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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132화 (132/350)

132화 뉴 하우스 (4)

“이야! 확실히 강남은 강남이구나! 아파트 때깔이 다르네, 달라!”

“지네 집도 엄청 좋으면서 엄살은?”

“아냐, 차원이 달라. 복도를 무슨 대리석으로 전부 도배를 해놨냐? 아까 봤는데 수영장이랑 스카이라운지도 있는 것 같더라?”

“됐고! 어서 짐이나 좀 풀어! 말했다시피 각자 캡슐에 들어가 있는 시간을 제외하곤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줘야 한다? 암만 내 집이라도 선은 지킬 테니까, 너도 할 말 있으면 꿍해 있지 말고 속 시원히 말하고.”

“속 시원한 건 이 뷰가 아주 제대로구먼? 와! 경치 좀 봐라! 야경 죽인다, 정말!”

거실이 넓게 빠진 터라, 캡슐 두 대가 나란히 설치되었는데도 좁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타연에서의 삶.

그걸 위해선 내가 가장 신뢰하는 현중이와 함께 사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혼자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전에 의논을 나눌 수 있었고, 혼자 살 때보다 보안 측면으로도 더 안심됐다.

무엇보다 녀석도 이젠 랭커급에 다다른 레벨에 무려 디바인 방패를 소지한 몸.

이렇게 타연에만 집중할 만한 환경을, 억지로라도 갖춰줘야 할 타이밍이기도 했다.

“근데 현중아, 너네 세인트 길드원들 있잖아. 아직도 가끔씩 연락은 하지? 혹시 우리 버닝스타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분은 없으셔?”

“없겠냐? 당연히 있지. 한데 어쩌겠어. 이미 늦은 걸…….”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올 거였으면 태규 형님과 서진 누나가 올 때 넘어왔어야 했어. 죽도록 고생하다가 결국 겜 접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이렇게 잘 됐는데…… 이제 와서 합치기엔 서로가 좀 민망해졌지. 물론 나도 10년을 동고동락했던 가족들이라 아쉽긴 하지만…….”

“그렇구나. 하긴 그분들도, 우리도…… 지금 와서 합치기엔 좀 그렇긴 하지. 어쩐지 형님과 누님이 말씀 안 하시던 이유가 있었구나.”

전원 랭커급으로 이루어진 특급 소수정예 길드.

세인트도 나름 명문 길드였다곤 하지만, 그들을 받아들이기엔 내 높아진 기준치에 미치지 못했다.

혼자론 힘들 것 같아 만든 길드였지, 대형 길드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여전히 없다.

놈을 뒤쫓고 추격하기 위해선 지금도 내실을 다질 시간이 빠듯했다.

아쉽고 또 미안하지만, 길마로서 그들을 받자고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이유였다.

“신경 쓰지 마! 타연에서 태성이 없어지고 나면, 다시 돌아가게 될 테니까.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인 거고.”

“알겠다. 나도 그렇고 우리 길드원들도 그렇고, 태성과 싸우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운명이 바뀐 거나 마찬가지긴 하지. 아무튼, 오늘은 이사하느라 수고했다.”

“응? 뭐야? 벌써 자게?”

“자긴 뭘 자? 수고했으니 타연에서도 수고할 차례란 거지. 얼른 접속해. 그 레벨에 지금 잠이 오냐?”

“크크크, 하여간 어지간히도 폐인인 놈이라니까!”

현실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했지만, 정작 난 변한 게 별로 없다.

깨어있는 시간은 전부 타연에 접속해 있는 삶.

인생에서 무언가 하나에 미친 듯이 꽂히는 시간이 있다면, 내게는 요즘이 바로 그때였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우리 버닝스타 전원에게도.

* * *

[‘올림푸스’ 길드로부터 동맹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협정하시겠습니까?]

[YES]

[축하합니다! ‘버닝스타’ 길드와 ‘올림푸스’ 길드는 이제 동맹 관계가 되었습니다.]

“승낙했다. 바로 출발할 거냐?”

“네. 먼저 가서 혹시나 태성이 올지 안 올지 살펴보고 있어야죠.”

“그래. 과연 200명으로 될지 모르겠다만…… 건승을 빌겠다!”

