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55권 : 1. 빈집 털이 (389/520)

달빛조각사 55권

1. 빈집 털이

이현이 캡슐에서 나왔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땅굴이라…….”

일반적으로 케이베른의 레어에 들어가서 희생의 화로를 훔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무엇보다도 드래곤의 존재 때문에라도 도둑질을 한다는 건 그야말로 자살 행위.

“그렇지만 공교롭게도…… 케이베른은 일주일에 한 번씩 도시를 파괴하기 위해 레어를 나간단 말이지. 즉 이건 빈집 털이야.”

빈집 털이!

눈 뜨고 코 베어 가는 세상에 드래곤이 집에 없다면 못 할 게 뭐 있단 말인가.

원래대로라면 몰래 잠입해서 들키지 않도록 갖은 고생도 하고, 은밀하게 진행을 했어야 마땅하리라.

그렇지만 드래곤이 자리를 비운다면 퀘스트를 둘러싼 환경이 완전히 달라지는 셈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정말 극악의 난이도를 가진 퀘스트야. 하지만 이렇게 되면 희생의 화로가 문제가 아니지. 잘하면 레어의 보물을 몽땅 털어먹을 수도 있다는 건데.”

이현은 벽에 토르 지역의 대형 지도를 붙였다.

드워프 마을과 광산의 위치와 방향, 케이베른의 레어를 표시했다.

과거에 악룡 케이베른에게 상납하는 퀘스트를 진행했던 적도 있었다.

아가테의 수정으로 만든 눈부신 케이베른 조각상.

보석 조각품을 바치기 위해 레어에 들어가 본 경험도 참고했다.

“몬스터들은 외부를 주로 지키고 있었어. 땅굴을 잘 판다면 들키지 않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케이베른의 레어에는 막대한 보물과 보석들이 있었으니 수송 수단의 마련도 필요했다.

“물건을 훔쳐 온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안 돼. 이삿짐센터를 불러서 싹 쓸어 온다는 느낌으로…… 맞아. 바로 그런 느낌이야.”

이현은 이삿짐센터에서도 며칠이지만 아르바이트를 해 본 적이 있었다.

빠르게 살림살이를 포장해서 짐을 트럭에 옮겨 싣지만 업무 분담이 확실하고 무엇보다 빨랐다.

30평대 아파트 한 채를 깨끗하게 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오전 중에 끝난다.

“케이베른의 레어에서는 하나씩 포장하지 않아도 되고, 짐을 분류할 필요도 줄어들지. 속도와 물량에 최대한 초점을 맞춰서 몽땅 털자.”

빈집 털이, 싹쓸이!

* * *

위드는 로열 로드를 접속하자마자 마판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큰 일감이 생겼습니다.”

- 마판 : 어떤 일감인데요? 위드 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면 정말 보통 일이 아닐 텐데요?

가르나프 평원에서의 전투를 벌일 때도 큰 일감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하지만 케이베른의 레어를 터는 일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중대한 일.

“숙련된 인부들이 필요합니다. 마차를 모는 실력이 기가 막혀야 돼요.”

- 마판 : 어느 정도의 실력자들을 원하시는지는 모르겠는데요.

“대형 마차에 가득 짐을 싣고도 가파른 산길에서 빠르게 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장애물들도 피해야 하고요. 몬스터의 추격도 뿌리치고 도망칠 자신이 있으면 좋습니다.”

- 마판 : 그 정도면 마차 운송 스킬이 중급 이상이어야 하는데, 몸값이 비싸요.

“보수는 상관없습니다. 확실히 믿을 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 마판 : 몇 명이나 필요하신데요?

“최소 500명.”

- 마판 : 예?

“인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옮겨야 할 보물이 아주 많으니까요.”

- 마판 : 그 정도 인원으로 도대체 뭘 하시려고요?

데브라도 마을에서의 영상은 아직 방송으로 중계가 되지 않았다.

앞으로 진행할 퀘스트가 사전에 알려질 수도 있는 생중계의 위험성 때문이었는데, 아직 위드가 무엇을 할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빈집 털이.”

- 마판 : 예?

