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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121화 (121/350)

121화 체크 메이트 (2)

“그래서 걔가 그거 먹고 바로 접었잖아. 진짜 타연으로 현실에서 팔자 편 사람들이 한 둘이… 어? 뭐야? 네 뒤에 그거 뭐냐?”

“응? 뒤에 뭐가?”

“원래 밑에 누가 있었…… 헉!”

절묘하게 힐러의 몸을 가림막 삼아 설치했기에, 녀석이 뒤돌아보기 전 캐스팅을 완료할 수 있었다.

펑!

발 바로 밑에 설치했기에 바로 발동된 덫 설치.

오랜만에 밀폐된 실내에서 터진, ‘연막’이었다.

“자자, 하도 밖으로 안 나오길래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다 죽여버리자!”

“언제까지나 성안이라고 안전할 줄 알았냐?”

연막이 터짐과 동시에, 우리 암살단 일원들이 동시에 은신을 풀고 나타났다.

그리고는 각자 가까이에 있는 태성 길드원들을 공격하며 저마다 한마디씩 외쳤다.

“이런 미친! 산드로가 쳐들어왔다! 다들 일어나!”

“크아! 뭐가 이렇게나 많아? 도대체 몇 명이나 쳐들어온 건데?”

“이 자식들 버닝스타가 아니야! 죄다 도둑들이야!”

자욱한 연막 속.

하지만 누가 공격했는지 본인만은 볼 수 있었기에, 여기저기서 당황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낯선 아이디들이 쳐들어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하나둘씩 고함이 잦아들더니 이내 방 안은 순식간에 적막해졌다.

12명의 도둑이 한꺼번에 공격하자, 30명이란 숫자가 순식간에 전멸당하고 만 것이다.

비록 잠수 중인 유저도 있었지만, 극딜 캐릭인 도둑으로만 이루어진 것답게 막강한 화력이었다.

“와! 대박이네요! 태성 애들을 이렇게나 쉽게 죽일 수 있을 줄이야!”

“전에 없던 PK단이 탄생한 거니까요. 직접 해보니까 정말 장난 아니게 세긴 세네요.”

“근데 좀 이상하지 않아요? 아무리 그래도 여기 있는 놈들 대부분이 고레벨일 텐데…… 몸빵이 너무 약했어요.”

“뭔가 이상하긴 합니다. 전 운 좋게도 머더러를 잡아서 아이템을 먹었는데, 그게 레어 템이더라고요?”

“네? 레어요?”

유례없는 활약에 살짝 들떴던 우리 암살단이, 무적살라딘의 마지막 말을 듣고는 급격히 조용해졌다.

이곳은 태성의 고레벨 유저들이 찾는 전용 인던.

한데 이곳에서 레벨업하는 놈들이 고작 레어템을 차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다들 한가락 하는 유저들답게 이게 의미하는 바를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짝-짝-짝-!

그러던 순간이었다.

연막의 지속 시간이 끝나 방 안 풍경이 드러남과 동시에, 방문이 있는 입구 쪽에서 뜻밖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이곳까지 기어들어 오다니…… 넌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하구나? 겁대가리를 상실한 게 말이야. 어쨌든 잘 왔다 산드로, 이곳에 죽으러 온 걸! 하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가장 먼저 은빛 풀 플레이트를 착용한 기사가 들어왔다.

또다시 마주하게 된 악연(惡緣), 일도양단이었다.

“저 개새……, 아니 건방진 도둑 새끼! 그동안 어지간히도 잘난 척하더니 결국 이 꼴 났구나! 호호호!”

“아! 저놈만 생각하면 얼마나 열 받는지…… 그래도 이렇게 함정에 빠진 걸 보니 속이 다 시원하네요. 야 이 자식아! 내가 일부러 죽어준 건 줄 모르고 신났었지? 흐흐흐, 이번엔 네 차례다 요놈아!”

며칠 전 차례대로 내게 죽임을 당했던 홍당무와 홍길동에 이르기까지.

녀석들은 마치 우리가 다 잡은 물고기라도 되는 것 마냥, 차례차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신났구나 자식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그들 뒤에는 얼핏 봐도 백 명이 넘어 보이는 길드원들이 빼곡히 차 있었다.

[마나 쉴드가 872의 마법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872의 마법 피해를 흡수합니다.]

그리고 혹시나 모를 귀환 주문서 사용과 로그아웃, 은신 등에 대비해서 마법사들이 서둘러 아이스 포그부터 시전해 방 안에 깔고 있었다.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았다.

마치 나를 잡는 것은 자신들의 몫이 아니라고 어필하듯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던 중,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체크-메이트! 드디어 이 순간이 왔구나. 직접 널 죽이고, 신검을 되찾는 순간이-!”