동맹 의식을 위한 악수를 마치고, 제독을 뒤로한 채 아베르 성으로 향했다.

공성전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10분.

제독은 약속한 대로 300레벨이 넘는 고레벨로 이루어진 길드원 200명을 따로 빼놓은 상태였다.

슝!

[아베르 성 외성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순간이동을 마치자마자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쳤다.

아베르 성.

지난달 지웰 성이 점령되면서 유일한 미점령 성으로 남은 곳.

지웰 성과 같은 고레벨 지역이란 이유도 있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성이 위치한 곳이 유저들이 찾지 않는 얼어붙은 땅 ‘노스랜드’라는 게 첫 번째.

어렵게 차지해 봤자 이 성에 속한 마을이라곤 고작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즉 다시 말해, 현재로선 이 성을 먹어봐야 세금이 들어올 구석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제국의 습격이라는 대대적인 이벤트를 통해, 이제 유저들은 현시점에서 6성이 한계라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되었다.

따라서 앞으로 각 길드들은 보유성을 늘리기보다는, 실속 있는 성으로 재편하는 추세로 변하게 될 것.

이번 공성전에서, 태성이 아베르 성을 노리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이유였다.

[산드로: 다들 자리 잡으셨나요?]

[축복받은무빙: 그래. 이제 시작만 하면 된다.]

[축복받은얼굴: 오늘 주인공은 또 이 몸이 되시겠구만~]

공성 시작부터 내가 맡은 역할이 중요했기에, 서둘러 눈 덮인 언덕을 올라갔다.

너른 벌판 위 봉긋 솟은 언덕.

그 정상에 홀연히 서 있는 높은 성벽의 성 하나.

천연의 요새와도 다름없는 아베르 성은, 주로 평지에 있던 다른 성들과 달리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구조였다.

로젠타스 성과 같이 외길 루트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나름 지형적인 강점이 돋보이는 성.

단차로 인해 더욱 높은 성벽 위에서 쏟아지는 NPC들의 공격은, 어지간한 랭커급 탱커도 버텨내기 힘들어 보였다.

“오셨어요?”

“그래 라챤아. 축빙 형님, 방금 막 동맹 맺고 왔습니다. 뭔가 낌새라도 있었나요?”

성을 얼마 두지 않은 마지막 비탈길.

이곳에서 잠복 중인 우리 길드원들과 합류했다.

“전혀 없어. 역시 네 말대로 아직 여긴 관심 밖인가 보다.”

“먹을 게 없는 성이니까요. 이러면 계획했던 대로 공성 시작과 동시에 쳐들어가겠습니다.”

“그래. 더는 눈치 볼 것 없이, 당장 조자룡한테 귓말 넣는 게 좋겠다.”

올림푸스 길드의 부길마, 기사 랭커 ‘조자룡’.

오늘 참여할 별동대를 이끄는 수장이었다.

(나: 자룡님. 지금 바로 아베르로 넘어오시면 되겠습니다.)

(조자룡: 알겠습니다. 지금 공간이동해서 5분 안에 전원 내성문 앞까지 집결하겠습니다.)

200명.

우리 길드원까지 합친다 해도 공성에 성공하기엔 다소 부족한 숫자.

하지만 모든 미점령 성들이 그래왔듯, 내성문만 뚫는 데 성공한다면 거의 성공한 셈이었다.

내성문을 파괴할 동안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 탱커의 부재(不在).

하지만 그걸 가장 효과적으로 해낼 새로운 수단이, 이미 지난 공성전에서 공개됐다.

‘오늘의 포문은 내가 연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시 모를 배신을 염두에 둬서, 현중이의 레벤다스는 마지막에 소환해야 했다.

그러니 내성문을 뚫는 건, 당연히 루이투스의 몫이었다.

공성 1분 전.

올림푸스군은 이미 내성문과 200미터 전방에 진형을 잡았고, 주변은 여전히 적막하기만 했다.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해, 아베르 성은 마치 얼어붙은 빙성(氷城)과도 같아 보였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올림푸스 여러분! 다 함께 집중해서 속전속결로 해치웁시다!”

와! 와!

자유분방한 포즈로 서 있는 그들이, 내 선창에 함성으로 답해주었다.

