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58권 : 6. 그리고…… (417/520)

6. 그리고……

철혈의 워리어 바드레이!

그는 하벤 지역을 떠나서 대륙의 오지들을 돌아다녔다.

< 가슴에 큰 흉터가 새겨졌습니다.

맷집이 1% 단단해집니다.

인내심이 5 올랐습니다. >

몬스터들.

대형, 중형 가리지 않고 덤벼들고 싸웠다.

사냥터에 대한 분석도 없이 막무가내로 싸우면서 육체를 단련시켰다.

뼈가 부러지고, 과로를 하게 되면 그만큼 육체가 강인해졌다.

‘체계적으로 싸우며 레벨을 올리던 흑기사 시절과는 달라. 하지만 이것도 강함이다.’

성장 방식을 바꾸었다.

끊임없는 전투로 육체를 강화하는 철혈의 워리어!

온몸은 영광과 같은 상처들이 가로질렀고, 바바리안들로부터 특수 능력을 부여받는 문신도 새겼다.

과거처럼 핸섬한 무신 바드레이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마리의 맹수 같은 느낌으로 척박한 땅을 돌아다녔다.

‘위드가 요즘 보이지 않고 있지. 하지만 그놈은 언제라도 더 강해져서 나타날 수 있다.’

경쟁자 위드가 머릿속에 항상 어른거렸다.

바드레이는 정글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내와 마주쳤다.

“…….”

떡 벌어진 어깨.

험상궂은 얼굴, 사람이 아닌 괴물처럼 느껴졌을 정도의 박력을 타고난 분위기.

30미터.

20미터.

10미터.

거리가 가까워지더라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긴장감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레벨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상대방이 강자라는 느낌은 충분히 전달되고 있었다.

“…….”

“…….”

나무들이 우거진 정글은 막혀 있는 공간이 아니다. 얼마든지 옆으로 비켜 줄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사내가 먼저 목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비켜.”

걸걸하면서도 거친 느낌이 물씬 풍긴다.

“싫다.”

바드레이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로열 로드에서 무신이라 불렸고, 끊임없이 강해지며 살아온 자신이다.

어찌 누군가에게 길을 비켜 줄 수 있단 말인가.

사내, 검삼치가 씩 웃었다.

“그럼 싸우자.”

* * *

리버스는 경매 사이트에서 구입한 광휘의 갑옷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레벨 제한 150!

방어력은 250대의 장비들과 비슷한 수준이고, 무게를 낮추는 옵션이 있어서 착용감이 좋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밤에는 은은한 다섯 가지 빛깔을 낸다는 점이었다.

“흘흘. 역시 좀 튀는 게 재밌지.”

리버스는 막대한 재산과 유니콘 그룹을 위드에게 물려주었지만, 노후 자금으로 5조는 따로 챙겨 두었다.

현질도 넉넉하게 지르는 데다, 생활에 불편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인공지능까지 완벽히 물려주어서 대화를 나눌 상대도 사라졌지만, 대신에 동료들이 생겼다.

“영감, 어디서 뭐 하다 늦었수?”

“장비 좀 맞추느라 늦었지.”

“좋아 보이구려.”

“돈 좀 썼다오.”

리버스의 주변에는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로열 로드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이야기도 옛말이 되었다.

유니콘 그룹의 후원으로 전국의 양로원과 노인정마다 설치된 캡슐!

나이 든 이들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는 느리지만, 정작 빠지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고스톱을 치는 대신에 로열 로드를 실컷 탐험하며 자식이나, 손자들과도 친근하게 만날 수 있었다.

“리버스 영감, 이 검은 어때 보이오?”

“안 좋아. 비싸게 주고 샀소?”

“50만 원 줬지.”

“완전 바가지를 썼구만.”

리버스는 노인들과 함께 소소한 시간을 보냈다.

나이 든 그에게 남은 인생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내며 서서히 죽음을 준비하는 것도 인생의 마침표를 찍기에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 * *

아르펜 제국이 대륙을 통일하고 베르사 대륙에 는 기나긴 평화가 찾아왔다.

파괴된 도시들이 재건되고, 교역이 다시 활성화되었으며, 모험가들은 새로운 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벤트 성의 영주인 오베론에게 사람들이 찾아왔다.

칼리스, 로암, 군트, 샤우드, 미헬. 중앙 대륙의 대영주들이었다.

“제국의 횡포를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습니다!”

“저도 뜻이 같습니다. 매번 온갖 명목을 들여서 세금을 올리고,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르펜 제국은 변질되었어요. 과거의 우리가 알던 위드 님은 더 이상 없습니다.”

그들은 황제인 위드를 적극적으로 비난했다.

아르펜 제국의 내정을 서윤이 관리하지 않은 지도 오래였다.

위드도 로열 로드에 자주 접속하지 않으면서 영주들에게 매기는 세금만 꾸역꾸역 올렸다.

과거의 헤르메스 길드와 명문 길드들 수준까지 올라간 건 아니었지만, 더 이상 낮은 세율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감정이 쌓인 영주들끼리의 분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세력 다툼이 벌어지더라도 위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았다.

