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58권 : 4. 반려 (415/520)

4. 반려

지골라스 근처의 빙하 지대.

“에취!”

위드는 와삼이를 타고 눈보라를 뚫으면서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 너무 춥다. 주인.

“나도 그래.”

신성한 불을 피워서 수시로 몸을 데우지 않았더라면 진작 곤란함을 겪었으리라.

빙하 지대에는 설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상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위드 님, 반갑습니다.”

바바리안들로 구성된 상인들.

그들의 대표인 엘비라가 흰 털옷을 입고 인사했다.

“여기 주문하신 얼음 결정입니다.”

“힘든 곳까지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뭘요. 고객님의 요청이 있다면 어디든 가야죠.”

바드레이 이후에 설원 지역과 지골라스에는 모험가들이 탐험을 하고 있었다.

보물과 황금을 찾는 무리들에 의해 이쪽으로도 사람들이 제법 찾아왔다.

“물건들은 확인해 보시죠.”

마차 10대 분량의 순수한 얼음 결정.

지극히 추운 곳에서 생성되어 어떠한 불순물도 없었다.

다른 마차 2대 분량에는 무려 드래곤의 뼈가 담겨 있었다.

악룡 케이베른을 사냥하고 얻은 귀중한 뼈.

위드는 마차에서 뼈들을 꺼내 하나하나 두드려 보고 무게도 맞춰 봤다.

“물건은 확실하네요.”

“그럼…… 잠시 구경을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근데.”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버릇처럼 한 푼이라도 챙기려고 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은 구차하게 살지 않아도 돼.’

객관적으로 요플레 뚜껑을 핥지 않아도 될 만한 부를 쌓았다.

이렇게 추운 곳에까지 와서 열심히 돈을 벌려는 상인들에게 관람료를 받을 필요는 없으리라.

“오래 걸릴지도 모르니…… 신성한 불!”

화르륵!

“고맙습니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 상인들과 와삼이가 옹기종기 앉았다.

“그럼 조각을 시작해 보죠.”

눈보라가 몰아치면서 조각 재료들을 얻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디든 손을 대서 뭉치기 시작하면 금세 덩치가 커지게 된다.

10미터, 20미터, 30미터.

아래에서부터 올라가면서 작업을 하고, 때때로는 스킬도 사용했다.

1시간, 2시간.

워낙 대규모 작업이라서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신성한 불, 자연 조각술!”

쌓이는 눈을 녹이면서 단단한 얼음으로 바꾸었다.

투명한 얼음으로 만드는 초대형 조각상.

위드가 만드는 것의 정체는 케이베른과의 전투에서 죽은 빙룡이었다.

“빙룡은 허리지. 안 그래도 부실해서 언제라도 부러질 것 같았는데.”

드래곤의 뼈를 통째로 쓰기에는 양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케이베른이 죽으며 남긴 뼈를 전부 빙룡에게 투자한다면 어마어마하게 강해질 테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

꼬리에서부터 척추, 머리에 이르기까지 드래곤의 뼈를 순수한 얼음 결정과 함께 섞어서 넣었다.

머리를 만들 때는 빙룡의 신체 파편을 넣어서 제작했다.

새로운 빙룡이 아니라, 예전의 빙룡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특별히 신경을 좀 써 줘야지.”

이번엔 얼음 결정을 사용하여 길고 위엄 넘치는 수염까지도 제작.

과거보다도 조금 더 큰 400미터짜리의 빙룡이 완성되었다.

“조각품에 생명 부여!”

―조각 생명체의 육체의 일부를 사용하셨습니다. 물의 속성을 가지고 있던 생명체는 새로운 삶을 얻을 것입니다.

조각품에 대한 추억 스킬이 발동됩니다.

조각 생명체가 자신에 대한 기억을 되찾을 수 있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시 조각한 시점에서의 늘어난 예술 스탯과 조각술의 효과는 적용되지 않으며, 예전에 살아 있을 때보다 5%의 레벨이 줄어듭니다.

특수 재료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육체의 일부가 강화되고, 힘과 레벨이 증가합니다.

브레스의 위력이 2.5배가 됩니다.

마나 회복력이 300%가 되었습니다.

강력한 마법 저항력을 가지고, 물리적인 피해의 상당 부분을 흡수합니다.

흑마법의 일부와 얼음 계열의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얼어붙어 있던 빙룡 조각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대지가 갈라질 정도의 위엄.

빙룡은 몸에 쌓여 있던 눈을 털어 내며 포효했다.

― 쿠우워어어어어어!

빙하 지대에서 눈보라를 맞고 있는 빙룡은 그 자체로 압도적인 장관.

“우와아아앗. 대박이다.”

“저렇게 멋지구나.”

상인들은 감탄을 내뱉기에 바빴다.

― 크롸라라라라락!

빙룡이 다시 포효를 터트렸다.

아마도 상인들의 감탄을 들은 것이 틀림없는 듯한 모습.

위드가 빙룡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몸은 어때, 좀 괜찮아?”

