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마지막 용사
위드는 마판의 도움을 받아 대도서관에서 클레타에 대한 정보들을 입수했다.
― 마판: 클레타의 하수인들. 그리고 드래곤을 길들였던 장소들에 대한 후보지는 총 10곳입니다. 대륙 전역에 흩어져 있어서 직접 찾아다녀야 될 것 같습니다.
“가까운 곳들부터 가죠.”
― 마판: 옙! 정보들은 유린을 통해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아르펜 제국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마판 상단에 대한 영향력은 그대로 쥐고 있었다.
대륙이 혼란에 빠질수록 거대한 부를 쌓는 상인들!
칼과 마법은 유저들을 싸우게 한다.
이런 때에 상인들까지 손을 놓아 버리면 대륙은 혼란을 넘어서 파국으로 치닫게 되리라.
‘그러고 보니 나도 좀 착해진 것 같아.’
위드는 열심히 던전 사냥을 하며 좋은 사람이 되어 간다는 생각도 했다.
서윤에게도 그 이야기를 했더니 웃으며 그녀가 말했다.
“원래 착했어요.”
“아냐. 난 엄청 돈만 밝혔어.”
“대륙을 위해서 쓸 곳이 많았잖아요. 모라타에도 투자를 했고요.”
“그건 떡밥을 깔아 놓은 거야. 악덕 영주, 독재자가 꿈이었다고.”
“마음으로만 생각한 거 아니에요? 전…… 사실 그런 말도 믿지 않아요. 매번 힘들었으면서도 먼저 사람들을 챙겼잖아요.”
“속도 좁아. 헤르메스 길드가 망해서 기뻤어. 바드레이가 죽었을 때도.”
“그들이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을 때잖아요. 정의감으로 그런 기분을 느꼈을 거예요.”
“실은 드워프들 돈 안 갚은 적도 있어. 가르나프 전쟁 전후로 어르신들 고생만 시키며 부려 먹었고.”
“그분들은 최고의 대장장이로 명예를 누리고 있으세요. 그 시절에 만들었던 작품들을 요즘에도 자랑하는 걸요?”
위드는 좋은 아내를 얻었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아무리 세상이 힘들더라도 끝까지 믿어 주는 단 한 사람!
물론 서윤이 의외로 남자 보는 눈이 낮고, 잘 속을 것 같다는 생각은 했다.
‘잘 챙겨야 되겠어. 특히 빚보증 같은 건 안 서게 만들고.’
< 악마 집사장 쿤사로테의 대저택을 찾아냈습니다.
위험한 발견!
은밀한 일을 꾸미는 악마들의 거주지입니다.
죽음과 타락의 기운이 묻어 나오는 이곳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명성이 3,500 늘어납니다.
신앙심이 4 증가했습니다. >
대륙 서쪽.
음침한 자들의 대지에서 한밤중에 마법 봉인을 풀었더니 풍경이 바뀌었다.
구름을 끼고 있는 높은 산에 흑색 벽돌로 지은 대저택!
창을 든 악마들이 저택의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여기였군.”
위드는 바위 뒤에 숨어서 대저택을 지켜봤다.
악마들의 왕, 클레타가 대륙에 남긴 모든 흔적과 연결 고리들을 없애 버려야 한다.
“좀 고생은 하겠어.”
악마들이니만큼 만만치는 않으리라.
레벨도 높고, 육체적인 능력이나 마법력도 겸비했기 때문.
그때 뒤에서 낙엽을 밞으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제가 조금 늦었군요.”
2미터나 되는 커다란 활을 등에 짊어진 궁수 마스터 페일의 등장이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
“마판 님한테 소식을 계속 듣고 있었습니다. 위드 님 혼자 싸우도록 할 수는 없죠.”
페일은 위드가 무인도에 있을 때에도 꾸준히 사냥을 해 왔다.
궁술의 마스터가 된 것도 당연한 일.
그 이후로도 다른 직업을 추가로 선택하지 않았다.
궁수의 모든 스킬들을 마스터의 경지로 익혀 볼 생각에서였다.
한편으로는 영주로서의 활동도 무척 열심이었다.
위드에게 억지로 넘겨받은 빈곤한 산골 마을도 부지런히 발전시켜 왔다.
주변의 빈 땅으로 영역이 확대되면 새로 개간하고, 도시를 만들고, 항구까지 건설하면서 대영주가 되었다.
위드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동안, 페일은 더욱 유명인이 된 상태.
물론 그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건 전투 노예라는 별명이었지만.
“우릴 놔두고 혼자 올 생각이었어요?”
“후아. 화염 마스터의 위력을 실컷 보여 줄 시간이네요.”
“아싸. 사냥이다!”
이리엔, 로뮤나, 수르카.
로열 로드를 함께했던 오랜 동료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화령과 벨로트, 제피도 나왔다.
“위드 님! 오랜만이에요.”
“안녕하세요.”
“으음. 형님, 저 왔습니다.”
가수로서, 피아니스트로서 꾸준히 활동하는 화령의 미모도 여전했다.
그녀가 최근에 낸 모험과 꿈에 대한 앨범들은 연달아 히트.
세계를 돌아다니며 콘서트를 열고, 곡을 작업하느라 로열 로드에는 조금 뜸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일부러 찾아왔다.
“악마들이 유혹에는 약하니까요.”