몬스터들이 난동을 부려도, 대형 괴수들이 도시를 습격해도 제국은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하늘에서 눈이 5미터씩 내리는 기상이변이 발생해도 묵묵부답!

대영주들은 그들끼리의 불만을 모아서 유저들의 신망을 받는 오베론을 찾아왔다.

오베론은 영주들의 이야기를 듣고도 흔들림이 없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저는 위드 님을 믿습니다. 어긋난 것들이 조금 있긴 하지만 위드 님이 돌아오시면 금방 원래대로 돌아가리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영주들끼리의 비밀 만남은 끝이 났다.

그날부터 몇 개월이 더 지나도 위드는 제국의 통치에 관여하지 않았다.

마침내 위드의 독재라는 말이 나왔고, 악덕 황제라는 이야기들까지도 유저들 사이에 퍼지고 있었다.

“진짜 이래도 될까?”

“모르겠어. 하지만 아르펜 제국이 흔들리는 지금이 기회 아니야?”

“일망타진하려는 속셈은…… 위드가 나타나기만 하면 우리 반란은 금방 끝날 것 같은데.”

“음. 위드를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일대일은 무리지.”

“일 대 다수도 자신은 없어.”

“그럼 우린 뭘 하자는 거야?”

대영주들은 불안에 떨면서도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고 생각했다.

하늘 높던 위드의 인기가 하락하고, 로열 로드에도 접속했다는 말이 들리지 않는 지금이 세력을 확대할 기회였다.

“근데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엄청난 모험이라도 비밀리에 진행하는 중 아닐까?”

“퀘스트가 끝나면 민심을 확 다시 잡아 버릴 텐데. 위드한테 열광하던 유저들은 그대로잖아.”

“무슨 짓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리고 퀘스트라고 하기엔 소식이 안 들린 지도 너무 오래되었고.”

“헤르메스 길드는 어때?”

“걔들은 잠잠해. 끝없이 사냥만 하고 있으니까.”

대영주들은 하벤 지역에 웅크리고 있는 헤르메스 길드도 적잖게 신경이 쓰였다.

중앙 대륙과 북부 대륙이 융성해졌지만, 헤르메스 길드도 내실을 다지며 쉬지 않고 강해지고 있었다.

“도저히 못 참겠어. 길드 내부에도 불만이 커서 기다릴 수가 없겠어.”

“우리 길드에서도 그래. 시작하세.”

대영주들은 다시 오베론에게 달려가서 설득을 시도했다.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는 잘 알겠습니다.”

오베론은 지난 만남 이후로 유저들로부터 민심의 상황을 계속 듣고 있었다.

로열 로드에는 수많은 재난이 발생하고, 도적 떼의 습격, 몬스터들의 준동이 일어난다.

아르펜 제국의 통치가 어느 순간부터 중단되어 벤트 성의 유저들도 불평이 많았다.

“조금만 참지요. 위드 님의 확실한 대답을 들어야 되겠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리잔 말입니까!”

“다 같이 병력을 모아 대지의 궁전으로 갑시다.”

오베론은 이러면 반란이 된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자신이 대표인 이상 마지막 시점에 멈출 자신은 있었다.

‘그래. 벤트 성의 영주 자리를 내놓더라도…… 유저들의 불만을 전달하자.’

그는 북부의 벤트 성을 지키면서 아르펜 제국의 성장과 함께했다.

제국이 오랫동안 유지되기를 바라는 충신, 오베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을 모으세요. 다 함께 대지의 궁전으로 가지요.”

“드디어 결단을 내리셨군요. 좋습니다.”

“어디 해 봅시다. 왕이 되지 못할 바에는 여기서 죽을 겁니다.”

대영주들은 자신의 휘하에 있는 병력들을 집결시켰다.

처음에는 몬스터 토벌이라도 대대적으로 하는 줄 알았지만, 병력을 집결시켜서 대지의 궁전으로 달려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경악.

삽시간에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 아르펜 제국의 반란이다!

― 영주들이 칼을 뽑음.

― 미쳤다. 대지의 궁전에 공격을 하다니…… 제정신인가?

― 헤르메스 길드도 박살 남. 드래곤도 토막 남. 그런데 영주들이라고 무사할까.

― 예언합니다. 다음 주 정도에 위드 앞에서 무릎 꿇고 한 번만 봐달라고 하고 있을 듯.

유저들 사이에서 실망감이 퍼졌다고는 해도, 위드에 대한 애정이 짙게 남아 있었다.

대영주들은 반란을 일으키자마자 수없이 많은 메시지들을 받았다.

‘멈춰라.’

‘죽고 싶냐.’

‘후회할 거다.’

‘지금이라도 사과해라.’

대영주들은 그런 연락을 들으면서도 눈을 질끈 감았다. 세력이 이미 커져서 어쩔 수 없는 경우였다.

