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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111화 (111/350)

111화 제국의 습격 (4)

[급소 공격!]

양 손에 든 검을 쉴 새 없이 좌우로 벨 때마다, 사령관의 몸은 경직으로 주춤거렸다.

그렇게 빠르게 7번의 공격이 휘둘러진 후!

[급소 공격!]

“컥! 커컥! 컥! 컥!”

짧은 텀을 두고, 다시 또 7번의 공격이 휘둘러졌다.

녀석은 내 공격에 반격할 생각도 못하고, 어떻게든 정해진 대로 포탈 속으로 들어가려고만 했다.

하지만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경직 때문에, 뚝뚝 끊기는 신음소리만 내뱉으며 단 한 발자국조차 떼지 못했다.

펑! 펑!

그런 녀석의 검은 갑옷 위로, 신검의 빛 속성 마법 공격이 터지며 발생한 하얀 빛이 번들대며 반사됐다.

순간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감상이 들 정도로, 난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몇 번이나 공격했을까?

그야말로 무아지경 상태에서 휘두르던 검이 마침내 멈췄다.

“커거걱!”

[전쟁 관계에 있는 가이라 제국의 백작을 처치하여, 길드 업적치 1,200,000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강화된 타이탄의 정수를 획득했습니다.]

[업적 ‘귀족 살해자’가 조건을 충족하여, ‘귀족 학살자’로 진화했습니다.]

잡는 내내 타연 최고의 떠버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시끄럽던 사령관.

그가 갑자기 어떠한 멘트도 없이 죽어버렸던 것이다.

“뭐야……?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형님! 결국 사령관은 도망친 거예요?”

파랗게 일렁이고 있는 포탈 때문에…….

그리고 사령관이 그 포탈 바로 앞에서 들어가기 직전의 상태로 가려졌었기에…….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니. 잡았어…….”

“네? 뭐라고요?”

“내가 사령관을 잡아 버렸다고!”

“네에? 무슨 말도 안 되…… 정말요!”

예전에도 가끔씩 이런 경우가 있었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드물지만, 패키지 게임을 하다 보면 주요 악당을 잡을 수 없던 경우가.

수백 번씩 세이브 로드를 반복하며 어떻게든 잡아보려 시도해봤자, 무슨 수를 써도 절대 잡지 못하게 세팅돼 있던 놈들.

그때의 분풀이를, 오늘 이 자리에서 이런 식으로 풀게 되리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미친놈! 저거 저러다 계정 압류당하는 거 아닌지 몰라!”

“내가 왜? 정당하게 템과 스킬 조합해서 잡은 건데! 난 떳떳해!”

“일단 두 사람 다 얼른 훼라리에 타! 제국군 한복판에서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축빙 형님의 말처럼, 사령관은 죽었지만 정예 기사들과 병사들은 여전히 우리를 둘러싸며 몰려드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훼라리에 계신 축빙 형님에게 그림자 밟기를 써서 올라타고, 곧이어 천상의 방패를 쓴 현중이까지 태운 다음 날아올랐다.

[산드로: 얼떨결에 사령관을 잡아버렸는데, 제국군에 새로운 페널티가 주어지진 않았네요. 아무래도 패퇴시키는 것까지가 정상적인 공략 과정이었나 봐요.]

[라스트챤스: 잡으라고 만들어 놓은 게 아닌 걸 잡다니... 과연 형님이십니다ㅎㅎ]

[축복받은얼굴: 급소 공격이 원래 좋은 평가를 받는 스킬이 아닌데, 저 자식이 익히니깐 완전 개사기 스킬이 돼버렸네ㄷㄷ]

경직은 원래 스턴이나 넉백에 비해, 그 효과가 훨씬 떨어지는 터라 크게 선호되는 상태 이상이 아니었다.

