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26화 (26/350)

26화 타임 어택 (1)

-타임 어택에 관한 모든 것(Ver 3.0)

조회 수가 천만이 넘고, 무려 12차례에 걸쳐 수정이 이루어진 ‘팁과 노하우’ 게시판의 인기 게시글.

타이탄 연대기의 가장 큰 커뮤니티 포럼인 ‘올 어바웃 타이탄(All about Titan)’, 흔히 유저들이 ‘올타’라고 부르는 사이트에서 검색된 글이었다.

“확실히 크게 변한 건 없어. 어제 예행연습도 했고 이만하면 충분히 정독했으니, 이제 몹 배치는 완벽하게 파악했다!”

타임 어택(time attack)!

주로 레이싱 게임에서나 존재하는 개념이지만, 이 타이탄 연대기 속에도 비슷한 개념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게시물에서처럼 ‘타임 어택’이라고 지칭하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유명한 퀘스트가 있었다.

바로 ‘제국 기사단 입단 시험’ 퀘스트.

이 퀘스트가 본래 이름이 아닌 타임 어택으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했다.

100레벨 미만의 유저라면 누구나 하루에 한 번씩 이 퀘스트에 참여할 수 있는데, 클리어한 시간 순서대로 100인의 아이디가 벽보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댓글 보니까 요즘도 99렙에 머물면서 매일 도전하는 고인물이 넘치나 보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순위가 새겨지니깐 말야.”

하지만 그 명예 하나뿐만이었다면, 아직까지 타임 어택에 목매다는 유저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명예보다는 보상 때문에, 누구나 한 번쯤 욕심내 볼 수밖에 없었다.

그 보상이란 바로 ‘업적’.

벽보에 들어오는 100위 안에만 들 수 있다면, 무려 ‘경험치 추가 획득’이라는 게임 내 유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새로 키우는 유저들이 이걸 그냥 패스할 수 있겠어? 경험치 추가 획득은 오직 여기서만 얻을 수 있는 효과인데?”

이 효과는 운영자의 버프 같은 일회용이 아니다.

벽보 순위가 경신되지 않는다면 그 효과가 줄곧 지속됐기에, 어찌 보면 가장 사기 업적이라고 지탄받아도 할 말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비난은, 의외로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타임 어택이란 단어에 ‘어택’이 괜히 붙었겠는가?

어택은 필연적으로 후발 주자들에게 무수히 많은 도전을 받기 때문에 이름 붙인 단어였고, 따라서 기록이란 후세에 깨지기 마련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제국 기사단 시험 퀘스트의 1위 기록은, 지난 3년의 세월 동안 수도 없이 많은 이들에 의해 경신됐다.

“레벨 제한은 99로 그대로지만, 그동안 최적화된 테크트리가 계속 연구되고 장비 수준도 몰라보게 좋아졌으니 말이지…….”

사실 이 같은 시스템을 게임사가 괜히 만들어 놓은 건 아니다.

이 타임 어택은 100레벨 미만의 가능성 있는 후발 유저들이, 이미 앞서나간 고레벨의 선발 유저들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배려해 준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었다.

즉 다시 말해, 나와 같이 랭커를 꿈꾸는 실력 있는 신규 유저들을 위한 퀘스트였다.

그래서 난 캐릭을 리빌딩하기로 결심했던 그 순간부터, 이미 이 타임 어택을 가장 첫 번째 목표로 생각하고 있었다.

“추가 경험치 효과는 오직 여기 타임 어택에서만 얻을 수 있어. 그러니 본격적으로 레벨업하기 전에 제대로 뽕 뽑아먹고 지나가야 해!”

업적의 효과는 후발주자들에게 기록이 경신되다가, 결국 100위 밖으로 떨어지는 순간 사라지게 된다.

이런 방식 때문에 경험치 추가 획득 효과를 오랫동안 누린 유저는 생각보다 적었고, 그래서 이 업적에 대한 불만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다른 추가 10%와 달리 20%는, 오직 1등만이 받을 수 있는 효과라 지금까지 1달 이상 이 효과를 지킨 유저는 없었다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만약 1등 효과를 오랫동안 누릴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이 업적이야말로 타연 ‘최고’의 업적이라고 손꼽아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업적이니까 그저 그런 1위 기록으로 끝내고 갈 수는 없지!”

