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드워프들의 계획
“내 검술이로군요.”
위드는 검을 휘두르는 걸 멈추고 하프엘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맞습니다.”
“당신이 나를 찾아왔나요?”
“케이베른과 싸우기 위해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미궁의 탐험을 이끌어 왔던 모험가들은 멀찌감치 물러나서 조용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비슈르가 호리호리한 몸을 일으켰다.
“케이베른은 정말로 지독한 드래곤이에요.”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드래곤과 싸우기를 결심했던데, 그가 무슨 사건을 일으켰나요?”
“맞습니다.”
위드는 도시들을 파괴하고, 몬스터들의 침략을 일으킨 케이베른에 대해 설명했다. 물론 중간에 케이베른을 비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시커먼 드래곤을 해치우지 않는 이상 대륙의 평화를 되찾긴 힘들 것입니다.”
“그렇군요. 그보다도 케이베른이 공격하는 이유가 드래곤의 알 때문이라고요?”
“맞습니다.”
“아마 진짜 드래곤의 알이 아닐 거예요.”
“네?”
비슈르가 알려 주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악룡 케이베른은 오래전부터 엘프들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실컷 괴롭히면 원하는 대로 삥을 뜯을 수 있는 드워프들과는 달리 엘프들은 자존심이 강한 고고한 종족이었다.
세계수와 그린 드래곤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리지도 못 했다.
악룡 케이베른은 이때 꾀를 내어서 엘프를 괴롭혀도 되는 명분을 만들었다.
드래곤의 알!
마법으로 만들어 낸 가짜 드래곤의 알을 엘프의 숲으로 들여보냈고, 그것이 깨어지자 핑계를 대고 습격을 해 왔다.
“악룡 케이베른은 숲을 불태우고 엘프들을 죽였어요. 엘프들에게는 기원이 되는 세계수마저도 타 버렸지요. 엘프들은 그날 이후로 숲을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위드에게도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다.
악룡 케이베른이 저지른 짓은 영락없이 깡패들이나 하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악룡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건가? 가짜 드래곤의 알이었다면 이 퀘스트도 헤르메스 길드 탓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벌어졌었겠네.’
가짜 드래곤의 알이 정상적으로 부화가 될 리는 없었다.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난 후에 알이 파괴되면 케이베른은 인간들을 공격했을 것이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엿이나 먹으라고 먼저 부숴 버렸기 때문에 기간이 단축된 것에 불과했다.
‘드래곤의 습격이 예정된 위협이었다니…… 그래도 나중에 상대한다면 훨씬 편하기는 했겠지.’
하프엘프 비슈르 완료.
마침내 미궁 조드에서 하프엘프 비슈르를 찾아냈다.
오랜 시간 동안 살아오다가 생명력이 다해서 식물로 변한 그녀를 재생의 검으로 다시 깨우는 데 성공.
블랙 드래곤 케이베른의 음모는 엘프들에게도 벌어졌으며, 이번에는 인간들의 차례라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하프엘프 비슈르가 살아난 것처럼 희망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지혜가 2 증가했습니다. >
< 모험의 결과로 전 스탯이 3씩 늘어납니다. >
퀘스트가 완료되면서 경험치와 모험 성과를 얻었다.
많은 유저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간단하게 해결하긴 했지만 과정들을 살피면 쉬운 퀘스트는 아니었다.
비슈르는 물의 정령을 소환하여 자신의 몸을 치유하더니 말했다.
“케이베른을 상대로 싸울 동료를 구하고 있었어요. 당신도 원한이 있다면 저와 같이 싸우는 것은 어떤가요?”
위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함께하겠습니다.”
하프엘프 비슈르가 동료가 되어 준다면 이쪽에서는 대환영이었다.
‘헤스티거처럼 알뜰하게 부려 먹어야지.’
엘프들은 궁술, 정령술을 타고났으며 몸이 빠르기까지 해서 활용 가치가 높다.
하프엘프는 보통 순수한 엘프보다는 재능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대신에 검술이나 맷집이 탁월했다.
“좋아요. 저는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케이베른을 없애기 위한 방법을 연구했어요.”
“200년이나요?”
“케이베른이 본격적으로 활동한다면 엘프들을 괴롭힐 것을 알고 있었어요. 여러 방법들을 고려해 봤지만 드래곤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죠. 그래서 찾아낸 최후의 방법이 희생의 화로예요.”
“희생의 화로?”
“드워프들이 가진 전설의 물건이에요. 드워프들은 불의 희생과 새로운 탄생을 따르는 종족이지요. 그 화로에 자기 자신을 바치면 드래곤을 상대할 힘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 화로를 저와 함께 찾으시겠어요?”
띠링!
드워프들의 고귀한 보물.
드워프들은 평생을 불길과 함께 살아간다.
작은 키들을 가진 그들의 역사에서 피워 낸 불길은 수없이 많지만 세 개의 신비로운 화로만큼은 꽁꽁 숨겨 두고 다른 이들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부그타 화산의 화로.
희생의 화로.
탄생의 화로.
그러나 희생의 화로에는 중대한 비밀이 있다.