빙룡이 투명한 얼음 같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대답했다.

― 누구인가. 넌.

“네 주인인데 날 몰라?”

― 모른다. 기억에 없다.

조각 생명체들을 되살리다 보면 옛 기억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빙룡은 물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얼음 파편도 큼지막한 녀석으로 넣었다.

“우리가 함께했던 긴 시간을 다 잊어버렸다고?”

―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지어 준 네 이름은 생각나?”

― 그런 일이 있었나? 모른다.

“죽기 전에 싸웠던 케이베른도 생각 안 나?”

― 케이베른이 누군지도 알지 못한다.

“저기 있는 와삼이는?”

― 모른다.

위드의 눈가가 거짓을 탐색하려는 듯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빙룡은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기억을 잃어버린 빙룡!

― 꾸에에엣!

와삼이가 걸어와서는 몸을 비볐지만 빙룡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이상한데…….”

위드는 돌아서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듯이 말했다.

“근데 빙룡아.”

― 왜 부르는가. 주인.

“넌 왜 대답하는데?”

― …….

* * *

위드는 지골라스에 들러서 가장 뜨거운 곳의 용암으로부터 불사조와 불의 거인을 되살렸다.

― 살려 줘서 고맙다, 주인.

―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

“그래. 너희들이 착하고 정직한 애들이지.”

위드가 불의 저항력이 올라가면서 지극히 뜨거운 용암도 조각 재료로 사용했다.

불사조와 불의 거인의 체질이 강화되었지만, 추가적인 효과도 있었다.

< 부활한 불사조!

생명력이 50% 증가합니다.

완전히 소멸되어도 10초 안에 다시 한 번 살아납니다.

부활의 권능은 불의 기운이 강성한 장소에서 하루 동안 쉬면 다시 충전됩니다. >

불사조에게 새로운 특성도 부여가 되었다.

“앞으로 잘 써먹을 수 있겠군. 어떤 위험한 전장이라도 믿고 투입할 수 있겠어.”

생고생을 예약한 불사조.

위드가 그다음으로 할 일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 일을 위해서 모라타로 돌아와서 농부 미레타스와 엘프 하루나를 만났다.

“여기 꽃씨들이네. 꽃나무들도 골고루 넣었네.”

“엘프의 숲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 꽃의 씨앗들이랍니다.”

배낭을 가득 채우고, 10개의 농업용 포대에 씨앗들을 얻은 위드.

미레타스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그걸로 뭘 하려나? 이젠 농사에도 관심이 있나?”

조각술을 마스터한 위드가 농사를 시작한다면 기꺼이 도와줄 생각이 있었다.

“농사를 지을 생각은 없는데요.”

“정말인가?”

“네, 없습니다.”

“땀은 정직한 법이네. 열심히 땀 흘려서 키운 곡물들이 자라면 얼마나 뿌듯한 줄 아는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황금 들판을 보고만 있으면…….”

“저는 그냥 다른 사람들이 땀 흘려서 키운 곡식을 편히 먹겠습니다.”

위드는 씨앗들을 들고 와삼이를 탔다. 그리고 베키닌의 3마리 미친 상어들이 소개한 무인도로 향했다.

* * *

북부 대륙을 지나고, 푸른 바다를 건넜다.

항구 바르나와 크로아 해적섬의 항해 경로에는 유저들의 배들이 심심치 않게 지나고 있었다.

어선, 교역선, 해적선들까지!

“위드 님이다!”

“아르펜 제국 만세!”

위드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며 계속 동쪽으로 향했다.

― 근데 주인.

“왜?”

― 빙룡도, 불사조도 강해졌잖나.

“그렇지.”

― 나는 뭐 없나? 맨날 타고 다니면서.

위드를 가장 자주 태우고 다니는 와삼이로서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도 대륙의 북쪽 끝에서 모라타를 거쳐 동쪽 바다로 넘어가는 초장거리 여행.

“어떻게 해 주길 바라는데?”

― 강해지고 싶다.

“왜?”

― 그냥 강해지고 싶다.

위드는 흉포한 와이번으로서의 본능을 충분히 이해했다.

“알았어. 그럼 드래곤의 뼈와 비늘을 날개에 좀 붙여 줄게.”

― 정말인가? 그걸로 강해질 수 있을까?

“일단은 조금 더 빨라지지 않을까?”

― 빨라지는 것도 좋다.

귀한 물건이었지만 와삼이의 속도 향상을 위해서는 기꺼이 투자할 수 있었다.

더 빨리 날 수 있다면 이동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테니까!

넓고 커다란 크로아 해적섬과 군도들을 지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망망대해가 펼쳐졌다.

― 헤인트: 해적섬의 동쪽 지역은 해류가 빠르고 암초들이 많아서 어지간한 항해사가 아니고서는 들어가질 못합니다. 와삼이의 속도라면 무인도까지는 20분에서 30분 정도 걸릴 겁니다.

바다는 에메랄드빛이었다.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서 경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릴 것만 같은 기분.