“자룡 님, 제가 모든 어그로를 끌고 성문을 치면 바로 일점사 해주셔야 합니다.”

“네. 다만 저희 측 인원이 최대한 죽는 일이 없도록 조심스럽게 접근하기는 하겠습니다. 그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당연한걸요. 위험할 일은 없을 겁니다. 저희에겐 타이탄이 3대나 있으니까요.”

작지만 절대 무시 못 할 길드.

우리 버닝스타의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준비가 끝났다.

이제 남아있는 건 쳐들어가서 깃발을 꽂는 것!

[공성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빠빰! 빠빠빰!

익숙한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난 내성문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올랐다.

“램보 소환!”

먼저 함께 내성문을 공격할 보조 딜을 소환하고,

“루이투스 소환!”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타이탄을 소환했다.

피핑! 핑핑!

성큼성큼 다가가는 내게, 어느새 성벽 위에서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아베르 성 궁수병으로부터 872의 물리 피해를 입었습니다.]

[아베르 성 정예 궁수병으로부터 1,422의 물리 피해를 입었습니다.]

……………………

툭, 툭,

처음엔 몇 대 적중되던 것이, 조금 더 다가가자 수백 개씩 날아왔다.

[광휘의 방패!]

[심판의 전진!]

쏟아지는 화살 비를 전진기로 피하는 것과 동시에 내성문까지 빠르게 접근했다.

그리고 성문을 향한 첫 공격이 막 들어가는 순간, 하늘에 떠 있던 와순이로부터 또 한 명의 지원군이 뛰어내렸다.

쿵.

강화된 가이라 나이츠.

성벽 위로 떨어진 축빙 형님의 타이탄이었다.

쾅! 쾅! 크르르!

98만에 이르는 HP가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무시하고 성문만 공격했다.

대부분의 어그로는 나와 성벽 위 NPC들을 죽이는 축빙 형님이 나눠 먹은 상태.

덕분에 램보는 옆에서 프리딜(free deal)에 열중이었다.

와아아!

몇 초 되지 않는 시간 차이로 올림푸스군이 공격에 가세해왔다.

사실 미점령 성을 차지하기엔 부족한 숫자였지만, 특별히 힐러는 최대한 배제해달라고 요청한 탓에 무시 못 할 화력을 자랑했다.

“멋지다 루이투스!”

“이거 진짜로 되겠는데?”

열심히 활과 마법을 날리는 올림푸스 길드원들도 신이 난 듯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유저가 수성했다면 절대 가능하지 않았을 전략이었다.

타이탄을 일점사하는 대신, 달라붙는 다른 유저들부터 죽이다 보면 알아서 자멸했을 숫자기 때문.

하지만 단순 AI로 수성중인 NPC들인 터라, 가장 먼저 접근하고 성문에 가장 딜을 많이 넣은 루이투스에게 모든 원거리 공격들이 집중됐다.

덕분에 200명의 딜러는 아무런 위험 없이, 자신들의 최대 DPS를 마음껏 뽑아내는 중이었다.

10%, 7%, 4%…… 0%!

[당신의 타이탄 루이투스의 HP가 전부 소진되어 소환이 강제로 해제됩니다.]

[그림자 밟기!]

아무리 체력이 많고 방어력 높은 로드급 타이탄이라 해도, 역시 1분을 버티진 못했다.

역소환이 됨과 동시에, 눈여겨보고 있던 한 NPC 궁수병을 향해 그림자 밟기를 사용했다.

퍼퍼퍼펑!

어그로가 풀린 탓에 모든 NPC의 공격이 자연스럽게 축빙 형님의 타이탄과 램보에게로 집중됐다.

하지만 상관없이, 난 궁수병들의 숫자를 줄여나가는 일에만 몰두했다.

쉭! 연속 베기! 쉭! 은밀한 일격!

디바인 검 2자루를 찬 랭커의 무시무시한 공격!

평캔을 섞은 스킬 한두 방만으로도, 고레벨일 게 분명한 궁수병들이 허수아비처럼 죽어 나갔다.

“레벤다스 소환!”

강화된 가이라 나이츠의 역소환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자, 옆에서 함께 딜을 하고 있던 현중이가 타이탄을 소환했다.

