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57권 : 1. 모라타에서 (405/520)

달빛조각사 57권

1. 모라타에서

KMC미디어에서는 철혈의 워리어가 되기 위한 바드레이의 모험을 독점 중계했다.

― 빙벽을 올라서 빙하 지대를 걸으면 새로운 직업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철혈의 워리어. 이미 알고 계시는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 전투 계열의 특별한 직업이죠. 강철 같은 맷집을 바탕으로 아무리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 하하, 그건 과장이 좀 있고요. 철혈의 워리어가 굉장한 방어력을 가졌다는 건 사실입니다. 혹독한 환경에서 태어나는 직업이죠.

― 위드 님이 사막에서 폭풍을 제압하고 태양의 전사가 된 것과 비슷한 상황인가요?

―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헤르메스 길드의 전성기는 지났지만 바드레이의 직업에 대해서는 시청률이 높게 기록되고 있었다.

방송 화면에는 빙벽을 타고 오르는 바드레이의 모습이 멀리서 잡히고 있었다.

― 얼어붙은 빙벽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보통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 발을 디딜 곳이 마땅치 않아 보여요.

― 날카로우면서도 미끄럽겠지요. 길을 만들면서 가야 하는데요. 옷이 휘날리는 걸 보니 바람도 거친 것으로 보입니다.

― 보기만 해도 추워서 몸이 떨려 오는 기분이에요.

― 저곳을 맨손으로 올라야 하는데, 힘이나 인내력이 높지 않으면 떨어져서 죽으라는 위험한 퀘스트입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도전도 못 할 테죠.

바드레이의 망토가 빙벽의 삼분의 일 지점에서부터 미친 듯이 펄럭였다. 그때부터는 망토를 벗어 버리면서 영상으로는 확인이 안 되었지만 세찬 바람에 몸을 가누기도 어려웠다.

‘까딱하면 죽겠군.’

바드레이는 거울처럼 매끈한 빙벽을 조금씩 전진했다.

체력을 소모하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빙벽을 간신히 오르면서 가장 어려운 단계는 지났다고 생각했다.

‘됐어, 해냈다.’

손가락은 얼어붙어서 감각이 없었고 다리 역시 마찬가지의 상태.

‘이제부턴 최대한 멀리 가야 한다.’

모험으로 얻게 되는 빙하의 검은 반드시 갖고 싶었다.

바드레이는 칼날처럼 거센 바람에 고개를 숙이고 걷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몸으로 한 걸음씩 떼어 내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철혈의 워리어라는 직업이 극한의 인내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방송에서 사람들이 보고 있을 텐데…… 여기서 죽으면 무슨 개망신이란 말인가.’

* * *

모라타의 요새화!

미블로스, 파보가 협력하고 북부의 건축가 조합이 달라붙었다.

건축가들은 모라타의 도면을 놓고 장고를 거듭했다.

“도시 보호와 드래곤 공략을 동시에 해야 합니다. 그러니 둘 다 달성하기에는 정말 어려운 목표입니다.”

“도심이 아니라 성벽 외곽에서 싸우면 그나마 좋을 텐데요.”

“그러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지금까지의 사례를 보면 드래곤이 도시 한복판에 내려올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주변 건축물들을 고려하면 빙룡 광장이 피해가 가장 적습니다. 여기로 드래곤을 끌어들인다면 어떨까요.”

“와이번 광장도 나쁘지 않지요. 시장이 가깝지만 재건축을 하기는 수월한 장소입니다.”

건축가들은 머리를 싸매고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모라타에 성벽을 세우고 건물들의 벽을 두껍게 보강해도 얼마나 더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어떤 대규모 마법이라도 터트린다면 건물들은 우수수 쓰러져 버리고 말리라.

건축가들에게는 극단적이면서 최악의 조건이었지만 그렇기에 더 열정에 불타올랐다.

미블로스가 뚫어져라 모라타의 지도를 살펴보며 고개를 들었다.

“위드 님의 최종 의견은 어떻습니까?”

파보가 담담히 대답했다.

“우리들의 결정을 무엇이든 지지한다고 했습니다.”

“만약 모라타가 전부 파괴된다고 해도요?”

“건축가들에게는 어떤 책임도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전쟁 준비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하며, 그 과정과 결과에 있어서는 위드 님이 책임진다고 했습니다.”

“허. 그렇게까지 우릴 믿어 주다니.”

미블로스는 나이가 지긋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믿어 주는 위드 때문에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중앙 대륙에서 지내면서 하청 공사를 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존중을 받고 있었다.

다른 건축가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위드 님이군.”

“정말 어려운 결정이야. 건축의 중요성을 알아주기 때문에 저렇게까지 믿고 맡긴다는 거야.”

