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100화 (100/350)

100화 드래곤 슬레이어 (4)

2대를 맞고 나서야 겨우 경직이 풀렸고, 다시금 공격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한데 나도 어디 가서 절대 빠지는 공격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놈은 아무리 찔러대도 MP가 별로 차오르지 않았다.

드래곤답게 미친 듯이 높은 방어력과 레벨 차이 때문에, 데미지가 크게 상쇄되고 있는 탓이었다.

그래도 이젠 움직일 수 있어 무시무시한 꼬리 공격은 보고 피할 수 있었다.

재빠른 몸놀림 상태에다가 대도 부츠를 찬 탓에, 생각보다 등 위로 오는 공격을 피하는 게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뛰어난 컨트롤을 가진 나라서 가능한 일이기는 했다.

“포이즌 노바!”

그래도 방심할 수 없었다.

녀석은 물리 공격과 마법 공격을 번갈아서 사용할 수 있는 드래곤.

사실상 타연에서 가장 밸런스가 잘 갖춰져 있는 최강의 ‘마법 생명체’였기 때문이다.

[마나 쉴드가 8,250의 마법 피해를 흡수합니다.]

광역 마법 공격이라 피하지 못했으나 마법 공격은 생각보다 맞을 만했다.

‘역시……. 그동안 올 마력 스탯만 찍은 보람이 있구나!’

현재 타연 내에서 가장 높은 마법 방어력을 보유한 나.

그래서 마법 공격은 물리 공격에 비해 1/3 정도 데미지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꿀꺽! 꿀꺽!

난 최상급 마나 회복 물약을 쿨타임마다 먹어 가며 쉬지 않고 검을 박아 넣었다.

보통 이렇게 공격력이 강한 보스 몹은 후반 페이즈로 가면 어떨지 몰라도, 초반에는 어그로 대상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오크 로드도 체력이 25% 미만으로 깎여야지만 어그로의 타겟팅이 무작위로 바뀌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 말인즉슨, 이놈 또한 초반 어그로 관리에만 성공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까진 안정적이고 수월하게 HP를 깎아낼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공속 가속화 상태로 열 대 가까이를 쉬지 않고 친 결과, 마침내 녀석의 네임 바에 있는 체력 게이지가 한 틱 깎여 나갔다.

‘됐다.’

어그로가 어느 정도 축적된 듯싶자, 곧바로 녀석의 등 뒤에서 뛰어내려 파티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녀석이 날개를 펴며 살짝 무중력 점프를 하듯이 날아서 쫓아왔다.

[산드로: 이제 공격하셔도 됩니다!]

사정거리 내에 들어 온 듯하여 사격 지시를 내리자, 아이언 골렘이 누워 있는 양옆에서 수십 발의 화살이 쏟아져 나왔다.

비록 투 메르타스가 워낙 거대하고 데미지들은 자잘한 터라 피격 모션을 취하진 않았지만, 확실히 NPC 궁수병들의 공격은 족족 명중되고 있었다.

쏘아진 화살들이 빗나가며 사라지지 않고, 비늘에 박힌 다음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녀석에게 가랑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 가랑비가 끊기지 않도록 녀석의 브레스를 잘 피하고, 내가 어그로 관리를 안정적으로 하는 것 외엔 없었다.

현중이의 투쟁의 오라가 파티원과 궁수병들에게 들어가고, 두 명의 힐러도 미리 모두에게 버프를 충분히 걸어 둔 상태였다.

나 또한 녀석의 앞발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간간이 딜을 넣고 있었다.

덕분에 금세 녀석의 HP가 2% 정도 깎인 무렵이었다.

드디어 녀석으로부터 첫 번째 포이즌 브레스가 터져 나왔다.

“모든 것을 정화하는 태초의 공기를 머금노나니!”

“모두 피하세요!”

녀석이 숨을 들이켜는 모션을 취하는가 싶더니, 곧이어 선명하고 거대한 녹색의 물결이 놈의 아가리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난 그와 동시에 볼포의 스킬, ‘강화 마법진’을 발동시켜 방어력을 올려줌과 동시에 놈을 향해 그림자 밟기를 시전했다.

천천히 제 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며 전(全) 방향으로 브레스를 쏘아내는 그린 드래곤.

난 녀석의 180도 후방에서 녀석이 회전하는 방향을 따라 함께 돌았다.

그러면서 파티원들을 흘낏 보니, 다행히 볼포가 제대로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이다. 처음인데도 잘들 해내고 있어!’

게임임에도 쓸데없이 고증이 철저한 바람에, 아이언 골렘은 아쉽게도 힐을 받을 수 없었다.

