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38화 (38/350)

38화 오크 로드 레이드 (3)

“아무튼 스킬은 나중에 받게 되면 고민해보기로 하고, 이번 기회에 잿빛 산맥 맵이나 좀 익혀 둬야겠다.”

나는 물약은 찾은 다음 소환 말인 피드를 타고 산맥으로 향했다.

달려가면서 필드에 있는 몹들을 하나둘씩 살펴보니, 지금 내 레벨로는 이곳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듯이 네임들이 전부 시뻘겠다.

‘확실히 여기가 고렙 지역이긴 하구나. 이제 내 레벨이 그렇게 낮은 편이 아닌데, 엄청 위험하다고 표시되네.’

지난 보름간의 폭풍 레벨업으로 달성한 지금 나의 레벨은 251.

내가 매그넘 시절에 달성했던 레벨보다 무려 20레벨이나 높은 레벨이었다.

온갖 템빨과 골드 쏟아붓기, 예전보다 몇 배가 넘어가는 사냥 시간 등을 매일같이 반복한 끝에 나온 결과였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나만 이렇게 레벨업에 매진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캐릭을 새로 키우는 동안, 다리우스는 마의 구간이라던 350레벨을 뛰어넘어 352라는 독보적인 레벨을 랭킹 게시판에 새겼다.

자그마치 100레벨 차이.

이제 곧 본격적으로 레벨업이 힘들어지는 구간에 돌입하기에, 녀석을 쫓아가려면 놈보다 더 많은 몹을 더욱 빠르게 사냥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이번 오크 로드 레이드는 무척 중요했다.

녀석이 드랍하는 아이템만 손에 넣는다면, 앞으로의 레벨업 기간이 상당히 단축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워 워!”

피드를 탄 채로 꼬박 두 시간 동안 온 산맥을 헤집고 다녔다.

확실히 이 타연은 맵이 커도 너무나 큰 편이라, 아무리 유저들이 곳곳에서 사냥하고 있다 해도 리스폰 된 필드 보스를 바로 발견해내는 건 힘든 일이었다.

‘이러니까 내가 3년이나 겜하는 동안, 필드 보스를 몇 번 못 만나 봤지.’

이제 어느 정도 지형이 눈에 익어, 붉은 갈기 족 오크 전사도 몇 마리 잡아봤다.

녀석들의 레벨은 대략 320에서 340 사이쯤.

상당한 레벨 차이였지만, 계속 100레벨 차이가 나는 몹들을 사냥해온 내게 이 정도는 우스울 뿐이었다.

[마나 쉴드가 1,320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취익! 건방진 인간 놈이! 쿠엑!”

[상급 체력 회복 물약(2)을 획득했습니다.]

레벨 보정에도 불구하고 제법 손쉽게 오크 전사를 쓰러뜨린 순간이었다.

꽤 기다릴 것으로 예상했던 연락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라스트챤스: 산드로님, 떴습니다! 떴어요!)

(나: 안 그래도 그 말만 쭉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딘가요?)

(라스트챤스: 산맥 서쪽에 있는 폭포 근처 숲이에요. 그 근방에 있는 협곡 트롤 삼거리 쪽에서 태성 애들이 이동하고 있으니, 은신으로 쫓아가시면 될 겁니다!)

(나: 네, 감사합니다. 이번 건이 성공적으로 잘 끝나면 은혜는 꼭 갚을게요!)

(라스트챤스: 네, 산드로님. 행운을 빕니다!)

나는 그대로 피드를 소환한 뒤, 서쪽을 향해 달려나갔다.

협곡 트롤 삼거리는 여기서 약 5분 거리.

그곳으로 정신없이 향하는 내 시야에, 어딘가를 향해 헐레벌떡 이동 중인 유저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이곳을 쭉 돌아다니는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이디.

바로 하이에나들이었다.

‘벌써 리스폰 소식이 퍼진 거구나! 그래도 그렇지, 엄청 빠른데?’