“드워프들이 약하다고? 우린 화로에서 모든 걸 만들어 내지. 불길 속에서 나무를 불태우듯이 우리 생명을 태우면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어. 마법? 마법 따윈 화로의 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희생의 화로는 500년 동안이나 세상에 나오지 않은 보물이다.
드워프들의 보물을 찾아오면 드래곤을 상대할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희생의 화로에 대해서는 드워프의 장로들 중의 누군가가 알고 있을 것이다.
난이도 : S
퀘스트 제한 : 대륙을 구하는 영웅
가장 높은 모험 명성.
< 어떤 상황에도 거부할 수 없는 퀘스트입니다. >
< 퀘스트가 수락되었습니다. >
‘흠. 희생의 화로라…….’
일찍이 들어 본 적은 없지만 드워프의 보물이라니 상당한 기대가 되었다.
‘드래곤을 상대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면 대박이긴 한데…….’
문제는 하필이면 이름이 희생의 화로라는 이름이었다.
위드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단어가 희생이었다.
“자신의 생명을 태운다고요?”
“자세하게는 저도 몰라요. 하지만 드워프들의 보물이니 흑마법 같은 종류는 아닐 거예요.”
“으흠. 느낌이 좋은 것 같진 않은데.”
드워프들은 흑마법이나 사악한 수법을 혐오하고, 심지어는 거짓말도 잘 하지 않는 편이었다.
드워프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유저들은 평판이 떨어져서 마을에서 활동하기가 어려울 정도.
‘난이도 S급의 드래곤을 상대하기 위한 연계 퀘스트다. 함정이나 위험은 당연히 있겠지. 일단 계속 알아보긴 해야 되겠군.’
* * *
오베론.
차가운 장미 길드의 수장인 그는 아르펜 제국의 벤트 성 영주였다.
‘케이베른이 내 성을 파괴한다면 얼마나 기분이 안 좋을까.’
위드의 모험에 대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사냥을 하는 순간들을 매번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중요한 장면들은 지켜봤다.
“희생의 화로라고……?”
“대장. 우리 그때 들었던 거 아닙니까?”
“어…… 맞네. 드워프의 3대 보물 화로.”
차가운 장미 길드에 속해 있는 드워프 워리어들도 맞장구를 쳤다.
“이거 당장 위드 님께 알려야 되겠군.”
오베론은 아르펜 제국의 주요 영주들의 채팅 채널에 말했다.
“위드 님. 희생의 화로에 대해서 제가 알고 있습니다.”
불과 2, 3초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 로프너 : 대박입니다. 역시 오베론 님이시군요.
- 피아 : 오…… 과연 오베론 님.
- 레몬 : 멋지세요. 정보가 있으니 다음 퀘스트는 훨씬 빨리 진행할 수 있겠네요.
- 프레임 : 정말 케이베른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영주들이 환호했고, 곧이어 위드도 통신 채널을 확인했다.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비슈르와의 만남이 생중계가 될 테니 알고 있는 유저들의 제보가 있으리라고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 위드 : 지금 가겠습니다. 현재 있는 장소를 설명해 주세요.
위드는 잠시 후에 유린과 함께 그림 이동술로 도착했다.
“어떤 정보죠?”
“희생의 화로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정말 굉장한 정보로군요.”
위드는 가장 찝찝했던 부분을 해결할 수 있으니 퀘스트에 막대한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시작이 좋군.’
드워프의 보물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면 퀘스트의 진행 방향에 대해 파악이 가능했다.
“네. 당시에는 그냥 넘겨 버렸는데…… 희생의 화로에는 생명을 태울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생명을 태운다는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데요?”
“말뜻 그대로이긴 합니다. 생명력. 그러니까 자기 자신의 최대 생명력과 레벨을 화로에서 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요?”
“희생의 화로를 쓰면 최대 생명력이 떨어지고, 레벨까지도 낮아지죠. 대신 그 대가로 불길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강해집니다.”
“어느 정도나요?”
“잃어버리는 생명력이나 레벨의 10배라고 들었습니다.”
“높은 수치군요.”
“하지만 위험하기도 합니다. 아니, 무조건 위험합니다.”
희생의 화로에 최대 생명력 1만을 태우면 일시적으로 10만이 늘어난다.
위드의 생명력이 12만을 넘는 상태였으니 거의 두 배로 증가하는 것이었다. 레벨 100개를 태우면, 일시적으로 1,000개가 올라가리라.
“제한이 있겠죠?”
“그렇게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간단한 이야기만 들은 것이라서요.”
“흐음.”
위드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유지 시간이 문제지만 전투력은 이만하면 어마어마하게 강해지겠군. 이 방식이라면 케이베른을 사냥하는 것도 시도해 볼 수는 있겠지만…….’
최대 생명력과 레벨을 대량으로 걸어야 하니 엄청난 모험이었다. 가뜩이나 최대 생명력이 다른 유저들에 비해 낮았으니 더 손해가 컸다.
불꽃의 성배나 여러 장비들로 생명력을 높일 수야 있긴 하지만 그래도 손해는 손해다.