덕분에 한 번 소환하면 포이즌 브레스를 총 3번밖에는 버틸 수 없었다.

그것도 강화 마법진 스킬이 있기에 가능한 횟수였다.

하지만 그 3번만이라도 무척 대단한 것이었다.

‘폴보’도 남아 있기에 6번의 브레스를 버틸 때쯤이면, 대략 녀석의 피를 반 피 이상 빼놓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첫 번째 브레스를 끝낸 투 메르타스의 공격을 이리저리 무빙으로 피하면서 버텼지만, 더는 한계였다.

어느새 나의 MP가 20% 미만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한 번의 브레스가 나왔으니 이제는 어그로를 바꿀 타이밍이었다.

제대로 된 탱커, 타이탄 ‘레벤다스’가 말이다.

“레벤다스 소환!”

작전대로 현중이가 다음 타자로 나서기 위해 레벤다스를 소환하는 순간, 나 또한 어그로를 초기화할 비장의 스킬을 시전했다.

[그림자 분신!]

바로 스킬 단계만큼 분신을 만들어내는 고레벨 도둑의 고유 스킬, 그림자 분신이었다.

사실 생성되는 분신은 어그로 초기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지금 이 스킬을 쓰게 된 이유는, 내가 분신을 만들어내는 찰나의 순간 아주 잠깐이지만 무적 상태가 돼버린다는 것에 있었다.

원래는 타겟팅 마법이나 스킬 공격을 흡수하는 용도로 쓰이는 타이밍이었지만, 나는 잠깐 무적 판정을 받는 순간을 어그로 초기화 용도로 사용했다.

보스 몹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몹들이, 타겟팅이던 대상이 무적 상태에 빠지면 잠시 어그로가 초기화된다는 맹점을 노린 작전이었다.

이 또한 시동을 걸어볼 때 확인했었던 것이기에, 소환하자마자 공격을 시작한 레벤다스에게로 투 메르타스의 어그로가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금세 안정적으로 어그로를 가져가는 레벤다스의 모습을 보고서, 파티원들은 아이언 골렘의 양 옆으로 나와 잠시 멈췄던 원거리 공격을 열심히 날려댔다.

나 또한 레벤다스를 공격하는 드래곤의 뒤편으로 이동해서, 어그로가 끌리지 않을 만큼 딜을 조절해 가며 평타 공격을 먹여댔다.

30%, 40%, 50%…….

마나 회복 물약을 쉬지 않고 먹으며 후방 공격을 누적하자, 내 MP가 금세 차올랐다.

그렇게 내 MP가 다시금 100%까지 꽉 찰 무렵, 녀석이 두 번째 브레스를 준비하는 모션을 취했다.

2%가 소진됐을 때 썼던 것과 다르게, 이번엔 10%가 훌쩍 넘어간 타이밍이었다.

‘생각보다 딜이 잘 들어가고 있거든. 그래서 진작 써야 할 걸 인제야 쓰는 거야.’

그러나 녀석은 머금던 숨을 내뱉을 수 없었다.

타이탄이 위대한 또 하나의 이유.

유저와 달리 타이탄은, 이런 초대형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도 상태 이상 효과를 줄 수 있었다.

[쉴드 어택!]

“나이스 타이밍!”

굳이 외치지 않아도, 한번 봤던 브레스 모션이 나오자마자 캐스팅을 컷 해주는 현중이였다.

덕분에 드래곤이 무려 스턴 상태에 빠진 희귀한 광경을 바라보며, 너나 할 것 없이 극딜 모드로 일점사했다.

스턴 덕분에 여유가 생겨 파티원들을 둘러보니, 마검사인 카이저뿐만 아니라 힐러인 라푼젤까지 활을 들고 원딜 공격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둘 다 최정상의 랭커인지라, 스왑용 활 또한 레전더리 템인 무시 못 할 공격력이었다.

거기다가 힐러가 2명이었기에 다들 공속과 이속을 올려주는 ‘활력의 빛’ 버프를 받아 동작들이 재빨랐다.

‘모두 알아서들 너무 잘 해주고 있어. 제대로 된 파티 사냥을 한다는 게, 바로 이런 느낌이었던 거구나…….’

레이드가 끝나기는커녕 이제 막 시작하는 와중인데, 분전(奮戰)하는 파티원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시작 전의 염려가 무색하게도 다들 각자 맡은 역할들을 100% 소화하며, 한 치의 실수나 어긋남 없이 잘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게임을 하든지 간에 항상 솔플만을 고집해 왔다.

타연을 시작하면서 길드에 잠시 들어봤지만, 기대 이하의 수준이라며 혀를 차고 금세 탈퇴해 버렸다.