헤인트가 말한 무인도는 상당히 거대한 섬이었다.

높은 산과 백사장, 해안 절벽이 있고, 거북이들이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낙원.

“사람은 아무도 없지?”

― 안 보인다.

위드는 와삼이를 타고 섬을 한 바퀴 천천히 둘러봤다.

그냥 보더라도 낙원처럼 보이긴 했지만 넓은 평지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적당해. 이제 작업을 해야 되겠군.”

위드는 섬에 내려와서 농사용 도구들을 꺼냈다.

낫과 호미!

무성하게 자란 풀과 잡초들을 베고 땅을 깊게 헤집었다.

황무지는 아니었지만 풀만 자라 있던 곳이라서 자갈을 골라내는 일이 끝도 없었다.

5시간, 10시간.

밤이 되어도 작업은 계속되었다.

새벽에도 별빛을 받으며 땅을 파고 있을 때였다.

< 농사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대지의 생명력과 풍성한 수확을 맛볼 수 있는 농사!

부지런한 손놀림과 땀의 대가를 아는 이들만이 배울 수 있는 스킬입니다.

땅에 뿌리는 거름의 효율이 10% 증가합니다.

농사로 인한 체력 소모가 감소합니다.

식물들이 1% 더 빨리 자랍니다. >

농사 스킬까지 생성.

“내가 잡캐는 잡캐구나.”

곡식을 심은 것도 아닌데, 무려 14시간 동안이나 풀을 베고 있었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모자라지 않은 일이니까.”

위드는 허리를 한 번 펴 주고 나서 다시 풀을 베고, 자갈을 골라냈다. 그러다가 불현듯 깨닫고야 말았다.

꽤나 큰 섬이었는데, 이곳의 잡초들을 전부 뽑아내고 꽃과 나무들을 심으려면 몇 달이 걸린다는 사실을!

“성의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과한 거 아닌가?”

위드는 근본적인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

위드는 과감하게 대재앙을 일으켰다.

콰콰콰콰!

바다에서부터 세 개의 토네이도가 일어나서 무인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전부 쓸어 버려라!”

하늘과 바다에 맞닿은 소용돌이가 무섭게 엇갈리며 무인도를 헤집어 놓았다.

위드도 땅에 박혀 있는 바위를 붙잡고 매달려야 할 정도의 강력한 대재앙.

풀과 나무들이 그대로 뽑혀 나가고 자갈도 휩쓸려서 날렸다.

휘이이이이이잉!

소용돌이들이 머물면서 무인도의 환경은 완벽히 쑥대밭으로 변했다.

< 자연과의 친화력이 2 감소하였습니다. >

위드는 초토화된 땅에 삽자루를 손에 쥐었다.

“이제 훨씬 해 볼 만하겠군.”

마구 파헤쳐진 땅을 고르고 씨앗을 뿌렸다.

밤새도록 꽃나무들은 깊게 파서 묻어 주고, 다른 씨앗들은 넓게 뿌려 주었다.

며칠째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지는 노가다.

쏴아아아아.

비가 내려도 멈추지 않고 정성스럽게 씨앗들을 심었다.

무인도에서 묵묵히 작업하며 수많은 생각들을 떠올렸다.

지나왔던 과거는 치열하기 짝이 없었고, 앞으로의 미래에는 막대한 짐이 어깨에 실렸다.

‘세계 최고의 부와 권력을 가졌는데 이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유병준 박사의 후계자가 되어 유니콘 그룹의 총수가 되는 건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던 일.

솔직히 두렵기도 했고, 부담이 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리라.

편하게 잠을 자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짐이었다.

‘적당히 부자가 되어서 평생 돈 걱정 안 하고 사는 정도면 좋은데.’

넘치도록 주어진 돈과 권력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르고, 그것을 잘 해낼 자신도 없었다.

확실한 건 그가 악당이 된다면 세상은 매우 고통스러운 곳으로 변하고 말리라.

‘대충 하자. 대충. 어차피 태어날 때부터 잘한 사람도 없었을 테고,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들보단 내가 나을 수도 있겠지.’

섬에서 꽃을 심으면서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했다.

부담감에 짓눌려서 괴로워하느니 그냥 그때그때에 맞춰서 살기로!

‘싹이 트고 자라나는 연한 초록 새싹들과 파도 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긴 하네.’

노력을 해 보고,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가지고 온 씨앗들을 섬에 골고루 심었다.

통찰력과 손재주의 도움으로 농사도 빠르게 초급 6레벨에 오를 수 있었다.

“이젠 결과를 지켜봐야 되겠지.”

넓은 바다를 보면서 낚시를 했다.

파도 소리와 바람 그리고 맑은 하늘.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위한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한 달 정도가 흐르자 쓸쓸하던 무인도에 꽃들이 활짝 피었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무인도.

위드는 꽃게와 생선을 잡아먹고 있는 와삼이에게 명령했다.

“가서 서윤을 이곳으로 데려와.”

― 알았다, 주인.

와삼이가 날개를 펼치고 바다를 날아갔다.

