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타이탄의 시대 (3)
거기까지 듣고 나니 도무지 사냥을 지속할 수 없었다.
나는 그대로 인던에서 나와, 지옥불이 있는 듀메인 성으로 이동했다.
리버스국은 가장 세금이 많이 걷히고 공성전에서 안전한 지역에 속하는 듀메인 성에, 타이탄 제작 연구소를 설립했기 때문이었다.
지옥불은 성안에 있는 연구소 앞에서 나를 반겨주었다.
“축하드립니다, 지옥불 님. 타이탄 제작에 성공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하! 운이 좋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항상 운이 좋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것 같군요. 다만 이번에는 불운까지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야겠지만요.”
“운이라고요? 타이탄을 제작하는 데 운이 좋아야만 하나요?”
“네. 마지막 과정에서는 제작 실패 확률이 있더군요. 다행히 세 번의 도전 만에 이렇게 솔저급 타이탄을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피닉스라는, 그리고 리버스라는 단어가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 타연에 또 있을까?
그는 마신검과 로드급 타이탄이라는 타연 최고의 아이템을 직접 쟁취했다가, 허무하게 빼앗겨 버렸다.
하지만 이렇게 타이탄을 손수 제작해 내면서 타이탄을 다시금 손에 쥐는 데 성공했다.
그 타이탄이 비록 솔저급이면 어떠한가?
이 남자라면 차근차근, 결국엔 나이트급이고 로드급이고 분명히 얻고 말 것이란 확신을 모두에게 안겨주고 있는데 말이다.
“굳이 자랑할 생각에 산드로 님을 부른 건 아닙니다. 정말 의논을 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지요.”
“의논이요?”
“네. 이번에 가까스로 성공했지만, 저는 결코 저희 피닉스가 최초로 성공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네? 아…… 그렇군요!”
잠시 잊고 있었지만, 확실히 리버스 국보다 먼저 건국한 국가가 따로 있었다.
“태성은 티에스 국을 저희보다 한 달이나 먼저 건국했지요. 저희보다 훨씬 앞서나갔던 그들의 저력과 풍부한 자금 등을 고려해 볼 때, 분명 그들은 제작에 먼저 도전해봤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마 벌써 제작에 성공했다고 여기는 편이 타당할 것이지요.”
“그런데 왜 아직까지 그와 관련된 뉴스가 들리지 않았던 걸까요?”
“직접 써 보셨으니 잘 아시겠지만, 막상 타이탄을 제대로 써먹을 곳은 몇 군데 없지 않습니까? 제 생각에 타이탄 한 대로는 큰 의미가 없으니 몇 대 정도 모은 다음에 중요한 곳에 써먹으려고 대기 중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공성전 같은 곳에서 중요한 순간에 써먹으려고 말이지요.”
확실히 타이탄은 혼자서 수백 대 일의 싸움을 시도해 볼 만큼 사기적인 성능을 자랑했지만, 그건 로드급이었기에 가능했던 부분도 컸다.
반면 짧은 소환 지속 시간과 소환이 해제된다면 높은 확률로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에 빠져버리는 등, 타이탄이 가진 단점들도 명확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면 혹시 이번 공성전에서?”
“맞습니다. 다리우스가 데이네스를 얻은 후 첫 번째 공성전이 바로 이번 주말의 공성전이지요. 저는 놈들이 이번 공성에 타이탄을 처음으로 공개하며 제대로 참여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드로 님께 두 가지 제의를 드리고자 합니다.”
“제의요?”
“네. 앞으로의 공성전에서는 타이탄의 보유 대수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 분명해진 이상, 전력 분석을 철저하게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번에 버닝스타에서 레벤다스라는 타이탄을 얻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이름까지 아시고 계시군요. 맞습니다, 운 좋게 저희 길드원 중 한 명이 소유하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그 타이탄의 정보에 대해서 공유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희 솔저급 타이탄의 스펙과 앞으로 얻게 될 관련 정보들에 관해서도 계속해서 공유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확실히 지옥불은 프로게이머 출신이라 그런지 생각하는 바가 남달랐다.