겉으론 아닌 척했지만 속으론 늘 나만 한 유저는 없다며, 혼자가 편하고 효율적이라는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힌 채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잘난 척하며 지내온 결과는, 그저 흔하디흔한 중상위권 유저 중 하나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지금에서야 랭커 수준의 위치에, 거기다 타연 최고 수준의 아이템을 갖춘 정상급에 오르고 나니 깨닫게 되었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였다는 것을…….

무엇이든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한정적이었다.

반면 내가 이 자리에까지 올라오며 했던 많은 업적들은, 사실 돌이켜보면 현중이와 길드원들을 비롯한 지옥불과 같은 조력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언가에 최선을 다해봤자 어차피 안 될 거라는 내 어릴 적 트라우마는, 사실 핑계에 불과했던 거야…….’

갤럭시 워.

포뮬러 라이더.

마운틴 그라운드 등등.

많은 시간과 젊음을 쏟아부어 어느 정도의 성과를 봤지만, 늘 정상에 다다르기 직전에 그만뒀던 수많은 게임들.

그 게임들에 끝까지 전력(專力)을 다해보지 않았던 진짜 이유는, 트라우마 탓이 아니라 내가 혼자였기 때문이었다.

나만큼 잘하는 사람이 없다는 오만에, 함께할 동료를 만들 마음의 여유나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의 동료들은 알아서 적의 스킬을 캔슬해 주고, 일사불란하게 NPC를 통제하면서도 버프와 힐을 놓치지 않았다.

또한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데미지를 위해 최선의 딜싸이클로 스킬들을 빈틈없이 쏟아붓고 있었다.

내 우려와 달리 우리 길드원들의 실력은, 내가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이렇게나 알아서 잘 해낼 정도로 뛰어난 수준이었다.

혼자였을 때는 이제까지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던 ‘정상’이란 자리.

그 자리를 어떻게 해야 밟을 수 있을지, 팀원들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난 예전과 달리,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니까!’

따라서 이번 드래곤 레이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해야만 했다.

이 드래곤을 쓰러뜨리는 것은 단순하게 보스 몹 레이드에 성공하는 것이 아닌, 오만에 잠겨있던 과거의 나를 쓰러뜨리는 일이 될 테니 말이다.

다 함께 드래곤을 쓰러뜨린다.

그리하여 마침내 난, 이곳 타연에서 ‘정상’이란 자리를 기필코 밟아 보고야 말 것이다!

“강화 마법진!”

퐈아아아!

순식간에 15%가량 피가 떨어진 녀석은, 레벤다스의 쉴드 어택 쿨타임이 돌아오기 전에 또다시 브레스를 시전했다.

하지만 두 번째인 만큼, 파티원들은 조금 전보다 여유롭게 볼포의 뒤에 능숙하게 숨어 피해냈다.

레벤다스의 탱킹과 수십 명의 원딜러들의 공격은 이렇게 절묘하게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해 나갔다.

현재로선 타이탄 말고는 지금처럼 안정적인 탱킹을 할 수 있는 탱커는 없었다.

또한 고레벨의 NPC 병사들이 아니라면 드래곤을 상대로 이렇게나 헛방 없이 딜을 먹일 수 있는 원딜러들 또한 많지 않았다.

덕분에 어그로가 튀지 않는 초반 페이즈는 너무도 수월하게 넘어갔다.

그렇게 볼포의 체력이 다해 다시금 소환한 폴보마저 두 번의 브레스를 막아낼 때 즈음, 마침내 투 메르타스의 HP를 반 피까지 깎아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녀석의 페이즈가 바뀌어, 이제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패턴의 공격을 선보였기 때문이었다.

“건방진 인간 놈들! 너희가 감히 이곳에서 나를 대적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느냐!”

중저음의 위엄 있는 목소리가 온 레어 안에 울려 퍼지는 순간, 머리 위 천장에서 무언가 열매 같은 것이 무작위로 떨어졌다.

마법 공격이란 생각에 떨어지는 궤적을 보고 피해버린 나는, 곧바로 땅에 떨어진 것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산드로: 소환 몹입니다. 이 자식 부하 몹도 부르는 놈이었어요!]

[축복받은얼굴: 뭐라고? 소환 몹?]

<가디언 자이언트 엔트>

지름 2미터 정도의 열매는 땅에 떨어지자마자 나무가 자라듯 순식간에 커졌다.

그리고는 전부 오우거 정도 크기의 위협적인 몬스터로 돌변하고 말았다.

‘둘, 넷, 여섯……. 미친, 저런 걸 한번에 20마리나 소환했다고?’

레이드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내 머릿속에 실패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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