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58권 : 5. 로열 로드의 사람들 (416/520)

5. 로열 로드의 사람들

뚝딱뚝딱!

위드는 나무를 잘라서 얕은 해변에 금방 오두막 한 채를 지었다.

투명하리만큼 맑은 바다에 떠 있는 목재 집.

“가구도 만들어요.”

“그럴까?”

서윤이 함께 가구를 제작했다.

오랫동안 같이 살 집은 아니지만 둘이 함께 집을 짓는 기분을 내 보는 것이었다.

옷장, 서랍장, 침대 등을 만들어서 방의 구색을 맞췄다.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네.”

“그러게요.”

위드는 서윤과 함께 밤낚시에도 빠졌다.

< 행운이 1 증가했습니다. >

< 인내가 1 늘었습니다. >

쏠쏠하게 스탯 노가다도 하고, 낚시 스킬도 상승시켰다.

전투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인내나 체력, 지구력도 조금씩이지만 상승했다.

무엇보다 바다의 작은 섬에 함께 머문다는 점이 서로에게 집중하게 만들었다.

“모라타의 복구는 생각보다 빨리 되고 있어요.”

“응, 그래.”

“주요 건축물들은 어렵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다시 세우는 걸로 했고요. 도로는 좀 더 넓힐 예정이에요. 광장과 시장도 키우고요.”

“그런 건 다 알아서 해도 좋아.”

서윤도 귓속말을 이용해서 멀리서도 모라타의 복구를 관장했다.

낚시하고 먹고, 대화하는 시간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현실에서도, 로열 로드에서도 함께 붙어 있으면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 가는 시간.

“심심하지 않아?”

“재밌어요. 이야기를 듣는 것도, 바다를 보는 것도. 아무리 오래 하더라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아요.”

위드는 가족이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즐거움을 같이 나누고, 어려운 일도 함께 해낸다.

인생이란 긴 시간을 살아갈 동반자를 얻은 것이다.

* * *

헤르메스 길드는 하벤 지역으로 돌아간 이후에 드래곤과의 전투에서 입은 막대한 피해를 복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던전 사냥을 대대적으로 시작합시다.”

“사냥을요?”

“예.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합시다. 단순하게 말이죠.”

아크힘은 길드의 주요 일들을 맡아서 했다.

라페이가 떠나고, 바드레이는 과거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사냥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직 공략하지 못한 던전들이 많습니다. 아르펜 제국 소속이 되었으니 중앙 대륙이나 북부 대륙. 남부 사막이나 동쪽 지역까지도 깰 수 있을 것입니다.”

드래곤 사냥이 그들의 레벨을 떨어뜨렸고, 물질적인 손해도 입혔다.

하지만 헤르메스 길드는 약해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사기를 회복했고, 길드 내부의 결속은 더욱 강화되었다.

“우린 기회를 얻었어요. 모라타에서 치렀던 큰 희생은 위드에게만 좋은 일을 해 준 게 아닙니다. 우린 다시 해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라타의 전투 이후로 사람들의 태도가 과거보다는 호의적으로 바뀐 것을 확인했다.

동시에 헤르메스 길드의 문을 활짝 열었다.

과거에는 강자들만 가입할 수 있었던 길드.

길드 소속이 되기만 해도 온갖 특권들이 부여되었고 지배 계층으로 등극했었다.

이제는 가입 조건으로 순수하게 하나만 내세웠다.

― 최고의 전투 집단. 헤르메스 길드에서 신입들을 모집한다.

강해지고 싶은 이들이여. 우리에게 오라.

최소한의 레벨 제한은 300.

사냥터와 장비들을 제공함.

절대적인 강함.

로열 로드의 초창기부터 그들이 내세웠고, 사람들이 열렬히 추구하는 기본을 추구하기로 했다.

“행패만 안 부리면 헤르메스 길드가 최고잖아.”

“명예지. 소속이 되면 어딜 가도 자랑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이득도 크고.”

헤르메스 길드는 유저들의 가입으로 세력을 늘려 나갔다.

흑사자 길드나 클라우드 길드, 블랙 소드 용병단의 이탈도 생기면서 세력 변화도 조금씩 이루어지게 되었다.

* * *

“놀랍게도 진짜 위드 형의 말대로 흘러가네. 대륙 통일이 되었다고 끝이 아니라 세력 팽창에 여념이 없구나.”

아르펜 제국의 영주 시드.

그는 다른 영주들과는 달리 위드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

빵 한쪽도 뺏겨서 나눠 먹던 사이!

시드는 위드를 처음 알게 되었던 과거를 떠올렸다.

* * *

김요삼이 어릴 때 이사 온 동네에는 이현이라는 이름의 좀 이상한 형이 살았다.

‘저 형은 왜 저러고 다니나.’

낮에는 혼자 낡은 츄리닝에 슬리퍼를 신고 동네를 돌아다닌다.

“김치볶음밥 먹고 싶다. 바지락이 듬뿍 든 된장찌개도…… 엄마가 해 준…….”

혼잣말처럼 무언가를 슬프게 중얼거리는데 정신이 이상한 사람인 것 같기도 했다.

이른 아침에는 자전거에 신문이나 우유를 잔뜩 싣고 배달을 하는데, 오토바이처럼 굉장히 빨랐다.

