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42화 (42/350)

42화 레드 드레이크 (1)

(축복받은얼굴: 레드 드레이크? 그걸 테이밍하겠다고? 네가 정말 제정신이 아니구나ㅋㅋ)

남들처럼 자잘한 몬스터나 테이밍할 거라면 굳이 이 스킬을 배우지 않았을 것이다.

최고의 무기와 캐릭을 갖추었으니, 최고의 몹에 도전할 자격은 충분했다.

(나: 나도 알아,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릴 거라는 거. 하지만 혹시 알아? 정말로 테이밍에 성공할지도? 따로 알아봤는데 태성의 슈마허도 보스급 그리폰을 테이밍해서 타고 다니더라. 내 생각에 이건 한 번쯤 도전해 볼만은 해.)

(축복받은얼굴: 얀마, 이건 테이밍이 되냐 마냐란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냐. 너 레드 드레이크가 얼마나 인기 많은 보스 몹인 줄 알아? 그거 뜨기만 기다리며 노리는 유저가 얼마나 많은데 그걸 뚫고 테이밍을 시도해 본다고? 그게 말처럼 쉽게 될 것 같아?)

타연 설정상, 다 같이 필드 보스라 불린다 하더라도 모두 같은 급은 아니었다.

오크 로드 줌바카와 같이 ‘네임’을 갖고 있지 못한 필드 보스는, 대개 준(準) 필드 보스라고 불리며 레이드 난이도가 상당히 떨어졌다.

그리폰 킹, 레드 드레이크, 트윈 헤드 오우거 등이 바로 대표적인 그런 케이스의 보스 몹이었다.

어쨌든 이런 비(非)네임드 보스 몹은 대부분 리스폰이 되면, 사냥 중이던 파티만으로도 종종 잡아내는 작은 선물 같은 몹이었다.

하지만 유독 레드 드레이크 같은 경우는 작정하고 찾아다니는 유저가 상당히 많았다.

요놈이 드랍률은 낮지만 굉장히 핫하고 비싼 걸 드랍했기 때문이었다.

‘레드 드레이크의 비늘’.

유니크급 재료 아이템임에도 불구하고 이 재료로 갑옷을 제작할 때면, 낮은 확률로 레전더리급이 만들어졌다.

이 레전더리급 갑옷은 당연히 옵션이나 스펙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외형 자체가 너무나 간지 났기에 모든 기사 계열 유저들의 선망의 템으로 등극했다.

현존하는 가장 멋진 외형의 갑옷으로 항상 이 레드 드레이크 갑옷 세트가 1순위로 꼽힐 만큼 말이다.

그렇게 값비싸진 재료 템 덕분에, 센츄라 화산지대에는 항상 레드 드레이크가 리스폰되기만을 기다리며 맴도는 유저들이 존재했다.

(나: 그러니깐 그나마 유저들이 없는 새벽에 보자고 한 거 아니야. 일주일. 딱 일주일 동안 새벽마다 2시간만 도와주라. 제일 먼저 발견한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어. 만약 그렇게 했는데 테이밍할 기회를 한 번도 못 얻는다면, 과감히 포기하고 다른 몹을 테이밍할게.)

(축복받은얼굴: 아... 이건 보나 마나 시간 낭비일 텐데...)

내켜 하지 않는 현중이를 겨우 다독여 새벽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나는 거래소로 향했다.

테이밍 몬스터에 필요한 재료인 ‘구속의 숨결’을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구속의 숨결(1): 개당 2,350골드]

[구속의 숨결(1): 개당 2,400골드]

……………………

‘헐! 뭐가 이리 비싸?’

테이밍에 쓰일 재료 아이템은 개당 20만 원이 넘어가는 가격으로, 생각 외로 상당히 비쌌다.

어지간히 드랍이 안 되는 아이템인지 복수로 올라온 매물은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게 된 이후로 가장 좋았던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무얼 하든지 돈 걱정만큼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어차피 남으면 다시 판매로 올리면 됐기에, 나는 20개가량을 쓸어 담듯이 구매했다.