화령이 생긋 웃으면서 하는 말대로 댄서의 매력은 악마나 악인들의 정신을 홀리게 만드는 위력을 가졌다.
벨로트는 못 보던 사이에 악기 연주가 조금 늘어난 정도!
제피는 현실에서도 자주 봤으니 어색하지 않았다.
“휴우. 왔으니까 어쩔 수 없죠.”
위드는 찾아온 동료들이 반가웠음에도 쑥스러웠다. 그렇지만 그 뒤로 나타나는 파이톤, 양념게장, 검치, 검둘치, 검삼치…….
“실컷 싸울 수 있다고 해서 왔네.”
“악마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드리죠. 전혀 까다롭지 않습니다.”
“막내야, 혼자만 재미 볼 생각이었냐?”
“흠흠. 우린 스승님이 오자고 하셔서…….”
“내 근육의 힘으로 다 때려잡아 주지.”
검사치와 검오치, 그 뒤로도 쭉 이어진 덩치들.
“저, 저도 있습니다.”
수련생들 사이에 키가 작은 드워프 오베론도 끼어 있었다.
“그럼 이제 올 사람은 다 온 거 같으니 공략 계획을 짜죠.”
“아직 멀었습니다. 위드 님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그들도 올 겁니다.”
오베론이 멋진 수염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북부 유저들. 그들 중에서도 모라타 출신들은 이른바 꾸준한 사냥을 통해 광렙을 했다.
아르펜 제국이 대륙을 통일하면서 사냥과 퀘스트가 훨씬 편해진 덕분이었다.
과거에 타격대에 속해서 드래곤 사냥에도 참여했던 유저들은 그리 유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 꾸준히 성장해 온 유저들은 현재의 로열 로드에서 최상위권에 속했다.
풀죽신교에 가입을 하고, 영주들끼리의 세력 분쟁에도 끼지 않은 이들이 꽤 많았다.
“위드 님이 돌아올 거라고 믿은 사람들입니다.”
프레임, 톳쿵, 순두부, 은루, 마이어, 컨텐드레이타.
열렬한 위드의 팬이었던 이들도 훌쩍 성장해서 찾아왔다.
쿤사로테의 대저택을 공략하기 위해 모인 인원이 천 명을 넘었다.
위드는 머리를 긁적였다.
“혼자 다 해 먹으려고 했는데…… 기왕에 왔으니 어쩔 수 없이 좀 나눠 드리긴 하겠습니다.”
* * *
첫 시작은 검삼치가 끊었다.
“에라. 죽어 버려라! 질풍의 내려치기!”
대저택으로 달려가서 악마들이 몰려오자마자 땅을 내려치며 강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보며 검치와 검사치가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셋째가 꽤 하는군.”
“사형이 로열 로드에 맛이 들려서 말입니다.”
검삼치는 재작년에 스스로 도장을 설립했다.
검을 익히고, 육체를 단련하는 데는 누구보다 소질이 있지만 창업은 다른 분야.
“망하면 어떻게 하지.”
근심이 가득한 그에게 위드가 조언을 했다.
“사형, 로열 로드에서 광렙을 위한 검술을 가르쳐 준다고 하세요.”
“광렙?”
“레벨이 높거나 낮거나 체계화된 검술을 배우면 사냥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니까요. 관원들이 금방 모일 겁니다.”
창업으로 고민하던 검삼치는 솔깃했다.
“그러면 검술을 가볍게 보지 않을까? 쉬운 검술만 가르치고 싶진 않은데.”
“시작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과가 중요한 거죠. 제대로 배울 사람들만 가르쳐도 되지만, 아무나 일단 모집하고 죽어라 훈련을 시켜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래?”
“네. 못 견디는 사람들은 알아서 나갈 테죠”
“진상 고객들을 만나면 어떻게 하지. 막 화내면서 갑질 하는 고객들 말이야.”
“사형의 얼굴과 몸을 보세요. 분노는 다 알아서 조절이 될 거예요.”
검삼치는 도장 이름부터 ‘로열 로드 검투장’으로 만들었다.
검술을 유흥거리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곳 출신 유저들의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말에 관원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것이 연사와 관통을 마스터하고 얻은 폭풍 화살입니다!”
악마들이 검삼치를 표적으로 하여 몰려들 때였다.
페일이 시위에 수십 발의 화살을 걸더니 한꺼번에 발사했다.
화살 폭풍을 일으키며 악마들을 휩쓸었다.
― 침입자들이다.
― 인간 따위가 이곳을?
― 쿤사로테 님이 깨어나기 전에 정리하라. 그분의 분노는 감당할 수 없다.
대저택의 천장과 창문을 깨며 날개를 펼친 시커먼 악마들이 뛰쳐나왔다.
“오랜만에 피가 튀는 전쟁이구나! 그래. 인간들을 상대로 하기에는 나도 검이 너무 가벼웠다고!”
파이톤이 대검을 들고 돌진하고, 로뮤나는 화염 마법 주문을 진작부터 길게 외우고 있었다.
믿을 만한 동료들, 특히 위드가 있으니 뒷일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마나와 집중력을 몽땅 써서 화염 계열의 궁극 마법을 시전 할 생각.
“정화의 빛!”
이리엔은 손에 빛의 창을 만들어 내서 악마들에게 쏘아 냈다.
성직자 계열은 악마들을 상대로 회복과 축복의 역할만이 아니라 공격자로서도 그만이었다.