지배하는 도시들이 성장하긴 하지만, 길드원들이 많아지다 보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그들에게 남은 선택권이란 주변의 다른 영주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먹든가, 대지의 궁전으로 진군하는 것밖엔 남아 있지 않았다.

인근 지역으로 점령전을 펼치더라도 안정시키기는 어렵다.

위드에게 하나씩 토벌될 바에야 그 심장부를 직접 노리겠다는 계산.

― 로암: 우리 운명을 걸고 갑시다.

― 칼리스: 당연히 그래야죠.

― 미헬: 모 아니면 도. 일은 이미 벌어졌습니다.

― 샤우드: 끝장을 봅시다. 우리가 단단히 뭉치면 뭐든 해낼 수 있습니다.

― 군트: 사자성은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뒤로 자신들의 안전망을 갖춰 놓는 데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상인 마판에게 꾸준히 연락을 취해서 어쩔 도리가 없다는 점을 충실히 설명했다.

― 로암: 아르펜 제국이 곪을 대로 곪았습니다. 다른 영주들의 불만도 거세고요. 한 번 크게 숙청이 필요할 겁니다.

― 칼리스: 저는 항상 위드 님의 편입니다. 그 점을 꼭 전달해 주십시오.

― 미헬: 이번 전쟁에 필요한 물자는 다 마판 상단을 통해 구입하겠습니다.

― 샤우드: 제가 황제 자리에 욕심이 있다니요! 엄청난 오해입니다. 그런 오해를 설마 위드 님도 믿진 않으시겠죠?

― 군트: 그냥 즐거운 이벤트라고 여겨 주시면 좋겠습니다. 요즘에 유저들이 빠져들 일이 좀 뜸했잖아요. 앞으로도 저는 아르펜 제국에 영원한 충성을 바칠 겁니다.

병력을 모아서 진군하면서도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 힘썼다.

위드에게 저항하긴 하지만, 자신들이 이길 수 있을지는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적들이 대지의 궁전으로 쳐들어온다. 우리도 싸워야 되는 거 아님?

― 풀죽신교여, 궐기하라.

― 풀죽, 풀죽, 풀죽!

북부 유저들을 바탕으로 중앙 대륙의 유저들이 술렁였다.

위드의 느슨한 통치에 제법 실망하기도 했지만, 헤르메스 길드나 과거 명문 길드들의 폭정을 겪은 이들이었다.

정작 바쁘게 움직여야 할 풀죽신교에서는 아무런 소집령도 내리지 않았다.

대영주들의 군대가 북부 대륙의 경계를 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베론의 병력이 내려와서 대영주들의 군대와 합류할 때에도 잠잠했다.

구경꾼들만 끝없이 몰려들어 멀리서 반란군을 지켜봤다.

― 뭐야, 왜 안 싸우지?

― 위드가 깃발만 내세워도 사람들이 끝도 없이 모일 텐데…….

― 풀죽신교 해체했나요?

― 무슨 일 있음? 이상하네?

아르펜 제국의 정규군.

꾸준히 세력 확대와 전투력 개선을 해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제국군까지도 움직임이 없었다.

그들마저도 북부의 변경 지대를 돌며 몬스터 토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지. 이건…….”

“역시 더 참았어야 했는데. 함정에 걸려든 거 아닙니까?”

대영주들은 불안에 떨었다.

병력을 소집하고 움직였을 때만 해도 대지의 궁전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자 길드원들이 상당수 이탈했었다.

어떻게든 그들을 추슬러 북부로 오는데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으니 더 이상했다.

“여기서 우릴 일망타진하려는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잠잠해도 너무 잠잠한데.”

오베론이 이끄는 반란군이 대지의 궁전으로 전투 한 번 치르지 않고 들어갔다. 그곳에서도 기다리는 병력은 일체 없었다.

“으음…… 일단 들어는 가 봅시다.”

“그래요, 가지요.”

오베론과 대영주들은 위드의 집무실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쪽지 한 장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 딸 태어났습니다.

무척 다행스럽게도 아내 닮음.

아르펜 제국은 오베론 님에게 맡김. 수고.

서윤을 닮은 딸 탄생!

아르펜 제국은 뒷전일 수밖에 없는 당연한 이유였다.

* * *

강진철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로열 로드에서는 돈을 벌 만큼 벌었어. 그러니 사회에서도 벌어 봐야지.”

마판 상단의 주인!

그는 위드의 최측근으로서 만인이 부러워하는 사내였다.

무역 회사의 면접에 가니 부장이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이력서를 펼쳤다.

“경력이 안 적혀 있네?”

“대학을 막 졸업했는데요.”

“인턴이라거나 뭐 그런 거 있을 거 아닙니까?”

“없는데요.”

“자기 소개서에는 우리 회사에서 쓰는 회계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룬다고 되어 있군요.”

“넵. 대학에서 배워서 자신 있습니다.”

“근데 왜 자격증이 없죠?”

“필수는 아니라고 들어서…… 자격증은 따지 않았는데요.”