내가 통합 랭킹 1위를 달성할 때까지 다른 어떠한 후발 주자에게 깨지지 않을…….

아니, 어쩌면 이 게임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영영 벽보 최상단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을…….

절대로 깨어지지 않을 불후(不朽)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 바로 내 목표였다.

다름 아닌 ‘신검빨’로 말이다.

* * *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던가?

한 치의 동선 낭비도 없이 사냥에만 전념해서, 역대급의 속도로 찍게 된 99레벨이었다.

하지만 난 그 직후부터 몇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이바슈 성 거래소 앞에서 죽치고만 있었다.

타임 어택에 도전하기 앞서, 몇 가지 준비들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미쳤구나, 타연. 고작 게임 속 반지 하나를…… 180만 골드에 사 가다니!’

내가 득템했던 레전더리 반지의 최종 낙찰가는, 내가 정말로 ‘진짜 타연’ 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 나게 해주었다.

고작 게임 속 반지 하나로, 매매 수수료 10%를 빼더라도 현금 1억 5천만 원을 벌게 된 것이다.

여기에 다른 잡템들이 판매된 것까지 합치고 나니, 내 잔고는 무려 300만 골드를 넘어서게 되었다.

‘참…… 봐도 봐도 내 인벤 창에 적힌 금액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네. 조기 축구회에서 축구하다가 갑자기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게 됐다면, 비슷한 기분이려나?’

이제는 이런 것들이 익숙해질 만도 했지만, 3년간 100골드도 아쉬워하며 지내온 놈이라 그런지 얼떨떨하기만 했다.

그래도 난 이건 그저 게임머니일 뿐이라고 자꾸 최면을 걸며, 아이템 검색만 기계적으로 반복했다.

‘아 썩을! 이제는 돈도 있는데…… 도대체 왜 사지를 못하는 건데? 정말 유니크급 이상의 매물은 오지게도 안 나오는구나!’

지난 몇 시간 동안 내가 이 거래소 앞에 앉아서 한 일은, 바로 내가 착용할 장비를 구하는 일이었다.

무기야 평생 차고도 넘칠 정도로 준비되어 있었지만, 나머지 장비들은 아직 렙업용으로 샀던 레어 템들뿐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 정도 템으로 도전한다고 해도 1위는 가뿐히 찍을 수 있다.

하지만 내 목표는 절대로 경신되지 않을 불후의 기록을 남기는 것!

그래서 렙업용 세팅 템 말고, 300레벨이 넘어서도 쓸만할 ‘마력’ 옵션 위주의 템을 구하려다 보니 이렇게 거래소 앞에서 죽치게 되었다.

‘아! 이렇게 시간만 허비할 게 아냐. 이젠 골드도 충분히 모였으니, 그거나 해봐야겠다!’

나는 성과 없는 검색은 그만 멈추고, 저번에 잠깐 떠올려 봤던 아이디어를 실행해 보기로 했다.

‘시세 조작에 이은 사재기! 만약 이게 제대로 먹힌다면, 앞으로 타연 하는 동안 골드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될 거야.’

장사꾼이라면 누구나 대박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에서건 게임에서건 장사꾼이 가장 큰 이익을 내는 방법은 하나로 정해져 있었다.

바로 ‘독점’.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늘어난 자금력을 바탕으로 타연 속 한 가지 품목을 독점해 볼 생각이었다.

[검색하실 아이템의 이름을 입력해 주세요.]

[빛나는 마력석]

[검색 결과, 현재 1,232건의 매물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빛나는 마력석’.

지금은 당장 어느 곳에도 쓰이지 않는 고등급의 재료 아이템.

따라서 현재는 이 아이템의 실수요자가 없어, 오직 몇몇 장사꾼들만 미리 조금씩 구매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사정이 달랐다.

나는 이 아이템의 용도와 가치를 정확히 알게 된, 현존하는 유일한 실수요자였다.

