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117화 (117/350)

117화 암살단 가입 (1)

(나: 네? 그게 무슨? 운영자라니요?)

설마?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선을 넘은 건 아니겠지?

(카이저: 이정도 말해주었으면 너도 충분히 알아차렸을 텐데? 산드로, 네가 보기에 마탑주가 정말로 NPC 같아 보였나?)

(나: 이런...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운영자가 게임에 개입했다니요? 심지어 전, 정말로 죽을 뻔했다고요!)

-지루한 현실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 보세요!

일루전이 내세우고 광고하는 여러 슬로건 중, 가장 유명한 멘트.

이 말대로 타연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탓에, 다른 게임들과 달리 어떻게 보면 유저들에게 불편함마저 안겨주는 특별하고 생소한 정책들이 많았다.

개인 방송이나 너튜브 방송을 할 수 없도록 개인 동영상 촬영이 불가한 점.

극소수의 과금 정책 외에 게임 내 밸런스에 영향을 끼칠만한 캐쉬템들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점 등등 말이다.

이런 것들은 당연하게도 초창기에 많은 저항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탁월한 정책이었다는 평가를 훨씬 더 많이 받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유저들이 타이탄 연대기의 세계관 속으로, 조금 더 쉽게 동화되고 깊게 몰입을 할 수 있었던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중 유저들의 게임 플레이에 개발사의 개입을 최소화한 것도, 좋은 평가를 받는 정책 중 하나였다.

타연은 유저들이 개발사가 의도한 플레이를 하지 않더라도, 그걸로 자신들만의 콘텐츠를 만들게 됐다면 다소 악영향이 있더라도 절대 개입하지 않았다.

타이탄으로 PK를 할 시 드랍이 안 되게 바뀐 것과 NPC 보호를 강화한 것 등.

혼자서 두 번이나 패치하도록 만들었던 내가, 타연 내에서 굉장히 희귀한 케이스였던 것이다.

한데 운영자가 게임에 임의로, 그것도 몰래 개입한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심지어 정상적으로 플레이 중이던 유저를 몰래 죽이려고 시도했다고?

이게 사실로 밝혀진다면 타연 자체적으로도, 그리고 현실 속 게임 개발사인 일루전에게도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심각한 사건이었다.

(카이저: 확실하다. AI는 절대 그런 식으로 심리전을 할 수 없다. 거기다가 난 결정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증거도 있다.)

(나: 부정할 수 없는 증거요?)

(카이저: 녀석은 너와 전투를 하던 도중에 나와 눈을 마주쳤다. 전투 중에 곁에 있던 유저와 눈을 마주치는 NPC라니? 산드로 넌, 상상이라도 해본 적이 있나?)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가상 현실 게임.

그래서 일루전은 유저들이 항상 게임임을 자각할 수 있는 장치들을 곳곳에 마련해 두었다.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게임 타이틀 글자.

비현실적으로 외형을 커스터마이징한 유저.

천편일률적이면서 어떨 때는 많이 모자라 보이기까지 하는 NPC들의 대화 패턴 따위도, 그런 장치들 중 하나였다.

내가 항상 진지하게 말을 걸어오는 NPC에게 장난스럽게 대꾸했던 이유.

그건 사실 그들을 진지하게 대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조금씩 이곳이 게임 속 세상인 걸 자각하지 못할까 봐 무의식적으로 발현한 방어기제였는지도 몰랐다.

그런 만큼, 일루전은 NPC들이 진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부자연스러운 요소를 많이 집어넣었다.

딱딱한 말투와 마네킹처럼 허공을 응시하며 말하는 모습이 그중 두드러지는 특징이었기에, 카이저의 말을 듣다 보니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동안 유저와 눈을 마주치는 인간형 몬스터나 NPC는 이제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하물며 전투를 벌이는 도중에 주변을 살피면서 다른 유저와 눈을 마주치는 NPC라니!

(나: 누구죠? 그리고 어떤 자식이 무슨 이유로 이런 짓을 하는 거예요? 혹시 짚이는 바가 있습니까?)

(카이저: 해킹이 불가한 가상 현실이니, 테오시스, 이오네스, 젠티스.... 이 3명의 운영자 중 하나겠지. 느낌상 내가 봤던 놈과 이번에 나타난 놈은 동일한 놈으로 보인다. 아마 운영자만이 할 수 있는 밝혀지지 않은 스킬을 사용한 것일지도 모르지. 가령 ‘빙의’같은.... 아무튼 나도 그가 누군지, 그리고 어떤 이유로 이런 짓을 하는지까지는 모른다. 다만 추측하는 바가 있을 뿐.)

(나: 당연히 좋은 의도는 아니겠지요?)

(카이저: 내 경우에도 너와 같았기에, 이번에 나타난 것을 보고 내 추측이 어느 정도 확신으로 바뀌었다. 느닷없이 랭킹 1위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녀석은 평범한 NPC 보스 몬스터인 척 나타나 방심했던 날 죽일 뻔했다. 조금 전 너를 죽이려 들었던 것처럼 말이지.)

