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전쟁의 신 위드
아타로그 마굴을 향해서 전속력으로 달리던 헤르메스 길드의 이른바 토벌대 유저들은 들려오는 소식들에 경악했다.
- 3개 연합 파티 전멸. 아무도 살아남지 못함.
- 습격자. 던전의 악령들을 끌고 다니고 있음. 그들에게 부하처럼 명령을 내리거나 하진 않지만 함께 싸움.
- 희생자 70명 돌파. 곧 길드의 모든 유저들이 전멸할 것으로 예상됨.
보통의 습격자라면 헤르메스 길드의 평범한 파티 하나로도 격파할 수 있다.
소수 대 소수의 싸움.
베르사 대륙에서 강자들만 모인 이익집단인 헤르메스 길드에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작 5명밖에 안 되는 인원으로 100명이 넘는 길드의 유저들을 거침없이 쓸어버리고 있었으니 가슴 한구석이 무거웠다.
도무지 상상하기 힘든 무력시위였다.
"이게 무슨…… 도대체 레벨이 몇이기에 악령들로부터 공격을 안 받아?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레벨이 550을 넘어야 가능한 것 아니야?"
"레벨이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특별한 물건을 갖고 있거나 잠깐 동안 전투력이 증가하는 퀘스트 중일 수도 있고. 우리가 가면 단숨에 이길 수 있습니다."
"인원수는 절대 무시할 수가 없지요. 저쪽은 5명이고 우린 한꺼번에 300명입니다. 놈들이 도망가지 않도록 빨리 도착하는 것만 생각합시다."
토벌대 유저들은 어쨌든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던전이나 마굴은 보통 통로가 좁고 장소가 협소하다.
지하 광장 같은 곳이라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지금까지의 활약으로 미루어 보아 섣불리 선두에 섰다가는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전방에 나서지는 않고, 물러서서 기회를 노려 봐?'
하지만 이쪽 집단의 위력이 너무나도 대단하다 보니 단기간에 전투가 끝나 버리면 허탈하게 되리라는 걱정도 들어 갈등이 되었다.
습격자들을 해치우고 얻을 길드 내의 명성이나 전리품들을 대단히 유혹적이었다.
이때 토벌대의 누군가가 말을 달리면서 말했다.
"로열 로드에서 이만큼 강한 유저란 흔하지 않습니다. 저는 습격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자마자 떠오른 사람이 있었는데요."
"누구?"
사람들은 이 주변에서 익숙한 흑사자 길드의 칼리스나 로암 길드의 로암 정도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로열 로드를 대표할 수 있는 강자의 이름이다.
"위드죠."
"위드? 아, 아르펜 왕국의 그 위드. 위드라면 그럴 수도 있지. 잠깐만, 위드?"
베르사 대륙에서 무신 바드레이의 유일한 호적수로 꼽히는 전쟁의 신 위드.
헤르메스 길드의 높은 긍지와 오만함에도 불궇고 위드에게만큼은 계속 패배와 좌절을 겪었다.
"나 참, 그런 농담 같은 이야기라니."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래도……"
"북부에 있어야 할 위드가 여기에 왜 나타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어서 가기나 하자고!"
토벌대의 전사들은 계속 말을 달렸다.
하지만 위드라는 말이 머릿속을 계속 떠나지 않았다.
'이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저가 또 있던가?'
베르사 대륙이 넓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던전에서의 싸움 형태도 그렇다.
'그놈의 주특기가 강한 부하들을 지휘하는 게 아닌가. 지난 전쟁에서도 바바리안 워리어가 엄청나게 활약을 했었다.'
토벌대에서 가장 강한 유저인 필리안이 말을 달리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다. 가면서 확인 좀 해 보자."
"어떻게?"
"골드마인 던전에서 죽은 애가 내 친구야. 그 녀석에게 물어보면 위드인지 아닌지 금방 확인할 수 있어."
필리안은 아는 인맥을 동원해 그 후배에게 연락을 하도록 하게 했다.
용건은 습격자가 위드인지 확인을 하라는 것!
그리고 대답은 불과 1~2분 만에 왔다.
필리안이 놀라서 외쳤다.
"마로마스터로부터 전해 들은 소식으로는… 이미 그놈이 위드는 아닌지 의심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
"위드의 전투 스킬 같은 건 여기 있는 있는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토벌대의 유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용하는 스킬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장비로도 추측이 불가능했고."