장사꾼들의 막연한 추측과 달리, 타이탄의 막강한 위력을 체험한 나는 추후 이 아이템의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지게 되리란 사실을 뻔히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최대한 물량을 확보하면 할수록 이득이었다.

“사재기란 무릇 재력 싸움이지.”

이렇게 당장에 쓸데없는 아이템의 시세는 오직 사재기하는 장사꾼들이 정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이 품목 하나에서만큼은, 그 어떠한 장사꾼이 덤벼도 이길 수 없을 만큼 충분한 재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니 내가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난 이 빛마석의 유일한 실수요자였으니, 여차하면 그냥 써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나는 곧바로 올라와 있는 매물들을 싼 가격부터 400개가량을 통 크게 전부 다 사버렸다.

[빛나는 마력석 5개를 개당 1,029골드에 구매했습니다.]

[빛나는 마력석 3개를 개당 1,030골드에 구매했습니다.]

……………………

한꺼번에 무려 50만 골드라는 엄청난 돈이 빠져나갔다.

그러나 난 침착하게, 가진 물량에서 100개 정도를 1/4 정도 가격대로 싸게 책정해서 매물로 촘촘히 올리기 시작했다.

[빛나는 마력석 1개를 개당 420골드에 판매 등록했습니다.]

[빛나는 마력석 2개를 개당 417골드에 판매 등록했습니다.]

……………………

[빛나는 마력석 1개를 개당 238골드에 판매 등록했습니다.]

그렇게 최저가 238골드에 마지막 마력석을 올려놓는 것을 끝으로, 시세 조작을 끝마쳤다.

“됐다. 이제 검색창 10페이지까지는, 전부 다 내가 올린 템으로 도배됐어.”

보통 일반 유저들은 매일같이 변화하는 시세를 파악하기 힘든 법.

특히나 이런 재료 아이템을 득템해서 판매하는 유저들은, 경매장에 등록된 매물들의 가격들을 살펴보고 시세를 가늠했다.

그 후 가장 저렴하게 올라온 매물보다 조금 싸게 등록해서 빨리 팔아버리는 것이, 대부분의 유저들이 재료템을 판매하는 패턴이었다.

나는 유저들의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서, 새롭게 올라오는 마력석들을 헐값에 전부 사들일 생각이었다.

“귀찮더라도 매일같이 거래소에 들러서 시세 체크하고 매물을 세팅해 놓자. 잘만 하면 몇 달간 나오는 타연 내의 빛마석을, 모조리 내가 사들일 수도 있겠어.”

결국 난 구하려던 방어구나 액세서리는 못 구하고 사재기 세팅이나 실컷 하고 말았다.

요 1시간 동안은 가뜩이나 새로운 유니크급 매물이 한 개도 올라오지 않아, 심심한 마음에 현중이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나: 현중아, 뭐 이렇게 장비 구하는 게 힘드냐? 돈이 있으면 뭐 해, 살 게 없는데! 어떻게 새로 올라오는 것마다 내 올마력 세팅에 쓸 만한 유니크 템이 한 개도 없냐?)

(축복받은얼굴: 야, 장비라는 게 그렇게 하루아침에 구해지는 건 줄 아냐? 돈만 있다고 팍팍 살 수 있는 건 저렙용이나 가능한 얘기지 고렙용은 하루 이틀로는 어림도 없어. 거래소에는 잘 올라오지도 않을뿐더러 웬만한 건 올라오자마자 즉시 낙찰이거든! 장사꾼들은 다 돌아봤어?)

(나: 돌아봤는데 끌리는 것도 없고 비싸기는 또 겁나 비싸게 팔아. 아... 더 이상 이렇게 시간 버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데... 그냥 레어템으로 도전할까? 금방 구할 줄 알고 99렙까지 사냥만 했는데 어떻게 몇 시간 동안 하나를 못 구하지?)

(축복받은얼굴: 한 개도? 야, 그럼 진작 나한테 말하지. 레어템으로 할 바엔 내 거 차고 해! 마력 세팅은 아니어도 아마 그게 훨씬 더 나을 거다)

(나: 어? 맞다. 그 방법이 있었구나!)