“다른 거 다 필요 없어. 딱 한 사람을 보면 아르펜 제국이 왜 흥하는지를 알 수 있어.”

위드에 대한 평가는 전체적으로 높았지만, 특히 상인과 건축가들에게 절대적인 존경을 받았다.

“대장장이 조합의 협력은요?”

“드워프 대장장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철의 보급은…….”

“넉넉하진 않지만 부족한 수준도 아닙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3천 채 정도의 강철 건물들을 세울 수 있을 정도입니다.”

건축가들은 심사숙고해서 몇 가지의 방안들을 만들었다.

예술가들이 드래곤의 관심을 끄는 짝퉁 조각품들을 세우는 것에 착안하여, 그들은 강철 건물들을 지을 작정이었다.

드래곤의 관심을 끌고, 웬만한 마법이나 물리적인 타격에도 견디는 건축물.

케이베른이 몇 번이나 손을 쓰게 만들어서 다른 건물들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적당히 시간을 버는 용도다.

미블로스가 모라타의 주요 지점들을 선으로 그어서 표시했다.

“이곳이 최종 방어선입니다. 어떻게든 지키려고 노력합시다. 전투가 끝나고 난 이후에도 모라타의 빠른 재건을 위해서는 적어도 삼분의 일은 남아 있어야 합니다.”

“동의합니다.”

“대도서관 부근에는 드래곤의 관심을 끌지 않기 위해 성벽을 세우는 외엔 아무것도 하지 맙시다. 다른 곳들이 우선 목표가 되어야 하니 말입니다.”

“그렇게 하죠. 그리고 모라타의 정확한 지도와 건물들의 모습들을 남겨 놓아야 합니다. 최악을 위해서요.”

건축가들 사이에 숙연한 분위기가 흘렀다.

케이베른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모라타가 폐허가 되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다.

미블로스가 말했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건 사실 많지 않습니다. 도시의 피해를 조금 줄이고, 드래곤과의 전투에 참여하는 유저들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정도죠. 그리고 모든 노력들이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포기하지 맙시다.”

* * *

위드는 마판으로부터 대지의 그림자 파티의 소식을 들었다.

“고생 좀 하겠군요.”

― 마판 : 라투아스의 퀘스트라니 상당히 힘들 겁니다. 그래도 워낙 뛰어난 모험가 분들이라 시간이 걸려도 도전해 볼 만하겠지만요.

“마판 님도 틈틈이 도와주세요.”

― 마판 : 옛! 상단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모라타 방어전이 실패로 돌아갈 때를 대비해서 비약의 재료도 구해야 될 겁니다.”

― 마판 : 그런 일이 벌어져선 안 되겠지만…… 최악은 대비해야 하겠죠.

위드는 세계수와 관련된 보고도 받았는데, 엘프들에게 일제히 퀘스트가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새로운 직업을 얻고, 퀘스트를 진행하고 재료를 구해서 세계수를 키우는 일.

세계수의 성장이 단계를 거듭할수록 엘프들은 더 강한 힘을 갖게 된다.

엘프 종족 전체에 세계수의 성장이라는 목표가 생성된 것이었다.

‘엘프들도 개고생을 하게 되겠군.’

위드는 로열 로드의 퀘스트 난이도에 대해서는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엘프들은 아름다운 외모와 특유의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의 폭발적인 관심에서는 멀어져 있었다.

생명력과 체력이 평균보다 낮았다.

사냥꾼으로서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활 솜씨를 가졌는데, 과도한 살생을 하면 현기증을 느끼거나 하는 페널티가 있었다.

물론 숲을 지킬 때에는 그런 페널티가 적용되지 않았지만.

‘세계수가 단계를 거듭하며 성장하고 엘프들이 강해진다는 건…… 음. 그만큼 커다란 위험이 찾아오겠지.’

공짜로 얻는 건 없다.

세계수가 1단계씩 성장할 때마다 막대한 자원을 필요로 할 테고, 그것들이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오게 되리라.

‘케이베른이 세계수를 태워 버렸듯이, 다른 몬스터나 악마들의 목표가 되겠지. 뭐 그래도 당장은 엘프들이 좋아하겠지만.’

세계수를 키운다는 목적에는 보상이 확실했다.

엘프들은 어차피 식물을 좋아하는 유저들이 선택하는 종족이라서 나름의 보람도 느낄 수 있으리라.

“강철 벽이 너무 부실해! 이거 어느 건축 조합에서 만든 거야!”

“이쪽 건물들? 그냥 다 포기하라고, 멍청아. 일일이 다 지킨다는 건 무리야. 그리고 넌 왜 판자촌을 지키려고 하고 있냐!”

