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추적 (1)
비록 녀석이 완성품 장비를 드랍하진 않았지만, 혼자 잠깐 고생한 것치고는 많은 것들을 선물해 주었다.
[업적: 괴수 사냥꾼(B)]
* 마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괴수 중 하나를 토벌했을 때 주어지는 업적입니다. (근력 +15, 민첩 +15)
* 업적 효과로 주변에 괴수가 나타나면 먼저 감지할 수 있습니다.
[업적: 무모한 도전(A)]
* 공격대로 도전해야만 하는 레이드를, 단 1인으로 클리어한 자에게 주어지는 업적입니다. (공격력 +5%, 방어력 +5%)
* 업적 효과로 타이탄 연대기에 존재하는 희귀 퀘스트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먼저 업적.
무려 A급과 B급, 2개를 단번에 획득해 버렸다.
얼마 전까지 D급 하나를 얻고자 온종일 낚시하던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역시 목표는 크게 잡을수록 좋은 거라는 옛말이 맞았어. 톱인 녀석을 쫓다 보니, 덩달아 나도 톱에 어울리는 업적들만 얻게 되잖아!’
다음으로 고르곤의 비늘과 꼬리, 발굽 등의 아이템도 자세히 살펴보았다.
비늘과 발굽은 유니크 등급으로, 갑옷을 비롯한 부츠 등의 방어구 재료로 보였다.
한데 그중 하나뿐인 꼬리는 무려 레전더리 등급이었는데, 딱 봐도 무기 재료로 쓰일 것처럼 보였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금속형의 꼬리라……. 뭔가 특별한 무기가 만들어질 것 같은데…….’
아무튼, 뭐가 됐든 제작은 나중 가서의 일.
다른 건 몰라도 현재 무기만큼은 넘치도록 충분했기에, 눈길은 가지만 크게 관심이 들진 않았다.
[산드로: 자자, 아직 태성 애들 안 왔지? 다들 귀환해서 성안에서 보자.]
[라스트챤스: 넵넵!]
보금자리가 있다는 건 역시 편했다.
황량해진 빙벽 속에서, 나는 아베르 성으로 돌아가는 귀환주문서를 사용했다.
* * *
“야만 용사의 말이 사실이었다니……. 이로써 길고 긴 겨울을 위협할 위험 요소가 조금은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마이 로드!”
[‘검은 폭풍 기사단장 롤랑의 경고: 토벌 퀘스트’를 해결했습니다.]
[롤랑의 상자(1)를 획득했습니다.]
성으로 귀환하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역시나 기사단장인 롤랑이었다.
퀘스트 템이었던 뿔을 넘겨주자, 녀석은 약속했던 보상인 상자 하나를 건네주었다.
보통 이런 랜덤 박스는 등급에 따라 외형이 다르기 마련.
금테가 화려하게 둘린 이 롤랑의 상자는, 난이도가 높은 편이라 그런지 상당히 고급진 모양새를 뽐내고 있었다.
“이거 이거, 오랜만에 보는 뽑기인데?”
“네임드 보스 몹을 잡아야 하나 얻을 수 있는 뽑기면, 얼마나 좋은 걸 준다는 거냐? 고르곤이면 엄청 고레벨이기도 하잖아! 롤랑, 이 자식 생각보다 부자였던 놈이네?”
“뭐, 스토리상 천년을 이어온 기사단이니까…… 갖고 있던 보물도 많은 거 아닐까?”
이런 토벌 퀘스트는 성에 입장만 되면 누구나 얻을 수 있다.
지금은 우리 길드가 점령해서 출입을 통제할 수도 있지만, 이전까지는 태성도 얻을 수 있었던 퀘스트.
그 때문에 롤랑이 주는 보상 중에, 시공의 틈새와 연관된 정보가 있을지 모른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바로 열어본다?”
“고고고!”
이제는 돈도 벌 만큼 벌었는데, 뽑기는 왜 여전히 날 설레게 만드는 건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인벤토리 안의 상자를 거침없이 터치했다.
[북부 용사의 자격(유니크)을 획득했습니다.]
<북부 용사의 자격(유니크, 음식 아이템)>
* 북부 지방에 전해지는 신비한 비법으로 만들어진 영약입니다.
* 복용 시 어둠과 눈보라를 꿰뚫어 보는 뛰어난 시야를 얻게 됩니다.
* 복용 시 마력과 민첩 스탯이 영구적으로 증가합니다.
“지환아, 뭐 나왔냐? 퀘스트 떴어?”
“암만 형님이시라도…… 설마 레전더리 템이 뜬 건 아니죠?”
최근 템 운이 따르다 보니 잊어먹고 있었지만, 원래 난 강화와 뽑기 운이 더럽게 없던 놈이었다.
오랜만에 그런 나로 돌아왔는지, 이번 뽑기는 기대 이하의 성과였다.
물론 언제부터 ‘유니크’급을 이렇게 취급하게 됐는지는 모르겠다만.