"그런데 뭘 보고 위드라고 의심하지요?"
토벌대가 말을 타고 가는 속도가 자연스럽게 조금 늦춰졌다.
"골드마인 던전 희생자들이 말을 맞춰 보다 보니 이상한 이야기가 나왔다. 상대방의 전투법이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처럼 과감하면서 능숙했을 뿐만 아니라, 공격에 실려 있는 힘도 감히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세다는 것. 어느 정도 강한 게 아니라 부딪치기만 해도 무기나 방어구의 내구도가 감소할 정도로 차원이 달랐다고 한다."
"모두 알고 있듯이 힘 강화. 위드의 특기 중의 하나로군요. 과감한 전투 방식도 흔하지는 않고."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위드의 여러 스킬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길드 내에서 많은 지원을 받는 정보대의 임무 중에는 전투 스킬에 대한 연구도 있다.
특히 강력한 유저들이 사용하는 특별한 스킬들을 분석하고, 그것을 얻는 방법이나 약점들을 전문적으로 분석한다.
위드가 예술 스텟을 힘이나 민첩성으로 바꾸는 것은 조각사의 직업 공통 스킬로 널리 알려진 조각 파괴술.
조각사에게는 일반적인 것이지만 다른 직업들은 갖지 못한 특별한 능력이었다.
"그리고 바바리안 워리어가… 그의 장비도 약간씩 달랐기 때문에 쉽게 구분하지 못했지만 대지의 궁전에서 활약한 위드의 부하가 맞는 것 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 위드가 중앙 대륙에 왔단 말인가. 어떻게 그럴 수가."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위드라고 8할은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희생자들과 함께 길드 동영상 게시판에서 정밀하게 전투 영상을 분석하고 있는데 위드 외에는 달리 추측되는 인물이 없다."
"……."
"어서 가자. 위드가 정말 맞다면 우리가 공을 세울 기회다."
토벌대의 이동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
포르모스 성.
톨렌 왕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그들은 갑자기 대륙의 중심에 선 기분이었다.
위드를 처치하게 된다면 대륙 전체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되며, 길드 내에서 포상도 두둑하게 받게 된다.
아르펜 왕국이 상당한 골칫덩이로 떠오르고 있었는데 위드를 여기서 없애 버린다면 그보다 더한 공적이 어디 있을까.
대륙 통일에 대단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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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로그 마굴에 도착한 토벌대!
푸히히히힝!
말들이 거품을 물고 쓰러질 정도로 바쁘게 달려서 불과 1시간 정도만에 도달했다.
"벌써 날파리들이 많이도 모여들었군."
"전부 쫓아내면 될 것입니다."
마굴 입구 주변에는 일반 유저들이 가득 차 있었다.
원래 유명한 던전 중의 하나이기도 했거니와 헤르메스 길드가 습격을 당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서 인근에서 전부 몰려온 것이다.
토벌대의 유저들은 유저들을 헤치고 입구로 달려갔다.
구경꾼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위드가 와 있는 거야?"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벌써 안에 있는 헤르메스 길드는 거의 전멸했대."
"위드라는 증거는?"
"안에서 본 내 지인의 말로는, 악령을 이끌고 싸우는 방식이 마치 마법의 대륙에서 전쟁의 신 위드가 하는 행동과 같다고 했어."
"지휘는 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화살도 쏘고, 검도 휘두르고, 직업을 종잡을 수 없다는 것도 위드라는 증거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여러모로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네."
"마굴에 들어가서 보고 싶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입구를 막아섰다.
"모두 물러서라!"
"이 마굴은 당분간 폐쇄한다!"
마굴 안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여야하는 만큼 구경꾼들을 물리치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었다.
또한 구경꾼들이 갑자기 위드를 돕거나 방해하는 일도 방지해야 했다.
습격자가 위드라는 가능성이 알려지자 길드의 통신망을 통해 가까운 포르우스 성, 그리고 멀리의 도시와 마을에서도 헤르메스 길드의 강자들이 추가로 출발했다는 소식들이 들렸다.
아타로그 마굴을 포위하여 위드와 습격자들을 독 안에 든 쥐로 만들 작정이었다.
"200명씩 진입한다. 완벽한 준비를 해서 위드를 없앤다."