바람처럼 지나가면서 우유와 신문을 던지는데 집집마다 날아가서 묘기에 가깝게 정확히 떨어졌다.

‘야구 선수야, 저 형?’

김요삼이 부모님이 없는 이현을 혼자서 마주쳤던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대낮에 하이에나처럼 동네를 돌아다니던 이현의 눈에 띄고 만 것이다.

“손에 든 거 사탕이냐.”

“옙?”

“딸기 사탕 같은데…….”

“맞아여.”

그 형의 눈썰미는 보통이 아니었다.

몸이 좀 말라 보이고 왜소한 느낌이기는 했지만, 눈빛만큼은 호랑이처럼 빛났다.

훗날 알게 되었지만 김요삼보다 네 살이 더 많았다.

“사탕 먹으면 배 아픈 거 몰라?”

“배가 가끔 아프기는 한데…….”

“병원 가면 안 되니까 잠깐 줘 봐.”

“네, 형.”

열 살이라서 사리 분별이 안 되는 나이도 아니었지만, 연기력과 목소리가 영화배우를 뛰어넘을 정도라 순간적으로 속고 말았다.

김요삼이 넘겨준 사탕을 이현은 날름 입에 넣었다.

“맛있네. 딸기 사탕.”

“도, 돌려주세여.”

“안 돼. 입안에 들어온 사탕은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뺏은 거잖아요!”

“빼앗은 사람을 탓해서 발전은 없다. 뺏기지 않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우에에에엥!”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있던 사탕까지 뺏어 먹는 이상한 형!

“빵 좀 있냐?”

“하나밖에 없는데요.”

“나눠 먹자.”

같은 동네라고는 해도 며칠에 한 번씩은 꼭 마주쳤는데 그럴 때마다 먹을 것을 빼앗겼다.

김요삼은 느낌 탓이긴 할 테지만 마치 이현이 굶주린 사냥개처럼 먹잇감을 찾아 동네를 떠도는 것 같았다.

‘엄마한테 일러야겠어.’

어느 날, 큰 결심을 하고 엄마한테 사실대로 일러바쳤다. 그러나…….

“요삼아, 먹을 거 달라면 그냥 줘.”

“엄마?”

“그런 형이랑 어울리고 그러면 위험해요. 달라는 거 주고 보내는 게 제일 나아.”

“네.”

“엄마가 우리 아들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커서 절대 그런 형처럼 되면 안 된다.”

“네, 엄마.”

세상의 위험을 막아 주는 방파제 같은 엄마도 동네 형을 어찌할 순 없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 내내 먹던 과자까지 뺏겨 가면서 살던 김요삼.

중학교에 가서는 이른바 불량한 선배들의 눈에 띄어 같이 어울리게 되었다.

“동네 형이 있다고?”

“예. 맨날 음식 뺏어 먹어요.”

“크큭. 돈은 안 뺏겼냐?”

“돈은 안 가져가던데요.”

“걱정 마라. 블랙 써클에 들어온 이상 아무도 널 못 건드릴 거야. 근데…… 배고프다. 빵 좀 사 와라.”

뭔가 아닌 것 같기도 했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불량한 선배들에게서 벗어나기는 힘들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서 선배들과 하교하는데, 이현을 만나고 말았다.

“저, 저 새끼입니다!”

김요삼은 손가락으로 이현을 가리키며 외쳤다.

“복수해 주세요, 형님들.”

학교에서 최강자로 군림하던 선배들이 이현을 보자마자 소리를 냈다.

“앗.”

“헛.”

“훅!”

“흐엑!”

괴성을 내면서 얼어붙는 선배들이었다.

이현이 먹잇감을 발견한 호랑이처럼 어슬렁거리면서 다가왔다.

“너희들 진식이, 성훈이, 봉규였던가?”

“예, 형님.”

“맞습니다. 이름을 기억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학교에서 사납고 더러운 성질들을 자랑하던 선배들이었는데, 이현 앞에서는 넙죽 허리를 숙였다.

손이 수전증 환자처럼 달달 떨리고 있었는데 극심한 공포를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야. 고작 동네 노는 형한테…….’

이현이 사나운 일진 선배들의 뒤통수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요즘도 애들 괴롭히고 다녀?”

“……그렇지 않습니다!”

“인상 펴라.”

“헤헤헤.”

“애들 빵 뺏어 먹지 말고. 먹다가 턱이라도 부서지면 평생 죽 먹고 살아야 되잖아.”

“예? 예!”

“죄송합니다!”

“잘하겠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김요삼은 충격을 먹고 그냥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이현이 한마디를 할 때마다 그저 찍소리도 못 하고 살려 달라는 말만 하는 선배들.

동네에서 그냥 할 일 없이 돌아다니던 이현의 지금 분위기는 굶주린 맹수처럼 사납게 보였다.

이현은 김요삼을 보면서도 씩 웃었다.

평소와 마찬가지의 표정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놓이는 미소였다.

“요삼아, 남은 빵 있냐?”

“그게요. 있긴 한데. 여기 형들한테 줘야 하는데요.”

김요삼이 주기 싫어서 한마디를 했더니, 선배들은 기절할 듯이 놀랐다.

“흐억!”

“야야, 당장 드려야지.”

