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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89화 (89/350)

89화 타이탄의 시대 (2)

“그나저나 타이탄을 타 본 소감 좀 말해봐라. 어땠냐? 진짜 승차감 죽이지?”

“완존! 대박! 타연 오래 하고 볼 일이었다 정말. 나 류현중이 타이탄 라이더가 돼서 PK를 하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해 봤겠어? 그것도 태성을 상대로!”

“좋긴 좋지? 확실히 나도 혼자일 때보다 너까지 있으니까 더 좋긴 좋더라. 이렇게 우리 길드원 전원이 다 타이탄을 갖게 되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지리지 않냐?”

“근데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겁도 나더라. 좋은 만큼, 앞으로는 내 타이탄을 노리는 사람도 생겨날 테니까 말야. 옆에서 널 지켜볼 때도 걱정이 많았는데, 이젠 내가 같은 입장이 됐다고 생각하니까 앞으로 타연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타이탄 소환 유무에 앞서, 녀석이 먹게 된 방패는 디바인급 아이템이었다.

그 말인즉슨, 만약 현중이가 한 번이라도 죽게 되면 방패와 타이탄을 동시에 잃어버리게 된다는 소리였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 입장이었지만 나는 이를 대비하기 위해 캐릭을 새롭게 키우기까지 했다.

하지만 현중이는 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았으니, 필드를 나오거나 타이탄을 한번 소환할 때마다 매우 신중하고 조심해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인던 위주로만 레벨업을 다녀야 할 거야. 간혹 필드에 나갈 일이 생기면 그냥 창고에 맡기고 다니는 수밖에 없고……. 혹여나 타이탄 쓸 일이 있다면 무조건 나와 함께 움직일 때만 쓰는 게 좋겠어. 그래도 훼라리에 3명까지는 태울 수 있으니까.”

“그래야겠다. 이거 뭐 겁나서 필드에 들고 다닐 수나 있겠나? 뭐 어쨌든 인던 안에서는 아주 깡패 템이겠네. 확실히 디바인은 디바인이더라고……. 방패 스킬 레벨업도 좋지만, 쿨타임을 반으로 줄여 주는 게 완전 개사기야.”

“그러니까 앞으로는 죽었다 생각하고 레벨업에만 전념해라. 나도 이제 곧 랭커급에 진입할 건데, 그러면 같이 퍼스트 클리어 다닐 곳이 얼마나 많아지겠어? 아니면 아무도 도전하지 않던 필드 보스를 레이드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타연에는 맵 오픈은 진작 됐지만 버림받은 사냥터들이 존재하고 있다.

스토리상 업데이트는 됐지만, 유저들이 사냥하기에는 너무 고레벨인 그런 사냥터들이.

그곳에도 당연히 그 필드의 보스 몹이 떠 있었는데, 정작 잡을 수 있는 유저들이 없어 도착만 하면 항상 구경할 수 있었다.

물론 인던과는 다르게 어그로가 끌린 순간, 이속 차이 때문에 거의 무조건 죽을 수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필드 보스?”

“그래. 죽여주는 템이랑, 죽여주는 업적을 함께 얻을 수 있는 놈으로 말야. 가령 ‘드래곤’ 같은?”

그리고 그렇게 유저들이 구경할 수 있는 것들 중에는 아주 멋지고 유명한 보스 몹이 하나 있었다.

일루전이 미리 구현시켜 놓아 수없이 많은 유저들을 설레게 만들었던, 그린 드래곤 ‘투 메르타스’가!

그간 타이탄이 한 대일 때는 엄두는커녕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타연 최초로 타이탄 두 대를 보유한 파티를 이루고 나니 번뜩 기억났다.

드래곤의 브레스를 한방도 견뎌내지 못하는 유저들과 달리 타이탄의 HP는 버텨낼 만했다. 또한 유저들은 보스 몹에게 성공시키지 못하는 스턴이나 넉백 같은 상태 이상기도, 타이탄이라면 얼마든지 먹일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을 고려해 봤더니, 왠지 도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야! 그거 잡으라고 만들어 놓은 게 아니잖아? 드래곤은 그냥 관상용 보스 몹 아니었냐?”

“물론 잡을 수 있을지는 직접 트라이 해봐야 알겠지. 근데 너 타연 처음에 나올 때 봤던 CF 기억 안 나냐? 드래곤이 악마 진영에 속해서 인간군의 타이탄들이랑 싸우던 거? 그 말은 바꿔 말하면 타이탄 타면 드래곤이랑 싸울 만하다는 뜻 아냐?”

“와, 미친! 그럼 잘하면 잡을 만도 하다는 거야? 히야! 드래곤에다가 필드 보스인 놈이니 떨군다면 무슨 템을 떨굴지 도저히 감도 안 온다. 업적도 아주 끝판왕급으로 줄 것 같은데?”