마굴의 입구에 400여 명이 모였을때 진압 계획이 시작되었다.
위드가 지금까지 지골라스에서도 그렇도 번번이 골탕을 먹였기에 방심 따위는 전혀 없었다.
마굴 내에서 사냥을 하고 있는 일반 유저들도 모조리 쫓아내면서 위드에 대한 수색 작업이 철저히 진행되었다.
★★★★★★★★★★★★★★★★★★★★★★★★★★
"톨렌 왕국이 무너지고 말았다고?"
"예, 그렇습지요."
"그렇다면 나의 이 연구는……"
"서거하신 여왕 폐하를 위해서는 쓰지 못하실 것입니다."
"오호, 이런 아쉬울 데가 있나. 그렇다면 이 흑마법은 전혀 쓸모없는 게 되었구나."
위드는 아타로그 마굴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귀족의 악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굴 안에 있던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을 전부 격퇴한 이후에 최정지점까지 도착한 것이다.
위드는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말했다.
"어떤 흑마법을 개발하셨습니까요?"
악령 귀족은 오히려 되물었다.
"인간들이 추구하는 가장 큰 욕망의 성취, 그 밑바닥의 끝에 있는 게 무엇이겠는가?"
심상치 않는 수수께끼.
한때에는 대단한 비밀이 있는 것처럼 궁금증을 자아냈지만 현재는 이미 해결된 것에 불과하다.
바레나라는 네크로맨서 유저가 왔더니 악령 귀족은 비밀을 술술 털어 놓았다.
"아름다움이겠지요."
"영원히 유지되는 젊음과 미모.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것이지. 이젠 여왕 폐하께서 쓰지 못할 테니 자네에게 주겠네."
악령 귀족은 아름다움의 비약을 3개나 건네주었다.
- 흑마법으로 제조된 아름다움의 비약을 획득하셨습니다.
아름다움의 비약이 가진 이름은 흑마법이 으레 그렇듯이 함정에 가까웠다.
육체에 힘과 생명력, 민첩성, 맷집을 20개 이상 올려 주지만 대신에 매력과 신앙 스텟이 그만큼 하락한다.
행운도 만만치 않게 감소했다.
이 아름다움의 비약을 먹게 되면 베르사 대륙의 시간으로 1년간 몸에 영향을 미친다.
밤이 되면 몸의 피부가 악마들이 데리고 다니는 마수처럼 검고 딱딱하게 뒤바뀐다.
일몰 이후의 강함은 대단하지만 조금도 아름답지 않은 괴물의 모습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다들 없어서 못 먹지. 동물에 먹이면 효과도 좋다고 하던데.'
위드는 직접 마실 생각은 없고 좋은 구매자에게 팔아치울 작정이었다.
"정말 대단한 연구입니다."
"클클클, 하지만 이 비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들이 많이 필요한데……."
"제가 구해 와야지요."
"오, 그런가. 재료를 구할 장소는……."
"썩은 거품의 늪으로 가겠습니다."
"긴 여행이지. 다행히 그곳과 연결되어 있는……"
"게이트를 발돌시킬 수 있는 원한을 품은 썩은 해골은 이미 구해 왔습니다. 바로 가시지요."
바레나는 북부에 정착한 네크로맨서였으며, 다크 게이머의 일원이기도 했다.
그녀가 다크 게이머 연합에 올려놓은 정보 게시 글을 통해서 악령 귀족을 만나서 다른 사냥터로 곧바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ㅡ위드 님. 지금 베덴 길드와 헤르메스 길드에 비상이 걸리면서 토벌대가 아타로그 마굴을 향해 대대적으로 모여들고 있네요. 위드 님이 이곳에 오신 걸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위드는 마판 상회의 상인 검은돈을 통해 정체가 발각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흐음, 당연히 알아차렸군.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지만……."
아타로그 마굴에서 좁은 지형 등을 이용해 놈들과 전투를 펼칠 수도 있겠지만 승리를 확신하기 어렵다.
적들이 메뚜기 떼처럼 끝을 모르고 계속 몰려올 테니 하루 종일 싸워도 모자랄 것이며, 사제 집단의 지원을 받아서 마구잡이로 해치울 수 없으니 위험은 크고 실속은 적다.
모름지기 습격이란 정신없이 치고 빠지면서 효과를 극대화해야 했다.