“철재 가져왔습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받아 가세요!”

“풀죽이요, 풀죽! 꽃게 풀죽입니다!”

모라타에는 유저들이 계속 유입되고 있었다.

대공사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일부의 초보 유저들은 도시 안에 남기로 했다.

베르사 대륙의 역사에 남을 케이베른과의 전투를 최대한 가까이 보기 위함이었다.

위드는 위험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말리진 않았다.

‘만약 패배한다고 해도 우리가 어떻게 싸웠는지를 봐줘야지.’

구경꾼이 없으면 심심한 법!

지더라도 무력하게 질 생각은 없었다.

풀죽신교와 헤르메스 길드의 주요 수뇌부와 함께 매일 밤마다 케이베른 상대법을 연구했다.

처음에는 서먹한 관계이긴 했지만 이내 드래곤과 싸운다는 목표 때문에 집중할 수 있었다.

위드는 아크힘과 각 군단장들을 이끌고 모라타를 돌아다녔다.

“아시다시피 전투에 변수는 많습니다. 모라타는 대도시이고 드래곤이 어느 곳으로 날아오느냐에 따라서 싸우는 위치와 방식까지 달라져야 합니다.”

케이베른을 도시로 끌어들이긴 해도 반드시 정해진 장소에서 싸운다는 건 기적에 가깝다. 그렇기에 미끼들이 필요했고 전술적으로도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기회는 한 번. 어쩌면 두 번 정도입니다. 지상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다신 날아오르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군단장들은 모라타의 모습을 확실히 눈에 새겼다.

그들이 매복해야 할 장소도, 상황에 따라 옮겨야 할 위치들도.

가르나프 평원에서의 전투는 정말 갑자기 벌어진 것이기에 대책 없이 싸웠다.

‘이번엔 다르겠지.’

‘헤르메스 길드. 그리고 위드라…… 희생의 화로를 쓰는 유저들도 있으니 이만하면 해 볼 만하지 않은가?’

군단장들은 패배를 원하지 않았고, 명예를 회복하길 바랐다.

위드와는 깊은 앙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라타에서 협력하며 군단장들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대놓고 적대할 필요는 없다. 상황에 따라 다시 적이 된다고 하더라도.’

‘헤르메스 길드가 그랬듯이 아르펜 제국이라고 영원할까. 이쪽도 기반이 부실한 건 마찬가지일 텐데.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편이 낫겠지?’

‘드래곤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면 모두가 알아줄 것이다. 그것이 중요해.’

군단장들은 모라타를 돌아다니며 위드의 인기를 절실하게 느꼈다. 그럼에도 로열 로드에서는 어떤 일이든 벌어진다는 걸 자신들이 더 잘 겪어 봤다.

절대적인 힘을 가졌던 헤르메스 길드도 무너지게 되었으니까.

언젠가 아르펜 제국이 무너지며 다시 난세가 찾아온다면, 드래곤과의 전투에서 대활약을 한 건 큰 도움이 되리라 여겼다.

한번 불붙은 야망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위드는 그런 군단장들을 보며 싱긋 웃었다.

‘속에 욕심들이 가득 차 있네. 그래선지 말을 더 잘 들어.’

훗날을 기약하며 지금은 열심히 이용해 먹기로 했다.

바드레이는 철혈의 워리어 직업을 얻기 위해 매서운 찬 바람과 맞섰다.

빙하를 건너고, 몬스터들의 공격을 몸으로 견뎠다.

철혈의 워리어의 특징은 극한의 환경에서 강한 적과 싸울수록 튼튼해진다는 점이다.

‘그만두고 싶다.’

바드레이는 수없이 포기하고 싶었지만 묵묵히 걸었다.

위드가 사막을 걸어 태양의 전사가 되던 광경들을 떠올렸다.

자신의 경쟁자도 해낸 일.

육체는 수백 마리의 쥐 떼가 갉아먹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지만, 자존심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유저들에게 추앙을 받으며 무신으로서 살아온 기나긴 시간을 떠올렸다.

‘해낸다. 죽어도 해내고 죽어야 된다.’

철혈의 워리어가 되기 위해 걷는 길.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했지만, 한 줌의 힘이 몸에 남아 있어 걸음을 옮기게 했다.

커다란 눈송이들이 하늘에서 내릴 때에는 정말 절망스러웠다.

‘미치겠군. 이건…….’

바드레이는 고개를 숙인 채 걸었다.

머리와 어깨에 쌓인 두꺼운 눈을 털지도 못하고 걸었다.

처음에는 발목까지 오던 눈이 점점 차올라서 허리를 넘었을 때는 또다시 절망이 찾아왔다.