‘이런 희생을 치르고 실패까지 한다면 커피 맛도 안 느껴지겠어.’
최근에는 좀 먹고살 만해졌다는 판단에 커피 음료를 하루에 한 캔씩 마셨다.
‘지금까지 아끼고만 살았으니 커피 한 잔 정도는 괜찮잖아?’
아침 일찍 커피 음료를, 그것도 캔으로 따서 마시며 만끽하는 여유로움, 삶의 포근함.
‘이게 인생의 행복이지.’
한 번 목숨을 잃는 것만 해도 레벨과 스킬 숙련도에 타격이 큰데, 희생의 화로를 썼다가 실패하는 상황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물론 드래곤을 사냥만 한다면 전투 업적이나 보물들을 무진장 얻을 수는 있겠지만.
그때 오베론이 등에서 도끼를 뽑으며 말했다.
“위드 님. 저도 케이베른 사냥을 돕겠습니다.”
“네?”
“이럴 때를 위해서 레벨을 올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레벨 100개 정도는 포기해서라도 케이베른 사냥에 동참하고 싶군요.”
위드는 덥석 오베론의 손을 잡았다.
“고맙습니다. 진정한 영웅이십니다.”
본능적으로 그가 꺼낸 도끼도 슬며시 만져 봤는데 명품이었다. 가까이 있는 값어치 있는 물품들은 견적부터 자연스럽게 살피게 된다.
“무슨 말씀을요. 벤트 성의 성주로서도 당연한 의무입니다. 위드 님은 아르펜 제국의 황제로서 대륙 평화를 위해 모든 짐을 짊어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대륙의 평화를 지키는 건 저의 당연한 책임입니다.”
“언제나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위드 님.”
위드의 오래된 동료들만이 실체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 장면도 유저들이 보고 있겠지.’
시청률이야 가뿐하게 15% 정도는 나올 것이다.
아르펜 제국이 중앙 대륙을 정복하고 나서는 유저들의 인기가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오베론처럼 케이베른 사냥에 동참하겠다는 유저들이 계속 나타날 테지만, 반면에 퀘스트에서 발을 뺄 수도 없게 되었다.
‘내 입장이 대륙이 파괴되거나 말거나 내버려 둘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후. 헤르메스 길드가 파티를 벌이면서 좋아하겠군. 사냥에 성공을 하더라도 이게 이익일까?’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이었다.
희생의 화로를 얻더라도 케이베른 사냥에 모든 걸 걸어야만 했다.
TO BE CONTINUED
토르 지역.
악룡 케이베른의 영역이 가까워서 드워프 유저들은 평소에도 불안감을 안고 살았다.
“아. 드워프를 괜히 선택해 가지고…….”
“종족 자체는 은근히 귀엽고, 전투력도 강하고, 심심하면 이것저것 만들 수도 있어서 좋아. 돈 모으기도 쉽지. 근데 이렇게 맨날 드래곤 횡포나 당하고 살 줄 알았나.”
“드워프는 진짜 서러운 종족이지.”
토르에서는 산마다 질 좋은 광물들이 나와서 대장장이 스킬이나 손재주를 키우기 좋았고, 상인들도 꾸준히 찾아온다.
사냥터도 넘쳐 날 정도로 많아서 성장하기에 편한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드워프들은 어느 정도 레벨이 오르면 대륙 전체로 흩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모험을 한다며 떠난 드워프 유저들이 대부분 돌아오지 않는 것이 특징이기도 했다.
“이쪽이네. 장로들은 내가 모두 알고 있지.”
위드는 드워프로 몸을 바꾼 채, 대장장이 헤르만과 함께 토르를 돌아다녔다.
노른 산맥, 울타 산맥, 사이고른 산맥에 흩어져 있는 드워프 마을은 대략 2,300여 개로 추정되고 있었다.
몬스터들의 활동이 심한 지역에도 드워프들의 개척 마을이나 소규모 광산 마을이 존재했고, 그중에는 유저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도 많았다.
‘설마 그런 으슥한 마을에 희생의 화로가…… 있겠지. 아마도. 퀘스트 난이도를 보면 틀림없이 까다로울 거야.’
위드는 간단히 얻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알려진 마을부터 조사를 해 봐야 했다.
악룡 케이베른 퇴치는 토르의 드워프 유저들도 간절히 바라는 일이라서, 그들도 적극적으로 수색에 나서 주고 있었다.
“희생의 화로라…… 어디서 들은 것인지 모르지만 말해 줄 수 없네.”
큰 마을의 드워프 장로들은 입을 꾹꾹 다물고 열지 않았다.
인간이나 엘프에 비해서 드워프들의 입을 열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 편.
위드는 챙겨 놨던 뇌물을 앞으로 내밀었다.
“모라타의 특산품인 흑맥주를 마셔 보시겠습니까? 진한 풍미를 느끼게 해 주는 최상품의 보리로 만들었습니다.”
“크으…… 죽여주는 맛이군.”
“이거 판매하는 맥주인가?”
