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7화(53권-7화)
‘옆구리와 앞발의 상처…… 비늘이 없는 부분들이 약점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결정적이진 않겠어.’
300미터.
위드는 날갯짓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케이베른의 뒤통수와 날개, 등에서 꼬리까지 이어지는 빈틈들이 보였다.
‘이걸 확 패 버려 ’
뒤통수를 보며 느끼는 강렬한 유혹.
200미터.
케이베른이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블랙 드래곤의 커다란 눈동자에 비친 본 드래곤!
- 역겨운 냄새가 난다. 꺼져라!
케이베른은 아직 인간들이 남아 있는 만큼 공격하진 않았지만 매우 불쾌해했다.
- 미, 미안합니다.
위드는 물러서긴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주위를 계속 어슬렁거렸다.
케이베른이 마법으로 공격한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을 처리하기도 하면서 이득을 챙겼다.
“위드를 죽여!”
헤르메스 길드가 공격해 오면 재빨리 케이베른의 뒤로 숨었다.
철저하게 이용하는 얍삽함!
결국에는 인내심이 부족한 드래곤의 신경을 건드리고 말았다.
- 눈보라!
짧은 순간에 온도가 영하에서도 한참 밑으로 떨어지고, 눈과 얼음들이 날리기 시작했다.
위드는 자신을 향해 눈보라가 몰아쳐 오는 것을 보고 뒤로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주위에 둘러싸이고 말았다.
< 결빙!
몸이 얼어붙고 있습니다.
초당 2,896의 생명력의 피해!
이동 속도가 36% 저하됩니다. >
케이베른의 마법이 인간이 아닌 위드를 목표로 사용되었다. 마법 저항력이 꽤 높은 본 드래곤임에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위드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애초에 저 드래곤은 믿을 놈이 아니었어.’
지금까지 알뜰하게 마나와 체력, 생명력을 모아 놓았다. 그리하여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에 가까운 곳에 있는 케이베른을 향해 토해 낸 것이다.
- 산성 브레스!
위드의 입에서부터 일직선으로 뻗어 나간 브레스가 케이베른의 몸을 뒤덮었다.
- 감히……!
십여 초 뒤에 브레스가 멈추고 케이베른의 육체가 드러났다.
매끈하게 잘빠진 블랙 드래곤의 몸이 얼룩이 진 것처럼 더러워져 있었다.
생명력에도 제법 타격이 생겼겠지만, 그 정도로는 큰 위협을 가할 수 없었다.
“뭐, 뭐야.”
“위드가 드래곤을 공격했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는데, 본 드래곤과 블랙 드래곤이 맞붙은 것이다.
- 전소!
불의 상급 마법.
케이베른이 상대를 불태워 버리는 마법을 발동시켰다.
마법 저항력이 낮은 대상을 완전히 잿더미로 만드는 궁극 마법.
위드의 얼어붙어 있던 온몸의 뼈마디가 뜨겁게 타올랐다.
< 몸이 타오릅니다.
초당 5,317의 피해!
맷집과 마법 저항력이 빠르게 감소합니다.
매초마다 3%씩 줄어듭니다. >
막강하기 짝이 없는 본 드래곤의 육체는 아직까진 건재했다. 그렇지만 육체에 적용된 전소 마법을 해소하지 못하면 계속 생명력에 피해를 입는다.
‘이판사판이다.’
위드는 지상에서 날개를 펼치고 그대로 드래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불덩어리가 된 채로 전속력으로 날아서 케이베른에 부딪친 것이다.
케이베른이 깜짝 놀라서 피하려고 했지만, 양쪽 다 200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몸들을 가지고 있었다.
쿠당탕탕!
본 드래곤과 블랙 드래곤이 뒤엉켜서 함께 굴렀다.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며 지상에서는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바닥에 깔렸다.
< 거대한 충격으로 생명력 97,000이 감소하였습니다. >
본 드래곤의 몸에 230만이 넘는 생명력이 있더라도 전소 마법을 해제하지 못하니 시한부 인생이었다.
“죽어라. 솔직히 못생긴 도마뱀아!”
위드는 케이베른의 등을 네 발로 안고 달라붙어서는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 약점 공략!
당신의 물어뜯기가 상대의 연약한 부위를 공략했습니다.
생명력을 42,385 감소시켰습니다. >
< 이빨의 내구도가 감소했습니다. >
- 이 썩어서 바스러질 뼈다귀가 감히!
케이베른이 몸을 떨쳐 내려고 했지만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본 드래곤에게 최고의 기술 중의 하나라면 역시 물어뜯는 것이었다.
“너도 시커먼 도마뱀이야!”
위드는 닥치는 대로 몸을 물어뜯었다.
블랙 드래곤의 단단한 육체 때문에 강철을 깨무는 느낌이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빨이 깨질 정도로 물고 늘어지면서 발톱으로는 사정없이 케이베른의 몸을 긁어 댔다.