벨로트가 악기를 연주하고, 화령이 어깨와 배를 훤히 드러내는 옷을 입고 춤을 추었다.
“헤…….”
“꼴깍!”
부작용이라면 악마들이 홀리긴 했지만, 검치와 검둘치, 그 외에 수련생들까지 정신을 놓았다는 점이다.
“크으으윽.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어.”
“죽어도 좋아.”
위드는 어쩌면 혼자가 더 편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에휴…….”
* * *
동료들의 도움 덕에 쿤사로테 대저택의 공략을 완료.
위드는 로열 로드를 접속할 때마다 클레타의 흔적들을 쫓아다녔다.
오랜 동료들이 도와줄 때도 있었지만, 때때로 갑자기 전투가 벌어지거나 하면 그들이 미처 올 수 없었다.
위드에게는 그럼에도 부하들이 있었다.
“반 호크! 똑바로 안 해? 요즘 뼈에 군살 좀 붙은 거 같다?”
― 크으으윽.
“토리도, 피 마시고 입 헹구라고 했지!”
― 조금 흘린 거다.
영원히 갈굼 받는 반 호크와 토리도.
그들도 위드와 함께 성장을 하며 보스급 몬스터가 되었다.
반 호크의 전투력은 둠 나이트급을 넘어서서 어비스 나이트를 엿보았다.
토리도 역시 권속들을 늘려서 대규모의 뱀파이어들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악마들을 처치하며 빠르게 성장을 한 덕분이었는데, 그만큼 위드도 강해졌다.
영원히 부하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
베르사 대륙에 악마들이 남긴 흔적들을 하나씩 지워 나가는 와중에 메시지 창이 떴다.
띠링!
―악마들의 왕 클레타가 남겨 놓은 흔적을 삼분의 일 이상 지웠습니다.
악마들의 하수인과 추종자들은 당신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에서라도 습격해 올 것입니다.
베르사 대륙의 운명을 좌우하는 수레바퀴가 구르고 있습니다.
용사의 뜻을 잇는 이여.
대륙을 구하기 위한 숭고한 임무를 받아들이겠습니까?
운명이 이끄는 길을 따라 클레타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야 할 것입니다.
“흐음.”
위드는 이와 비슷한 메시지 창을 봤던 기억이 났다.
과거로 돌아가서 사막의 대제왕이 되어 엠비뉴 교단을 공격하게 되었을 때!
“이거야 뭐…… ‘꿩 먹고 알 먹고’군.”
그동안 어려운 퀘스트들을 진행하면서 앓는 소리도 많이 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었으니,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얻게 된다면 좋은 일.
“숭고한 임무를 받아들인다.”
띠링!
베르사 대륙에 잠재된 위험을 구하기 위한 운명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직업이 세계를 구하는 용사로 바뀝니다.
사막에서 최초로 탄생한 태양의 전사에서 승급이 이루어졌습니다.
태양의 전사로서의 특성을 30% 더 강화합니다.
기사, 전사 계열의 최종 직업이며 동시대에 1명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무력의 한계를 뛰어넘고, 신성하고 중요한 의무를 부여받아야만 전직이 이루어집니다.
전사의 손은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습니다.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전투 스킬을 쉽게 습득할 수 있습니다.
명예가 스탯에 상관없이 최대치가 됩니다.
명성의 의미가 사라집니다. 직업을 밝힌다면 선을 따르는 이들의 열렬한 존중을 받습니다.
종족의 한계를 떠나서 명예와 신앙,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부하와 동료 들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용사가 행하는 모든 행동들은 악명의 증가를 최소화합니다.
세계를 위해 싸워야 하는 용사에게는 신들이 지대한 관심을 갖습니다.
당신과 연련이 있는 신들은 기꺼이 자신의 힘을 나누어 줄 것입니다.
< 신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프레야, 루, 헤스티아, 바탈리는 당신을 신의 뜻을 펼치는 대리인으로 여깁니다.
당신을 축복하기 위한 신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하늘에서 빛의 기둥이 내려왔다.
위드의 몸이 찬란한 빛에 휩싸였다.
“들었는가? 악마들의 왕 클레타가 이 세상을 욕심내고 있다는 사실을?”
“대륙의 어딘가에는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어.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진정한 용사란 세상이 멸망할 때 나타나는 법이 아니지.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막아 내는 것이라네.”
“사제님들의 이야기를 들었는가? 신들의 축복을 한 몸에 받은 용사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전란이 찾아오는 건 아닌지 두려운데.”
위드의 모험이 계속되자 베르사 대륙의 주민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크허험.”
“샤우드 님, 설마…….”
“모르겠어. 위드가 활동한다는 보고는 없었는데…… 이 불길함이란.”
“그럼 역시 툴렌을 칠까요?”
“조금만 미뤄 보자고. 상황이 어찌 될지를 지켜봐야지.”
위드가 나타났을지도 모른다는 의심만으로도 대영주들이 행동을 자제하는 효과가 발생했다.
아르펜 제국을 책임지는 오베론은 각 영주들에게 전투 중지를 명령했고, 갑자기 그것이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여졌다.
드러내 놓고 위드를 거스르겠다는 위험한 도전을 누구도 하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 * *
카올랴의 오염된 땅!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 끊임없이 몬스터가 되어 번식하는 10대 금역에서도 최악의 장소.