위드는 마법의 대륙에서 명문 길드들을 괴롭히던 때를 떠올렸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혹은 생각하기도 싫은 행동들을 저지르면서 그들을 못살게 굴었다.
아주 작은 간섭만 하더라도 용서없이 수백 배의 보복을 가했다.
대화로 타협을 하자고 제의를 해오면 다 듣고 나서 생각해 보는 척 하다가 교섭을 하러 온 사절을 죽였다.
인간 말종을 넘어선 대악당!
돌이켜 보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어딘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저 내킨 대로 살았던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내가 나쁜 사람 같아?"
위드의 말에 서윤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다 내가 잘되려고 하는 게 아니야. 이 사회가 썩어서 그런 거지."
"맞아요."
서윤은 사막의 대제왕 시절에 함께 했던 것처럼 정보를 가져다주었다.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위드가 이미 알고 직접 살펴봤지만, 던전 내부의 상태나 몬스터의 특성, 지원군이 몰려올 만한 다른 지역들과의 거리 등은 그녀가 분석했다.
"그럼 다음 장소로 가자."
"장화와 지팡이 그리고 도시락을 준비했어요."
"완벽하군."
썩은 거품의 늪에서도 경험치와 전리품을 상당히 많이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흑마법으로 제조된 생명체들이 아주 많아서, 몬스터들읗 퇴치하면서 신앙심이나 자연과의 친화력을 올리기에 좋았다.
전투 업적을 세우면 직업에 따라 힘이나 지혜를 2개 얻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위드는 서윤과 부하들을 데리고 게이트를 통과했다.
잔뜩 독기가 올라 있던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또다시 허탕을 치고 말았다.
★★★★★★★★★★★★★★★★★★★★★★★★★★ 타이핑 턱봉이
골드마인 던전과 아타로그 마굴에서의 습격은 몇 시간 되지도 않아서 대륙을 뜨겁게 달구었다.
베덴 길드와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이 몰살을 당했다는 소식과 함께 구경꾼들의 동영상, 게시판의 글들을 통해서 대단한 화제가 됐다.
ㅡ위드가 헤르메스 길드에 칼을 뽑았다.
ㅡ200명, 300명 이상의 유저들이 목숨을 잃었더라.
ㅡ아타로그 마굴에서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방송국들은 이 소식을 뉴스를 통해 속보로 전하면서 동영상들을 소개했다.
영상에 대한 전문가들의 세부 분석을 통해서 그날 저녁에는 습격자의 정체가 위드가 틀림없다는 사실도 알려지게 되었다.
ㅡ위드다!
ㅡ대지의 궁전 파괴에 대한 복수를 위드가 시작했다.
ㅡ전쟁의 신이 움직였다!
방송국을 통해서 소식이 알려지자 파급력이란 엄청났다.
사람들이 주목하는 위드와 바드레이의 움직임.
그것도 위드가 전격적으로 중앙 대륙의 헤르메스 길드를 공격하고 있는 모양새인 것이다.
아타로그 마굴에서는 수색 작업이 샅샅이 진행되었음에도 위드와 그 일행은 발견되지 않았다.
베르사 대륙의 모든 유저들이 이번 일에 떠드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큰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로열 로드와 방송, 인터넷이 뒤집어지거나 말거나 위드는 그때까지 썩은 거품의 늪에서의 사냥을 무난히 마쳤다.
다른 방해자들도 없다 보니 침대에 누워서 텔레비전 보기 수준!
"그다음 장소로는 완전한 성채로 가야겠군. 골드마인 던전이 재물을 얻을 수 있다면, 완전한 성채는 사냥의 명당이지."
포르우스 성에서는 약간 멀지만 옛 톨렌 왕국 지역을 벗어나지 않은 위치에 완전한 성채가 있었다.
톨렌 왕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절대 함락되지 않을 성채를 건설하려고 했다지만 경사가 심한 산악 지형과 예산의 문제를 극복 못하고 공사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이름은 완전한 성채였지만, 실제로는 절반 정도 지어지다가 만 폐허.
그 후 방치된 완전한 성채는 도적단을 비롯하여 몬스터, 산적 떼 등이 무작위로 근거지로 삼아 왔다.
그들은 기본적인 레벨이 무려 390을 넘어가고 지방군 단위의 큰 규모를 이루어 넓은 성채에서 살아갔다.