“형님, 어서 빵 드십시오. 우유도 제가 가서 사 오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사 오겠습니다. 딸기우유로…….”

“딸기우유가 뭐야. 초코우유에 흰 우유, 바나나우유까지 전부 사 오고 싶습니다.”

선배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애교를 부리는 것이었다.

이현의 나이가 그들보다 두 살 정도 더 많긴 했지만, 평소에 고등학생이나 어른들마저 무시하던 그들이 전혀 보이지 않던 태도였다.

“빵 맛있네. 역시 팥이 들어야지.”

마침내 이현이 빵을 베어 물면서 만족하고 떠나자 선배들의 긴장도 풀렸다.

“후아, 살았다.”

“아…… 이 동네 그러니까 오지 말자고 했잖아.”

“하필 마주칠 줄 알았냐.”

선배들은 그들끼리 한참 이야기하더니 김요삼을 불러서 물었다.

“너 저 형 잘 아냐?”

“예? 같은 동네라서요.”

“그런가. 같은 동네라서…… 그 무서움을 몰랐던가?”

“어떤 사람인데요?”

“그건…….”

선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더니 목소리를 깔아 가며 이야기했다.

“이 도시에는 무서운 전설이 있어.”

“전설이요?”

“그건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말도 못 해 주지만 대부분 사실로 확인된 거야.”

불량 청소년들이 우유 배달을 하는 이현에게 시비를 걸다가 초토화가 된 적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복수를 위해 동료들을 모았지만, 불행히도 이현의 집에서 나오는 사채업자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어. 한창 파릇파릇한 녀석들이네.”

사채업자들은 불량 청소년들 중의 한 명의 머리를 귀엽다고 쓰다듬어 주려고 했다.

그렇지만 불량 청소년이 괜히 불량한 게 아니었다.

“뭐야, 이 꼰대들은?”

“으하하하하하. 이것들 귀엽네.”

사채업자들 중에서도 악질들.

그들은 가뿐하게 불량 청소년들을 끌고 숙소로 데려갔다.

어두컴컴한 지하로 내려간 그곳에서는 역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야. 그때 돼지 잡은 거 아직도 냄새 심하잖아.’

‘물도 뿌리고 치운다고 치웠는데 말입니다.’

‘무식한 놈.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 와서 구워야지. 미쳤다고 칼로 돼지를 잡냐.’

‘파티를 벌인다고 성의껏 해 본 거지 말입니다. 돼지가 저항해서 저도 병원 가서 다섯 바늘이나 꿰맸지 말입니다.’

‘잘하는 짓이다. 아무튼 여기 어린 것들한테 돼지 잡다가 꿰맸다고 설명할 수도 없고…….’

‘겁이나 좀 주죠. 좋은 기회지 않습니까?’

‘그럴까. 안 그래도 영화 보면 막 사람 토막 내고 이런 거 무섭긴 하더라.’

‘완전 무섭죠. 그거 보고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사채업자들은 일부러 전등도 제대로 안 켜고 분위기를 잡았다.

“그때 걔들은?”

“신장이랑 각막은 떼서 팔았고, 간은 상해서 못 팔았습니다.”

“니들, 장사를 똑바로 해야지. 그게 뭐냐?”

“죄송합니다, 형님.”

“연변에서 기술자 데려와야겠네.”

“저도 배는 제법 잘 째지 말입니다. 심장도 잘 꺼낼 수 있습니다.”

사채업자들끼리 나누는 이야기에 기껏해야 중고등학생들로 이루어진 불량 청소년 그룹은 공황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배고픈데. 오늘 저녁은 뭐냐?”

“갈비로 준비했지 말입니다.”

“갈비?”

“예. 맛이 기가 막힙니다. 역시 고기 중에 제일 맛있는 건 사람 아니겠습니까. 특히 목을 구워서 오도독 씹어 먹으면 그냥…….”

불량 청소년들 중에는 기절하는 이들까지 나왔다. 나머지들도 핏기가 싹 가신 채로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기까지 했다.

‘야. 사람 고기는 너무 많이 간 거잖아. 자장면이라도 시키려고 했더니.’

‘죄송합니다, 형님. 겁 좀 주는 게 재미가 있어 가지고요.’

‘얘들 완전히 믿는 거 같은데.’

‘우리 연기력이 기가 막혔지 말입니다.’

사채업자들은 괜히 귀찮아질 것 같아서 불량 청소년들을 그냥 풀어 주었다. 만약에 신고한다고 해도 때린 것도 없고, 장난을 친 것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풀려난 불량 청소년들은 그것을 단단히 믿고 이현의 집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현이 사람 해부 전문 기술자라는 소문까지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 로열 로드.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다.

― 꿈과 도전, 영웅들이 살아가는 베르사 대륙!

― 모두가 기다려 온 바로 그 순간.

― 역사가 시작되다.

선배들은 김요삼을 더 이상 건드리지 않았다.

평범하게 중학교를 다니는데, 3학년이 되었을 무렵에 인터넷이 온통 떠들썩해졌다.

유니콘 그룹에서 로열 로드의 개발 완료를 알린 것이다.

“진짜냐. 이거…….”

중학교도 온통 난리가 났다.

휴대폰이나 컴퓨터 게임과는 차원이 다른 가상현실.