“꽝이야. 아니, 다시 보니 유니크 영약인데 옵션이 2개나 붙어있으니 상당히 괜찮은 것도 같다. 라챤아, 너 혹시 영약 먹어둔 거 있니?”
“아뇨 형님. 아시다시피 전 캐릭 지우고 완전히 레벨 1부터 새로 키운 거라서, 아직 이 캐릭으로 먹은 건 없어요.”
“그럼 이거 네가 먹어라. 유니크급이라 만족할지 모르겠다만, 궁수한테 딱 좋은 영약으로 보인다. 나야 이미 먹은 게 있어서 필요가 없네…….”
“헉! 주신다면야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여전히 영약은 레전더리 등급이 채집 성공이 됐다는 것도, 혹은 드랍 템 매물로도 공개된 적이 없는 상태.
그러니 본인 직업에게 딱 필요한 옵션만 주는 유니크급 영약이 생긴다면, 주저 없이 먹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뭐든지 조금 더 이득 보려다, 성장이 늦춰져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는!
“그나저나 역시 롤랑한테 얻는 정보는 아니었나 보지? 하긴 뜬금없이 랜덤 박스에서 연계 퀘스트가 나올 린 없겠지…….”
“맞아. 역시나 그 귀환석이 유일한 정보인가 보다.”
“근데 템 설명이 너무 간단해서 어디부터 찾아가 봐야 할지 좀 막막한데? 라챤아, 넌 뭐 짚이는 데 있냐?”
나와 대화하던 현중이가, 넘겨받자마자 즉석에서 영약을 복용하던 라챤이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흠……. 돌에 마법진이 새겨진 거니까, 일단 마탑에 들러 NPC들 좀 뒤지다 보면 무슨 정보가 나오지 않을까요?”
“너도 별수 없구나. 그런 뻔하디뻔한 대답이라니……. 너 정말 예전 피닉스에 있을 때 에이스로 불렸던 게 맞긴 하냐? 형들이 모른다고 뻥카친 건 아니지?”
“아, 진짜 이 형이? 그런 형은 어디로 가야 할 것 같은데요?”
“그거야 우리 길마, 산드로 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내가 말을 말아야지.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나지 못한 내 잘못입니다요!”
둘 다 타연에서 고수, 그것도 정상급에 속하는 유저들인데…….
옆에서 지켜보다 보면 한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라고 뭐 별수 있겠냐? 타연 퀘스트는 이렇게 대부분 다 불친절한데 말야. 그래도 일단 라챤이 말이 타당한 것 같긴 하다. 전역에 흩어져 있는 마탑주들부터 하나둘씩 전부 찾아가 보면, 뭔가 다른 단서라도 잡히는 게 있겠지.”
“그럼 바로 출발?”
“응. 너네는 그동안 따로 조사 좀 하고 있어 봐. 일단 귀환석을 소지해야 퀘스트를 받을 수 있을 테니, 마탑은 혼자 다녀와 볼게.”
“그래.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부지런히 움직여라! 마이 로드, 산드로 님이시여!”
“형님. 전 로그아웃해서 올타를 샅샅이 뒤져보고 있겠습니다!”
묘하게 죽이 맞는듯한 둘을 뒤로 한 채, 공간이동술사를 찾아 이동했다.
* * *
“이 ‘귀환석’을 어떻게 하면 활성화할 수 있을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이런 스톤은 내 평생 처음 보는군. 보아하니 중간계에서 볼 수 있는 물건은 아닌 듯싶네만……. 고서(古書)라도 뒤져봐야겠어.”
“야…… 너두야?”
오랜만에 찾은 NPC 왕국 페이센의 수도, 룬몬.
유저들이 자주 찾는 NPC라 길게 선 줄을 한참 기다려 만난 마탑주는, 실망스럽게도 다른 마탑주들과 똑같은 멘트로 나를 대접했다.
붉은 마탑, 녹색 마탑, 칠흑 마탑 등등…….
마지막으로 찾은 이 빛의 마탑에서도 내가 원하는 대답은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 이제 남은 건 제국에 있는 3개의 마탑뿐인데……. 그덴 거긴 내가 갈 수 없는 곳이잖아!”
현재 난 제국의 수배를 받는 몸.
마탑의 마법사 NPC들은 전부 다 작위를 받은 ‘귀족’에 속한 신분이라, 제국의 마법사들을 만나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나뿐만이 아닌, 우리 버닝 스타 전원이 다 마찬가지인 신세였다.
(나: 라챤아, 혹시 올타에서 무슨 정보라도 찾은 거 있니?)
(라스트챤스: 아니요. 형님, 귀환석이란 단어로 검색해도 아무것도 안 뜨네요. 아무래도 이건 최근에 등장한 템이라, 저희와 태성의 소수만 알고 있는 퀘템인 모양이에요.)
(나: 아... 진짜 이걸 가지고 어딜 찾아가서 키워드를 외쳐봐야 하려나? 마탑주는 아닌 것 같은데, 도무지 감이 안 잡히네.)
(라스트챤스: 일단 다시 성에서 뵙죠, 형님.)
슝!