다른 무엇보다 ‘정보의 획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와 같이 실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정보에서 뒤처지지 않는다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라는 자기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레벤다스는 나이트급 타이탄입니다. 그리고 나이트 급은 아마도 당분간은 유저들이 제작하기 힘들 듯합니다. 타이탄 정보창의 히스토리를 읽어 봤는데, 마도 시대에도 국보 취급을 받았더군요. 그 말인즉슨 나이트급은 쉽사리 찍어낼 타이탄이 아니란 뜻이겠죠. 로드급은 아마 봉인을 해제하실 때 들으셨겠지만, 단 7대 밖에 없다는 걸 이미 아실 거고요.”
나로서도 손해 볼 거래가 아니었기에…….
그리고 그가 지옥불이었기에…….
먼저 우리가 얻은 레벤다스의 정보에 관해서 공유해 주었다.
그러자 곧바로 지옥불이 솔저급 타이탄의 정보도 제공해 주었다.
“그렇군요. 역시 현 단계에서는 솔저급이 한계라……. 감사합니다. 많은 참고가 됐습니다.”
(지옥불: 저희 솔저급 타이탄의 정보도 마찬가지로 링크 보내겠습니다. <타이탄의 정수(!)>)
확실히 솔저급은 유저가 만든 것이라 그런지 달랐다.
나이트급이나 로드급이 무기를 통해 소환이 가능했던 것과 달리, ‘타이탄의 정수’라는 비(非)장비형 아이템을 통해 소환했던 것이다.
그렇게 링크 보내온 타이탄의 정수 정보를 클릭하자, 정수 안에 봉인되어 있는 타이탄의 정보 창이 떠올랐다.
[리버스 나이츠(솔저급, 전사형)]
* HP: 280000/280000 * MP: 65000/65000
* 공격력: 2550 * 물리 방어력: 3020 * 마법 방어력: 1880
* 리버스 국의 타이탄 제작 연구소에서 생산된 근접 전사형 타이탄으로, 리버스 국의 첫 번째 타이탄입니다.
* 소환 시간이 다하거나, HP를 전부 다 소진하면 소환이 해제됩니다. (소환 시간 : 레벨×1초)
* 소환 해제 당시의 HP에 따라 재소환 시간이 변동됩니다. (소모된 HP 1%당 소환 대기시간 1시간, 최소 대기시간 24시간)
* 좁은 지형이거나 인스턴트 던전류의 공간에서는 소환이 제한됩니다.
* 소환 재료: 빛나는 마력석 1개
* 타이탄 전용 스킬 ‘출력 강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출력 강화(고유 스킬): MP 8000을 소모하여 10초간 공격력과 공격 속도를 25% 상승시키고, 이동 속도가 35% 증가합니다. 사용 대기시간 60초.
강하다.
확실히 솔저급이라 해도 타이탄은 타이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게 정말 강한 게 맞는 걸까?’
솔저급 타이탄은 당장은 강해 보일지 몰라도, HP나 공격력 등이 크게 높지 않았고 스킬도 그다지 좋아는 보이지 않는 1개밖에 없었다.
타이탄은 레벨업이라는 개념이 없기에 처음의 스펙이 계속 머물러있는 반면, 유저들의 레벨은 지속적으로 올라가서 강해진다.
거기다가 향후에는 타이탄이 흔해질 것이기에, 지금처럼 큰 활약을 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이런 것들을 고려해 볼 때, 솔저급은 크게 쓸모 있을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이건 내가 너무 앞서나가서 생각한 것인지도 몰랐다.
타연은 게임이고 타이탄 연구소나 마탑 등도 따로 존재하고 있기에, 차후 커스터마이징이나 스펙 강화 시스템이 업데이트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쨌든 지금 시점에서는, 공성전의 바리케이드 앞에 솔저급 타이탄이 두 세대만 나타나도 순식간에 진형 붕괴는 물론 공성전의 성패까지 가로 지을 수 있다는 것.
그 사실만이 중요했다.
“그런데 공성전과 관련해서 의논드릴 게 있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네. 그것이 바로 두 번째 제의입니다. 사실 타연에는 레벨이 높기도 하고 먹어 봤자 유저들이 찾아오지 않는 지역이라 아직도 버려진 성이 아직 2개 남아 있지 않습니까?”
“네. 그렇죠. 아마 지웰 성과 아베르 성…… 맞죠?”