태성 1군 길드창에 리스폰 사실을 즉각 공유하다 보니, 아무래도 몇몇 입 싼 유저들을 통한 정보 누출은 필연적인 모양.

그러다 보니 이렇게 태성 길드가 아닌 유저들이, 먹자 대박의 꿈을 안고 몰려든 것 같았다.

물론 최초로 오크 로드를 발견한 유저가 부른 것일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따로 길 안내가 필요 없어져 오히려 잘된 일.

나는 유저들이 향하는 방향으로 피드의 방향을 고쳐 잡은 뒤, 그들을 앞서 나갔다.

“어허! 우리들보다 빨리 가면 안 되지!”

핑!

한데 무리 중에 한 궁수가 날린 화살에 피드가 맞아, 그대로 소환이 해제되며 나뒹굴고 말았다.

궁수는 다이어 울프를 타고 있는 블루블랙이라는 아이디의 유저였다.

“아 씨! 뭐야? 왜 치는 겁니까?”

“잿빛 산맥에서 혼자 사냥 가능? 갑자기 방향 바꾼 거 보니, 보나 마나 당신 먹자잖아! 아무튼, 우리 먼저 간다!”

이동용 소환 말은 이렇게 평타 한 방에도 바로 역소환된다.

반면 라이딩 스킬을 배워야만 하는 다이어 울프 같은 탈것은, ‘펫’이기에 공격받아도 해제되지 않았다.

그래서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최상위권 유저 중에는 그리폰 라이더라든지 페가수스 라이더 등도 존재했던 것이다.

녀석의 선제공격으로 정당방위 표식이 떴지만, 그래도 맞서 싸우지는 못했다.

여기서 녀석의 파티와 드잡이하면서 시간 낭비할 여유는 없다.

녀석도 그걸 잘 알기에, 과감히 화살을 날렸을 것이다.

‘길드도 없는 솔플러니깐 허접해 보였다 이거지? 아! 저런 꼬장 놈들 때문에라도 라이딩 스킬을 찍어야 하나?’

생각해 보니 나중에 그리폰 같은 공중 탈것을 구매해서 탄다면, 상당히 괜찮을 것도 같았다.

어쨌든 재빠른 몸놀림을 써 가며 발 빠르게 뛰어가다 보니, 어느새 숲속 길 사이로 태성 길드원 몇 명이 눈에 띄었다.

[은신!]

아직 놈들이 아이디를 변경한 나를 알아볼 리 없지만, 혹시 히든캬드나 라스트챤스가 나 몰래 퍼뜨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안전하게 은신을 쓴 상태로 놈들을 뒤따라갔다.

다행히 재빠른 몸놀림과 은신 둘 다 8성을 찍은 터라, 이제는 은신 상태여도 일반 유저들의 이속과 크게 차이 나진 않았다.

그렇게 하나둘씩 합류하는 태성 길드원들을 살펴보던 중, 뜻밖의 낯익은 아이디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대관식 날 내게 주성 건물의 입구를 열어주었던, ‘연우’ 님이었다.

* * *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연우님이라면 태성 2, 3군 길드에 속해 있지 않았었나? 그것보다 그때 내게 문을 열어 준 사람이 연우님이었으니 길드에서 쫓겨났어도 이상할 게 없는데, 오히려 1군으로 승격했다니……. 설마 날 들여보내 준 사실이 들키지 않았던 건가?’

문을 열어줄 때 본 게 마지막이었기에, 당시 연우님이 암살 사건 후에 어떻게 됐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막판에 적대 길드들이 물밀 듯이 들어왔던 것을 고려해 보면, 그녀가 태성 측에 있는 배신자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때 배신했던 게 분명하다면, 지금 여기 태성 1군 길드원들 사이에 껴 있는 그녀의 정체는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연우님이 바로 그 스파이구나! 지금 라스트챤스를 통해 내게 오크 로드를 제보해준 사람!’

