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제국의 습격 (3)
“다들 뭐 하고 계세요! 아직 업적치들이 얼마나 많이 널려 있는데요!”
“아! 맞다! 지금 전쟁 중이었지!”
우리의 목표는 타이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제국군과 지휘관을 잡고 최대한 많은 업적치를 획득하는 것.
따라서 이렇게 넋 놓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미 로젠타스 성의 내성문이 뚫렸는지, 제국군들은 전방을 향해 쉴 새 없이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7군단 이름이 뭐랬지? 멈추지 않는 돌격이랬나? 우리야말로 멈추지 말고 돌격하자!!”
“예에! 모두 축굴이를 따르라!”
아직 레벤다스의 소환이 1분가량 남아있었기에, 다시 현중이의 어깨에 올라탄 상태로 제국군을 향해 성큼성큼 돌진해 나갔다.
그 짧은 순간을 틈타, 나는 조금 전에 얻었던 업적을 다시 한번 확인해 봤다.
[업적 : 귀족 살해자(B)]
* 타이탄 연대기에 존재하는 귀족 NPC를 처치했을 때 주어지는 업적입니다. (공격력 +6%)
* 업적 효과로 일부 NPC들로부터 선제공격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 귀족을 추가로 살해할수록, 이 업적은 더욱 뛰어난 효과로 거듭나게 됩니다.
“오! 늘었다! 1%지만 확실히 늘었어!”
“응? 뭐가?”
내 탄성을 들은 현중이가 말을 걸어왔다.
“너도 아까 타이탄에서 나온 장교 한 마리 잡아서 업적 먹었지? 그 업적이 업그레이드됐어!”
“응? 어디 보자…… 아닌데? 난 처음 그대로 5%인데?”
“아, 그래? 그건 아마 내가 장교를 더 많이 잡아서 그런 걸 거야. 아무튼, 이거 물건이네. 생각도 못 했는데, 제대로 된 업적을 꽁으로 얻게 됐어.”
비록 페널티도 있는 업적이었지만, 현재로서는 거의 신경도 쓰이지 않을 수준이었다.
그에 반해 효과만큼은, 내가 가진 최상위급 업적과 비교해도 크게 꿇리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아직은 그 정도까진 아니고 성장 상한선이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딱 봐도 10%까지는 무난히 성장할 것 같았다.
‘일단 여기 있는 장교와 지휘관들부터 싹쓸이해 봐야겠다!’
워낙 보폭이 큰 레벤다스인지라, 몇 분간 타이탄들과 전투하며 뒤처졌다고는 해도 금세 제국군 본진에 따라붙을 수 있었다.
어그로가 끌리지 않았던 4대의 타이탄은 그사이, 저 멀리 로젠타스의 내성문 앞까지 전진한 상태.
반면 아직 후방에 있는 본진은 1, 2천 명을 훌쩍 넘어가는 유저들과 한데 뒤엉켜, 말 그대로 ‘개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산드로: 라챤아! 지휘관 같은 놈들 보여?]
[라스트챤스: 형님! 와순이 쪽으로 따라오세요! 이글 아이로 확인했어요! 사령관 발견했습니다!]
[산드로: 오! 사령관!!]
“축굴아, 너도 길드 채팅창 봤지? 사령관이란다. 우리 예상이 맞았어!”
“어떡할까? 이대로 계속 달려?”
“달려야지 그럼 멈추냐? 달려 달려! 우리에겐 루이투스가 남아 있잖아!”
도처에 널려 있는 제국병사들을 밟으며 뛰어가는 레벤다스.
이윽고 시간이 다해 역소환되어 사라지는 순간, 나의 루이투스가 바톤을 터치하듯 소환됐다.
“나이스 캐치!”
나는 허공에서 떨어지는 현중이를 잡아 어깨 위에 태우고는, 이어서 달려 나갔다.
그렇게 쉬지 않고 수백 미터를 돌진하자, 더욱 높아지고 또렷해진 시야 한편에 시뻘겋게 붉은 이름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제국 7군단 사령관 카르 테미트 백작>
이번 습격 이벤트의 우두머리이자, 우리가 찾고 있었던 메인 디쉬였다.
주로 사슬 갑옷을 입은 제국군 병사와 달리, 녀석의 주위에는 풀 플레이트를 잘 차려입은 정예 기사들이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별다른 의미를 갖지는 못했다.
[심판의 전진!]
심판의 전진은 타이탄마저 넉백시킬 수 있는 세계관 최상위급 전진기.