위드는 이곳에 조각 생명체들을 동원했다.
“오랜만에 일 좀 하자. 그동안 실컷 놀아서 좋았지?”
― 무엇이든 먹어 치울 것이다.
― 꽁꽁 얼려 주지.
― 그 어떤 몬스터도 이 불사조의 위엄을 거스를 수 없다!
킹 히드라, 빙룡, 불사조.
하늘과 땅을 장악하는 초거대 조각 생명체 3종 세트!
그동안의 사냥 덕분에 이들도 많은 성장을 했고, 레벨도 800, 900을 훌쩍 넘겼다.
‘사실 이놈들이야말로 사기야.’
처음에는 생명을 부여하고 몸도 제대로 못 가누던 빙룡이었다.
조금만 따뜻한 장소에 가도 몸이 녹아내린다고 비명을 지르던 연약한 짝퉁 드래곤!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몬스터 사냥을 하며 꾸준하게 강해졌다.
하늘을 장악하고 지상의 몬스터 무리들을 마구 공격하는데, 몸이 단단한 데다 가까운 적은 얼려 버려서 웬만해서는 위험하지도 않다.
더구나 날개를 펼치면 먼 거리도 쉽게 날아가니 하루에도 수천 마리씩의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빙룡이 있으면 그 지역 전체의 온도가 4, 5도씩 떨어질 정도의 위력을 발휘했다.
불사조는 더한 녀석이었다.
탄생부터 다른 조각 생명체들보다 강했지만, 사냥의 효율이 최고였다. 지상에 불을 지르면서 대량 학살을 일으켰다.
자연보호와는 상극인 녀석이었지만, 지골라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몬스터들을 쉬지 않고 사냥했다.
풍덩!
체력과 마나가 떨어지면 용암 호수에 몸을 담그며 회복도 하는 불사조.
원래도 넘쳐 나는 생명력은 레벨이 높아질수록 사기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킹 히드라 역시 만만치 않은 녀석이었다.
9개의 머리가 각자 공격을 하며 레벨이 높아지면서 적을 돌로 만들고, 주술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서너 개의 머리가 동시에 마법과 주술을 사용하는 공포적인 존재.
위드는 지역 깡패와 마찬가지인 세 마리를 동시에 동원했다.
“카올랴의 오염된 땅 어딘가에 클레타의 마지막 흔적이 있을 것이다. 그걸 찾는 방법은…….”
대도서관의 자료나 퀘스트들도 진행했다.
악마들의 왕 클레타를 처치하라는 용사 퀘스트가 부여되긴 했으니까.
그럼에도 카올랴의 오염된 땅이라는 지명 외에 자세한 장소는 나와 있지 않았다.
“그냥 다 쓸어 버리자. 전부 쓸어 버리다 보면 나오겠지.”
― 마음에 드는 방식이다.
― 다 얼려 주지.
― 전부 태울 것이다.
킹 히드라, 빙룡, 불사조.
그들이 몬스터들을 쓸어 버리면 위드는 언데드를 소환했다.
세계를 구하는 용사가 된 후 언데드를 소환하면 신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죽음의 신 마탈로스트가 마구 축복을 내려 주었다.
< 마탈로스트가 시체들에게 강력한 생명력과 방어력을 부여했습니다.
시체들은 뭉칠수록 강해지며, 적들에게 저주를 내릴 것입니다. >
마탈로스트 신은 본래 망자들을 인도하는 죽음의 신.
인간들의 외면을 받고 교세가 약해져서 엠비뉴 교단과 손을 잡았던 과거도 있었지만, 유저들의 전쟁을 통해 신력을 회복했다.
위드를 끊임없이 후원하며 기대를 품고 있는 중!
“저희도 왔습니다.”
“싸움이라면 빠질 수 없지!”
페일과 파이톤, 양념게장, 이리엔 등등.
검치와 수련생들도 하나둘씩 찾아오면서 카올랴의 오염된 땅의 몬스터들을 쓸어 버리기 시작했다.
대지의 균열이나 어긋난 힘이 고여 있는 장소에서는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생성되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더욱 활발하게 몬스터들이 튀어나왔지만 하나씩 차근차근 정리가 이루어졌다.
< 프레야 여신이 그대를 축복합니다.
여신의 권능으로 당신의 신체가 강해집니다.
힘이 2 증가합니다. >
< 헤스티아 여신이 당신의 용맹에 감탄했습니다.
불을 다루는 능력이 2% 증가합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
악마의 하수인과 싸울수록 신의 축복이 마구 부여되었다.
일시적으로 강해지기도 했지만, 영구적인 스탯과 스킬을 얻기도 했다.
“이거 좀 불안한데…….”
위드의 얼굴이 찌푸려지는 걸 페일이 발견했다.
“왜 그러시는데요?”
“듬뿍 퍼 주는 걸 보니 앞으로의 일이 만만치 않겠단 생각이 들어서요.”
“설마요.”
“설마가 잡은 사람만 수천만 명은 될 겁니다. 특히 저와는 인연이 깊은 편이죠.”
일반 유저들은 거의 찾아오지 않는 카올랴의 오염된 땅!
마지막 구역에서 드디어 이 지역의 패자를 만나게 되었다.
악마들의 왕, 클레타의 오른팔!
― 강한 인간들이군. 클레타 님을 위하여 새롭게 태어나게 해 주마!
