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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98화 (98/350)

98화 드래곤 슬레이어 (2)

“그냥 한번 떠올려 본 아이디어였는데…… 기가 막히게 잘 들어맞았는걸? 역시 난 게임 천재인 건가?”

조금 전 투 메르타스에서 시동을 걸어 봤던 것을 복기해 본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카이저와의 갑작스런 만남 이후.

새롭게 테이밍한 펫들을 시험해 보았는데, 마치 미리 해보고 테이밍한 것마냥 적재적소에 제대로 먹히는 것이 전부 검증된 것이다.

“거기다 생각지도 못했던 조력자까지 얻었으니…… 이제 레이드 성공률이 70%, 아니 75%쯤은 되겠는데?”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보스 몬스터 드래곤.

바로 그런 놈의 레이드인데, 남들이 들었다면 말도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칠만큼 높은 성공률이었다.

하나 내게는 아직도 한참이나 부족한 수치였다.

나에겐 단 한 번이라도 죽어선 안 되는 페널티가 있기에, 100%에 가까운 성공률이 아니라면 시도조차 해봐선 안 됐다.

물론 레이드에 실패하더라도 어느 정도 살아남을 자신이야 있지만, 길드원들은 그렇지 못했다.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성공 확률을 크게 높여 줄 무기.

그 마지막 퍼즐이 이곳 듀메인 성에 있는 지옥불에게 있었다.

“어서 오세요 산드로 님. 기다렸습니다.”

“오늘 새벽까지 엄청 달리셨겠네요, 지옥불 님?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7성의 주인이 되신걸!”

뒤늦게 그를 찾아온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보나 마나 밤새 길드원들과 새벽까지 달렸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

“하하! 삼국 체계가 되어야만 저희가 살아남는다고 말씀드렸던 게 우스운 꼴이 돼버렸군요. 덕분에 2달 만에 엄청나게 성장하게 됐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산드로 님.”

‘삼국 체계? 아! 그런 적이 있었지!’

이제는 워낙 압도적인 성장세로 태성을 따라잡고 있는 피닉스인지라, 다소 의미가 퇴색된 전략이었다.

현재 피닉스는 매일 수많은 인재가 가입 의사를 밝혀오고, 전용 사냥터의 숫자도 크게 늘어 길드원들의 전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나 하나 때문에 있던 성도 뺏기고 통제 사냥터를 풀기 시작한 태성과는, 서로 입장이 뒤바뀌어진 것이다.

타이탄의 보유 숫자가 점차 공성전의 성패(成敗)를 좌지우지할 것은 당연지사.

이대로 몇 달이 지난다면 부동의 원탑이었던 태성을 따라잡고, 피닉스가 투톱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약속하셨던 보수를 받기 전에 먼저 부탁드릴 것이 하나 있는데……. 괜찮을까요?”

“네, 얼마든지 말씀하시지요 산드로 님. 저희는 서로 돕고 돕는 든든한 동맹 관계가 아닙니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름 아니라 이번에 차지하신 지웰 성……. 그곳에 있는 NPC 병사 좀 저희 길드가 빌려 쓸 수 있을까요?”

“NPC 병사요? 그런 쓸모없는 것을 어디에다 쓰려고 그러시지요? 그걸 가지고 PK를 하실 리는 없고……. 레벨이 높은 놈들이라 사냥에 써먹으면 경험치를 못 드실 텐데요.”

“몇 가지 시험해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요. 근데 당장 성을 가진 게 없어서 이렇게 부탁드리게 됐습니다.”

지옥불을 못 믿어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이번 레이드는 상당히 멀리에 있는 필드, 그것도 아주 위험한 대상을 상대로 레이드를 하는 것이라 도중에 방해당하면 정말로 위험했다.

하지만 현재 지옥불은 무려 7성의 주인.

그렇기에 그를 항상 주시하는 주변의 유저라든지, 정체를 숨기고 있는 스파이들이 존재할 게 뻔했다.

정말 고맙고 믿음직한 사람이기에 함께 레이드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만약을 위해 비밀로 해야만 했다.

사실 내 덕분에 4성에서 7성의 주인으로 급성장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충분히 잘해 주고 있는 편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 그러시군요? 그게 뭐 어려울 게 있겠습니까? 길드 동맹이야 어제 함께 공성전을 하며 맺어뒀으니, 권한 설정만 따로 지정해 두겠습니다. 지웰 성의 병사만 쓰실 거면 거기만 해두면 되겠지요?”

“네, 감사합니다. 지웰 성 하나면 충분합니다.”

사람은 역시 될 수 있으면 많은 경험을 해봐야 했다.

만약 내가 성주가 돼 보지 않았다면, 동맹 길드도 NPC를 차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동맹 길드끼리는 서로 간에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공성전이 타연의 메인 테마 중 하나여서 그런지 성과 관련된 권한 설정이 제법 존재했다.