귀환주문서를 사용하자 현중이가 라챤이와 함께 나를 반겼다.
“고생했다. 마탑에서 성과는 있었고?”
“아니 전혀. 이렇게 단서를 찾겠답시고 낭비할 시간이 없는데…… 진짜 답답하네!”
“역시 이런 퀘스트와 관련된 것들은, 쪽수가 많은 태성 길드에 유리하단 건가!”
“그런 모양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양도 중요하지만…… 질이 더 중요한 거 아니겠냐?”
“응? 그건 또 뭔 소리야? 어디로 가야 할지, 진짜 난 모르겠다니까? 자꾸 나한테 의존 좀 하지 마라?”
잔머리엔 나름 자신 있지만, 스토리 쪽으로는 영 젬병이라는 사실.
스스로 내 단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터라, 이럴 때를 대비해서 내 부족함을 채워줄 부분을 사전에 준비해 두었다.
“너 말고 짜샤. 그새 우리 길드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이 누군지 까먹었냐? 길드 채팅에 참여 안 한다고,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하네? 크크!”
“아! 맞다! 그분이 있었구나!”
[산드로: 당당검님, 길드 채팅창 보고 계셨죠? 급히 의논드릴 게 있으니까, 바로 귓속말 좀 주시든가 성으로 좀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늘 귓속말을 꺼놓는 당근당근단검.
그래서 가입 당시, 길드 채팅창은 항상 주목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해 두었다.
이런 것조차 지키지 않는다면 길드원이라 할 수 없을 터.
다행히 그로부터 금방 연락이 왔다.
(당근당근단검: 노스랜드를 한참 뒤져봐도 못 찾았던 건데... 고르곤을 찾아내 잡으셨나 보네요!)
(나: 네. 드랍 템 나온 게 있어서 그러니 성으로 좀 와주시겠어요? 새집도 생겼는데 구경 좀 하실 겸요.)
만인살을 얻은 뒤 다시 열렙 모드로 들어간 터라, 가입 당시를 제외하곤 그를 통 만나보지 못했다.
다행히 크게 바쁘지 않았던 모양인지, 금세 귀환주문서를 사용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정말 제가 도와드리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시네요? 성 먹는 것도 조금 놀랐는데, 고르곤까지 후딱 잡아 버리다니……. 역시 최강 도둑이세요!”
“하하! 잘 지내셨어요?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귀찮게 해드릴 일 없을 거라고.”
“그냥 하는 빈말인 줄 알았죠. 안녕하세요? 당근당근단검입니다. 같은 길드원이니 앞으로는 편하게 당당이라고 불러주세요.”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반가워요!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실제론 처음 뵙네요.”
가입한 지 한참 지나서야 서로 통성명을 마친 우린,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링크 보낸 거로 설명을 보셨으니 아시겠죠? 혹시 이 부서진 귀환석을 누구한테 가져다줘야 마법진을 회복시킬 퀘스트를 얻을 수 있을까요? 혹시 짚이는 NPC라도 있으세요? 일단 마탑주들은, 제국을 제외하고는 전부 만나봤는데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제국의 마탑주는 제가 만나볼 수 있겠지만…… 다른 마탑주들과 크게 다른 반응을 보일 것 같진 않네요. 아무래도 제 생각엔, 이 귀환석을 원래 상태로 복구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네? 그게 무슨……?”
“생각해 보세요. 원래라면 이 귀환석에 마계로 돌아가는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을 텐데, 이대로 원상 복구되면 마계로 가는 포탈이 열릴 거 아니에요? 근데 마계는 아직 업데이트도 안 되어 있는데, 그게 어떻게 되겠어요?”
“아하……!”
“그러니 마법진을 고치려는 건 잘못된 판단인 거죠. 제가 보기엔 그냥 이 귀환석이 부서진 지금 상태로 작동하게만 만들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망가져 버린’ 마법진을 통해, ‘시공의 틈새’라는 중간계와 마계의 사이에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향하는 포탈이 열리는 스토리인 거죠!”
“……와!”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라챤이가 작은 탄성을 뱉었다.
나 또한 비슷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몇 가지 단서만 가지고 그가 유추해낸 퀘스트 진행 방향은, 논리적으로 틀린 구석이 없어 보였다.
마계는 아직 미공개 지역.
그리고 시공의 틈새는 마계가 아니라는 힌트가 우리에게 이미 주어져 있었다.
그저 그 정보와 귀환석 간의 상관관계를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
과연 신규 콘텐츠만 노리는, 직업 랭킹 1위에 어울리는 유저다운 통찰력이었다.
“그, 그럼 어디부터 찾아가 보면 될까요? 혹시 생각나는 NPC라도 있으세요?”
“마법진 복구가 아니라 돌의 ‘수리’와 관련된 거니, 제작 관련 NPC부터 찾아가 보면 어떨까요? 얼마 전 길마님이 찾아가셨다던 제국의 ‘달켄’이나, 드워프들의 도시 로낙쏜의 ‘아이언해머’ 클랜 마스터 등을요!”