파바바밧!
무자비한 공격들의 연속.
- 저리 썩 꺼져라!
케이베른이 떨쳐 내려고 몸부림을 쳐 봐도 허사였다.
위드는 온몸을 감고 단단히 붙어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허억! 이게 뭔 일이야.”
“드래곤끼리 엉켜서 싸우네. 심지어 저 본 드래곤은 위드야.”
“대박이다. 괴수 영화를 보는 것 같아.”
헤르메스 길드마저도 얼이 빠져 있을 정도였다.
두 마리의 드래곤이 뒤엉켜서 개싸움을 하다니!
위드는 평소에 검을 이용한 깔끔한 전투를 선호했다. 일부러 맞아 주면서 맷집을 키우기도 하지만 철저하게 계산이 되어 있는 일.
가끔 전투에 푹 빠지면 과격하게 싸우면서도 냉정함은 유지했다.
“크와아아앙!”
- 가라. 저리 가!
땅을 뒹구는 케이베른과 위드!
‘이 도마뱀, 생각보다 못 싸운다.’
위드는 그 와중에도 정신을 바짝 차렸다.
드래곤이 이런 개싸움을 경험해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인간들과 공방전을 펼칠 때에도 어느 정도 상식선의 전투를 펼쳤다.
막상 거대한 본 드래곤이 등에 붙어서 사냥개처럼 목덜미를 물어뜯자 쉽게 떨쳐 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드래곤의 전투 기술 자체는 상당히 어설퍼.’
위드는 검술 도장을 다니던 기억을 떠올렸다.
@
최종범!
도장의 사범이면서 로열 로드에서는 검삼치라는 이름을 쓰는 그의 육체는 흉기, 그 자체였다.
근육과 흉터, 살벌한 얼굴까지!
“크흠. 여름에는 역시 쭈쭈바지.”
그가 이현과 함께 도장에서 훈련을 하다가 웃통을 벗고 인근 편의점에 간 사건은 전설로 남아 있었다.
“헛.”
“후왁!”
“꺽!”
거리에서부터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뜨거운 햇빛 아래 근육질의 몸은 계곡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근육 사이로 줄줄이 흐르는 땀.
남자나, 여자, 노인이나 어린아이들까지도 그저 지켜보게 만드는 멋진 육체였다.
“사형. 맨날 운동만 하는 것 같은데, 어릴 때 취미가 뭐였어요 ”
“권투.”
“10살 때도요 ”
“응. 어퍼컷이 주특기였는데 나보다 더 큰 형들을 한 방에 보내는 느낌이 끝내준다고 할까.”
취미로 무술을 하는 남자.
단증도 여러 개이긴 했지만 본인도 잘 기억을 하지 못했다.
킥복싱과 주짓수에도 빠져서 종합격투기에도 관심을 두었다.
“대회에 출전한 적도 있어. 7번 싸워서 전부 K.O로 이겼지.”
“선수는 안 되었네요.”
“응. 검을 들었을 때의 날카로운 긴장감이 없어서 재미가 떨어지더라. 힘과 체력으로 밀어붙이면서 마구 패 버리면 되었으니까.”
최종범은 전형적인 돌진형 파이터였다.
문제는 그 괴물 같은 돌진을 막아 낼 만한 이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 주먹과 몸으로만 싸우면 그를 이길 사람은 도장 내에 아무도 없었다.
“막내야. 검술도 좋지만 몸을 단련해야 된다. 어떤 좋은 기술도 몸을 바탕으로 펼쳐 내는 거야. 약한 몸으로 할 수 있는 좋은 검술은 없다.”
“예. 사형.”
이현은 쉬는 시간 틈틈이 최종범과 각종 격투기를 하며 놀았다.
‘의외로 쓸모가 많네.’
도장을 다니는 이유는 로열 로드에서 사냥을 잘하기 위함이었다.
상대방의 힘을 교묘하게 흘려서 맞는 것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자세를 무너뜨리는 법을 배웠다.
“검은 날카롭고 강하기 때문에 한순간의 공격만 성공시키면 된다. 사실 그게 가장 어렵기는 하지만…….”
“주먹으로도 한 방에 보낼 수 있지 않나요 ”
“되지. 근데 상대방도 실력자라면 흘려서 맞을 줄을 알아. 정확한 공격은 허용하지 않을 거다. 그래서 관절기로 이어지기도 하고…… 흠흠. 배워 놓으면 쓸모가 많을 거다.”
“이걸 어디에 쓰는데요 ”
“언제든지. 술 취한 사람이 괜히 시비를 걸 수도 있고 보통 험한 세상이 아냐. 그럴 때 자신을 지킬 수는 있어야 되지 않겠냐.”
@
- 크와아아앙!
위드는 포효성을 터트리며 케이베른의 목덜미를 계속 물어뜯었다. 드래곤의 거대한 육체를 네 개의 발로 압박하면서, 본능에 가까운 체중 이동을 하며 버텼다.