(나: 미쳤군요! 저뿐만 아니라 랭킹 1위도 죽이려 들었다니!)

(카이저: 한데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궁금한 점이 하나 생기더군. 과연 놈이 다리우스에게도 그랬을까? 지금까지 쭉 랭킹 1위를 유지해오는 동안, 대관식 때를 제외하곤 죽은 적이 없다고 알려진 다리우스도?)

카이저의 추측이 이어질수록,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타연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예전부터 운영자의 부정한 개입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욱 심각한 일도 벌여왔다고 언급하고 있었다.

(카이저: 사실 난 다리우스의 경쟁자 중 한 명으로서 예전부터 의심해 왔던 바가 있었다. 다리우스는 어떻게 최초 발견과 최초 클리어를 그렇게 자주 해내는 거지?)

(카이저: 또한 어떻게 하나같이 레전더리 템들을 +10이나 +9까지 강화할 수 있었던 거지? 과연 첫 시도만으로 신검을 뽑았던 건 정말 단순히 운이 좋아서 그랬던 건가?)

(카이저: 산드로, 넌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카이저의 물음이 계속 이어졌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답장을 주지 못했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을 조금이라도 긍정하는 대답을 하게 되면, 내가 여태껏 가지고 있었던 타연에 대한 애정이 근간부터 흔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불공평하고 불공정한 현실이 싫어 도피하듯 살아오다가, 타연을 접하고부터 현실을 잊고 지냈다.

비록 타연에서도 퀘스트 노가다나 지겹도록 하는 별 볼 일 없는 삶이었지만…….

운이 없어서 그랬다고 여겼을 뿐, 게임 자체에 불만을 품어본 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기에 신검이라는 행운을 쥐자마자 비상하듯이 날아오른 나 자신이, 스스로도 뿌듯하고 대견했던 것이다.

한데 이곳도…… 현실과 다를바 없이 불공평하고 불공정한 세상이었다고?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모르고 속고 있을 뿐, 행운과 정보를 독점한 세력이 존재해왔다고?

그 말은 지금 내가 이룩한 이 모든 것들이, 어느 한순간 그들에게 모조리 빼앗겨버려도 무엇 하나 이상할 게 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내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동안 ‘누군가’가 그저 나를 ‘봐준 것’이라는 뜻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나: 정말 믿을 수 없는 얘기지만.... 믿지 않을 수 없겠군요. 뷔잔드가 저를 죽일 뻔했던 건 사실이었으니까요.)

NPC를 대상으로 ‘살의’라는 것을 말하는 것도 우습지만, 나는 한순간 뷔잔드로부터 정말 살의를 느꼈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를 꼭 죽여버리겠다는 그 의지를.

심지어 신검을 주운 이후, 처음으로 죽음을 떠올려 봤을 정도였다.

(카이저: 방금같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온 것을 보면, 그의 권한에도 한계란 것이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거다. 그렇지 않았다면 넌 진작에 신검을 드랍했을 테니까. 또한 그런 맥락에서 볼 때, 개인정보 보호법의 영역에 있는 이런 귓속말 등은 안전할 것으로 생각된다.)

(나: 그렇긴 하겠지만, 뭐가 됐든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네요. 아... 정말 어쩌다가 타연에서 이런 것들을 신경 쓰며 플레이하게 됐는지..)

(카이저: 어쨌든 조심해라. 지금 넌 나와 대등한, 어쩌면 나보다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이나 주목받는 위치에 있으니 말이다. 그저 이 말을 전해주고 싶었다.)

(나: 뵐 때마다 정말 감사한 정보를 받기만 하네요.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후에 어떻게든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카이저: 난 그저 게임을 게임답게 즐기고 싶을 뿐이다. 그걸 방해하려는 놈들이 싫을 뿐. 그럼 건투를 빈다.)

나 또한 그랬다.

이제는 내 인생의 전부가 돼버린 타연.

이 게임을 망치는 녀석들이 있다면, 나부터가 용서할 수 없었다.

그게 설령 이 게임을 만들었다는 ‘운영자’라 할지라도!

* * *

『요즘은 대체 이 유저가 없었다면 무슨 뉴스를 방영했을까 싶을 정도인데요, 김석용 아나운서님, 오늘 정말 쇼킹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나요?』

『갈수록 기상천외한 일들을 벌이느라 저희가 다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이 유저로 인해 긴급 점검을 한 것만 해도 벌써 3번째가 아닌가요?』

『공식적으로는 2번째로 알고 있습니다. 한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의 발상이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제국의 습격을 막기에도 급급한 와중에 오히려 제국의 심장부, 황궁으로 쳐들어갈 생각을 하다니요! 과연 산드로 님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대담한 발상을 할 수 있을까요?』

인터넷에서 운영자에 관한 자료를 뒤지는 와중에, 켜두었던 TV에서 드디어 오늘 내가 벌인 일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마탑주 뷔잔드를 죽이고 난 지 10분 후.