정황상 확실해 보였다.

내게 신검을 먹게 해 준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연우님.

그 사람이 또다시 내게 도움을 주었다니, 왠지 묘한 인연으로 얽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아아!”

쾅! 쾅!

여러 상념이 가득한 채로 뒤쫓아가다 보니, 어느새 오크 로드가 있는 레이드 현장에 도착했다.

나무로 둘러싸인 널찍한 공터.

그 안에서 오크 로드를 둘러싼 백여 명의 유저들이 놈을 향해 쉴 새 없이 공격하고 있었다.

딱 봐도 레이드 하기 좋은 장소로 풀링(pulling)한 뒤, 한창 공략 중인 모양이었다.

태성 측 인원은 지금 막 도착한 유저까지 대략 70, 80명 정도로, 한 개 공격대 수준으로 보였다.

한데 놈들은 진행 중인 레이드에 합류하지 않고, 기존 유저들이 레이드하는 모습을 조금 떨어진 채 지켜만 보았다.

그렇게 태성 길드원들이 계속 합류하던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태성 길드원들이 레이드 현장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공격을 시작했다.

대상은 오크 로드가 아닌, 일반 유저들이었다.

“으악! 태성 떴구나! 결국 늦었어!”

“뭐야! 벌써 왔다고?”

“아! 개 같은 놈들! 보스 몹이 지들 거야 뭐야! 같이 잡으면 될 것 가지고!”

공터 이쪽저쪽에서 뒤치기를 시작한 태성을 향한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오크 로드, 뒤에서는 태성이 공격을 하는데 버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재빠르게 숲 쪽으로 빠지며 공격에서 벗어난 유저도 있었지만, 순식간에 절반이 넘는 유저들이 사망하며 전장이 점차 정리되었다.

‘확실히 가차 없구나. 하긴 아무리 2, 3억짜리 아이템이 드랍된다고는 해도, 100명이 나누면 얼마 되진 않을 테니까…….’

아무리 자기네 지역에서 뜨는 보스 몹이라고는 해도, 저렇게 먼저 레이드 중인 유저들을 막무가내로 뒤치기했다가는 지탄받을 게 뻔했다.

하지만 태성은 당연하다는 듯이 공격했고, 당하는 유저들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듯이 서둘러 못 잡았다는 것에만 아쉬워하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공성전과 대관식 등에서 보여줬던 태성의 화려한 이미지가, 사냥터에서 직접 맞부딪치는 고레벨 유저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다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자! 저희가 여기 도착한 이상, 이제 오크 로드는 저희 태성 겁니다. 뒤로 물러난 유저분들까지 공격하지는 않을 테니깐, 이제부터는 껴들 생각은 접으시고 그저 멀리서 구경만 하세요! 만약 레이드하는 중에 가까이 다가오거나 조금이라도 먹자의 기미가 보이면, 그 즉시 척살 명단에 올라가 겜 접게 될 겁니다! 미리 경고했습니다!”

양심 없는 멘트를 매너있는 척 외치는 기사, ‘동키호테’.

태성 길드의 부길마이자 서브 탱커로 유명한 거물이었다.

“으악!”

“이런 제길!”

놈들은 오크 로드에게 어그로가 끌렸던 유저들이 하나씩 전부 죽어 나가는 것을 차분히 지켜보았다.

그러는 한편, 곧 시작될 레이드를 일사불란하게 세팅했다.

‘급하게 되는 대로 모인 인원들일 텐데…….’

그런데도 마치 정식 공격대와 같이 각 잡힌 모습.

과연 타연 최강의 길드라는 명성에 걸맞은 정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자신을 공격한 유저들을 깡그리 몰살시킨 오크 로드의 어그로가 마침내 초기화됐다.

흑적색의 강철 갑옷을 입고 대형 배틀 액스를 들고 있는 4미터가량의 거대 오크.