“케이베른의 레어를 털 겁니다.”

* * *

박순조가 평소처럼 한국대학교에 가는 버스를 타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 쿠왈왈왈 쿠왈라.

오크, 오크, 취취췻!

“무슨 소리야?”

“누가 전화 왔나 보네.”

로열 로드의 오크 노래가 벨 소리로 나오자 다른 승객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박순조는 발신자로 뜬 이름, ‘아르펜 제국 황제 형’이라는 이름을 보고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예, 형. 오랜만이네요.”

- 어. 잘 있었지?

“잘 지냈어요. 학교 복학은 언제 하세요?”

가상현실 학과의 학생들에게는 이미 전설이 되어 있는 이현!

학교생활도 대단했지만, 아르펜 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그 인기는 한국대 전체에 자자했다.

다른 학과의 교수들까지도 이현을 만나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 다음에. 근데 부탁할 일이 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형.”

박순조는 착한 성격답게 웬만한 부탁은 다 들어줄 생각이었다.

- 통화는 짧게 해야 해. 아무튼 나랑 일 하나 하자.

“어떤 일이요?”

- 너 직업이 도둑이잖아.

“그렇죠.”

도둑 나이드.

박순조가 로열 로드의 초창기부터 열심히 키운 캐릭터였고, 다양한 스킬들을 익히고 있었다.

대부분의 직업들이 전투 계열에 초점을 맞춰서 도둑이 좀 외면받긴 했지만 전문 스킬들의 연마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 저번에 보니 실력이 좋더라.

“헤헷. 저랑 도둑질을 하시려고요?”

박순조가 천진난만하게 한 말에 버스 승객들의 시선이 다시 모였다.

- 응. 자신 있지?

“훔치는 건 제 전문이죠.”

- 들킨 적은?

“제대로 들킨 적은 없어요. 중간에 걸릴 것 같아서 먼저 빠져나온 적은 있지만요. 빠르고, 확실하게 훔치니까요.”

승객들로부터 의심 섞인 반응들이 있긴 했지만 건너편의 자리에 최상준과 민소라가 앉아 있었다.

“이거 로열 로드 이야기입니다. 오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 친구 직업이 도둑이에요.”

한국대학교 학생들이 대부분인 승객들은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 놀랄 준비하고 들어. 놀라도 되니까. 이번에 훔칠 곳은 케이베른의 레어야.

“케이베른의 레어를 턴다고요!”

박순조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다시 버스 승객들의 시선이 모이기는 했지만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다른 사람이 한 말이라면 농담이거나 미친 짓이겠지만, 상대는 아르펜 제국의 황제이며 베르사 대륙의 영웅!

케이베른의 레어가 아니라, 그 어떤 곳을 턴다고 해도 진짜였다.

- 그래. 케이베른의 레어를 홀랑 털어먹을 거야.

“캬아. 진짜 재밌겠다.”

- 위험하지만 그래도 같이할 거지?

“물론이죠. 이현 형. 저 꼭 끼워 주세요.”

박순조가 내뱉은 말들.

케이베른의 레어도 그렇지만, 이현이라는 이름이 결정적이었다.

위드라는 캐릭터명만큼이나 한국대학교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름.

버스 승객들은 물론이고, 최상준이나 민소라까지도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 * *

베르사 대륙 최고의 건축가는 미블로스를 꼽긴 하지만, 영향력만큼은 파보를 따라가지 못했다.

일찌감치 모라타에 정착해서 북부의 위대한 건축물들을 지으며 명성을 날린 건축가!

파보는 소므렌 자유도시의 복구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쪽의 자재들은 안전하게 옮겨 주세요. 그리고 상업 지역부터 먼저 복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유저들이 머무를 집은 나중에 짓더라도 편리하게 생활하는 것이 우선이지요.”

건축 지휘관으로 임명된 파보!

그는 도시의 잔해들을 치우는 것과 동시에 건설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유저들이 그래도 남아 있으니…… 완전히 폐허로 변했더라도 다시 복구하는 게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겠어.”

소므렌 자유도시 인근의 생산 시설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도 대단히 컸다.