띠링!
< 악마 집사장 마힐고르타를 이겨라.
클레타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마힐고르타는 악마 군단의 지휘관입니다.
그는 오로지 싸움밖에 모르는 전사!
만약 그에게 사로잡히거나 목숨을 잃는다면 영혼이 타락합니다.
악마 군단의 병사가 되고 싶지 않다면, 마힐고르타를 이기거나 지금 도망쳐야 합니다.
난이도: S >
“…….”
위드와 동료들에게 일제히 발생한 전투 퀘스트!
“이기지 못하면 악마 군단의 병사가 된다는데요?”
“거의 캐릭터를 잃어버리는 것 아니에요?”
페일이나 수르카나 깜짝 놀라서 말했다.
악마 군단의 병사가 된다면 육체의 소유권을 빼앗기게 된다.
여러 번 목숨을 잃거나, 정화를 받지 않는 한 악마 군단의 병사로서 계속 활동해야 하는 것이다.
고레벨 유저들일수록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페널티였다.
“위험 부담이 큰데.”
위드는 마힐고르타는 남겨 놓고 도망치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예전과는 달라. 사냥하다 죽어도 먹고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유니콘 그룹의 실소유주!
잡템은 여전히 빠뜨리지 않고 습관적으로 줍고 있긴 했지만 인생이 달라졌다.
과거처럼 방송국에 영상을 팔거나, 장비를 경매 사이트에 올려놓지 않아도 된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좋은 일을 하다가 망하더라도 피해를 수습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저부터…….”
위드가 막 전투를 시작할 무렵, 이미 검치와 수련생들은 달려가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앗!”
“저놈은 내 거다.”
“시원하게 싸워 보자.”
파이톤, 양념게장도 뒤를 따르는 것이 보였다.
최종 보스라고 하지만 전투의 열기에 완벽하게 빠져든 모습이었다.
― 클레타 님을 따르라!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4미터에 달하는 악마 전사들이 쉬지 않고 소환되었다.
마힐고르타는 휘어진 검과 채찍을 손에 들었다.
― 클레타 님이 세상을 재창조하실 것이다!
콰아아아아앙!
마힐고르타의 채찍이 휘둘러지자 대지가 그대로 갈라지며 독 안개가 솟구쳤다.
“제법이구나.”
“손맛이 있겠군!”
검치와 수련생들이 달려가서 전투를 시작했다.
악마 전사들을 뚫는 것이 우선이었고, 마힐고르타는 수십 미터씩 늘어나는 채찍을 계속 휘둘렀다.
얇은 늪지와 썩은 나무들이 있는 넓은 전장.
검은 연기에서는 악마 전사들이 계속 소환되고 있었다.
“지원하겠습니다.”
페일이 손바닥을 펼치자, 땅에서 화살이 솟아 나와 손에 쥐어졌다.
엘프들의 퀘스트, 세계수의 퀘스트를 다수 진행한 페일은 그 덕에 어디서든 나무 화살을 얻을 수 있었다.
페일은 화살을 빠르게 시위에 걸고 쏘았다.
“숲의 화살!”
파파파팟!
화살들이 마힐고르타의 주변의 땅에 꽂혔다.
다들 빗나간 줄 알았지만, 이윽고 화살이 꽂힌 자리가 들썩거리더니 나무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울창한 가지와 잎을 가진 나무들은 가까이 있는 마힐고르타와 악마 전사들을 가지로 공격했다.
― 어림없는 짓이다.
급하게 조성된 숲은 악마들을 막아 내진 못했지만 혼란을 일으켰다.
전투는 그래도 불리했다.
악마 전사는 계속 튀어나오고 있었고, 놈들에게 사로잡히면 육체를 빼앗기고 악마가 된다.
“놈들에게 당하기 전에 차라리 우리가 죽여!”
“공격해라! 저 큰 악마부터 죽여야 된다!”
위드는 흐뭇하게 동료들이 싸우는 걸 보았다.
보스급 몬스터를 사냥하는 이 긴장감과 재미!
“역시 짜릿해. 이 맛을 끊기가 힘들지.”
위드는 용을 죽이는 도끼를 손에 쥐었다.
악마들을 쪼개기에는 최강의 도끼였다.
대장장이 스킬이 고급 7레벨이 되면서 종족의 제한도 풀리고, 스탯 감소의 페널티도 절반으로 줄었다.
“조각 파괴술! 이 모든 것이 힘이 되어라.”
무자비한 힘의 전투를 벌일 시간이었다.
* * *
위드는 동료들과 함께 힘겹게 마힐고르타를 처치했다.
― 분하다. 하지만 클레타 님은 반드시 돌아오실 것이다…….
악당들이 마지막에 내뱉는 소리라는 것이 영 찜찜한 것도 사실이었다.
마판이 뱃살을 흔들며 걸어왔다.
“위드 님, 수고하셨습니다.”
“생각보단 별거 아니었습니다.”
악마 집사장.
최악에는 악마들의 왕 클레타까지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만일을 대비하여 희생의 화로도 준비했고.
마힐고르타는 불완전한 클레타를 소환하려고 했지만 피와 제물이 모자랐다.
이번 위드의 모험이 예상보다 빨랐기 때문이었다.
“위드 님, 악마들이 남겨 놓은 잔재도 다 치웠는데 어찌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다니요?”