동맹 간에 주성의 문을 열 수 있다거나 NPC 병사를 차출할 수 있다든가 하는 일 등이 가능했는데, 심지어는 동맹 중에서도 일부 유저만 허용되도록 특정하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차출 가능한 병사의 수가 많지도 않은데 동맹에게까지 권한을 풀어두면, 본인들이 필요할 때 쓸 수 없는 경우도 생겨 굳이 해주지 않는 길드도 있었다.

또한 아무리 동맹이라고 해도 성을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는 것을 반길 길드는 별로 없었기에, 어지간히 신뢰하는 길드가 아니라면 이런 권한을 풀어주는 일은 드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권한 설정을 하기 전에 성공 보수부터 먼저 드릴까요? 여기 약속드렸던 사파이어 반지 3개입니다.”

“매번 감사드립니다. 지옥불 님.”

“저희에겐 별 필요도 없는 것인데요 뭘. 앞으로의 공성전에서도 여전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산드로 님.”

어제 지웰 성을 돕는 대가로 지옥불이 제시한 보수는, 역시나 이 사파이어 반지였다.

내게는 이 사파이어 반지가 어지간한 레전더리 두, 세 개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는 아이템인지라 기꺼운 마음으로 합류한 것이었다.

‘이로써 3번 더 강화를 시도할 수 있겠구나. 이러다가 다리우스처럼 +9 레전더리 반지를 끼게 되는 거 아냐?’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만약 둘 다 +9가 된다면 마나 흡수율이 7.4%가 된다.

원래 +2일 때가 4.4%였으니, 그 정도면 반지 1개를 더 차는 것보다 좋은 수준이었다.

그렇게 지옥불로부터 성공 보수를 받고, 우린 NPC 병사의 차출 권한을 풀기 위해 함께 지웰 성으로 이동했다.

* * *

칼젠 성주가 되면서 얻었던 30만이라는 길드 업적치.

어차피 버리게 될 업적치였기에, 난 이것저것 실험해 보는 데 펑펑 써버렸다.

그 경험들 또한 없었다면 내가 드래곤을 레이드 할 아이디어는 전혀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드래곤 레이드에 승산을 거는 이유.

그건 보유 타이탄이 늘어서도 그랬지만, 사실은 한 달 동안 성주였던 기간에 이 ‘호위 기사’ 시스템을 완벽히 파악한 탓이 컸다.

[차출할 병력과 인원을 선택하세요.]

[정예 기사단원(검)]

[정예 기사단원(창)]

[정예 기사단원(활)]

……………………

[일반 병사(검)]

[일반 병사(창)]

[일반 병사(활)]

부기사단장이나 네임드 NPC 기사들은 길드 마스터 및 간부진 전용이라, 목록에 보이지도 않았다.

동맹 길드의 한계라고나 할까?

하지만 전혀 상관없었다.

나는 네임드 기사를 차출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다른 병사에게 볼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예 기사단원(활)’을 차출하겠습니까? 정예 기사단원(활)을 차출하는 데는 업적치 180이 필요합니다.]

[Yes]

[‘정예 기사단원(활)’을 소환합니다. 소환 지속 시간은 2시간입니다.]

업적치가 줄어듦과 동시에, 내 앞에 지웰 성 고유의 경 갑옷을 입은 정예병 한 명이 소환됐다.

NPC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

하지만 정예답게 일반 궁수병과 다르게 크로스 보우를 들고 있는 모습이 제법 강인해 보였다.

‘역시! 확실히 가장 최근에 점령된 지웰 성의 정예병답게 레벨이 가장 높구나!’

곧바로 스펙을 확인해 봤더니 기대 이상이었다.

[정예 기사단원(활), Lv. 375]

* HP: 18870/18870 * MP: 11574/11574

* 공격력: 882 * 물리 방어력: 1185 * 마법 방어력: 1440

* 전용 스킬: 활 마스터리

가장 고레벨 지역인 지웰 성의 병사인지라, 아이러니하게도 칼젠 성의 부기사단장이었던 랜포드보다 레벨이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세부적인 스펙은 랜포드의 절반에도 못 미칠 만큼, 그리고 엇비슷한 레벨의 유저들과는 비교조차 못 할 만큼 처참하게 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스펙이 아니라 병사의 ‘레벨’이었다.

‘375레벨이라니……? 이러면 내 예상보다 10이나 더 높다. 거기다가 칼젠 성 궁수들과 달리, 지웰 성 궁수가 가진 스킬은 활 마스터리였다니!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대박이야.’

400레벨이 넘어가는 드래곤에게는, 350 레벨의 훼라리보다 375레벨 병사의 공격이 오히려 더 잘 박혀 들어간다.

유저한테는 통용되지 않는, 몹과 몹 간의 전투 시스템이 가진 허점!

거기다가 정예병이었기에 스킬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명중률과 기본 공격력을 올려주는 ‘활 마스터리’였다.

다소 약한 공격력인지라 NPC 병사 한두 명만으로는 별 데미지를 입히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10배, 20배에 이르는 병사들을 데리고 딜링 한다면 어떨까?

분명 높은 공격력과 스킬들로 몇 배는 강할 유저들이 헛방을 날리는 것보다는, 훨씬 더 DPS가 높을 것이 분명했다.

