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레드 드레이크 (2)
하지만 테이밍이 어려운 만큼이나 장점도 있었다.
일단 드레이크란 놈을 나 말고 혼자 사냥이 가능할 정도가 되려면, 지금보다 평균 레벨이 200은 높아질 때쯤에나 가능할 것 같았다.
한데, 그때가 된다 하더라도 이 레드 드레이크의 레이드 인기가 식었을 리 만무했다.
그러니 만약 내가 이 레드 드레이크를 테이밍하는데 성공한다면, 향후 몇 년간은 오직 나 혼자만이 이 간지 나는 비행 몹의 주인으로 활약할 게 분명했다.
물론 그 후에도 여전히 드레이크 라이더는 굉장히 희귀할 테고 말이다.
[로젠타스 성 동부, 테라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새벽 시간임을 고려하더라도 유저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로젠타스 령에 속한 센츄라 화산 지대는 제법 고레벨 지역.
거기에다 몹들의 체력과 공격력이 상당히 강한 편이라서, 파티 사냥을 강요하는 사냥터인 탓이었다.
하지만 보스 몹을 잡기 위해 리스폰을 확인하는 일, 유저들이 흔히 말하는 ‘순찰’을 돌기에는 아주 최적화된 곳이었다.
모든 부분에서 단점이 없는 몬스터들만 있다면 그 사냥터는 필연적으로 버려질 수밖에 없다.
센츄라의 몹들은 체력과 공격력이 강한 대신, 대부분 이속이 느려터진 몹들이거나 이동 불가의 페널티가 있었다.
가장 빠른 불꽃 도마뱀이 그나마 조금 빠른 편이었으나 그마저도 일반 마법사 유저의 이속보다도 느렸다.
그중 레드 드레이크만 유일하게 빠른 이동속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레이드를 노리는 고레벨 유저들은 다른 몹은 무시한 채 화산 지대를 종횡무진으로 휩쓸며 다닐 수 있었다.
운 좋게 먼저 발견하게 되면 몹이 없거나 눈에 안 띄는 곳으로 이동해서, 다른 순찰 중인 파티원과 합류해 잡아내는 나름의 레이드 방식.
사냥터를 대충 훑어보니 간혹 대량의 몹을 끌고 다니며 빠르게 이동 중인 유저들 몇 명이 눈에 띄었다.
‘이거 생각보다 힘들겠는데? 레드 드레이크와 일대일 상황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저렇게 많은 순찰자들 중에서 내가 최초로 발견할 수 있으려나?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구나.’
미리 조사한 바에 따르면 레드 드레이크의 리스폰 시간은 8시간에서 16시간 사이.
나는 혹시나 저번 레이드 타임을 알 수 있을까 싶어, 마침 내 앞을 지나가는 기사 유저에게 다가가 물어봤다.
“님!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혹시 저번 드레이크가 언제 떴었는지 알고 계세요?”
“네? 님 여기 처음 오셨어요? 그걸 누가 알려줘요? 풋!”
떠글놈.
놈은 끌고 다니는 몹들 때문인지 짧은 비웃음만 남기고 바로 자리를 떴다.
현중이의 말이 맞았다.
레드 드레이크를 테이밍하는 일은, 그게 가능하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라 최초 발견이 가능하냐 마냐의 문제였다.
더군다나 발견해도 남은 문제가 있었다.
테이밍을 시도하는 와중에 다른 순찰하던 유저들이 발견해서 같이 공격하기라도 한다면, 테이밍은 곧바로 불가 판정이 뜰 것이 분명했다.
여러모로 상당한 운빨이 따라줘야지만 테이밍에 성공할 것 같았다.
의욕적으로 왔음에도 금방 의기소침해졌을 때쯤, 현중이가 도착했다.
“어떠냐? 직접 돌아보니 소감이 내 말대로 장난 아니지?”
“무슨 사냥하는 유저들보다 순찰하는 유저가 더 많은 사냥터는 처음 본다. 새벽인데 왜 이렇게 순찰하는 유저가 많은 거야?”
“비늘이 좀 비싸졌어야지. 운 좋게 그거 하나 먹으면 천만 원을 넘게 버는데, 눈이 안 돌아가겠냐? 게다가 여긴 사냥터 통제하는 길드도 없어서 아무나 다 달려드는 곳이니깐 더 심한 곳이야.”
“현중아. 계획대로 내가 테이밍 시도하는 동안 니가 잘 막아 줄 수 있겠냐? 그것도 안 되면 그냥 빠르게 포기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한데…….”
“원래 보스 레이드라는 게 먼저 발견한 파티에 우선권이 있는 게 맞긴 해. 근데 이 레드 드레이크 같은 준 보스급들은 보게 되면 다짜고짜 딜부터 넣어서 루팅권을 얻는 게 국룰이라서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그렇지?”
