증가합니다.
호칭 '도둑 토벌 대장' 을 획득하셨습니다.
★★★★★★★★★★★★★★★★★★★★★★★★★★
골드마인 던전, 아타로그 마굴, 완전한 성채는 시작에 불과했다.
위드는 방패의 무덤, 고원의 마법사 던전, 발키리의 비밀기지 등을 습격하여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을 몰살시켰다.
불과 사흘이라는 기간 동안에 죽은 유저들만 무려 470명!
옛 브리튼 연합 왕국과 라살 왕국의 넓은 지역을 오가면서 활동을 하였다.
그 여파로 인해 던전과 마굴, 사냥터에 있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위드는 짭짤한 재미를 봤지만 그렇다고 해서 습격에만 열을 올린 것도 아니다.
헤르메스 길드가 본격적으로 치안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유명한 던전들이 많이 비어 있었다.
일반 유저들이 사냥을 하고 있는 던전에 조각 변신술로 위장을 한 채 피 같은 입장료를 내고 끼어들었다.
물론 목적은 평범한 사냥은 아니고 업적을 달성하는 데 있었다.
- 블랙 서번트 던전의 모든 구역을 격파했습니다.
몬스터들을 제압하여 용맹을 과시하였습니다.
- 킹덤 요새의 지하 미로를 샅샅이 파헤쳤습니다.
지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서 지력이 2 증가합니다.
- 일레이자 산맥의 던전에서 보스 몬스터 구드렌을 포획했습니다.
연구를 위해 마법 길드로 데려간다면 대단한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각 파괴술을 써서 사냥 속도를 올리고 단숨에 업적 달성!
서윤도 가능한 참여헤서 혜택을 누렸고, 던전 안에서 세빌과 게르니카 등의 조각 생명체들을 소환해서 업적을 완수했다.
위드 혼자 들어갈 때에는 조각 생명체들이 최소 15마리에서 25마리까지 함게 업적을 달성했다.
세바스의 땅속 미로가 특히 압권이었다.
와삼이가 비좁은 통로에서 날개를 접고 뒤뚱거리며 따라왔다.
"꾸끼잇! 덥고, 어둡고, 답답하다."
악어 나일이는 두껍고 길쭉한 체형으로 인해 동굴 모서리에 몸통과 꼬리가 끼어서 고생했다.
"끄어어어어업!"
"입 다물고, 꼬리로 땅 치지 말고 빨리 걷기나 해. 아무튼 이 무능한 놈들은 내버려 두면 살만 찌는 것 같아."
위드와 조각 생명체들이 지나가는 것을 일반 유저들은 경이로운 시선으로 보았다.
그 광경이 사뭇 놀랍고 대단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위드 님, 저기, 사인 좀……"
"사인은 안 합니다. 대신 조각품이 있는데, 사실래요?"
"얼마인데요?"
"이것도 인연인데 1개마다 30골드면 좀 손해 보고 팔아도 될 것 같기도 하고."
"살게요. 10개 주세욥!"
"귀엽고 예쁘시니까 팔아 드리는 겁니다."
"네네, 영광으로 생각할게요."
인기를 이용한 조각품 강매!
와이번과 빙룡, 누렁이의 조각품은 어딜 가나 인기였다.
"오전에 1,000골드 넘게 벌었으니 너희한테 모델료를 주지. 각자 5실버씩이다. 매일 이렇게 버니까 얼마나 좋아."
"금방 부자가 될 것 같다, 음머어어어."
"다 주인 잘 만난 덕에 호강하는 거지."
시레를 잘 아는 유저들은 가끔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상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한 나무 조각품인데요. 아무리 위드 님이 직접 파시고 선물용으로도 좋다지만 소재가 조금 바가지 느낌이……."
위드는 기분이 나빴다.
예술가의 혼이 담긴 작품에 상업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가격을 책정하다니, 마음이 아팠다.
어떤 재료를 썼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작품 자체를 봐야 할 게 아닌가.
그럴 때면 위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얼마까지 낮춰 드릴까요. 먼저 제시해 주세요."
"죄송해서 어떻게 먼저 말을 하겠어요."
"그냥 편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30골드는 비싸니까 20골드요?"
"저는 예술가로서 작품이 비싸게 팔리기보단 많은 사람들이 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팔겠습니다."
원재료값이 전혀 들지 않았으니 팔기만 하면 남는 장사였다.
사냥을 하면서 휴식 시간마다 주변에서 주운 나무토막이나 돌을 이용해서 조각을 하는 건 기산도 길게 들지 않았다.
공장에서 기계로 깎는 것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제조가 가능했던 것이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를 잡아서 얻은 전리품과 금화에 비해서는 적은 돈이지만, 조각사로서 작품을 만들어서 파는 본분은 지켜야 했다.
시간 조각술을 펼칠 수 있는 찰나의 에너지를 얻는 방법은 모험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가 있지만 최선은 역시 조각이다.
유저들에게 조각품을 나눠 주면 가끔 찰나의 에너지가 증가했다.
눈곱보다도 적게 오르는 조각술 스킬 숙련도.
조각술 마스터까지는 한 발자국 정도 남겨 놓고 있었으니 이것도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