“그럼요. 워낙에 인기가 높아서 돈 주고도 사기가 힘들긴 합니다만 세 병을 챙겨 왔습니다.”
“고맙군. 실컷 마시고 오크 사냥에 나가면 끝내주겠어.”
“아까 물어봤던 희생의 화로는…….”
“음냐. 사실은 그런 이름을 나도 어릴 때 들어 본 적은 있어. 그런데 직접 본 드워프가 없으니 헛소문일지도 몰라.”
헤르만을 통해 만난 드워프 장로들은 희생의 화로에 대해 확실히 말해 주지 못했다.
“희생의 화로가 있긴 했지. 아주 오래전에…… 근데 어느 순간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크허. 정말 맛있는 맥주군. 적어도 우리 마을에는 없네. 이 맥주를 걸고 맹세할 수도 있어.”
“악룡 케이베른을 죽이기 위한 모험을 한다고? 크하하하. 그건 내가 두 살 때부터 맥주를 마신 이후에 들어 본 가장 재미있는 농담이군!”
드워프들은 거짓말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말은 신뢰가 있었다.
헤르만도 난처한 듯이 물었다.
“내가 아는 장로들은 다 소개를 해 주었네. 정보를 얻지 못했는데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글쎄요. 당장은 손을 쓰기 어렵지만 곧 방법이 생기리라고 봅니다. 그때까진 기다려야 되겠지요.”
위드는 모든 유저들에게 정보를 요청한다는 글을 올렸다.
백만 골드의 상금에 영주 자리도 하나 걸었는데, 실은 산악 지역의 영주 자리를 떠넘기기 위한 속셈이 컸다.
비밀을 아는 드워프 장로를 찾는다면 적어도 뛰어난 실력자일 테니까.
그런 실력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아르펜 제국의 발전을 위해 유리하다.
“드워프 영주는 생산력을 올려 주니 더욱 좋겠지.”
* * *
대지의 그림자 파티도 퀘스트를 해결하고 있었다.
< 케이베른의 나쁜 취향. >
< 오래된 나무의 기억. >
< 음습한 바위 아래. >
< 깨져야 하는 알. >
“와. 이게 전부 케이베른의 음모였다니…….”
“황당하네.”
은링, 벤, 엘릭스는 구덩이에서 백 개가 넘는 드래곤의 알을 발견하고 말았다.
케이베른의 알이 가짜라는 명백한 증거였다.
< 위대한 마법사를 찾아. >
그다음에 뜬 퀘스트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뛰어났다는 마법사를 따라가는 것.
“얼음 계열이라…….”
벤이 눈을 반짝였다.
그는 모험 중에서도 마법과 관련된 유형을 가장 좋아했다. 모험가가 아니라면 반드시 마법사가 되었으리라.
벤이 두 사람에게 이야기했다.
“난 평범한 곳에서 살아가진 않으리라고 생각해. 10대 금역 중의 하나이거나, 남쪽 끝. 혹은 북쪽 끝.”
“단서를 모아 봐야겠지만 남쪽을 찍겠어. 우리 예전에 ‘사막을 지나서 끝없이 걷다 보면 대지의 끝에 도달할 수 있다’는 애기 들었던 거 기억나?”
“기억나요. 바다가 나오고, 그 너머에는 얼음으로 된 대륙이 있다고 했죠.”
엘릭스의 말에 은링이 배낭에서 지도를 꺼냈다.
남쪽 대륙.
북쪽에 지골라스가 있다면 남쪽에는 얼음으로 이루어진 미지의 대륙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던 적이 있었다.
“언젠가 우리가 가려고 했던 장소이기도 하죠. 정보들을 조금만 모아 보고 출발해요.”
“동의해.”
대지의 그림자 파티는 많은 모험 경험과 스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몇 개의 큰 퀘스트 때문에 그동안 헤매기는 했지만, 그사이에도 해결한 의뢰들이 많았다. 특히 한 번이라도 가 본 장소는 대단히 먼 거리도 모험 경로를 달려서 하루면 도착했다.
대지의 그림자에서는 퀘스트에 대해 정보를 모으던 도중에 위드가 드래곤의 알이 가짜라는 사실을 파악한 걸 알게 되었다.
“역시 위드네.”
“케이베른도 방심할 수 없겠어.”
“우리도 빨리 움직여요.”
* * *
2주의 시간이 흘렀다.
수많은 드워프들이 정보를 찾아다녔지만 꼭꼭 숨겨진 것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도대체 희생의 화로는 어디에 있는 거야?”
“몰라. 이미 사라진 거 아닐까?”
“퀘스트라는 게 진짜 어려운 거구나. 모험가가 되어서 대륙을 돌아다니는 게 무진장 힘든 일이네.”
“헤르메스 길드에서 부숴 버린 거라면…….”
“설마. 하긴, 그럴 가능성도 없진 않겠다.”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으니 헤르메스 길드가 의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주가 지나는 사이에 케이베른에게 브리튼 연합 지역의 자유도시들이 부서졌고, 하벤 지역의 욱튼 성이 다음 목표가 되었다.