원래 거래소에 들르게 되면, 빛나는 강화석도 구매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크 로드에게 얻은 강화석이 상당히 많았기에, 늘 하던 대로 빛나는 마력석의 매물만 사들이고 세팅한 뒤 분수대로 향했다.

바쁘게 진행됐던 오크 로드 레이드.

그 때문에 미뤄 뒀던 사파이어 반지가 강화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2 고대 뱀파이어 귀족의 사파이어 반지’를 강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역시 분수대!

요즘 강화하던 대로 따로 제물이나 강화 의식 없이 곧바로 질렀더니, 기존에 안전 강화로 2까지 강화해뒀던 반지 3개가 전부 3까지 뜨는 데 성공했다.

“좋았어! 확실히 저강화 구간에서는 실패가 잘 안 뜨는구나. 이로써 3짜리 쌍가락지는 확보!”

매물을 구하기 힘들고, 역시나 앞으로도 구하기 힘들 사파이어 반지.

이번처럼 운 좋게 여유 물량이 생기지 않는 이상, 향후 강화를 시도할 기회는 없었다.

그렇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반지에 강화석을 발랐다.

[‘+3 고대 뱀파이어 귀족의 사파이어 반지’를 강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3 고대 뱀파이어 귀족의 사파이어 반지’를 강화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3 고대 뱀파이어 귀족의 사파이어 반지’가 강화 실패로 파괴되었습니다.]

“크아! 이럴 수가, 벌써 깨지다니!”

무려 레전더리 반지가 파괴로 증발했기에, 절로 아쉬움의 탄성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어차피 1개가 파괴되는 건 처음부터 감수했던 일.

만약 가진 반지가 오직 2개뿐이었다면 둘 다 2에서 멈췄어야 했던 강화 수치가, 그나마 3과 4로 마무리됐으니 나름 괜찮은 결과였다.

강화로 인해 반지의 순수 옵션에서 추가된 수치는 각각 0.6%와 0.8%.

이로써 나는 이 사파이어 쌍 반지 덕분에 도합 5.4%라는 높은 마나 흡수율을 갖게 되었다.

신검의 막대한 공격력, 그리고 그 공격력의 5.4%만큼 마나를 흡수하는 액세서리.

마지막으로 데미지를 75%나 경감시키는 8성 마나 쉴드.

처음 내가 구상했던 테크트리의 선순환 구조가 드디어 완성되었다.

여기에 생각지도 못했던 불굴의 용맹함 효과까지……!

테이밍을 하려면 그 몬스터를 일대일로 상대하며 시도해야만 가능하다고 했던가?

하지만 문제없었다.

설령 보스 몹이라 할지라도, 이제 난 충분히 혼자 잡아낼 수 있는 괴물이 돼버렸으니!

* * *

새벽 일정에 대비해서 일찍 로그아웃하고 잠시 TV를 틀었다.

항상 고정된 타이토닉TV 채널에서는 마침 라이브 저녁 방송이 방영되고 있었다.

요즘 많이 변한 나였지만, 이렇게 짬 날 때마다 타이토닉TV를 시청하는 습관만큼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사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즐겨 하지 않는 내게, 이 방송은 타연속 이슈들을 알려주는 창구이기도 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분’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이렇게 도둑 랭킹 7위에 빛나고 계신 도닥통 님을 스튜디오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도닥통 님!』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도둑은 닥치고 뒤통수만 치자의 도닥통, 인사드립니다!』

마침 상큼하고 발랄한 20대 여자 앵커 양민아와 30세가량의 다크서클이 짙은 안경 낀 남성의 토크쇼가 막 시작되었다.

도닥통.

그는 무(無)길드 상태로 랭커를 달성한 채, 오랜 기간 그 자리를 사수하고 있는 유명한 유저였다.

특히 커뮤니티 사이트나 공식 홈페이지에 공략과 정보 글을 많이 올려, 수많은 타연 유저들에게 그 내공 또한 인정받는 랭커.

