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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59화 (59/350)

59화 첫 현금화 (2)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저희 아인 테크에서는 모든 캡슐 제품을 오직 정가로만 판매하고 있습니다!”

“아니 형은 무슨 그딴 소리를 하고 계세요! 아무튼 아재들이 개그 욕심 부리는 거, 진짜 이해가 안 간다니까!”

워낙 고가에다 한정 수량만 판매하는 캡슐이라, 잠깐이지만 속아버렸다.

물론 도시 괴담과도 같은 이곳의 옛 악명이 번뜩 떠올라서 그런 것이기도 했지만.

“깜짝 놀랐잖아요, 사장님. 아무튼 일단 제품부터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워낙 핫한 제품에다 전국적으로 예약된 수량도 많았지만, 우리 매장은 제법 큰 편이라 5대를 배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벌써 3대나 나갔지만, 현중이가 꼭 사겠다고 신신당부를 해서 1대는 따로 빼뒀죠.”

“말씀드렸잖아요 형. 제 친구 중에 랭커를 목표로 하는 놈이 있다고요. 그놈이 얘예요.”

“어휴, 아무리 그래도 가격대가 있는 제품인데…… 젊은 나이에 대단하네요.”

“아……. 제가 운 좋게 레전더리 템을 하나 먹게 돼서요. 그래서 생각지도 못하게, 이렇게 벼려만 오던 TX를 구입하게 됐네요. 마침 PRO버전이 새롭게 출시된다고도 해서요.”

“역시 인생역전의 아이콘, 타연이군요! 그래도 타연으로 번 돈을 타연에 재투자한다는 것만도 정말 대단한 겁니다. 보통 평범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질 못하거든요.”

“형. 딴소리는 좀 그만하시고 이제 캡슐 좀 보여줄래요? 당연히 시승은 가능하죠?”

“시승 전에 일단 싱크로율 체크부터 해볼까요? 접속을 정교하게 세팅하려면 BVI 수치부터 좀 알아야 해서요. 괜찮으시죠?”

“당연한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장님.”

모든 사람의 뇌파와 신경 반응 속도는 천차만별이라고 할 만큼 상이하다.

캡슐을 통해 가상현실에 접속했을 때 뇌파의 연동 반응을 데이터화한 수치, BVI.

시각만 제공했던 초창기 VR과는 달리, 오감을 느낄 수 있는 가상현실 게임에서는 이 BVI 수치가 캡슐 기계와 잘 연동될수록 싱크로율이 높았다.

캡슐에 굳이 급이 나누어져 있는 이유.

가장 평균적이면서 대표적인 3가지 BVI 수치로만 세팅할 수 있는 DX와 달리, TX는 256가지의 세팅 값을 제공했다.

쉽게 말하자면 3가지 사이즈 밖에 없는 기성복을 입다가, 내 몸에 딱 맞는 맞춤복을 사 입는 것과 비슷한 셈.

그중 이번에 출시된 PRO버전은 사용자의 BVI 수치와 접속 데이터를 자체적으로 누적 분석하여, 더욱 정교하고 일체화된 플레이를 제공한다고 광고했다.

‘괜히 헛돈 쓰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아니다. 여기까지 와서 또 돈 생각이냐 강지환? 앞으로는 가성비란 개념을 잊어버려야 한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냐!’

3년 만에 수치 체크를 위해 측정 머신에 누워있자니, 잡생각이 떠올랐다.

타연 전체 게이머의 90%는 DX로 게임을 플레이 중이다.

그 말은 3가지 세팅 값만 제공하는 DX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뜻.

나 또한 처음부터 쭉 DX로만 게임 해왔지만, 한 번도 불편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그저 돈만 투자한다면 조금이라도 개선될 하드웨어적인 여지가 남아있기에, 굳이 사냥하기에도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이곳에 찾아온 것이었다.

“오케이 BVI 수치 측정 완료. 지금 바로 시승해 볼 수 있도록 세팅할 테니 5분만 기다려줘요. DX였으면 아마 스마트 버전 베타 타입으로 플레이했을 수치네요.”

“네, 맞습니다, 사장님. 역시 잘 아시네요.”