“이번 주는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군.”
위드는 미궁 조드를 완벽히 탐험하기도 했지만, 남들이 놀랄 정도의 강행군을 펼치며 전투를 했다.
어디든 넘쳐 나는 몬스터!
케이베른을 사냥하기 위해 모인 전투단이 있었지만 전사로 전직하고 나서는 주로 혼자 다녔다.
와삼이의 등에서 몬스터들의 무리 한복판으로 떨어졌다.
악마의 부하로 알려진 쿠랄.
각 마을과 도시들을 침공하는 강력한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내렸다.
“어디 칼춤 한번 춰 볼까?”
위드는 조각 파괴술로 모든 예술 스탯을 힘으로 몰아넣었다.
- 그웩!
- 저자다. 저자가 인간들의 우두머리다.
- 죽여라. 케이베른 님을 위해!
그야말로 벌 떼처럼 온 사방에서 몰려드는 몬스터들.
쿠랄은 4미터의 키, 그리고 도끼를 들고 다니는 악마의 부하였다.
대형 마수 타볼라 곤을 탄 쿠랄이 다른 몬스터들을 짓밟으며 쳐들어왔고, 크고 작은 녀석들이 뒤를 따른다.
설상가상으로 그 뒤에는 개구리와 인간을 섞어 놓은 것 같은 포이즌 프로그맨들이 있었다.
케이베른이 일으킨 몬스터들이 군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까닭도 조합 때문이었다.
지휘관 격인 쿠랄, 대형 마수 타볼라 곤을 타고 기사단의 역할을 한다.
보병들로 활약할 만한 몬스터들은 많고도 많았고, 후방은 포이즌 프로그맨들이 빼곡하게 메우고 있다.
그들이 침을 모아서 앞으로 내뱉자 화살처럼 먼 거리를 날아갔다. 당연히 지독한 독성도 지녔다.
- 엄청납니다! 위드가 적진의 한복판에 혼자 떨어졌습니다.
- 전쟁의 신 위드. 자신의 오랜 별명처럼 전쟁이라도 벌일 듯한 모습입니다.
- 몬스터들이 자신들끼리 부딪치고, 밟히며 죽고 있습니다. 위드가 가는 길은 아수라장이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방송국에서는 위드의 모습을 중계하면서 진행자들이 피를 토하듯이 소리쳤다.
- 미쳤습니다. 이게 전투예요. 이게 진짜 전투라는 말입니다.
- 로열 로드에서 수많은 전사들이 싸웁니다. 어떤 이들은 용감하게 돌격하기도 합니다만…… 이런 장면은 뭡니까.
- 높은 화면에서 좀 보여 주세요. 피쳇 평원의 모든 몬스터들이 하나의 점. 위드를 향해 덤벼들고 있습니다.
마을이나 도시도 부술 수 있는 몬스터들의 전력.
위드는 때때로 퀘스트를 하다 보면 무모한 짓을 저질렀다.
‘육상 돌격형 몬스터들이 주력이다. 많긴 해도 동시에 싸우는 적은 막상 얼마 안 돼. 해 볼 만할 것 같은데?’
그래도 와삼이의 등에서 땅으로 떨어졌더니, 모든 몬스터들이 덤벼드는 것이다.
상상했던 장면이긴 하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그 위압감이 끔찍할 정도였다.
“재생의 검!”
위드는 재생의 검을 펼쳤다.
방어력을 높여 주고, 여기에 회복 능력까지 상승시켜 주는 사기적인 검술.
몬스터들을 쳐 내고 베면서 버틴다.
< 타볼라 곤의 뿔에 받히셨습니다.
생명력이 1,420 감소했습니다. >
하늘 지배자의 갑옷에 각종 방어구들의 효과!
“용암의 강!”
위드는 신성한 불을 로아의 명검에 씌운 후, 용암을 일으켜서 몬스터들의 접근을 막았다.
한 방면의 적들만 상대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용암을 뚫고 몬스터들이 돌진해 왔다.
- 죽어라.
- 쿠쾌에에엣!
- 갈기갈기 찢어 주마.
한쪽은 성난 몬스터들.
반대쪽은 용암의 강을 뚫고 불덩어리가 되어서 덤벼드는 몬스터들.
그 너머에는 시커먼 침들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사실 어중간한 중독 현상은 네크로맨서 스킬로 회복할 수 있었지만, 꾸준히 스킬을 써야 했고 생명력의 손해도 입는다.
위드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 재밌네. 이래야 시시하지 않지.”
몬스터들에게 수시로 피해를 입는 만큼 재생의 검을 계속 휘둘렀다. 로아의 명검이 빛살처럼 적을 베었다.
< 바탈리가 그대를 보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싸워라. 전사여.
너의 강함을 즐겨라!”
바탈리의 축복이 부여됩니다.
공격 스킬의 마나 소모가 30% 감소하고, 위력은 25% 강해집니다.
모든 상태 이상이 회복됩니다.
적을 죽였을 때 얻는 경험치가 증가합니다. >
- 쿠구구구!