위드는 무인도에 활짝 피어 있는 꽃들을 보며 생각했다.

‘꽃이 피니 예쁘네. 내가 이런 모습들을 너무 모르고 살아왔구나. 사람들이 왜 꽃을 좋아하는지 알겠어.’

2분 정도는 감동으로 인해 그동안의 고생이 씻은 듯 사라질 정도였다.

그리고 3분 20초 정도가 지나자 물씬 풍겨 오는 꽃향기에 아무 감흥도 없어졌다.

‘대충 예쁘긴 한데. 차라리 얼마 전에 먹은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 더 나은 거 아닌가.’

금방 메말라 버리는 감수성!

5분이 더 지났을 때였다.

‘꽃은 무슨…… 벼를 심었어야 되는데. 포도나무도 괜찮고. 차라리 고구마도 나쁘지 않겠다. 뭐라도 따야 소득이 쏠쏠하지.’

위드는 꽃으로 이루어진 섬을 보며 귓속말을 보냈다.

“와삼이가 데리러 갈 거야. 무슨 일인지는 묻지 말고. 무조건 타고 와야 해.”

― 서윤: 알았어요.

모라타 복구를 위해 머무르고 있는 그녀를 무인도로 불렀다.

위드가 바느질을 하며 기다리자, 한참 후에 서쪽 하늘에서 와삼이가 나타났다.

― 꾸에에에엣!

와삼이의 등에는 서윤이 타고 있었다.

그녀가 땅으로 내려오며 말했다.

“무슨 일 있어요?”

“음…… 그러니깐…….”

위드의 계획이 시작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무인도에 잔뜩 피어 있는 꽃을 보며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그녀에게 널 위해 직접 심었다고 고백하려던 작전!

서윤은 뜻밖에도 진지하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물어 오고 있었다.

‘일단 계획대로 가자.’

위드는 그래도 계속 밀고 나가기로 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심었어.”

“할 말이요?”

“응. 이 섬에는 꽃이 몇 송이 없었는데. 전부 너를 위해 심은 거야.”

“이 섬의 꽃을 전부…….”

서윤이 연애 경험이 없고 둔한 편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활짝 피어 있는 꽃들.

아름다운 풍경이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결혼하자. 평생 나랑 같이 살아 줄래?”

위드는 말하면서도 서윤이 대답을 고민할 거라고 생각했다.

같이 밥을 먹고, 한 이불에서 함께 눈을 뜨고, 함께 늙어 가게 된다.

자신의 인생이 걸린 문제였으니까.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같이 살아요.”

* * *

이현은 조용하지 않은 결혼식을 추진했다.

“조금 떠들썩한 맛이 있어야지.”

그렇다고 호텔에서 치르기에는 동네 사람들이 찾아오기 어려웠다.

이현이 쌓아 온 인간관계라고 해 봐야 동네 주민들이 핵심!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네. 사람들이 자유롭게 와서 먹고, 놀고, 축하해 주면 좋겠어.”

―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추진하겠습니다.

인공지능에게 일단 결혼식 준비를 맡겼다.

국가 경제까지 뒤흔들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졌으니 결혼식 준비 정도는 어렵지 않으리라.

― 제목: 성대한 결혼식을 치러야 됩니다.

한 달 안에 멋진 결혼식이 목표입니다.

예산은 무제한입니다.

장소도 어디든 섭외가 가능할 겁니다.

(청와대, 정부청사, 군부대, 항공모함, 필요시 우주 궤도도 가능)

동네 주민들이 다 참석할 수 있어야 하고, 우아하면서도 품위 있고, 호화로우면서, 즐거운 결혼식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아이디어 받습니다.

채택된 분에게는 100억을 드립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질문 글은 포털사이트의 최상단을 유지하고 있었다.

댓글에는 불이 붙었다.

― 아이디어 하나에 100억? 말이 되냐. 말이 돼?

― 점심 한 그릇에 50억인 동네랍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 한국 돈으로 준다는 말은 안 했다.

― 글쎄…… 결혼 5년 차로서 말한다. 다시 생각해 봐라. 그리고 웬만하면 하지 마라.

― 막 결혼하려는 사람한테 무슨 소리임.

― 왜 결혼하지 말라는 거예요?

― 그냥 하지 말라면 하지 마!

― 결혼식 장소로는 예식장 추천합니다. 웬만한 건 다 알아서 해 주니까요.

― 예산이 무제한인데…… 당연히 럭셔리로 가야 되는 거 아님? 하와이에서 합시다.

― 럭셔리엘레강스하이퍼슈퍼초울트라급으로. 뉴욕 센트럴파크로 갑시다.

― 결혼식은 주차 잘되고 밥만 맛있으면 됨. 갈비탕 추천.

― 뷔페도 맛있는 곳은 맛있어요.

― 제가 다녀 본 바로는 스테이크 나오는 호텔이 최고였음.

― 잔치국수도 꿀맛.

― 요즘 대게 철인데.

― 양념소갈비면 최고.