“뭐 일단 우리가 먼저 발견하면 내가 최대한 대화하거나 공격해서 막아보긴 할 텐데, 아마 둘 이상이 한꺼번에 달려들게 된다면 힘들 거다. 알아 둬라.”
어차피 누군가가 먼저 발견한 드레이크는 내게 의미 없었다.
그저 우리가 먼저 발견한 드레이크에 누가 끼어드는 것만 신경 쓰면 될 일.
하지만 그것마저도 상당히 어려워 보였다.
“일단 돌아보자. 돌면서 지형과 분위기를 파악해서 전략을 짜보든가 해야겠어. 정 공격으로도 안 통하면 돈을 준다고 하는 건 어떨까? 껴들지 않으면 1만 골드를 주겠다는 식으로 말이야.”
“아주 돈 지랄이 나셨구나! 크크, 개 짠돌이였던 자식이 도대체 언제 이렇게 통이 커진 거야? 근데 나쁘지는 않은 생각이네. 그게 통할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어.”
그렇게 우리는 화산 지대의 맵 파악에 나섰다.
처음에는 서로 조금 떨어져서 따로 순찰했는데, 곧 전략을 바꾸었다.
생각보다 순찰 도는 유저가 너무 많아,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반응해야만 테이밍을 시도할 각이 보여서였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몹은 한 마리도 잡지 않은 채, 같은 맵만 3바퀴나 돌았다.
그러다 보니 긴장감이 풀어질 뿐만 아니라 살짝 지루해지기까지 했다.
“와, 순찰 도는 애들은 이걸 어떻게 매일같이 하고 있냐? 대부분은 구경도 못 하고 허탕만 칠 텐데?”
“지환아, 이제 알겠냐? 네 말대로 하루에 두 마리 정도 뜨는 걸 어떻게 제일 먼저 발견하겠어? 그냥 오늘만 해보고 접자. 이거 아무리 생각해봐도 시간 낭비야. 절대 성공 못 할걸?”
“짜식아, 얼마나 돌았다고 벌써부터 그런 소리 하냐? 너 자꾸 그러면 나중에 내가 안 태워준다?”
“응? 뭘 태워줘?”
“뭐긴 뭐야 레드 드레이크지! 크크크.”
“또 또, 우리 지환이 김칫국 드링킹하기 시작했구만? 어라? 뭐야 저거……. 미쳤다, 떴잖아!”
“얀마, 순찰 돌 때만큼은 그런 장난은 치지 마라. 형 간 떨어진다.”
“장난은 무슨! 빨리 안 붙어? 사람들 꼬이기 전에 어서 붙어!!”
농담 따먹기를 하던 녀석이 정색하자, 뒤늦게 고개를 돌려봤다.
그러자 정말로 거짓말처럼, 방금 지나온 자리에 레드 드레이크가 떡하니 서 있었다.
족히 4미터는 넘어갈 것 같은 높은 체고에 사나운 얼굴.
체고의 2배는 훌쩍 넘어갈 듯이 거대한 피막 날개.
대지에 흐르는 마그마가 반사되어 붉게 번들거리고 있는 녀석의 비늘까지!
녀석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화염 덩어리가 웅크리고 있는 것 같이, 강렬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딴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외형에 감탄하고 있을 시간에, 1초라도 빨리 누군가 다가오기 전에 테이밍을 시도해 봐야만 했다.
“대, 대박! 현중아 나 곧바로 칠 거니깐 블로킹 좀 제대로 부탁한다!”
“오키오키, 얼른 쳐! 와, 일주일 동안 구경도 못 할 줄 알았는데 첫날에 바로 만나네! 하여간 넌, 운 더럽게 좋은 새끼야!”
테이밍 몬스터 스킬의 첫 번째 조건.
스킬을 사용하려면 몬스터의 체력이 10% 이하로 내려갔을 때만 시전이 가능했는데, 무조건 일대일 전투만으로 그 상태를 만들어야 했다.
이 조건이 강한 몬스터를 테이밍하려고 시도할 때, 가장 어렵고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내 주인이 되려면 나와 정정당당히 싸워 이겨라! 그래야만 자격이 있다!
뭐 이런 콘셉트로 만들어진 조건 같았는데, 알아보니 이것 때문에 테이밍할 수 있는 몬스터의 종류는 알아서 제한되고 있었다.
필드 보스 몹은커녕, 오우거라든지 바실리스크같이 펫으로 삼기에 더없이 좋을 몹들도 이 조건 때문에 꼬실 수 있는 유저가 드물었다.