때문에 제국 기사단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전부 다 널브러지며, 사령관까지 향하는 직선 길을 열어주었다.
[광휘의 검!]
이어서 평캔을 섞어 넣은 광역 스킬이 땅 위에 내리꽂혔다.
하지만 사령관은 넉백에 이은 공격 스킬까지 정통으로 얻어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곧바로 일어나 루이투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오! 역시 네임드다 이건가?”
일반 고레벨 몹보다 살짝 더 버티던 수준이었던 장교들과는, 태생이 다른 놈 같았다.
이래 봬도 군단의 사령관이자 이번 습격의 보스 몹이라고, 아무래도 일루전이 신경 좀 써 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인간형 몬스터.
녀석이 나와 같은 수준의 사기 캐릭이 아니고서야 타이탄을, 그것도 그냥도 아닌 로드급을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제국의 징벌을 달게 받으라!”
“제국의 검 앞에는 오직 영광만이 있나니!”
“변방의 삿된 것들은 제국의 깃발 아래 모두 사그라들지어다!”
온갖 오그라드는 대사들이 전장에 쉴새 없이 울려 퍼졌다.
녀석은 공격당할 때마다 주절댄 멘트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내리찍었다.
사방팔방에서 호위로 보이는 황금색 판금 갑옷의 정예 기사들이 검을 휘둘러 왔다.
궁수병들로부터 수백 개의 화살 공격 또한 끊임없이 쏟아졌다.
하지만 난, 오직 사령관을 한 대라도 더 때리는 것에만 몰두했다.
“제국을 천 년 동안 어떻게 지켜왔는지, 다시금 깨닫게 하겠노라!”
그러길 얼마.
역시나 인간형 몬스터답게 HP가 금세 다 닳았는지 마지막 발광을 시작했다.
최후의 수단, 타이탄 소환이었다.
지잉-!
<강화된 가이라 나이츠>
나이트 급에는 못 미치는 솔저급 크기.
그러나 ‘강화된’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서 그런지, 외장갑(外裝甲)이 조금 더 두텁고 마법진이 새겨진 특별한 방패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변한 건 없었다.
녀석이 타이탄을 탔다 하더라도, 내게는 그저 HP가 많은 몹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느려진 공격 속도 때문에 데미지는 탑승 전보다 더 약해졌는지, 이젠 신경조차 쓰이지 않게 되었다.
[영광의 검!]
녀석에게 쿨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광역 스킬을 날렸더니, 주변에 있던 제국군들이 끊임없이 죽어 나갔다.
[제국군 정예 기사를 처치하여 길드 업적치 48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제국군 정예 기사를 처치하여 길드 업적치 48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제국군 병사를 처치하여 길드 업적치 12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번쩍!
거대한 타이탄을 탑승한 채로 뜬금없이 레벨업을 해버려서, 전장 한복판이 한순간 환하게 빛났다.
[축복받은파볼: 뭐야? 우리 드로, 사령관 잡고 있는 게 아니라 열렙 중이었던 거야? 우린 열심히 쩜사하고 있었는데 너무 혼자만 재미 보네~?]
[산드로: ㅎㅎㅎ 얘네들 생각 외로 경험치가 짭짤하네요.]
[라스트챤스: ㅋㅋㅋㅋㅋㅋㅋ 아 웃겨]
원래 인간형 몬스터는 대부분 스킬을 사용해서 동렙 대비 경험치가 많은 편인데, 400레벨 안팎의 고레벨들이다 보니 업적치뿐만 아니라 경험치도 짭짤하게 줬다.
그런 놈들을 벌써 천 명 단위로 잡고 있다 보니, 짧은 시간 만에 어지간한 인던 두세 번을 돈 것만큼 많은 경험치를 먹게 된 것이다.
물론 이건 다 나를 포함한 우리 버닝스타 길드원들이 하나같이 서버 최고 수준의 무기와 랭커급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업적치를 노리고 참여한 주변의 일반 유저들은, 하나같이 대규모의 제국군을 상대하는 것을 버거워하고 있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전투가 시작된 지 꽤 시간이 지났으나 여전히 제국군의 기세는 꺾이지 않은 반면 유저들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어든 상태였다.
제국군의 숫자가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상대하던 유저들도 죽어서 상대적으로 전장에서 이탈된 수가 상당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반드시 사령관부터 죽여야 해! 놈을 죽이고 나면 제국군이 뭔가 변해도 변하겠지! 안 그럴 거면 사령관이 있을 이유가 없잖아?’