나도 저 사람의 정보 글을 몇 번이나 참고한 적이 있어 익숙한 유저인데, 내가 알기로 이렇게 방송에 출연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3주 전 번스타인 공성전에서 태성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그분이, 오늘 갑자기 오크 로드 레이드에 등장해 온종일 화제였는데요, 도닥통 님께서는 오늘 사건을 어떻게 보셨나요?』

『아무래도 잠수를 타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죠? 이제는 많은 분이 아시다시피 신검은 교환이 불가능하다고 밝혀졌죠. 내가 만약 그분이었다면 그런 신검을 가지고 그동안 무얼 했을까? 저는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글쎄요? 아마 어떻게든 신검을 판매해 보려고 이리저리 방법을 알아보지 않았을까요? 아무래도 직접 사용하기에 엄청나게 부담인 아이템일 테니 말이죠.』

『땡! 아쉽지만 틀렸습니다. 그럴 사람이었다면 이미 진작에 공성전 전에 팔아버렸을 겁니다. 제가 내린 결론, 그건 바로 ‘그동안 미친 듯이 레벨업 했다’입니다.』

『레벨업이요?』

『공성전 때 보여줬던 그 사람의 쇼맨십을 모두가 똑똑히 보지 않았나요? 그 사람은 전형적으로 유명해지고 싶어 안달 난 유형이 분명합니다. 그러기 위한 제물로 태성이란 거대한 적을 어그로로 사용한 것이고요.』

『확실히 평범한 유저답지 않은 행동이기는 했죠?』

『그렇게 어그로를 끈 다음에 무엇을 했을 것 같습니까? 다음 차례로 자신의 아이디를 랭커 목록에 올리고 싶지 않았을까요? 아마 그러기 위해 지난 3주간 인던 같은 곳에 숨어서 미친 듯이 레벨업했던 게 분명합니다.』

『그러고 보니 인던에만 있었다면 그동안 눈에 띄지 않았던 이유는 설명되는군요!』

엥? 아닌데? 난 레벨업은커녕 레벨 다운을 했고, 아이디는 오히려 변경해 버렸는데?

나름 좋아했던 유저인데, 멀쩡한 나를 관종 취급하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모두가 공성전에서 보셨다시피 타이탄의 위력은 엄청났죠. 그런데 요 3주 동안 타이탄을 보았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한 번이라도 소환했다면 분명히 어딘가에서 눈에 띄었을 텐데 말이죠.』

『그러네요? 그 엄청났던 타이탄을 왜 봉인하다시피 감춰뒀을까요?』

『한데 오늘 갑자기 오랜만에 등장해서 타이탄으로 오크 로드를 레이드했죠. 이 사실이 뭘 의미하는 거 같습니까, 양민아 씨?』

『그, 글쎄요? 설마 소환에 무슨 특별한 조건이라도 필요한 걸까요?』

『땡! 또 틀렸군요 양민아 씨. 정답은 타이탄을 소환하는 데에 무척이나 오랜 쿨타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오버스펙을 자랑하는 타이탄을 왜 3주 동안이나 안 썼을까요? 그건 쓰고 싶어도 못 쓰는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겁니다. 아마도 강력한 위력만큼이나 소환 쿨타임이 엄청나게 길지 않았을까요?』

『아! 듣고 보니 그렇네요! 타이탄을 굳이 묵혀둘 이유는 없으니까요!』

『이 모든 추측을 종합해 봤을 때, 그 사람은 그동안 레벨업만 하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신검을 들고 있으니 레벨업하기는 또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아, 아닌데? 타이탄 소환 쿨타임은 24시간, 길어야 100시간밖에 되지 않는데?

도대체 저 사람이 랭커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어째 말하는 것마다 모조리 허당이었다.

『역시 올타 팁게의 마스터다우신 추측이세요! 도닥통님, 그렇다면 이제 그분이 보일 다음 행보는 어떻게 될까요? 혹시 예측되는 것이라도 있으신가요?』

『3주간의 잠수를 끝내고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는 건, 더는 숨지 않고 앞으로 본격적으로 활약해 보겠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아마 도둑 캐릭의 묘미를 충분히 살리며 플레이하지 않을까 싶군요.』

『도둑 캐릭의 묘미요?』

『네. 가뜩이나 딜러로 특화된 도둑 캐릭으로 엄청난 공격력의 신검까지 들고 있는 상태잖아요? 이건 타연 역사상 최강의 암살 캐릭이 탄생한 거나 마찬가지란 소리입니다. 물론 도둑의 가장 큰 약점은 허약한 몸빵이기에, 그분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철저히 경계할 겁니다. 하지만 태성 길드와 싸우겠다고 선포했으니 싸우기는 할 텐데……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죠.』