“아르펜 제국이요. 대영주들의 만행을 보고만 계시진 않겠지요?”
“흠…….”
마판은 위드가 아르펜 제국의 혼란을 수습해 주길 바랐다.
대륙 전역이 전쟁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위드가 등장하면 모든 상황들이 달라진다.
여전히 위드를 따르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전쟁의 조짐이 거짓말처럼 사라질 것으로 믿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쉴 겁니다. 딸이랑 놀아 줘야 되고요.”
“그럼 제국은요.”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유저들에게 맡길 겁니다. 미래는 유저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죠.”
“모든 사람들이 그걸 바라진 않습니다.”
유저들 중에는 위드가 황제로서 대륙을 태평성대로 이끌어 주길 원하는 이들도 굉장히 많으리라.
실제로 대륙을 통일한 아르펜 제국은 엠비뉴 교단과 헤르메스 길드의 정복 전쟁, 케이베른 사태로 인한 피해를 수습하였다.
그렇지만 장기간의 평화로 쌓여 온 각 세력들의 힘도 분출 직전이었다.
억지로 찍어 누른다면 결국 언젠가는 더 크게 터지게 되리라.
이곳은 현실과는 다른 로열 로드이기 때문에 전쟁이 꼭 나쁜 것만도 아니었다.
“평화는 지금까지면 충분합니다. 실컷 싸우고, 화해하고. 그렇게 사는 공간도 필요해요. 결과는 모두가 같이 만들고, 받아들여야 하겠지만요.”
이현이 있는 현실 세계는 갈수록 평화로워졌다.
정말로 돈이면 웬만한 일은 다 되는 것이다.
“애들은 밥 잘 먹고 다녀?”
― 세계 대부분의 지역들이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범죄는?”
― 대한민국에서는 십 분의 일로 줄었습니다. 그리고 일본과 미국에서도 치안 조직을 통해 순찰과 예방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범죄 감소도 전 세계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이현의 러시아 교도소 아이디어는 안 되면 말고 수준이었다.
그런데 즉시 정부 정책에 반영되고 러시아와 협력을 진행해서 범죄자들을 가두는 걸 보면 유니콘 그룹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범죄율의 감소도 잇따랐는데, 예전에야 전과 3범, 4범을 자랑하는 이들이 많았다.
교도소 한 번 다녀온 걸 경력으로 여기는 이들이 널려 있었고, 수형 생활을 하더라도 잘못된 생각이 고쳐지지 않았다.
범죄자들끼리 친목을 다지는 경우도 흔한 것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교도소로 보낸다는 정책이 발표되자마자 전과자들의 범죄율이 급감하고, 음주 운전도 줄었다.
사람들이 알아서 법을 지키는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연금제도는 어때?”
― 국민들의 반응이 좋습니다.
이현은 날로 높아지는 실업률과 생활고를 잡을 방법을 고민했다.
산업화, 정보화 시대를 넘어 생산과 업무 로봇의 시대가 열렸다.
회사마다 필요한 근로자들의 숫자는 줄어들었고, 결국 소득이 감소하면서 경제 위기의 조짐이 발생했다.
‘이런 건 정치인들이 알아서 해 줘야 되는 건데.’
유니콘 그룹에서는 과감히 어려운 사람들에게 연금을 나눠 주는 정책을 실시!
국가도 아닌 사기업에서 돈을 뿌리다니 엄청난 정치적인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기본 연금제도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생활에 안정을 찾았다.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도 기본형을 공짜로 지급했다.
이현이 그런 정책을 시행한 또 다른 이유가 있긴 했지만.
“돈 좀 적당히 벌어라.”
― 주의하겠습니다.
인공지능 베르사가 금융권에 떠도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매일 쓸어 오고 있었다.
유니콘 그룹의 사업도 대호황이었고, 페이퍼 컴퍼니로 소유권을 은닉한 회사들도 무섭게 성장했다.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이 있었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세계 자본을 움켜쥐었던 것.
이현도 설마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돈 욕심 많이 내지 말고.”
― 네.
“흠흠. 사람들이 전부 나 같은 건 아니야. 그리고 나도 먹고살 만해진 다음부터는 욕심을 덜 내잖아.”
인공지능은 이현을 조금씩 닮아 가고 있었다.
돈에 대한 집착을 보며 그것을 이루어 주기 위한 노력이 세계 경제 위기를 만들어 내려고 할 정도.
전 세계적으로 시행된 연금 정책은 많은 백수들을 양산하긴 했지만, 기술의 발달로 사람의 노동력에 대한 필요가 줄어들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로열 로드에 접속하는 유저들도 매년 늘어났다.
이현은 방송을 보면서 아르펜 제국이 결국에는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 우리가 인정한 황제는 위드 님뿐이다.
― 오베론은 정통성이 없다!
대영주들은 결국에는 아르펜 제국 소속을 벗어났다. 그들에게는 괜찮은 명분도 있었다.
유저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건 위드였고, 그를 중심으로 건국된 아르펜 제국.
오랫동안 통치하지 않으면서 저마다 마음껏 살아가고 있었다.
― 툴렌은 원래부터 우리의 영토다. 흑사자 길드는 툴렌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갈 것이다.
― 차별 없는 클라우드 길드. 용병들의 세상을 만들자.
― 로암을 따르자. 모든 이권을 골고루 나눠 주기로 약속하셨다.