“그러니 당분간은 레벨업 좀 빡세게 하고 있어라. 너도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해 왔던 타연과는 다른 타연을 플레이하게 될 테니깐 말이야.”

드래곤의 추정 레벨은 400 초반.

원래라면 훨씬 더 높아야 정상이겠지만, 어찌 됐건 타연은 게임이었다.

드래곤은 무조건 최고 레벨 단계에만 존재한다고 설정한 채로 게임을 만든다면, 앞으로 몇 년이 더 지나도 드래곤은 한 마리도 등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그린 드래곤은, 드래곤 중에서 가장 최약체이자 태어난 지 몇백 년 안 된 어린 용이라는 설정으로 퀘스트나 NPC 등을 통해 알려져 있었다.

향후 마계가 업데이트될 것이 곳곳에서 암시되고 있는 만큼, 신마전쟁 당시 마왕군과 손을 잡았던 드래곤들 또한 앞으로 하나둘 등장하리라는 것은 뻔히 예상되는 바였다.

그러니 아직 게임 진행상 저레벨 구간인 지금, 수백 명이 참전하여 드래곤을 레이드하는 멋진 그림을 유도하도록 맛보기처럼 한 마리 풀어놓은 놈.

그 녀석이 바로 이 투 메르타스라고 할 수 있었다.

“근데 타이탄 2대가 있다고 해도 우리 길드만으로 드래곤을 잡을 수 있을까? 그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오반데?”

“형님이 혼자서 성까지 먹었던 건 기억 안 나냐? 그건 오바 아니었고? 형님이 다 생각이 있으니깐 그냥 잠자코 따라오기나 해. 원래 넌 안 되는 건데 레벤다스 때문에 끼워 주는 거야. 그런데 말이 좀 많은 거 같네?”

“어쭈! 이 자식이 형님한테 못 하는 말이 없네?”

양보단 질.

다가가서 칼질 몇 번 못 해 보고 죽을 유저 수백 명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달라붙어 딜을 먹일 수 있는 몇 명이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레이드’였다.

항상 다리우스가 가져갔던 필드 보스의 퍼스트 킬…….

이제는 나도 한번 먹어 볼 차례가 온 것 같다.

* * *

“도착!”

훼라리를 타고 데스라 사막을 횡단하면, 마을에서 이곳 마도 시대 유적지 인던까지 고작 2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지난 일주일 동안 그래 왔던 것처럼, 상공에 도착한 훼라리 위에서 포탈이 있는 제단 위로 휙 하고 뛰어내렸다.

이미 일주일 사이에 이 유적지의 존재는, 우리 버닝스타 길드원들의 입을 통해 타연 전역으로 퍼졌다.

원래라면 상당히 보기 드문 고레벨 전용의 신규 인던 사냥터였기에, 태성 길드가 이 던전이 있는 유적지를 통째로 가로막고 통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이유는 하나.

바로 내가 시작한 나 홀로 PK 때문에, 기존의 태성 길드의 기조가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님들 그거 아세요? 태성이 이제부터 당분간은 척살 안 한대요!

└ 그게 무슨 소리임? 태성이 척살을 안 한다니? 개가 똥을 끊는 소리를 하시네?

└└ 진짜예요! 얼마나 갈진 모르겠는데 위에서 지침이 내려왔대요. 당분간 전 길드원들은 PK 자제해서 머더러 상태가 되지 말라고요. 하도 산드로가 뒤치기하고 다니는데 도저히 막을 수가 없어서 그런가 봐요!

└└└ ㅋㅋㅋㅋ 또 스페셜 원 때문이야? 그럼 결국 말한 대로 태성도 어느 정도 굴복시킨 거네?ㅋㅋㅋㅋ

방송에서는 종종 나의 무차별 PK에 대해서 좋지 않게 보도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그동안 방송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태성의 척살 행태를 최초로 멈추게 했다는 것 때문에 내게 환호하는 유저들이 훨씬 더 많았다.

태성이 척살, 즉 PK를 못한다는 것은 그간 해왔던 꿀 같은 독식 사냥터의 통제를 포기한다는 의미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이유로 이 마도 시대 유적지에 있는 인던은, 태성이 아닌 다른 여러 길드의 유저들로 붐비고 있었다.

“오! 산드로 님, 또 들어가시는 거예요? 도통 쉬시질 않네요?”

“제 레벨에 잠이 와야지 말이에요. 다들 열심히 시네요?”

“열심히 하는 걸로 산드로 님 따라갈 사람이 있겠나요? 그나저나 이제 랭커가 멀지 않으셨겠네요. 미리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아직 랭커는 멀었습니다. 어쨌든 혹시 태성 놈들이 근처에 나타나면 귓말 좀 부탁할게요. 그럼 이만!”

이곳은 확실히 최상위권 유저들이나 사냥할 만한 사냥터였기에, 나에게 호의를 갖고 있는 유저들이 많았다.