일도양단 일행과 대치하느라 방치해 뒀던 뒤쪽의 포탈.

피넬리 성 전용 인던으로 통하는 그 안에서, 태성 길드원 수십 명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돈키호테, 슈마허, 울트라힐, 사부님 등등.

모두 태성 길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간부들이자 랭커들이었다.

그리고 나의 주적(主敵), 다리우스는 그 선두에 선 채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체크 메이트라니…… 고맙게도 이젠 날 왕 취급까지 해주는 거야? 근데 꽤나 유치한 함정을 팠네? 아주 얍삽하고 교활한 건…… 원래부터 천성인 거야?”

“하하하! 넌 아직도 허세를 부리나? 지금 이런 상황에 빠졌는데도?”

녀석의 말 그대로,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심각했다.

어느새 우리 암살단은 앞으로는 일도양단, 뒤로는 다리우스 무리에 포위되어 인(人)의 장벽에 갇혀버린 것이다.

이 상황을 더욱 절망스럽게 만드는 것.

그건 가뜩이나 수적으로 절대 불리했던 우리 암살단이, 갑자기 반으로 갈라졌다는 사실이었다.

“와…… 길고 길었던 작전이었다!”

“그래도 완전 석세스! 드디어 끝이네요!”

쿨맨, 쉐도우로드, 그리고…… 도닥통.

그들을 비롯한 총 6명의 도둑이 태성 멤버들의 등장과 동시에, 우릴 둘러싼 태성 측으로 이동한 것이다.

“뭐야? 도닥통 님, 설마 저희를 배신한 겁니까?”

“이 미친놈들아!! 다함께 태성을 잡자고 모인 거라며!!”

그 모습을 본 무적살라딘과 살살치세요가 도닥통 무리를 향해 소리쳤다.

“크크크, 뭔가 착각하신 거 같은데요. 우리가 뭉쳤던 이유는 결국 돈 때문 아니었어요? 근데 태성보다 산드로를 잡는 편이 더 확실하고 많은 돈이 보장되는데, 굳이 어렵게 갈 필요가 없잖아요?”

쿨한 척 빈정대는 도닥통.

“형님, 괜한 소리 하지 마시고 솔직히 말하죠. 야 이 빙시들아! 니들 다 속았어! 원래 처음부터 우린, 산드로 잡으려고 판 짰던 거야!”

몇 번 PK를 함께하기도 했던 쉐도우로드가 불에 기름을 끼얹듯 비열한 도발을 해댔다.

[‘무적살라딘’ 님이 파티를 탈퇴했습니다.]

“이 개 같은 배신자 새끼들!!”

그런 그들의 모습에 결국 분을 참지 못했는지, 무적살라딘이 도닥통을 치기 위해 그림자 밟기를 시전했다.

“워 워! 랭커답지 않게 이게 웬 추태야?”

하지만 그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도닥통은 태성 길드원 수십 명 사이로 들어가 있었고, 그의 옆에 서 있던 기사들은 무적살라딘의 갑작스런 난입에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대응했다.

[방패 후려치기!]

탱커 직업군들이 가지고 있는 즉발 스턴기.

도둑 상대로 최고의 카운터나 마찬가지인 상태 이상기가 무적살라딘을 제자리에 멈추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태성 길드원들의 집중 공격이 쏟아졌다.

“날 가지고 놀다니! 가만 안 두겠어!!”

절규와 함께 눈앞에서 잿빛으로 산화된 무적살라딘.

머더러였던 상태인지라 불운하게도 아이템을 드랍했는데, 그게 하필 검이라서 왠지 더 안타깝고 처량해 보였다.

[도닥통: 돈 때문에 모인 놈들끼리 무슨 배신 타령하고 ㅈㄹ입니까? 나 말고 지한테 먼저 제의가 들어갔으면, 지도 똑같이 했을 거면서 말이죠?]

[산드로: 닥치고 꺼져. 랭커란 새끼가 진짜 더럽게도 플레이하네.]

[살살치세요: 양아치 새끼들! 함께 해달라고 그렇게나 빌더니만, 결국 이러려고 그런 거였냐!]

[‘살살치세요’ 님이 파티를 탈퇴했습니다.]

[파티를 탈퇴했습니다.]

담담히 욕을 박아주고 파티를 탈퇴했지만,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배신이란 건 참…… 몇 번을 당해봐도, 항상 참 엿 같은 거구나.’

아무리 현실 같아 보여도 결국 게임이기에…… 그래서 이렇게 사기와 배신이 쉽게 벌어지는 걸까?

아니면 내가 사회생활을 제대로 안 해 봐서…… 현실 또한 똑같이 더럽다는 것을 내내 모르고 살아왔던 걸까?