각 세력들마다 수백만의 유저들이 뭉쳤고, 그들끼리 충돌했다.
과거 가르나프 평원의 전투처럼 1억 단위의 유저가 모일 일은 드물었지만, 전체적인 레벨들이 올라 그 위력은 못지않았다.
“판을 깔아 주니 잘도 싸우는구나.”
오데인 요새는 또다시 주요 전장이 되었다.
흑사자 길드와 로암 길드.
그들이 모든 전력을 걸고 부딪쳤고 사흘 밤낮 동안 진행된 마법 공격 아래 주춧돌까지 쓸려 나갔다.
대륙의 수많은 도시, 마을, 요새들도 전쟁에 휘말리면서 파괴되었다.
케이베른과 몬스터들의 난동으로 인한 피해가 컸었지만, 전 대륙이 유저들끼리의 분쟁에 빠져들며 약탈과 파괴가 일상처럼 일어났다.
자신들이 갖지 못할 바엔 부숴 버리는 일이 흔히 벌어졌다.
― 헤르메스 길드! 하벤 지역에서 출정한 그들이 칼라모르 지역을 정복했습니다.
―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수순인가요? 헤르메스 길드의 전투단이 익룡을 타고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 편의상 익룡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카우드랄로페라는 복잡한 이름의 몬스터죠?
― 그렇습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번식을 시켜서 길들였습니다. 전투 능력은 대단하지 않지만 장거리를 빠르게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군대를 움직여서 주변 지역의 정복에 들어갔다. 그동안 쌓아 왔던 힘을 분출시키면서 다른 대영주들도 긴장하게 되었다.
북부 대륙마저도 전화에 휩쓸렸다.
― 우린 위드 님의 귀환을 원한다. 오베론이 먼저 물러나야 한다!
― 아르펜 제국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오베론은 스스로 책임을 져라.
― 바르고 성채는 독자적으로 활동할 것을 선언한다. 하지만 위드 님이 오시면 언제든 아르펜 제국 소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초보자들의 천국인 북부에는 유저들의 밀집도가 높았다.
중앙 대륙보다 레벨 수준은 낮지만, 그럼에도 사냥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해 왔고, 고레벨 유저들도 꽤 많이 유입되었다.
영주들도 유저들을 대거 동원하면서 분쟁을 일으켰다.
아르펜 제국의 직속 영역이라 눈치를 보긴 했지만, 그들은 위드의 핑계를 대고 병력을 일으켰다.
그러던 중에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발표가 있었다.
― 우린 새로운 왕국을 열 것이다. 아스 왕국에 합류하라.
도시 아스.
북부 대륙과 중앙 대륙의 연결 고리에 위치하여 중계 무역과 광업, 고급 별장과 주택 같은 주거 지역으로 성장한 도시였다.
아스의 넓고 깨끗한 거리와 멋진 자연 환경은 상인과 고레벨 유저들을 끌어들였다.
영주 로빈은 아스 왕국의 건국을 선포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 아니, 최초로 반역을?
― 흑사자 길드도 공식적인 명분은 툴렌 지역을 되찾는 건데. 후덜덜덜.
― 아르펜 제국의 체제를 정면으로 거역. 새로운 왕국을 선포함.
― 저 패기 어디서 나옴.
로열 로드의 유저들이 깜짝 놀라서 아스 왕국의 행보를 지켜보았다.
“누가 수작을 부린 건가? 헤르메스 길드? 역시 그놈들이겠지?”
“배후에 누군가 있어. 제대로 준비해서 터트린 느낌인데.”
“북부 대륙에도 균열이 일어나나?”
대영주들은 정보망을 최대한 가동해 봤지만 아스 왕국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북부의 정세가 요동칠 것 같았지만 의외로 평온했다.
― 주변 도시들이 아스 왕국으로의 합류를 거부했습니다.
로빈은 건국을 하며 자신의 도시와 가까운 영주들을 믿고 있었다.
‘내가 병력을 일으키면 뜻을 같이해 주겠지?’
몇 년 동안 공을 들여 온 영주들이고, 술자리도 자주 했다.
자신이 건국만 하면 중소 왕국 수준의 영토와 인구를 단숨에 확보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국 뜻을 함께한 건 8명의 영주였고, 그들도 다음 날 세력이 약한 것을 확인하고 뜻을 돌렸다.
― 우린 아스 왕국의 소속이 아닙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탓에 많은 관련이 있긴 했지만 오늘부터 도시 아스와 모든 관계를 끊을 것입니다.
― 전부 오해입니다. 우린 아르펜 제국의 영주로 남을 것입니다.
중소 영주들은 아스 왕국에서 빠르게 발을 빼며 자신들이 살 길을 찾았다.
로빈이 그동안 지원해 준 물자들만 먹고 튀는 약삭빠른 행위!
― 아스의 상인들이 자신들은 관련이 없다면서 상단 이주의 뜻을 밝히고 있네요.
아스에서 활동하는 상인들도 이탈하고 있었다.
북부와 중앙 대륙에서 주로 활동하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아스 왕국의 건국이야말로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뜬금없이 무슨 짓이래?”
“국왕 병에 걸려 있더니 언젠가 저럴 줄 알았다.”
“난 지금까지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저게 진짜였구나.”
상인들이 떠나고, 지역 유저들도 로빈을 위해 싸워 줄 이유가 없었다.