- 위드 : 파보 아저씨, 바쁘십니까?

“아니. 위드야. 무슨 일인데?”

파보는 평소처럼 한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헛!”

“훅!”

“우와왁!”

그 주변의 유저들이 오히려 더 난리가 났다.

- 위드 : 저와 같이해 주셔야 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 * *

위드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직접 연락을 돌렸다.

처음에는 마판 상단에서 운송 수단을 마련하고 믿을 만한 몇 명의 동료들을 바탕으로 일을 하려고 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광산이 꽤 깊단 말이야. 그리고 레어에 보물들도 많고…….”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보물들.

광산을 통해서 빼 오자면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했다.

드워프 광산이라 내부가 넓지 않기 때문에 운송용 대형 마차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점도 극복해야 할 문제!

“케이베른이 돌아오기 전에 일을 마치려면 아무래도 노동력을 더 투입해야 되겠어.”

위드는 빈집 털이에 참여할 인원의 규모를 더 키우기로 했다.

“보물을 남겨 놓을 수는 없지. 암. 그렇고말고.”

희생의 화로로 시작된 퀘스트이긴 했지만 이미 주객이 전도된 상황!

“흑사자 길드에서 드워프를 30명 동원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최고의 실력자들로만요.”

- 칼리스 : 무슨 일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케이베른과 관련이 있습니다.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그 점은 감안해 주시고요.”

- 칼리스 : 믿을 수 있는 유저들로 구해 놓겠습니다.

각 세력들은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협조 의사를 밝혔다.

가르나프 평원의 전투에서 이긴 이후에 위드의 인기와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더군다나 케이베른의 퇴치는 대영주들의 입장에서도 중요했다.

브리튼 연합의 발전도가 워낙 높았고, 자신들의 터전은 그동안 쇠퇴를 거듭했었다. 하지만 툴렌이나 아이데른 지역도 조만간 표적이 되고 말 것이다.

블랙 드래곤이 나타나서 도시를 파괴하면 자신들에게도 큰 타격이 있으니 기꺼이 인원을 파견하기로 했다.

* * *

단 하루!

위드의 연락에 의해 데브라도 마을에는 800명의 드워프 유저들이 모였다.

“이런 깊은 곳에 마을이 있었군.”

“작고, 소박한 곳이야. 나무들 때문에 먼 곳에서는 보이지도 않고. 그래도 케이베른의 레어와 가까운 장소라니 살이 떨리는걸?”

“전투를 하려는 건가? 요즘 칼 만드느라 전투는 잘 안 했는데.”

베르사 대륙에서 실력이 검증된 최고의 드워프들이 마을의 입구에 서 있었다.

흑사자나 로암 등의 길드 소속도 있었고 일반 유저로서 활약상이 뛰어난 자들도 골고루 포함이 되었다.

베르사 대륙에서 드워프들은 헤르메스 길드를 제외하면 대부분 아르펜 제국의 소속이었다.

“이럴 때 맥주를 마셔 주는 것이 드워프로 살아가는 묘미지.”

“근데 무슨 퀘스트야? 우리들끼리만 모인 걸 보면 드워프 종족 퀘스트?”

“위드 님이 이래저래 바쁜데…… 드워프 종족 퀘스트까지 할까?”

드워프들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위드가 지시를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드워프들 중에는 오베론이나 크루터 같은 베르사 대륙에서 최고 수준의 반열에 오른 유명한 유저들도 있었다.

위드도 차마 그들까지는 요청하지 않았는데, 드워프들을 모은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진해서 찾아왔다.

“흠흠, 여러분들. 이곳으로 오는 동안 케이베른에게 들키진 않았겠죠?”

“당연히 조심했습니다.”

드워프들은 케이베른의 영역 근처에서도 무사히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가능한 조용히 모여 달라고 요청을 했었다.

드워프들은 서너 명이서 흩어져서 집결했으며 그것도 낮과 밤으로 나누어 정해진 시간까지 이 마을에 도착했다.

“근데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오베론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 왔다.

이유도, 목적도 모른 채로 집결한 유저들!