마법사나 궁수, 암살자, 도망친 용병 등도 도적단이나 산적 떼에 몇 명씩은 섞여 있었다.
한때 완전한 성채 주변은 베르사 대륙에서 범접하지 못할 극도의 위험지역이었다.
인근 도시들에 대한 약탈도 빈번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후에 시간이 흘러 유저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향상되면서 완전한 성채는 훌륭한 사냥터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들의 토벌을 마치고 나면 대단한 퀘스트 보상과 도적들이 모아 놓은 전투 물자, 특별한 보물까지도 얻을 수가 있었다.
완전한 성채 지역은 중앙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최고의 사냥터.
위드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맺혔다.
헤르메스 길드의 침략을 북부에서 받게 되면 반드시 피해를 입게 된다.
그렇지만 자신이 중앙 대륙으로 나온 이상, 무궁무진한 방법으로 휘둘러 줄 수 있었다.
마법의 대륙에서도 매번 전투마다 눈치와 꼼수를 동원하며 적을 농락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면 싸우지 못했으리라.
"완전한 성채는 뭐 거의 축제나 다름없는 곳이라니 기대가 되는군."
위드가 악당 짓을 하는데도 대견하게 바라보는 서윤.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쉬면서 하세요."
"즐길 수 있을 때 마음껏 즐겨 줘야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썩은 거품의 늪을 나오니 포르우스 성 인근의 산속이었다.
"꾸에에엑!"
숲에는 와일이와 와삼이가 미리 대기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와일이를 타야겠군. 괜찮겠어?"
"불편하더라도 참아 볼게요."
와일이와 와삼이는 위장을 위해서 알록달록한 하늘색 물감을 칠하고 있었다.
유린의 그림 이동술을 쓰다 보면 사람은 움직여도 막대한 양의 전리품까지는 무리였다.
짐을 실어야 하기 때문에 등판이 평평한 와삼이는 최고였다.
이사용으로까지 사용되는 와삼이!
"끄아아아악!"
짐을 실을 때마다 와삼이는 무겁다면서 비명을 질렀다.
다리를 비틀거리거나 머리를 땅에 축 늘어뜨리까지 했다.
위드는 바하모르그에게 지시했다.
"조심해서 실어. 흘리지 않도록 줄로 잘 묶도록 하고."
"알겠다."
배낭들과 함께 줄로 완벽하게 묶이고 있는 와삼이.
"와삼아."
위드가 부드럽게 말하니 와삼이가 날카로운 눈을 번뜩였다.
"오래 살고 싶지?"
"……."
"세상 오래 산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다. 춥고 배고프면서 몸까지 아프면 그게 행복이 아냐. 이거 다 처분하고 나면 따뜻한 양털 옷 하나 짜서 입혀 줄게."
"까으으윽."
와삼이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와이번은 추위를 타는 생명체에 속할뿐더러, 빙룡과도 자주 엮이다 보니 특히 춥다.
따뜻한 양털 옷을 입는다면 와이번으로서는 상당히 출세를 한 것이다.
서윤이 와삼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불쌍해.'
그녀는 간파하고 말았다.
지금 상태에서 양털 옷까지 입혀 놓는다면 승차감은 더욱 좋아질 게 아닌가.
앞으로 더 바쁘게 와삼이를 써먹겠다는 의미였다.
★★★★★★★★★★★★★★★★★★★★★★★★★★
"위드의 습격이라."
라페이는 차분하게 보고를 받았다.
하벤 제국이 반란군으로 정신이 없는 와중이었지만 위드에 대한 정보만큼 중요한 건 없다.
"그와의 사이에서는 새삼 놀랄 것도 없는 일이지만 적극적으로 덤벼들어 보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당한만큼 보복을 하겠다면서 슬쩍 찔러 보는 것인가?"
라페이는 고민에 잠겼다.
중앙 대륙은 넓다.
하벤 제국에서는 반란군으로 인해 매일 수십 개에 달하는 커다란 전투가 벌어졌다.
제국의 중앙군이 움직이면 반란군은 단숨에 소탕되고 지역은 일시적으로 안정된다.
중앙군을 지원하고 지역의 치안을 유지하도록 하는 일만 하더라도 수뇌부의 업무는 과다할 정도였다.
아직까지는 그럼에도 하벤 제국군은 도차에서 일어나는 반란들을 쉽게 잠재우지는 못했다.