“자격증 정도는 있어야 본인을 어필할 거 아닙니까. 자격증을 따는 것도 노력이에요, 노력. 열정 몰라요?”

강진철은 면접을 진행하며 탈락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취업자는 절대적인 약자!

좋은 회사는 사람을 가려 가며 뽑기 때문에 자격증에 시간과 비용을 들이도록 강요한다.

어쨌든 사회에는 사회의 법칙이 있는 것이다.

“취업하기 참 힘드네. 역시 청년들이 어지간히 노력하는 게 아니구나.”

“이봐요, 강진철 씨. 면접 자리에서 무슨 말입니까.”

“후…… 기왕이면 대주주 강진철이라고 불러 주세요.”

“뭐라고요?”

“제가 이 회사 지분 76%를 보유하고 있거든요.”

강진철은 로열 로드에서 번 엄청난 돈으로 무역 회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취업을 해서 말단 사원부터 단계를 올라가고 싶었지만, 역시 첫 단추부터 쉬운 게 아닌 것이다.

* * *

“어부바.”

“어부바아?”

이현은 딸을 키우면서 인생의 행복을 다시 느꼈다.

‘여동생과는 다른 느낌인데.’

여동생을 업어서 키울 때에는 강아지를 돌보는 것과 비슷했다.

먹이고, 재우고, 싼 거 치우고.

자신과 서윤의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딸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 되었다.

눈만 마주치고 있어도 끊임없는 감정들이 전달되었던 것이다.

“지능아.”

― 네, 주인님.

인공지능은 어느 곳에서라도 부를 수 있었다.

“주변 경계는 잘하고 있지?”

― 물론입니다.

“내 딸한테 위협을 가하려는 인간은 확실히 처리해.”

―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할까요.

“죽여야지.”

―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 수위를 결정할 때,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음…… 맞아.”

이현은 서윤과 딸을 지키는 일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안 죽여도 된다면 굳이 죽이지는 마.”

― 네. 참고하겠습니다.

“가둬 놓고 평생 고문을 해야지.”

― …….

인공지능은 이현의 반응을 보며 새로운 주인에 대해 판단했다.

‘유병준 박사님과는 또 다른 별종이구나.’

인공지능에게는 생존을 비롯한 욕구들이 없었다. 정복, 파괴, 발전. 어떤 것도 관심이 없다.

유일한 목적이라면 그저 주인과 함께 재밌게 지내는 것뿐.

‘그런대로 대충 지내면 되겠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없지도 않고.’

인공지능에게도 이현의 딸은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음 세대 주인이 될 분인가.’

관찰하고, 판단한다. 그리고 아부를 했다.

아이의 사소한 움직임이나, 흥미를 보이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택배요!”

“택배 왔습니다.”

인공지능의 주문에 의해 전 세계의 첨단 공장에서 만들어 낸 장난감들이 매일 집으로 도착했다.

* * *

정효린의 작업실에는 악기들이 놓여 있었다.

새로운 노래를 작곡하고, 연습하는 혼자만의 공간.

“정말 이상한 기분이네.”

새벽에 연주하는 피아노.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건반을 두드리며 들었던 음들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느낌이 달라졌다.

“따뜻함일까.”

가벼운 연주에도 짙은 감정이 담겼다.

화령이라는 닉네임으로 베르사 대륙에서 모험을 하고, 사람들을 사귀던 기억들이 떠오르면 아련하고 애틋한 느낌도 생겼다.

악기의 음들이 다채로운 감정을 전하고 목소리를 내어 부르면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의 좋은 곡이 만들어졌다.

“들려주고 싶은 노래…….”

정효린은 신곡의 이름을 결정했다.

세상의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를 지켜보고만 있을 이에게 들려줄 노래.

슬프고, 안타까운 감정이 아니라 밝고 따스했다.

“하루와 하루가 엮여서 삶이 되고, 그 많은 시간들이 지난 후의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밤새도록 만든 그녀의 노래.

별을 사랑한 나.

정효린은 신곡을 발표하면서도 방송에서 홍보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노래의 힘만으로 전 세계 음악 사이트에서 1위를 점령할 수 있었다.

― 잔잔하지만 호소력 미쳤다.

― 이것이 노래다.

― 하루 종일 들었네요. 계속 듣고 싶어요.

― 옛 생각이 났습니다. 근데 신기하게도 행복해지고,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 정효린. 다시 평가해야 될 가수.

― 세계적인 가수를 뭘 또 재평가해요.

― 작곡가로서도 훌륭하다고요.

음악가들의 호평도 받았지만 미국에서 그래미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되었다.

그날 정효린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수상 소감을 말했다.

“노래를 부르면서 마음을 담아내는 법을 이제 배운 것 같아요. 무대 위의 요정이란 과분한 별명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 * *

이현은 서윤의 아버지인 정득수에 대한 인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서윤과 헤어지라고 돈을 주며 쫓아내려고 했던 안 좋은 기억이 있긴 했지만, 현재는 같은 동네에서 살며 자주 집에 찾아왔다.

“울루루! 할아버지야. 할아버지 해 봐.”