도둑 나이드에게는 사전에 준비가 필요하기에 약간의 설명을 했지만, 다른 이들은 그냥 전부 불러 모았다.

“저를 따라오세요. 조용히요.”

위드의 뒤를 800명의 드워프들이 발자국 소리까지 죽여 가면서 재빨리 따라왔다.

저마다 레벨이 높은 유저들로만 구성을 했기에 분위기가 진지했다.

위드가 먼저 광산으로 들어가자, 몇몇 드워프들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광산을 뚫으려고 하는 거구나.”

“금덩어리들이 보이는데…… 금광?”

“광부 일을 할 줄 알았으면 집에서 곡괭이 가져오는 건데.”

드워프들은 솔직히 자신들의 실력에 비해서는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위드가 시키면 하긴 할 테지만, 이런 일들은 레벨이 낮은 드워프들에게 맞는 업무라고 생각했다.

위드는 그들을 깊은 광산의 막다른 곳까지 데려가서 말했다.

“이제 우린 케이베른의 레어를 털 겁니다.”

드워프 유저들은 침묵을 지켰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기도 했다.

베르사 대륙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블랙 드래곤 케이베른!

무려 드래곤의 레어를 턴다는 계획은 언뜻 듣기에 너무나 무모했다.

그 말을 꺼낸 사람이 위드가 아니었다면 미친 소리 말라고 욕이라도 했으리라.

‘진짜 되나?’

‘되는 거야?’

방송으로 위드의 모험을 안 본 유저는 어디에도 없었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라도 재밌게 생방송을 보고, 재방송까지 다섯 번씩은 봤다는 위드의 모험들.

‘내가…… 그 모험에 합류하는 건가.’

‘광부 일이나 시키는 줄 알았는데. 아르펜 제국에 속하고 나서 이런 대박이 나올 줄이야.’

TO BE CONTINUED

위드의 인기와 영향력은 강력하게 드워프들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여기 계신 분들에게 구체적인 계획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드워프 마을의 존재 의미와 광산이 케이베른의 레어로 향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깊이로 봐서 이미 레어 근처입니다. 정확한 위치를 좀 더 알아봐야 되겠지만 채광 스킬들은 기본적으로 있으실 테니 열심히 파낸다면 5일이면 충분히 레어 내부로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드워프 유저들은 흥분으로 인해 짜릿함을 느꼈다. 설명을 들을수록 희망이 보였다.

“오오오.”

“땅을 파서 들어가는 방식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겠는데?”

진짜 케이베른의 레어에 쌓여 있는 보물을 털 수 있다는 기대감이 흐르고 있었다.

성공한다면 말 그대로 초대박이 터지는 것이다.

오베론이 신중하게 물었다.

“레어까지는 들어간다고 해도 정작 케이베른은 어떻게 처리합니까? 우리들 중에서 만약 미끼 역할이 필요하다면 제가 선두에서 맡겠습니다.”

책임감이 강하고 리더십이 뛰어난 오베론다운 말이었다.

케이베른과 정면 승부는 승산이 없으니 기꺼이 죽음을 감수하고 미끼라도 되겠다는 발언.

“역시 오베론 님이네.”

“명성 그대로 사시는 멋진 사람이야.”

“이 장면도 방송으로 나가면 인기가 굉장히 오르겠다.”

드워프들은 진심으로 감동했고, 위드는 반대로 생각했다.

‘남들을 위해서 먼저 나서서 희생하다니…… 저런 사람이 정작 착하게 산다면서 처자식들은 고생시키지!’

친구, 동료.

혹은 정의감에 몸을 바치거나 하면 자기 자신과 함께 식구들 고생시키기 딱 좋은 세상!

위드는 처음부터 미끼가 필요한 작전은 안 좋다고 생각했다. 꼭 필요하다면 성공했을 때의 대가를 고려해서 시도할 수 있지만 시작부터 그런 계획을 세우면 결과도 위험했다.

‘미끼로 나선 유저들이 금방 죽을 수도 있고 변수들만 늘어나지.’

위드는 따로 그 부분의 계획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우리가 레어를 털 때는 케이베른이 도시를 파괴하기 위해 떠났을 때입니다. 이른바 빈집 털이를 하는 거죠!”