‘미친 짓이구나. 사막은 이보다 쉬웠을까?’

살을 통째로 베어 내는 칼날 같은 바람이 추위를 안고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뜨거운 사막을 걷는 위드의 퀘스트가 이보다는 더 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걷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죽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다.’

방송국에서 생중계를 하는 것이 차라리 다행스럽단 생각도 들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진작 포기해 버렸을 테니.

강한 적과 싸우는 게 아니라 한계까지 느끼고 초월하게 하는 퀘스트는 바드레이에게도 처음이었다.

< 인내가 1 증가했습니다.

철혈의 워리어로 전직하는 길이라서 잊을 만하면 가끔씩 스탯이 상승한다는 창이 떴다.

‘조금만 더…… 오늘까지만.’

바드레이는 다리를 질질 끌면서까지 움직였다.

방송국에서도 진행자들이 열을 올렸다.

― 역시 바드레이입니다. 이렇게 지독한 환경에서 웬만한 유저들은 더 이상 걷지 못했을 것인데요.

― 다 얼어붙어 있어요.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눈밖에 없습니다.

― 제대로 걷지도 못하네요. 무신 바드레이. 우린 언제나 멋진 모습들만 봤지만 가슴속에는 이런 의지가 있었습니다.

바드레이의 새로운 모습이라며 시청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헤르메스 길드의 정점에서 군림하던 바드레이의 인간적인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 굉장하네. 난 저렇게까진 못할 거 같다.

― 푸홀 워터파크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시청하고 있습니다. 왠지 몬스터라도 한 마리 때려잡아야 될 것 같네요.

― 크…… 역시 로열 로드 최상위권에 있는 사람들이란 보통 각오로는 안 되네.

― 어제만 해도 잘 걸었는데. 지금은 발을 질질 끄네요. 부상이라도 있는 거 아님?

― 완전히 지친 듯. 갑옷도 다 얼어붙어 있고.

― 저 앞에 풍경 보세요! 얼음 호수 나타났음. 그다음에는 얼음 산!

시청자들은 바드레이의 지극한 노력을 보며 감동받기도 했다.

방송국들은 크게 기대도 하지 않고 했던 생중계가 의외의 대박을 쳤다.

모라타의 전쟁 준비와 바드레이의 모험이 시청률을 양분하는 상황!

아침, 점심, 저녁, 늦은 밤과 새벽까지.

바드레이는 멈추지 않고 걸었다.

한 걸음이라도 쉬어 간다면 다시는 움직이지 못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위드, 위드, 위드, 위드…….’

만약 위드가 없었더라면 진작에 그만두고 말았으리라.

그리고 기적처럼 5일째 되는 날.

먼 바다에서 거대한 빙하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바드레이는 의식조차 멍해진 채로 걸었고, 무언가에 부딪쳤다.

툭.

지쳐서 아무 생각도 없이 걸으려고 할 뿐이었다.

띠링!

< 빙하의 검이 꽂혀 있는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전설적인 발견!

빙하의 검이 바다에 가라앉기 전에 찾아냈습니다.

오래전부터 꽂혀 있던 이 검은 천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얼음의 기운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검은 오직 한 명의 주인만을 인정합니다. >

모험 발견으로 인해 명성이 8,500 증가합니다.

모든 스탯이 4 늘어났습니다.

정신력이 10 증가합니다.

바드레이는 빙하의 검을 손에 쥐었다. 팔과 어깨, 몸통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쩌저저적!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할 정도의 극심한 고통.

< 나를 놓아라. >

빙하의 검에서 소리가 전달되었다.

바드레이는 고통 속에서도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손을 놔 버려선 안 된다.’

한 걸음, 또 한 걸음이 모여서 도착한 장소.

손을 놓는 순간 여기까지 걸어온 것의 의미가 없어지리라.

의식은 이미 가물가물해져 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마음이란 갖지 않았다.

위드에게서 패배한 순간 사라져 버린 영광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한 고통도 견뎌 낼 수 있었다.

짧지만 긴 시간이 흘렀다.

방송 화면으로는 1분 정도가 지났을 따름이지만, 바드레이는 수많은 갈등을 했다.

얼음으로 몸이 뒤덮이고, 얼어 죽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사냥해서 장비를 얻을 때와는 느낌부터 달랐다.

‘이 검은, 영광은 다시 나의 것이다.’

베르사 대륙에서 최강이 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아깝지 않았다.

마침내…….

< 검이 새로운 주인을 선택했습니다.

체력이 회복되었습니다.

과로, 몸살, 결빙이 해제되었습니다. >

피로가 사라졌다.