“하부지?”

손녀인 다예를 예뻐하는 모습이 아빠로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잠시 드릴 말이 있습니다.”

“기다리게. 손녀랑 좀 더 놀아 주고…….”

“많이 놀면 닳습니다. 그만 놀고 잠깐 오세요.”

“…….”

정득수는 사위의 눈치를 보며 슬슬 따라왔다.

과거 호성 그룹 회장이었던 시절에 비하면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만, 서윤의 곁에서 손녀딸과 놀아 줄 수 있는 지금이 훨씬 더 행복했다.

“아버님.”

“음. 말하게.”

이현은 넓은 정원이 보이는 거실 의자에 정득수와 함께 앉았다.

서윤의 임신을 알게 된 후 건설한 대저택!

가족을 꾸리고 살 집에 대해서만큼은 돈을 아끼고 싶지 않았고, 또 아껴야 할 입장도 아니었다.

대저택에는 유니콘 건설을 통해 어마어마한 돈과 기술력을 쏟아부었고, 주변 주택들도 사들였다.

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비롯한 최첨단 방어진지를 꾸려 놓았고, 유사시에는 로봇들이 출동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아버님이 예전에 경영하시던 호성 그룹 말입니다.”

“호성 그룹이 왜?”

정득수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어 왔다.

이현은 인공지능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이야기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났지만 전혀 알 수가 없었던 속사정들.

― 호성 그룹은 백화 그룹에 의해 인수되었습니다.

“뉴스에서 보긴 했는데, 경영 상태가 나빴던 건 아니고?”

― 호성 그룹은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하면서 신제품과 관련하여 나름 성과가 있었습니다. 기술력도 쓸 만한 수준이었고요. 백화 그룹이 채권단을 회유하지 않았더라면 위기를 넘기고 성공했으리라 판단됩니다.

이현은 인공지능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호성 그룹에 대해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직원들에 대한 대우도 그럭저럭 괜찮았고, 백화 그룹에 인수된 회사들도 명목상의 구조 조정을 거쳐서 다시 잘나가고 있었다.

‘강제로 빼앗긴 건가…….’

이현은 그 사실을 알고 나자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아버님, 호성 그룹이 백화 그룹의 뒷공작에 망한 건 알고 계십니까.”

“알지. 회사 경영이 몇 년인데, 그 정도 눈치도 없겠나.”

“억울하지 않으십니까?”

“괴롭네. 억울하고. 그래도 이미 벌어진 일은 받아들여야지 어쩌겠나. 손녀딸을 보며 사는 지금도 즐겁다네.”

“그렇게 어깨에 힘이 다 빠져서요? 가끔씩 허탈하게 먼 곳을 쳐다보시면서요?”

“내가 나이를 먹다 보니…….”

“다예는 할아버지의 당당한 모습을 원할 겁니다.”

이현은 미국에 본사가 있는 유니콘 은행의 통장을 내밀었다.

“이게 뭔가?”

“투자금입니다. 이걸로 호성 그룹을 찾아오도록 하세요. 제가 직접 할 수도 있겠지만 복수는 아버님이 하셔야지요.”

“허. 마음은 알겠지만 호성 그룹이 무슨 구멍가게도 아니고…….”

정득수는 어이가 없는 와중에도 통장을 열어 보았다.

도대체 얼마를 넣어 놓고 저런 말을 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 예금 잔액 100,000,000,000,000

잔액이 너무 많아서 쉽게 구분도 안 갔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무려 100조였다.

“이 돈이…… 진짠가?”

“네. 그걸로 인수 시도해 보시고 부족하면 더 드릴게요.”

“…….”

* * *

정득수는 주식시장에서 호성 전자의 주식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호성 화학, 호성 디스플레이, 호성 건설의 주식도 꾸준히 사들였다.

― 정득수 회장, 호성 화학 지분 7.2% 취득!

― 주식 매입 목적은 경영권 인수임을 밝혀.

― 호성 그룹, 옛 주인에게 돌아가나.

언론이 대서특필을 하고, 백화 그룹에서도 적극적인 여론전으로 대응했다.

― 실패한 경영자의 복귀, 바람직하지 않아.

― 대대적 지원으로 무너진 호성 전자를 살린 백화 그룹.

― 호성 전자의 매각은 있을 수 없는 일.

한국의 재계는 정득수 회장의 복귀 선언으로 벌집을 건드린 것처럼 시끄러워졌다.

“정득수 회장, 그자는 어디서 돈이 나온 거야?”

“모르겠습니다. 해외 사모펀드의 투자를 받은 것 같습니다.”

“철저히 알아봐. 그리고 대응 전략을 세워.”

백화 그룹 회장실에서는 호성 그룹의 계열사들을 내놓을 생각이 없었다.

꾸준히 현금을 창출하는 알짜배기 회사들이기도 했지만 다시 뺏긴다는 것은 그룹의 자존심과도 관계된 일.

“정득수 회장이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래? 일단 무슨 말을 하는지 만나는 보도록 하지.”