고작해야 이동기나 스킬 캐스팅을 중간에 캔슬시키는 용도로밖에 쓰이지 않는 수준인지라, 익히더라도 웬만하면 1성 정도만 찍고 관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모아왔던 모든 스킬 포인트를 투자해서 급소 공격을 7성까지 만들어 놓고 보니, 비록 내 캐릭에 한정된 것이겠지만 필살(必殺) 스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7성이 되며 쿨타임 시간도 줄어들어, 스킬 가속 상태에서는 거의 무한 경직 상태를 유발하며 평타 공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전에서 써보니까 알겠어. 조만간 8성을 달성하면, 역시 완벽한 무한 경직 상태가 완성된다는 것을!’

어쨌든 7성 정도만 해도 효과는 대단했다.

그야말로 공격이 적중하는 순간부터 내 MP가 먼저 떨어지든 상대의 HP가 먼저 떨어지든지 간에, 둘 중 하나가 아작나야지만 결판이 나는 스킬이 돼버렸다.

일단 맞기 시작하면 도망을 못 가게 되니 말이다.

[산드로: 일단 목표했던 대로 사령관을 잡았으니 성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디펜스는 역시 거점에서 하는 게 제맛이죠!]

[축복받은파볼: 드디어 난사 좀 제대로 해보겠네. 타이탄으로 육탄 공격부터 하는 마법사는 타연에 나밖에 없을 거야 원.]

[산드로: ㅋㅋㅋ 축볼 누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아까 1대 3으로 막으시던 거 보니 기사를 하셨어도 잘 하셨을 것 같더라고요ㅎㅎ]

[축복받은파볼: 아~ 이제 와서 마검사로 전직할 수도 없고~ 마법사용 타이탄은 안 나오려나?ㅋㅋ]

사령관이 죽은 이상 이번 디펜스는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수많은 유저들의 참전으로 원래도 어느 정도 할 만했는데, 전 제국군이 디버프를 먹은 것과 마찬가지가 됐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 버닝스타 전원이 로젠타스 성에 복귀할 때쯤, 진격했던 타이탄을 전멸시킨 것은 물론 내성 안까지 들어왔던 제국군들 또한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

침투 루트가 구름다리 쪽 하나뿐이었기에, 디버프로 제국군이 약해지자마자 꾸역꾸역 몰아낸 모양이었다.

그 상황에서 우리 버닝스타까지 디펜스에 참전하자 결과는 뻔했다.

규모가 규모인 만큼 전투는 그 후에도 오랫동안 이어졌으나, 타이탄과 사령관을 모두 잃은 제국군은 그저 단순한 몬스터 웨이브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제국과 유저 간에 이루어진 첫 번째 전쟁.

제국 최초의 군단급 습격은, 피닉스의 승리로 끝이 났다.

* * *

“언제들 오시려나?”

“금방 오시겠지. 둘 다 멀리 사시는 것도 아니니까.”

드래곤 레이드에 이어 제국군의 습격까지 쉴 새 없이, 정말 단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최선에 최선을 다해야지만 가능했던 레이드와, 제국군을 막기 위해선 얻은 것들을 최대한 빨리 소화시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과, 우리 버닝스타는 두 가지 모두를 훌륭하게 완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드리기만 하면 결국 부러지는 법.

이번에 얻은 게 많기도 하고 마침 잠시 짬도 생겨서, 우리는 간만에 두 번째 정모를 하기로 했다.

“여, 먼저들 와 있었네?”

“어? 같이 오시네요?”

“아,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어. 현중아, 이상하게 보지 말아라?”

“제, 제가 뭘요 형님!”

“견제의 눈빛인 거 같았는데, 내가 잘못 본 건가? 흐흐.”

축복받은 어르신들, 축빙 형님과 축볼 누님이 함께 도착했다.

사실 그동안 게임 안에서도 느끼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현중이 자식은 축볼 누님에게 은근히 마음이 있는 듯싶었다.

굳이 물어보고 확인하기보단 아직은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역시 나만 그렇게 느꼈던 건 아닌 모양이었다.

‘현중아. 어떻게 되든 잘되길 빌긴 비는데…… 제발 길드 쫑낼 일만은 만들지 말아 주길 부탁한다!’

태성 길드가 아무리 거세게 압박해와도 버텨낼 자신이 있었다.