몸에 두껍게 달라붙어 있던 얼음들이 녹아내리면서 단단한 근육질로 바뀌었다.

< 철혈의 워리어가 되었습니다.

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남으며, 무너지지 않는 정신을 소유한 그대는 철혈의 워리어로의 전직을 마쳤습니다.

견고한 육체는 두려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아군을 지키고 전투를 승리로 이끄십시오.

모든 전투를 압도해야 합니다. >

< 신체적인 능력이 20% 강화됩니다.

현재의 힘 스탯에 따라 추가적으로 맷집이 크게 향상됩니다.

상대하는 적이 강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추가적으로 강해집니다.

상태 이상을 빠르게 극복합니다.

회복 속도가 증가합니다.

정신력으로 마법 저항을 높일 수 있습니다.

아군들의 전투 효과를 일정하게 상승시킵니다. >

바드레이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모험이 완전히 성공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 *

케이베른의 모라타 공격 이틀 전!

바드레이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모라타의 북쪽 성문에 도착했다.

“믿을 수 없게 바뀌었군.”

아크힘으로부터 소식을 듣긴 했지만 방송을 볼 시간이 모자랐다.

그가 철혈의 워리어가 되기 위해 성문을 나설 때와는 모든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성벽은 이중, 삼중으로 강화가 되었고, 주택들은 일부는 허물어지고 남은 건물들은 단단하게 강철과 돌로 덧대어 있다.

멀리 보이는 여신상이나 빛의 탑과 비슷하게 생긴 수많은 구조물들이 보였다.

“바드레이다!”

“어, 진짜 바드레이 왔다!”

바드레이를 보며 유저들이 환호했다.

그들도 그가 도착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케이베른과의 전투에 바드레이가 빠진다면 상당히 허전했을 테니까.

위드에게 한 번 패배하긴 했지만, 무신이라는 명예는 다 사라지지 않았다.

일부 유저들은 여전히 객관적으로는 위드보단 바드레이가 더 강할 것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어서 오십시오. 모라타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바드레이는 아크힘의 안내를 받으며 모라타를 돌아다녔다.

“정말 많이 바뀌었군요. 잠깐 보았긴 했지만 그때와는 전혀 다른 요새가 되었습니다.”

“북부 유저들의 결속력과 더불어 무언가를 빠르게 짓는 능력은 정말로 인정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전투를 위한 은신처, 방어벽을 쌓는 건 하루도 안 걸린다.

아침을 먹고 나서, 점심쯤에 가 보면 완공!

재료 운반이나, 설계, 시공이 다 제각각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결과물은 어떻게든 제대로 나왔다.

대충대충 하면서도 빠르게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었다.

“우리가 싸우게 될 예상 지역은 어디지요?”

“드래곤의 레어가 남쪽에 있으니 남쪽에서 날아오는 걸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왕이면 빙룡 광장이나 와이번 광장에서 전투를 치르려고 합니다. 미끼도 만들어 두었죠.”

“미끼요?”

“눈에 띄고, 가치가 높은 것을 드래곤은 우선적으로 파괴합니다. 그래서 여러 미끼들을 제작해 두었습니다.”

“가서 보도록 하죠.”

바드레이는 빙룡 광장을 살펴보고는 납득할 수 있었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흉악한 케이베른의 조각상!

아직 완성 전이었지만, 실물처럼 정교하면서도 어딘가 좀 더 못생겼다.

더군다나 드래곤들이 생명체로 취급도 하지 않는 고블린에게 엉덩이를 두들겨 맞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건…… 확실히 드래곤의 화를 북돋을 수 있겠군요. 먼 거리에서 마법이나 브레스로 날려 버리면 어떻게 하죠?”

“그게 문제이긴 합니다만…… 마판 상단과 북부의 상단들이 연합해서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요?”

“광장에 황금을 잔뜩 쌓아 놓는다고 하더군요.”

드래곤은 보물을 보면 절대 부수지 않으리라.

빛의 탑이나 예술회관, 여신상 부근에도 일부러 황금을 붙여 놓아서 드래곤의 공격을 회피하려는 꼼수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아마도 자신을 조롱하는 조각상은 직접 부술 겁니다. 뜻대로만 된다면 빙룡 광장이나 와이번 광장에서 우린 기회를 잡는 겁니다.”

“광장에서 모두가 덤벼드는 것이군요.”

“예. 다행히 협상을 통해 우리 길드의 전투 지휘권을 넘겨주지 않았습니다.”

아크힘은 전투가 벌어지면 자신들이 먼저 독자적으로 싸우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위드도 그 점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했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을 지휘하면 그 모습이 멋있긴 하겠지만 효율적으로 다스리기가 어렵다.