다음 날, 정득수 회장이 옛 호성 그룹의 임원들을 데리고 회장실로 찾아왔다.

백화 그룹의 송 회장이 단단히 윽박질렀다.

“정 회장, 뒤늦게 이런 짓을 벌이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 백화 그룹을 상대로 진짜 해볼 생각인가? 포기해. 이번 싸움에서 지면 여생이나마 한국에서 편안히 못 보낼 거야.”

백화 그룹의 사장단이나 임원들도 당당한 표정과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재계를 선도하는 기업다운 위용.

정득수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유니콘 그룹, 다른 재벌 기업과는 차원이 다른 회사들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송 회장님.”

“말하시게.”

“저한테 용서를 구하십시오. 가져갔던 계열사들은 전부 돌려주시고요.”

“뭐라고?”

“우리 사위가 나서기 전에 항복하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이번 분기 매출은 전 분기와 비교해서 6.4% 증가했습니다. 광학 장비의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고…….”

최지훈은 정기 사업 보고를 들으며 무료함을 감추지 못했다.

‘과거가 좋았지.’

그룹의 후계자가 되고 나서 본격적인 경영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지만 위드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사냥과 퀘스트를 할 때가 즐거웠다.

낚시꾼이던 자신을, 이것저것 좋은 생선을 많이 먹어 생명력과 체력만 높던 그를 알뜰하게 부려 먹었다.

몬스터를 유인하기도 좋고, 높은 인내심 덕에 맞으면서 오래 버티기에는 낚시꾼이 적합하단 걸 그때야 알았다.

‘후계자라……. 모두가 부러워하지만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삶. 편안하지만 행복하진 않은…….’

최지훈에게 로열 로드는 꿈이고, 천국이었다.

손에 쥐었던 천국을 책임감 때문에 결국은 놓아 버려야…….

“다음은 캡슐 제조 사업입니다. 유니콘의 추가 주문으로 작년 대비 매출 성장률이 380%입니다.”

“호.”

“그렇게까지…….”

중역들만 자리한 회의실이 술렁였다.

유니콘 그룹에서 로열 로드에 접속할 수 있는 고급형 캡슐 제작을 외주로 주었다.

다른 재계의 기업들과는 초격차를 내는 고고하기 짝이 없는 유니콘 그룹이기 때문에, 주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뉴스거리가 되었다.

수익을 떠나서 유니콘 그룹과의 관계를 위해 어떤 기업이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사업.

재계의 다른 그룹들이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르는데, 사업 규모가 날로 확대되고 있었다.

“유니콘 모터스에서 이번에 출시하는 자동차 전장 부분의 제작이 가능한지 문의해 왔습니다. 생산 규모는 약 700만 대랍니다. 향후 20년간 수익 보장 방식이라는데요.”

“유니콘 화학에서 여수 지역에 신규 공장을 건설할 예정인데, 우리 측에 지분을 배정했습니다. 참여 의사를 물어 왔습니다.”

“유니콘 로봇 제어에서 산업용 로봇을 출하해 준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예약 대기만 7천만 대나 몰려 있는데, 우리 쪽에 먼저 기회를 준답니다.”

“유니콘 조선에서…….”

“유니콘 금융은…….”

“유니콘 건설 부분이…….”

“유니콘 생명공학에서…….”

“유니콘 우주항공의…….”

“유니콘 호텔 측에서…….”

그룹의 정기 보고를 완전히 장악해 버린 유니콘 그룹의 홍수!

다른 재계 기업들이 시샘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유니콘 그룹으로부터 일감이 쏟아지고 있었다.

경쟁사들은 유니콘의 하청 업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그룹의 매출과 순이익이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까톡!

최지훈의 휴대폰에 문자가 왔다.

― 오늘 닭볶음탕 했으니 일찍 놀러 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마침내 여자 친구가 되어 준 이혜연이었다.

까톡!

잠시 후에 또다시 오는 문자!

― 항상 지켜보고 있다. 동생한테 잘해라.

이번엔 이현의 문자였다.

* * *

흑사자 길드는 툴렌을 거점으로 끊임없이 세력을 확대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대륙의 위기를 막아 낼 것이다.”

악마들의 왕 클레타.

위드가 케이베른을 퇴치하긴 했지만 언젠가 대륙 전역은 다시 파멸의 위기에 놓일지도 모른다.

그 명분을 바탕으로 길드들은 세력 확대에 열을 올렸다.

― 반홀 마을을 사겠습니다. 내일까지 결정해 주십시오.

위드가 은둔하고 나서부터 아르펜 제국의 지배력은 약화되어 있었다.

대영주들은 언제라도 위드가 돌아올지 모른다고 두려워했지만, 오베론이 황제의 자리를 계승하면서 마음을 놓았다.

“오베론은 단호하지 못해. 무엇보다 무섭지가 않지.”

“유저들도 오베론을 따르지 않을걸. 그는 좋은 사람이지만 바꿔서 말하면 그게 한계니까. 위드 같은 카리스마는 없다.”