빈집 털이!

데브라도 마을에 모인 드워프 유저들은 온몸에 전율이 오는 것만 같았다. 평생을 살면서 이보다 더 멋진 단어는 처음 들어 봤다.

“으와아…….”

“소름 돋아. 끝내준다.”

“빈집이네. 빈집이야.”

“맞아. 평소라면 불가능하지만. 케이베른이 떠났을 때는 레어가 비잖아.”

각자 도둑질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빈집 털이란 얼마나 굉장한 매력을 가진 단어란 말인가.

빈집의 강렬한 유혹!

“케이베른이 파괴할 도시가 결정되면 그때부터 작전 개시입니다. 먼저 건축가 분들이 고생을 해 주셔야 됩니다.”

위드는 파보를 포함한 북부의 건축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음을 알렸다.

“그분들이 최대한 시간을 끌어 줄 겁니다.”

드워프 중에서 누군가 손을 들고 물었다.

“어떤 방식으로요?”

이미 모든 드워프들이 위드의 말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 가볍게 내뱉은 말 한마디조차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이런 집중력으로 공부를 한다면 어떤 시험이라도 여유롭게 통과할 수 있으리라.

위드는 악당처럼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파괴가 예정된 도시에 건물들을 마구 지어 놔서 시간이 오래 걸리도록 하는 것이죠. 숙련된 건축가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부실 공사를 하면 되니 말입니다.”

“그런 방법이…….”

“빈집 털이, 부실 공사. 무슨 계획이 글자 하나하나마다 이해가 잘되고 초대박이네.”

이 자리에 모인 드워프 유저들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적절하고 융통성 있는 계획 보소. 위드가 괜히 황제가 아니구나.’

‘진작 위드와 친해질걸.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아쉬움은 위드와 동료가 못 되었던 거야.’

‘회사에 휴가 내고 부름에 응하기를 잘했다. 로열 로드에서는 위드만 따라다니면 돼.’

‘비관적인 내 전망으로 볼 때 이건 말처럼 쉽진 않을 것 같아. 그래도 시청률은 높겠다. 난 인기를 얻고 광고를 찍을 수 있겠지.’

‘이번 일로 눈에 잘 띄어서 앞으로도 위드 옆에만 붙어 있자. 그럼 무조건 대박 난다.’

드워프 유저들은 저마다 생각들이 달랐지만 환희에 벅차 있었다.

지금 인기의 절정을 달리는 위드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계획을 듣고 보면 충분히 납득도 갔다.

평소에 드래곤의 레어를 턴다는 것은 감히 있을 수도 없는 계획이었다.

반경 몇 킬로미터 근처는 접근 금지 지역으로 여기면서 다가가지도 않는다.

케이베른이 도시를 파괴하는 것을 이용하여 땅굴을 파고 들어가서 빈집을 털어 낸다!

북부의 건축가들이 자재를 빼먹으며 부실 공사를 실컷 해 놔서 일찍 돌아오지도 못 하게 할 것이다.

꼼꼼하게 도시를 폐허로 만드는 케이베른의 성격까지 고려한 계획.

‘어째서인지 이건 빠질 수가 없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해야 돼. 무조건 해야 돼.’

‘보물을 털자. 몽땅 털자.’

위드는 드워프 유저들의 흥분으로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며 확신했다.

‘사람들은 다 똑같아. 나쁜 짓 꾸미는 순간만큼 화합이 잘될 때가 없지!’

* * *

위드의 케이베른 레어 빈집 털이 계획!

드워프들을 통해 소식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이 들끓었다.

- 세상에, 드래곤 레어를 대상으로 빈집 털이를?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 클래스는 영원하다…… 요즘 모험 시시하다 싶었는데. 크으. 상상으로만 하던 일을 실행으로 옮기는구나.

- 솔직히 난 생각 못 했음.

- 방송 예고 보니 최정예 드워프들이 빈집을 털자는 위드의 말에 환호하고 있음. 개웃김.