― 개인 취향인데 저는 떡 케이크 있으면 좋던데요.

음식들이 주르륵 나열되고 나서는 다시 장소로 돌아왔다.

― 호텔 1표.

― 동네 사람들 와야 한다는데 무난하게 예식장으로 갑시다.

― 자기 집도 괜찮죠. 주택이라면요.

― 뒷산은 어떰?

― 꿈만 같은 상황이지만 어디든 결혼식이 가능하다면 저는 로열 로드에서 하겠습니다. 왕성 같은 곳에서 하객들 모아 놓고 하면 대장관.

― 풀죽신교 안에서 결혼한 커플도 있었잖아요. 하객들이 다 풀죽만 먹었다던데.

인공지능은 아이디어마다 사람들의 반응들을 분석했다. 그리고 이현과 서윤이 가장 좋아할 것 같은 아이디어를 골랐다.

― 동네에 있는 넓은 잔디 공원 같은 곳에서 하면 어때요. 동네 주민들 자유롭게 참석해도 되고, 음식은 호텔 주방장들이 와서 해 주고. 결혼은 둘이 잘 살고, 주변 사람들이 축하해 주면 되는 거지요. 결혼식이 딱히 뭐 엄청날 필요가 있나?

아이디어를 채택해서 동네에 있는 공원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

이현이 직접 쓴 청첩장이 동네 주민들에게 뿌려지고, 결혼식 날에는 소식을 들은 방송국 사람들도 참석했다.

회사 차원에서 선물을 한 보따리씩 가져오고 축의금도 준비해야 했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네. 직접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현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강 부장과 다른 방송국 관계자들을 맞이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방송국에서도 국장들이 참석하여 이현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실감하게 했다.

CTS미디어의 보도국장 윤창선이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저희 방송국에서는 축의금을 넉넉하게 준비했습니다. 이번에 고급 차라도 한 대 사셔야죠.”

“그래요. 고맙습니다.”

이현은 웃으면서 받아 주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축의금에 탐을 냈겠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아무리 돈 욕심이 많다지만 지금은 세상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 축의금은 마음만 받겠습니다. >

직접 쓴 청첩장에도 이런 문구를 넣을 정도였다.

물론 그동안 고생깨나 했던 방송국 관계자들은 전혀 반대의 반응을 보였지만.

“보통 경조사도 아니고 자기 결혼이잖아. 이러면 얼마를 넣어야 돼? 천?”

“천만 원은 무시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 그러면 더 써야 한단 말인데. 얼마를 내란 말이야. 대체.”

“가전제품 일체는 어떻습니까?”

“그건 지난 명절에도 다 보낸 거야.”

방송국에서는 돈을 밝히는 이현에 대해 나쁘게만 여기지는 않았다.

받을 만큼 받지만 그만큼 어떤 식으로든 돌려줬으니까.

문제는 다른 방송국들과의 경쟁이었다.

“제작 쪽 예산에서 빼서 팍팍 써 보자.”

“그러죠. 베르사 대륙의 통일 황제인데. 접대를 안 할 수 없는 상대 아닙니까.”

방송국마다 선물을 한 보따리씩 가져오고, 축의금까지 챙겨 왔지만 과거처럼 이현이 좋아하지 않았다.

윤창선은 기분이 답답해졌다.

“목소리가 은근해지거나, 입꼬리가 실룩실룩 떨리지 않았어. 우리 액수를 모르는 거 아니야?”

“대충 언질은 했잖습니까?”

“더 가져와야 했던 거 아닐까?”

방송국 관계자들이 고민하는 사이에 천막을 쳐서 만든 신부 대기실에는 작은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효정.

로열 로드에서는 벨로트란 이름으로 활약하는 그녀가 서윤의 얼굴에 화장을 해 주었다.

“완전 예쁘다. 어쩌면 이렇게 예쁠 수가 있지?”

미모의 여배우면서도 서윤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들었다.

“내가 봐도 정말 예쁜 사람이야.”

정효린.

로열 로드에서의 화령도 함께 서윤을 꾸미는 걸 도와주었다.

아무리 공원에서 하는 결혼식이라도 그녀는 가장 아끼는 목걸이와 귀걸이 등의 장신구들을 가져왔다.

“고마워요.”

“영화라도 한 편 찍어 주고 싶어요. 이 외모는 CF라도 찍어서 오래도록 간직해야 하는데.”

정효린이 가져온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착용하자, 더욱 살아나는 서윤의 미모.

당연한 것처럼 어울리는 우아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효정은 화장에 대해서는 웬만한 전문가들보다도 나았다.

“이 모습 그대로 나가면 남자들 미치겠다. 여자들도 다 미치려나?”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서윤의 모습은 천사가 땅에 내려온 것 같았다.

결혼식은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이현과 서윤이 모두의 앞에서 평생 함께하기를 약속하고 공원을 돌면서 하객들과 인사하는 것이 전부였다.

“많이 드세요, 어르신.”

“어, 고맙네. 잘 먹을게. 하하하.”