북부 유저들처럼 인해전술을 벌일 때와는 다르게, 제대로 싸울 줄 아는 최정예 유저들.

헤르메스 길드에서 가능하면 자체적으로 드래곤을 사냥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봤다.

“좋습니다. 하지만 드래곤이 위기에 빠지면 날아오를 텐데요?”

“하늘로 날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만, 최악에는 뮬의 그리폰 군단이 공중전까지 염두에 두고는 있습니다. 어떻게든 이틀 후에는 끝내야 하니까요.”

바드레이는 모라타에서의 준비를 눈으로 보면서 드래곤과 싸울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졌다.

아르펜 제국의 대영주들은 전투 하루 전에 모라타에 도착했다.

헤르메스 길드가 핵심 전력을 투입했고, 바드레이까지 온 이상 그들도 병력을 잔뜩 데리고 왔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흑사자 길드는 아르펜 왕국을 위해 항상 노력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이번 전투에 모든 걸 걸겠습니다.”

“저희 사자성은 주력이 전부 출정했습니다. 성을 남김없이 비웠는데…… 케이베른을 소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대영주들은 여론을 신경 쓰며 경쟁적으로 위드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강철 화살이 좀 모자랍니다.”

“예. 전투 규모가 크니 당연히 그렇겠…… 아! 저희가 채워 놓도록 하겠습니다. 다행히 창고에 재고가 있을 겁니다.”

“음식 지원도 필요한데요. 모라타에 있는 유저들이 배불리 먹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그렇죠?”

“멀리서 음식까지 가져오긴 힘드실 테니 돈이라도 내시면 좋을 텐데요.”

“클라우드 길드에서 책임지겠습니다.”

대영주들은 이래서 모라타에 오기가 싫었다.

위드를 만나면 밑천을 탈탈 털릴 것 같은 느낌!

그들은 모라타를 돌아다니면서 헤르메스 길드의 엄청난 전력이 투입되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방송국에서 중계도 하고 있었다.

― 파괴자 트리스탄입니다. 지난 가르나프 평원의 전투에서는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사실 1군단에 속해서 최소 천 명의 유저들을 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죠.

― 석궁 전사 울타르! 위드와의 일대일에 패배하긴 했지만 그를 무시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 네, 정말 대단하죠. 늑대 기사단도 다시 정비한 모양이네요.

― 마법사 프렉커도 보입니다. 마법사 캐들러와 함께 비행 마법으로 하늘을 날며 모라타를 둘러보고 있습니다.

로열 로드의 최상위 랭커들이 속속 도착하고, 3만의 마법 병단이 모라타의 주요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공성 무기, 마법 함정들을 설치하는 규모도 상상 이상이었다.

아르펜 제국에서 모라타를 요새화시켰지만, 헤르메스 길드도 두 팔을 걷고 나서면서 진정한 드래곤 사냥의 준비를 갖춰 가는 모습이었다.

아르펜 제국의 대영주들은 그 광경을 보며 헤르메스 길드의 저력에 놀라고, 위기감도 느껴졌다.

샤우드가 말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만약 이대로 케이베른을 이긴다면 헤르메스 길드에 대한 안 좋은 여론은 많이 사라질 겁니다.”

“하지만 위기가 사라지면 아르펜 제국이 강해질 텐데요? 퇴보하던 헤르메스 길드가 10미터를 나아갈 때, 아르펜 제국은 200미터쯤은 달릴 겁니다.”

칼리스가 반박을 했지만, 다른 대영주들의 생각은 달랐다.

로암이 신중하게 설명했다.

“어려움을 겪던 헤르메스 길드의 입장에서 봐야죠. 드래곤과의 전투를 주도하면 위드를 도운 핵심 세력으로 부각됩니다. 그리고 최강의 단일 세력으로서의 명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매우 강력한 경쟁자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경쟁자라고요?”

“헤르메스 길드는 당분간 위드나 아르펜 제국을 적대하는 것을 포기한 것으로 보이니까요.”

대륙을 장악했던 헤르메스 길드의 몰락.

라페이의 우려를 전해 들은 수뇌부에서는 자신들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아르펜 제국과 협력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한편으론 헤르메스 길드의 미래를 준비했다.

과거 하벤 제국군을 이끌고 북부 대륙을 침략했던 드라카가 발언권을 얻어서 말했다.

“지금은 모든 이권이나 영광을 위드에게 몰아줍시다. 적이었지만 위드는 불가능이라 불리던 퀘스트들을 성공시켰고, 다양한 업적들을 세웠습니다. 사람들에게 그 영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현재로서는 그를 끌어내리진 못합니다.”