태성을 제외한 최상위권 유저들이라면, 거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태성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노력해 왔던 이미지 관리 효과도 조금은 발휘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덕분에 당초 생각보다는, 나를 보면 덤벼드는 유저보다 인사를 건네오는 유저의 수가 훨씬 더 많았다.

[‘잊혀진 마도 시대의 지하 도시(데스라 서부)’로 들어왔습니다.]

최초 클리어 이후로 지난 일주일간, 나는 이 지하 도시 인던에서만 죽치고 사냥했다.

와이번 한 마리를 잡을 시간이면, 이곳에서는 케르베로스 3마리 이상을 잡을 수 있었다.

거기다가 필드는 사냥 후 몬스터의 리젠을 기다려야만 했지만, 이곳은 수백 마리를 쉴 새 없이 잡은 다음 던전을 리셋하면 그만이었다.

최소 3배 이상의 효율.

와이번의 둥지에서 사냥하던 지난주와 비교해 보면, 더 높은 레벨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레벨업 속도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빨라진 상태였다.

그렇게 나는 대망의 350레벨을 눈앞에 둔 349레벨을 달성한 채로, 또다시 오늘의 레벨업을 시작했다.

현재 도둑 랭커의 끝자락인 10위의 레벨은 357.

고레벨로 갈수록 극소수를 빼고는 대부분 파티 사냥으로 레벨업 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나의 솔플 레벨업 속도는 확실히 정상적인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깨갱! 깨깨갱!

도시 구석구석에 있는 케르베로스들을 모조리 끌어모으고, 그 안에 뛰어들어간 내 모습은 그야말로 ‘학살자’ 그 자체였다.

케르베로스의 입에서 나오는 지옥 화염은 높은 마법 방어력 때문에 얼마 닳지 않았다.

이리저리 공격해 오는 물어뜯기와 앞발 휘두르기는, 마나 흡수로 차오르는 MP를 전혀 깎아내지 못했다.

그만큼 신검에 붙어 있는 이 2배의 추가 데미지는, 이곳에서 사기 중의 사기 옵션이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이 사냥터를 발견해서 너무 다행이다. 마의 구간으로 예상했던 랭커 진입 구간을, 이렇게나 수월하게 지나고 있다니!’

“이대로, 마계로 돌아가지 못하고 영원히 소멸당하게 될 줄이야!”

최초 클리어할 때는 타이탄이었던 신전의 보스 몹은, 그 이후로 ‘악령에 잠식된 수호자 페이드’라는 암흑 기사로 변경되어 있었다.

보스 몹인 만큼 만만찮은 놈은 맞았으나, 타이탄일 때와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의 공격력과 HP를 가지고 있었기에 혼자서도 무난히 잡을 수 있었다.

여러모로 처음 타이탄 버전이었던 것은, 근래에 깨라고 만들어 둔 난이도가 아니었던 게 분명한 듯싶었다.

“뭘 줄까나? 앗! 또 거지야?

정말 인던은 다 좋은데 이게 항상 문제였다.

아무리 보스몹을 수십 마리 잡아도 괜찮은 템 하나 먹을 확률이 너무 낮다는 사실.

솔플로 해도 이 모양인데 6인이면 시간 대비 남는 것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긴 이 정도 수준이니 GTB가 나날이 활성화돼가고 있는 거겠지만…….”

여하튼 필드 보스몹도 아닌 이런 놈에게까지 득템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기에, 빠르게 도시를 가로질러 입구에 있는 포탈을 향해 이동했다.

다시 나갔다가 들어와서 인던을 리셋하고, 사냥을 반복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입구에 다다른 순간, 오랜만에 지옥불로부터 귓속말이 들어왔다.

(지옥불: 산드로님, 바쁘십니까? 며칠 후에 있을 공성전 때문에 의논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나: 이제 막 사냥을 시작하긴 했는데 괜찮습니다. 지옥불님이 부르신다면 언제든지 달려가야죠~)

(지옥불: 하하! 아주 급한 건 아닙니다. 다만, 조만간 타연 내에서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 같아서요.)

마신검을 잃은 후유증이 클 텐데도, 이제는 아무런 내색 없이 예전과 다름없어 보이는 말투였다.

전에 깊은 대화를 나눠 보면서 느꼈던 것이지만, 확실히 지옥불은 과거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툭툭 털고 일어나 내일을 준비하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나: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지각 변동은 제가 타연에 등장하고 나서부터 여러 번 일어났던 것 같은데요^^)

(지옥불: 하하, 그런가요? 하지만 이번 일도 상당히, 그것도 아주 의미심장한 일이 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너스레를 떨며 대꾸한 나의 말에 지옥불의 대답이 이어졌고,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 어느 사건사고보다 커다란 임팩트가, 곧 타연을 강타하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지옥불: 우리 리버스국이 드디어, 조금 전 첫 타이탄 제작에 성공했습니다. 바야흐로 유저들이 타이탄을 생산해내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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