이미 판매가 예약된 제품이라 누구도 시승하지 않았던 탓에, 첫 세팅 준비에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그 모습을 보고 현중이도 맘이 동했는지, 사장님에게 말을 건넸다.

“형, 저도 한 개 남은 TX 캡슐에 접속해 봐도 돼요?”

“응? 함께 타이탄 연대기에 들어가 보려고?”

“네.”

“물론 아직 한 대가 더 남아있으니까 시승이야 가능하지. 다른 사람도 아닌 넌데 말야. 그러고 보니 기왕 먼 곳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왜 이렇게 비싼 건지 제대로 한번 느껴보고 갈래?”

“오예! 전 BVI 수치 정확히 알고 있으니까 그럼 바로 세팅해줘요!”

천만 원이 넘어가는 FX를 쓰는 현중이지만, 아무래도 TX, 그것도 최상급인 프로 버전을 경험해본다니까 설레는 모양이었다.

하긴 아주 조그만 차이를 위해 1억 정도를 투자하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 이 TX-PRO버전이 어떤 느낌인지 평생 경험해보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더구나 아무나 시승시켜줄 수 없는 캡슐 제품이니 더더욱.

“지환아, 나 먼저 들어가서 방 잡아 놓을 테니 귓말 줘라!”

“어. 어디로 잡을 거야?”

“칼젠 성에 잡아 놓을게!”

급히 캡슐을 닫고 접속하는 현중이의 모습을 보고는, 사장님이 말했다.

“저 자식 고렙은 고렙인가 보네. 칼젠 성 지역에서 사냥하고 있는 걸 보니…….”

“아, 사장님께서도 타연 하고 계세요?”

“그럼요. 캡슐점 사장이 타연을 안 하면 말이나 되나요? 애들도 다 키웠겠다, 매일 퇴근 후에는 친구놈들과 같이 플레이 중입니다. 그러고 보니 큰아들놈은 요즘 산드로인가? 그 도둑놈한테 푹 빠져서 도둑으로 새로 키우고 있던데…….”

“네, 네? 아…… 그 신검 주운 도둑이요?”

“네. 아주 인생 제대로 핀 놈이죠. 어휴, 저 같은 놈은 이렇게 캡슐 하나 팔아가며 조금씩 돈 벌고 있는데…… 인생 참 불공평하네요. 그렇죠?”

“아, 네 네. 헤헤.”

왠지 사장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예전 주머니 노가다에 한창이던 시절이 떠올랐다.

‘사장님도 언젠가는 대박이 찾아오실 거예요.’

잠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세팅이 완료되어, 캡슐에 들어가 접속했다.

-라라 랄라라.

로그인 때마다 늘 들어온 바람 정령 노랫소리.

그게 왠지 심상치 않았다.

바로 어제까지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마치 콘서트홀에서 실제 공연을 듣는 듯한 생동감과 입체감이 전해진 것이다.

“와, 미친……. 이거 개쩌는데?”

[타이탄 연대기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즐거운 모험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로그아웃했던 칼젠 주성의 문을 열고, 우선 성안 광장으로 나가 보았다.

내리쬐는 햇볕.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산들바람.

성벽 바깥 멀리에서 들려오는 외성 마을의 종소리…….

모든 것이 새롭고, 또 놀라웠다.

“그, 그동안 같은 게임을 해왔던 게 맞긴 맞는 거야? 이거 싱크로율이 높아지니까 완전 다른 겜을 하는 수준이잖아?”

돈 있는 유저들은 그동안 타연을 이렇게 해왔단 말인가?

설마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어라며 3년 전에 출시됐던 가장 하급 캡슐을 계속 써 온 것이, 미친 듯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축복받은얼굴: 어디야, 외성 마을 여관으로 빨리 와 봐.)

(나: 어.... 잠깐 놀라고 있었다. 바로 갈게)

재빠른 몸놀림을 사용하고 여관을 향하면서도, 감탄은 멈추지 않았다.

현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도, 내가 의도한 위치를 단 1mm도 어긋나지 않고 밟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현실 속 내 몸보다도, 이곳의 몸이 훨씬 더 컨트롤이 잘 되는 것 같았다.