동네 주민들과 시장 상인들, 방송국 관계자들이 따로 모여 있었다.

그들은 서윤을 볼 때마다 입을 벌린 채로 다물지를 못했다.

한껏 예쁘게 화장하고, 드레스까지 입은 그녀의 모습이란 여신의 강림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제자야, 우리가 왔다.”

안현도와 사범들, 수련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500명이 넘는 시커먼 정장의 근육질 남자들의 등장이었다.

“어서 오십쇼. 스승님, 사형들!”

“요리 냄새가 기가 막히는구나.”

“편하게 드세요.”

그들도 한 자리씩 맡아서 차지하고 술과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지글지글 굽는 바비큐 요리를 시작으로, 5성급 이상의 호텔 주방장들이 모두 동원되었다.

“고기가 살살 녹네.”

“이건 뭐죠? 고급 요리인가. 색깔이 예쁘긴 한데.”

“고기 맛 떨어진다. 모두 돼지고기에 집중!”

“옛!”

“돼지부터 끝내고, 그다음에는 소를 처리한다.”

“이틀 전부터 굶었습니다!”

미각을 돋우는 고급 요리보다는 고기 자체에 집중하는 그들.

오늘은 지나가던 사람이라도 누구나 와서 무료로 먹고 마실 수 있었다.

이현이 돈을 아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기도 했지만, 음식에서는 인색하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주방장들은 호텔에서 최고의 실력자들로 파견되었고, 그들은 이현으로부터 교육도 받았다.

“식재료는 가장 좋은 걸 쓰세요.”

“알겠습니다.”

“특히 소금은 얼마든지 비싼 걸 써도 됩니다.”

“……?”

시의원들과 구청장, 시장까지도 방문했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날 결혼하시는 걸 축하드립니다.”

그들은 지역에서 이현의 명성과 영향력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얼마 후에는 제법 큰 행사가 있다는 걸 안 국회의원도 찾아왔다.

“저는 국회의원 유일석입니다.”

“맛있게 드시고 가세요.”

이현도 가볍게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받아 주었다.

“신부가 참 예쁘군요.”

“네. 고맙습니다.”

“제 아들놈도 이렇게 미녀를 만날 수 있어야 할 텐데.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빵빵하게 뒷받침을 해 주고 있는데 당연히 성공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만.”

유일석이 아들 자랑을 좀 늘어놓긴 했지만, 이현은 대충 흘려버렸다. 다행히 길어지기 전에 보좌관이 와서 그를 데려갔다.

“의원님, 주민들과 한잔하시죠.”

“그래. 그래야지.”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으로서 부지런히 주민들을 만났다.

“저 유일석.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그래. 한 잔 받게.”

남의 결혼식에서 생색을 내는 국회의원!

이현은 웬만하면 오늘은 화를 내지 않을 작정이었다.

‘꼴 보기 싫은 건 나중에 해결해야지.’

뒤끝이 그대로 작렬하게 되리라.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이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그들도 얼마 후에는 조용해졌다.

유니콘 그룹의 계열사 사장들, 세계적인 투자 회사의 오너로 알려진 인물들이 연달아 방문한 것이다.

경제 뉴스에 단골손님으로 나오는 유명 인사들이 허리를 깊게 숙이며 이현에게 인사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별말씀을요. 멀리서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맛있는 음식 많이 드세요.”

유니콘 그룹의 최고위 임직원들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목숨 줄을 쥐고 있는 사람이 이현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 저들의 충성심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현의 머리에 직접 전달되는 인공지능의 말이 있었다.

“어째서? 언제 갑자기 뒤통수를 칠지도 모르잖아.”

― 모든 순간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유병준 박사님께서도 사람을 그리 믿진 않으셨으니까요.

세계경제를 좌우하는 중요 인물들이 공원 구석에 앉아서 조촐하게 소주를 마셨다.

그런 광경까지 보였으니 감히 함부로 소란을 피우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설혹 나오더라도 곳곳에 배치된 경호원들에 의해 제압되어 버렸을 테지만.

* * *

김다인.

그녀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결혼식이 열리는 공원에 왔다.

멀찌감치 서서 잠시 구경을 하고 있는데, 한 여자가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결혼식 오셨어요?”

“네. 그런데…….”

“에바루크 성의 성주시죠? 유명하신 분이라 금방 알아봤어요. 로열 로드에서 아시는 분들은 모두 저쪽에 있어요.”

젊은 사람들이 꽤 모여 있었다.

오동만이나 박희연, 박수연, 김인영, 강진철.

이현의 오랜 동료들도 당연히 참석했고, 미국의 로페스나 전 세계의 로열 로드에서 쌓은 인맥들도 참석했다.

아침부터 시작된 결혼식은 점심을 지나 저녁까지도 이어지게 될 예정.

로열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식사를 마치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다인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냥 밥이나 먹고 갈래요.”

“그럴래요? 사실은 저도 밥 먹으러 왔는데.”

그녀들은 취향에 따라 음식을 담아 와서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제 이름은 김다인이에요.”