그러자 곧바로 축빙 형님의 타이탄이 역소환되며 노출됐다.

‘하여간 저 자식은 타이밍 하나만큼은 기가 막힌 놈이라니까!’

차분히 하나씩 방패와 전투 망치로 적들을 내려찍으며, 축빙 형님을 보호하는 무빙을 잊지 않는 레벤다스.

놈의 활약과 나의 폭딜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일 때쯤, 마침내 내성문이 뚫렸다.

(조자룡: 성문이 파괴됐습니다! 바로 전진합니까?)

(나: 네. 저희 쪽 타이탄, 레벤다스의 뒤를 따라 천천히 전진하시면 되겠습니다!)

미점령 성의 내성문을 뚫은 것 치고는 너무도 피해가 경미했다.

모든 게 타이탄을 3대나 소환했던 까닭.

아직 대부분의 HP와 5분여의 소환 시간이 남은 레벤다스를 필두로, 올림푸스군은 곳곳에 위치한 NPC 병사들을 제거해나가면서 전진했다.

사실 내성문을 뚫기가 어려운 거지, NPC 병사들은 레벨이 높아봤자 형편없는 AI 탓에 손쉬운 상대였다.

지웰 성 때와 마찬가지로 안전하게 전진한다고는 했지만, 고작 3분 만에 성벽 위의 NPC들을 대부분 정리한 채 오벨리스크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아베르 성 정예 기사단원>

대략 200명이 넘어 보이는 기사단원들이 바리케이드를 친 것마냥 오벨리스크를 에워싼 모습이 보였다.

적지 않은 숫자.

하지만 무지성 타겟팅 공격을 하는 그들과,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유저들 간에 제대로 된 싸움이 이뤄질 리 없었다.

그들 한복판에 난입하듯 뛰어든 레벤다스는, 한 차례 공격을 해 어그로를 먹고는 곧바로 ‘집중 방어’ 스킬을 사용했다.

이동 불가가 되는 대신 저 상태에 돌입한 레벤다스의 탱킹 능력은 루이투스 그 이상!

덕분에 우리 버닝스타를 비롯한 올림푸스 길드원들은, 손쉽게 일점사를 하며 기사단원들의 숫자를 줄여나갔다.

[산드로: 지금부터 저희는 오벨리스크만 치겠습니다!]

[무적살라딘: 오케이!]

기사단원들을 절반쯤 잡았을 무렵.

나와 라챤이, 무살 형님 등은 놈들을 무시한 채 오벨리스크 쪽으로 붙었다.

역시나 혹시 모를 올림푸스의 배신을 염두에 둔 선택.

하지만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도, 올림푸스는 아무렇지 않은 듯 착실하게 기사단원들만 공격했다.

텅! 텅! 텅!

2명의 랭커 도둑과 드래곤의 무기들을 갖춘 궁수와 마법사.

심지어 나는 오벨리스크 파괴자 업적 덕분에 더 많은 데미지가 들어가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지, 소수가 공격하는 중인데도 오벨리스크의 체력이 쭉쭉 줄어들었다.

번쩍!

어느덧 레벤다스의 체력이 다했는지 역소환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침내 오벨리스크도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피피피핑!

이미 몇 차례 겪어본 일.

근처에 있던 올림푸스 길드원들이 전원 증발하듯이 추방당해 사라졌다.

우리 버닝스타 길드원들만 남겨둔 채로.

[아베르 성의 오벨리스크가 점령당해 공성전이 종료됩니다.]

[‘버닝스타’ 길드가 아베르 성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습니다.]

[아베르 성 점령에 성공하여 길드 업적치 300,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칼젠 성을 먹을 때만 해도 마지막인 줄 알았던 알림 창.

새로운 성 점령에 성공했다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와우! 성공이야!”

“참…… 성을 이리도 쉽게 먹을 수 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네요.”

“쉬웠던 게 아니다, 라챤아. 이만큼이나 우리가, 그동안 많은 것들을 얻고 강해져 버린 거야.”

공성전이 시작된 지 단 8분 만에.

우리 버닝스타는 마지막 미점령 성, 새로운 보금자리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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