두 눈에서 적색 안광이 희미하게 일렁였고, 어금니는 다른 오크들보다 2배는 더 길게 솟아있었다.

과연 오크 로드.

고레벨의 네임드 필드 보스답게 그 위엄은 차고도 넘쳤다.

“자! 알다시피 탱커진이 먼저 달려들어 어그로가 쌓일 때까지는 원거리 공격은 금지다! 메인 탱커는 내가 하고 부족장들을 맡을 서브 탱커는 신림동조커와 연우가 각각 상황 봐서 하나씩 맡아! 다들 알겠지? 유저들이 더 모이기 전에 바로 트라이 하겠다!”

“네!

[도발의 살기!]

동키호테는 오더가 끝나기가 무섭게 도발기를 시전하며 오크 로드에게 달려들었다.

“크어엉! 감히 나의 산맥에 겁도 없이 들어오다니! 인간들이여, 너희의 절규로 나의 분노를 잠재우겠다! 울부짖어라, 패배가 예정된 자들이여!”

선공을 당한 줌바카는 곧바로 크게 모션을 취하며 울부짖더니, 곧바로 수십 마리의 부하 오크들을 소환했다.

장비를 잘 챙겨입은 오크 투사, 오크 마법사, 오크 궁사들이 순식간에 공터를 꽉 채웠고, 그중에는 부족장 드룩찰과 쿤파타라는 중간 보스의 모습도 보였다.

‘확실히 레전더리를 떨구는 필드 보스답구나. 이 정도 소환 몹과 저 공격력이라면…… 동렙이어도 어지간한 공격대로는 힘들겠는걸? 근데 하물며 레벨도 더 높으니!’

라스트챤스가 왜 아직까진 공략법이 따로 없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태성은 이제까지 레이드에 몇 번 성공했던 모양인지, 체계적이면서 침착하게 분담을 잘 해냈다.

“쉴드!”

“힐!”

오크 로드는 동키호테 혼자.

부족장 2마리는 각기 신림동조커와 연우님이 어그로를 맡았는데, 그 세 명의 탱커를 향해 쉴드와 힐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그동안 소환된 오크 잡몹들은 나머지 전사들과 도둑, 궁수들이 하나씩 각개격파로 줄여나갔다.

워낙 체계적으로 레이드가 이루어지다 보니, 소환 몹들이 금세 정리되더니 부족장 2마리도 순식간에 잡혀버리고 말았다.

역시 태성 길드 1군.

어느 하나 베테랑이 아닌 길드원이 없어 보였다.

“건방진 인간 놈들!”

이제 남은 건 홀로 울부짖는 오크 로드 한 마리뿐.

처음 내가 도착했을 때가, 이렇게 소환 몹들의 정리를 막 끝냈던 지금 단계였던 모양이었다.

쾅! 쾅!

여전히 오크 로드는 동키호테를 도끼로 찍어대며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했지만, 레벨 차이가 크게 남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안정적인 탱킹을 유지했다.

‘아마도 태성의 부길마인 만큼 모든 방어구가 올 레전더리겠지? 거기다 공성전을 전문으로 하는 놈들이니 탱커들의 몸빵이 더욱 장난 아닐 테고.’

어느덧 공터 한가운데는 둘만 남겨졌다.

다른 레이드 인원들은 모두 뒤로 빠져 원거리 딜만 날리며, 오크 로드의 체력을 수월하게 깎아나갔다.

동키호테를 제외한 모두가 떨어져 있다 보니, 오크 로드가 아무리 광역기를 날려대도 맞는 유저는 동키호테 한 명뿐이었다.

‘저 상태로라면 금방 광폭화 구간으로 접어들게 되겠는걸?’

생각보다 빠른 진행에 잠시 고민하다, 결국 난 더 늦기 전에 연우님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나: 오랜만에 뵙네요 연우님. 안녕하세요?)

(연우: ? 실례지만 누구시죠?)

(나: 시간이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태성 내의 스파이, 연우님이 맞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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