운 좋게 혼자서 잡아낼 만하더라도, 테이밍 스킬을 시전하는 10초간의 캐스팅이라는 어려운 관문이 남아있었다.
그 긴 캐스팅 시간 동안 일방적으로 맞으면서 혼자 버텨내야 한다니?
간혹 보이는 테이밍된 몹들 중에서 강한 몬스터를 보기 힘든 이유였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조건들을 완벽하게 충족시킨 상태.
최초로 발견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힘든 조건이었는데, 운 좋게 처음 온 날 바로 앞에서 뜨다니!
오래간만에 내 심장이 빠르게 두근대기 시작했다.
“키에엑!”
퍼엉!
[마나 쉴드가 2,212의 마법 피해를 흡수합니다.]
녀석에게 다가가자 어그로가 끌렸는지 나에게 고개가 돌려지는 순간, 곧장 주둥이로 화염구를 쏘아냈다.
드래곤의 브레스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나름 상당한 강력해 보이는 원거리 공격.
[재빠른 몸놀림!]
[그림자 밟기!]
[은밀한 일격!]
[연속 베기!]
일단 자버프부터 돌리고, 날아오는 화염구를 그림자 밟기로 피하며 놈에게 붙었다.
그런 다음 강력한 스킬들을 쏟아붓기 시작하자, 놈도 앞발을 휘두르며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마나 쉴드가 683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720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1,514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확실히 준 필드 보스다운 강력한 평타!
간혹 이빨로 물어뜯는 공격에 맞을 때면 2배가 넘는 강력한 데미지도 들어왔다.
하지만 그래 봤자 광폭화된 오크 로드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공격력이었다.
이미 내 MP 수치는 3만을 넘어섰기 때문에, 시뻘건 색으로 위험을 알리는 녀석의 네임바가 되려 초라해 보일 지경이었다.
[약점 포착!]
조금씩 닳고 있던 MP가 약점 포착을 사용하니 순식간에 거꾸로 차올랐다.
‘와, 미쳤다! 진짜 마나가 쭉쭉 차는구나!’
이미 무게 게이지를 높여 HP 수치를 25%로 맞춰 놓고 왔기에, 불굴의 용맹함 효과로 공격력이 뻥튀기된 상태.
그런데 약점 포착으로 한 번 더 뻥튀기를 시키니, 마나가 미친 듯이 흡수됐다.
반면 녀석의 체력바는 마치 캐스팅이 긴 마법 스킬을 연달아 맞는 것처럼 쭉쭉 줄어들고 있었다.
‘벌써 절반이나 깎였어. 확실히 준 필드 보스에다 비행 몹이라 그런지 피통이 많진 않아! 하긴 소수로도 잡을 만하니 소수로 순찰 도는 유저가 이렇게나 많았겠지?’
이 정도 속도라면 10%까지 앞으로 20초.
캐스팅 시간까지 딱 30초만 버텨내면 테이밍에 성공할 수 있었다.
남아있는 MP의 양을 봤을 때, 캐스팅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버티고도 남았다.
“와! 이번 타임은 여기에 떴구나!”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지만,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
갑자기 들려온 다른 유저의 목소리에, 가슴이 그만 덜컥 내려앉았다.
“다, 다가오지 마세요! 계속 다가오면 치겠습니다!”
“치긴 뭘 쳐요? 드레이크 레이드에 독식이란 게 말이나 됩니까? 길드전 하고 싶으시면 치시든가요!”
저 멀리서 기사와 힐러 두 명이 다가오더니, 현중이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내가 치고 있던 레드 드레이크에게 붙었다.
이런 일을 많이 겪어봐서 익숙한지, 곧바로 길드를 운운하며 현중이의 대응을 제약시켰다.
“안 돼! 치지 마요! 치지만 않으면 돈 드릴게요, 1만! 아니 2만 골드!”
“하! 골드는 무슨!”
황급히 돈으로 달래 봤지만, 그 두 놈은 그대로 내가 치고 있던 드레이크에게로 다가와 검을 날렸다.
“안돼 이 자식들아! 이게 어떻게 잡은 기회였는데!!”
“뭘 그리 흥분하고 그래요? 우리도 일주일 만에 겨우 공격해보는 드레이크구만!”
“와, 근데 혼자 딜해서 피를 절반이나 깎은 거야? 못 보던 아이디인데 엄청 고렙인가 본데?”
“옆에 망보던 성기사가 힐이랑 버프 줬겠지!”
속 타는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녀석들의 참전으로 레드 드레이크의 HP는 순식간에 딸피를 향해 떨어졌다.
그렇게 10% 미만으로 떨어지는 순간, 테이밍 몬스터 스킬을 연달아 시전해 보았으나…….
[스킬 사용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스킬 사용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캐스팅은 발동조차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