정복 지역의 민심이 악화된 만큼 크고 작은 도시와 성에서 반란군이 계속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클라우드 길드, 사자성, 로암 길드, 블랙소드 용병단, 흑사자 길드.
과거의 명문 길드들이 재기를 노리면서 제국의 요충지들을 정복한 것도 중대한 이유였다.
그들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절반이 넘는 군대가 동원되고 있다.
명문 길드들이 힘을 잃지 않았었다면 하벤 제국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대위기였다.
"즉시 토벌대를 보냅시다. 위드를 죽이면 대륙 정복이 사실상 끝납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저를 보내 주시죠. 기사단을 이끌고 가서 없애 버릴 겁니다."
제국의 임시 황궁.
아렌 성을 개조하여 쓰고 있는 회의실에서 기사들이 서로 나섰다.
위드가 불과 몇 명을 데리고 중앙 대륙으로 넘어왔다면 그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지 않은가.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중견에 달하는 유저들이 서로 보내 달라고 했다.
라페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위드를 없애야 한다는 관점에 대해서는 저 역시 동감입니다. 그러나 바보가 아닌 이상 포르우스 성 근처에 계속 머무르지는 않을 것인데 무슨 수로 그를 잡겠습니까?"
"지금부터 추격을 해야지요."
"정보대를 통해 조각술을 이용해 외모나 종족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찾아내기만 하면 대군으로 포위망을 형성해서 잡을 수 있죠."
"그는 와이번을 타고 하늘을 날아 다닙니다."
"그때는 그리폰 군단을 동원하면 됩니다."
하벤 제국의 그리폰 군단!
용기사 뮬을 대장으로 하는 그리폰 군단은 하벤 제국군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 중의 하나였다.
칼라모르 왕국을 정복할 당시에 상대 기사단을 묶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이후 계속된 지원으로 더욱 전력이 강해졌다.
지금은 연합군과의 승리 이후에 그라디안 왕국과 네스트 왕국의 접경 지역에 배치되어 반란군을 진압하고 있었다.
총 5,000에 달하는 그리폰 군단이 움직인다면 그 지역을 족쇄처럼 가둬 둘 수 있다.
그리폰 군단을 떠올리니 라페이도 약간은 구미가 당겼지만 이내 포기했다.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에서는 명문 길드들, 과거의 숙적들을 최우선 척결 목표로 삼고 처리하려 하고 있었다.
과거의 잔재들이라고 해도 어서 대대적으로 소탕하지 않으면 불씨가 되어 크게 번질 수 있다.
대대적인 소탕 작전을 펼친 이후에 제국의 내정을 안정시켜야 하는 지금 위드가 나타났다고 해서 대규모 추격전 같은 이벤트를 벌일 수는 없다.
'제국의 국력을 회복하고 안정화시킨 후에 북부를 파괴하면 끝난다. 확실한 방법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런 이벤트 같은 일을 벌이는 건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야.'
라페이는 생각을 정리한 후에 말했다.
"고작 1명으로 군대를 대규모로 파견하거나 하며 들썩일 것은 없습니다. 추격전을 벌이거나 해서 놓친다면 그것도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일. 하벤 제국의 방침은 현재의 우선순위를 그대로 유지합니다."
하벤 제국에서는 계속 치안과 내정에 전념하기로 했다.
위드가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군대가 마치 두더지 잡기에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각 지역마다 여유 병력을 상당히 동원하여 다음에 나타날 확률이 높은 지역에 덫을 쳐 놓기로 했다.
위험 지역의 결속력도 높여서, 위드가 나타나면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위드의 목에도 현상금을 걸어 놓기로 했다.
라페이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면 이 싸움은 헤르메스 길드에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열 번을 피해 입더라도 한 번만 놈을 잡으면 된다. 무모한 도전의 최후는 그런 것이겠지.'
앞으로 헤르메스 길드가 도저히 넘 볼 수 없는 힘의 격차를 보여 주면 반란군도 수그러들게 될 것이다.
마지막 희망까지도 짓밟고 나면 통치에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 테니까.
하벤 제국의 대영주들 중에서도 야망이 큰 인물들을 적당히 다독거리고, 때때로 힘을 보여 주면서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게 해야 한다.
설마 위드가 하벤 제국에 피해를 입히더라도 얼마나 되겠느냐는 생각이 아직까지는 팽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