“위드의 눈치만 보며 살자는 얘깁니까?”

“아르펜 제국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무너질 기회가 생길 겁니다. 대세를 거스르지 말고, 당장은 우리가 뭘 하려고 하지 맙시다. 위드가 스스로 추락할 때까지, 아르펜 제국이 스스로 분열되어 기회가 생길 때까지 적극적으로 도웁시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면서 적극적으로 협력하자는 전략이 헤르메스 길드의 방침이 되었다.

수치스럽기는 하지만 역사를 보면 때때로 그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도 있다.

헤르메스 길드의 태도가 바뀌니 대영주들에게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칼리스가 탁자를 손으로 내려쳤다.

“이건 좋지 않군요. 헤르메스 길드가 살아나는 건 오래된 적으로서도 안 좋은 일이고. 세력 확대를 해야 하는 우리 입장으로서도 곤란합니다.”

아르펜 제국 내에서 최강의 길드 세력은 자신들이었다.

그들끼리 경쟁하며 나눠 먹으려고 했는데 헤르메스 길드가 강하게 비집고 들어온 상황이었다.

* * *

케이베른의 공격까지 11시간이 남은 시점.

모라타는 수많은 유저들이 참여해서 철저히 요새화가 되었고, 헤르메스 길드나 타격대의 유저들도 곳곳에 포진했다.

위드는 흑색 거성의 탑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모라타의 모습을 눈에 새겼다.

“도시락 있어요.”

“고구마 받아 가세요.”

유저들이 음식을 나눠 주는 광경도 보였다.

“이젠 물러설 수가 없지.”

헤르메스 길드도, 타격대도.

드래곤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건 급한 대로 뭐든 다 해 놓았다. 그럼에도 결과는 싸움이 벌어지고 난 이후에나 알 수 있으리라.

“이걸로 베르사 대륙의 강한 유저들은 전부 다 모인 셈이군.”

위드는 후회 없는 승부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헤르메스 길드까지 참여했는데 패배한다면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

“평화의 끝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인가.”

역사적이 될 마지막 날이지만 솔직히 별생각은 없었다.

고생도 어쩌다 가끔 해야 힘든 법.

“준비 끝났어?”

위드의 곁에는 서윤이 있었다.

그녀도 모라타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번에 방어전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위드가 모험을 한다면서 대륙을 돌아다닐 때에도 모라타의 발전에 신경 썼던 그녀였다.

대도시라서 크게 눈에 띄진 않았어도 모라타에 직접 꽃을 심고 나무도 가꾸었다.

“네.”

“이제 데이트하러 가자.”

위드는 드래곤이 오기 전날 밤은 서윤과 데이트하기로 계획을 세워 놓았다.

단 몇 시간을 초조하게 보낸다고 해서 케이베른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라타의 마지막 밤이 될지도 모를 이 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최고의 방법!

그것은 서윤과 노는 것이었다.

* * *

모라타의 으슥한 뒷골목.

가장 값싸고 허름한 동네에 맥주만 파는 선술집이 있었다.

“지금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셨습니까?”

“난 모르겠군.”

“우리까지 나서야 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 드네.”

볼크의 말에 사내들은 고개를 저었다.

로열 로드로 돈을 버는 다크 게이머들!

이번 케이베른 사냥은 일주일 전부터 그들 사이에서도 대단한 화제였다.

― 위드가 모라타에서 케이베른 사냥에 나선다고 합니다.

― 그거 모르는 사람 없음.

― 다크 게이머라면 정보가 빨라야지.

― 될까요? 안 될까요?

― 안 된다는 데 걸고 싶은데…… 이거 참. 위드라서 어쩌면 가능할 것도 싶고.

― 솔직히 우린 잘 모르지 않나요. 사냥은 많이 하지만 그런 보스 몬스터들은 효율이 떨어져서 잘 안 잡죠.

― 위드도 로열 로드로 돈을 번 우리 동료라고 할 수 있는데, 성공하면 좋겠네요.

― 편의점 알바가 그룹 회장 걱정하는 격. 덜덜.

다크 게이머 연합에는 쉬지 않고 글이 올라왔다.

모라타가 과연 전장으로서 적절한지부터 논쟁이 붙었다.

― 넓은 도시입니다. 드래곤은 어디라도 날아다닐 수 있고, 유저들은 건물들 때문에 불편할 겁니다.

― 드래곤의 마법 공격을 감당하기에는 까다로운 장소죠. 도대체 화염 공격은 어쩔 생각인지.

― 저도 1표. 차라리 레어로 공격대를 운용하는 편이 나았다고 봄.