대영주들은 오베론을 얼굴 마담으로 내세워 놓고 마음껏 세력을 키웠다.

주변 마을들을 먹어 치우고 강자들을 길드로 받아들였다.

군웅할거의 시대!

세력들이 날뛰는 전쟁의 열기가 불어오고 있었다.

유저들의 생각도 과거와는 달라졌다.

전쟁이 멈추고 평화의 시간이 너무 오래 흘렀다.

휴양지에서 느긋하게 즐기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생활에도 슬슬 지겨움을 느끼고 있던 차.

― 대륙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야 합니다.

오베론이 이끄는 아르펜 제국은 영주들에게 자제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드디어…… 전쟁의 시대가 다시 오는가?”

하벤 지역에 웅크리고 있던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라페이가 떠나고, 드래곤과의 전투를 치르며 그들의 전력도 재편되었다.

일시적으로 약화되었지만 길드원들을 대대적으로 받아들였다.

던전을 부지런히 공략하고, 보스 몬스터들을 격파하면서 전력을 상승시켜 온 바!

헤르메스 길드야말로 최고의 전투 길드로서 활동을 늘려 갔다.

― 로암 길드가 전격적으로 브리튼 지역의 무력 합병을 선언했습니다.

― 흑사자 길드의 병력이 성문을 나서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복을 위한 출정이란 뜻을 명백히 밝혔습니다.

― 클라우드 길드에서는 뜻을 함께하는 영주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군사적인 보호와 재정적인 지원의 뜻을 밝혔습니다.

아르펜 제국은 여전히 존재하긴 하지만 영주들을 따르게 하는 힘을 잃었다. 베르사 대륙에 거친 시대가 찾아오고 있었다.

* * *

위드는 로열 로드에 접속했다.

“흠. 슬슬 우리가 날뛰어야 할 시간이다. 그렇지?”

― 맞다, 주인.

― 나도 피가 그립다.

데스 나이트 반 호크!

뱀파이어로드 토리도!

위드는 서윤이 임신했을 때부터 무인도에서 돌아와서 틈틈이 사냥을 해 왔다.

“심심한데 사냥이나 할까?”

― 알겠다, 주인.

― 어디든 가겠다.

오랜 시간 사냥 후, 그다음 접속.

“즐거운 사냥이다.”

― 모든 자들을 죽음의 병사로!

― 피가 생명이다.

그다음 날에도.

“오늘은 사냥하기 딱 좋은 날씨군.”

― 폭풍이 찾아왔다.

― 조금…… 쉬어도 괜찮을 것 같다.

얼마 전에도.

“미친 듯이 사냥하자.”

― 미칠 것 같다.

― 이젠 휴식이 필요하다.

현실에서 유니콘 그룹을 관리하고, 가정도 꾸려 나가야 했다.

인공지능에게 맡겨 놓긴 했지만 중요한 판단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시간이 나면 로열 로드에 접속해서 사냥도 하고, 전투 퀘스트들을 처리했다.

왠지 육아를 하다 보니 로열 로드가 더 그리워지는 현상!

‘역시 오베론 님이 유지하지 못했군. 탐욕을 억제하기에는 너무 착하니까.’

위드가 나섰다면 아르펜 제국을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았던 일.

적당히만 관리했더라도 대영주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했겠지만, 일부러 유저들의 손에 돌려주었다.

로열 로드는 꿈의 세계.

현실과는 다르게 혼란에 빠지거나 자유로워도 좋으리라.

피와 전쟁을 바라는 유저들이 많다면 그들에게 역사를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아르펜 제국이 쪼개지면 누군가 다시 통일을 할 수도 있겠고…… 어쩌면 전쟁을 거듭하다 쇠락할 수도 있겠지. 미래는 자신들이 결정하게 하자.’

위드는 무인도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았다.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들이 들끓었으며, 정치의 중심에 휘말릴 수 있었으니까.

로열 로드를 접속할 때마다 사냥터를 돌아다니며 전사로서 몬스터들을 제거했다.

“광휘의 검술!”

빛을 사방으로 뿌리면서 뭉쳐 있는 몬스터들을 돌파.

대지의 그림자 파티가 S급 퀘스트를 진행한다고 떠들썩할 때에도 사냥에만 집중했다.

레벨이 500대와 600대를 넘어서자 힘과, 스킬이 향상되면서 광휘의 검술도 위력을 발휘했다.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몸놀림.

빛이 사라질 때쯤에는 몬스터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달빛 조각사였던 자하브에 못지않은 화려한 모습이리라.

“너희가 살아서 움직이던 땅으로 돌아오라. 이곳은 어두운 곳. 검고 부패한 땅. 영영 사라지지 않을 암흑의 율법을, 모든 이들에게 새길 수 있도록 하라. 언데드 라이즈!”

데스 나이트까지 듬뿍 끌고 다니며, 사냥 속도를 무섭게 향상시켰다.

언데드 소환도 점점 올라서 고급 6레벨에 도달했다.