캐릭터가 직접 배를 몰고 바다를 항해하는 광고 영상이나, 새를 타고 도시를 날아다니는 모습들도 나오면서 김요삼은 열광했다.

“만세! 태어나길 잘했다.”

하루, 하루, 또 하루.

마침내 로열 로드가 오픈하는 날, 그날부터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다.

“한국대 입학하면 캡슐 사 줄게.”

김요삼은 부모님의 말 한마디에 열심히 공부했다.

아직 캡슐방도 나오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나도 대학만 가면 시작한다. 무조건이야!”

그렇게 3년이 지나고, 밥만 먹고 공부만 해서 한국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학과는 당연하게도 가상현실학과.

물론 입학 서류를 받기도 전에 부모님을 졸라서 캡슐부터 샀다.

로열 로드에 접속하시겠습니까?

“당장 접속합시다!”

* * *

캐릭터의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시드.”

시드라는 이름을 지은 김요삼은 종족을 인간으로 결정했다.

시작하는 왕국은 당연하게도 아르펜이었다.

로열 로드를 시작하기 전에 많은 검색을 했는데, 모라타만큼 좋은 도시가 없다는 게 정론이었다.

초보자용 물품들이 저렴하며, 몬스터도 많고, 사람들도 친절하다.

“영웅이 되어서 여자들에게 인기도 끌고, 돈도 많이 벌어야지.”

멋진 꿈을 꾸며 접속한 로열 로드.

모라타의 빙룡 광장에서 시드는 빛과 함께 나타났다.

“우오오오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마차들과 북적이는 인파였다.

“풀죽에 넣는 건빵 팔아요!”

“애완용 토끼 팝니다. 집에서 기르면 달걀도 낳습니다. 진짜예요!”

“몸에 좋은 붉은 약초. 어디에 쓰는지는 말 안 할게요. 아시는 분들만.”

광장에는 물건들을 사고파는 유저들로 붐볐다.

시드처럼 막 시작한 유저들은 빛과 함께 등장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바빴다.

광장 정중앙에 세워진 거대한 빙룡의 조각상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시드는 즉시 수련장으로 향했다.

누군가 연구한 위드의 성장 방법은 무려 3억이 넘는 조회 수를 자랑했다.

― 기초 수련관의 통과가 향후 캐릭터의 성장을 좌우하는 핵심 관문이 됩니다.

4주 동안 허수아비를 쳐야 하는데…….

“좀 지루하긴 하겠지만 앞으로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수련관에는 이미 목검으로 허수아비를 때리고 있는 유저들로 붐볐다.

“오, 신입인가. 그렇다면…….”

“다 알고 왔으니 목검이나 주세요.”

교관의 말까지 끊으면서 시드는 목검부터 받았다.

헛둘, 헛둘.

격투기나 운동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는 상태였으니 국민 체조를 하듯이 허수아비를 때렸다.

‘그래.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다. 여기서부터 고수가 되는 거야.’

5분이 지나자 몸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와, 진짜 힘드네. 현실감 죽인다.’

10분이 더 흘렀다.

팔다리가 아파 오면서 몸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힘들긴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서 고수가 되는 것이겠지.’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시드는 그 교훈을 되새기면서 허수아비를 때렸다.

그때부터 5분, 10분은커녕 10초도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스탯은 대체 언제 오르는 거야. 그리고 완전 힘드네.’

30분이 더 지나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현실에서도 이토록 고생해 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만 같았다.

로열 로드를 시작하기 전에는 단순 노가다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진짜 몸을 움직이니 너무나 힘들었다.

‘좀 쉴까? 오늘은 첫날인데 무리할 필요가 없잖아.’

시드가 주위를 둘러보자 허수아비를 때리는 사람들이 많기는 했다.

기운이 다 빠져서 대충 목검을 휘두르는 초보 유저들!

솔직히 말처럼 간단하지 않은 수련이었다.

현실에서도 운동선수나 격투기 선수라고 해도 4주 내내 육체 단련만 하고 있기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도 힘들다.

극악의 난이도와 노가다를 자랑하는 기초 수련관.

보통 기초 수련관을 3, 4달에 걸쳐서 통과하더라도 잘한 편에 속했다.

위드가 난이도를 파괴하는 괴물인 것이다.

‘훗. 나는 달라. 전쟁의 신이 될 몸이니까.’

시드는 그들을 한 수 아래로 여기며 수련관을 빠져나갔다.

모라타의 번화가와 판자촌, 위대한 건축물들까지 구경을 하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밤에는 프레야 여신상이나 멀리 보이는 빛의 탑까지 보며 보람찬 하루를 마쳤다.

* * *

시드는 3개월이 지나자 모라타 인근의 던전까지 진출했다.

아르펜 왕국은 모라타를 중심으로 한창 발전하고 있을 때였다.

“고구마 던전에 가실 분. 저 검을 주무기로 쓰는 레벨 46 전사입니다. 끼워 주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요! 전사 필요해요.”

“혹시 방패도 드실 수 있나요?”

유저들로 북적이는 모라타에서는 파티에 가입하는 것이 아주 쉬웠다.

그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던전으로 들어갈 때의 긴장과 설렘.

모라타 성문 밖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푸르른 대자연을 본다.

음머어어어어.

황소를 타고 그림처럼 멋진 능선을 따라서 던전을 찾아갔다.