한편, 죽이고 죽여도 끝없이 그 자리를 채우고 들어온 제국군들의 누적 공격 때문에 루이투스의 무지막지한 HP도 어느새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일말의 동요도 없이, 사령관의 타이탄만을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이제 나는 타이탄의 사용법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운 좋게 타이탄이 전혀 없던 시기에 최고 등급의 타이탄을 얻게 되어 깽판을 벌일 수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타이탄은 깽판용으로 만들어진 만능 소환물이 아니었다.
평타 공격력이 강하다지만 공격 용도의 전용 스킬은 턱없이 부족했고, 심지어 타이탄끼리는 서로의 공격을 막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타이탄은, 공격용보다는 대규모 전투에서 진형 파괴와 일반 유저들을 대신해서 몸빵을 해주는 역할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딱 그 용도에 맞게 이렇게 주변 제국군의 모든 공격을 루이투스가 몸빵하는 동안, 우리 버닝스타 길드원들은 큰 위험부담 없이 사령관을 향해 집중 공격을 할 수 있었다.
쾅!
그 결과, 조금 전에 잡은 일반 타이탄보다 몇 배는 더 방어에 특화되어 보였던 사령관의 타이탄도 결국 파괴할 수 있었다.
녀석이 유저가 아니었기에, 루이투스의 평타 공격을 잘 방어해 내지 못한 것도 한몫했다.
『이런 변방에 너희 같은 놈들이 있다니!』
다시 타이탄 바깥으로 튀어나온 제국의 백작은, 여전히 시끄러운 놈이었다.
하지만 다른 장교들과는 다르게 타이탄을 부수고 나니 사령관의 레이드는 끝이 난 듯싶었다.
희한하게도, 놈이 버젓이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시스템 창에 여러 메시지 로그가 주르륵 올라왔던 것이다.
[제국 7군단의 사령관을 패퇴시켜 길드 업적치 240,00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파괴된 타이탄의 정수 조각(6)을 획득했습니다.]
[업적 ‘전장의 지배자’를 획득했습니다.]
[가이라 제국군의 사령관이 패배하여, 모든 제국군들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감소합니다.]
“어? 뭐야? 이놈 잡은 거야? 아직 살아있는데?”
처음 보는 현상에, 옆에서 함께 공격하던 현중이조차 황당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한데 그런 의문도 잠시, 곧이어 우리는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사령관의 바로 앞 허공에, 파랗게 일렁이는 포탈이 생성됐던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물러나지만, 결코 너희를 용서치 않으리라!”
뭐지? 제국군 사령관쯤 되니깐 쉽게 죽지는 않는다는 건가?
그런 생각이 스치듯 들었지만, 녀석을 얌전히 보내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심판의 전진!]
어느새 쿨타임이 차 있던 심판의 전진을 반사적으로 써 봤더니, 포탈에 들어가려던 녀석이 맞고는 넘어져 버렸다.
아주 잠시만 늦었더라도 녀석이 순식간에 포탈에 들어가고 말았을 타이밍이었다.
어쨌든 넘어지는 모습을 확인한 나는, 한 치의 지체도 없이 영광의 검을 날려 주변을 공격한 다음 곧바로 루이투스를 역소환했다.
어차피 HP도 거의 다 닳은 루이투스에 미련을 두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에 승부를 걸어볼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마침 주변에 유저도 없다! 실전에서 스킬이 통하는지 시험해 보기에 딱 좋은 타이밍이야!’
아직 사령관이 넉백 상태에서 일어나기 전, 나는 허공에서 그림자 밟기를 사용해서 녀석의 뒤로 이동한 후 빠르게 손목을 맞부딪쳤다.
챙!
단테리오의 팔찌끼리 부딪치는 경쾌한 쇳소리를 신호로, 내가 새롭게 완성시킨 비장의 한 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마쳤다.
“야! 너 미쳤어? 거길 왜 들어가!”
“어? 어? 형님 위험합니다!”
뜬금없이 타이탄도 없이 사령관이 있는 적진 한복판으로 이동한 나를 보고, 길드원들이 깜짝 놀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뭐라고 말하는지까지는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다.
전투가 시작된 후로 집중력이 떨어진 적은 없었지만, 또다시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느껴질 정도로 집중력이 최고로 고조됐기 때문이었다.
“다들 저 좀 엄호해 주세요! 이 자식이 죽는지 안 죽는 놈인지, 지금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