- 저기에 뽑힌 유저들 되게 재밌겠다. 긴장도 되고. 드래곤의 레어에 들어가 볼 기회가 흔한 건 아니잖음.

- 재미만 있을까요? 성공만 한다면 전설급 아이템들을 수레로 실어 나를 수 있을 텐데.

- 아르펜 제국의 황소들이 대거 이동하고 있답니다. 아마도 짐마차를 몰기 위해서 동원되는 듯.

빈집 털이는 퀘스트라기보다는 위드가 만들어 낸 사상 초유의 이벤트로 여겨지고 있었다.

- 이건 보나마나 100% 실패한다. 멍청하기는. 드래곤의 레어를 빈집 털이 하러 간다고? 마법 함정들이나 몬스터들이 분명히 지키고 있음.

- 레어에 들어간다. 드래곤과 눈이 마주친다. 후아악. 개죽음.

- 질투심에 눈이 먼 분들. 빈집 털이니까 드래곤은 자리에 없음. 그게 핵심임.

- 도둑질의 묘미는 들키느냐 마느냐의 아슬아슬한 긴장감에 있는 건데 과연?

- 레어의 보물이라…… 위드가 들어가서 구경만이라도 시켜 주면 눈이 호강하겠네.

- 실패한다고 볼 순 없죠. 그리고 뻔한 문제들인데 생각을 못하고 있을까요?

- 위드는 성공할 겁니다. 우리가 말로 떠들 필요가 없어요. 지금까지 쭉 그래 왔잖아요? 기적을 현실로 매번 만들었으니 기다려 봅시다.

- 드래곤에게 발각돼서 쫓기면 개꿀잼.

방송국들이 진행한 긴급 설문 조사에도 시청자들의 62%가 성공을 점쳤다.

그동안 드래곤의 레어는 원래 10대 금역 이상의 악명을 떨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개인적으로 난이도가 너무 높음. 퀘스트가 S급이라던데…… 그만큼 위험하단 의미지.

- S급이라도 다 같은 S급이 아님. 드래곤이 끼어 있는 이상 SSSSSSS 난이도로 봐야 함.

- 과거에 아우솔레토를 사냥하긴 했는데…… 전직 드래곤. 케이베른. 무려 현직임.

- 지금까지 많은 유저들에 의해 검증된 바에 따르면 난이도는 기준이 될 뿐이고, 어떻게 진행하느냐에 따라 실제로는 많이 달라져요.

- 계획이 중요함. 운빨도 따라야 되고.

- 난이도요? 직업 최후의 비기를 얻은 위드는 이미 인간이 아님.

- 위드가 최후의 비기 얻는 모험할 때 유니콘 본사 빌딩에 불 다 켜져 있었음. 홍보부 직원들은 다음 날 방송 인터뷰에서 말도 안 되는 모험을 성공시켰다고 어이없어했죠.

- 난 솔직히 위드가 모험할 때마다 상식적으로 그냥 실패할 줄 알았다. 더 이상 예상을 포기했음. 이젠 위드가 위드하면 됨.

- 위드가 위드한 퀘스트를 받아서, 위드한 계획을 세워서 위드하게 진행하면 위드가 되는 거죠.

- 로열 로드에서는 진짜 위드하게 살고 싶다. 엄청 위드하겠지만.

- 맨날 사냥터에서 위드해야 됩니다. 놀 때가 없다고도 하죠.

- 백과사전 찾아보세요. 노가다라는 단어에 위드가 정식 등록되어 있음.

노가다 : 막일. 로열 로드에서의 의미로는 스킬이나 레벨을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올리는 것을 뜻함. 이 분야의 신. 위드.

방송국들은 생중계를 결정하고 거사가 진행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참여하기로 한 드워프 유저들의 소개도 이루어졌다.

나이드는 특별히 인간이면서도 도둑으로 참여했고, 북부의 건축가 조합에서도 인터뷰를 했다.

- 핫핫. 우리 건축가들은 이미 준비를 마쳤습니다.

- 어느 도시에서 작업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데, 자재들은 어떻게 운반하실 계획인가요?

- 대충 할 겁니다.

- 대충요?