‘이게 로열 로드의 세상이구나. 빠져들 수밖에 없네. 평생 이곳을 떠나기는 쉽지 않겠어.’

사냥과 퀘스트를 해서 번 돈으로 모라타에서 판잣집도 장만하고, 꽃게죽에 가입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동쪽 성문 앞에서 꽃게 파티를 하는데 1실버를 내고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었다.

“위드 님이 오셨대.”

“우왓…… 위드 님이 모라타를!”

“황소 광장이다. 모두 출동!”

어느 날, 시드가 광장에서 잡템을 팔고 있는데, 위드가 접속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모라타의 유저들이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혹시 나를 기억할까?’

동네 아는 형.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어마어마하게 출세해 버린 형.

‘그동안 나눠 먹은 빵이 몇 조각인데. 에이. 얼굴을 알더라도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알아보기는 무리일 거야.’

시드는 큰 기대는 하지 않고 황소 광장으로 갔다.

이미 군중이라고 불러야 할 수만 명의 유저들이 위드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직접 만든 조각품 팝니다! 여우 조각품이 원가에도 미치지 않는 가격 30골드! 이 수익금의 일부는 초보 돕기와 풀죽신교에 기부합니다!”

위드가 사자후를 외치자 출장을 나온 마판 상회의 상인들은 여우 조각품을 나눠 주며 30골드씩을 챙기고 있었다.

― made in 위드

위드가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마판 상회의 조각사들이 제작을 도와줘서 분당 11개씩을 제작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공장이나 다름없는 노가다였는데 누군가 이 사실을 공개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 위드 님의 의도를 모르심? 아르펜 왕국 주민들에게 기념품이라도 하나씩 나눠 주려고 하는 건데…….

― 불편하면 안 사면 되잖아요?

― 헤르메스 길드 첩자 아님?

― 30골드가 아까우면 그냥 쓰지 마세요. 살 사람들은 다 사요.

― 이거 팔아서 다 초보들 돕는 거잖아요. 모라타에 건물들이나, 북부 대륙의 위대한 건축물 같은 건 공짜로 올린 줄 아세요?

사실 수익금의 일부를 초보 돕기와 풀죽신교에 기부한다지만 상세 내역이 공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즉 1실버를 기부하더라도 위드의 말은 사실인 것.

위드는 무려 2만개나 되는 여우 조각품을 가져와서 1시간 만에 다 팔아 치우는 위업을 달성했다.

“왔노라. 팔았노라. 벌었노라!”

“우와아아앙!”

“위드 님, 만세!”

시드가 볼 땐 좀 이상한 장면들이 있었다.

뱃살이 두툼하게 나온 이들이 광장의 구석구석에 퍼져 있었다.

위드가 사자후를 외치기도 전에 그들은 두 팔을 번쩍 치켜들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아니겠지. 무슨 요즘 세상에 바람잡이들이 있겠어.’

시드는 분명 오해일 거라 생각하면서 위드가 떠나는 것을 지켜봤다.

위드의 눈이 군중들을 쭉 훑고 지나가다가 딱, 그에게서 멈췄다.

“김요삼?”

“에엑?”

시드는 깜짝 놀랐다.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 그를 단번에 찾아낸 눈썰미도 놀라웠지만, 갑자기 사람들의 이목을 한 몸에 받았기 때문이다.

* * *

위드는 모라타의 영주 성인 흑색 거성에서 시드를 만나기로 했다.

대지의 궁전이 지어지면서 흑색 거성의 존재감도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기념관처럼 운영되었다.

입장료 3골드를 내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었다.

“저…… 위드 님이 불렀는데요.”

“3골드는 내셔야 합니다.”

“좀 이상한데.”

시드는 어쩔 수 없이 3골드를 지불하고 흑색 거성으로 들어갔다.

위드는 영주의 집무실에 있다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오, 김요삼. 이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헤헤. 저도 그렇습니다.”

시드는 억지로라도 환하게 웃었다.

어릴 때 동네에서는 수없이 많은 욕을 했던 형이지만 어쨌든 출세했지 않은가.

“그래. 지내는 데 불편함은 없고?”

“판잣집에서 살고 있는데요. 비가 새고, 벌레가 좀 지나다녀요.”

“초보 시절의 좋은 추억이 되겠네. 돈 많이 벌어서 푸홀 워터파크에 별장이라도 한 채 사면 가끔 쓰는 집이 될 테니깐. 뭐.”

“…….”

시공 하자에 대한 보수 공사는 기대도 할 수 없는 일.

시드는 더 큰 목표가 있었기에 당연히 불평을 할 생각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쭉 알고 지냈던 기간이 10년 가까이 되었다.

드문드문 만나기는 했어도 아는 사람 좋다는 게 뭔가.

‘던전 사냥에 혹시 끼워 줄까. 우왓. 방송에서 보던 것처럼 레벨 600대가 넘는 사냥터에 데려가면…… 제대로 끝내주겠다. 어쩌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 아냐?’

자신은 까마득한 초보이긴 하지만 위드가 로열 로드의 유명인이기에 가능할지도 모른다.

‘바빠서 직접은 무리더라도 아르펜 왕국 소속 기사를 호위병으로 붙여 주면…… 워리어 바하모르그는 진짜 대박이었는데.’