성을 먹는다는 것은 아무리 빈 성이라고 해도 단순히 수십 명의 인원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현재 비어 있는 성들은 대부분 고레벨 몬스터가 출몰하는 지역인 만큼, 빈 성이어도 수성중인 NPC 병사들의 레벨이 워낙 높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길드의 전력을 쏟아붓는다면 어렵게 먹을 수야 있겠지만, 고레벨 지역에 유저들이 오면 얼마나 오겠는가?
먹어 봐야 세금도 들어오지 않고 공성전 시간에 길드의 전력만 분산되기에, 5성을 가져 건국하고 싶은 길드 말고는 무리해서 공성에 도전하는 길드는 없는 편이었다.
“네 맞습니다. 어쨌든 저번 칼젠 성을 점령하게 되면서 타이탄 제작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타이탄 연구를 진행하는 도중에 성을 하나 더 보유하게 되었더니, 갑자기 타이탄 제작에 도전하는 시간도 줄어들었더군요.”
“네? 그렇다면 혹시?”
“그렇습니다. 성을 많이 보유할수록 타이탄 제작 시간도 줄어들어, 더욱 많은 타이탄을 보유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지요. 앞으로 태성과의 싸움은 타이탄을 누가 더 많이 보유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 분명할 테니, 성의 점령 개수도 덩달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
이건 정말 중요한 정보였다.
현시점에서는 오직 지옥불과 다리우스만 알고 있을 정보.
이건 앞서나가고 성을 많이 점령한 길드일수록, 후발 주자가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타이탄을 다수 보유하게 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두 번째 제의를 드리겠습니다. 이번 공성전에서 신규 성을 공략하는 것을 도와주십시오. 가트웰 산맥에 있는 지웰 성 공략을!”
이번 공성전에서야말로 나 홀로 필드 보스 몹 투어를 할 생각이었는데, 역시나 바쁜 공성전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 * *
그 후로도 지옥불에게서 몇 가지 중요한 정보들을 새롭게 얻을 수 있었다.
지옥불은 확실히 나와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식이 여러모로 다른 구석이 있었다.
그는 하루에 한 번씩 타이탄을 극비리에 소환해 이런저런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 중이었다.
-일부러 일상 상태에서 한 번, 타이탄 소환 상태에서 한 번 죽어 봤습니다. 덕분에 4일간의 소환 대기 시간을 갖게 되었지만 소중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죠.
-두 종류의 죽음에서 모두 이 ‘타이탄의 정수’ 아이템을 드랍하지 않았습니다. 이 아이템은 디바인급 아이템과 달리 죽는다고 무조건 드랍하지는 않는 모양이더군요. 예상컨대 확실히 다른 템보다는 높은 확률로 드랍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무조건 드랍하지 않는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겠군요.
가장 중요한 정보는 이것이었다.
타이탄의 정수는 그 위 단계의 타이탄들과 달리 죽더라도 곧바로 잃어버리거나 뺏기는 템이 아니었다.
현중이와 나는 죽기만 하면 적에게 뺏기게 되기에, 상당히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사용해야만 했다.
반면에 적들은, 비록 솔저급 타이탄이지만 머더러 상태만 아니라면 큰 부담 없이 소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좋으면 좋을수록 페널티는 감수해라…… 이건가? 하여간 일루전 이 자식들, 뭐든지 쉽게 주는 게 없구나!’
어차피 난 죽을 생각 따윈 없었기에 상관없어 보일 수도 있었으나, 이건 내게만 잠수함 패치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태성이 앞으로 타이탄을 얻더라도, 안전지대에서 멀리 떨어진 필드에서는 쉽사리 타이탄을 소환하지 못하리란 예상이 빗나갔기 때문이었다.
죽더라도 타이탄 소유권을 잃지 않는다면, 녀석들은 어느 정도 타이탄 소환을 남발하며 나와 대적할 수 있었다.
즉 시간이 지나 타이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내 행동 범위는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이제는 시간이 없었다.
태성이 그렇게까지 더 성장하기 전에, 내가 더 빠르게 성장해서 놈들을 꺾어버려야 했다.
그렇기에 한창 레벨업에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이번 사설 경매에 참여했다.
얼마 전 핑크래빗으로부터 들었던 그 아이템.
멀린이 가진 쿨타임을 줄여준다는 특수 아이템의 판매가 결정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경매가 바로 오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