여관에 도착한 뒤.

테이블 밑에 현중이가 떨궈 둔 열쇠를 주워들고 가상 개인 공간인 여관방 안으로 이동했다.

“왔냐? 야, 진짜 TX 버전. 이거 기가 막히지 않냐? FX따위는 비교가 안 되는데?”

“얀마! FX 쓰던 놈이 그런 소릴 하면 DX 스마트 쓰던 놈은 어떻겠냐? 진짜 미쳤다 미쳤어! 내가 왜 몇 달 동안이나 캡슐을 안 바꾸고 있었던 거야?”

“그러게 내가 돈 아까워하지 말고 얼른 바꾸라고 진작부터 말했잖아. 어때, 소감이 어떤데?”

“군대에서 행군할 때, 완전 군장 했던 거 기억나냐? 20kg 넘던 거.”

“그럼! 아주 생생하지.”

“그 군장을 차고 있다 벗어버린 느낌이야. 완전 날아갈 것만 같다 진짜!”

“짜식! 또 오버하네.”

“오버는 무슨? 그럼 대결 한번 해볼래?”

“오냐. 바라던 바다, 짜식아.”

일대일 대결.

일루전이 유저들이 자유롭게 PvP를 경험해 볼 수 있도록 만들어둔 시스템.

사망 대신 HP가 1이 되면 종료됐기에, 안전지대인 마을에서도 유저들이 결투 중인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여관 방안은 인스턴트 공간답게 생각보다 넓었기에, 간단히 결투를 해보는 데는 지장 없었다.

“근데 너 뭐냐? 내가 빌려준 레전더리 검은 어쨌어? 설마 떨궜어?”

“응? 사자왕의 검? 무슨 소리야, 지금 내가 들고 있는 게 그거잖아?”

“이런 미친 새끼! 무슨 장검 외형 변경을 우산으로 해놓는 놈이 어딨어 이 자식아!”

예전의 흰색 정장 대신 검은색 정장과 검정 페도라를 입고 나타난 현중이.

거기까지는 그러려니 이해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데 녀석이 결투를 위해 빼든 검이 화려했던 미스릴 장검이 아닌, 돌돌 잘 말려있는 검정 ‘장우산’으로 변해버린 모습을 보니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이 자식, 렙업만 죽어라 하느라 여전히 유행을 모르는구나? 이게 요즘 얼마나 핫한 외변템인데 몰라봐? 정장이랑도 찰떡으로 어울려서 꽤 비싸게 구해서 변경한 건데!”

“진짜 갈수록 가관이구나. 됐다. 내가 뭔 말을 한들 네가 변하겠냐? 나중에 돌려줄 때 외형 복구나 하고 돌려줘라.”

“복구 안 하는 게 더 비쌀 텐데? 장우산 컬렉션이 얼마나 비싼 건데 그냥 날려버려?”

“됐다고 이 자식아! 얼른 결투나 쳐 거세요!”

“새끼, 급발진은 하여간. 알았다. 제대로 할 거니까 긴장 빨아라?”

[‘축복받은얼굴’ 님이 결투를 신청합니다. 수락하겠습니까?]

[YES]

[‘축복받은얼굴’ 님과의 결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연속 베기!”

결투가 시작되자마자, 현중이는 자신만만하게 다가와 익숙한 스킬부터 사용했다.

하지만 난 콧대가 닿을 듯 말 듯, 그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버렸다.

[방패 후려치기!]

이어진 녀석의 공격.

하지만 방패가 딱 닿기 직전, 난 그림자 밟기로 녀석의 공격을 피하며 뒤를 잡았다.

휙, 연속 베기!

먼저 휘두른 평타 공격이 녀석의 옷깃을 닿는 것과 동시에 연속 베기가 시전됐다.

줄곧 애용하던 평타 캔슬을 쓴 것인데, 예전에는 몸에 닿는 순간 스킬이 나갔다면 지금은 갑옷에 닿는 순간 나가는 느낌이었다.

‘아니, 느낌이 아니야. 분명히 맞은 걸 확신한 다음에 스킬이 나갔어.’