한데 그런 우리 버닝스타가, 자칫 위태로울지도 모를 불씨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오늘은 라챤이도 오기로 했지? 아직 안 왔어?”

“라챤이는 좀 멀리 살잖아요. 집이 강남이랬나? 아마 차가 한창 막힐 시간이라 조금 늦을 거예요.”

“오! 강남? 역시 있는 집 자식이었던 건가!”

“있는 집 형님이 그런 말 하니깐 재수 없는 거 아시죠? 크크.”

“현중아, 네가 형한테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아무튼, 각자 자수성가한 몸들이면서 뭘 또 재수가 없다고 그러냐. 드로, 아니 지환이도 이제 부자 아냐?”

티격태격하는 현중이와 축빙 형님.

그 와중에 은근히 내 벌이가 궁금하셨는지 물어보셨다.

“에이, 뭘 그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보세요. 안에서는 퍼주지 못해 안달이시더니만…… 역시 좀 아까우시죠?”

“아니, 그게 아니라. 너 버는 사이즈 봐서 나도 프로 타연러로 전향할까 싶어서 말야. 태성에 복수만 끝나면 겜 접을까 했는데, 요즘 들어서는 그냥 직업으로 삼아도 되겠다 싶더라고. 대기업과 스폰 계약해서 겜하는 애들보다 네가 훨씬 더 잘 벌잖아? 말해줘 봐. 얼마나 벌었어?”

“아……. 그게 저도 참 어이가 없긴 한데…… 골드만 한 30억쯤 갖고 있는 거 같아요.”

“뭐? 30억!!”

어느새 슬슬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날씨다.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할 때쯤 신검을 먹게 됐는데, 그 짧은 시간 만에 이렇게나 많이 벌다니…….

굳이 계산해보자면 1달에 약 10억씩 번꼴이라 나조차도 놀라웠다.

“어머! 우리 드로, 그렇겐 안보였는데 제대로였네? 그 정도나 벌었으면 돈도 좀 쓰고 다녀. 아무리 겜만 한다지만 누가 보면 백순 줄 알 거 아냐.”

“전 그냥 하던 대로 다니는 게 좋더라고요. 아직은 돈보다는 게임 속 목표에 더 집중하고 싶기도 하고요.”

어릴 적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 기억났다.

아버지가 젊었던 시절에는 하루아침에 가상 화폐로 수십억, 수백억씩 번 20, 30대가 많았다고.

한데 그들이 돈을 벌게 된 후, 그 돈을 제대로 유지 못 한 사람들 또한 그렇게 많았다고…….

돈이 궁핍하던 시절엔 내가 이렇게 될 줄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돈이 많아졌더니 오히려 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싫다는 게 아니라 돈은 그저 부차적인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나 할까?

랭킹 1위가 되고 태성을 무너뜨리다 보면, 자연스레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따라올 거란 사실이 이제는 너무 분명하게 보였다.

“드래곤은 언제 또 리스폰 될까? 되면 우리가 또 잡아야겠지?”

“이제 적들도 슬슬 타이탄이 등장하는 거 보면, 앞으로는 전투 규모가 엄청 커질 거 같더라.”

“막상 제국과 싸워보니까 그렇게 겁낼 건 없을 것 같지 않냐?”

“상급 길드가 되자마자 태성 놈들한테 전쟁을 선포했으니까, 이제부턴 필드에서 마주치는 족족 다 죽여버릴 거야!”

간만에 모인 회포를 한 번에 풀기라도 하겠다는 듯, 다들 연신 잔을 부딪치며 수다를 떨었다.

그러길 1시간여, 마침내 라스트챤스 ‘연석’이가 도착했다.

“늦었습니다, 형님 누님들. 뭐야! 벌써들 취하신 거 아니죠?”

“너 왜 이렇게 늦었…… 어? 이분은 누구셔? 너 혼자 오는 거 아니었어?”

그런데 혼자만 온 게 아니었다.

상의도 없이 한 명을 더 데리고 와버렸다.