세상살이가 다 그렇지만 로열 로드도 공평하진 않았다.

돈이 많은 이들은 최고의 장비들을 맞추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산다.

말 한 마리를 사도 명마를 구입해서 산악 지형을 평지처럼 달렸고, 가난하면 몬스터들이 있는지 경계하면서 조심하며 걸어 다녔다.

레벨 50 정도의 초보 시절에 몬스터들의 위협을 무릅쓰고 장거리 이동을 할 때의 스릴이 굉장하다지만, 그래도 멋진 말이나 와이번을 타고 다니는 것에 비할 일은 아니다.

“저기 형.”

시드가 부탁을 하기 위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위드를 형이라고 부르는 것도 처음이었다.

“레벨이 낮아서 그러는데, 장비나 사냥터 같은 것 좀 도와주면 안 돼요? 돈을 지원해 주셔도 괜찮고요.”

“……!”

고양이에게 생선을 내놓으라고 하는 격!

시드는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도 한참이나 알지 못했다.

“요삼아, 우리 인연이 보통의 것이 아니잖아.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 살면서 빵 한 쪽도 나눠 먹었는데.”

“형이 뺏어 먹긴 했어요.”

“아무튼…… 내가 배고플 때 네 빵이 없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거야. 하늘이 노랗게 보이던 날 빵을 나눠 먹으면서 굶주림을 해결했어.”

“정확히 말하자면 빵만 먹은 것도 아니고, 초콜릿도 가져갔잖아요. 초콜릿도 배고파서 먹었어요?”

“…….”

위드는 크게 한숨을 쉬며 사과했다.

“미안하다. 정식으로 용서를 구할게. 따로 내가 챙겨 줄 수 있는 건 없고 영주 자리라도 주면 안 되겠니?”

* * *

아르펜 왕국의 영주!

왕국 공적치를 쌓은 뛰어난 모험가나 상인, 전사들에게만 허용된 자리였다.

시드는 당연하게도 그 자리를 받아들이면서 레쓰 마을의 영주가 되었다.

인구는 832명.

대부분이 사냥꾼으로 구성된 산골 마을이었다.

“으아아아아. 속았다!”

도착해서야 사정을 안 시드였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일했다.

위드가 다른 도움을 주진 않았어도 인터뷰에 살짝 레쓰 마을을 언급한 것이다.

“아르펜 왕국에 멋진 곳이 많지만 휴가를 간다면 레쓰 마을을 권하고 싶습니다. 천혜의 아름다움과 비밀스러운 풍경들이 널린 곳이죠. 모험가들에게는 만족스러울 겁니다.”

레쓰 마을 부근에는 비밀이 밝혀지지 않은 유적지나 던전들이 있었다.

위드가 인터뷰를 하자마자 며칠 뒤에는 고레벨로 구성된 모험가 집단들이 속속 도착했고, 마을의 발전도 시작되었다.

시드는 죽을힘을 다해서 번 돈으로 마을 건물들을 짓고, 영토를 확장했다.

놀랍게도 마을의 영역을 넓힐 때마다 부동산 매매 세금을 아르펜 왕국에 납부해야 했다.

영주 성에 사과나무, 배나무가 있어도 세금 납부를 해야 했으며, 왜인지는 몰라도 석류나무는 세금을 반값만 냈다.

금액이 크진 않지만 자잘한 구석까지 알뜰하게 뜯어 가는 아르펜 왕국!

6개월 정도가 지나자 레쓰 마을은 그래도 인구 1만이 넘는 어엿한 중소 마을로 성장했다.

위드는 무인도에서 무려 8개월을 머물렀다.

현실과 로열 로드를 오가면서 서윤과의 둘만의 달달한 시간들이 이어졌다.

< 조선 스킬 고급 2레벨 >

< 낚시 스킬 고급 5레벨 >

< 요리 스킬 고급 6레벨 >

< 건축 스킬 고급 1레벨 >

< 농사 스킬 중급 3레벨 >

< 대장장이 스킬 고급 7레벨 >

그야말로 섬에서 할 수 있는 노가다란 노가다는 모조리 하면서 보낸 시간!

그동안의 베르사 대륙의 정세는 상당히 잠잠했다.

케이베른 때문에 던전에 머물던 몬스터들이 튀어나와서 세상을 활보했다.

몬스터 토벌이 많이 이루어지면서 치안도 확보되고 대륙 전체가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 마판: 교역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른바 태평성대로 보이는데…….

“사람들의 생각은요?”

― 마판: 대영주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전쟁 준비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죠. 물자들을 비축하는 움직임이 감지되었습니다.

위드는 대륙 통일이 끝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대영주들이나 헤르메스 길드나 그들이 완전히 야심을 접었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슬슬 나가야겠군요.”

― 마판: 위드 님이 복귀하시면 잠잠해질 겁니다. 소식만 들려도 겁을 먹게 되겠죠.

위드는 그동안 사냥은 하지 못했지만 지속적인 노가다로 스킬과 스탯을 쌓아 놓았다.

매일 밤마다 전투 스킬도 연습했는데, 폭우가 쏟아지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바다에서 무섭게 일어나는 태풍들.

평소처럼 검술을 단련하고, 도끼를 휘두르며 연습했다.