“전 윤정희요. 로열 로드에서 레벨은 조금 낮아요. 원래 이현과는 아는 사이였어요.”

둘은 밥을 먹다가 슬쩍 맥주를 땄다.

“날이 덥네요. 시원하게 한 잔 어때요?”

“저도 바라던 참이었어요.”

맥주가 금방 소주로 바뀌고, 나중에는 양주까지 말기 시작했다.

“술이 착착 달라붙네요.”

“달아요, 달아.”

* * *

이현은 결혼식을 마치고 이사를 했다.

간단한 옷가지를 가지고 서윤의 저택으로 들어간 것이었는데, 이혜연을 불러서 신신당부했다.

“밤에 일찍 다녀.”

“응.”

“청소도 잘하고. 문단속은 철저히. 빈집 티 내지 말고.”

“알겠어, 오빠.”

바로 담까지 허물어진 옆집에 살면서 늘어놓는 잔소리.

이혜연은 차라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쪽이 마음이 편했다.

오빠이긴 하지만 아빠와 엄마의 역할까지 하면서 그녀가 어릴 때부터 쭉 같이 살아온 가족이었으니까.

“후…… 하나뿐인 여동생을 생각하면 불안한데.”

“언제든 볼 수 있잖아.”

“아직 사람을 덜 만들어 놔서 그렇지. 이런 말까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릴 때 얼마나 등에 오줌을 쌌었는데.”

“…….”

이혜연은 꼬박 30분 동안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밤이 되자 전화가 왔다.

― 밥 먹으러 와라.

“응?”

― 밥 차려 놨으니까 혼자 먹지 말고 와서 먹어.

이혜연은 그날 저녁은 서윤의 집에서 먹었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이현의 결혼 이후 바뀐 것이라면 거실이 서윤의 집으로 옮겨졌다는 점뿐이었다.

* * *

신혼여행은 로열 로드에서 보내기로 했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들을 돌아다녀 봐야 로열 로드만큼의 멋진 경치는 없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사냥도 잊고, 노가다도 하지 말아야지.”

위드는 단단히 결심하고 서윤에게 물었다.

“가 보고 싶은 곳이 있어?”

베르사 대륙의 어느 도시라도 여행을 즐길 수 있으리라.

북부 대륙은 어느 곳이라도 집처럼 느껴졌으니 중앙 대륙이나 유명한 섬 같은 휴양지를 떠올리며 물었다.

“배를 타고 싶어요.”

“배……?”

“항구에서 돛을 올리고 목적지도 없이 며칠이든 바다를 돌아다녀 보는 거예요.”

서윤은 무인도에서의 기억이 좋았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시원한 바람, 탁 트인 하늘까지.

위드는 입술에 침을 듬뿍 바르고 대답했다.

“재미있겠네.”

상당히 심심할 것도 같았지만 어쨌든 그녀가 원하는 대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항구 바르나에서 조선 장인에게 중형 선박을 구입.

위드가 조선 스킬로 직접 배를 건조할 수도 있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구입하는 쪽을 선택했다.

― 드라고어: 선물입니다, 위드 님!

재봉사의 마스터에 거의 다다른 드라고어는 무지개 천으로 제작한 삼각돛을 선물로 주었다.

순풍을 받으면 최대 4.7배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전설급 돛!

“이렇게 귀한 걸 줘도 됩니까?”

― 드라고어: 얼마든지 드려야죠. 아르펜 제국의 황제이신데요.

드라고어는 다른 마스터급의 장인들보다도 훨씬 아부에 능숙했다.

“잘 기억해 두겠습니다.”

― 드라고어: 영광입니다, 영광!

위드는 물론 웬만하면 기억만 해 둘 생각이었다.

항구 바르나에서 중형 범선이 돛을 활짝 펼치며 출항했다.

시원한 바람을 받아서 팽팽하게 펼쳐진 돛!

“모두 피해요, 피해!”

“빠르다. 무슨 배가 저렇게…….”

항구를 나오는 수백 척의 다른 배들을 제치고 빠른 속도로 먼 바다로 나아갔다.

끼룩끼룩.

하늘에는 갈매기들이 날아다니고, 바다에는 행운을 안겨 주기라도 하듯이 돌고래들이 튀어 올랐다.

“어디로 갈까?”

“아무 곳이든 좋아요.”

* * *

배를 타고 동쪽 바다로 항해하는 여행.

위드는 돛을 활짝 펼친 채로 바람을 따라 배가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항로가 있긴 하겠지만…… 어디로든 가겠지.”

그동안 했던 고생이나 스킬들이 있는 이상 바다라고 해도 죽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조각 변신술을 이용해 상어로 몸을 바꿔서 서윤을 태우고 헤엄칠 수도 있을 테니까.

“돌고래예요!”

서윤이 손으로 푸른 바다를 가리켰다.

돌고래들이 뛰어오르며 배를 따라오고 있었다.

“작살만 있으면 그냥…….”

“네?”

“귀엽고, 예쁘네.”