공중에서도 마물로 변형된 괴조들이 내려오며 부리로 쪼았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쉴 여유도 없이 펼쳐지는 처절한 전투. 잘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가진 능력을 200% 발휘한 전투였다.
적이 불에 타고, 포이즌 프로그맨들이 쏟아 낸 독침은 연기로 변해서 안개처럼 주위를 덮었다.
위드가 그야말로 사선을 넘으면서 10분을 버텨 냈을 때였다.
띠링!
< 전투 업적!
홀로 싸우는 전사를 완료하셨습니다.
검술의 공격력이 3% 강해집니다.
다수의 적을 상대로 싸울 때 체력과 생명력의 회복 속도가 빨라집니다. >
위험한 전투들이 때론 기가 막힌 전투 업적이라는 결과로 나타난다.
위드의 주변은 몬스터들의 시체들로 즐비했다.
전투 중에 죽은 녀석들보다, 자신들끼리 돌격하느라 밟혀서 시체가 된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 너머 수없이 많은 몬스터들이 끝도 없이 덤벼들고 있다.
위드와 가까운 곳은 시체와 몬스터들로 뒤엉켜서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다.
“좋아. 시체 폭발!”
콰과광!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TO BE CONTINUED
대지가 흔들릴 정도의 시체 폭발.
언데드 스킬로 시체들을 날려 버리며 대량 학살을 일으켰다.
적어도 천 마리가 넘는 몬스터들이 일제히 죽음을 맞이했다.
“너희가 살아서 움직이던 땅으로 돌아오라. 이곳은 어두운 곳. 검고 부패한 땅. 영영 사라지지 않을 암흑의 율법을, 모든 이들에게 새길 수 있도록 하라. 언데드 라이즈!”
데스 나이트, 듀라한의 대량 소환!
“콜 데스 나이트 반 호크. 콜 뱀파이어 토리도!”
위드는 반 호크와 토리도까지 소환하며 전투를 이어 나갔다.
- 추잡한 네크로맨서였구나!
- 어리석은 놈. 우릴 막진 못한다!
타볼라 곤에 의해 언데드들이 가차 없이 짓밟혔다.
언데드들은 대형 생명체들에게 취약했다. 방어력이 부족했기에 허약한 뼈마디로는 버티지 못했다.
위드가 바르칸의 풀세트가 아닌 하늘 지배자의 갑옷과 전사의 장비들을 착용하고 있기에 언데드들이 더 약했다.
“실컷 싸워라. 이 무능한 녀석들아.”
위드는 몸에 붕대를 감고 전투를 계속했다.
언데드들이 공격을 분산시켜 주는 동안 한숨 돌릴 수 있는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넉넉하게 마나가 회복되었을 때였다.
“종말의 날!”
태양의 전사, 궁극의 스킬!
모든 마나를 태워서 발생시킨 화염의 해일이 사방으로 밀려 나갔다.
신성한 불과 불꽃의 성배에 의해 위력이 향상되어서, 가까이 있던 언데드들을 소멸시키고 몬스터들까지 잡아먹으면서 끊임없이 번져 나갔다.
“와삼아!”
- 가고 있다. 주인!
위드는 지상으로 낮게 날아오는 와삼이의 등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생명력과 체력, 마나를 싹 쓴 후에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었다.
- 도망치지 마라!
- 비겁한 놈. 돌아와라.
지상에서는 쿠랄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강력한 몬스터 군단이었지만 절반 정도로 전략이 약화되었으니, 공성전에서 막아 내기가 훨씬 쉬워졌으리라.
케이베른 외에도 아르펜 제국의 도시 7개, 마을 31개가 몬스터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위드가 그렇게 노력했지만 갑작스런 몬스터들의 침략을 제대로 막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어떤 때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병력을 가지고도 제대로 싸우지 못해서 무너지는 경우도 생겼고.
옛 명문 길드들은 사정이 나았지만, 아르펜 제국의 대다수 영주들은 규모가 큰 전투 경험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아르펜 제국의 타격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 * *
3주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믿을 만한 제보가 들어왔다.
- 샤이샤 : 지금 데브라도 마을에 와 있습니다. 이 마을은 지도에도 표시가 되어 있지 않고, 케이베른의 영역과 상당히 가까운 곳인데요. 희생의 화로에 대해 알고 있는 드워프를 찾아냈습니다.
울타 산맥의 깊은 곳에 있는 드워프 마을.
이곳의 드워프들은 정련된 철로 고급 무기들을 생산해 냈다.
그동안은 존재 자체가 감춰져 있었지만, 케이베른의 퀘스트 때문에 모험가들이 토르 지역을 이 잡듯이 뒤졌다.
케이베른의 영역 근처도 수색 대상이 되었는데 매우 강력한 몬스터들이 많이 돌아다녔기에 드워프들이 목숨을 걸고 나섰다.
드워프들은 레어와 가까운 곳이 아니라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고, 케이베른의 부하들을 보낼 때마다 돈이나 보석들을 바쳐야 했다.
위드의 모험을 돕는다는 열정만으로 수없이 많은 드워프들이 토르에서 활동한 덕분에 결실을 맺은 것이다.