레벨은 그대로라도 전체적인 실력만큼은 조금씩이라도 계속 강해져 왔던 것이다.

“대륙으로의 복귀라…….”

위드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싸우던 과거와는 달라졌다. 그럼에도 로열 로드에서 다른 이들과의 경쟁은 즐거웠다.

그때 서윤이 맨발로 모래사장을 걸어와서는 말했다.

“저 임신한 것 같아요.”

“으응?”

“아기 생겼어요.”

결혼을 하고 나서 매일 한 이불을 덮고 잤으니 당연하기도 한 일.

위드는 2세가 서윤의 배 속에서 무럭무럭 자란다는 소식을 들었다.

위드의 입가가 기쁨으로 바들바들 떨렸다.

“마판 님.”

― 마판: 넵!

“로열 로드는 알아서 하세요.”

― 마판: 예?

* * *

라페이는 베르사 대륙을 자유롭게 여행했다.

헤르메스 길드를 키우고, 하벤 제국을 통치하느라 못 가 본 곳도 가 보고, 휴식도 취했다.

“과거가…… 그립진 않네.”

얼마 지나지도 않은 헤르메스 길드 시절이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푸홀 워터파크, 항구 바르나를 거쳐서 북부 대륙을 여행했다.

케이베른과의 전투를 마치고 다시 복구된 모라타에서 머물렀다.

멋진 건축물들과 풍경들,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

모라타의 복구는 북부 대륙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람들의 예상보다도 훨씬 훌륭하게 성공했다.

“이런 도시가 있었군.”

라페이는 길드를 경영하며 적을 짓밟기 위한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분석하고 방법들을 연구해 왔다.

모라타에서는 유저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분위기가 달라. 이래서 헤르메스 길드는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인가.”

라페이는 모라타를 보며 진심으로 패배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위드가 운이 좋다는 생각은 수없이 했다.

능력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운과 인기가 따라 주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일반적인 평가. 하지만 모라타의 분위기만 느껴 보더라도 경직된 헤르메스 길드에 미래가 없었음을 확신했다.

자신은 그럭저럭 괜찮은 전략가였지만 국가를 만드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너무 후련해. 자유로워진 기분이야.”

요리사로 전직을 한 후에 모라타에서 식당을 개업했다.

완전한 정착지로 여기진 않았지만 마음이 움직이는 장소에 원하는 만큼 머무를 작정이었다.

메뉴는 단 하나. 1실버짜리 고기 스튜.

로열 로드의 초창기 시절에 동료들과 사냥을 다니면서 주로 만들었던 방식을 추억을 떠올리며 사용했다.

“요리 스킬이 너무 부족하시네. 너무 쉽게 생각하고 식당 시작한 거 아니세요?”

“시장 분석 제대로 안 하셨어요? 여긴 스튜만 팔아서는 장사가 안 된다고요.”

“달고, 맵고, 짜네. 음식 이렇게 대충 만드시면 벌 받습니다.”

한때 헤르메스 길드를 경영했지만 초보자들에게 거침없이 까이는 라페이.

“이건 너무 어렵네.”

새로운 요리법도 개발하고, 다른 식당에 가서 맛도 보았다.

헤르메스 길드를 지휘했던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을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다들 몰라봤다.

“요리사세요?”

“네. 뭐…….”

“초보면 계란부터 시작하세요. 계란만 잘 요리해도 기초 수준 요리는 할 겁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라페이는 조금씩 웃었다.

빛의 탑, 황소 광장, 모라타 대도서관, 예술 회관.

새로 재건된 판자촌은 매일 축제가 벌어지고, 뒷골목에서는 밤마다 댄스파티가 열렸다.

매주 금요일이면 모라타의 모든 상점가에서 조명을 환히 밝히는데, 거리마다 달빛 축제가 벌어지는 날이었다.

거리에는 조각사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 놓은 수많은 유리 작품들이 빛을 머금었다.

그때의 아름다움은 다시 관광객들과 주민들을 끌어들여서 모라타를 베르사 대륙 최대의 도시로 만들었다.

“모라타. 이 도시 하나가 아르펜 제국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곳이었어.”

라페이가 혼자 다리 위에 서 있을 때였다.

익숙한 그리고 영원히 잊지 못할 목소리가 들렸다.

“길드를 떠나서 걱정했는데. 그래도 잘 지내고 있었네요. 모라타에서 볼 줄은 몰랐어요.”

라페이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서두르다가는 다시 그녀가 떠나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다인.

로열 로드가 가장 즐거웠던 시절, 행복을 가르쳐 주었던 여자가 바로 옆에 서 있었다.

“날 찾아온 거야?”

“아니에요. 그저 모라타에 여행을 와서 보이기에 인사한 거예요.”

“그렇구나.”

라페이는 마음 한구석이 빈 것 같았지만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이 반가웠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사냥이나 길드 따위를 만든다고 혼자 라비아스에 내버려 두고 떠나지 않았을 텐데.’

오직 후회로 복잡한 마음이었다.

라페이가 복잡 미묘한 눈빛을 보내고 있을 때, 다인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어 주었다.

“축제 구경 같이할래요?”

“같이……해 줄 거야?”

“싫지 않다면요.”

“당장 가자.”

* * *

그라디안과 네스트 지역의 총독!