“그렇죠?”

위드와 서윤은 서로에게 몸을 기댄 채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이미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사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상대를 알아 가고 있었다.

같이 바다를 보고, 바람을 맞으면서 이루어지는 감정의 공유.

“근데 배를 타고 가니…… 저녁은 뭘 먹지?”

“낚시해요.”

“좋아. 회도 먹고, 매운탕도 끓여야지.”

둘은 낚시를 하고, 요리도 함께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새벽에는 갑판에 드러누워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별을 보며 옛날이야기도 했다.

“어릴 때는 진짜 힘들게 살았어.”

“가난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일주일에 만 원으로 가족들이 전부 다 버텼던 적도 있으니까.”

“할머니도요?”

위드는 서윤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할머니에게도 인사를 시켰다.

나이로 인해 몸이 나빠져서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할머니는 그녀를 보며 많이 좋아했다.

“예쁘다, 예뻐. 참 예뻐.”

예쁘다는 소리만 수없이 반복했는데, 그건 외모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보았기 때문이리라.

위드는 과거에 세 식구가 살던 시절을 떠올리며 웃었다.

“응. 할머니가 제일 독했지. 동생이 특히 많이 혼났어.”

“왜요?”

“삶은 계란을 좋아했거든. 두 개 먹었다고 혼나고. 어떤 때는 과자 사 먹었다고 혼나고.”

“지금 모습을 보면 전혀 안 그랬을 거 같은데요.”

“이젠 많이 사람 됐지. 꼬맹이 시절에는 진짜 말 안 들었는데.”

위드는 할머니를 좋아했다.

자식을 잃고 나서도 할머니는 딱 하루만 울었을 뿐이었다.

스스로의 몸이 상해 가는 걸 알면서도 손자와 손녀를 데리고 힘겹지만 꿋꿋이 살아왔다.

“못 먹고, 못 입고. 마음 편히 살 곳도 없었어. 돈이 없으면 그렇게 어렵더라.”

과거의 고생들이 즐거운 추억처럼 느껴졌다.

힘든 시기였지만 지나가고 나니 인생은 다시 펼쳐졌다.

돌아보면 운이 좋았고, 막다른 길에 몰려도 어딘가 벗어날 곳은 있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란 찾으려고 하면 나타났다.

* * *

다음 날에도 항해는 계속되었다.

신혼여행을 겸하는 여행이었으니 짧게 끝낼 수는 없었다.

물고기도 잡고, 때로는 화살을 쏴서 새도 잡았다.

배에서 간단히 해 먹으면서 하루 종일 이야기를 하고 둘이서 시간을 보냈다.

완벽하게 평화로운 시간.

“좋다. 사람이 이렇게 여유도 가져야지.”

그 말을 한 날, 거짓말처럼 바다가 바뀌었다.

우르릉.

콰과광!

하늘에서는 천둥 벼락이 떨어지고 10미터가 넘는 파도가 쳤다.

“돛 접고, 꽉 잡아!”

위드는 서윤과 함께 폭풍우를 뚫으며 항해하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 항해 스킬의 숙련도가 증가하였습니다. >

< 낚시 스킬의 숙련도가 증가하였습니다. >

< 재봉 스킬의 숙련도가 증가하였습니다. >

< 대장장이 스킬의 숙련도가 증가하였습니다. >

< 조선 스킬의 숙련도가 증가하였습니다. >

먼 바다를 떠돌면서 돛도 고치고, 배도 수리했다.

조각술을 이용해서 서윤이 좋아하는 돌고래의 선수상도 만들었는데, 그 효과로 항해 속도도 조금 빨라졌다.

순풍을 받으면 무섭게 바다를 가르며 나아가는 배의 속도감마저 느껴질 정도.

그렇게 2주 정도가 지나자 완전히 망망대해에 도달했다.

하루 종일 다른 배들이 한 척도 안 보였다.

서윤은 즐거운 얼굴로 말했다.

“지도에서도 이곳을 찾기 어려워요.”

“그러네. 진짜 어딘지도 모르겠네.”

먼바다에서 돌아다니다가 작은 무인도를 발견했다.

“잠시 머물다가 갈까?”

“좋아요.”

무인도에서 둘만의 생활을 시작했다.

양이나 원숭이 같은 동물도 있었고, 갯바위에서는 낚싯대만 던져도 커다란 물고기들이 쉽게 잡혔다.

“여긴 폭풍도 안 치고 파도도 잔잔하네.”

“정말 예쁜 곳이에요.”

바다에는 산호들도 많이 자라고, 열대어들이 무리를 지어 돌아다녔다.

“집이라도 지으면 멋지겠네.”

“지어 볼까요? 바다에 지은 집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어요.”

“아, 섬이 아니라 바다에?”

얕은 물 위에 지은 집.

위드는 생각해 보면 괜찮을 것도 같았다.

해가 뜨고, 지는 걸 집에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파도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든지 낚시 스킬을 올릴 수 있어.”

항해하며 낚시에 푹 빠지게 된 위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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