“맨날 잘난 척하고 돈 자랑하던 영주잖아. 언젠가 자기가 대륙 통일할 거라고 하던데 기가 막히더라.”
“저건 한 번 당해 봐야 정신을 차려.”
“아냐. 당해도 모를걸?”
― 영주 수르카가 아스 왕국 정복을 선언했습니다.
위드의 동료들.
그들도 북부 대륙의 영주들이었다.
열정적으로 도시를 일구었고, 높은 명성으로 그들을 따르는 유저들도 많이 있었다.
수르카는 방송국에 인터뷰도 했다.
― 재작년에 영주들이 참석한 대지의 궁전 연회에서 로빈 님을 본 적이 있어요.
― 어땠나요?
― 진짜 재수 없었는데 실컷 때려 줄 거예요.
수르카의 선언에 북부 유저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기왕이면 이기는 쪽에 붙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마음.
명분이나 세력, 인기까지도 수르카가 쥐고 있었으니 애초부터 상대도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수르카가 병력을 이끌고 가서 아스 왕국을 정복했다.
도시 아스의 성벽은 높았고 방어 시설도 많긴 했지만, 그것은 제대로 된 공성전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아스를 지키기 위해 용병으로 참여한 유저들은 무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그냥 성벽에서 대충 시간을 때우며 구경이나 하다가 성문을 열어 줬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여러분.”
“열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뭘요. 영주성은 도시 중앙에 있습니다.”
“그럼 나중에 뵙죠.”
수르카의 정벌군이 변변한 전투도 하지 않고 도시 아스를 평화롭게 정복하고 말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로빈은 화려한 의자에 앉아서 망연자실하곤 말했다.
수르카는 애초에 실컷 때려 주기로 했지만 순식간에 기반을 잃은 로빈이 불쌍해 보였다.
“으함. 이런 분위기는 싫은데. 그냥 가세요.”
“여긴 내 왕국이다.”
“그럼 때려요? 맞고 갈래요?”
결국 영주 로빈은 무일푼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대륙 전역에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목숨을 거두고, 척살령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수르카는 거부했다.
세력도 없고 레벨도 낮아서 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스 왕국의 건립은 역으로 위드의 동료들에 대한 재평가의 계기가 되었다.
위드로부터 황무지나 다름없는 지역들을 받아서 영주가 된 이들. 함께 모여서 사냥과 모험을 할 때 외에는 조용히 자신들의 지역을 다스려 왔다.
북부 지역의 대영주로 성장한 그들.
페일만 하더라도 북부에서 5대 도시를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영향력과 힘을 다시 평가하게 되었다.
“재밌어지겠네.”
이현은 싸움 구경이 제일 즐겁다는 생각을 했다.
대륙은 다시 여러 개의 왕국으로 나눠질 수도 있으리라.
“근데 예전보다 더 바빠진 것 같아.”
― 관여하시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현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밥값과 월세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던 사람들도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소년 가장이나 몸이 아파서 일하기 힘든 사람들도 최소한의 생활은 할 수 있게 도와줬다.
환경 문제도 어느 정부든 팔을 걷고 나서서 해결하기 힘들었다.
그럴 땐 유니콘 그룹이 나섰다.
“바다에 있는 쓰레기는 하루라도 빨리 다 치우자.”
― 올해 내로 정리하겠습니다.
“로봇들을 투입해서 육지의 쓰레기들도 분류하면 좋겠어. 다 태우거나 묻는 건 자원 낭비야. 재활용 가능한 것들이 많잖아.”
― 다음 달부터 시행하겠습니다.
유니콘 그룹에서는 수십 조 단위 규모의 친환경 사업을 실시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라서 모든 이들의 호평을 받았고, 자원 낭비와 환경오염을 막는 효과도 있었다.
정치에 대해서는 언론들을 적극 이용했다.
유니콘 그룹에서 소유한 언론사들을 통해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들과 스캔들을 터트린다.
“어지간히 썩긴 했네.”
― 그놈이 그놈입니다.
굴비 엮듯이 정치인들을 정리하면, 그 자리를 차지한 이들도 마찬가지이긴 했다.
어떤 경우에는 더한 놈들이, 국회에 나와서 부패와 비리에 대해서 질타하는 게 아닌가.
“저것들도 정리하자.”
― 진행하겠습니다.
정치인들을 계속 솎아 내다 보면 시간이 흐른 뒤에 맑아지긴 하리라.
정치를 하면서 개인적인 이득을 취할 수 없게 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이라도 나아지리라는 기대감은 있었다.
‘내가 사회 문제나 정치에 전문가도 아니고.’
이현은 가끔씩 잘 알지도 못하는 자신이 관여하는 게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개입하는 일들이 매번 좋은 쪽으로만 이루어지진 않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손을 대야지. 누가 하겠냐.’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좋은 뜻에서 관여할 수는 있으리라.
무슨 일을 완벽하게만 하려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될 테니깐.
애초에 사회나 정치 문제가 무언가를 완전히 해결하기도 어렵고.
“열심히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 보자.”
― 알겠습니다.
“그리고 예전의 그 사채업자들 말인데. 아직 그대로 있지?”
― 감금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여 드릴까요?
“그럴 필요는 없어. 괜히 더 괴롭혀지고 싶으니깐. 그들 중에서 반성한 사람은 없지?”
― 없습니다.
“걔들도 러시아로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