용기사 뮬은 로열 로드에서도 최강의 유저 중의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었고, 지금도 강해지고 있었다.

― 크우쿼어어억!

공간의 균열에서 떨어진 거인들의 습격.

“용기사단. 공격해라!”

하늘을 나는 그리폰 부대가 도시를 공격하는 거인들에게 창을 던졌다.

모라타 전투 이후에 타격대에 속해 있던 최정예 유저들이 많이 용기사단으로 합류했다.

“2부대 선회해서 옆을. 4부대는 뒤를 노린다.”

하늘을 활용하는 용기사단의 공격 방식은 현란해서 방송에서도 시청률이 높았다.

― 죽이네. 저거.

― 용기사단. 최고의 명예다.

―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일부 이탈해서 용기사 단원이 됨.

― 거인들 작살나는 거 보소. 무섭다.

뮬은 용기사단을 이끌고 훌륭하게 그라디안과 네스트 지역을 다스렸다.

대륙의 남서부를 지배하는 총독으로서 욕심도 크게 없었다.

아르펜 제국의 통치를 받으면서 최저 세율을 고수하며 유저들이 편히 정착할 수 있도록 했다.

“욕심은 나지만…… 인구를 늘리는 게 우선이겠지.”

하벤, 툴렌, 브리튼.

이 지역들과 경쟁하며 내정도 부지런히 다스리고 있을 때였다.

뮬은 새로 길들인 그리폰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난…… 정말 동물을 좋아하는구나.’

어릴 때부터 동물들이 좋았다.

특히 새들이 자유롭게 창공을 누비는 것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조인족으로 살아가는 것이 부럽다.’

뮬이 로열 로드를 시작했을 때는 조인족을 선택하지 못했다.

만약 조인족을 할 수만 있었다면 두 번 고민하지 않고 그렇게 살아갔으리라.

그것이 너무 아쉽던 순간…….

― 마판: 알을 하나 구했는데요.

“알이요?”

뮬은 마판과도 친하게 지냈다.

대륙에서 잘나가는 유저들은 모두 인맥에 넣어 두고 관리하는 마판!

― 마판: 니플하임 제국의 유물을 찾아냈습니다. 하얀 덩어리인데. 사실 이게 알이라고 하네요.

“유물이라면 오래된 거 아닙니까?”

― 마판: 무려 수백 년은 묵은 알이죠.

계란도 유통기한이 지나면 상하는데, 수백 년이 된 알이라니.

― 마판: 사실 이 알은 은링 님이 확인해 주신 겁니다.

“나무의 모험가 은링 님 말씀이시죠?”

은링은 대지의 모험가 파티의 일원으로 최근에는 엘프의 모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물론 뮬은 로열 로드의 초창기부터 은링이나, 벤, 엘릭스의 이름을 자주 들었다.

그들이 로열 로드의 새로운 정보들이나 퀘스트를 찾아내면 많은 유저들의 이정표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 마판: 네. 그분께서 퀘스트를 하다가 알이 니플하임 제국에서 보물로 전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내게 되었죠. 그 뒤로는 세계수의 품에서 6개월간 품어서 온기를 불어넣었다네요.

“도대체 어떤 알이기에 세계수까지 연결이 되었죠?”

― 마판: 그린 드래곤의 알입니다.

“그린…… 드래곤이요?”

케이베른, 랜도니.

사납기 그지없고 대륙을 파괴하려는 악룡들이 아니었다.

그린 드래곤들은 대체로 숲과 나무, 생명을 사랑하며 온순하고 지혜롭다고 알려져 있다.

― 마판: 과거 케이베른 사태 때부터 이어진 퀘스트를 따르다가 얻은 알이라고 하십니다. 알을 찾아내니 악마들이 나타나서 전투가 펼쳐졌고요. 간신히 몰아내었죠.

“대단……하시군요. 케이베른의 사태라니.”

드래곤의 알 때문에 벌어졌던 그 엄청난 일들은 로열 로드의 유저들의 뇌리에 여전히 각인되어 있었다.

― 마판: 이번에는 진짜 알입니다. 그리고 잘 돌보면 부화도 됩니다.

“드래곤이 태어난단 말입니까?”

― 마판: 그렇죠. 하지만 드래곤의 성장은 무척 느리다고 하니 마법을 쓸 수준이 되려면 몇 년은 키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야 하겠죠.”

그리폰도 알에서 성체로 만들려면 1년은 걸렸다.

“드래곤과 관련된 퀘스트가 생길 수도 있겠네요.”

― 마판: 맞습니다. 은링 님도 그럴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성장을 빠르게 한다거나 건강한 드래곤을 만든다거나요.

이른바 그린 드래곤 키우기.

― 마판: 위드 님이 요즘 접속을 안 하셔서 그러는데…… 뮬 님이 이 알을 맡아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제가 그걸 어떻게…….”

― 마판: 뮬 님은 용기사잖습니까. 드래곤과 직업적으로 연관도 있고, 새들도 사랑하시니 무사히 돌보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뮬은 드래곤을 키우고 싶었다.

대륙의 어느 유저를 보더라도 자신만큼의 적임자는 없을 것 같았다.

그리폰의 알을 부화시키고, 새끼 때부터 돌보기를 좋아하는 자신이라면 자격은 있었다.

“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잘 돌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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