- 건설은 원래 대충 하면 가장 빠릅니다! 근처 아무 곳에서나 구하죠. 대지의 궁전을 지을 때는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지만…… 부실 날림 공사를 하면 한 달도 안 걸렸을 겁니다.

- 몇 분이나 준비를 하고 계세요?

- 삽자루를 들면 누구나 건축가죠. 벽돌을 쌓을 줄만 알아도 됩니다. 아. 이번엔 벽돌을 안 쌓아도 되겠군요.

건축가들은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막상 작업에 착수하면 굉장히 열심히 할 테지만 지금은 한껏 여유를 부릴 단계.

- 페일 : 위드 님. 바빠서 깜박 잊고 연락 못 하신 것 같은데 저는 준비되었습니다.

- 수르카 : 우릴 빼놓고 가실 생각은 아니죠?

- 파이톤 : 당장이라도 가지. 어디로 가면 되나?

- 양념게장 : 크흠. 큼큼. 흠. 심심해서 연락해 봤습니다.

위드와 친분이 있는 동료들은 당연히 빈집 털이의 참석 의사를 밝혔다.

드래곤에게 죽는 위험이 있더라도 그들은 의리로 참여할 생각이 있었고, 대박이라도 난다면 횡재가 아닌가.

‘사람인 이상 누구든 실패할 수도 있지. 근데 위드 님은 보통 사람이 아냐. 정말 처참하게 실패하더라도 몇 개는 챙길걸.’

‘위드 님의 언어를 이해해야지. ‘좀 힘들다’는 그냥 할 만하다. ‘어렵다’는 썩 상황이 나쁘지 않다. ‘불가능에 가깝다’는 고생하면 될 것 같다.’

케이베른의 레어를 탐내는 것은 동료들만이 아니라 베르사 대륙의 최정상에 있는 유저들도 다들 마찬가지였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장비빨이 심해지게 된다.

몇 가지 희귀한 옵션들에 따라 사냥 속도가 달라지고, 자신의 스킬과 스탯의 위력을 높여 주었다.

- 뮬 : 위드 님. 커허험. 이번에 케이베른의 레어를…….

그렇게 당했던 뮬에게 직접 연락도 왔다.

애초에 위드는 많은 이들의 참여를 생각하진 않고 있었다.

‘운송 팀과 드워프들을 제외하면 소수 정예로. 도둑은 전투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돼.’

도둑은 레벨을 올리기 힘든 직업이다.

직업 스킬 중에서 전투와 관련된 기술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달릴 때도 소리가 나지 않거나, 흔적을 남기지 않는 등의 기술은 훔치기에 확실한 강점을 지녔다.

‘드래곤의 레어가 일반적인 주택은 아니지만. 함정들. 특히 마법 함정이 문제인데. 유감스럽게도 그건 깰 수가 없겠지.’

마법사 유저의 참여를 생각하지 않는 것도 그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설혹 마법 함정을 발견한다고 해도 그걸 해체할 능력이 없다.

로열 로드에 수많은 마법사들이 있다지만 공격이나 방어 마법도 아닌, 마법 함정 해제를 마스터 근처까지 올리는 변태는 없기 때문이다.

“하루나 님.”

- 하루나 : 넵. 위드 님.

“이쪽으로 오세요.”

- 하루나 : 정말요? 영광이에요.

마법 함정이 걱정이 되긴 했기 때문에 지난번에 도움도 받았으니 엘프 하루나를 불러들였다.

도둑 나이드와 함께 함정을 발견해 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잘못해서 마법이 폭발하기라도 하면 큰일. 그래도 완벽한 대비는 불가능했다.

‘시간 싸움이 될 거야. 케이베른이 돌아오기 전까지 치고 빠진다. 은밀하고 신속하게. 하지만 마법 함정이 발동되고 레어를 지키는 용아병들에게 걸린다면…… 이판사판이 되겠지.’

위드는 생각을 바꿔서 참여 의사를 밝힌 전투 계열의 유저들도 대거 준비시키기로 했다.

만약의 상황에서는 드래곤만 없다면 용아병이나 몬스터들을 몽땅 사냥하고 털 작정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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