일루전은 급작스럽게 긴급 임시 점검을 하며 1가지 사항을 업데이트했다고 패치 내역을 공개했다.

예상했던 NPC에 관한 공격 금지는 아니었다.

다만 전쟁 상태에 있는 국가 영토에 진입 시, NPC들의 어그로 감지 범위가 20배로 증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적군이 성안에 들어가려 하면 왕궁 내의 모든 경계병과 마법사, 기사단을 비롯한 근위대까지 전부 다 튀어나오도록 수정했다는 뜻.

한 마디로 이미 업적을 획득한 우리까지는 봐주겠지만, 똑같은 방법으로 다른 유저들이 수월하게 획득하는 것만큼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이 때문에 비매너다 아니다란 논란이 한창 쏟아졌다가, 패치가 완료된 후부터는 잠잠해진 상태입니다. 지금은 NPC들이 전부 부활한 상태라 퀘스트 관련에 어떠한 지장도 없는 상태로 복구됐고요. 양민아 앵커는 이번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군요.』

『처음부터 안 되는 걸 억지로 하거나 버그가 아니었다면 큰 문제가 있을까요? 물론 퀘스트 진행에 차질이 생긴 유저들 입장에서는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기발한 플레이들을 하나씩 막다 보면 타연을 연구하고 탐험하려는 유저들 입장에서도 불만이 생길 수 있지 않겠어요?』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어쩌면 이 사건은 타연이 이만큼이나 유저들에게 자유도를 부여했다는 하나의 좋은 예시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패치했으니 산드로 님과 그 길드원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간 불공평한 결과라고도 볼 수도 있겠군요.』

『전 그것도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산드로 님의 길드가 이번 사건을 벌여서 이만큼이나 이슈가 된 것이지, 사실 다른 길드들도 먼저 할 수 있는 일이었잖아요? 피닉스 길드와 그 동맹 길드까지 합치면 유저분들의 수가 수천 명이 넘어가는데, 그중에서 하필 산드로 님이 가장 먼저 시도했다는 것도 사실 전 대단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흠……. 저 여자는 아무래도 태성의 팬이었다가 우리 버닝스타 팬으로 완전히 돌아선 느낌인데?’

중립을 지켜야 할 자리에서 열심히 우리 편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니 고맙기는 했지만, 굳이 우리 편을 들어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요즘 들어서 느낀 건데, 어차피 아무리 이미지 관리에 신경 쓴다 하더라도 안티는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강해지고 유명해질수록 조금씩 안티가 생기는 것 같더니, 랭커급이 되고 드래곤을 레이드했다는 것이 밝혀진 다음부터는 폭발적으로 늘어나 버린 것이다.

현재 모니터 한쪽에 있는 게시판 글만 해도, 나에 대한 안티성 글이 무려 1/3은 되어 보였다.

-완전 지 주옥대로 게임하는 ㅅㄲ네. 지가 뭐라고 퀘주는 NPC들을 죽이냐? 마탑 판매 NPC들도 조졌다지? 왜? 마을 창고지기랑 거래소 NPC도 죽여보지 그랬어? 그건 쌍욕 먹을까 봐 못했나 보지?

-나도 중립 기어 넣는 편이긴 한데, 이번 건 좀 너무하긴 한 듯?

-사실 태성과 다리우스 잡는다고 예전부터 떠벌려서 기대했는데, 하겠다는 싸움은 안 하고 성이나 먹고 드래곤을 잡더니 이젠 뜬금없이 NPC를 잡고 있네? 도대체 다리우스 잡는 거랑 이것들이 무슨 상관있음?

-ㅅㄷㄹ 그 자식 걍 관종이라니까? 내가 보기에 지옥불이 마신검 떨군 것도 나댔던 ㅅㄷㄹ 책임이라고 봄. 그런데 지는 손해 본 것 없이 쏙 빠진 거 봐. 아마 벌 만큼 벌었으니 조만간 현으로 싹 다 정리하고 잠수탈 듯?

나에 대해 옹호하는 글과 팬을 자처하는 선플도 많이 보였지만, 예전과는 여론이 많이 달라진 것이 확실히 체감됐다.

예전의 내 포지션이 챔피언에게 도전하는 배고픈 언더독(underdog)의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가진 게 많고 하고 싶은 대로 플레이하는 새로운 챔피언이나 다름없게 보이는지도 몰랐다.

다리우스를 잡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더 강해져야만 했기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었다.

그저 녀석을 상대할 마지막 준비로, 부족했던 업적을 채우려 했던 것이었다.

한데 생각보다 쉽게 녀석이 가진 7신기의 해방자 업적을 상쇄할 만한 강력한 업적을 얻게 되었으니, 더는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그동안 성장하며 어떻게 해야 녀석을 잡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생각했던 결과.

결국 이 방법만이 최선이라는, 그 결론을 실행할 차례였다.

도닥통.

드디어 그에게 연락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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