현재 랭커들의 레벨은 340에서 350 부근에 몰려 있었다.

현중이는 비록 랭커급에 한참 못 미쳤지만, 그래도 320레벨이 넘어가는 이른바 최상위권 유저.

물론 비싼 레전더리급은 아직 하나도 없었지만 모든 장비가 유니크급 수준의 잘나가는 유저 중 하나였기에, 상성이 안 맞더라도 충분히 괜찮은 수준이었다.

(나: 근데 괜찮겠어? 니 아이템들도 다 합치면 1억도 넘잖아. 3년간 뼈 빠지게 모은 템들일 텐데.... 안 불안해?)

(축복받은얼굴: 야, 장난하냐? 니가 내 거 먹튀할까 봐 불안하지 않냐고?ㅋㅋㅋ 먹고 튀려면 튀어 새끼야ㅋㅋ)

(나: 아, 그런 뜻은 아니고ㅋㅋ 암튼 템 주러 오면 내가 골드라도 맡기고 받아 가마 ㅋㅋ)

(축복받은얼굴: 됐어 새끼야. 쪼잔하게 무슨ㅋㅋ)

현중이 녀석은 나와는 다른 조건에서 타연을 해 왔기에, 사실 나와는 수준 차이가 많이 벌어진 상태였다.

녀석의 집안은 부유한 편이었기에 줄곧 생활비 걱정 한번 없이 게임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졸업 후에도 취업 대신 부모님 소유의 건물을 잠깐씩 관리하는 일을 맡아서, 미래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속칭 말하는 금수저급의 조건을 갖춘 ‘헤비 게이머’였던 것이다.

거기다 게임도 곧잘 하고 PC 버전부터 제법 유명했던 세인트 길드의 간부였다.

그러다 보니 서버 초창기 때부터 금세 선두주자의 반열에 끼게 되더니, 지금까지 쭉 그 위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랭커급은 안 되지만, 최상위권 유저라 불리기 부족함 없는 수준.

그게 바로 나와 항상 실없는 농담 따먹기나 해대는, 현중이 녀석의 객관적인 위치였다.

‘이놈과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거 같아서 더 솔플에만 매진했던 감도 없잖아 있었지. 그래서 주머니 노가다를 멈추고 렙업하려 했던 것이기도 하고.’

예전엔 나와 비슷한 급이라고 생각해왔던 녀석이, 타연에서는 훨씬 잘나가기 시작하면서 은연중 질투 비슷하게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녀석의 길드 영입 제안이 왔을 때 단칼에 거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놈은 20살에 만났던 그 모습에서, 한 치도 변하지 않은 그대로였다.

(축복받은얼굴: 야, 아니다. 울 길드에 친한 법사 누님 있는데 그 누나한테 템 맡기고 대신 빌려와 볼게. 아무래도 법사 템이 더 적합한 템트리인 건 맞지?)

(나: 야, 됐다! 그 정도까진 안 해줘도 돼! 이놈아, 니 거로도 충분해!)

(축복받은얼굴: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ㅋㅋ 형님이 넘 고마워서 그러냐? 고마우면 나중에 잘돼서 갚아 짜식아ㅋㅋ)

몇 번을 말렸으나, 녀석은 별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기어코 길드원의 법사 템을 빌리고 말았다.

결국 난 그 아이템들을 건네받기 위해 공간이동술사 NPC를 찾아갔다.

[가아라 제국의 수도, 오스타그에 도착했습니다.]

“아, 앞으로 좀 빨리 빠집시다! 여기서 뭐 하세요!”

“막자들도 아니고, 이게 뭐야!”

역시 제국의 수도.

타연에서 유저들이 가장 많이 찾는 메인 도시다웠다.

중앙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왁자지껄하게 들려오는 소음들이 나를 반겼던 것이다.

복잡한 공간이동술사 부근을 벗어나 귀환등록을 마친 뒤, 북부 광장으로 이동했다.

중앙 광장과는 달리 이곳은 그나마 한산한 편이었다.

“지환아! 여기다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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