마지막 체크까지 끝난 이상, 준비해야 할 건 모두 다 끝마쳤다.

이제는 디데이까지 최대한 레벨업에 몰두한 다음, 레이드에 도전하는 일만 남아 있었다.

* * *

[산드로: 다들 준비되셨죠?]

[축복받은얼굴: 오케이!]

[라스트챤스: 넵넵! 갑시다아아! 다함께 레전드를 찍으러!]

새벽 4시 반.

통계적으로 유저들의 접속률이 가장 떨어지는 이 시간대를 노려, 드디어 역사적인 드래곤 레이드의 출정식(出征式)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지난 열흘간, 우리 버닝 스타 길드원들은 그야말로 지옥 훈련이라는 말로도 모자랄 만큼 레벨업에 몰두했다.

이번 레이드에 한 톨의 후회도 남지 않도록, 밥 먹을 시간과 화장실 갈 시간까지 아껴 가며 레벨업했던 것이다.

모두 생업이 없는 골수 게임폐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결과 고무적인 성과가 있었으니, 마침내 현중이와 나는 나란히 360레벨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내가 너한테만큼은 절대로 안 진다니까?

-얀마, 넌 이미 진 거야. 너 300렙 초반일 때 난 10렙부터 새로 키우기 시작한 건데, 벌써 따라잡힌 거잖아?

부들대는 현중이를 계속해서 놀린 나였지만, 그래도 꽤 놀라운 일이었다.

나야 경험치 추가 업적과 말도 안 되는 딜량을 자랑하는 사기 캐릭이지만, 녀석은 평범하다면 평범한 일반 성기사 유저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한데 별다른 서포트도 없이, 고작 개인 유저의 신분으로 랭커와 10레벨 차이 안까지 들어왔다.

어디까지나 내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걸 감안하면 대단한 레벨업 속도였다.

마도 시대의 지하 도시가 아니었다면 결코 달성하지 못했을 급성장.

그런 만큼 이번 레이드는 분명 성공하겠다는 예감이 들고 있었다.

예감을 더 해주기라도 하듯, 새롭게 길드에 들어온 든든하기 이를 데 없는 콤비의 글이 연달아 올라왔다.

[카이저: 이제 시작인 건가? 준비됐으면 바로 출발하지?]

[라푼젤: 저도 준비 다 됐어요!]

무(無)길드로 2인 파티만 해오던 유명 랭커이자 타연 최고의 실력자들.

이 두 사람도 레이드 작전을 듣고는, 내 제의대로 우리 버닝 스타 길드에 잠시 가입했다.

가입한다는 것에 생각보다 거부감을 드러냈지만, 정예 궁수병을 호위로 차출하기 위해서는 별수 없이 우리 길드에 가입해야만 했다.

[산드로 : 네, 그럼 바로 차출해서 오세요! 지금 마을에 사람 없습니다!]

슈슈슝!

내 신호가 끝나자마자 한산했던 휴포드 마을의 광장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우리 길드원들과 그들이 지웰 성에서 차출해 온 궁수병 30명이, 한꺼번에 공간이동술사 앞으로 순간 이동해온 것이다.

“머뭇댈 필요 없이 바로 이동합니다!”

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이동하면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가트웰 산맥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마을이 이곳 휴포드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예전 내가 레벨 다운을 위한 장소로 선택했던 그 이유 그대로, 여전히 유저들이 가장 찾지 않는 텅 빈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내가 먼저 이곳에 와서, 현재 마을 안에 유저들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 불렀다.

순식간에 모인 우리는 곧 한 몸과도 같이 마을을 썰물처럼 빠져나왔다.

[산드로: 이대로 숲까지 거리 잘 유지해 주세요! 절대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됩니다!]

마을 밖에 나와서도 내가 먼저 은신을 쓰고 앞장을 섰다.

성마다 호위 기사로 차출할 수 있는 병력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

정예 궁수병과 같은 경우는 총 30명이었는데, 어차피 메인 딜러를 하고 레이드를 진두지휘해야 할 나로서는 궁수병을 세세히 컨트롤하기 힘들 게 뻔해 한 명도 차출하지 않았다.

그 덕에 이렇게 척후병 역할을 맡아, 유저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이동 경로를 지휘할 수 있었다.

[산드로: 오른쪽 언덕 너머에 사냥 중인 2인 파티가 있으니 최대한 왼쪽으로 붙어서 이동합니다!]

아무리 고레벨 사냥터라지만 역시 사냥하는 유저가 전혀 없진 않았다.

하지만 산악 지대답게 지형이 험난해, 미리 발견만 한다면 최대한 들키지 않고 돌아갈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유저들의 모습은 금세 자취를 감췄다.

아무래도 가장 안전한 마을 입구 근처에나 그나마 사냥하는 유저들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10여 분.

우리는 와이번의 둥지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 거대하기 이를 데 없는 나무 절벽과 맞부딪쳤다.

수천 그루의 자이언트 트리로 이루어진, 침묵의 숲에 도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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