- 위드 :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 * *
위드는 유린의 그림 이동술로 안전한 지역으로 간 이후에 드워프의 조각품을 깎았다.
“조각 변신술!”
수염을 곱게 기른 드워프로 몸을 바꿨다. 배도 볼록하게 튀어나오고 도끼도 쓸 만한 것을 하나 들었다.
드래곤의 영역 부근은 텔레포트와 같은 공간 이동이 막혀 있었다.
위드는 드워프의 모습을 한 채로 울타 산맥을 내달려서 데브라도 마을에 도착했다.
“이쪽이에요. 위드 님이 맞으시죠!”
입구에서 서서 기다리던 샤이샤가 반갑게 맞이했다.
“예. 제가 위드입니다.”
“위드 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바쁘실 텐데 일을 먼저 보셔야죠. 마을 장로님은 대장간에 계세요.”
“퀘스트에 도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저는 토르에 사는 드워프이긴 하지만 아르펜의 주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요.”
샤이샤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숱한 업적들을 세운 위드를 가까이서 만나니 저절로 긴장이 되었다.
위드는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은 드워프로 변신한 상태이기까지 했는데 어딘가 남다른 외모처럼 느껴졌다.
팔다리는 짧지만 굵었고, 코는 유난히 붉었는데 영락없이 술 잘 먹고, 일 잘하는 드워프의 상!
마을 장로도 훌륭한 대장장이라서 팔뚝의 근육이 우락부락한 드워프였다.
“샤이샤. 그리고 저쪽은 못 보던 얼굴이군. 젊은 드워프여. 이 마을에는 왜 왔는가?”
“장로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희생의 화로에 대해서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위드는 드워프식으로 슬쩍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황제라는 지위는 드워프들에게 잘 통하지도 않았고, 지금은 조각 변신술까지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을 장로는 탁자에 있던 맥주를 손으로 잡아서 들이켰다.
“희생의 화로라…… 정말 오래전에나 가지고 있던 우리의 보물이었지. 이젠 아무도 찾는 드워프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무슨 이유라도 있을까요?”
“그건…… 말해 주기가 곤란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희생의 화로가 이 마을에 있나요?”
“크허험. 맥주가 쓰군.”
데브라도 마을의 장로는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딴청을 부리고 있는 상황.
“여기 모라타산 맥주를 좀 드셔 보시죠.”
“무슨 맥주인가? 거품이 기가 막히는군!”
위드에게는 입이 무거운 드워프들을 무장해제시키는 방법이 있었다.
“한 잔 더 드시죠. 쭈욱.”
“크하아!”
드워프들은 여간해서는 술에 취하지 않지만 모라타산 맥주에는 함정이 있었다.
‘맥주 7, 위스키 3. 이것이 황금의 혼합비다.’
드워프들에게 먹이는 폭탄주!
위드가 마스터에 달한 손재주로 제대로 술을 말아 주었다. 그러자 말하기 곤란하다던 비밀도 순순히 흘러나왔다.
“희생의 화로는…… 딸꾹. 솔직히 말하자면 잃어버렸어.”
“드워프 종족의 보물을 잃어버렸다고요?”
“크으…… 우리 보물이란 게 다 그렇지만 드래곤의 눈에 띄는 순간 뺏기는 거지.”
“드래곤에게 뺏겼다면 혹시 케이베른 때문입니까?”
“맞네. 맞아. 그 탐욕스런 드래곤이 우리의 화로를 가져가 버렸지.”
“…….”
위드는 막막함을 느꼈다.
케이베른을 잡는 데 필요한 보물을 이미 빼앗겨 버린 후였다니!
막상 말을 하고 나니 드워프 장로는 화를 참지 못했다.
“케이베른이 우리의 보물을 가져가서 도대체 뭘 했는지 아는가?”
“뭘 했는데요?”
“난로로 썼다고 해. 그것도 다른 보물들처럼 몇 번 써 보고 구석에 처박아 두고 잊어버렸단 말이지.”
“역시 그렇군요.”
위드는 내심 케이베른이 희생의 화로에 군고구마를 구워 먹었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았다.
드래곤이란 그렇게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는 존재는 아니니까.
“그렇다면 화로는 현재 케이베른의 레어에 있겠군요.”
“여기서 그리 멀진 않지만 우리 드워프들의 손에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렸지.”
드워프 장로의 목소리가 아련해지면서 위드는 무언가의 느낌이 왔다.
‘이렇게 끝나는 게 아냐. 틀림없이 퀘스트로 이어진다.’
숱한 경험으로 쌓인 본능적인 감각.
드워프 장로가 맥주잔을 내려놓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희생의 화로를 되찾아 온다면 그는 우리 드워프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어.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는 것이네.”
“하지만 케이베른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 주변의 호위병들도 많습니다.”
위드는 조각사로서 퀘스트를 위해 드래곤에게 보석 조각품을 바쳤던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케이베른의 레어의 입구까지 가 봤다.
가파르고 험한 지형은 둘째였고, 강력한 몬스터들의 천국이었다.