데스 나이트들의 생명력과 공격력은 둠 나이트에 버금갈 정도였고, 무기와 방어구도 향상되었다.

때때로 정말 어려운 던전들은 고급 시체들을 통해 둠 나이트들이 소환되었다.

그럴 때마다 경험치는 더욱 많이 쌓을 수 있었다.

“끝까지 돌파해라. 멈추지 마라.”

― 알겠다, 주인.

언데드 소환의 페널티는 케이베른의 레어에서 얻은 엄청난 보물들로 해소할 수 있었다.

유니콘 그룹을 물려받기 전에는 돈을 벌 생각부터 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사라졌으니까.

보물들을 프레야 교단에 바치면서 얻는 신성력과 정화의 힘으로 네크로맨서의 부작용을 없앴다.

“조각 파괴술!”

조각사로서의 스킬 활용도 필수.

틈틈이 조각 생명체들도 소환하여 전투에도 참여시켰다.

잡캐로서 부족할 게 없는 상태.

모든 언데드들을 지배하며 던전들을 집중 공략하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사냥했다.

< 부이에타 던전을 전부 쓸어 버렸습니다.

이 깊고 어두운 던전은 침입자들의 고요한 무덤이 되어 왔습니다.

세상에 퍼져 나가서는 안 될 끔찍한 몬스터들.

그들은 조용히 파멸의 날이 오기만을 기다려 왔습니다.

던전 내의 모든 몬스터들이 처리되었습니다.

인근 지역의 치안이 7 높아집니다.

전투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모든 스탯이 3 높아집니다. >

사냥터의 수준이 점점 높아졌다.

베르사 대륙을 위협하는 던전들이 목표가 되었고, 그런 곳에는 몬스터들이 득실득실 모여 있었다.

위드는 몬스터들을 정리하면서도 그 소문이 퍼져 나가는 것은 막았다.

< 용사 지망생의 조용한 활동.

이 던전이 공략된 것은 알려지지 않습니다.

명성은 높아지지 않지만 적들의 경계는 늦출 것입니다. >

용사 지망생으로의 전직도 마쳤다.

세계를 구하는 용사가 되기 위한 전 단계.

일종의 수습 기간이라고 할까.

용사 스킬 중에는 은밀한 종류도 있었는데, 던전 공략이나 퀘스트를 마치고도 그것이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 표적 암살 중급 3(67%): 세상에 해를 끼치는 나쁜 존재들을 조용히 죽일 수 있다. 적에게 들키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하면 7배의 피해를 입히고, 치명적인 일격이 발동됨.

주의. 나쁜 존재들에게만 사용 가능.

― 은밀한 걸음 중급 1(87%): 발끝으로 걸으면 소리를 거의 내지 않는다. 스킬 레벨이 높아질수록 빨라짐.

― 정의의 활 고급 3(41%): 원거리에서 활을 이용하여 적을 제거한다. 마법과 신성력이 부여. 악인을 대상으로 위력이 더 높아짐.

< 레벨 700에 도달하였습니다.

용사 지망생으로서 세상을 구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대륙의 위기를 일찍 파악하고, 어긋난 것들을 힘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

< 모든 전투 스킬의 효과가 20% 증가합니다. >

< 생명력이 완전히 고갈되어도, 명성의 일부를 전환하여 목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

< 전투 업적을 달성할수록 용사의 힘을 얻게 됩니다. >

레벨 700 달성.

“드디어 해냈군.”

레벨이 700대를 넘으면서부터는 무지막지한 경험치를 필요로 했다.

무인도에서 긴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검술의 마스터도 완성하며 다른 유저들을 무섭도록 빨리 따라잡았다.

대륙을 통일한 직후부터 로열 로드에만 집중했더라면 레벨 800대도 가능했겠지만 아쉬울 건 없었다.

“확실한 건 바드레이를 빠르게 따라잡고 있을 거야.”

철혈의 워리어가 된 바드레이의 소식은 가끔씩 유저들의 동영상이나 방송국을 통해 중계되었다.

사냥터를 헤매고 다니며 꾸준히 강해지고 있었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 안쓰러웠다.

“지름길이나 꼼수를 듬뿍 써야지. 잔머리를 안 굴리고 정직하게 싸우는 시대는 지났는데.”

위드가 과거에 고생하며 거쳤던 직업들과 스킬들이 완성을 향해 가고 있는 상태였다.

모든 것들이 성장에 가속도를 붙이는 상황.

“찜찜한 건 클레타를 남겨 놓았단 건가.”

악마들의 왕 클레타!

위드는 아르펜 제국의 황제로서의 활동은 중단했지만, 그럼에도 유저들의 도움에 대한 보답은 할 생각이었다.

‘베르사 대륙을 멸망으로 이끌 수도 있는 존재. 저건 내가 처리해야 되겠지.’

클레타와의 전쟁.

이번에는 아무래도 혼자 싸워야 될 것 같았다.

아르펜 제국은 갈라지고 있었으며, 유저들에 대한 위드의 인기도 예전 같진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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