『그 말씀은 역시 필드 PK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아마 태성의 솔플 유저들을 대상으로 뒤치기를 시작할 겁니다. 철저히 다대일 전투는 배제하면서 말이죠. 사실상 그 사람이 보여줄 플레이는 뻔한 건지라, 크게 재밌는 활약을 보일 것으로는 기대가 되진 않습니다. 그저 신검을 주운 당사자가 베일에 싸여 있어 궁금할 뿐인 거죠.』

“저 사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어떻게 말하는 것마다 이렇게 맞는 게 하나도 없는 거지?

내가 그따위 소극적인 플레이를 할 생각이었다면, 굳이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태성과 싸우겠다고 공언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문가랍시고 나와서 저렇게 오답만 말하는 것도, 정말 재주라면 재주였다.

『애초에 도둑이란 캐릭은 한계가 명확합니다. 이건 제가 랭커까지 키워봤기에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암살만큼은 최적화되어 있지만, 그건 다시 말해 암살 말고는 할 게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사나 성기사 같은 캐릭이 신검을 먹었다면 엄청났을 텐데, 하필이면 도둑이 신검을 먹어서 두고두고 아쉽네요.』

『도닥통 님, 그 발언은 그분이 신검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인 건가요?』

『네. 자신 있게 모습을 드러낸 이상 그분이 또다시 잠수를 탈 확률은 높지 않겠죠. 그렇게 가정한다면 저는 딱 1달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유저들의 추적 끝에 그분이 신검을 드랍하기까지 걸릴 시간을요! 그것도 그분의 역량이 제법 높다고 가정해서 최대한 길게 쳐준 기간입니다.』

참 끝까지 가지가지 하는 놈이었다.

모든 것을 본인 기준으로만 생각해서 나에 대한 평가를 마음대로 내리고 있었다.

듣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지만, 생각해보면 이번 방송은 오히려 내게 이득이었다.

저런 평가 덕분에 나에 대한 방심이 생길 수도 있으니.

하지만 현재 도둑 랭킹 7위라는 랭커의 사고 수준과 상상력이 고작 저 정도라니…….

최근 라스트챤스나 연우님의 저력을 보고 살짝 긴장했는데, 저 랭커를 보니 다시금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고정관념에 빠져있는 타연이란 세계에, 내가 얼마나 큰 충격을 안겨주게 될 지란 기대가!

* * *

(나: 밤샜냐?)

(축복받은얼굴: 뭘 새삼스럽게 그래, 내가 언제 새벽에 게임 안 하고 있었던 적 있었냐?)

(나: ㅋㅋ 하여간 진성 폐인이라니까. 접속했으니깐 얼른 센츄라로 와라. 난 먼저 가서 둘러보고 있을게.)

(축복받은얼굴: ㅇㅋ 곧 가마)

새벽 4시.

타연에 인생을 건 진성 게임 폐인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로그아웃해 사냥터가 한적한 시간이었다.

캡슐의 인공 지능은 유저의 바이오리듬을 수시로 체크한다.

그래서 유저가 많이 피곤하거나 졸린 상태가 되면, 로그아웃을 경고하다가 급기야는 접속을 강제로 끊어버리곤 했다.

새벽이 특히나 한가한 이유이기도 했는데, 나는 그걸 방지하고자 이렇게 새벽에 로그인할 때는 꼭 쪽잠이라도 잔 다음 접속했다.

“아마…… 이번 기회가 아니라면 앞으로 레드 드레이크를 테이밍한다는 건 불가능하겠지?”

나는 처음부터 레벨업이 더뎌지는 순간에 다다르면, 타이탄을 레벨업이나 보스 몹 레이드에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내가 아이디를 변경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테고, 그 후에는 이렇게 필드를 당당히 거닐 수 있는 건 꿈도 꿀 수 없게 된다.

즉 다시 말해.

내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지금이, 어쩌면 레드 드레이크 테이밍을 시도해 볼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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