‘몬스터들을 물리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용아병들이 너무 많았어. 마법 함정들도 설치되어 있을 테고 침입하다가는 케이베른에 의해 죽겠지.’
난공불락의 요새가 따로 없었다.
“큼. 역시 너무 어렵겠지. 하지만 자네도 알겠지만 우리 드워프들은 포기를 모르지. 사실 이건 드워프들끼리의 비밀이지만 이 마을이 레어 근처에 있는 이유가 있어.”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드워프들이 잘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야. 눈치 빠른 드워프라면 이쯤만 말해도 충분히 이해할 테지?”
“설마…….”
“흠흠.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네. 자네가 우리 일을 도와준다면 몰라도 말이야.”
띠링!
드워프들의 은밀한 계획
드워프들은 소중하게 여기던 희생의 화로를 케이베른에 빼앗기고 말았다.
용맹한 드워프들에게 천적인 드래곤!
숱한 보물들을 바쳐 왔지만 희생의 화로는 드워프들의 기원과도 관련이 있는 물품.
케이베른이 가져간 희생의 화로를 회수하라.
위험한 일이지만 성공한다면 드워프들은 후한 보상을 해 줄 것이다.
난이도 : S
보상 : 드워프들의 진귀한 보물.
퀘스트 제한 : 드워프.
< 드워프들의 종족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조각 변신술로 완벽하게 드워프로 몸을 바꾼 상태이기에 퀘스트 수행이 가능합니다.
의뢰를 거절한다면 드워프들은 당신을 비겁한 자로 여길 것입니다.
명성이 10,000 감소하고 드워프들과의 친밀도가 부정적으로 변합니다. >
난이도 S급의 종족 퀘스트!
‘어떻게든 희생의 화로를 구해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드워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덕분에 종족 퀘스트까지 뜬 것 같군. 일석이조라면 나쁠 것 없지. 그리고 드워프들이 잘하는 일이라.’
키 작은 드워프들이 잘하는 일!
케이베른의 레어와 가까이 있는 드워프 마을.
위드는 대화를 나누다 보니 무언가가 떠올랐다.
“희생의 화로는 반드시 제가 찾아오겠습니다.”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
* * *
위드는 데브라도 마을을 돌아다니며 탐색을 시작했다.
‘드워프 인구는 325명. 노인들이 대부분이고 어린 드워프들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군.’
드워프들은 평균적으로 아이들을 셋 이상은 낳는 종족이었다.
마을 주민들의 구성에서 나이 많은 이들만 모여 있는 점이 특이했고, 대장간들의 숫자도 다른 드워프 마을들보다 적었다.
땅! 땅! 땅!
드워프들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무기와 방어구들만을 대량으로 만들어 낸다.
‘상인들이나 모험가가 잘 찾아오지 않는데도 이렇게 계속 만든다고? 마치 전쟁을 준비하는 것처럼 말이지.’
의심이 더욱 깊어지는 상태!
드워프들은 좋은 맥주를 들고 가면 자신의 집으로 선뜻 초대를 해 주기도 하는데, 벽에는 최상급의 검과 도끼, 갑옷 등이 걸려 있었다.
드워프들의 제작품임을 감안하더라도 품질이 매우 뛰어났다.
‘드워프들이 잘하는 일이라…… 그리고 전사들의 수준도 뛰어나. 노인들이지만 타고난 드워프 전사들만이 마을에 머무르고 있어.’
슬슬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한 가지만 더 확인을 해 보면 완벽할 것 같았다.
위드는 근처의 드워프 주민에게 물었다.
“광물을 좀 캐고 싶은데, 광산이 어디에 있죠?”
“북쪽에 있다네. 꽤 오래 걸어가야 하지.”
“고맙습니다.”
위드는 곡괭이를 하나 가지고 광산 지역으로 달려갔다.
울타 산맥의 암석 지대에 있는 광산은 매우 크고 깊은 것을 제외하면 언뜻 보기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다.
땅! 땅! 땅!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드워프들이 곡괭이질을 하며 바쁘게 철과 은을 캐내고 있었다.
“이게 방금 캐낸 건가요?”
“그렇네.”
위드는 한쪽 구석에 쌓여 있는 철광석과 은광석을 만져 봤다.
“감정!”
< 질 낮은 철광석
몇 가지 광물들이 조금씩 섞여 있다.
철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그 순도는 떨어지는 편이다. >
보통 드워프들은 최고급 품질의 철광석들을 이용했다. 애초에 광맥이 나쁘다면 마을을 만들지도 않는 종족.
광산까지 살피고 나니 의심은 슬슬 확신으로 굳어졌다.
어린아이가 없는 비정상적인 인구 비율,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전투 물자, 질 낮은 철광석이 나오는 광산은 크고 깊었다.
‘게다가 이 광산이 뚫린 방향이라면…… 그래. 이 드워프 마을의 정체를 알아냈다. 이곳의 드워프들은 땅굴을 파서 케이베른의 레어를 털어먹으려는 거야!’
위드는 서윤과 첫 키스를 나누었을 때처럼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