내가 원한 정확한 타이밍.

그리고 최소한의 동선으로 내 몸이 움직였다.

이런 느낌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감각이었다.

“어쭈, 제법인데? 그럼 어디 이것도 한번 피해 봐라, 방패 돌격!”

몇 대 맞던 현중이 녀석이 대뜸 돌진기를 사용해 거리를 좁히며 방패를 휘둘렀다.

워낙 가까이 붙어있던 터라 피할 각이 보이지 않았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원래 캡슐을 바꾸도록 마음먹게 된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집중 회피!]

액티브로 활성화되면 머리와 몸통을 제외한 부분이 확정 회피 판정을 받는 스킬.

뛰어난 반사 신경과 컨트롤을 소유한 유저가 이 스킬을 사용할수록 그 위력은 극대화되었는데, 뒤늦게서야 이 스킬이 가진 위대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휙, 휙, 휙, 휙!

현중이가 지그재그로 마구 휘두르는 검과 방패가 내 사지(四肢)를 스쳐 지나갔으나, 모조리 회피 판정이 뜬 것이다.

“으아아! 신검에 마쉴까지 가진 놈이, 이렇게 공격도 다 피해버리면 뭐 어쩌라는 건데!”

“하하하! 와, 이거 원래 진짜 미친 스킬이었구나! 팔 다리는 얼마든지 맞아도 상관없으니깐, 전부 다 회피해버릴 수 있는데? 크크!”

더 이상의 대결은 의미 없었다.

신검에 몇 대 맞은 현중이의 체력은 쑴풍 깎인 반면, 내 MP는 조금도 닳지 않았다.

상처받을 현중이의 마음을 고려해, 이쯤에서 대결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래서 돈이 좋긴 좋구나……. 당장 나가서 결제부터 하련다!”

“응? 시승은 그만하고?”

“어. 얼른 집에다 설치하고 사냥하러 나가 볼래. 여기서 더 시승할 이유가 없어. 이건 도저히 안 살래야 안 살 수가 없는 캡슐이야!”

“크크크. 너도 이제야 돈의 위력을 실감하는구나!”

낄낄대는 현중이를 뒤로하고 로그아웃했다.

“어? 생각보다 금방 나오셨네요? 어떻습니까? 싱크로율이 괜찮았나요?”

“사장님……. 이거 정말 대박입니다. 바로 구매할게요.”

“하하! 어지간히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이쪽으로 오시죠.”

난 그대로 가상 지갑 계좌를 통해 TX-PRO 버전의 캡슐을 결제했다.

현금으로 치면 1억이 넘는 금액이지만, 정말 단 1원도 아깝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사장님은 곧바로 다른 직원 한 분과 함께 캐리어 로봇으로 매장의 TX 캡슐을 챙기고는, 내가 자취하고 있는 화성시로 출발했다.

“현중아. 며칠 걸릴 줄 알았는데 바로 설치하니깐 좋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직접 올라와서 산 거 아냐. 아인이 형이 이래 봬도 캡슐 수천 대는 설치해봐서 세팅도 완벽하게 해 주실 거야. 우리 집도 형이 설치해 준 건데, 그렇게 오래 들락였어도 수평이 어긋나거나 미세한 떨림도 생긴 적이 없어.”

캡슐은 첨단 전자제품이자 직접 탑승하는 특별한 제품이다 보니 설치 또한 중요했다.

300만원에 불과한 DX는 직접 설치했는데, 이런 최고의 서비스를 받게 되다니…….

역시 돈이 최고구나란 생각이, 오늘 하루 몇 번이나 드는지 모를 정도였다.

“자, 설치는 모두 끝났습니다. 매장에서 하셨던 것과 동일한 느낌으로 플레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제가 더 감사하죠, 고객님. 혹시 문제 생기거나 궁금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좁은 원룸 방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하고 비싼 캡슐을 설치했으나, 종종 있는 일인 듯 사장님은 별 내색 없이 설치를 마치시고 돌아갔다.

보랏빛과 은색으로 조화된 고급스러운 캡슐.

그렇게 내 첫 번째 현금화는, 역시나 현실에서도 타연에 투자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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