― 아무리 혼자 다니는 다크 게이머라지만 상식이 없네요. 레어에는 마법 함정이 즐비할 겁니다. 더구나 득실거리는 몬스터들은요? 울타 산맥이 몬스터로 뒤덮였어요.

― 레어는 진심으로 가능성 없음. 모라타에는 마음 놓고 준비도 할 수 있고, 유저들의 지원들이 있음.

― 초보들이 지원이 되나요. 어디…… 드래곤 피어에 다 죽지.

모라타를 전투 장소로 선택한 판단은 최선인지는 몰라도, 나쁘지 않다는 반응들이 주를 이루었다.

다음 도시나 그다음 도시에서 방어전을 치르더라도 현실적으로 특별한 대응책을 만들기는 어려울 수 있었기 때문.

― 분석 글. 케이베른의 몸값은? 시세로 얼마까지 나올까 계산해 봤습니다.

― 위기에 빠진 대륙. 최악의 상황에도 우리가 살길은.

― 돈이 최고다. 요즘 가장 효율적인 사냥터는?

정성이 담긴 분석이나 정보들도 많았다.

그 와중에도 최상층의 다크 게이머들이 접속할 수 있는 등급 ‘A’ 게시판.

― 케이베른 사냥. 그대로 지켜볼 것인가?

― 몬스터들이 늘어나면서 전반적으로 장비들의 시세가 하락하고 있습니다.

― 도시들의 파괴. 이건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문제인데. 도시 건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님.

― 로열 로드는 우리들의 직장이다. 내 새끼 분유값 벌어야 돼.

― 만약 우리도 케이베른 사냥에 나선다면 어떨까요?

최근에는 다크 게이머들의 숫자만 백만이 훨씬 넘었다.

무서운 것은 그들 대부분이 고레벨들로 이루어졌다는 점!

헤르메스 길드와 다크 게이머들이 정면으로 붙는다고 해도 화끈하게 싸워 볼 수 있으리라.

물론 다크 게이머들이 뭉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 케이베른 사냥이라니, 다크 게이머들의 기본 법칙을 잊으셨습니까?

― 1번 아무도 믿지 마라. 2번 받은 만큼은 베풀어라. 3번 믿을 건 돈밖에 없다.

― 그 법칙들이 우릴 지켜 왔습니다. 우리가 전면에 나서는 건 다른 유저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 위드는 믿을 만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베푼 것들도 있고.

― 정확히 말하죠. 아르펜 제국이 활동하기 편하고 좋은 건 사실입니다만, 우리도 사냥하고 퀘스트를 완료하며 도움을 줍니다.

― 저 역시 받은 만큼은 베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헤르메스 길드와의 전투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까?

― 그건 참여했다기보다는…… 이기고 있으니 아르펜 제국에 섞여서 헤르메스 길드원들을 사냥한 거죠.

다크 게이머들은 케이베른 사냥에 입장이 갈렸다. 하지만 위드와 함께 싸우자는 의견보다는 그저 상황을 지켜보자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드래곤이라는 위험한 존재와 맞서 싸우기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 있었다.

“케이베른만 치우면 돼요. 케이베른. 아르펜 제국이 조만간 대륙도 통일할 텐데…… 사냥과 여행의 붐이 불 수도 있어요.”

“글쎄, 우린 잘 모르겠네.”

선술집에서는 볼크가 아르펜 제국에 힘이 되어 주자고 다크 게이머들을 설득했지만 계속 실패했다.

“이보게, 볼크.”

“예, 말씀하세요.”

“대륙 전역에 흩어진 이들이 많아. 그들은 모라타에 오지도 않았어.”

“몇 명이나 와 있는지도 모르죠.”

“그래. 그게 정처 없이 떠도는 게 우리들이지. 도시보다는 사냥터가 어울리고.”

다크 게이머들은 넓은 의미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일 뿐. 누구에게도 오고 가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모라타에 그들이 왔다고 해도 몇 만이야. 우리들 중에서 대륙의 평화를 위해 희생의 화로까지 써 줄 사람은 없어.”

“저도 압니다.”

“그럼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헤르메스 길드도 있는데 말이야. 그리고 싸운다고 해도…… 위드가 자리를 내줄지도 의문이지. 위드와 헤르메스 길드가 다 알아서 할 거네. 우린 구경이나 하는 게 맞아. 하이에나가 될 수도 있겠지만.”

모라타에 온 다크 게이머들 역시 목적이 있었다.

강대한 케이베른이 힘을 잃고 쓰러지려는 그 순간을 노리고 덤벼들 작정이었다.

“하아. 케이베른 사냥에 적극 동참하면 좋을 텐데.”

“아무리 설득해도 안 될 거네. 그냥 포기하고, 지켜보기만 하자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