‘사형한테 그라운드 기술을 배운 게 이럴 때 효과가 있네.’
마법으로 인해 몸이 불타고 있었지만 할 일은 해야 했다.
< 상대의 급소를 물어뜯었습니다.
위험한 공격을 성공!
생명력 67,387를 감소시켰습니다.
부상 부위의 방어력이 2.6% 줄어듭니다. >
케이베른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면서 물고 흔들 때마다 생명력이 몇 만씩 감소한다.
문제는 케이베른의 어마어마한 생명력과 방어력이다.
위드가 몸으로 누르면서 물어뜯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공격으로는 드래곤이 죽기에 아득하게 모자랐다.
“파이어 에너지.”
“영겁의 피격!”
그때 헤르메스 길드원으로부터 공격도 들어왔다.
그들에게는 위드도 적이었기 때문에 케이베른과 위드를 가리지 않고 공격했다.
몸은 불타고 있고, 땅을 뒹굴 때도 생명력이 감소했는데 여기에 헤르메스 길드의 공격까지 당한다.
위드는 불과 2, 3분을 버티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다.
- 갈기갈기 찢어 죽여 주겠다!
땅을 뒹굴던 케이베른도 비틀거리면서 몸을 제대로 세웠다.
위드가 혼신을 다해 눌렀지만, 엎드려 있던 상태에서 뒷다리의 힘만으로 일어난 것이다.
본 드래곤이 비슷하게 거대하다고는 하지만 뼈밖에 없는 깡마른 몸. 기본적인 힘과 체중은 케이베른이 훨씬 무거웠다.
- 뇌전 폭풍!
케이베른이 빠르게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주변에 수백여 개의 벼락이 휘몰아쳤다.
< 벼락에 강타 당했습니다!
짜릿한 전기의 힘이 몸을 관통합니다.
생명력이 126,183 줄어듭니다. >
얼음과 불, 벼락까지 당하고 있었다.
‘나를 공격하기 위해 기꺼이 자기 자신을 표적으로 삼았구나.’
위드는 의도를 알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케이베른의 비늘은 막강한 마법 저항력으로 벼락들을 거의 무효화시켜 버렸지만, 본 드래곤은 뼈마디가 시렸다.
이것이 진짜 드래곤과 본 드래곤의 차이!
위드는 사자후를 터트렸다.
- 모든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드래곤을 집중 공격해라!
케이베른을 먼저 해치우고 그다음에 나를 죽여!
드래곤을 죽일 수 있는 엄청난 기회이고, 영광이다.
위드에게 헤르메스 길드와는 지독한 악연이었지만 베르사 대륙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드래곤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더구나 말과는 다르게 막상 드래곤이 죽고 나면 혹시 살아서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모를 일.
혼자서 드래곤을 잡는 건 도저히 무리라고 여겼기에, 헤르메스 길드의 도움을 청했다.
“그냥 다 죽여!”
“위드의 말을 믿지 마라.”
헤르메스 길드원들의 반응은 기대와는 정반대.
그들에게 드래곤이란 실로 대단한 존재이기는 했지만, 바드레이까지 이긴 위드를 죽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었다.
위드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헤르메스 길드의 공격은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졌다.
“바로 죽여 버려!”
“위드는 워낙 잔머리가 뛰어난 녀석이라 무슨 수를 써서 빠져나갈지 몰라. 적어도 위드라도 확실히 죽이자!”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위드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었다.
위드는 그들의 공격들을 무시하고 드래곤을 물어뜯었지만 슬슬 사냥에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실낱같은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상태!
- 강제 균열 파괴!
케이베른이 또다시 마법을 쓰면서 위드의 몸이 조각조각 부서졌다.
단단한 갈비뼈들이 우수수 깨지면서 땅으로 떨어졌다.
< 마법에 의해 신체가 파괴됩니다.
생명력의 최대치가 55% 감소합니다.
남아 있는 생명력이 30% 줄어들었습니다. >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이었다.
위드의 뼈마디가 부서지면서 케이베른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거대하던 본 드래곤의 육체는 팔과 다리, 날개의 일부들이 부서진 채로 누더기로 변하고 말았다.
케이베른은 분노의 포효성을 터트렸다.
- 한 줌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없애 주마!
얼마나 위드를 싫어하는지, 마법을 써서 곱게 죽이지 않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위드는 가까이에서 블랙 드래곤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을 봤다.
명백하게 브레스의 준비 자세였다.
- 이 도마뱀, 다음에 꼭 두고 보자!
케이베른이 입을 열면서 쏟아져 나온 브레스가 위드의 몸을 강타했다.
수십 개의 메시지창들이 순간적으로 떠오르고, 마지막 남은 단 하나.
[-생명력의 저하로 사망하셨습니다. 24시간 동안 로그인이 불가능합니다. 죽음으로 인해 레벨과 스킬의 숙련도가 하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