“소개해 드릴게요. 저희 친누나예요. 웬일로 자기도 가 보고 싶다고 따라온다고 해서요. 괜찮으시죠?”

“안녕하세요, 타연에서 연우라는 아이디로 플레이 중인 서연우라고 합니다. 다들 반가워요. 괜히 초대도 안 했는데 폐 끼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반갑습니다 산드로 님, 뵙고 싶었어요.”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인사하는 연우님.

항상 두상을 전부 가리는 큰 투구를 쓰고 있어서 몰랐는데, 연우님의 실물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미인이었다.

“어? 여, 연우 님? 폐라니…… 설마요! 여러분, 다들 아시죠? 태성 안에서 활약 중이신 연우 님이세요. 제 은인이자 저희 길드에 항상 도움을 주시고 계신 그분이요.”

“어머! 어서 오세요. 항상 말씀 많이 들었어요. 같은 여자가 한 명 더 느니깐 좋네요! 분위기가 한참 동안 우중충했는데!”

라챤이도 현실에서는 처음 보는 자리였는데, 연우님까지…….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녀는 이 자리에 참석할 자격이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녀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버닝스타 길드가 성장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조력자였기 때문이다.

“직접 뵙는 건 처음인데, 생각보다는 멀쩡하시네요?”

“네? 멀쩡요?”

“풋, 농담이에요. 사실 산드로 님 뵈러 온 거거든요. 근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아, 올해로 28살이에요.”

“오! 생각보다 동안이시네요? 제 또래인 줄 알았는데, 저보다 1살 많으니까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이쪽 남매는 둘 다 성격이 좋은 모양인지, 라챤이는 금세 길드원들과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연우님은 내 옆자리로 와, 이것저것 물어오며 살갑게 굴었다.

어딘가 게임 속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근데 평소부터 궁금했는데…… 연우 넌, 어쩌다가 태성네 스파이로 들어가게 된 거야? 그것도 실명으로 그렇게 플레이하면, 위험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해본 적 없어?”

“아…… 말씀드리긴 부끄러운데, 저도 복수하고 싶은 게 있거든요. 조금 더 친해지면 그때 말씀드리든가 할게요. 그리고 어차피 나중에는 다시 피닉스로 돌아갈 건데, 그 후에도 게임은 계속할 거니까 아이디는 실명으로 지었어요. 사실 태성 1군까지 들어가게 될 줄도 몰랐고요.”

“아, 결국 피닉스로 돌아갈 생각이었구나?”

“근데 모르겠어요. 만약 오빠만 받아주신다면…… 버닝스타로 들어갈 수도 있는 거겠죠?”

“으, 응? 뭘 받아줘?”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했나?

자리가 자리인터라 친목 길드로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 길드는 엄연히 복수를 위해 만들어진 임시 길드였다.

한데 그런 길드에 들어오겠다니?

“호호, 농담이에요. 하지만 모르죠. 세상일이라는 게 원래 처음 생각대로만 되진 않잖아요? 나중에 오빠와 이곳의 멤버들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죠. 오빠는 혹시 태성을 무너뜨린 다음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 있으세요?”

“그 후라……. 아직은 복수만으로도 벅차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 한데 아마 이대로라면 프로 게이머가 되지 않을까?”

“프로 게이머도 좋죠. 근데 아쉽지 않으세요? 나중에 오빠가 랭킹 1위가 되고 더 유명해지시다 보면, 얼마든지 길드를 키워서 건국도 하실 수 있을 텐데요?”

한 번도 고려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지만, 듣다 보니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관식 당일, 광휘에 휩싸인 채 왕좌에 앉던 다리우스의 모습.

그게 내가 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아…… 모르겠다. 일단은 다리우스와 태성을 잡는 데만 집중해 보고, 그다음에 다시 생각해볼게.”

“네, 알겠어요. 아무튼 잘됐네요. 무슨 일이든지, 굳이 가능성을 닫아둘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마지막 말과 함께 내게 잔을 드는 연우.

그녀의 잔에 내 잔을 부딪치며, 내 앞날에 대해 여러모로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타연은 물론, 현실에서의 삶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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