아무튼 처음 신검을 줍던 그 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정말 수많은 배신과 뒤통수를 지켜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난 오늘의 습격이 어떻게 돌아가게 될지, 진작부터 예상할 수 있었다.

“다리우스야, 기왕 이렇게 된 거 싸우기 전에 하나만 물어보자. 괜찮지?”

“싸움? 아직도 싸움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넌 이미 죽은 목숨이다.”

“아, 새끼 말 진짜 많네. 어쨌든 대답했으니까 물어보마. 넌 도대체 이 타연에 왜 그렇게 목매달고 있냐? 가질 만큼 전부 다 가졌으니까, 게임 속에서 이럴 필요까진 없잖아?”

우릴 둘러싼 인원은 족히 2백 명은 넘어 보였다.

그리고 창밖 광장에도 그에 버금가는 인원이 얼핏 보이는 거로 봐서, 녀석이 충분히 배짱부릴 만했다.

다행히 허세와 가오가 충만한 녀석답게, 무척 고맙게도 이 묘한 대치를 끝내지 않고 내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그래, 하긴 너라면 내 대답을 들을 자격이 있겠지. 그거 아나? 이곳 타연 속 세상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어느 유저든 간에 전부 1레벨부터 시작하고 모든 성장의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져 있지.”

“…… 그래서?”

동의할 순 없지만 일단 그의 말을 더 이끌어내기 위해 장단을 맞춰줬다.

“현실 속 태성 그룹은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기업. 하지만 전부 할아버님과 아버님이 이룩해 놓은 것이지. 그래서 난 남들과 똑같이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해서, 정상의 자리를 쟁취해보고 싶었다. 타연을 통해 내가 가진 역량을 모두에게 당당히 증명해 보일 생각이었다.”

“증명이라고? 무슨 증명?”

“타연에 한 번이라도 접속해본 사람이 대체 몇 명인 줄 아나? 최소한으로 잡아도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다! 그만큼 타연은 한낱 게임이라고 치부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한 경쟁이 존재하고, 현실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임이지. 따라서 이곳에서 지존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특출나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사실 난 대관식 때 신검을 뽑고 나면, 타연을 그만 접고 그룹의 다음 후계자로 본격적인 계승 절차에 들어가려 했었다. 방송사까지 초청해 대대적으로 대관식을 진행했던 것 또한 그 때문이었지. 한데 그걸 처참하게 망쳐버렸던 것이…… 바로 임시 연합과 너, 산드로였다.”

오호라.

녀석이 왜 그렇게 이 타연에 목매달며 게임을 했는지, 드디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그럼 200억이라는 막대한 돈까지 불러가며 신검을 회수하려고 들었던 건…… 역시 구라였나?

바로 게임을 접을 녀석이 굳이 그 돈 줘가며 살 이유는 없었을 테니.

혹여 내가 어마어마한 액수에 혹해 신검을 팔게 되면, 언제가 됐든지 간에 결국 후에 어떻게든 보복하려던 게 분명했다.

“하하하! 이 자식 진짜 자뻑 하나는 끝까지 오지는 새끼네? 뭐? 타연이 모두가 1레벨부터 시작하는 공평한 세상이라고? 그리고 내가 모든 걸 망쳐버렸다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뭔 소리를 하나 들어봤더니만, 죄다 헛소리만 늘어놓고 앉아있네!”

“헛소리라고?”

“넌 새끼야 어릴 때부터 그랬어! 앞에서는 정정당당한 척해 놓고, 뒤로는 지 빽이랑 권력을 맘껏 써먹어서 남을 찍어눌렀던 본성을 내가 모를 거 같아? 타연에서도 현질이란 현질은 미친 듯이 하고, 부하들까지 돈으로 꼬셔서 길드 키운 놈이 도대체 뭘 증명했다는 거야? 돈을 증명한 거야?”

“입 다물어! 네가 뭘 안다고 감히……!”

녀석이 흥분한 채 발끈했지만, 난 놈의 말을 끊으며 마저 하고픈 말을 이어나갔다.

“게다가 내가 모를 것 같아? 너 심지어는 운영자랑도 붙어먹었잖아?”

“무, 무슨 소리냐? 증거도 없이, 잘도 개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아니, 있는데? 지금까진 없었는데 방금 네가 말해 줬잖아? 대관식 날 사람들 앞에서 신검을 뽑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게임을 접으려고 했다고! 도대체 뽑기도 전에 신검이 나올 줄 어떻게 알았을까?”

“다, 닥쳐라!”

그동안 방송에서는 단 한 번도 볼 수 없던 다리우스의 표정.

지금 녀석의 얼굴은, 세상 그 누구보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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